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한테 왜 설명해줘야 하지?”김혜연은 순간 심장이 조여왔다.그녀와 신무열은 확실히 아무 사이도 아니었기에 신무열도 사사건건 그녀에게 설명해줄 필요가 없었다.마음이 괴로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김혜연은 그를 보았다. 두 눈에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저도 알아요. 도련님께 이런 질문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걸요. 하지만... 하지만 저는 정말로 도련님이랑 잘 되고 싶어요. 만약 정말로 그런 거라면 제가 도련님을 도와줄 수 있는 거잖아요.”두 사람은 가짜 결혼을 올려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다.사람과 사람이 한 공간에서 같이 살다 보면 언젠가 그가 그녀에게 마음이 생겨날 거로 생각했다.그녀는 굳게 믿었고 언젠가 그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리라 다짐했다.그러나 신무열은 차갑게 픽 웃었다.“넌 네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군.”그는 고개를 돌렸다. 더는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았다.심지어 그는 김혜연을 공기 취급했다.김혜연은 이곳에서 그를 도와주려고 해도 도와줄 수 없었다.결국 그저 그가 죽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신무열은 따끈한 죽을 그릇에 담아 별이에게 갔다.별이는 힘없이 누워있었고 안색이 창백했다.신무열을 본 순간 아이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삼... 촌... 우리... 엄마...는요?”아주 느릿하게 물었다. 검게 빛나는 두 눈빛에선 기대가 가득했다.신무열은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예전에 별이가 온지유의 아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는 행여나 온지유에게 부담이라도 줄까 봐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낼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마음이 괴로웠다.이 어린아이가 대체 얼마나 더 아파야 한단 말인가?신무열은 죽을 뜬 후 후후 불었다.“엄마랑 아빠는 지금 일하고 있어. 이따가 삼촌이 문자를 보내 볼게. 내일, 내일 별이랑 전화 통화 해줘도 돼?”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신무열은 별이를 아주 세심하게 간호했다. 하지만 김혜연은 그보다 더 정성스럽게 간호해주었다.김
김혜연의 붉게 물든 눈가는 다소 슬퍼 보이기도 했다.그녀는 신무열은 오랫동안 짝사랑했던지라 가슴이 너무도 아팠다.김혜연은 자신이 신무열에게 고백하면 신무열이 어느 정도 그간 그녀의 행동에 감동을 받아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신무열의 마음을 얻을 거라 생각했지만 전부 그녀의 착각이었다.신무열은 날이 갈수록 그녀에게 차갑게 대했다.서늘함이 맴도는 그의 까만 두 눈은 그녀를 증오하는 것 같기도 했다.“만약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거라면 내가... 어떤 짓을 하든 후회하지나 마.”신무열은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지금 이 순간 정말로 살기가 생겨났다.싫어하는 사람이 자꾸만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며 눈치 없이 굴지 않는가.그는 절대 김혜연이 여자라서 봐줄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충분히 봐주고 있는 것이었으니까.김혜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신무열이 이런 위협까지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할 말이 더 있었지만 신무열이 몸을 돌린 탓에 더는 할 수 없었다.그녀는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안돼! 이렇게 포기할 수 없어. 포기하란다고 포기하면 그동안 노력한 게 뭐가 돼!'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녀가 더 노력하면 언젠가 신무열이 자신의 진심을 받아주리라 생각했다.한편 신무열은 김혜연을 두고 나온 후로 다시 별이의 곁으로 돌아왔다.별이는 그가 혼자 돌아오자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나이가 어리긴 했지만 별이는 사실 아는 것이 많았다.김혜연이 자신에게 잘해주고 신무열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다만 별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법로가 먼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별이도 아는 걸 네가 모르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신무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당연히 법로가 한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정말로 김혜연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런 일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평생을 보낼 생각도
그렇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위협을 받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그들에게 엎드려 절하며 비위를 맞춰주려 했을 것이다.온지유는 아이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대며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별아. 엄마가 왔어...”“괜찮아요, 엄마...”별이는 느릿하게 말했다. 아이의 두 눈은 밝게 빛나고 있어 마치 밤하늘에 뜬 별 같기도 했다.아이가 온지유를 엄청 좋아했고 평생 온지유의 곁에만 붙어 있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온지유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여이현도 돌아오지 않았는가.별이는 손을 뻗어 온지유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대부분 아이들은 토실토실했지만 별이는 아니었다. 야위었을 뿐 아니라 손에는 살집이 없었다.그녀는 여이현이 구해온 약이 떠올라 얼른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얼른, 얼른 그 약을 아버지한테 드려. 정말로 해독제가 맞는지 확인해야겠어.”만약 해독제가 맞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아니라면 브람에게 속은 것으로 치면 된다. 잃은 것은 없었으니까.다만 약물을 검사한 뒤 얼른 여이현을 치료해야 했다.여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순간 그는 온지유와 별이게게 다가갔다.온지유의 어깨를 꽉 잡더니 별이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별아, 괜찮을 거야. 그냥 감기 걸린 거니까 아빠 금방 다녀올게.”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이현은 또 온지유의 어깨를 토닥인 후 걸음을 옮겼다.그가 법로에게 해독제를 건네자마자 법로는 바로 성분을 검사했다.법로 뿐이 아니라 인명진도 도왔다.다행히 그 약은 해독제가 맞았다.여이현은 해독제가 맞는다는 소식을 들은 후 빠르게 먹어보았다.그리고 빠른 속도로 온지유를 찾아갔다.인명진은 당황한 얼굴로 서 있었다.그러자 법로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그는 줄곧 인명진을 관찰했다. 행여나 무슨 수를 쓸까 봐 말이다.그런데 인명진은 얌전했을 뿐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인명진이 어떻게 법로가 한 말의 의미를 모르겠는가.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
순간 분위기는 조용해졌다.덩치 큰 남자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 술도 확 깨는 기분이었다.“네가 신무열이냐?”신무열은 그와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고 싶지 않아 바로 총을 들어 쐈다. 총알은 덩치 큰 남자를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갔다. 남자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소리를 질렀다.“다들 뭘 멍하니 서 있어? 얼른 죽여!”그러나 신무열 옆에 있던 요한이 뭔가를 던졌던지라 그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두려움에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덩치 큰 남자는 점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이를 빠득 갈았다. 최대한 신무열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면서 신무열을 향해 총을 겨눴다.이내 남자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눈엣가시인 신무열을 드디어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을 굳이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으니 반드시 지옥으로 보내주리라 생각했다.요한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때 누군가 신무열의 앞으로 확 나타나 총알을 대신 맞아주었다. 피가 사방에 튀었다.김혜연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신무열은 얼른 손을 뻗어 그녀를 잡아주었으나 덩치 큰 남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 한 발 더 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신무열을 보았다. 다소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신무열의 품에서 죽는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만족감이 느꺄쟜다.신무열은 있는 힘껏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김혜연, 이 멍청한 여자야! 내가 언제 죽으라고 허락했는데! 죽지 마, 내 허락 없이는 죽지 말라고! 이렇게 죽으면 내가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난 절대 널 그리워하지도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꿈 깨! 죽지 마!”신무열은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김혜연에게 분명하게 말했었으나 김혜연은 그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김혜연은 그의 품에 안겨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죽게 되면 그는 나중에 김씨 가문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이 빚을 또 어떻게 갚아야 할까?김혜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신무열은 아주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입은 일자로 꾹 다물었다.잘생긴 그의 얼굴엔 안개가 낀 것처럼 마음이 복잡해 보였다.“내가...”“아니요. 필요 없습니다.”법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신무열이 말했다.신무열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감정은 제 앞길만 막을 뿐이에요. 더구나... 저는 지금 상태로 평범한 사람처럼 지낼 수 없죠.”가정을 꾸리고 직장에서 자리를 잡아 아내와 아이들과 행복하게 사는 삶은 대부분 사람에겐 아주 쉬운 일이었다.그러나 그는...어깨엔 Y 국을 향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었고 지금 그는 나라와 결혼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기에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며 가정을 꾸릴 시간이 없었다.제일 중요한 이유는... 그의 어머니였다.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 법로는 피폐한 나날을 보냈었다.물론 법로의 곁에 새로운 여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그 여자들에게선 어머니의 그림자들이 보였다.그의 어머니는 희생을 당한 것이다.그는 지금 Y 국의 수장이 되었다. 그 말인즉슨 아버지인 법로와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이었다.이런 신분으로 나라도 지키면서 행복한 가정을 동시에 꾸려나갈 수 없었다.그러니 차라리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 것이 나았다.그렇다면 그의 아이가 그와 같은 길을 걸을 리가 없을 테니까.법로는 확고한 신무열의 눈빛과 표정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다.그의 숨소리가 무겁게 들려왔다. 목에는 목줄이 채워진 것처럼 갑갑했다.몇 초 뒤 그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나라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거라면 차라리 율이처럼 살 거라.”신무열과 대화를 할 땐 법로는 온지유를 항상 ‘율이'라고 불렀다.법로는 온지유에게 죄책감을 느꼈으나 신무열에겐... 자기 아들에게도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신무열의 곁에 있어 준 시간이 많지 않았다.심지어 예전에 자신이 저질렀던 일도 신무열에게 맡겨 처리하게 했다.신무열이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고 결혼할 생각도 없다는 것도 전부 그의 탓이었다.
김혜연이 이번에 목숨을 던지며 그를 구했으니 그는 더는 무시할 수 없었다....한편 온지유도 신무열이 습격을 당하고 김혜연이 몸을 날려 구해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신무열이 다쳤을까 봐 걱정되어 가보려고 했으나 여이현이 그녀를 붙잡았다.“네 오빠가 다친 거라면 이 사람들이 조용할 리가 없겠지. 소식도 빠르게 퍼졌을 거야.”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김혜연은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신무열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굳이 김혜연에게 가볼 필요도 없었다.그럼에도 온지유는 왔다.그런데 신무열이 김혜연의 곁을 지키고 있을 줄은 몰랐다.김혜연이 신무열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지라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묵묵히 걸음을 옮기려고 했지만 법로가 그녀를 불렀다.“지유야, 잠깐만.”온지유는 고개를 돌렸다. 법로가 어느샌가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아버지.”온지유는 법로가 자신을 왜 불렀는지 모르지만 일단 인사는 해야 했다.비록 그를 아버지로 받아들였다고 하나 일반적인 부녀 사이와는 달랐다.온지유는 먼저 법로를 찾아가지 않았다.법로는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네 오빠 쪽은 네가 도와줬으면 한다.”법로가 이렇게 말하니 온지유는 바로 눈치챘다.“아버지, 오빠 쪽은 저도 도와줄 수가 없어요.”감정의 문제에서는 그녀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법로는 신무열이 했던 말을 온지유에게 전부 말해주었다.그리고 자기 생각도 말해주었다.“너희 둘은 전부 내 아이다. 비록 너희들 엄마가 일찍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나도 그때는 정신을 놓아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겠지. 하지만 난 지금 그때의 잘못을 전부 되돌리려고 한다. 무열이에게도 말이다. 난 무열이가 원치 않는 인생을 살면서 고통받기를 바라지 않는단다. 난 무열이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구나.”“너도 행복하길 바라고 있단다.”행여나 신무열을 편애하는 것처럼 들릴까 얼른 한 마디 더 보탰다.온지유는 침묵했다.법로가 한 말의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다.신무열이 김
호텔 바닥은 아수라장이었다.잠에서 깬 지유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지유는 미간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커다란 몸집을 가진 남자가 옆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조각과도 같았고 눈매도 깊고 진했다.아직 깊은 잠이 들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지유가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그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렸고 뽀얗고 매혹적인 두 어깨에 어젯밤 남긴 흔적이 보였다.지유가 앉았던 자리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시간을 보니 어느새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유는 바닥에 널브러진 출근룩을 다시 집어 들어 얼른 갈아입었다.스타킹은 이미 남자에 의해 찢겨 있었다.지유는 스타킹을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하이힐을 신었다.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깔끔하게 차려입은 지유는 어느새 워커홀릭 비서로 완전히 돌아왔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들어온 사람은 청순한 미녀였다.지유가 부른 사람이었다.이현의 취향이 이런 여자였다.지유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침대에 누워서 대표님 깨나길 기다리면 돼요. 다른 건 한마디도 하지 마요.”지유는 고개를 돌려 아직 단잠에 빠진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억울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방에서 나왔다.지유는 두 사람이 어젯밤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현이 아는 게 싫었다.그들 사이에 계약에 의하면 아무도 모르게 3년간 결혼을 유지하면 바로 이혼할 수 있었다.이 기간에 선을 넘는 행동은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지유는 7년째 이현의 비서로, 3년째 이현의 와이프로 있었다.졸업한 그날부터 이현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같은 날, 이현은 지유에게 두 사람은 그저 상사와 부하의 관계일 뿐 이 관계를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지유는 복도 창가에 서서 어제 일을 떠올렸다. 이현은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워 ‘승아’라는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지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승아는 이현의 첫사랑이었다.이현은 지유를 승
이에 지유가 화들짝 놀라며 하마터면 발을 삐끗할 뻔했다.중심을 잘 잡지 못한 지유는 그렇게 이현의 몸에 기댔다.이현은 지유의 몸이 앞으로 쏠리자 손으로 지유의 허리를 잡아줬다.뜨거운 체온이 전해지자 지유는 어젯밤 그가 저돌적으로 그녀를 덮치던 화면이 떠올랐다.지유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고개를 들어 이현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 봤다.이현의 눈동자는 매우 진지했고 그 속엔 질문과 의혹도 담겨 있었다. 눈빛은 지유를 뚫어버릴 것만 같았다.지유는 심장이 벌렁거렸다.이현과 더는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아까 나간 그 여자라고 생각했을 때도 이현은 불같이 화를 냈는데 여기서 만약 지유가 자신이었음을 인정한다면 후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아니라고 하기엔 억울했다.만약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라는 걸 이현이 알게 된다면 결혼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그래도 지유는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게 겁나 고개를 숙인 채로 물어봤다.“그건 왜 묻는 거예요?”지유는 사실 남몰래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이현이 코웃음을 치더니 이렇게 말했다.“너는 그런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지유는 멈칫하더니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어쩌면 이현은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가 아니길 더 바랄지도 모른다. 계약 결혼일뿐이니 말이다.게다가 며칠만 더 지나면 계약도 끝나간다순간 이현이 지유의 손을 힘껏 낚아챘다.지유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이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심사하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지유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발버둥 치며 손을 빼려 했지만 이현이 지유를 전신 거울 앞으로 바짝 몰아갔다.“뭐 하는 거예요?”지유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긴장과 두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너 정말 사무실에서 잠들었어?”지유는 칠흑같이 어두운 이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혹시나 들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3년 전, 결혼한 첫날 밤, 지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