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편 방은 현재 아수라장이다. 비명과 고함, 그리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 방 밖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 가고 있다.나는 콩닥대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며 드레스 끝을 잡고 사람들 틈에 섞여 방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가 보니 현장은 엉망이었고 발가벗은 두 개의 몸뚱어리는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여자는 남자 몸 뒤에 숨어 머리를 웅크리고는 계속 소리만 질러댔다. 남자는 한 손으로 뒤에 있는 여자의 몸을 가리면서 한 손으로는 쉴 틈 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했다."야 너희 다 안 꺼져?!"침대 옆에는 꼴 좋다는 표정의 도혜선이 서 있었고 그녀의 발아래에는 침대 위에 있어야 할 이불이 깔려있었다. 그리고 그녀 옆으로는 이름 모를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들 발아래에는 저 발가벗은 몸뚱어리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있었다.나는 침대 위의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발가벗고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결혼기념일의 또 다른 주인공, 신호연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멋있는 정장을 입고 연회장을 거닐던 그는 지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사람들 앞에서 이와 같은 추태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뒤에서 웅크리고 있는 여자는 바로 신호연의 동생 신연아였다. 오늘 단정하게 입고 온 보람도 없이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져 역겨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도혜선은 팔짱을 끼며 지시했다."빨리 더 찍어! 각도 제대로 해! 그리고 저 둘 빨리 떼어놔. 더러운 낯짝 구경 좀 하게."그 말에 풍채 좋은 여자 한 명이 그대로 신연아의 팔을 끌어당겨 둘을 떼어놨다. 신연아는 의미 없는 반항을 하며 소리를 꽥 질렀다. 그 순간, 풍채 좋은 여성이 있는 힘껏 신연아의 뺨을 몇 대 때렸고 거기에 더해 머리채를 잡고 신연아의 얼굴 정면을 카메라 렌즈 앞으로 끌고 왔다."도혜선,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너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신호연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도혜선을 보며 소리쳤다."내가 뭘 하고 있는지 내가 모르겠어?
배현우가 내 반응에 놀란 듯 우뚝 멈춰서서 더 다가오지 못했다.이미연이 급히 달려와 울고 있는 콩이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배현우를 힐끗 보고는 내 손목을 잡아채 밖으로 나갔다. 가까스로 미연이 집으로 왔지만 나는 여전히 방금 있었던 상황이 생생해 손발이 덜덜 떨렸다. 속이 메스껍고 가슴이 답답해 연신 가슴을 두드렸지만, 가빠오는 호흡은 종시 가라앉지 않았고 가슴은 돌덩이를 매단 듯 괴로워 났다.위에 든 것도 없이 쉼 없이 토했더니 담액까지 뱉어내게 되었다. 종이에 녹색이 섞여나왔지만, 놀랄 겨를도 없이 나는 쓴맛을 삼키며 속을 진정시키려 애썼다.콩이가 울먹이며 나를 붙잡고 말했다.“엄마, 우리 아빠 찾으러 가자!”나는 콩이를 품에 끌어안고 끓어오르는 슬픔을 억누르며 말했다.“콩아, 엄마가 여기 있잖아. 엄마 계속 여기 있을 거야.”나는 어린 콩이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없었다. 오늘 이후로, 영원히 아빠를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차마...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비록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그걸 할 뿐이었다. 나는 구 변호사에게 연락하여 이혼 관련 사항을 문의하고 이미연을 시켜 일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달라고 했다.내가 지금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이미연뿐이었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가방도 여태 미연이가 들어주고 있었다. 다행히도 중요한 물건들을 미연이가 다 챙겨줘서 잃은 것도, 잊은 것도 없었다.“집에 가야겠어.”미연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집에 간다고?”“여기 집 말이야.”내가 강조하듯 언성을 높여 대답했다. 미연이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미연이네 집 문을 나서니, 배현우가 차 옆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선 채로 한참을 있다가, 콩이를 미연에게 넘겨주었다.“나 몇 마디만 하고 따라갈게.”미연이 콩이를 안고 별장으로 향했다.나는 배현우를 향해 걸어갔다. 여전히 반쯤 찢긴 그 초라한 드레스를 입고서
별장은 지금 바로 들어와 살아도 모자랄 것 없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건 내가 미래의 행복한 가정을 그리며 야심 차게 신경 써서 인테리어를 마쳤던, 이미 모든 가구와 생필품을 갖춘 완벽한 별장이었으니까. 이렇게 쫓기듯이 딸만 데리고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오늘부터 이 별장은, 내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곳이다. 경건하게 마음을 굳혔다가, 나는 또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그냥 빌어먹을 신호연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준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결혼기념일이 아닌 이혼선물일 테지만.호기심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꾸 묻는 콩이에게 이곳이 앞으로 우리가 살 집이라고 알려주었더니 신이 나서 온 집안을 사방팔방 콩콩 뛰어다녔다.내 속도 모르고 좋아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심하게 아렸다. 차라리 영원히 어린 아이로 남아, 내 고통을 헤아려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나 같은 버림받는 인생 말고, 본인만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할텐데...콩이가 막 잠들었을 때, 신호연이 찾아왔다.연회장에서의 단정한 옷차림이었지만 얼굴 군데군데가 멍이 들고 부은 걸로 보아 심하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신호연은 이미연을 상관 하지 않고 바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대역죄인의 얼굴을 하고 내 앞에 오자마자 바로 무릎을 꿇었다. 사실 대역죄인이 맞긴 하지.이 남자는 자존심도 없나 보다. 이게 벌써 몇 번째 꿇는 무릎인가. 몇 번을 꿇어도 결코 불륜이라는 더러운 버릇을 떼지는 못하는 멍청한 인간이다.나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또 전과 같이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을 거라면 그냥 가.”“여보... 내가 당신을 두고 어딜 가... 당신이 내 집이나 마찬가진데.”신호연은 지은 죄를 모두 승인하는 모습이었다. 고분고분했고 더 이상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겨웠다.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꼴사나웠고 듣기도 보기도 싫었다.“하하. 혹시 그런 말이 나를 돌려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나는 실소를
모든 것이 내 예상대로였다. 신호연이 저지른 추악한 불륜 소식은 유난히 빠르게 인터넷 세상을 뒤덮었다. 서울의 각 신문사의 헤드라인이 신호연을 중심으로 한 자극적인 제목과 모자이크 사진으로 장식되었다.정말이지 기자들의 글짓기 능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각종 모호하고도 자극적인 워딩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페이지를 눌러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사람들 모두가 남매간의 불륜 사실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었으니, 인터넷과 담을 쌓은 사람들까지 모두 아는 해괴망측한 사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이 불륜 이야기에서의 가련한 결혼기념일 여주인공인 나도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비록 피해자의 설정이었으나, 화가 나 푸르뎅뎅해진 내 모습이 담긴 사진도 함께 헤드라인에 걸려있는 것을 보니 너무도 수치스러웠다. 사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게 된 인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견딜 수 없이 창피했다.그중에 겉과 속이 다른 신호연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웃음거리로 삼는 게시물이 있었는데, 왼쪽에는 단정한 수트 옷차림으로 웃으면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신호연의 모습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알몸으로 사람들이 방에 들이닥친 모습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급히 가랑이를 가린 모습이 있었다. 정말 온 집안 망신이 아닐 수가 없었다. 댓글에는 비웃음과 조롱이 가득했고,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댓글이 단연 '좋아요' 수 1위를 차지했다.다행히도 이때 나는 이미 골드 빌리지에 들어온 상태였다. 장담하건대, 이 기자들은 미친 듯이 이 사건의 피해자인 나를 목표로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을 것이다.신호연은 또 무언가 얘기하고 싶어 했으나. 아버지의 전화 한 통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텅 빈 넓은 별장에 이미연만이 남아 긴긴밤을 나와 함께 있어 주었다.도혜선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이미 한번 얼굴이 팔렸던 그녀는 이제 잃을 것이 없다는 듯이 여론을 쥐고 마구 흔들었다. 그녀는 신호연의 바람 상대가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자극적이고도 생동하게
도혜선을 불러내기 전부터 나는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불안했다. 그래서 그녀가 내 전화를 받고 조금의 주저도 없이 만남을 수락했을 때는 정말 뜻밖이었다.그녀는 나보다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도혜선이 의외로 매우 적극적이어서 불안했던 마음은 싹 가시고 편해졌다.오늘 나는 그녀에게서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도혜선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봤다.그녀는 똑똑하지만 시원시원했고 나아가 호쾌하기까지 했다.“먼저 만나자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 무슨 의도로 부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사과는 해야 할 것 같네요. 죄송했어요.”그녀가 먼저 사과를 시작으로 어색하지 않게 말을 이어 나갔다.나는 담담하게 미소를 띠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 또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괜찮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러나 혜선 씨를 탓하기엔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있어서요, 하하.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그녀도 내 말을 듣고 담담히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듯이 입을 오므렸다가 놨다.“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해요.”그녀가 어색하게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저는 핑계 대고 싶지 않아요. 사실 줄곧 신호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맞아요. 신호연이 매력이 있어 여자들에게 호감을 산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저도 그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죠. 그러나 저는 신호연이 그렇게 찌질할 줄은 몰랐어요. 일이 생기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책임하게 가버리더라고요.”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다른 여자한테서 들은 신호연에 대한 평가였다. 물론 나에겐 남편의 불륜 상대니 연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신호연이 글쎄 저를 호구로 보고 동생을 두둔하지 뭐예요. 제가 신연아에게 폭행당하는 걸 뻔히 지켜보면서 말리질 않더라고요. 이후엔 병원에 버려놓고는 모른 척하더군요.”도혜선이 말하면서도 치가 떨려 하는 것이 느껴졌다. 여전히 분노를 품고 있는 그녀의 눈이 이글이글했다.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현재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가
나는 신연아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조금의 창피함도 모르는 그녀의 단단한 멘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뻔뻔스러워 제삼자가 보면 내가 가해자인 줄 알 것 같았다. 얼굴에 미안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고, 저렇게 저급하고 예의는 말아먹은 태도로 좋은 소식을 알려주겠단다.“말해봐, 그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은 이제 너무 들어서 지겹거든. 어디 그 뻔뻔한 낯짝이 말하는 좋은 소식이 뭔지나 들어볼까?”나도 지지 않으며 담담하게 맞받아쳤다.“피해자인 척 트집 잡지 마.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건 한지아 너한테도 책임이 있는 거야. 둘 중 그 누구도 억울해하지 마.”이 말이 시아버지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어이가 없어 멍하니 신건우를 바라보았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도대체 어떻게 그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서 말문이 막힌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신호연이 마침 밖에서 돌아와, 내가 콩이를 안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신호연은 집안 모두의 안색을 살피더니 나에게 한마디 했다.“우리 집에 가자!”“오빠, 뭘 그리 바삐 집에 가. 나 아직 형수님한테 좋은 소식도 못 알려줬는데!”신연아는 어딘가 비꼬는 듯한 어투로 신호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빤 아직도 한지아랑 집 갈 생각이나 하고 있어? 내 배 속의 아이는 아빠를 애타게 찾고 있는데!”머리가 ‘쿵’하고 울렸다. 마치 천둥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느낌. 순간 두통이 심하게 몰려왔다. 갑자기 몸을 지탱할 수 없어 비틀거리자, 신호연이 재빨리 와서 나를 부축했다.“여보...”신호연의 울먹거리는 역겨운 목소리에 나는 그를 분노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아이?”신호연은 고개를 떨구고 감히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신연아의 말이 터무니없는 망상이 아니라, 사실이었다.“너랑 신연아의 아이?”나는 기가 차 되물었다.“연아와 호연은 친남매가 아니야. 애초부터 혈연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니 아이 몇 명을 낳든 문제 될 건 없어.”신건우가 파렴치하게 부끄러움도 모르고 이어서
뺨따귀를 맞은 얼굴은 후끈후끈 달아오르면서 아파졌다. 입가에서는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콩이는 목이 쉴 정도로 내 다리를 끌어안고 울어댔다.난 맞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허리를 곧게 펴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신호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이제야 네가 진짜 본성을 드러내네!”신호연은 당황한 듯 얼굴빛이 변하면서 동공이 흔들렸다. 이때 신연아가 태연하게 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더니 말했다.“한지아, 좋은 말로 할 때 네가 뺏어갔던 것들 다 도로 뱉어내, 안 그러면 진짜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신연아, 꿈도 꾸지 마,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니까!”난 아주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너희 집안을 위해 내가 해준 게 얼만데! 신호연, 네가 오늘 때린 이 따귀 내가 꼭 기억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천배 만배 너에게서 다 돌려받아 낼 거야.”나는 할 말을 다 하고는 무서워서 울고 있는 콩이를 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신연아가 내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이 장면을 본 콩이는 꼭 끌어안고 있던 내 다리를 놓고는 작은 두 손으로 신연아를 밀기 시작했다.“고모 나빠, 저리로 가!”나와 신연아는 서로 머리를 끄집어 당기기 시작했다.신호연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둘 다 손 놓지 못해!”신호연은 내 팔을 잡아당기면서 나를 막았다. 내가 신호연에게 잡혀 움직임이 제한받자 신연아는 더 흥분하면서 그 틈을 타 내 얼굴 뺨을 두 번이나 연속 후려갈겼다.여러 번이나 억울하게 뺨을 맞은 나의 분노 지수는 최고치에 달했다. 나는 신호연이 끌어당기던 팔을 뿌리치고는 신연아의 얼굴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신연아가 맞자 신건우도 참지 못하고 끼어들려 했다. 하지만 그는 울면서 작은 손으로 신연아를 밀고 치는 콩이가 눈에 거슬린 모양이었다.신건우는 손을 뻗어 콩이를 끌어당기더니 뒤로 뿌리쳤다. 나는 콩이를 신건우 손에서 빼앗아 오려고 했지만 콩이는 그저 힘없는 종이 인형처럼 뒤로 던져지고 말았다. ‘둥!’하는 소리와 함께 콩이의 울
나는 숨을 죽이고 의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미연은 내가 아플 정도로 나를 꽉 잡고 있었지만 난 아픔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의사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다행히 아이 생명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뇌진탕, 두개내출혈, 안면 근육 손상 등 증상이 존재하고 지금 깨어나지는 않은 상황이라 24시간 동안 계속 관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빨리 깨어날 가능성도 있고 제일 안 좋은 상황까지 예상한다면 아마...”나는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쓰러졌다.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병실에는 이미연뿐만 아니라 이미 떠난 줄 알았던 신호연과 시어머니도 있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서강훈도 있었다.나는 애써 몸을 일으키면서 이미연한테 물었다.“콩이는? 우리 콩이는 어디 있어?”“지아야, 콩이는 아직 중환자실에서 관찰 중이니까 너무 다급해 않아도 돼.”나는 아직도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일으키면서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이미연이 이런 나를 막아 세우자 나는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날 막지마, 콩이는 아직 어려서 내가 없으면 무서워한단 말이야! 의사를 제일 무서워한다고!”“여보...”“꺼져... 꺼지라고...!”나는 목이 찢어지라 신호연을 향해 외쳤다.“다 저리 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눈앞에 서 있는 신씨 집안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나와 10년 동안이나 함께 살아온 신호연도 그 순간에는 사람의 탈을 쓴 악랄한 짐승으로 느껴졌다. 두 눈을 뜨고 자기 친딸이 쓸모없는 걸레처럼 뿌리쳐 나가는 걸 보기만 하는 신호연은 털끝만큼의 양심도 없는 쓰레기였다.이번 일로 신씨 집안 사람들에 대한 모든 인상이 뒤엎어졌다.나는 이번 생을 돌이켜보면서 신호연 같은 쓰레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신씨 집안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 짐승 같은 놈이었다.나는 이미연의 동반하에 힘겹게 중환자실 앞까지 걸어갔다. 유리창 너머로 창백한 얼굴을 하고 힘없이 누워있는 콩이를 보자 나는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