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건너편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는데 그 안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오고 있는데 여자는 남자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방금 점심을 다 먹은 것 같은 모양인데 점심을 오랫동안 먹은 듯했다.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무슨 말을 하는 듯했고 여자는 남자의 뽈에 뽀뽀를 하였다. 남자는 손을 뻗어 여자의 머리를 문질렀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여자를 바라보았고 택시를 불러 주고 그녀가 차에 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광장 반대편으로 걸어갔다.그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신호연과 신연아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뺨이라도 맞은 듯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입가의 경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배현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웃기죠.”그는 깊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고 한참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웃을 만한 일은 아니죠.”나는 애써 마음속의 어색함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신호연이 서강훈과 함께 거래처 사장님과 식사하러 간 줄 알았으니 나의 착각이었다. 거래처 사장님과 식사하러 간 사람은 서강훈뿐이었다.분위기가 좀 침울해졌고 다행히 웨이터가 주스를 가져다주었고 그는 가느다랗고 하얀 손을 뻗어 생과일주스를 받아 내 앞에 밀어놓고 나를 쳐다보았다.한참 후 그는 담담하게 물었다.“신경 쓰여요?”나는 어색하게 웃었고 그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난 분명히 나의 남편과 다른 여자의 친밀한 모습을 목격했는데 신경 쓰지 않는다? 만약 내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대답하면 그건 거짓말이고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혹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고 내가 이 상황을 개변시킬 수는 없다. 신경 쓰인다고 대답하면 나는 실패한 사람이고 부끄러운 상황이다.나에게 부끄러운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자꾸 이 남자가 그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그는 나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사람인지 복을 가져다주는 사람인지 나도 모르겠다.나는 주스를 한 모금 마셨고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가 약간 아파졌다. “설명해 드릴
나는 깨어나서 이미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모든 것은 평소와 같았다. 산사태처럼 갈라지는 듯한 고통은 사라지고 아무 느낌도 없었다.내 옆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배현우만 있었는데, 보아하니 그가 나를 병원으로 데려온 것 같았다. 내게 일어난 돌발 상황이 그를 놀라게 했을 것 같아서 그에게 미안했다.“많이 놀랐죠? 미안해요!”나는 어색하게 웃었다.“현우 씨에게는 항상 가장 못난 모습만 보여주게 되네요. 또 구해줘서 고마워요!”“이제 괜찮아요?”그는 나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조금 걱정하는 말투로 물었다.“담결석이 있어요. 고질병이죠!”나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는 나의 몸을 다시 검사해 주려고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 선생님은 내 상태와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시고, 배현우에게 수액을 다 맞으면 퇴원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시 한번 확인했다.의사가 떠난 후 나는 그를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요. 이 병이 원래 그래요. 아플 땐 끔찍하다가 통증이 지나면 아무 느낌이 없어요.”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에게 말했다.“가족분들에게 알릴까요?”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족? 나에게 유일한 가족은 지금 아직 너무 어리다. 딸 외에는 가족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더 이상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데 왜 그가 와서 연기하는 걸 지켜봐야 할까?나조차도 상황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그가 나를 이렇게 배신하도록 만들었을까?한 사람에게 가장 슬픈 것은 상대방에게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 속는 것이다.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현우 씨는 덧붙였다.“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요!”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액을 다 맞은 후 그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고집했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없이 딸의 유치원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더 묻지 않았고 우리가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에게 먼저 가라고 말했다.현우 씨는 내가 아
나는 차에서 내리고 신호연을 기다리지 않고 콩이의 손을 잡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신호연은 우리를 따라오면서 여전히 가벼운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예전에는 이럴 때 그는 나더러 혼자 가라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했다.전문 매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진열대에 있는 신발을 흘끗 보았다. 신호연은 미소를지으며 나를 바라보며 내가 망신당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종업원 한 분이 나를 알아볼 줄은 몰랐다.“한지아 님, 신발을 찾으러 오셨어요?‘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네!”“다 준비되어 있으니 제가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바로 나와서 나에게 신발 상자를 건넸다.“사이즈 240, 브라운색 맞으시죠!”나는 손을 뻗어 그것을 가져와서 열어보고 살펴본 다음 신호연에게 건네고 종업원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신호연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부드러운 표정으로 신발 상자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조심스럽게 나의 어깨에 팔을 얹고 젠틀하게 종업원에게 감사를 표했다.돌아오는 길에 신호연은 매우 흥분하여 끊임없이 말을 했다. 그는 가는 내내 시끄럽게 조잘댔지만 나는 담담하게 맞장구만 쳐줬다.식사 자리에서 나는 거의 먹지 않았다. 오후 내내 담낭 통증이 있었기 때문에 기름진 음식을 먹기 무서웠다. 그리고 신호연 옆에 붙어 앉은 신연아를 보니 도저히 입맛이 생기지 않았다. 솔직히 이 집안사람들 앞에 앉아 있으니 나는 갑자기 전례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다.신호연은 나를 위해 계속 음식을 집어 주었고 신연아는 흉악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극도로 불쾌해 보였다.“언니,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이렇게 주접떨지는 않던데요?”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이젠 콩이보다 대접하기 더 힘드네요?”“연아 씨 오빠도 항상 연아 씨를 대접해 주잖아요?”나는 미소를 띤 얼굴로 신연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그녀의 눈동자가 갑자기 움츠
신호연과 어머님은 신연아를 꾸짖었다.“연아야...”그러나 아버님은 참을성 없는 어조로 말했다.“밥 먹어!”아버님의 이러한 태도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딸을 엄청 예뻐하면서 한 번도 ‘안 돼’라고 한 적이 없고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 아버님이 외친 말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콩이는 몸을 떨었고 손에 든 숟가락이 땅에 떨어지면서 ‘쨍그랑’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나는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분노를 억누르면서 허리를 굽혀 콩이의 숟가락을 줍고 새 숟가락으로 바꿔줬다.그리고 다시 신연아를 보고 말했다.“연아 씨 말은 제가 이 집안의 불화를 일으키는 이유라는 말인 거죠? 그렇지 않으면 제가 올 때마다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럼 똑같은 물음을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호연에게 물어봐야겠네요.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세요?”신호연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그는 나의 어깨를 툭 쳤다.“쟤가 하는 쓸데없는 말을 듣지 말고 얼른 밥 먹어!”어머님도 서둘러 상황을 정리했다.“가족끼리 꼬투리 잡지 마! 얼른 밥 먹으렴. 쟤가 원래 저래. 쓸데없는 말이 많다니까.”“연아 씨가 쓸데없는 말을 하든 아니든 사실 전 마음에 두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아가씨도 마음에 두지 않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진짜 가족이고 아니고 전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전 분명히 신호연과 당당하게 결혼했어요...”“그래서 뭐요. 이혼한 사람들도 많은데요.”신연아는 눈을 흘기면서 나의 말을 끊었다.나는 놀라서 신호연을 바라보았고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마음속으로 욕을 퍼부었다.‘젠장!’“닥쳐!”신호연은 신연아를 보고 꾸짖었다.“이혼이요? 아가씨 말도 맞아요. 언젠가 아가씨 오빠가 싫증이 나면 저를 문 밖으로 내쫓겠죠. 저는 아가씨처럼 계속 문 안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아가씨 오빠도 지금 이혼할지 말지 결정 못 한 것 같아요! 혹시 아가씨가 불안한 거면 도대체 뭐가 그리 불안한 거예요? 네?”나는
아침에 나는 회사에 얼른 가고 싶어서 서강훈에게 전화를 걸어 도혜선에 관한 세부 사항들을 물었다. 서강훈의 말에서 나는 다른 의미를 들었는데, 도혜선은 신호연을 탐내고 있다.그날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마주친 거로 보아 신호연도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남자들은 일단 입술을 훔치게 되면 더 탐욕스러워질 것이다.그렇게 생각하자 나의 마음은 또 가시에 찔린 듯 아팠다. 예전에는 함께 고생을 겪은 사이가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만난 사람이 나와 인연이 아닐 줄이야.나는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이었다.그런데 이미연이 들려준 소식은 나에게 더 충격적이었다. 역시 신 씨 가문의 세 사람 각자 명의로 통장이 있었는데, 신연아는 부동산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등록 자본금이 20억 인 인테리어 건설 회사를 소유하고 있었다. 회사의 법인은 신연아였다.현재 회사는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금 유동은 매우 좋았다. 그 돈이 어디에서 오는지 뻔했다. 20억으로 등록할 수 있다는 것은 수년 동안 신호연이 적지 않게 해 먹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신건우와 김향옥의 명의로도 예금이 억대 단위로 있었고 나는 그 숫자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신호연도 정말 무자비하고 계산적이지. 온 가족을 동원했다니! 같이 사는 나만 배우자 신분인데도 무일푼이었다. 그의 속내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지만 나만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내 마음은 극도로 차가워졌다. 그는 나를 너무 비참하게 속였다. 내가 용서를 해주었지만 난 여전히 이 결혼 생활에 짓눌렸고 청춘을 잃었다. 그리고 내가 그에 대한 일편단심 사랑하는 마음도 잃었다.나는 필사적으로 주먹을 움켜쥐고 이를 악물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내가 이 결혼 생활을 되돌릴 수 없다면 자금으로라도 내 마음의 불평을 채워야겠다.이것들을 확인하기 전에 나는 머릿속으로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가정을 지켜야 할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난 견딜 수가 없었고 이 사실을 직면할 수 없었다.
나는 정처 없이 걷다가 어느새 다시 강변에 와서 술을 샀다.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데리러 가도록 맡긴 후, 강가에 편안하게 앉아 혼자 술을 마셨다.회사는 이미 빈 껍데기가 되었고, 마치 그의 사명을 다한 듯했다. 신 씨 집안사람들을 위해 큰돈을 벌었지만 정작 나는 빈손이었다. 어쩐지 신연아는 무슨 배짱으로 나에게 버럭버럭 대들었다. 내가 그 문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난 거기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유일한 남은 차가운 집조차도 놓아주지 않는다. 내가 집에 없을 때 내가 잠자는 침대에서 더러운 일을 하면서 나를 괴롭혔다.어젯밤 신 씨 가문 저택에서, 나는 내가 강인하고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신호연은 그 대가로 그녀를 달래주려고 차 한 대를 사주었고 나의 부모님에게는 1억 원의 돈을 주면서 분노했다. 생각할수록 심장과 폐를 파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올라오지 않았다.휴대폰이 계속 울리고 있지만 전화를 받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살짝 취했다.해 질 녘, 고층 빌딩의 불은 밝게 켜졌지만 나를 밝히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나는 술병을 불빛에 맞추어 들어 올렸지만, 갑자기 큰 손이 나타나더니 나의 술병을 빼앗고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꾸짖었다.“지아 씨...”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고, 내 뒤에 서서 내가 얼마나 운이 없는지 목격하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낄낄거렸다.“당신? 당신...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난 아니야... 난 차에 뭐 두고 내리지 않았는데?”“어제 통증이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잊어버렸어요?”배현우가 나를 바라보며 꾸짖었다.“의사 선생님 조언이라고... 말하지 마요! 재미없게...”나는 그를 바라보며 손을 뻗어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어서... 나랑 같이 마셔요!”어느새 나는 애교가 섞인 말투로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아마도 외로운 나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줘서 갑자기
우리의 시선은 서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고, 그의 팔이 더욱 조여져 나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를 밀어내고 있던 내 손은 힘이 약해지다가 마침내 그의 허리를 붙잡았다. 난 그의 허리가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곧바로 그는 고개를 숙여 내 입술에 폭풍 같은 키스를 퍼부었다.나는 즉시 감전된 것처럼 힘이 풀려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그는 내 머리를 잡고 더 깊이 키스했다. 나는 간신히 숨을 쉬면서 머릿속에 신호연과 신연아가 얽혀 있는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나를 이런 종류의 자극을 갈망하게 만들었다.술에 취한 탓인지, 아니면 오래만의 열정이 불타오른 탓인지, 혹은 일종의 복수심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딱 붙어서 그를 껴안고 폭풍 치는 열정적인 키스에 반응했다. 조금씩 그 이미지가 사라졌고, 난 앞에 있는 욕망이 지속되기를 원했으며,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배현우는 마침내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강물의 냄새가 섞인 신선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해 술병을 집어 들고 다시 따르려고 했지만 그는 그것을 낚아챘다.“더 이상 마시면 안 돼요!”배현우의 목소리가 엄숙해졌다.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내 돈 주고 산 건데, 내가 돈 많은 줄 알아요?”내 혀는 약간 뻣뻣했고, 술에 많이 취해 있었다. 과거에는 술을 잘 마셨지만, 지금은 슬픔에 취해 마음이 쓰라리고 머리가 어지러웠으며 몸에 마비되어 있었다.“나는 과거와 작별하려고 술을 마시는 거예요!...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나는 솟구치는 강물을 향해 소리친 후 킥킥 웃으며 그의 품에 안겼다.“정신 차려요!” 그는 나를 일으켜 세우며 내 허리를 감싸고 나를 들어 올렸다.“내가 도와줄게요!”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 혼란스러웠고 머리가 멍해졌다.배현우가 나를 품에 안았을 때 나는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큰 보폭으로 앞으로 걸어갔다.나의 남은 의식은 이 남자에게서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현우가 방에서 걸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문 밖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쾅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고 그 사람은 다시 걸어왔다.“답답하지 않아요?”배현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고, 나는 숨을 쉴 수 없어 할 수 없이 천천히 이불 모서리를 들어 올렸다. 그는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맑은 미소는 유난히 잘생겨 보였다.이 사람은 내가 아는 웃지 않는 배현우가 맞을까?멍을 때리고 있는 나를 보고 그는 긴 팔을 뻗어 이불에 감싼 채로 나를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나는 무척 당황했다.“이봐요... 현우 씨, 뭐 하는 거예요?”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그의 숨결이 나를 감쌌고 그의 잘생긴 얼굴이 내 앞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와 나는 약간 숨이 막혔다.갑자기 어젯밤 강가에서 술에 취해 나눈 키스가 떠올랐다. 너무 난감했다. 다른 사람들이 술을 취하면 제정신이 아니라더니 이제 나는 그 말을 믿는다.그의 눈빛은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지아 씨는 걱정이 너무 많아요. 마음 놓아요! 나는 사람이 술에 취한 틈을 타 이용할 정도로 ‘배고프지’ 않아요! 지아 씨가 옷에 토해 냄새가 너무 심해서 옷을 벗겨서 씻겨준 거예요!”내 머리가 심하게 '윙윙'거렸고 난 극도로 부끄러워졌다. ‘어젯밤에 내가 뭘 했지? 울고불고한 거 나 맞아? 너무 믿음직스럽지 못한 상대에게 털어놓은 거 같은데.’“그... 옷을 입는 게 좋겠어요!” 나는 말을 더듬거리며 그의 품에서 몸부림쳤다.그는 팔을 꽉 조이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필요할 땐 쓰더니 필요 없으니까 나를 버려요?!”“현우 씨만큼 잘생긴 사람이 어디 있어요?”나는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이 내 입을 떠날 때 혀를 깨물 뻔했다.그는 실실 웃으며 뻔뻔하게 말했다.“맞는 말이에요.”하지만 그는 신사답게 나를 내려놓고 몸을 돌려 자신의 옷을 챙기고는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나는 부랴부랴 이불속에서 기어 나와 떨면서 옷을 입은 후 아무 이상이 없는지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했다.확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