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연은 속이 말이 아니었지만 계속 신무열의 방에 있으면 그가 화를 낼까 봐 바로 방에서 나왔다. 신무열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김혜연은 신무열 대신 법로 찾으러 갔다.법로는 눈시울이 붉어진 김혜연을 보더니 말했다.“무열이가 괴롭힌 거라면 내가 대신 혼내줄게.”다른 일은 몰라도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법로는 지금 이 위치까지 오르기까지 겪어보지 못한 것이 없었다. 오랫동안 신무열의 곁을 지켜온 김혜연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진작에 알고 있었다.감정이라는 것은 억지로 될 일이 아니었다.그것도 모자라 신무열은 늘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김혜연은 법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줄 몰랐는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말했다.“법로님, 저 좀 도와주면 안 돼요? 저 도련님을 정말 사랑해요... 도련님 곁에 여자도 없는데 제가 평생 옆을 지키면서 내조해 드릴게요.”어쩔 수 없이 법로한테 도움 청하러 온 김혜연은 울먹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쭉 신무열을 사랑했었다.전에 고백하지 못했던 이유는 신무열의 곁에 있을 자격이 없을까 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모든 노력을 다했다.겨우 고백할 용기와 기회가 생겨 고백했거늘 신무열이 거절할 줄 몰랐다.김혜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나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김혜연은 심지어 눈치없이 온지유한테 상처를 줘서 그런거라면 사과할 마음도 있었다.법로를 찾아온 것은 그저 신무열과 단둘이 있을 기회를 얻고 싶어서였다.그런데 법로가 이런 태도일 줄은 몰랐다.“김혜연, 너희 아버지가 Y 국에 큰 공헌을 하셔서 나도 너를 잘 챙겨주려고 했어. 다른 일이라면 도와줄 수 있지만 이 부분은 나도 어쩔 수 없어.”법로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전에 신무열한테 소개팅을 주선하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는데 신무열이 극구 싫다고 해서 다시는 물어본 적이 없었다.만약 신무열도 김혜연을 좋아한다면 그녀가 자기한테 도움을 청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온지유와 여이현을 통해 중간에서
온지유는 그제야 깨닫고 여이현의 손을 잡았다.“체내에 독이 아직 남아있는 거예요?”“미안해...”여이현의 힘없는 목소리에 온지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저는 이현 씨한테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저희 이만 돌아가요!”온지유는 여이현을 데리고 다시 브람을 만나러 가고 싶었다. 여이현한테 아무런 이상이 없어 법로가 체내에 있는 독을 깔끔히 처리한 줄 알았다.그런데 여이현이 참고 있었을 줄이야...온지유는 너무나도 괴로웠다.그런데 여이현이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면서 고개를 흔드는 것이다. 온지유가 지금 당장 브람 찾으러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다만 브람이 만약 해독제를 줄 마음이 있었다면 아무 말 없이 보내주지 않았을 것이다.“순순히 줄 마음이 없을 거야. 우리랑 협상하려고 할 거라고. 난 그 사람이랑 협상하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내가 죽게 내버려 두진 않을 거야.”여이현은 온지유의 손을 꽉 잡고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그는 온지유가 자기 때문에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반대로 온지유는 여이현이 무사하기만 하다면 무슨 짓이든 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여이현이 자신을 위해 목숨마저 내바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이현 씨가 죽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면 왜 떠날 때 해독제를 주지 않았는데요.”브람은 사실 여이현이 돌아와서 비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지금 찾아가봤자 해독제를 주지 않을 거야. 지유야, 우리 이만 돌아가. 아버님이 별이를 치료해 주고 있잖아.”Y 국에는 법로 말고도 인명진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독제를 구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온지유는 여이현을 이해했지만 한 번이고 두 번이고 시도해 보는 것보다 차라리 브람을 찾는 것이 더 빠르다고 생각했다.다음 순간, 여이현은 온지유를 품에 안고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해 주었다.“괜히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널 혼자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했잖아. 일단... 별이 찾으러 가. 우리를 보고 싶어 할 거야.”“그래요..
온지유와 여이현은 Y 국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이었다.뒷좌석에 앉아있던 온지유는 수시로 여이현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상태가 너무 나쁘지는 않았다.가는 도중에 누군가 길을 막길래 여이현은 직감적으로 브람이 시킨 짓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온지유더러 차 안에 있으라고 했다.“내가 내려가서 확인해 볼게. 상황이 안 좋으면 기사님더러 가던 길 계속 가라고 해. 네 예상이 맞았어. 무조건 Y 국에 남아있어야 했어.”만약 브람이 국제포럼 반응을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여이현은 온지유와 별이의 안전을 위해서 이곳에 남아있기로 했다.그런데 온지유가 확신에 찬 모습으로 고개를 흔드는 것이다.“저한테 무슨 일이 있든 제 옆에 있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저 보고 떠나라고요? 안 돼요. 이현 씨, 약속 꼭 지켜요.”온지유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 한 대가 앞을 막았다. 그 뒤에 있는 여러 대의 차량은 가까이 오지 않았고, 오히려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여이현의 표정은 확 어두워지고 말았다.그런데 차에서 한 사람만 내리는 것이다. 여이현은 그가 브람의 보디가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고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다행히도 보디가드는 무기를 휴대하고 있지 않았다.보디가드는 성큼성큼 걸어와 차 옆에 멈추더니 공손하게 인사했다.“도련님, 대통령님께서 해독제를 보내오라고 하셔서요.”온지유와 여이현은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떠날 때까지도 해독제를 줄 생각을 하지 않더니 보디가드한테 해독제를 보내주라고 했다고? 무조건 꿍꿍이가 있을 거야.’보디가드는 굳게 닫힌 문을 보고, 또 꼼짝하지도 않는 여이현의 모습을 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도련님, 지금 전 세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대통령님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만약 대통령님께서 언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면 S 국에서 바로 처리했겠죠. 도련님한테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면 저만 보내지 않았겠죠. 정말 못 믿으시겠으면 이 해독제의 성분을 확인해 보시든가요.”보디가드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여이현과
호텔 바닥은 아수라장이었다.잠에서 깬 지유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지유는 미간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커다란 몸집을 가진 남자가 옆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조각과도 같았고 눈매도 깊고 진했다.아직 깊은 잠이 들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지유가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그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렸고 뽀얗고 매혹적인 두 어깨에 어젯밤 남긴 흔적이 보였다.지유가 앉았던 자리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시간을 보니 어느새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유는 바닥에 널브러진 출근룩을 다시 집어 들어 얼른 갈아입었다.스타킹은 이미 남자에 의해 찢겨 있었다.지유는 스타킹을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하이힐을 신었다.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깔끔하게 차려입은 지유는 어느새 워커홀릭 비서로 완전히 돌아왔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들어온 사람은 청순한 미녀였다.지유가 부른 사람이었다.이현의 취향이 이런 여자였다.지유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침대에 누워서 대표님 깨나길 기다리면 돼요. 다른 건 한마디도 하지 마요.”지유는 고개를 돌려 아직 단잠에 빠진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억울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방에서 나왔다.지유는 두 사람이 어젯밤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현이 아는 게 싫었다.그들 사이에 계약에 의하면 아무도 모르게 3년간 결혼을 유지하면 바로 이혼할 수 있었다.이 기간에 선을 넘는 행동은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지유는 7년째 이현의 비서로, 3년째 이현의 와이프로 있었다.졸업한 그날부터 이현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같은 날, 이현은 지유에게 두 사람은 그저 상사와 부하의 관계일 뿐 이 관계를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지유는 복도 창가에 서서 어제 일을 떠올렸다. 이현은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워 ‘승아’라는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지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승아는 이현의 첫사랑이었다.이현은 지유를 승
이에 지유가 화들짝 놀라며 하마터면 발을 삐끗할 뻔했다.중심을 잘 잡지 못한 지유는 그렇게 이현의 몸에 기댔다.이현은 지유의 몸이 앞으로 쏠리자 손으로 지유의 허리를 잡아줬다.뜨거운 체온이 전해지자 지유는 어젯밤 그가 저돌적으로 그녀를 덮치던 화면이 떠올랐다.지유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고개를 들어 이현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 봤다.이현의 눈동자는 매우 진지했고 그 속엔 질문과 의혹도 담겨 있었다. 눈빛은 지유를 뚫어버릴 것만 같았다.지유는 심장이 벌렁거렸다.이현과 더는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아까 나간 그 여자라고 생각했을 때도 이현은 불같이 화를 냈는데 여기서 만약 지유가 자신이었음을 인정한다면 후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아니라고 하기엔 억울했다.만약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라는 걸 이현이 알게 된다면 결혼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그래도 지유는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게 겁나 고개를 숙인 채로 물어봤다.“그건 왜 묻는 거예요?”지유는 사실 남몰래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이현이 코웃음을 치더니 이렇게 말했다.“너는 그런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지유는 멈칫하더니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어쩌면 이현은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가 아니길 더 바랄지도 모른다. 계약 결혼일뿐이니 말이다.게다가 며칠만 더 지나면 계약도 끝나간다순간 이현이 지유의 손을 힘껏 낚아챘다.지유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이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심사하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지유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발버둥 치며 손을 빼려 했지만 이현이 지유를 전신 거울 앞으로 바짝 몰아갔다.“뭐 하는 거예요?”지유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긴장과 두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너 정말 사무실에서 잠들었어?”지유는 칠흑같이 어두운 이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혹시나 들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3년 전, 결혼한 첫날 밤, 지유는
고개를 들어보니 승아가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 국자를 들고 있었다.지유를 본 승아는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다시 부드럽게 인사했다.“아주머니 손님이에요? 마침 삼계탕을 조금 더 끓였는데 같이 와서 먹어볼래요?”승아의 느긋한 태도는 마치 그녀가 이곳의 안주인인 것 같았다.오히려 지유가 멀리서 찾아온 손님처럼 보였다.하긴 얼마 지나지 않아 지유는 곧 이 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된다.지유는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 미간이 찌푸려졌다.이현과 결혼할 때 모든 사람에게 알렸고 승아도 축복을 보내왔기에 지유가 이현의 와이프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승아는 지유가 문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자 얼른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왔으면 손님이죠. 얼른 들어와요.”승아가 가까이 다가오자 옅은 재스민 향이 풍겨왔다. 이현은 작년 생일에 지유에게 똑같은 향수를 선물했다.지유는 목구멍이 점점 메어와 숨쉬기가 힘들었고 다리가 천근만근인 듯 움직이기 힘들었다.여진숙은 지유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자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유야, 여기 서서 뭐 하는 거야? 손님이 왔으면 차라도 내와야지.”지유는 승아와 겨뤄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물었다.“어머님, 승아 씨가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예요?”여진숙이 답했다.“승아도 오랜만에 귀국했으니 한 번쯤은 나 보러 와야 할 거 아니니? 왜? 승아가 우리 집에 오면 안 돼? 현이도 뭐라 안 하는데 네가 뭐라고 시비야?”“그런 뜻 아니에요.”지유가 고개를 푹 숙였다.“아, 지유 언니였구나. 이현 오빠가 결혼사진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 못 알아봤네요. 기분 상했다면 죄송해요.”지유는 환하게 웃는 승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허.’하긴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여자에게 다른 여자와 결혼한 사진을 보여줄 리가 없지.이때 여진숙이 호통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얼른 승아한테 차를 내주지 않고 뭐 해?”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놓은 주전자를 들었다.승아는 여진숙과 웃고 떠들며
“지유 언니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다면서 오기 싫다고 해서 내가 올 수밖에 없었어요.”승아는 얼른 손에 난 덴 자국을 일부러 보여주며 말했다.“오빠도 지유 언니 너무 미워하지 마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일을 그르친 건 아니죠?”지유가 회사의 서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이현은 안색이 너무 어두웠지만 승아 앞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넥타이를 살짝 풀며 덤덤하게 말했다.“아니야.”이현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왔으니 앉아.”이현의 말에 승아는 내심 기뻤다. 그녀를 받아준다는 건 그래도 미워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회의하러 간다면서요? 내가 방해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이현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이렇게 말했다.“회의 시간 뒤로 30분 미루세요.”승아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에 인사도 없이 떠나서 혹시나 이현이 원망하면 어쩌지 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메꾸면 된다.소파에 앉은 승아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해명하려 했다.“오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그때 내가 인사도 없이 떠난 거 잘못한 거 알아요. 근데 지금은 다시 돌아왔으니까...”“먼저 일 처리 좀 할게.”이현이 승아의 말을 잘라버렸다.승아는 하려던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바빠 보이는 이현의 모습에 승아는 별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오빠 일 끝나는 거 기다릴게.”승아는 방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은 반 시간 중 얼마나 더 앉아 있어야 마주 보고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약간 이현의 속내를 맞히기 어려웠다.진호가 안으로 들어와서야 이현은 하던 일을 멈췄다.이현이 걸어오자 승아가 웃으며 말했다.“오빠, 나...”“손은 아직도 아파?”그녀의 상처를 발견했다는 건 그녀를 걱정한다는 걸까?승아가 잽싸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이제 안 아파요.”“응.”이현이 가볍게 대답하더니 진호의 손에서 한약을 받아왔다.“귀국해서 계속 속이 안 좋다며, 목
지유는 걸음을 멈췄다. 이현과는 부부 관계에서 오는 조화로움보다는 위계질서에서 오는 거리감이 더 컸다.“대표님, 지시 사항 있으신가요?”이현이 고개를 돌리더니 거리감이 느껴지는 지유의 얼굴을 보며 명령조로 말했다.“앉아.”지유는 이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다.이현이 지유 쪽으로 걸어갔다.지유는 자신과 가까워지는 이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순간 이현이 어딘가 달라 보였고 이에 지유는 숨이 가빠졌다.긴장하기도 하면서 어딘가 이상했다.그녀가 딱히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이현이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현의 따듯한 손이 지유의 몸에 닿자 그녀는 마치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얼른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이현이 너무 꽉 잡고 있어 빼려고 해도 뺄 수가 없었다. 이현은 지유를 확 끌어당기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손 다쳤잖아, 몰랐어?”이현의 관심이 지유는 퍽 의외였다.“난... 괜찮아요.”“수포까지 났어.”이현이 물었다.“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은 거야?”이현이 큰 손으로 그녀의 상처를 살폈다. 지유는 그런 이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유는 이현의 손을 잡고 그가 따듯함으로 그녀를 이끌어주기를 바랐다.하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지유가 포기하려 할 때마다 이현은 다시 희망을 주었다.“큰일 아니에요. 며칠이면 나아요.”지유가 대답했다.“연고 좀 가져오라고 할게.”지유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몇 년의 기다림 끝에 이제 좀 보상받는 것 같았다.하지만 지유는 이성적이었다. 이현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이현은 연고를 가져와 그녀의 상처에 발라줬다. 지유는 그녀의 앞에 쪼그리고 앉은 어딘가 조심스러워 보이는 이현에 혹시 자신도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상처가 나니 그래도 눈길을 주는 이현이었다.7년이나 옆을 지키면서 극진하게 챙겨주기보다 차라리 조그마한 상처를 내는 게 그의 이목을 끄는 데에는 더 낫겠다는 우스운 생각까지 들었다.다친 게 아깝지 않았다.하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