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까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성주지역 수석변호사로서 임윤호가 지금까지 의지해온 것은 임씨 가문의 법조계에서의 인맥뿐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갈고 닦은 실력, 그리고 그의 막무가내식 모진 일처리 태도였다.소송에서 이기고 사건을 뒤집으려면 때로는 불가피하게 비상수단을 써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임수해가 여러 경로로 아람에게 휴가를 요청했을 때 아람은 임수해가 억지로라도 쉬도록 며칠가량의 휴가를 주었다.사실 아람은 임수해에게 준 이번 휴가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임수해를 진정으로 쉬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임수해가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아람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할지를 자기 스스로 정하도록 하는 것이었다.곧이어 안나 조의 삼고초려의 부탁으로 알렉스를 뒷배로 둔 아람이 결국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안나 조는 당당한 국제적인 스타였지만 아람 앞에서는 어떤 허세도 없이 찻물을 따르고, 자존심도 없는 아부만 하려던 참이었다.아람 역시 계속해서 안나 조를 곤란하게 할 의도는 아니었다. 비록 그녀가 알렉스 소속이기는 하나 아람 역시 장사꾼이다. 한순간의 욱하는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으며, 호텔의 인지도를 높이고 돈을 버는 것이 장사꾼의 정도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그래서 아람은 안나 조의 결혼식 진행 업무를 이어받기로 결정했다.안나 조는 그 자리에서 기뻐 어쩔 줄 몰랐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마가 땅에 닿도록 연신 절을 할 지경이었다.이뿐만 아니라 안나 조는 예산을 충분히 편성할 것이고, 그동안의 손해를 메꾸기 위해 KS 그룹 제품에 홍보대사가 필요한 경우 무료로 그 플랫폼의 광고모델로 서겠다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구 사장님, 이, 이것은 도대체…….”안나 조는 눈앞의 한 서류를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아람은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당신의 새 결혼식 기획안.”안나 조와 매니저는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이렇게나 빨리?”새로운 기획안을 깜짝 놀랄만한 속도
“내가 결혼하는 거야, 아니면 네가 결혼하는 거야? 구 사장님과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왜 예의 없이 끼어들어?”안나 조는 매니저를 차갑게 째려보았다.“구 사장님과 협력하기로 한 이상, 절대적으로 믿을 거야. 사장님의 모든 제안을 다 받아들일 테니, 넌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마!”……계약을 다시 체결하고 아람은 사람을 보내 안나 조 일행을 배웅하고 팀원들에게 최신 업무를 전달한 후에야 퇴근을 했다.나가자마자 구윤의 롤스로이스가 보였고, 기사는 이미 공손하고 문을 열어주었다.“오빠! 오늘 한가하나 보네? 데리러까지 오고.”아람은 차에 타자마자 구윤의 목을 끌어안고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수해에게 휴가를 주었다며?”구윤은 다정하게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었다.“응, 요즘 너무 피곤해서 휴식이 필요해.”“정말 그런 거야?”구윤은 그녀의 생각을 눈치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요즘 일이 많아서 도움이 필요한 시기인데. 이 중요한 시기에 수해에게 휴가를 준 건 무슨 뜻이야? 싸웠어?”아람은 눈썹을 찌푸렸다.“말이 너무 이상하게 들리네.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왜 싸우겠어.”“수해는 그런 마음이 있는데 네가 거절하는 거 아니야?”“오빠, 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아람은 눈을 부릅떴다.“수해가 네게 마음이 있다는 걸 우린 이미 눈치챘어.”구윤은 담담하게 웃었다.“우리?”“민지 이모도 며칠 전에 나한테 얘기한 적 있어. 너랑 말하기 쑥스러워서 나한테 말했어.”‘참, 임수해 그 자식이 짝사랑하는 걸 들켜버렸네! 너무 민망하잖아…….’“수해가 그런 마음으로 네 곁에 있으면 일상생활에 영향줄까 봐 걱정하고 있어. 둘이 같이 지내고, 성주의 별장에 둘 밖에 없어서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네.”구윤은 의미심장하게 동생의 부드러운 손을 잡았다.민지 이모가 자신을 친딸로 생각해서 남녀 일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솔로 남녀가 같이 있을 때, 수해가 자신의 욕망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손찌검
사흘 동안 갇혀 있던 신효린은 마침내 나올 수 있었다.임윤호는 신광구에게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소식을 막아라고 했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신경주의 귀에 들어갔다.“신효린이 어떻게 풀려나올 수 있어? 고선정을 감시하라고 지시하지 않았어? 설마 임윤호가 찾아간 거야?”경주의 얼굴은 서리가 내려앉은 듯 차가웠다.“사장님, 고선정이 아니라…… 양준호예요!”한무는 화가 나서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듣기로는, 신 회장님이 도와주셨대요. 임윤호가 대리 변호사의 명의로 구치소에서 양준호와 비밀리에 만났어요.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양준호가 겁에 질려 잘못을 혼자 떠맡게 되었어요. 그래서 신효린이 풀려났어요.”“무슨 수를 썼겠어! 약점을 잡고 가족의 안전을 협박했겠지! 당당한 최우수 변호사가 저속한 수단만 쓰고 있네!”경주의 깊은 눈은 해일이 오기 전의 흑해처럼 어두웠고 힘껏 움켜쥔 주먹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임정운 판사님의 명예를 큰아들이 모두 무너뜨렸네!”“사장님, 지금 양준호가 희생양이 되었는데, 그럼 고선정은…….”한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무슨 일이야?”전화를 받자 눈썹을 찌푸리더니 전화를 끊은 후 급히 경주에게 보고했다.“사장님! 큰일 났어요! 방금 경찰이 명예 훼손과 위증의 혐의로 체포했다네요!”이것은 예상했던 결과이다.비록 고선정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지만, 경주는 여전히 화가 치밀어 올라 눈시울을 붉혔다.……한편, 신효린은 울며 불며 마치 다시 태어난 듯 관해 정원으로 돌아갔다.모녀는 신광구와 신남준 앞에서 부둥켜안고 통곡하며 애틋한 연기를 펼쳤다.배우를 했을 때 연기는 엉망이었지만, 지금은 경험이 많은 예술가와 같았다.“엄마! 아빠! 나 대신 복수해 줘! 이번에 구아람과 이소희 그 두 나쁜 여자에게 비참하게 당했어!”신효린은 할아버지가 곁에 있는 것을 보자, 이 틈을 타서 아람의 험담을 까려고 신회남의 휠체어를 향해 달려가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 “할아버지! 구아람이 저를 죽도록
진주도 옆에서 부채질하며 구아람을 사악하게 말했다.“구아람은 처음부터 구만복의 딸이라는 신분을 감추고 있었어요. 아버지 곁에 머무르면서 신뢰를 얻고 경주와 결혼까지 했어요!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 같지 않나요? 다행히 경주가 그 계집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제때에 이혼했네요. 만약 경주가 구아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완전히 통제되고, 아버지의 마음과 절대적인 신뢰까지 얻었다면, 서서히 신씨 그룹의 중심으로 올라와서 전체를 통제할 것 같지 않나요?”“그만해, 소아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신남준은 크게 손짓을 했지만 마음은 매우 우울했다.“난 구만복을 잘 알아. 비록 바람둥이지만 감정이 매우 깊은 품행이 단정한 사람이야. 절대 그런 인품이 낮은 딸로 키우지 않았을 거야.”“아버지!”“할아버지!”“더구나 구씨 가문의 집안과 재물은 신씨 그룹에 못지않아. 구아람이 그까짓 주식을 가지려고 평생 행복을 포기하겠어? 흥, 김씨 가문의 딸이 그런 견식이 없고 인품이 낮은 짓을 하면 마땅하지만, 구아람은 응석받이로 키운 딸이야. 절대 그런 저속한 행위를 하지 않을 거야!”신남준은 원래부터 아람을 편애했지만, 진주가 부추기는 것을 보자 더더욱 수양손녀의 편을 들어주었다.진주는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었다. ‘저 어르신의 휠체어를 확 차버리고 싶네!’“아버지, 어쨌든 구아람 씨는 신씨 그룹에게 악의가 너무 많아요!”신광구는 딸이 먼저 건드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신남준 앞에서 자식을 잘 못 가르쳤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불평하기 시작했다.“그룹 내부에 문제가 있더라도, 외부인인 구아람이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은 없어요. 여러 차례에 걸쳐 구씨 그룹의 세력으로 우리를 압박했어요. 진주 사건에서부터 이번에는 사소한 일로 효린이 감옥에 갇혔어요! 이런 방식으로 계속하면, 우리 신씨 그룹과 완전히 사이가 떨어질 것 같아요! 구씨 가문으로 돌아간 구아람이 이미 변했다는 생각은 해봤어요? 자신의 이익과 아버지의 감정 사이에서 망설임
경주가 우렁차게 말하고는 성큼성큼 떠났다.임윤호는 그 자리에 굳어졌고 온몸이 스산해지며 심한 모욕을 당한 것 같았다.법률 명문 출신인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큰 기대와 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 인생은 거의 순풍에 돛을 달 듯했고, 성주의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뛰어난 인물이다.세력이 대단한 재벌이라도 그를 모셔오려고 자세를 낮추었다.‘내가 언제 이런 모욕을 당했었어? 잠깐…….’임윤호는 눈썹을 찌푸리며 경주의 오만한 뒷모습을 돌아보았다.‘구아람과 대체 무슨 사이지? 늘 여자에게 관심 없던 신 사장님이 구아람을 위해 화를 내네?’임윤호는 구씨 가문 아가씨를 잘 알고 있었다. 여신 이자 구만복이 제일 아끼는 딸이고, 눈도 엄청 높아 세상의 저속한 남자들은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그럼…… 신경주 그 주제넘는 녀석이 짝사랑하는 건가? 잘생기고 능력이 있으면 뭐해? 어머니는 죽어서도 명분을 얻지 못했고, 사장 자리도 신씨 가문 큰 도련님의 구제잖아!’“허, 궁전에 산다 하여 무조건 왕자님인 건 아니잖아! 신경주, 그 천한 출신으로 감히 구씨 가문 아가씨를 좋아해? 꿈 꾸고 있네!”임윤호는 냉혹하고 사나운 눈빛으로 별장으로 들어갔다.……경주와 임윤호가 앞뒤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 사람들은 조금 놀란 듯했다.“아버지, 임윤호 변호사는 드문 인재예요. 임윤호 씨가 아니었다면 효린이는 쉽게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임 변호사가 큰 공을 세웠어요.”신광구는 어르신에게 임윤호를 열심히 소개해 주었다.“그래서 임 변호사를 우리 신씨 그룹의 법무부 부장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어떠세요?”“신 선생님, 안녕하세요, 말씀으로만 듣던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임윤호는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르게 신남준에게 인사했다.“임윤호…… 임정운의 장남이야?”신남준은 그를 훑어보며 정색했다.“네, 아버지가 바로 임정운입니다.”임윤호은 자부심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신 선생님께서 저희 아버지를 아십니까?”안색이 어두운 경주는 그들이 교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위
이 말속에 비꼬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알 수 있다.이것은 임윤호의 인품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는 것이다.신경주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고, 신광구와 진주의 표정도 점점 안 좋아졌다.“신 선생님!”이때, 서 비서가 황급히 들어와 공손하게 말했다.“구아람 씨가 도착했습니다.”경주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긴장한 듯 눈을 부릅떴다.사람들의 복잡한 시선은 약속이나 한 듯 문밖을 바라보았다.딱딱딱-하이힐의 날카로운 소리가 마치 경주의 마음을 밟는 것 같았다.아람이 혼자 3년 동안 살던 곳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갑고 고귀한 분위기는 마치 처음 이곳으로 온 것 같았다.순간, 경주의 시선은 황홀해졌다.이 느낌은 마치 아직 이혼하지 않은 것 같았다.“할아버지, 저 왔어요.”아람은 활짝 웃으며 반짝이는 눈을 깜박이며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경주 앞을 지날 때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마치 그들은 낯선 사람인 것 같았다.경주는 점점 숨이 막혔고 주먹을 천천히 움켜주었다. 심장도 심하게 허공에 부딪힌 것 같아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이혼 후 전처를 만날 때마다 잔인한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구아람……!”신효린은 아람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진주가 그녀를 말리지 않았더라면 이미 달려들어 가차 없이 때렸을 것이다.“에? 임윤호 오빠잖아요. 참 우연이네요.”인윤호 곁을 지날 때, 아람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활짝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임윤호는 물론,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오빠? 너무 다정하게 부르는 거 아니야? 단순한 사이가 아닌가?’“아가씨, 오랜만이네요.”임윤호는 억지로 웃으며 공식적인 호칭으로 불렀다.“그러네요. 아버지를 뵈러 오지 않은 지 이미 5, 4년 되었죠? 어르신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빠를 생각했었는데. 두 집안이 친분이 있잖아요. 어렸을 때 임씨 아저씨가 오빠와 수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자주 왔었는데. 최근에는 다니지 않아서 사이가 멀어졌네요.”아람은 웃음을 머금
구씨 가문 아가씨가 우렁차게 한 질문은 임윤호의 핑계를 내던지고 배은망덕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었다.‘구씨 가문과 관계를 끝내고 싶다며? 좋아, 그럼 난 꼭 그 말을 해야겠어. 들키고 싶지 않은 속셈을 끌어낼 거야!’임윤호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아람을 보는 눈빛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었고 심지어 싸늘했다.‘이게 임수해를 사랑에 빠지게 한 여자야? 교만하고 제멋 대로이고, 말에 가시가 돋쳤네. 이런 여자와 결혼하면 온 가족이 화목하게 보낼 수 있겠어? 아예 난장판으로 되겠지!’분위기는 답답하고 어색해졌다.신광구는 구아람이 마치 역신과 같다고 느꼈다. 매번 볼 때마다 반드시 풍파를 일으켰다.변호사로서의 임윤호의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구씨 가문과 이런 관계가 있는지 몰라 마음이 불편해졌다.“임 변호사와 구씨 가문이 이런 남모르는 과거가 있었네요.”신경주의 말은 임윤호에게 하고 있지만 그윽한 눈빛은 여전히 아람에게서 떠나지 않았다.“그러고 보니 구아람 씨가 은인의 딸이네요. 임 변호사께서 여러 번 구아람 씨와 맞서는 것이 보답하는 거예요?”아람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리며 그의 말을 혀를 내둘렀다.‘나 대신 나서는 거야? 가족들 앞에서 외부인의 편을 들어줘? 결혼했을 때도 편들어주지 않으면서, 갑자기 착한 척하는 건가? 미쳤구나.’이 말을 듣자 신남준는 눈썹을 찌푸렸다.“허, 구아람 씨 말씀대로 라면, 저희 임씨 가문이 구씨 가문의 도움을 받어서, 제가 변호사가 될 수 없단 말입니까?”임윤호는 비아냥거림을 받기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는 프로페셔널한 변호사입나다. 저에게는 의뢰인과 비의뢰인 두 가지 유형의 사람만 있습니다. 신효린 씨는 제 의뢰인이에요.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겠죠. 이건 비난받을 일이 아닌 거죠? 만약 구아람 씨가 저를 변호사로 초빙한다면, 저도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건 은혜를 갚든 안 갚든 별개입니다.”경주는 남자의 의기양양한
결국, 구아람이 입방아를 찧어 임윤호까지 패배해 신효린은 더 이상 수작을 부리지 못하고 진주의 뒤에 숨는 겁쟁이가 되었다.“할아버지!”아람은 신남준 곁에 다가가 수척해진 노인의 손을 잡으며 근심 가득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이 모습은 친손녀인 신효린보다 더 사이가 좋아 보였다.“이렇게 늦은 밤에 부른 건 어디 아파요?”“걱정 마, 할아버지 괜찮아.”신남준은 그녀의 맑은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손등을 툭툭 쳤다.“할아버지 괜찮아, 엄청 건강해.”아람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다행이네요.”“소아야, 할아버지가 널 부른 건 사실 별일 아니야. 널 보고 싶어서 그랬어. 그리고…… 너와 효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어. 왜 일이 커진 거야?”신남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너와 효린이는 모두 할아버지의 손녀야. 너희들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 매번 이렇게 큰일을 버리면, 너무 걱정되잖아.”하지만 아람은 그 뜻을 눈치챘다. 할아버지는 친손녀를 위해 좋은 말을 해주려는 거다.왠지 모르게 코끝이 징 해나며 울컥했다.‘아무리 잘해주어도 혈육은 이기지 못하나 봐…….’신남준이 말한 착한 손녀는 나쁜 마음을 품고 뒤통수를 치는 비겁한 사람이었다.“아버지, 효린이가 경찰서에 있었던 그 이틀은 정말 버티기 힘들었어요!”진주는 이 틈을 타서 흐느끼는 신효린을 끌어안고 울먹이며 하소연했다.“24시간 돌아가며 손녀를 심문했어요. 겁도 주고 욕도 해고, 잠도 못 자게 했어요! 봐봐요…… 아이를 얼마나 못되게 괴롭혔어요!”신효린은 확실히 많이 초췌해졌고 울상을 짓고 있어 더 불쌍해 보였다.이 큰 손녀를 어렸을 때부터 품에 안고 사랑을 주었었다. 비록 아람보다 훌륭하지 않고, 환심을 살 줄 모르고, 성인이 된 후 독립하여 신남주를 보러 온 적도 거의 없었다.하지만 신효린은 친손녀이다. 이런 연세가 든 노인은 결국 4대가 함께 모여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원한다.경주는 아람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지고 방금 보다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속으로 말
도현의 가벼운 말 한마디가 곧바로 분위기를 살벌하게 했다. 유희는 눈을 부릅뜨며 온몸의 신경이 예민하게 긴장했다. ‘유희 오빠는 효정이만 부를 수 있는 애칭인데, 이 자식이 갑자기 왜 이렇게 불러?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집까지 쳐들어왔어?’“오빠, 아직 안 갔어?”대치를 할 때 아람과 경주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 날카로운 아람은 두 남자가 상대하는 모습을 보자 의심하는 듯한 눈빛으로 봤다.“아, 내가 문을 못 열었어. 마침 유희 도련님이 돌아와서 문을 열어줬어. 지금 갈 거야.”도현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람을 향해 활짝 웃었다.“아람아, 오빠가 바쁜 일정을 마치면 같이 여행이나 가자. 맨날 같은 남자랑 붙어있지 마. 심심하잖아.”경주는 말문이 막혔다. 농담이라는 것을 알고, 친오빠라는 것도 알지만 질투하기 시작했다. 도현이 떠난 후에도 유희는 침착하지 못하고 경계했다. 집에 없는 동안 도현이 효정을 만났고, 교류가 있었다고 생각했다.“유희야,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경주는 걱정스럽게 물었다.“괜찮아.”유희는 답답한 듯 숨을 내쉬었다.“미안해. 내가 오빠보고 자료를 가져오라고 했어. 너한테 미리 말하지 못했네.”아람처럼 예리한 사람은 바로 유희의 마음을 알아채고 주동적으로 사과했다.“넌 경주랑 친구잖아. 하지만 여긴 너와 효정의 집이야. 우린 잠깐 있는 건데, 외부인을 들여보낸 건 확실히 실례였어. 다음부터 그러지 않을게.”경주는 깜짝 놀라 아람의 허리를 안고 급히 유희 대신 해명했다.“아람아,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유희가 그렇게 쪼잔한 사람은 아니야.”유희는 눈을 부릅뜨고 손을 흔들었다.“형수님, 그런 말을 하는 건 날 깎아내리는 거잖아. 네가 와서 지내는 건 나도 기쁘고 경주도 기뻐. 우리 와이프도 좋아해. 네가 온 후로 효정의 기분이 엄청 좋아. 말도 많아졌어. 너희들이 쭉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난 절대 반대하지 않아!”아람은 경주의 품에 안기며 다정하게 눈을 마주쳤다.“이렇게
“다른 건 다 괜찮아. 엄마가 뭘 원하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아람의 말에 좀 상처받았어.”구만복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불빛 아래 비추어진 처량한 속눈썹이 촉촉해졌다.“이 혼탁한 세상에서 나 말고 누가 도연을 잘 알겠어.”“구 회장님, 아가씨는 혈기 왕성해요. 예전에 많은 일을 경험하지 못해서 잘 모를 거예요.”기 비서는 한숨을 쉬었다.“나중에 사모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알 기회가 있다면, 아가씨도 회장님의 좋은 의도를 이해할 거예요.”...구만복을 배웅하고 정연은 효정을 위층으로 데려가 쉬게 했다. 아람, 경주 그리고 도현이 거식에 앉아 얘기를 했다.“아람아, 맹세해. 내가 말한 거 아니야!”도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맹세하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알아, 우리 구씨 가문 자식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경주에게 가장 적대적인 백진 오빠도 아빠를 이용해 우리에게 압박을 주지 않아. 그런 비겁한 짓을 하지 않을 거야.”아람은 눈을 가늘게 뜨며 가족을 무조건 믿었다. “그동안 계속 여기 살았는데, 소식을 알고 있었으면 아빠는 진작에 찾아왔어. 무조건 누가 말을 했어. 너희들이 잘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야!”도현은 의아한 듯 턱을 쓰다듬었다.“음, 누굴까.”“윤유성 그 나쁜 자식이겠지.”아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요즘 답답해서 경주에게 함께 산책하러 가자고 했었어. 성주에 윤유성의 사람이 많아. 우리의 행방을 발견하고 따라와서 아빠에게 일렀을 거야. 존재감을 드러낼 가능성이 엄청 커.”유성을 의심하는 건 점점 자연스러웠다. 유성은 아람의 마음속에서 이미 나쁜 사람으로 찍혔다.“젠장, 윤유성 그 자식이 그렇게 한가해? 소질이 없네.”도현은 혀를 차며 이를 악물었다.“상관없어. 그런 수단이 좋으면 쓰라고 해. 나랑 경주가 여기 있으면 아무렇지 않아.”아람은 경주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경주는 다정하게 바라보며 곁에 있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키스를 했다. 그녀는 키스해달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경주는 늘 적극적이었다.
저녁 식사는 놀랍도록 평화로웠다. 구만복과 아람은 마음이 통하여 아무도 서로를 불쾌하게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헐, 몰래 밥을 먹어?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돌아다니다 지친 도현은 배도 고파서 식탁으로 달려가 앉았다.“아람아, 넌 의리가 없네.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날 부르지 않아? 내가 많이 먹어도 구진 형보다 하겠어? 내가 네 밥을 뺏어 먹을까 봐 그래?”구만복과 아람은 도현을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아, 널 잊었네.”...저녁 식사를 마친 구만복은 떠날 준비를 했다. 아람은 계단에 서서 구만복과 기 비서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경주는 실례를 할까 봐 구만복을 차까지 배웅했다. 차에 타기 전 구만복의 훤칠한 몸은 갑자기 멈칫거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경주를 바라보았다.“득의양양하지 마. 오늘 밤 내가 남은 건 우리 딸이 보고 싶어서야. 아람과 오래 있고 싶어. 내가 널 인정하지 않았고, 용서하지도 않았어.” 경주는 자연스럽게 행동을 했지만 목은 쉬었고 씁쓸하게 느껴졌다.“알아요. 제가 너무 못난 거. 그래서 회장님의 용서를 바라지도 않았어요. 그저 저에게 아람에게 잘해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요. 전혀 아깝지 않아요.”구만복은 깜짝 놀라며 차갑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신경주, 네가 아람 앞에서 어떻게 하든 그건 네 일이야. 하지만 내 앞에서 깊은 애정이 있는 척할 필요 없어.”“난 가족 외에 누구한테도 차갑게 굴어. 네가 내 딸을 위해 목숨을 포기해도 싫어. 여전히 네가 싫어. 너희들 사이를 여전히 반대하고 있어. 결국 네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고, 그때 후회해도 소용이 없어.”“제 인생에서 후회되는 건 딱 한 가지예요.”경주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지며 입을 떨며 말했다.“처음부터 제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아람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거예요. 마지막까지 아람과 좋은 결과가 없어도 평생 지켜줄 거예요. 제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요.”구만복은 경주를 한
한 시간 동안 고생한 결과,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음식들이 만들어졌다. 간단한 요리는 괜찮지만 난의도가 올라가니 경주가 요리에 재능이 없다는 것이 보였다. 이것도 아람의 감독과 지도에 의해 만들어졌다. 경주 혼자 하면 아마 밤을 새울 것이다. 요리하느라 바쁜 경주는 이마에 땀이 맺혔고, 입고 있는 흰 셔츠도 땀에 푹 젖었다. 아람이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파 휴지로 땀을 닦아주며 입을 삐죽거렸다.“아빠 정말 짜증 나. 집에 셰프도 많고 능력자 연서 이모도 있어서 맛있는 음식을 가득 먹을 수 있는데, 꼭 남아서 사람을 괴롭혀?”“아람아, 구 회장님과 오랜만에 만나잖아. 그리고 너도 내가 만든 음식을 구 회장님께 드리고 싶다고 했잖아.”경주는 전혀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하는 아람과 함께 요리를 하는 순간을 즐겼다. 아람은 말을 잘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워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그건 화나서 한 말이야. 아빠는 내 뜻을 알지도 못해!”“괜찮아, 아람아.”경주는 긴 팔로 아람의 허리를 끌어안고 나지막하게 위로했다.“나도 구 회장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간단한 요리라도 좋아.”“잘 보이고 싶어?”아람은 경주의 몸에 밀착하며 코끝이 닿을락 말락 했다.“그 생각을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아빠는 고집이 세. 네가 아무리 잘 보여도 아빠는 투덜거릴 거야. 네가 잘 보일 이유도 없어. 우리 둘이 만나는 건 아빠의 의견이 필요 없어.”“켁.”구만복은 기침을 하며 두 사람의 말을 방해했다. 아람은 째려보았다.‘이 늙은이가 정말 흥을 깨네!’“허, 고생했네, 신 사장님. 아침을 차려 주는 줄 알았어.”구만복은 피식 웃더니 우아하게 앉았다.“허, 밥을 먹겠다는 건 아빠야. 강요한 사람이 없어.”아람은 비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경주는 나 말고 누구한테 직접 요리를 해준 적이 없어. 영광인 줄 알아. 투정 부리지 말고.”구만복은 말문이 막혔다. 경주도 눈썹을 찌푸리며 웃었다. 구만복과 아람의 말투와 분위기가 거울을 보는 것처럼
아람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앞치마를 경주에게 둘러주고 뒤로 돌아와 묶어주었다.“그런데 우리 아빠의 입은 그동안 연서 이모의 대접을 받아서 엄청 까다롭고 식탐이 많아.”경주는 침을 삼키고 심호흡을 했다.“걱정 마. 내가 옆에서 가르쳐줄게. 내 말대로 천천히 하면 맛이 없을 수가 없어.”경주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튼튼한 팔로 아람을 품으로 끌어당기며 이마에 키스를 했다.“명령대로 할게요. 우리 사령관님.”...“야야, 고기를 먼저 넣어야지, 순서가 틀렸어!”“야야! 식초를 너무 많이 넣었어!”“아, 타잖아. 빨리 뒤집어!”두 사람은 부엌에서 시끌벅적하게 요리를 하며 어수선했다. 구만복은 원래 거실에 앉아 눈을 감가 쉬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자 눈을 뜨고 저도 모르게 부엌을 바라보았다. 별장 1층에 있는 주방은 개방형 구조여서 거실과 거리는 멀지만 구만복의 위치에서 안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경주의 훤칠한 뒷모습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람은 옆에서 가르쳐주며 가끔 장난스럽게 엉덩이로 경주를 부딪치며 머리를 툭툭 치는 모습도 보였다. 경주는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람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웃었다.‘바보 같네. 아람은 도대체 신경주를 왜 좋아하는 거야!’구만복은 비록 여전히 분노로 가득 차 있었지만, 점차 부드러워진 시선은 아람과 경주에게서 뗄 수 없었다. 순간 화목한 가족 느낌이 들었다. 이런 편한 분위기와 단순한 행복이 바로 구만복이 그토록 추구하던 것이었다.“구 회장님, 아가씨를 보세요. 얼마나 행복하게 웃고 있어요. 아가씨가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시죠?”곁에 서 있는 기 비서는 흐뭇하게 웃었다.“흥, 당당한 나 구만복이 어떻게 이런 사랑만 모르는 딸을 낳았을까. 나중에 눈물을 흘릴 거야!”구만복은 화를 내며 중얼거렸다. 기 비서는 웃으며 타일렀다.“사랑에 빠지면 빠졌죠. 우리 아가씨의 능력과 미모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어요. 어마어마한 재산을 매일 KS 옥상에서 뿌려도 충분해요.
“정말이에요?”도현은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그러자 효정이 갈색 곰인형을 품에 안은 채 눈을 내리깔고 소심하고 도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도현은 다정하게 웃었다.“당연하지, 진심으로 얘기한 거야. 네가 그렸어?”“네.”효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엄청 신경을 썼겠네. 감정도 많이 표현된 것 같아. 많이 힘들었지?”“네, 괜찮아요. 무엇보다도 유희 오빠가 좋아하거든요.”유희를 언급하자 효정의 맑은 눈에는 달콤한 미소를 머금으며 얼굴이 붉어졌다.“유희 오빠가 너무 잘해줘요. 제가 오빠한테 줄 게 없어요. 그래서 그림을 선물했어요. 싫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요.”도현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랫동안 경찰로 일하면서 매일 어두운 세상에서 사회의 수많은 사악한 악마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이렇게 순수한 눈동자를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눈앞에 있는 효정은 먼지 하나 없는 밝은 달빛과 같아 순간 어두운 마음한 구석을 비춰주었다.“형사님?”도현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효정은 혼란스러운 듯 눈을 깜빡였다. 도현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입꼬리를 올렸다.“지난번 셋째 사모님 생일 연회에서 아람보고 새언니라고 불렀었지? 그럼 낯설게 굴지 말고 새언니처럼 날 오빠라고 불러.”“도현, 오빠?”효정도 얌전히 시키는 대로 불렀다.“도현 도련님. 효정 아가씨는 저희 도련님의 여자예요. 사적으로 사모님과 가깝게 지내는 건 아닌 것 같아요.”정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도현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재빨리 효정의 곁으로 다가가 유희를 도와 여자를 지켜주었다. 도현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담담하게 웃었다.“제가 무슨 실수를 해서 이렇게 경비하는지 모르겠네요. 왜요, 이유희의 여자가 되면 정상적인 소통을 할 권리도 없어요? 얘기를 나눈 남자는 죽어야 해요? 이건 집착이에요, 아니면 자신이 없는 거예요?”“너!”정연은 이를 악물며 분노가 눈에서 타오르듯 했다. 아람의 친오빠가 아니었다면 정연은 이미 뺨을 날렸을 것이다.“연이 언니.”효정은
거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서리처럼 차가워졌다. 도현은 구만복을 설득하지 못하고, 설득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느껴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정연도 효정을 데리고 갔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경주는 숨이 막혔다. 떨리는 손이 저도 모르게 아람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손을 움켜쥐며 동작을 멈추었다.‘아람아, 정말, 널 보내고 싶지 않아.’경주는 겁쟁이가 아니다.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고 미워하면 끝까지 미워하는 스타일이다. 아람에게 빚을 졌을 뿐만 아니라 구만복에게도 죄책감을 느꼈다. 3년간의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이나 아람이 잃어버린 아이도 모두 자신의 잘못 같았다. 자신이 구만복의 소중한 딸에게 상처를 주어 용서할 수없는 죄를 지은 것 같았다. 구만복이 욕설을 퍼붓고 다시 경주를 때려도 화가 풀릴 때까지 맞아줄 수 있었다.“아빠, 무슨 생각해.”아람은 피식 웃으며 단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내가 아빠의 말을 듣는다면 애초에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가출하지 않았어. 내 걱정은 하지 마.”“내가 이국땅을 떠돌며 방황하는 그 긴 세월 동안 아빠가 나를 찾지도 않았어. 그런데 이제 와서 내 행복을 망치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네.”경주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앞으로 다가가 불안에 가득 찬 눈으로 아람의 단호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구아람, 너!”구만복은 순간 화가 나서 안색이 창백해지며 숨을 헐떡였다.“지금 네 모습을 봐! 여전히 우리 구씨 가문의 아가씨야? 직접 마트에 가? 설마 그동안 네가 직접 요리를 했어? 신씨 가문에게 공짜로 3년 동안 일했는데, 아직도 모자라? 이게 네가 원하는 사랑이고, 원하는 삶이야?”구만복은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 사랑하는 여자의 유일한 딸은 사랑만 받고 자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억울함과 고생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신경주 저 나쁜 자식!’“아빠,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야. 평범한 인생.”아람의 마음에는 수많은 감정으로 치솟으며
“어? 어? 난 또 누군가 했네.”구만복은 아예 마음에 두지 않고 무거운 책임을 맡긴 듯 도현을 바라보았다.“결혼 얘기를 할 준비를 한다는 건 아직 안 했다는 거잖아. 도현아. 골키퍼가 있어도 골이 못 들어가는 건 아니야. 너 인마, 아직 기회 있어.”도현은 화가 나서 이마를 잡았다. 정말 쥐구멍을 찾아서 들어가고 싶었다. 말이 끝나자 날카롭고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정원에 서 있는 거야? 협박하러 왔어?”아람은 팔짱을 끼고 화를 내며 구만복을 노려보았다. 지금 아람의 감정과 마인드는 사랑에게 물들여져 진정되었다. 더 이상 구만복을 마주하는 것을 저항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비즈니스 거물인 구만복이 KS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압박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어젯밤 사랑을 나눈 후, 아람은 하얗고 부드러운 몸을 돌려 경주에게 밀착하며 촉촉한 입술을 만지며 다정하게 말했다.“경주야, 무슨 생각 해?”경주는 아람의 손가락을 가볍게 물고 큰 손으로 아람의 땀에 젖은 등을 다정하게 만졌다.“앞으로 또 어떤 장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어.”“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해?”아람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경주의 가슴에 기대었다.“실제 상황에 맞게 대책을 세우자는 거지. 우리가 함께라면 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어. 야, 지난번에 이미 한 번 물러섰는데, 이번에도 쫄보처럼 숨을 거야?”경주는 눈썹을 찌푸리며 다정하게 아람의 허리를 꼬집었다.“아람아, 내가 숨은 게 아니라 난 그냥.”“헤헤, 알아. 농담이야.”경주는 어이가 없었다.‘날 쫄보라고 놀려? 하긴, 내가 확실히 쫄보고 나쁜 남자였지. 사실을 얘기하고 있잖아.’“아무튼 이번 생에서는 죽음만이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어.”아람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삐진 것 같기도 하고 애교를 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경주는 눈시울이 촉촉해지며 아람과 깍지를 꼈다.“지금은 함께 모든 순간을 이겨내자. 죽어도 떨어지지 말자.”구만복은 며칠 동안 보지
구만복은 화가 나서 숨을 들이쉬며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정연은 웃음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구만복과 도현이 말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자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눌렀다.‘정말 자상한 아버지와 효자의 모습이네.’이때, 발걸음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효정은 찻잔을 들고 공손하게 구만복에게 걸어가 찻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아, 아저씨. 차 드세요.”착한 효정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붉어지는 얼굴을 보자 구만복은 효정을 너무 좋아했다. 그러자 다정하게 말했다.“어? 효정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 아람 언니 곁에 있어 주러 온 거야?”“저, 저, 네!”효정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유희와 동거 중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 그저 대충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아아, 그게 중요하지 않아!”구만복은 웃으며 효정을 곁으로 끌고 자세히 바라보았다.“아직 남자 친구 없지? 우리 막내아들은 어때? 둘이 성격이 다르고 나이도 비슷해서 잘 어울릴 거야.”“풋.”도현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마시고 있던 차를 뿜었다.“저, 저...”효정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불안한 마음에 손을 주물럭거리며 고운 피부가 모두 빨갛게 달아올랐다. 도현은 거칠고 험난한 삶을 살았지만, 형사로서 일반인을 뛰어넘는 관찰력으로 효정의 이상함을 예리하게 알아차렸다. 너무 내성적이고 심각한 사회적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효정이 입술을 깨물고 눈이 그렁그렁한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팠다. 도현은 눈썹을 찌푸리며 엄숙하게 말했다.“아버지, 먼 해문에서 성주까지 온 건 제 신붓감을 찾으러 온 거예요? 제가 몇 번 얘기했어요. 저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요. 결혼하기 싫어요!”구만복은 눈을 가늘게 떴다.“네가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되는 줄 알아? 네가 선택할 수 있으면 네 엄마 뱃속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했어!”“젠장.”도현은 하마터면 욕설을 퍼부을 뻔했다. 억지로 참자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위에 형이 네 명인데,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