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쯤 시어머니는 콩이를 집으로 데려오며 여러 가지 식자재도 같이 사 오셨다. 고기며 술이며 신경 써서 준비해 오셨지만 감사함 따윈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시어머니가 쓰고 있는 그 돈도 내 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신흥건재의 80% 이상의 고객은 모두 건립 초기 내가 데려온 것이니까.집에 들어선 콩이는 얼른 내 방으로 달려와 품에 안기며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졸라댔다. 이 귀여운 것이 날 즐겁게 해주려고 일부러 외할머니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시어머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실에서 혼자 이것저것 하시느라 바빴다. 상황을 보아하니 아마 오늘은 우리 집에서 성대하게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 모양이다. 역시 점심시간이 지나니 신건우도 왔다. 나는 그날 이후 시아버지인 신건우한테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신호연도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왔는데 어쩐 일인지 신연아는 오지 않았다.신호연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한테 웃으며 결혼기념일은 금요일 저녁 브라운호텔 연회장에서 열릴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자기들끼리 웃으며 떠들어 댔다. 나는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식사만 했다. 그러자 신호연이 그런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여보, 나 서강훈한테 당신이 요구한 것들은 다 당신 이름으로 바꾸라고 지시했어. 내가 그동안은 참 어리석었지. 다시 생각해 보니까 난 여전히 당신도 우리 집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었더라고. 반성 많이 하고 있어. 당신 말대로 콩이한테는 우리가 좋은 미래만 남겨줘야지. 그리고 이제는 당신이 걱정할 일 없게 할게. 신흥건재도 앞으로 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더 크게 키워보자!"나는 그를 쓱 쳐다봤다. 오전까지만 해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날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고민하던 인간이 이제는 나랑 손잡고 같이 미래를 도모하자고 한다. 종잇장 뒤집듯 뒤집힌 그의 태도에 헛웃음이 난다.목요일, 신호연은 약속대로 나한테 이름을 바꾼 후의 자산들을 모두 보여줬다. 집, 차 그리고 상당한 액수가 들어있는 은행카드까지.
연회장에서의 모든 순서가 끝나자 저기 사람들 틈 사이로 익숙한 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또 도망가고 싶었다. 이런 모습으로 그를 만나고 싶진 않았으니까. 신호연도 한눈에 배현우를 알아보고는 얼른 내 허리를 껴안고 인사하러 갔다. 결혼기념일도 결국에는 천우 그룹 보라고 세팅한 연극이니까. 비록 조 대표님은 안 오셨고 배현우만 참석했지만 나는 확신했다. 신호연이 오늘 오길 바랐던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배현우라고.두 사람은 악수했고 신호연은 열정 가득한 목소리로 배현우한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배현우는 그 특유의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며 담담히 말을 이을 뿐이었다. 배현우의 수행원이 우리 쪽으로 다가와 선물을 건넸지만, 배현우는 축하한다는 한마디 건네질 않았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겼다. 배현우는 이 촌극을 다 꿰뚫어 보고 있었을 것이고, 그런 사람 앞에서 연극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쪽팔리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서로 인사치레를 주고받는 옆에서 나는 그저 간간이 웃음을 띠며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팔을 천천히 감싸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새언니, 이분은 누구세요...?"놀라서 옆을 보니 신연아가 나를 보며 세상 청순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 앞에서는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내가 어이없음에 황당해하고 있자 신호연이 얼른 소개했다."배현우 씨, 이쪽은 제 동생인 신연아라고 합니다."배현우는 옅은 미소를 띠며 신연아를 쭉 훑어보고는 이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려 물었다."한지아 씨, 요즘 많이 바쁘신 건가요? 천우 그룹 회의에 두 번이나 결석하셨던데."그는 나를 부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한지아씨라고 불렀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요즘 몸이 좀 안 좋아서요. 회사를 많이 못 나갔어요."내 허리를 껴안은 신호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보고 배현우와 좀 더 깊이 대화해 보라는 일종의
어찌할 새도 없이 문 안쪽으로 끌려 들어간 나는 놀랄 틈도 없이 바로 닫힌 문에 몸이 부딪혔다. 그리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때쯤 코끝으로 내가 아는 그 특유의 시원한 향기가 풍겼다.내가 놀란 눈을 뜨며 고개를 드니 잘생긴 얼굴이 내 눈앞에 드리워졌다."어디 다쳤는지 봐요.""이게 뭐 하는 거예요? 이러면 내가 곤란해지죠!"나는 화난 말투로 그에게 쏘아붙였다."어디 다쳤는데요?"배현우는 내가 하는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집요하게 상처에 관해 물었다.나는 어쩔 수 없이 앞머리를 넘겨 상처를 보여줬다. 그걸 본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엄청 차가운 눈을 하고 상처를 바라봤다. 배현우의 이런 표정은 처음 본다. 나는 얼른 머리를 내리고는 말했다."난 괜찮아요."배현우는 엄청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릴 때 엄청 개구쟁이였나? 이렇게 큰 상처를 달고 괜찮다는 소리만 하게? 아니면 괴롭힘당하는 걸 즐기나?"나는 그 말에 그를 힘껏 째려보았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서러움에 코끝이 찡해졌다.배현우는 내 표정을 보더니 눈웃음을 지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왜 나한테 연락 안 했어요?"나는 얼굴을 홱 돌리고는 성질내듯 말했다."유부녀인 내가 당신한테 계속 전화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고요."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배현우는 나를 그대로 자기 품에 끌어당겼고 내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계속 이럴 거야?"나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제멋대로인 남자와 엮이게 됐는지 모르겠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이 남자에게 다가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또한, 이런 모순적인 감정은 나를 더 힘들게 하고 있고."모든 게 끝이 나면 그 남자한테서 당장 떠나요."그는 내게 명령하듯이 말했다. 이런 명령하는 듯한 말투는 너무 싫어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가 계속 명령해 주길 바라고 있다. 신호연 옆을 떠나는 생각을 할 때면 콩이가 생긋 웃으면서 신호연 품에 안겨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
잠시 후, 나는 정신을 차린 뒤 옷매무새를 정리한 다음 천천히 방문을 열어 얼른 그 방을 빠져나와 연회장으로 돌아왔다.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님 응대를 했다. 오래된 거래처 손님들께는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들은 나한테 아주 좋은 감정을 품고 있었고, 나 역시도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수년간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이런 호사도 누릴 수 있었고, 그들이 있었기에 신 씨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도 있었다.오늘은 신 씨 식구들도 하나같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중 신건우는 틈만 나면 손님들한테 자기 하나뿐인 이쁜 딸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왔다. 신건우는 신연아가 오늘 요조숙녀처럼 단정하게 입으니 진짜 그렇게 된 줄 착각이라도 하는 듯했다. 아니면 세간에 떠드는 소문을 덮으려고 저러는 건 아닌지. 하지만 그러고 보니 신연아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저쪽에는 시어머니 품에 안겨 사람들 칭찬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내 딸이 보인다. 정말 내가 엄마라서가 아니라 콩이는 그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아이다. 콩이만 보면 얼어붙어 있던 마음도 금세 녹아내리게 된다. 이대로 행복한 일만 가득해야 할 텐데.약속된 20분이 지나자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화면을 보니 배현우다.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오늘 뭘 잘 못 먹었기에 이러는 거야 대체? 나는 사람들을 피해 얼른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빨리 올라와요. 지금 당장!"내가 말할 틈도 안 주고 그대로 끊어버렸다.어디서 오라 마라야? 나는 화가 나서 핸드폰만 씩씩 노려봤다. 그러다 연회장을 한 번 둘러본 나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호기심에 못 이겨 살금살금 연회장을 빠져나와 얼른 엘리베이터에 탔다. 이윽고 8층에 도착한 나는 방 키에 적혀있는 방을 찾았고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방문 앞에 섰다.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올리는 순간 방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그가 또 한 번 내 손을
맞은편 방은 현재 아수라장이다. 비명과 고함, 그리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 방 밖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 가고 있다.나는 콩닥대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며 드레스 끝을 잡고 사람들 틈에 섞여 방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가 보니 현장은 엉망이었고 발가벗은 두 개의 몸뚱어리는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여자는 남자 몸 뒤에 숨어 머리를 웅크리고는 계속 소리만 질러댔다. 남자는 한 손으로 뒤에 있는 여자의 몸을 가리면서 한 손으로는 쉴 틈 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했다."야 너희 다 안 꺼져?!"침대 옆에는 꼴 좋다는 표정의 도혜선이 서 있었고 그녀의 발아래에는 침대 위에 있어야 할 이불이 깔려있었다. 그리고 그녀 옆으로는 이름 모를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들 발아래에는 저 발가벗은 몸뚱어리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있었다.나는 침대 위의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발가벗고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결혼기념일의 또 다른 주인공, 신호연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멋있는 정장을 입고 연회장을 거닐던 그는 지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사람들 앞에서 이와 같은 추태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뒤에서 웅크리고 있는 여자는 바로 신호연의 동생 신연아였다. 오늘 단정하게 입고 온 보람도 없이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져 역겨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도혜선은 팔짱을 끼며 지시했다."빨리 더 찍어! 각도 제대로 해! 그리고 저 둘 빨리 떼어놔. 더러운 낯짝 구경 좀 하게."그 말에 풍채 좋은 여자 한 명이 그대로 신연아의 팔을 끌어당겨 둘을 떼어놨다. 신연아는 의미 없는 반항을 하며 소리를 꽥 질렀다. 그 순간, 풍채 좋은 여성이 있는 힘껏 신연아의 뺨을 몇 대 때렸고 거기에 더해 머리채를 잡고 신연아의 얼굴 정면을 카메라 렌즈 앞으로 끌고 왔다."도혜선,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너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신호연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도혜선을 보며 소리쳤다."내가 뭘 하고 있는지 내가 모르겠어?
배현우가 내 반응에 놀란 듯 우뚝 멈춰서서 더 다가오지 못했다.이미연이 급히 달려와 울고 있는 콩이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배현우를 힐끗 보고는 내 손목을 잡아채 밖으로 나갔다. 가까스로 미연이 집으로 왔지만 나는 여전히 방금 있었던 상황이 생생해 손발이 덜덜 떨렸다. 속이 메스껍고 가슴이 답답해 연신 가슴을 두드렸지만, 가빠오는 호흡은 종시 가라앉지 않았고 가슴은 돌덩이를 매단 듯 괴로워 났다.위에 든 것도 없이 쉼 없이 토했더니 담액까지 뱉어내게 되었다. 종이에 녹색이 섞여나왔지만, 놀랄 겨를도 없이 나는 쓴맛을 삼키며 속을 진정시키려 애썼다.콩이가 울먹이며 나를 붙잡고 말했다.“엄마, 우리 아빠 찾으러 가자!”나는 콩이를 품에 끌어안고 끓어오르는 슬픔을 억누르며 말했다.“콩아, 엄마가 여기 있잖아. 엄마 계속 여기 있을 거야.”나는 어린 콩이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없었다. 오늘 이후로, 영원히 아빠를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차마...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비록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그걸 할 뿐이었다. 나는 구 변호사에게 연락하여 이혼 관련 사항을 문의하고 이미연을 시켜 일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달라고 했다.내가 지금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이미연뿐이었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가방도 여태 미연이가 들어주고 있었다. 다행히도 중요한 물건들을 미연이가 다 챙겨줘서 잃은 것도, 잊은 것도 없었다.“집에 가야겠어.”미연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집에 간다고?”“여기 집 말이야.”내가 강조하듯 언성을 높여 대답했다. 미연이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미연이네 집 문을 나서니, 배현우가 차 옆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선 채로 한참을 있다가, 콩이를 미연에게 넘겨주었다.“나 몇 마디만 하고 따라갈게.”미연이 콩이를 안고 별장으로 향했다.나는 배현우를 향해 걸어갔다. 여전히 반쯤 찢긴 그 초라한 드레스를 입고서
별장은 지금 바로 들어와 살아도 모자랄 것 없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건 내가 미래의 행복한 가정을 그리며 야심 차게 신경 써서 인테리어를 마쳤던, 이미 모든 가구와 생필품을 갖춘 완벽한 별장이었으니까. 이렇게 쫓기듯이 딸만 데리고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오늘부터 이 별장은, 내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곳이다. 경건하게 마음을 굳혔다가, 나는 또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그냥 빌어먹을 신호연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준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결혼기념일이 아닌 이혼선물일 테지만.호기심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꾸 묻는 콩이에게 이곳이 앞으로 우리가 살 집이라고 알려주었더니 신이 나서 온 집안을 사방팔방 콩콩 뛰어다녔다.내 속도 모르고 좋아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심하게 아렸다. 차라리 영원히 어린 아이로 남아, 내 고통을 헤아려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나 같은 버림받는 인생 말고, 본인만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할텐데...콩이가 막 잠들었을 때, 신호연이 찾아왔다.연회장에서의 단정한 옷차림이었지만 얼굴 군데군데가 멍이 들고 부은 걸로 보아 심하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신호연은 이미연을 상관 하지 않고 바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대역죄인의 얼굴을 하고 내 앞에 오자마자 바로 무릎을 꿇었다. 사실 대역죄인이 맞긴 하지.이 남자는 자존심도 없나 보다. 이게 벌써 몇 번째 꿇는 무릎인가. 몇 번을 꿇어도 결코 불륜이라는 더러운 버릇을 떼지는 못하는 멍청한 인간이다.나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또 전과 같이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을 거라면 그냥 가.”“여보... 내가 당신을 두고 어딜 가... 당신이 내 집이나 마찬가진데.”신호연은 지은 죄를 모두 승인하는 모습이었다. 고분고분했고 더 이상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겨웠다.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꼴사나웠고 듣기도 보기도 싫었다.“하하. 혹시 그런 말이 나를 돌려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나는 실소를
모든 것이 내 예상대로였다. 신호연이 저지른 추악한 불륜 소식은 유난히 빠르게 인터넷 세상을 뒤덮었다. 서울의 각 신문사의 헤드라인이 신호연을 중심으로 한 자극적인 제목과 모자이크 사진으로 장식되었다.정말이지 기자들의 글짓기 능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각종 모호하고도 자극적인 워딩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페이지를 눌러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사람들 모두가 남매간의 불륜 사실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었으니, 인터넷과 담을 쌓은 사람들까지 모두 아는 해괴망측한 사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이 불륜 이야기에서의 가련한 결혼기념일 여주인공인 나도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비록 피해자의 설정이었으나, 화가 나 푸르뎅뎅해진 내 모습이 담긴 사진도 함께 헤드라인에 걸려있는 것을 보니 너무도 수치스러웠다. 사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게 된 인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견딜 수 없이 창피했다.그중에 겉과 속이 다른 신호연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웃음거리로 삼는 게시물이 있었는데, 왼쪽에는 단정한 수트 옷차림으로 웃으면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신호연의 모습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알몸으로 사람들이 방에 들이닥친 모습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급히 가랑이를 가린 모습이 있었다. 정말 온 집안 망신이 아닐 수가 없었다. 댓글에는 비웃음과 조롱이 가득했고,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댓글이 단연 '좋아요' 수 1위를 차지했다.다행히도 이때 나는 이미 골드 빌리지에 들어온 상태였다. 장담하건대, 이 기자들은 미친 듯이 이 사건의 피해자인 나를 목표로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을 것이다.신호연은 또 무언가 얘기하고 싶어 했으나. 아버지의 전화 한 통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텅 빈 넓은 별장에 이미연만이 남아 긴긴밤을 나와 함께 있어 주었다.도혜선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이미 한번 얼굴이 팔렸던 그녀는 이제 잃을 것이 없다는 듯이 여론을 쥐고 마구 흔들었다. 그녀는 신호연의 바람 상대가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자극적이고도 생동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