하지만 나유성은 박태준을 거부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 상황에 박태준한테 맡기다가 병원신세를 져야 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동시에 박태준도 신은지가 나유성을 치료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머리로는 계산하기 바빴다. 신은지는 일부로 모르는 척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나유성 모친을 도와 정리한 뒤, 작별 인사를 건넸다.“어머님, 잘 먹었습니다. 제가 오후에는 출근해야 해서 먼저 가볼게요.”그녀는 요즘 박물관에서 뒷수습 담당 때문에 바쁘다. 게다가 지금까지 들어온 문화재 복원을 완료해야 만 했다.“주말에도 일하느라 고생이 많아.”신은지는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어서 박태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내가 바래다 줄게.”그는 신은지를 보기 위해 잠시 들른 것뿐이기 때문에 그녀가 떠나면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때, 나유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태준의 앞을 막았다.“나한테 약 발라준다고 하지 않았어? 안 그러면 흉터 남을 거야.”“...”나유성이 박태준을 막는 동안 신은지는 이미 차를 타고 저택을 떠났다. 곧이어 박태준이 실눈을 뜨면서 물었다.“일부러 그런 거지?”화가 난 그와 다르게 나유성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그건 내 질문 아니었나, 어떻게 은지 부른 날에 맞춰서 집에 찾아온 거야?”박태준은 빠르게 인정했다.“그래, 일부러 그랬어.” 나유성이 미소를 지었다.“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은지는 지금 역사 관광 지구 담당 디자이너야. 담당자로써 회의 때문에 계속 만나게 될 거고, 전화도 하고, 바래다주는 단계까지 가게 될 거야. 무슨 사정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마. 게다가 은지는 이제 너를 이성으로 보지 않아.”...일주일 후, 신은지는 박물관에 발표를 하러 들렸다. 한편, 박물관 안에는 경원의 동기들이 그녀를 위해 큰 환송회를 준비했다. 이경수는 밤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급기야 자리에서 신은지를 잡고 스승으로 삼겠다는 말을 했다가 허 원
신은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상대방이 버럭 화를 냈다.“눈 똑바로 뜨고 다녀. 내가 입은 옷이 얼만지는 알아? 네 목숨 값 보다 더 비싼 거란 말이야!”낯익은 목소리였다. 진화영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자 그녀의 예상이 적중했다.진화영은 검은색의 섹시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엉덩이가 제대로 올라가지 못한 탓에 옷 티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이어서 진화영은 불쾌한 표정으로 신은지를 바라보았다. 키는 신은지보다 작았지만 팔짱을 낀 채 상대방을 깔아 보는 태도를 보였다.“아, 박 회장님 전부인이구나. 근데 이런 장소에는 평범한 신분은 들어올 수 없을 텐데.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누구한테 찍힌 거 아니죠?”신은지는 관장의 초대장을 들고 당당하게 참석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떠드는 멍청한 인간 앞에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박태준은 말 많은 여자 안 좋아해요. 공공장소에서 막돼먹은 여자 마냥 욕하는 건 더더욱 싫어하고요”진화영은 조건반사처럼 주위를 살폈다. 사람이 없는걸 확인하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다시 말했다.“그래요? 회장님 취향을 그렇게도 잘 아시는 분이 왜 차이셨을까?”하지만 신은지는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곧이어 진화영을 피해서 음료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진화영은 뚫어지도록 그녀를 노려 보았다.박태준은 돈도 없고 신분도 낮은 여자가 뭐가 좋다고 결혼을 한 걸까, 예쁘장한 외모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매력이 없지 않은가. 그녀도 박태준 같은 남자는 싫은 결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신은지의 문화재 복원사 라는 직업 때문인가.곧이어 그녀는 뜨거운 물을 컵에 받았다.“신은지...”한편, 신은지는 고개를 숙인 채 음료를 찾고 있었다. 뒤에서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재빨리 뒤로 돌았다.진화영이 뒤에 서있다가 신은지가 몸을 돌리자 컵 안에 있던 물이 신은지의 손 위로 쏟아졌다.“치이익-“물은 뜨거웠다. 금방 끓인
신은지는 멀쩡한 손으로 눈썹 사이를 눌렀다. 그녀는 이미 인내심이 바닥이 난 상태였다,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그래, 너도 그 사람들한테서 다치지 않게 나한테서 멀어지면 되잖아.”박태준이 말했다.“..그래, 결국 너는 그 말 하려고 한 거야. 무슨 진화영, 액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냥 내가 멀어져 주길 바라는 거잖아.”신은지는 아픈 것보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곧이어 물을 끄고 바로 자리를 떴다. 마침 직원이 약을 들고 왔지만 신은지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나갔다.박태준은 약을 받고 직원에게 오만 원짜리 지폐를 몇 장씩 건네주었다. 로비 안.진화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 더러워진 음료 코너도 깔끔하게 치워졌다. 신은지는 빠른 발걸음으로 문 앞으로 걸어갔다. 곧이어 문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에 외투를 안 입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신은지가 외투를 가지러 갈지 고민하던 시간에 박태준이 이미 그녀의 뒤를 쫓아왔다. 그는 그녀의 완강한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자신의 차 안으로 데려갔다.그리고 박태준은 강태산에게 주소를 불렀다. 모르는 주소였지만 신은지는 그가 최근에 산 집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혼했기 때문에 자신과 아무런 연관도 없었다.신은지가 눈살을 찌푸렸다.“나 차 가져왔어. 내려 줘.”“기사님께 차 키 드려. 내일 가져다 드릴 거야.”이어서 박태준은 머리 위의 불빛으로 약의 사용법을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 “손.”“혼자 할 게.”차 안은 히터가 틀어져 있었다. 따뜻한 바람이 손가락에 닿자 다시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박태준은 자신의 코트를 신은지에게 덮어 주고 히터를 끄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차 창문을 열게 했다.그제야 그는 그녀의 손에 약을 발라 주었다. 차 안에 있던 따뜻한 공기는 바람이 들어온 탓에 차갑게 변했다. 박태준의 손톱이 피부에 닿자 신은지는 아파하며 손을 뒤로 뺐다. 그러자 박태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움직 이지마.” 약을 바른 부위는
신은지는 마음에도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민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괜찮아.”진화영도 이미 울음을 그치고, 거실에는 침묵밖에 남지 않았다. 신은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박태준이 그녀를 잡았다.진화영 부친은 이를 꽉 깨물었다.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주방에 있는 직원들에게 소리쳤다.“뜨거운 물 가져와.”진화영은 분에 치여 충혈된 부친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빠, 뜨거운 물로 뭐 하시라고요!”자신의 작은 상처에도 마음 아파하던 부친이 자신에게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친의 표정을 보고 겁을 먹고 말았다.직원들은 마시는 물이라고 생각하고 얼른 가져다주었다. 직원이 가져온 물은 금방 끓인 탓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었다.그는 탁자를 치면서 진화영에게 말했다.“화영아, 손 가져와.”진화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크게 소리 질렀다.“아빠!”“가져 오라니까!”그의 목청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온화했던 말투로 돌아갔다.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감출 수가 없었다.“내가 네 눈을 가려 줄게. 잘못한 일이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맞아. 화영아, 괜찮아. 아빠가 옆에 있어 줄게.”“싫어요, 제 손은 피아노 치는 손이에요. 화상 입으면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모두 물거품으로 변한다고요!” 진화영이 도망치려고 하자, 그의 부친이 그녀를 잡았다. 그리고 탁자로 끌고 가서 그녀의 왼손을 탁자 위로 올렸다.부친은 한 손으로 그녀를 잡고, 한 손으로는 컵을 들었다. 그는 컵의 손잡이가 아닌 컵을 그대로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신은지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몇 시간 전의 일이지만 보기만 해도 손가락이 아파졌다. 게다가 진화영 부친이 가져온 물은 더 뜨거울 것이다.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녀의 눈가가 달아올랐다. 진화영의 부친이 신진하를 닮은 이유에서 일까.신은지는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만 됐어요.”그녀는 박태준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빠져나갔다. 박태준은
그 뒤로 며칠 동안 진유라의 예상과 다르게 박태준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1억 2천의 빚을 갚아 주었다는 소식도 진유라에게 듣고, 정작 본인은 사라진 것처럼 나타나지 않았다.두 사람은 이혼하고 완전히 갈라졌다. 신은지의 앞에서 박태준을 언급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가끔 뉴스에 나오는 박태준의 모습을 보면서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거의 잊혀질 때쯤, 박태준이 문자를 보냈다.‘언제 퇴근해?’신은지는 보기만 하고 답장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역사 관광 지구 프로젝트의 건축가들과 회의에 열중했다. ‘나연 그룹 밑에서 기다릴 게.’‘할말 있어.’‘신은지..’신은지의 핸드폰이 계속 울리자 옆에 있던 디자이너가 노트북을 내려놓았다.“답장 하셔도 됩니다. 계속 찾는 거 보면 급한 일 인 것 같아요.”“아, 죄송합니다.”신은지는 핸드폰을 열어서 박태준을 차단 시켰다. 그 이후로, 그녀의 핸드폰은 다시 울리지 않았다. 이 날 저녁은 프로젝트 부서 직원들은 모두 남아서 야근했다. 드디어 일이 마무리되고, 신은지는 박태준이 기다리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자신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이때, 나유성도 사무실에서 나왔다. 마침 신은지가 가려던 찰나에 두 사람이 마주쳤다.“내가 바래다 줄게.”“아니, 괜찮아. 택시 타면..”“너무 늦었어,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내일 아침 뉴스에서 네 소식은 안 보고 싶어.”신은지가 거절하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직원들이 떠들기 시작했다.“은지 씨, 그냥 같이 가세요. 나팀장 님 눈에는 전부 다 늑대로 보일 거예요.”회사는 소문이 제일 빨리 퍼지는 곳 중 하나다. 게다가 나유성은 이미 신은지에 대한 호감을 감출 생각이 없었고 결국 보안실에 있는 감시견 빼고는 회사 전체에 퍼지고 말았다.나유성은 직원들의 놀림에 민망하기는커녕 빠르게 인정했다.“나랑 가자. 여기서 저 사람들 한테 놀림 당하고 싶은 거야?”“...”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나
신은지는 그의 뻔뻔한 태도에 경악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순간, 진유라가 말해 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에 박태준이 느꼈던 분노를 가늠할 수 있었다.전예은을 도와서 인맥을 끌어들이고, 힘들지만 항상 그녀를 지키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노인네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화가 났을까.박태준의 성격대로라면 두 사람을 인사불성으로 만들어도 시원치 않았다. “침착해, 순간의 감정으로 후회할 결정은 하면 안 돼.”신은지는 며칠 전 있었던 일에 대해 보답하고자 부드러운 말투로 그를 말렸다.“계속 지내고 싶으면 바람피우는 건 눈 감아 줄줄 알아야 해.”신은지의 상냥한 태도에 박태준은 멈칫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의 뜻을 알아 들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재혼 이야기하는 데 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래?”그의 행동은 여전히 전예은을 향한 분노처럼 보였다. 가소로운 그의 말에 신은지는 코웃음을 쳤다.“재혼 안 해, 꺼져.”어렵게 이혼을 끝낸 마당에 다시 재혼을 하자는 말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신은지는 오히려 오백 년 만에 나올 법한 전예를 과 박태준 커플이 다시 만나기를 바랐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들과 더 멀리 떨어질 수 있게 빌었다.하지만 이 말은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미치광이가 그대로 동사무소로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차 안에서도 신은지는 프로젝트 수정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탓에 성의 없는 위로를 하면서도 박태준이 정색한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전예은 씨는 줄곧 고상하고 오만했어. 그런 사람이 스캔들에 말려들었는데, 네가 안 도와줬잖아. 화내는 게 당연하지.”신은지는 두 사람이 다시 재회하길 바랐다.“만진다고 살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야. 남자면 마음을 넓게 먹어야지.”박태준은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네 마음 참 넓다. 자기 남편이랑 다른 여자랑 엮이게 하면 기분이 좀 풀려?”“난 도와 주는거 잖아. 너 그 사람 좋아 하잖..”신은지의 말이
“뭐? 재결합? 누구랑? 신은지랑?” 고연우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말했다. “전처랑 하는 게 재결합이고, 새로운 사람이랑 하는 것은 재혼이지.” 박태준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고연우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닫혀 있던 서재문을 보고 억눌렀던 분노를 터뜨리며 말했다. “나는 축의금 안 할 거야. 나는 신은지 마음에 안 들어. 전화는 왜 했냐? 너희들끼리 법원 가서 재혼 절차 밟으면 되는 거 아니야? 설마 나한테 가서 들러리 하라고? 마음이 갈대인 너 같은 놈 들러리 하기 싫어, 불길해.” “하하!” 고연우는 비웃으며 말했다. “내 결혼식도 아닌데 나랑 무슨 상관이야? 앞으로 나한테 연락하지 마.” 고연우는 박태준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박태준도 고연우와 말싸움하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후, 박태준은 핸드폰을 보다가 담배를 피우고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했다. 다음 날, 또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신은지는 박물관에서 나와 곧장 나연 그룹으로 향했다. 나유성은 회사에 없었다. 엄숙하고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는 키보드 두드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이때, 한 동료가 조용히 신은지에게 다가와 말했다. “은지 씨, 나 대표님이랑 싸웠어? 오후 내내 나 대표님 안색이 안 좋으셔.” “아니?” 신은지는 컴퓨터를 켜며 말했다. “나랑 나 대표님은 그냥 친구 사이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조영숙은 안타까운 표정을 하며 말했다. “정말 너한테 거절당하셨구나, 그러니까 기분이 안 좋으시지.” 신은지는 나유성과의 열애설에 대해 여러 번 해명을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 없자 신은지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 대표님처럼 좋은 사람을 차버리다니, 너…”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이때, 나유성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무표정으로 사무실을 힐끗 쳐다보며 지나갔다. 사무실에는 여전히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유성을 본 동료는 하던 말을 멈추고 제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는 척했다. 이제 막 들어온 신은지
신은지는 인터넷에 박태준과의 재혼 뉴스를 검색해 소문의 발단을 찾으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신은지는 어차피 제정신 아닌 사람이 낸 헛소문이고, 실질적인 피해도 없을 것이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잠시 후, 신은지는 집에 오자마자 진유라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진유라의 찢어질듯한 목소리에 신은지는 고막이 찢어질 뻔했다. “너 박태준이랑 재혼해?” “아니야.” “깜짝이야! 나는 네가 3억에 홀딱 넘어가서 부잣집 사모님을 꿈꾸는 줄 알았어.”배가 고픈 신은지는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하면서 라면을 끓이며 말했다. “나는 부잣집 사모님을 꿈꾸면 안 돼?”신은지의 집에는 부엌이 없어 1인용 인덕션을 구매했다. 그리고 밤에 배고플 때 차려 먹기 귀찮으면 라면을 끓여먹는다.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안되지. 부잣집 사모님 중에 바람난 남편을 뭐라고 할 사람이 있겠어? 내연녀 1명은 둘째치고 7명을 거닐고 혼외자들을 만들어도 본인 자리만 뺏지 않아도 그냥 눈감아줄걸?”부잣집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단순한 결혼이 아니다. 두 집안의 재산과 연결되어 있어 쉽게 이혼할 수도 없다. 신은지도 꽃 같은 나이에 결혼 생활 3년을 보내며 이익은커녕 3억이라는 빛만 가지게 되었다. “너 같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은 박태준과 결혼하면 안 돼.” 아무리 깊은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부부는 한 평생 같이 살고 싶다면 두 사람만의 원칙을 세우고 어떤 유혹도 이겨내며 서로에게 의지해야 한다. 과연 박태준이 할 수 있을까? 박태준은 결혼 3년 만에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전예은과 바람이 났다. 한번은 넘어간다고 해도 그다음은? 주변에 여자가 많은 박태준이 수많은 유혹을 참을 수 있을까? 하지만 진유라는 신은지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사적인 일에 관여하면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다. 파를 썰고 있던 신은지는 진유라의 말을 듣고 웃다가 손을 다칠 뻔했다. “걱정 마. 박태준하고 절대 재혼 안 해. 바람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