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우가 조은서를 좋아한다. 그가 조은서를 의식한다.백아현이 갑자기 미친 듯이 악을 썼다.수혈하던 바늘을 뽑아버려 마른 손등에 피가 줄줄 흘렀다. 그러나 백아현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온통 분개한 얼굴로 쏘아댔다.“선우 씨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선우 씨의 결혼 상대는 나였어요! 선우 씨, 당신은 그 여자가 단순히 그 사고를 설계했다고 생각해요? 아니? 그 여자가 벌인 일은 많고 많아요! 그 여자는 나를 저속한 남자와 결혼하도록 했어요. 그 남자는 가정폭력범이었다고요. 죽도록 패는 가정폭력범! 전에 죽도록 맞아서 하혈했을 때,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늦어버려서 자궁을 떼어낼 수밖에 없었어요. 난 영원히 아이를 가질 수 없어요. 이제 불구가 된 거라고요. 그런데 조은서, 이 유씨네 사모님이란 사람은 온실 속 화초처럼 당신한테 예쁨 받고 있어요. 제가 질투하고 배 아파하는 게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누려야 할 걸 그 여자가 대신 누리고 있다고요! 유씨 가문의 사모님이라는 이름도 원래는 내 것이었다고요!”말을 끝낸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었다.그가 또 중얼중얼 덧붙였다.“나한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해.”유선우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잠시 후, 그는 몸을 돌려 창문을 열어 밤바람이 병실의 피비린내를 환기하도록 했다. 뒤에 있는 백아현이 찬 바람에 심하게 기침했지만 유선우는 상관하지 않았다.그는 월계수를 응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100억 줄 거고, 외국에서 치료할 수 있게 할 거야. 너든 네 부모든 B시엔 다시 오지 마.”유선우는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났다.그가 병실을 나올 때 백아현은 침대에 앉아 울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잠시 후, 진 비서가 들어와 수표 한 장을 그녀에게 건넸다.백아현 몸을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선우 씨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진 비서가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3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아내에게 열렬히 사랑받았으니 그럴 만도 하
다음날 이른 아침, 유선우는 회사로 가려던 참이었다.고용인이 이르길 누각에 누군가 두 가지 물건을 보내왔다고 했다.유선우는 소매 단추를 풀며 눈썹을 치켜올렸다.“물건은 어디에 있어요?”고용인이 정교한 종이상자 두 개를 들고 왔다. 고용인이 2층으로 옮겨주려 하자 유선우가 말했다.“제가 할게요.”그는 상자를 들고 2층으로 올라와 조심스레 열었다.그 두 물건은 복원을 거쳐 깨끗해졌지만 조은서가 당시 썼던 글을 회복하지는 못했다.일기장의 반은 조은서가 열심히 쓴 글이 적혀 있고 반은 백지장이었다.유선우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그 글들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이 글들을 보면 마치 은서가 18살 그때처럼 그를 열렬히 좋아하는 것만 같았다.그 사진을 한참을 보다가, 벽에 걸어두었다....3일 후, 조은서는 접대 자리에서 유선우를 만났다.그녀는 임도영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후원을 건의하려 했다. 와인 두 잔을 마신 후 상기되어 화장실에서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조금 나은가 싶었지만 여전히 조금 불편했다.오늘 밤 계획은 실패할 것이 분명했다...조은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유선우의 부인이므로 절대 체면 세워줄 수 없다는걸. 그들이 별거한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어떻게 유선우를 개의치 않고 그녀의 음악회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화장실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거울에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유선우였다.두 사람의 시선이 거울 속에서 교차했다. 그의 단정한 옷차림과 늠름한 모습은 초라한 차림의 그녀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조은서는 금색 수도꼭지를 잠그고 떠나려 했다.얇은 손목이 그의 손에 잡혔다.그가 조은서를 확 끌어안는 바람에 그녀의 얼굴이 유선우의 재질 좋은 양복 외투에 닿게 되었다. 옷에서 드라이클리닝 섬유유연제 향과 옅은 담배 냄새가 섞여 코를 간지럽혔다.“놔요!”조은서가 낮게 말했다.그러나 유선우는 놔주지 않았다. 그리곤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샴페인 색의 실크 셔츠에 검
조은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괜찮아요. 그냥 조금 상기돼서.”그녀가 임도영의 손에 있는 외투를 받았다.“저 먼저 갈게요!”임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었다.“제가 데려다줄게요.”조은서는 그에게 다른 해야 할 일이 남았음을 알고 있었다.“도영 씨도 술 마셨으니 똑같이 택시 불러야 할 거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그리고 후원에 관한 일은...”임도영이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다.“에이. 그건 걱정하지 마요. 저랑 김재원이 있는데 뭘 걱정해요. 괜찮으면 저 들어가 있을게요. 이따가... 다른 일이 있어서.”그도 참 강경하다.백아현이 음악의 꿈을 포기한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유선우에게 연락한 적이 없다.조은서는 감격했고 코트를 입고 임도영과 작별 인사를 했다.1층으로 내려온 이후.마침 택시 피크 타임이었으므로 조은서는 약 30분을 기다려서야 택시에 오를 수 있었다. 택시를 오를 때쯤 얼굴은 이미 얼어있었다.주차장, 검은색 벤틀리 차 안.유선우가 차에 앉아 조은서가 차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두 가느다란 다리를 달달 떨었고 차가운 바람에 코트를 연신 여몄다... 그리고 이따금 초조하게 핸드폰을 보았다.이것이 진정 조은서가 원하던 삶이란 말인가?캠핑카도 기사도 없이 다른 사람과 술을 마시며 접대하고 웃는 얼굴로 눈치 보고... 그를 떠나고 조은서는 정말 행복한가?유선우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그는 진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김재원 쪽에 자금이 필요한 데가 있는지 알아봐. 그리고 은서 차 은서한테 가져다줘.”진 비서가 즉시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이튿날 유선우의 대표 사무실에서, 유선우가 문서를 확인하고 있다.이때 진 비서가 문을 밀고 들어와 일정표 한 장을 책상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이것은 다음 해 김재원 씨에게 있을 32번의 음악회 장소 예정지가 표시된 지도입니다. 예정되었던 후원이 취소되면서 자금이 아주 부족합니다. 예상으로는 적어도 400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그리고...”진비
조은서도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빛은 매우 태연했다.유선우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조은서가 받았고, 전화 속에서 유선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내려.”그를 바라보며 조은서가 담담하게 말했다.“선우 씨, 우린 이미 별거했어요. 내가 누구랑 왕래하든 선우 씨가 상관할 바 아니에요. 이제 당신 때문에 일부러 친구와 멀리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민우 씨 어머님 생신이어서 밥 먹으러 가는 거지, 바람 피우는 게 아니라고요.”“허민우가 너 좋아하는 거, 너도 알잖아!”“그게 어때서요? 백아현도 당신 좋아하잖아요. 그건 괜찮고요?”...조은서가 전화를 끊었다.차 유리를 사이에 두고, 그가 조은서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보았다. 얘기 도중 백아현의 이름이 나와서 그런 건가?맞은 편의 허민우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가속 페달을 밟기만 하면 두 차는 부딪힐 것이다.허민우의 차가 유선우의 차를 보기 좋게 긁으며 지나갔다. 그 순간 찢어질 듯한 마찰음이 귀를 강타했다.유선우는 종래로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하물며 상대가 허민우인데 어떻겠는가.그러나 조은서가 그 차에 있었다.그는 조은서가 다칠까 봐 두려웠다.검은색 벤틀리가 천천히 뒤로 물러났고, 유선우 역시 뒤로 물러나 조은서를 떠나게 두었다. 차가 스쳐 지나갈 때 유선우가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조은서를 붙잡으려는 듯 했지만 결국 잡지 못했다.좋아해...이 세글자가 오랫동안 메아리쳤다. 그러나 들은 사람은 유선우 한 사람뿐이다.조은서는 가죽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멍하니 있다.눈에 눈물이 조금 고여있다.허민우가 백미러를 보고는 조은서를 힐끗 보며 작게 말했다.“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어때? 유 대표 이렇게 다른 사람 신경 쓰는 건 처음 보는데...”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지라 허민우는 유선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유선우는 아까 같은 상황에서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그런데도 사랑하지 않는다니.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허민우
조은서는 그가 이보다 더한 짓을 할까 봐 담담하게 말했다.“가요!”그제야 유선우가 그녀를 놓아주었다.조은서가 허민우와 작별 인사를 했고 허민우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시간 나면 놀러 와. 엄마가 널 보고 싶어 해.”조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유선우를 보지도 않고 곧장 검은색 벤틀리 차 옆으로 갔다. 그리고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탔다.유선우는 두 걸음 뒤로 물러선 뒤 그녀를 따라 차에 올랐다.차는 빠르게 자리를 떴다.허민우는 어머니가 내려와 그의 옆에 올 때까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주현이 아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엷게 웃었다.“어쩐지 그 아일 좋아하더라니.”허민우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엄마, 근데 늦었나 봐요.”정주현이 아들의 팔을 잡고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그럼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놔. 그리고 은서가 힘들 때 도와줘.”*유선우의 차가 빠른 속도로 달렸다.5분쯤 후, 차는 인적이 드문 한 도로변에서 끽 소리를 내며 멈추었다.얌전히 앉아있던 조은서가 입을 열었다.“오늘 민우 씨 어머님 생신이어서 퇴근하는 길에 데리러 온 것뿐이에요. 오해하지 마세요.”유선우가 어둠이 내린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나한테 해명하는 거야? 아니면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두려운 거야?”조은서는 솔직했다.“무슨 짓 할까 봐 그래요!”유선우가 담배 한 개비를 찾아 입에 물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기도 전에 다시 꺼버렸다. 이후에는 안전벨트가 풀렸다.그가 다가와 조은서의 어깨를 눌렀다.그가 조은서의 눈을 응시하며 낮고 가볍게 말했다.“그럼 허민우 좋아해? 걔랑 하는 거 상상해 봤어?”조은서가 그의 뺨을 때렸다.유선우는 그녀의 반응을 예상한 듯 피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물음은 고의적인 도발이었다.차 안의 분위기가 미묘하다.조은서는 다투기 싫어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차 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유선우가 문을 잠가 버렸다.유선우가 몸을 의자에 기대며
YS 그룹의 꼭대기 층.진 비서가 가볍게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대표실에서 유선우가 문서를 확인하고 있다. 멀끔히 차려입은 정장은 더 귀티가 났다.인기척을 들은 유선우가 고개를 들었다.“일은 어떻게 됐어?”진 비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금방 김재원 조수와 만나 물었는데, 절대 우리 쪽 후원은 받지 않겠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답니다.”유선우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한참 동안 넋을 잃은 듯하던 그가 가볍게 말했다.“알겠어. 일단 나가봐.”어두워진 그의 표정을 보고 진 비서가 급히 문을 닫고 나갔다.사무실에 적막이 가득 찼다.유선우가 주머니에서 다이아 반지 하나를 꺼내 묵묵히 응시했다.조은서는 그가 보낸 차도, 투자도 받지 않고 있다... 진이정원도 싫단다. 이제 그와 백아현 사이의 관계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유선우는 그저 그를 떠나고 싶어 한다. 그녀는 필요 없으니 환심을 사려고 하지 말라고 했었다. 이미 헤어진 사이라고.그러나 유선우는 그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그는 조은서를 사랑했다. 그녀를 옆에 두고 싶었다. 그는 둘이 이런 참담한 결말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는 낮부터 밤까지 온종일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었다.진 비서가 들어와 문서를 정리할 때 유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1년 반 전 은서가 정신과 의사와 상담한 적이 있어. 그 의사 찾아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줘.”진 비서가 어리둥절하더니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사모님이 좋아하지 않으실...”유선우가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럼 알지 못하게 해.”진 비서는 감히 말을 보태지 못하고 즉시 분부대로 처리하러 갔다. 한 시간도 안 되어어 YS 그룹의 회의실에 돈을 적지 않게 받은 의사가 최고급 팀을 구성하여 조은서에 관한 자료를 PPT로 만들어 발표했다.액정 모니터 속의 푸른 빛이 유선우의 조각 같은 얼굴을 비췄다,그의 곁에 선 진 비서가 PPT 속의 조은서의 얼굴을 보고 있다.진 비서가 그의 곁에 서서, 덧니 하나를 드러낸 조은서의 청순한
그녀의 결혼반지였기 때문이다.조은서는 얼른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과연 유선우의 차가 아래에 세워져 있었다.그는 검은 양복을 입고 노을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조은서가 그를 바라보자 유선우도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그가 조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조은서는 받자마자 입을 열었다.“선우 씨, 와서 강아지 데려가요.”그런데 그가 오히려 부드럽게 대답했다.“이름은 설리야. 3개월 됐고. 은서야, 강아지 키우고 싶어 했었잖아. 설리 엄청 귀여워.”조은서가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가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는 몸을 옆으로 돌려 담배를 끄고는 조은서를 향해 가볍게 웃어 보이고는 차에 올라탔다. 차는 빠르게 자리를 떴다.조은서는 멀뚱하게 차의 후미등을 바라보았다. 불빛이 안 보일 때까지.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그 강아지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고한 강아지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조은서는 당연히 키우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옷과 신발을 갈아입고 유선우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강아지를 안고 택시를 탔다.별장에 도착했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고용인이 그녀가 돌아온 모습에 놀라우면서도 기뻐했다.“사모님 돌아오셨어요? 주인님도 금방 돌아오셨는데! 강아지 너무 예쁘네요.”조은서는 아무리 유선우와 싸웠어도 종래로 화를 고용인에게 풀지 않았다. 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유선우 씨는요?”고용인이 친절히 대답했다.“주인님은 위층에 계세요! 먼저 얘기 나누고 계세요. 저녁밥은 조금만 기다리면 준비됩니다. 오늘 몇 가지 요리가 추가돼서.”조은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설리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안방 불이 켜져 있었다. 그녀는 유선우가 안방에 있을 거로 생각하고 문을 노크했다. 안에서 유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조은서가 문을 열자 유선우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잡지를 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흰색 가운 하나를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금방 샤워를 한 것이 분명했다.조은서가
조은서가 셋집으로 돌아왔다.프라이팬에 반쯤 볶던 요리가 남아있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요리를 할 수 없었다.그녀는 보일러도 틀지 않은 채, 어두컴컴한 방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넋을 잃은 듯 앉아있었다.그녀는 어렸을 때 유선우와 결혼하는 자신을 꿈 꿨었다. 아이 둘을 낳고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 모습.“설리 엄마 해주면 안될까?”유선우의 다정한 말은 마치 칼처럼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무려 6년이다. 그는 유선우를 장장 6년을 사랑했다. 잊겠다고 어디 잊어지는 마음인가......밤새 밖에 앉아있었더니 날이 밝아오자 목이 부었다. 아마 감기에 걸린 듯했다.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심정희가 걸어온 전화였다. 집으로 와서 함께 명절을 쇠자는 전화.조은서가 당황하며 물었다.“명절이요?”심정희가 웃음을 터뜨렸다.“잊었어? 오늘 설날이야. 아빠가 네가 오길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데...”심정희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말은 안 해도 얼마나 걱정하고 계신다고!”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조은서가 고쳐 앉으며 대답했다.“점심 집에 가서 먹을게요.”전화를 끊고 그녀는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했다.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얼굴을 세게 비볐다. 유선우 생각이 더는 나지 않게...점심때가 되자 그녀는 집에 도착했다.심정희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밥을 차렸다. 분위기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그녀는 수시로 부녀를 위해 요리를 집어다 주었다.“많이 먹어! 이게 영양가가 있어.”그런데 조승철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듣자 하니 집을 나갔다며?”조은서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네.”조승철이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네가 무슨 결정을 하든 집에 너를 탓하는 사람은 없어. 네 오빠는 더욱 더.”조은서가 다시 한번 알겠다고 대답했다.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져 왔다.심정희가 얼른 말을 돌렸다. 그녀가 조승철에게 말했다.“한 달 뒤면 우리 은이가 김재원을 따라 데뷔전을 할 텐데. 우선은 사적인 감정은 뒤로 하고 바이올린을 연습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