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이른 아침, 유선우는 회사로 가려던 참이었다.고용인이 이르길 누각에 누군가 두 가지 물건을 보내왔다고 했다.유선우는 소매 단추를 풀며 눈썹을 치켜올렸다.“물건은 어디에 있어요?”고용인이 정교한 종이상자 두 개를 들고 왔다. 고용인이 2층으로 옮겨주려 하자 유선우가 말했다.“제가 할게요.”그는 상자를 들고 2층으로 올라와 조심스레 열었다.그 두 물건은 복원을 거쳐 깨끗해졌지만 조은서가 당시 썼던 글을 회복하지는 못했다.일기장의 반은 조은서가 열심히 쓴 글이 적혀 있고 반은 백지장이었다.유선우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그 글들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이 글들을 보면 마치 은서가 18살 그때처럼 그를 열렬히 좋아하는 것만 같았다.그 사진을 한참을 보다가, 벽에 걸어두었다....3일 후, 조은서는 접대 자리에서 유선우를 만났다.그녀는 임도영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후원을 건의하려 했다. 와인 두 잔을 마신 후 상기되어 화장실에서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조금 나은가 싶었지만 여전히 조금 불편했다.오늘 밤 계획은 실패할 것이 분명했다...조은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유선우의 부인이므로 절대 체면 세워줄 수 없다는걸. 그들이 별거한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어떻게 유선우를 개의치 않고 그녀의 음악회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화장실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거울에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유선우였다.두 사람의 시선이 거울 속에서 교차했다. 그의 단정한 옷차림과 늠름한 모습은 초라한 차림의 그녀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조은서는 금색 수도꼭지를 잠그고 떠나려 했다.얇은 손목이 그의 손에 잡혔다.그가 조은서를 확 끌어안는 바람에 그녀의 얼굴이 유선우의 재질 좋은 양복 외투에 닿게 되었다. 옷에서 드라이클리닝 섬유유연제 향과 옅은 담배 냄새가 섞여 코를 간지럽혔다.“놔요!”조은서가 낮게 말했다.그러나 유선우는 놔주지 않았다. 그리곤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샴페인 색의 실크 셔츠에 검
조은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괜찮아요. 그냥 조금 상기돼서.”그녀가 임도영의 손에 있는 외투를 받았다.“저 먼저 갈게요!”임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었다.“제가 데려다줄게요.”조은서는 그에게 다른 해야 할 일이 남았음을 알고 있었다.“도영 씨도 술 마셨으니 똑같이 택시 불러야 할 거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그리고 후원에 관한 일은...”임도영이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다.“에이. 그건 걱정하지 마요. 저랑 김재원이 있는데 뭘 걱정해요. 괜찮으면 저 들어가 있을게요. 이따가... 다른 일이 있어서.”그도 참 강경하다.백아현이 음악의 꿈을 포기한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유선우에게 연락한 적이 없다.조은서는 감격했고 코트를 입고 임도영과 작별 인사를 했다.1층으로 내려온 이후.마침 택시 피크 타임이었으므로 조은서는 약 30분을 기다려서야 택시에 오를 수 있었다. 택시를 오를 때쯤 얼굴은 이미 얼어있었다.주차장, 검은색 벤틀리 차 안.유선우가 차에 앉아 조은서가 차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두 가느다란 다리를 달달 떨었고 차가운 바람에 코트를 연신 여몄다... 그리고 이따금 초조하게 핸드폰을 보았다.이것이 진정 조은서가 원하던 삶이란 말인가?캠핑카도 기사도 없이 다른 사람과 술을 마시며 접대하고 웃는 얼굴로 눈치 보고... 그를 떠나고 조은서는 정말 행복한가?유선우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그는 진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김재원 쪽에 자금이 필요한 데가 있는지 알아봐. 그리고 은서 차 은서한테 가져다줘.”진 비서가 즉시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이튿날 유선우의 대표 사무실에서, 유선우가 문서를 확인하고 있다.이때 진 비서가 문을 밀고 들어와 일정표 한 장을 책상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이것은 다음 해 김재원 씨에게 있을 32번의 음악회 장소 예정지가 표시된 지도입니다. 예정되었던 후원이 취소되면서 자금이 아주 부족합니다. 예상으로는 적어도 400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그리고...”진비
조은서도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빛은 매우 태연했다.유선우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조은서가 받았고, 전화 속에서 유선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내려.”그를 바라보며 조은서가 담담하게 말했다.“선우 씨, 우린 이미 별거했어요. 내가 누구랑 왕래하든 선우 씨가 상관할 바 아니에요. 이제 당신 때문에 일부러 친구와 멀리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민우 씨 어머님 생신이어서 밥 먹으러 가는 거지, 바람 피우는 게 아니라고요.”“허민우가 너 좋아하는 거, 너도 알잖아!”“그게 어때서요? 백아현도 당신 좋아하잖아요. 그건 괜찮고요?”...조은서가 전화를 끊었다.차 유리를 사이에 두고, 그가 조은서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보았다. 얘기 도중 백아현의 이름이 나와서 그런 건가?맞은 편의 허민우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가속 페달을 밟기만 하면 두 차는 부딪힐 것이다.허민우의 차가 유선우의 차를 보기 좋게 긁으며 지나갔다. 그 순간 찢어질 듯한 마찰음이 귀를 강타했다.유선우는 종래로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하물며 상대가 허민우인데 어떻겠는가.그러나 조은서가 그 차에 있었다.그는 조은서가 다칠까 봐 두려웠다.검은색 벤틀리가 천천히 뒤로 물러났고, 유선우 역시 뒤로 물러나 조은서를 떠나게 두었다. 차가 스쳐 지나갈 때 유선우가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조은서를 붙잡으려는 듯 했지만 결국 잡지 못했다.좋아해...이 세글자가 오랫동안 메아리쳤다. 그러나 들은 사람은 유선우 한 사람뿐이다.조은서는 가죽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멍하니 있다.눈에 눈물이 조금 고여있다.허민우가 백미러를 보고는 조은서를 힐끗 보며 작게 말했다.“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어때? 유 대표 이렇게 다른 사람 신경 쓰는 건 처음 보는데...”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지라 허민우는 유선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유선우는 아까 같은 상황에서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그런데도 사랑하지 않는다니.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허민우
조은서는 그가 이보다 더한 짓을 할까 봐 담담하게 말했다.“가요!”그제야 유선우가 그녀를 놓아주었다.조은서가 허민우와 작별 인사를 했고 허민우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시간 나면 놀러 와. 엄마가 널 보고 싶어 해.”조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유선우를 보지도 않고 곧장 검은색 벤틀리 차 옆으로 갔다. 그리고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탔다.유선우는 두 걸음 뒤로 물러선 뒤 그녀를 따라 차에 올랐다.차는 빠르게 자리를 떴다.허민우는 어머니가 내려와 그의 옆에 올 때까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주현이 아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엷게 웃었다.“어쩐지 그 아일 좋아하더라니.”허민우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엄마, 근데 늦었나 봐요.”정주현이 아들의 팔을 잡고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그럼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놔. 그리고 은서가 힘들 때 도와줘.”*유선우의 차가 빠른 속도로 달렸다.5분쯤 후, 차는 인적이 드문 한 도로변에서 끽 소리를 내며 멈추었다.얌전히 앉아있던 조은서가 입을 열었다.“오늘 민우 씨 어머님 생신이어서 퇴근하는 길에 데리러 온 것뿐이에요. 오해하지 마세요.”유선우가 어둠이 내린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나한테 해명하는 거야? 아니면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두려운 거야?”조은서는 솔직했다.“무슨 짓 할까 봐 그래요!”유선우가 담배 한 개비를 찾아 입에 물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기도 전에 다시 꺼버렸다. 이후에는 안전벨트가 풀렸다.그가 다가와 조은서의 어깨를 눌렀다.그가 조은서의 눈을 응시하며 낮고 가볍게 말했다.“그럼 허민우 좋아해? 걔랑 하는 거 상상해 봤어?”조은서가 그의 뺨을 때렸다.유선우는 그녀의 반응을 예상한 듯 피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물음은 고의적인 도발이었다.차 안의 분위기가 미묘하다.조은서는 다투기 싫어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차 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유선우가 문을 잠가 버렸다.유선우가 몸을 의자에 기대며
YS 그룹의 꼭대기 층.진 비서가 가볍게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대표실에서 유선우가 문서를 확인하고 있다. 멀끔히 차려입은 정장은 더 귀티가 났다.인기척을 들은 유선우가 고개를 들었다.“일은 어떻게 됐어?”진 비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금방 김재원 조수와 만나 물었는데, 절대 우리 쪽 후원은 받지 않겠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답니다.”유선우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한참 동안 넋을 잃은 듯하던 그가 가볍게 말했다.“알겠어. 일단 나가봐.”어두워진 그의 표정을 보고 진 비서가 급히 문을 닫고 나갔다.사무실에 적막이 가득 찼다.유선우가 주머니에서 다이아 반지 하나를 꺼내 묵묵히 응시했다.조은서는 그가 보낸 차도, 투자도 받지 않고 있다... 진이정원도 싫단다. 이제 그와 백아현 사이의 관계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유선우는 그저 그를 떠나고 싶어 한다. 그녀는 필요 없으니 환심을 사려고 하지 말라고 했었다. 이미 헤어진 사이라고.그러나 유선우는 그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그는 조은서를 사랑했다. 그녀를 옆에 두고 싶었다. 그는 둘이 이런 참담한 결말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는 낮부터 밤까지 온종일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었다.진 비서가 들어와 문서를 정리할 때 유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1년 반 전 은서가 정신과 의사와 상담한 적이 있어. 그 의사 찾아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줘.”진 비서가 어리둥절하더니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사모님이 좋아하지 않으실...”유선우가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럼 알지 못하게 해.”진 비서는 감히 말을 보태지 못하고 즉시 분부대로 처리하러 갔다. 한 시간도 안 되어어 YS 그룹의 회의실에 돈을 적지 않게 받은 의사가 최고급 팀을 구성하여 조은서에 관한 자료를 PPT로 만들어 발표했다.액정 모니터 속의 푸른 빛이 유선우의 조각 같은 얼굴을 비췄다,그의 곁에 선 진 비서가 PPT 속의 조은서의 얼굴을 보고 있다.진 비서가 그의 곁에 서서, 덧니 하나를 드러낸 조은서의 청순한
그녀의 결혼반지였기 때문이다.조은서는 얼른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과연 유선우의 차가 아래에 세워져 있었다.그는 검은 양복을 입고 노을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조은서가 그를 바라보자 유선우도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그가 조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조은서는 받자마자 입을 열었다.“선우 씨, 와서 강아지 데려가요.”그런데 그가 오히려 부드럽게 대답했다.“이름은 설리야. 3개월 됐고. 은서야, 강아지 키우고 싶어 했었잖아. 설리 엄청 귀여워.”조은서가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가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는 몸을 옆으로 돌려 담배를 끄고는 조은서를 향해 가볍게 웃어 보이고는 차에 올라탔다. 차는 빠르게 자리를 떴다.조은서는 멀뚱하게 차의 후미등을 바라보았다. 불빛이 안 보일 때까지.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그 강아지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고한 강아지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조은서는 당연히 키우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옷과 신발을 갈아입고 유선우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강아지를 안고 택시를 탔다.별장에 도착했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고용인이 그녀가 돌아온 모습에 놀라우면서도 기뻐했다.“사모님 돌아오셨어요? 주인님도 금방 돌아오셨는데! 강아지 너무 예쁘네요.”조은서는 아무리 유선우와 싸웠어도 종래로 화를 고용인에게 풀지 않았다. 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유선우 씨는요?”고용인이 친절히 대답했다.“주인님은 위층에 계세요! 먼저 얘기 나누고 계세요. 저녁밥은 조금만 기다리면 준비됩니다. 오늘 몇 가지 요리가 추가돼서.”조은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설리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안방 불이 켜져 있었다. 그녀는 유선우가 안방에 있을 거로 생각하고 문을 노크했다. 안에서 유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조은서가 문을 열자 유선우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잡지를 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흰색 가운 하나를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금방 샤워를 한 것이 분명했다.조은서가
조은서가 셋집으로 돌아왔다.프라이팬에 반쯤 볶던 요리가 남아있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요리를 할 수 없었다.그녀는 보일러도 틀지 않은 채, 어두컴컴한 방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넋을 잃은 듯 앉아있었다.그녀는 어렸을 때 유선우와 결혼하는 자신을 꿈 꿨었다. 아이 둘을 낳고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 모습.“설리 엄마 해주면 안될까?”유선우의 다정한 말은 마치 칼처럼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무려 6년이다. 그는 유선우를 장장 6년을 사랑했다. 잊겠다고 어디 잊어지는 마음인가......밤새 밖에 앉아있었더니 날이 밝아오자 목이 부었다. 아마 감기에 걸린 듯했다.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심정희가 걸어온 전화였다. 집으로 와서 함께 명절을 쇠자는 전화.조은서가 당황하며 물었다.“명절이요?”심정희가 웃음을 터뜨렸다.“잊었어? 오늘 설날이야. 아빠가 네가 오길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데...”심정희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말은 안 해도 얼마나 걱정하고 계신다고!”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조은서가 고쳐 앉으며 대답했다.“점심 집에 가서 먹을게요.”전화를 끊고 그녀는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했다.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얼굴을 세게 비볐다. 유선우 생각이 더는 나지 않게...점심때가 되자 그녀는 집에 도착했다.심정희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밥을 차렸다. 분위기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그녀는 수시로 부녀를 위해 요리를 집어다 주었다.“많이 먹어! 이게 영양가가 있어.”그런데 조승철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듣자 하니 집을 나갔다며?”조은서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네.”조승철이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네가 무슨 결정을 하든 집에 너를 탓하는 사람은 없어. 네 오빠는 더욱 더.”조은서가 다시 한번 알겠다고 대답했다.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져 왔다.심정희가 얼른 말을 돌렸다. 그녀가 조승철에게 말했다.“한 달 뒤면 우리 은이가 김재원을 따라 데뷔전을 할 텐데. 우선은 사적인 감정은 뒤로 하고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잠깐만!”유선우가 그녀를 불러세웠다.그가 차에서 서류를 꺼내 조은서에게 건넸다.“네 오빠 재판날짜가 나왔어. 내년 초.”서류를 받은 그녀가 여러 번이나 다시 읽고는 중얼거렸다.“아직도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한다니.”유선우가 그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말했다.“재판이 끝나면 정식으로 나한테 이혼서류 내미는 거 아냐?”조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부정하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유선우의 눈빛이 서글퍼졌다.저녁 바람이 세차게 불어 그의 머리끝을 스쳤다.하얀 셔츠와 짙은 회색의 얇은 코트. 조은서가 가장 사랑하던 그의 모습이다.그의 깊은 눈이 조은서를 바라보았다.“우리 잘 살았었잖아. 2년쯤 후면 아이 둘 낳고. 은서야. 난 우리가 세상 대부분의 부부보다 잘 살 거라고 확신해.”조은서가 서류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한참 시간이 지나자 그녀가 고개를 살짝 들고 목이 멘채 입을 열었다.“확실히 솔깃한 말이긴 해요. 하지만 그렇게 살려면 전 절 부수고 다시 시작해야 해요. 눈물을 머금고 그동안 받았던 상처를 숨겨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가면을 써야 그 유씨 가문의 사모님 행세를 할 수 있어요. 들려도 안 들리는 척, 말할 수 있어도 못하는 척해야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 거예요.”“우리의 아이도, 제가 낳았어도 제가 교육하지 못하게 할거잖아요.”“아이들을 선우 씨가 원하는 모습으로 키울 거잖아요.”“선우 씨가 나를 통제하려 했던 것처럼! 제 옷, 메이크업, 헤어까지... 다 당신이 원하던 모습이잖아요. 전 제 아이도 자아 없이 선우 씨만을 위해 살게 하고 싶지 않아요.”...유선우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다정했다.“은서야, 그럼 설리부터 다시 시작하면 안 돼? 설리를 너한테 맡길게. 어떻게 키우든 상관 안 할 거고, 그저저 아빠가 될게. 모든 걸 엄마 말 듣게 할게.”한결 부드러워진 말투에 끈질기게 자신을 붙잡는 남자.게다가 유선우인데 누가 견딜 수 있을까?하물며 이는 어렸던 조은서가 꿈꾸던 모습이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