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신호연이 바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를 보며 여유롭게 웃는 신호연을 보며, 내가 바로 물었다. “서강훈 씨가 연락했나 봐? 오전부터 어딜 간 거야?”“맞아. 연락해 줬어. 오늘부터 출근한다며? 조금 놀랐잖아. 어젯밤에 알려주지.”그는 외투를 벗어 옆에 걸어두고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저 현장에 가서 한번 봤어.”“갑자기 결정한 거라서 어제 말하지 않은 거야. 오늘 콩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주고 나니까 너무 심심하더라고.”신호연은 내 옆에 와서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오는 길에 생각해 봤어. 굳이 출근하겠다면 종합 사업 부문으로 가는 게 어때?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시간도 여유롭고 스트레스받을 일도 크게 없어. 우리 회사의 일이니 당신이 가서 기강을 잡아도 좋고.”“아니, 마케팅 부서에 갈 거야. 난 역시 거기가 가장 어울려!”나는 신호연을 거절한 채 내 의견을 얘기했다. 조금은 제멋대로 같아 보였다. 신호연이 나한테 종합 사업 부문을 추천해 준 이유는 알 것 같았다. 그 부문은 가장 할 일이 적은 부문으로 회사 내부와 큰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회사 내부에 파고들어야 했다. 지금의 신흥건재가 어떤 회사인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마케팅 부서는 서강훈이...”“괜찮아, 직원부터 시작하면 되지! 서강훈 씨는 지금 당신의 유능한 오른팔이잖아. 그런 사람의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지. 난 그저 스스로를 단련하고 싶은 거야. 예전처럼 일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고. 예전이 그립거든.”나는 의미 없는 웃음을 섞어가며 대충 둘러댔다. “어차피 난 시간도 많으니까. 매일 사무실에 앉아만 있는 건 습관 안 될 거 같아. 출근을 안 한 지 4, 5년 정도 되는데 일단 가볍게 시작하려고.”내 말이 끝나자 신호연의 표정이 그제야 풀어졌다. 그는 웃으면서 내 옆으로 왔다. “그래, 그래. 우리 아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난 당신만 행복하면 되거든.”서강훈은 빠릿빠릿 움직여서 나를 위한 사무실을 준비해 주었다. 작지도 않았고
전화를 걸었더니 기계음이 알려주었다, 지금 거신 전화기가 꺼져있다고. 나는 땅에 꿇어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하지만 지금 더욱 급한 것은 딸이었다. 나는 이를 꽉 깨물고 몸을 일으켰다. 카드를 빼고 돌아가는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중앙 홀로 돌아간 나는 이미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꺼져있었다. 나는 급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왜 다들 폰을 꺼두는 것인지. 왜 다들 매일 급할 때만 연락이 안 되는지. 어쩔 수 없이 시부모님한테 연락을 해봐야 했다. 새벽 한 시라서 두 분을 깨우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받은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조금 놀란 듯했다. “지아야, 무슨 일이야? 시간도 늦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시어머니의 부드러운 말투에 나는 사실대로 말하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죄송스러운 태도로 콩이가 고열때문에 병원에 왔는데 내 손에 돈이 없다는 사실을 얘기했다. 두 분은 통화를 끊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시부모님이 도착했을 때 의사는 이미 콩이에게 링거를 놓아주었다. 급성 폐렴이라고 했다. 나는 새벽에 달려온 시부모님을 보며 미안해졌다. “어떻게 오신 거예요? 연아를 불러서 보내주시면 되는데, 새벽에 불러서 정말 죄송해요!”“연아는 호연이랑 같이 출장을 갔다더라. 집에 없어.”시어머니가 얘기했다. 그리고 바로 콩이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우리 손녀, 얼마나 아픈 거야? 열은 어느 정도였니?”“39.5도까지 올랐어요. 급성 폐렴이라고 해요. 잠시 아이 좀 봐주시겠어요? 돈을 내러 다녀오겠습니다.”나는 시부모님께 얘기했다. 나는 급하게 돈을 내러 가면서 속으로 신연아한테 불만을 토로했다. 정말 쓸모없는 애였다. 오빠를 따라가서 출장을 간다니, 도움이 되기는커녕 되려 발목만 잡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는 시부모님을 돌려보냈다. 시어머님은 머뭇거리다가 우리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그들이 떠난 후 나는 점점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며 무거웠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맞아.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다가 모든 걸 잃고, 원래부터 나의 것이었던 모든 물건들을 잃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내가 쟁취했다가 잃은 거라면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휴대폰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이미연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하며 나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생각도 정리되었다. “네 말이 맞아.”나는 얼굴을 닦고 이미연에게 말했다. “다행이야, 이럴 때 너같이 냉정한 사람이 내 곁에 있어서 다행이야. 내가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니까.”휴대폰이 다시 울릴 때, 나는 내 감정을 잘 억누르고 이미연한테서 휴대폰을 받았다. 이미연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넌 잘할 수 있어!”깊게 숨을 들이킨 나는 휴대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여보! 왜 이제야 전화를 받는 거야! 우리 카드 안의 돈은 다 어디 간 거야? 콩이가 새벽에 급성 폐렴으로 병원에 왔는데 현금이 없어서 카드에서 현금을 꺼내려고 했는데 돈이 하나도 없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이미연은 나의 말을 듣더니 이마를 쳤다. 하지만 나는 신호연에 대해서 잘 알았다. 이렇게 말해야 더욱 나다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신호연은 더욱 경계할 것이다. “아... 여보, 걱정하지 마! 돈은 내가 잠시 썼어. 돌아가서 얘기해 줄게.”아니나 다를까, 신호연은 바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콩이는 지금 어때?”“아직도 링거를 맞고 있어. 열이 39.5도까지 올랐어. 진짜 심각해. 언제 돌아올 거야? 제발 빨리 돌아와!”나는 일부러 조급해하며 얘기했다. “나 너무 무서워! 새벽에 시부모님도 다녀가셨어! 다음에 돈을 쓰면 나한테 먼저 얘기해 주면 안 돼? 당신이 집에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예전 같으면 이런 대화는 매우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한테 예전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나도 거짓말을 잘하는 재능이 있는 걸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알겠어. 바로 돌아갈
나는 그저 헛웃음 터뜨렸다. 어떻게 생각해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얘기하지 못했다. 나도 더 묻지 않고 내일 보기로 했다. 신씨네 집에 돌아와 보니 일가족이 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신연아도 있었다. 내가 돌아온 것을 본 시어머니는 반찬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지아가 오랜만에 왔잖아?”나는 웃으며 얼른 손을 씻고 도왔다. 한 가족이 모이니 꽤 즐거웠다. 식사할 때 시아버지가 갑자기 신호연에게 출장에 관한 일을 물었다. 신호연은 대충 둘러대며 그저 일을 했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또 신연아에게 물었다. “넌 네 오빠를 따라가서 뭐 했니?”시어머니의 말에 신연아는 그대로 굳어버려 신호연을 보았다. 신호연은 바로 되물었다. “너도 안양에 갔어?”신연아는 잠시 변명할 거리를 찾는 것인지 굳어버렸다가 대답했다. “아, 나 친구랑 놀러 갔어요!”“그러면 왜 오빠랑 갔다고 거짓말을 해.”시어머니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신연아는 오히려 화를 냈다. “내가 안양에 가겠다고 하면 보내줄 거예요? 맨날 나가놀지 못하게 하면서.”그들의 대화를 들으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갑자기, 신호연에게 나보다 신연아가 더욱 중요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집에서, 이 몇 사람 중에서 나만 외부인이었다. 매번 식사를 할 때의 화제도 거기서 거기였다. 신연아더러 빨리 남자친구를 찾으라고 독촉하면 나는 옆에서 묵묵히 콩이를 살필 뿐, 그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후 신연아는 나갈 준비를 했다. 신호연은 갑자기 물었다. “이렇게 늦었는데 어딜 가는 거야.”“신경 꺼. 네 식구들이나 챙겨. 나는 나가서 바람 좀 쐬면 안 되냐? 남자친구 찾으러 간다, 왜!”신연아는 바로 신호연에게 공격적인 태도로 쏘아붙였다. 그리고 곧 신발을 신고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에 신호연은 또 말을 붙였다. “빨리 돌아와!”나는 신호연을 힐끔 쳐다보았
나는 나 자신을 비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돌아갈 길을 생각하고 있다니. 상대는 이미 내 돈을 빼돌리고 있는데 나는 또 돌아갈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뇌가 어떻게 된 걸까. 나도 모르겠다. 난 그냥 멍청이 같았다. 이미연이 한 말이 맞았다. 신호연은 나를 버렸는데 난 여전히 신호연을 생각하고 있으니. 여태까지 나는 불륜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 신호연이 얼마나 교활한지 알 수 있는 점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불륜녀가 누구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그저 호기심일 뿐이었다. 보통 이런 일에 부딪히면 자기의 이익을 떼어간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결국 그 사람이 누구든지 중요하지는 않다. 이미 자기의 이익을 뺏긴 것만은 사실이 된다. 난 바로 이미연에게 얘기했다. “난 그 돈이 어디로 간 것인지 알고 싶어.”“이미 사람을 시켜서 찾아보고 있어. 너무 급해하지 마.”이미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대화를 마친 후 회사로 돌아온 나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세운 회사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 나는 신호연을 원래 그대로 내쫓을 생각이었다. 그게 바로 내 유일한 소원이었다. 지금의 회사 사람들은 내가 언제 오든지 언제 가든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사모님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점심이 되자 사람들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사이에 나도 할 일이 없어졌다. 신호연은 점심에 뭘 먹을 건지 물어보려고 그의 사무실로 갔다. 입구의 비서는 보이지 않았고 절반 열린 문에서 대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신호연은 여전히 사무실에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문을 열려고 하는데 안에서 서강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형수님께 보여드린 자료들은 다 준비하라고 하신 자료들뿐입니다. 역시 신 대표님이 한수 앞을 내다보시는군요! 하지만 제가 봤을 때 형수님은 사실 회사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 있는 시간도 길지 않거든요. 제가 볼 때는 출근을 핑계로 대표님을
나의 질문에 신호연은 그만 굳어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집을 사려고 저축한 돈 말이야! 그 돈 빨리 찾아와야 해! 내가 좋은 집 발견하기만 하면 바로 사들일 거니까. 더는 시간을 끌기 싫어. 게다가 이번에 콩이가 넘어진 후 더 마음이 급해졌어. 좀 좋은 어린이집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영재 유치원 같은 곳 말이야.”신호연은 계속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더욱 눈치 없는 것처럼 굴었다. “왜 말이 없어? 내 말이 듣기 싫어?”신호연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럴 리가. 남편인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 돈은 내가 프로젝트에 일단 투자해 놨어. 많은 사람들이 연관 된 프로젝트라서 내가 급한 마음에 그 돈을 써버렸네. 회사가 이렇게 잘 굴러가고 있는데 우리가 집을 살 돈이 없겠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당신은 신경 쓰지 마.”신호연은 환하게 웃으며 내 코를 부드럽게 눌렀다. 그 웃음은 가식적인 웃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의 식사는 동상이몽이었다. 나는 그 돈이 정말 아까웠다. 빨리 돈의 행방을 알아내서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말하기 전에 가져와야 한다. 사무실에 돌아온 나는 이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서강훈의 사진을 보내 그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다. 신호연은 요 며칠 몸을 사리고 있을 테니.온 오후, 나는 착실하게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신호연이 나를 위해 준비한 특별한 자료를 보았다. 나는 신호연이 나를 배신하게 만든 그 여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연은 요 며칠동안 정상적으로 출퇴근을 했고 서강훈은 자주 회사를 드나들었다. 신호연이 이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면 불륜녀도 조용히 집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월요일 아침, 나는 신호연과 함께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같이 회사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내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외투를 벗고 휴대폰을 들어 스크
“공유해 드릴게요! 진짜 대단하거든요!”짧은 몇 마디가 사람을 절망 속으로 빠지게 만든다. 불륜녀가 말하는 “대단”한 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나는 그만 화가 나서 휴대폰을 바닥에 꽂을 뻔했다. 크게 심호흡하며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참고 있었다. 이건 분명한 도발이었다!감히 내 앞에서 도발하고 있었다! 나는 이를 뿌득뿌득 갈다가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휴대폰을 들고 내 가방을 챙긴 후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미연을 보자마자 나는 억울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의 품속에서 엉엉 울었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는 것인지. 조금도 마음이 편안한 날이 없었다. 이미연은 사진을 확인한 후 화가 나서 소리를 몇 번 지르고 주먹을 가만두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억울함을 공감해 주었다. “진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미친 거 아니야? 완전 미친 게 틀림없어!”우리 둘 다 진정한 후 나는 이미연에게 얘기했다. “절대 이대로 넘어가지 않아. 이건 분명히 나를 화나게 만들려는 거야. 우리는 아직 불륜녀의 정체를 모르니까 불리해. 불륜녀가 이런 짓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어. 아니면 불륜녀가 감히 내 앞에 나타나기라도 할 건가? 어차피 내 앞에 당당히 나서지도 못하잖아!”“그래, 맞아. 에휴... 진짜, 요즘 불륜녀는 이렇게 막 나가니? 창피함이라는 건 모르고 사나 봐?”이미연은 또 화가 치밀어 올라서 욕을 퍼부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우리랑 친한 사람일 거야. 내가 이미 회사로 출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일 거야. 내가 신호연과 떨어지지 않고 다니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거지!”이건 나의 예감이었다. 이미연은 내 옆에 앉아 얘기했다. “지아야, 계속 이렇게 냉정함을 유지하면 좋을 것 같아. 네 말이 맞아. 난 우리 둘과 우리의 조력자들까지 합심해서 꼭 그 불륜녀를 찾아낼 거야! 지금은 불륜녀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갔다는 게 문제야. 곧 네 앞에 나타
꼬리가 길면 밟힌다더니, 마침내 서강훈의 꼬리도 드러나게 되었다. 이미연이 나한테 이 일을 얘기해 줄 때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서강훈이 매일 드나드는 곳은 바로 골드 빌리지였다. 골드 빌리지는 금방 개발된 작은 별장이었다.그러자 나는 바로 그 열쇠가 떠올랐다. 어떠한 실마리도 없던 그 열쇠가 혹시 골드 빌리지와 연관이 있는 건가? 가슴 속에 큰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답답했다.오랜 시간 동안 같이 역경을 이겨내고 고생하면서 콩이한테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자고, 좋은 학구의 집으로 이사 가자고 몇 번이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신호연은 자꾸만 화제를 돌리고 시간을 끌면서 집을 사지 않았다. 그러고는 골드 빌리지에 작은 별장을 샀다.바람을 피운 신호연의 행동은 그에 대한 내 생각을 계속 뒤엎고 있었다. 신호연은 실수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쓰레기였다.위치를 확인한 나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이미연이 사람을 시켜 관찰하게 했다. 그 집에 사람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이미연이 나한테 연락해 빨리 오라고 했다.나는 아무 핑계나 대고 빨리 골드 빌리지로 가 이미연을 따라 그 별장에 도착했다. 아담한 별장이었지만 곳곳에 디테일을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그런 별장을 눈앞에 둔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입구에 선 채 숨을 가다듬었고 이미연은 계속해서 신호연의 욕을 했다. 열쇠를 꺼낸 나의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열쇠를 문에 꽂자 문이 열렸다. 나는 열린 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미연이 나를 당겨서 들어가지 않았으면 나는 계속 그곳에 서 있었을 것이다. 내가 꿈에 그리던 골드 빌리지. 내 돈으로 사들인 골드 빌리지가 왜 나에게 사주는 것이 아닌가. “그 돈을 여기에 쓴 거구나. 나도 참 바보 같지. 내 눈앞에서 이렇게 큰일이 일어났는데 난 아무것도 몰랐으니까!”내가 담담하게 얘기했다.“화내지 마, 지아야.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잖아. 신호연 그놈, 언젠가는 이런 일을 벌일 놈이었어! 그냥 네 운이 안 좋았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