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성현준은 병원으로 서둘러 향했다.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권하윤은 성현준을 끌어안았다.권하윤은 예쁜 얼굴을 성현준의 어깨에 가볍게 기대었다.그 어떤 남자가 이렇게 연약하고 의지할 곳 없는 여자의 포옹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하물며 두 사람은 과거 연인 사이인데.성현준은 권하윤한테 느끼는 감정은 동정일 뿐이라고 자신을 세뇌했다.권하윤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현준아, 나 연우를 잃기 싫어. 연우 없는 날은 상상도 하기 싫어. 연우가 없으면 난 진짜 미쳐버릴 거야... 현준아 나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성현준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침대 위의 연우를 바라보았다.연우는 응급처치를 거쳐 병세가 억제된 후 잠들어 있었다.하지만 성현준은 여전히 아이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성현준은 권하윤한테 조금만 더 강해지라고 꼭 연우의 병을 고칠 방법을 찾아주겠다고 말했다.깊은 감동을 한 권하윤은 성현준의 품에 기대어 두 손으로 셔츠를 잡고 눈물을 흘렸다.한참 후 권하윤은 예쁜 얼굴을 들어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현준아 내가 실례했어!”성현준은 권하윤의 어깨를 감싸고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혼란스러우면 그럴 수도 있지. 다 이해해.”권하윤은 성현준의 품을 떠나 테이블로 가서 따뜻한 물을 부어 주었다.잠시 후 뭔가 떠오른 권하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응급처치 후 외국에서 온 전문의 쌤이 그러던데. 심장 이식 수술 세계 최고의 의사가 여기 B시에 있다고...”성현준은 즉각 대답했다.“연우를 위해서라면 돈이 얼마가 들던 꼭 이 의사를 청할 거야.”권하윤은 손을 움찔했다.성현준은 까닭을 모른 채 권하윤의 등 뒤로 다가가 부드럽게 말했다.“왜? 날 못 믿어?"권하윤은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몸을 돌려 성현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쌤이 말한 그 의사 너의 부인이야. 현준아 유 선생님한테 부탁할 수 있어? 나를 많이 탓하고 있을 텐데 어떻게 연우 수술을 부탁하겠어... 현준아 만약 유 선생님가
성현준은 호흡이 가빠졌다.권하윤은 성현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현준아, 몇 년 동안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성현준은 주먹을 움켜쥐고 권하윤의 유혹을 물리쳤다.대학 시절, 성현준과 권하윤은 관계를 가졌었다.오늘 밤 선을 넘을지 말지는 사실 성현준의 의지와 상관있었다.하지만 유이안과 이혼하고 싶지 않았던 성현준은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이른 아침, 유이안은 혼자 조식을 먹고 있었다.집에 있던 고용인들도 성현준이 밖에 여자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아침 식사를 섬기던 한 고용인이 유이안한테 푸념을 늘어놓았다.“어젯밤에 성 대표님 또 나가시던데 왜 잡지도 않으세요?”유이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의 발이 저한테 달린 건 아니잖아요.”고용인은 유이안이 성현준을 너무 내버려 둔다며 나무랐다.유이안은 한참을 생각하다 고용인한테 이혼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이 별장에 있는 고용인들은 대부분 유이안을 위해 유 씨 저택에서 파견되어 온 사람들이었다.앞으로 성현준과 이혼한다고 해도 해고할 필요 없이 유이안이 다시 배치 하면 되였다.유이안은 조식을 간단히 먹고 병원에 갔다.중요한 수술이 하나 있었다.수술이 끝나자 이미 오후 한 시가 다 되어있었다.유이안은 손 세척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사무실로 향했다.복도에 들어서자 유이안의 비서가 마주 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유 원장님, 성 대표님이 오셨어요!”성 대표님?유이안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잡고 비서에게 되물었다.“성현준?”비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네!유 원장님, 성 대표님께서 어떤 아이 때문에 찾아온 거 같아요. 그 아이는 원래 소아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오전에 저의 병원으로 옮겨왔어요. 환자를 받는 건 괜찮은데 성 대표님께서 원장님보고 주치의를 맡으시라고 하셔서요. 이 일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성 대표님 보고 사무실에서 기다리라고 했어요.”유이안은 싱긋 웃으며 문을 밀고 들어갔다.비서가 말한 대
성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유이안!”냉소를 짓던 유이안은 이내 억지를 부리는 낯선 사람을 보듯 성현준을 보며 말했다.“유 원장 혹은 유 선생님 이라고 부르시죠. 성 대표도 주제 파악 똑바로 하시고요. YS병원에서 당신은 기껏해야 명분도 안 서는 환자 가족이에요. 아! 그 아이의 친아버지가 오면 당신을 내연남으로 대해주긴 하겠네요.”유이안의 말에 충격을 받은 성현준은 엉겁결에 입을 놀렸다.“권하윤은 이혼했어.”성현준의 말이 끝나자 사무실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잠시 후 유이안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저도 두 사람을 기꺼이 도와주죠! 오후에 이혼 절차만 마치면 두 사람 사이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그 아이까지 책임지고 치료하도록 하죠.”유이안은 이혼을 원했지만 성현준은 이혼을 원하지 않았다.권하윤 모녀한테 마음이 쓰인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위해 이혼을 할 만큼 미치지는 않았다.더욱이 유이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현준의 지위와 명예를 전부 잃게 만들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성현준이 한평생 심혈을 기울여 일구어낸 권성기술회사는 물거품이 되어버린다.성현준은 이런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이 한창 대치하고 있을 때 경호원 두 명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유 원장님, 여기 쫓아내야 할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요.”유이안은 밥을 계속 먹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들어와서 여기 있는 성 대표 좀 끌고 나가세요.”두 명의 경비원이 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아뿔싸! 성 대표였다.난처한 두 경호원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성현준에게 말했다.“성 대표님, 저희도 많이 난감합니다만 그래도 유 원장님 지시를 받들어야 하는 처지라 이해 부탁드립니다.”성현준은 유이안을 바라보며 말했다.“부부 사이 정이라는 게 있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유이안은 손에 든 젓가락을 멈추고 접시의 음식을 보며 되물었다.“부부 사이 정? 성 대표, 이년 동안 두달 이상 집에 있어 본 적 있어요? 우리 사이에 부부의 정이 남아있긴 해요?
진심 가득한 얼굴로 말하는 권하윤을 이 세상 어떤 남자가 막아낼 수 있을까?성현준은 권하윤의 어깨를 가볍게 끌어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하지만 권하윤은 좀처럼 울음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연우도 성현준의 다리를 껴안고 현준 삼촌을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순간 성현준은 냉혈한 같은 유이안이 몹시 원망스러웠다.상황이 어떠하든 그래도 의사인데 어떻게 아픈 사람을 나 몰라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이혼하면 연우를 치료해주겠대.”권하윤은 어리둥절해졌다.성현준 같은 남자를 유이안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혼을 요구한다니 속으로 자제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권하윤은 표정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현준아, 연우를 위해서 먼저 이혼하는 척 해주면 안돼? 그리고 연우 병이 다 나으면 다시 유 원장을 쟁취해오면 되잖아. 그때가서 네가 성의를 충분히 보여준다면 너와 재결합 할 거야.”권하윤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현준아, 나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래.”성현준은 멍해졌다.방금 전까지도 성현준은 권하윤때문에 유이안과 이혼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만약 유이안과 이혼한다고 해도 그건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겨서 이혼하는 것일 뿐 누구 때문에 하는 이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그런데 연우 때문에 유이안과 이혼을 한다고?유씨 가문의 명예와 유이안의 성격으로는 가짜 이혼 따위는 없을 것이고 한번 서명하면 그걸로 관계는 영원히 끝이라는 걸 성현준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사실 성현준과 유이안한테도 몇 년 동안의 좋은 시간이 있었다.그러나 그때는 두 사람 모두 일이 너무 바빴고 지금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아이를 가지지 않았었다.성현준은 비록 동의하지 않았지만 권하윤은 성현준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저녁 무렵 성현준이 떠나려고 하자 연우는 아쉬워하며 성현준을 껴안고 가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다.구구절절 애원하는 연우 때문에 성현준은 눈
유이안은 슈퍼마켓의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GM 슈퍼마켓은 아시아에서 16%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체인점이었다.듣기로는 사장이 B시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러면 육만 오백평이나 되는 이곳이 플래그십 스토어인 셈이었다.유이안은 차에서 내리며 작은 케이크나 한 조각 사야겠다고 생각했다.2층 유리 캐비닛에는 예쁘고 정교한 케이크들이 조각조각 놓여 있었다.케이크를 보고 있던 유이안의 귓가에 한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무스케이크를 아직도 좋아하시나 봐요.”듣기 좋은 중저음 목소리에는 약간의 유쾌함이 섞여 있었다.유이안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을 돌리자 반짝반짝 빛이 나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뭐랄까...훤칠하면서도 다부진 몸에 걸쳐진 캐주얼한 수트는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을 보여주었지만 그의 얼굴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성숙미를 내뿜었다.딱 봐도 엘리트 냄새가 물씬 풍겨 나왔다.유이안의 이치대로라면 이렇게 빼어난 인물을 잊었을 리가 없었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유이안이 난처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남자는 품위 있는 태도로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GM 슈퍼마켓의 사장 강원영이에요. 유 선생님과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유 선생님보다는 두 학년 아래예요... 이렇게 유 선생님을 기억하는 이유는 고등학교 때 유 선생님께서 저를 심폐소생술과 음... 인공 호흡으로 살려준 적이 있어요. 제 생명의 은인이죠.”말을 마친 강원영은 빙긋 웃어 보였다.한참을 생각하던 유이안은 마침내 그 일이 생각났다.그날 그 사건 외에는 학교에서 별다른 교류도 없었는데 십여 년 만에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강원영은 유이안이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풍운아였다.자세히 살펴보니 강원영의 외모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무뚝뚝하고 시크한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훈남 스타일.유이안은 예의상 몇 마디 얼버무렸다.강원영은 유이안이 더는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지 않아 한다는
성현준의 아내 유이안.찰칵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남긴 유이안은 냉랭한 표정으로 성현준과 권하윤을 바라보았다.당황한 성현준은 재빨리 자기 손을 잡고 있는 권하윤을 뿌리치고 유이안을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유이안은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뭔데요 그럼? 설마 성 대표가 몸을 못 가눠서 권하윤 씨가 부축하는 건가?”성현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유이안, 그렇게 비아냥거릴 필요까진 없잖아.”옆에 있던 권하윤은 재빨리 성현준을 말리며 말했다.“현준이 탓이 아니에요. 유 선생님, 오해하지 마세요. 내가 부주의로 현준이 팔을 잡은 거예요. 탓하려면 절 탓하세요.”권하윤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따귀를 힘껏 갈겼다.얼굴에는 붉은 자국이 떠올라 보기만 해도 끔찍할 정도로 무서웠다.권하윤은 유이안을 바라보며 애처롭게 말했다.“유 선생님, 제발 나와 현준의 지난 과거 때문에 연우한테 화풀이하지 말아줘요. 연우 이제 겨우 여섯 살이에요. 아직 앞날이 창창할 나이잖아요.”“유 선생님, 제가 무릎이라도 꿇을게요.”권하윤은 연적한테도, 심지어 자기 자신한테도 독한 사람이었다.그녀는 수많은 사람이 있는 슈퍼마켓에서 보란 듯이 유이안 앞에 무릎을 꿇더니 미안하다고 통곡하며 자신을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했다.체면이 깎인 성현준은 권하윤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권하윤, 이러지 마.”권하윤은 성현준의 팔을 뿌리치며 무릎을 꿇은 채로 통곡하며 말했다.“현준아, 정말 우리 잘못이야? 우리는 그냥 아이의 생명을 구하고 싶었을 뿐이잖아. 유 선생님은 의사잖아. 현준아... 의사라면 마땅히 환자를 치료하고 살려줘야 되는 거 아니야?”유이안을 바라보는 성현준의 눈에는 원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유이안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사람탈을 쓴 두 짐승은 마치 한 쌍의 바퀴벌레 같았다.유이안은 손에 쥔 휴대폰을 들어 올리며 성현준을 보고 말했다.“내일 내 변호사가 이혼 소송을 대신할 거예요. 성 대표, 좋게
성현준의 말이 끝나자 유이안은 강원영을 한 번 쳐다봤다. 그녀는 일부러 비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그를 누구라고 생각하든 그건 당신 자유예요. 왜냐고요? 내가 친구를 사귈 때 당신에게 보고라도 해야 해요?” 성현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유이안, 너무 심하지 마! 우리 아직 법적으로 부부야. 집안에 한 명, 밖에 한 명 두고 양다리 걸칠 생각하지 마.” 유이안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도 당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군요! 성현준 씨, 만약 당신이 깔끔하게 나랑 이혼하고 권하윤 씨와 권하윤의 딸을 돌봐줬다면 내가 당신을 더 높게 평가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당신 행동은 정말 실망스러워요.” 성현준의 눈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유이안은 휴대폰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내일 내 변호사랑 만나는 거 잊지 마요.” 그 말을 마친 유이안은 떠나려 했고 강원영이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떠나기 전, 강원영은 성현준을 보며 미묘한 표정으로 한 번 쳐다봤고 그 눈빛 속에는 남자들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알 수 없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 남자는 유이안을 좋아한다. 사실 성현준도 알고 있었다. 유이안의 성격과 바쁜 일정을 감안했을 때, 그녀가 바람을 피울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너무나도 뛰어났다. 자신이 유이안과 이혼하는 순간 이 남자는 바로 유이안을 쫓을 거라는 걸 그는 확신했다... 강원영,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성현준은 불안했다. 그는 유이안을 따라가려 했고 아내와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두 걸음 떼자마자 뒤에서 권하윤이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아파! 머리가 너무 아파.” 그녀의 목소리에 성현준의 발걸음이 멈췄다. 성현준은 즉시 그녀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며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머리가 많이 아파?” 권하윤은 성현준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힘없이 말했지만 그녀는 그 작은 갈비찜 한
“권하윤, 이제 그만해.”“아니, 난 꼭 말하고 싶어! 지금 말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까 봐 두려워. 내가 연우 엄마고 연우의 목숨이 유이안 손에 달려 있다는 걸 생각하면... 현준아, 현준아,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 말이 끝나자 성현준은 권하윤을 꽉 안아버렸다. 두 사람의 뜨거운 입술이 마치 자석처럼 단단히 맞붙어 서로를 부둥켜안고 애무하며 그간 쌓인 아쉬움을 모두 보상받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옷은 흐트러지고 몸은 엉망이었다. 권하윤은 눈을 감은 채 끊임없이 성현준의 이름을 불렀다. “현준아, 우리 이러면 안 돼. 나 정말 네 가정을 망치고 싶지 않았어, 너와 유이안의 부부 관계를 해치고 싶지도 않았어... 현준아,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해줘, 나를 내어줄 테니까 우리 이 한 번만 제멋대로 굴자.” 유이안... 성현준은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그는 유이안을 잊고 있었다. 자신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혼할 생각도 없으면서 어떻게 권하윤과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이곳은 바로 강원영의 땅이었다... 그 남자를 떠올리자 성현준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강원영에 대해 확실히 물어봐야 했고 유이안이 그와 가까워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유이안은 성현준의 아내이고 아무나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성현준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권하윤에 대한 감정도 조금씩 식었다. 그는 남자로서의 욕구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오랜 부부 생활 동안 따로 방을 썼기 때문에 욕망을 억제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권하윤을 살짝 두드리며 그녀에게 자신의 몸에서 내려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권하윤은 순간 당혹스러웠다. 방금 그녀는 정말 모든 걸 던졌고 성현준과 관계를 맺으려 했다. 나중에 유이안과 싸움이 나서 연우를 잃게 되더라도 그녀에겐 성현준이 있었고 수천억의 재산도 있었다. 남자와 돈이 있으면 아이를 가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연우는 고귀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