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열은 별이를 안고서 밖으로 향했다....한편으로 온지유와 여이현이 탑승하기로 한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비행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온지유와 여이현의 계획대로였다.브람이 사람한테 시켜서 온지유와 여이현을 잡아 오라고 했고, 억지로 환승지인 S 국에 도착한 온지유와 여이현은 브람을 마주하게 되었다.브람은 이 둘을 갈라놓으려고 했지만 여이현이 워낙 온지유의 손을 꽉 잡고 있어서 보디가드는 결국 이 둘을 떼어내지 못하고 함께 브람 앞으로 데려갔다.“여이현을 좋아한다며. 함께하기로 했으면서 여이현 체내에 있는 독을 나 몰라라 할거야?”브람은 뒷짐을 쥔채 온지유에게 질문했다.그는 온지유를 싫어했기 때문에 말투가 상냥하지 못했다.이때 온지유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대통령님께서 먼저 이현 씨를 찾았잖아요. 보상해 주기도 모자랄 판에 독이나 타고. 이런 일은 대통령님만 할수 있을 거예요.”여이현은 그동안 그래도 상태가 안정된 상태였다. 실험실을 계속 다니기도 했고, 법로도 그의 체내에 있는 독을 없애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법로가 여이현을 완치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여이현이 억지로 참고 있으면서 온지유한테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너만 아니었으면 독을 타지도 않았어. 너는 네가 잘했다고 생각해?”브람은 한껏 가소롭다는 말투로 말했다.여이현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큰 힘을 들여 그를 찾아냈지만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상업에 종사하는 것과 정치에 종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그때는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여이현에게 또 다른 신분이 있을 줄 생각지 못했다.여이현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여이현이 그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온지유를 중독시켜서 아이를 뺏어오면 여이현이 흔들릴 줄 알았다. 그런데 여이현이 여전히 화국 부대에 남아있겠다고 할 줄 몰랐다.전쟁 중에 여이현이 총을 맞아 Y 국 강에 빠졌을 때, 큰 힘을 들여 강에서 건져내게 되었다.몇 해가 지나도 깨어나지 않
브람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고, 국제포럼에는 온통 그에 대한 욕으로 도배되어 있었다.생방송에 그의 얼굴이 정면으로 잡힌 것이다.“너였어...”브람의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 드는 생각은 오로지 온지유를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이 모든 것은 온지유 때문이야! 저년이 없었더라면 이현이 저렇게 변하지도 않았고, 나한테 반항하지도 않았을 거야.’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라이브 생방송 중이었기 때문에 온지유한테 손찌검할 수 없었다.이순간 온지유는 브람의 질문에도 전혀 흔들임 없이 두려워하지도 않았다.“저 맞아요. 대통령님께서 먼저 너무하셨잖아요. 저희는 그냥 우리끼리 잘살고 싶었는데 계속 방해하셨잖아요. 저희가 모를 줄 알았어요? 별이를 옆에 두면서 병도 치료해 주지 않았던 건 별이를 이용해 이현 씨를 협박하려던 거였잖아요.”여이현이 5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이유는 혼미 상태에 빠져있었던 것도 있었고, 자기만의 생각이 있어 모든 것이 안정되면 식구들과 다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그런데 모든 계획이 틀어지는 바람에 온지유가 다칠까 봐 보다 일찍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다행히 별이를 온지유 옆으로 돌려보낸 건 맞는 결정이었다. 덕분에 별이를 Y 국으로 데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순간 브람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치료 방법이 있었더라면 내가 별이를 죽게 내버려 뒀을 것 같아?”“그런데 저희 아버지는 별이를 치료해 줬거든요.”온지유는 브람의 어두운 눈빛과 마주하면서 한마디 한마디 내뱉었다.브람은 더욱 가소롭다는 말투로 말했다.“그거야 너희 아버지가 실험하기 좋아해서 그렇지.”“그런데 대통령님은 왜 애초부터 해독제를 가지고 있었는데요?”온지유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브람이 해독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여이현과 거래하려고 했던 것이 핵심이었다.온지유가 카메라로 모든 것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말을 아껴야 했다.온지유는 그의 눈빛에서 모든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시각, 국제포럼에는 브람을 향한
온지유는 브람이 다시는 찾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브람은 놔주어도 강서현은 불가능했다.이때 강서현이 여이현 앞에 나타나 이들의 길을 막았다.“이현 씨, 지유 씨를 데리고 가는 거, 제 의견을 물어봤어요? 저야말로 이현 씨 약혼녀잖아요! 절대 안 돼요!”“그건 대통령님이 엮어준 거잖아. 내가 원하는 건 아니었어. 지유야말로 내 아내라고. 너는 다른 인연을 찾아봐.”여이현은 바로 거절하고는 온지유를 감싸 안고 밖으로 향했다.강서현이 쫓아가려고 하는데 여이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강서현, 따라오지 마!”강서현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강서현한테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었다.어떻게든 여이현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받은 이 치욕, 꼭 갚아주리라 다짐했다.‘아니면 내가 강서현이 아니지!’한편으로 신무열은 별이와 함께 외식을 마치고 녀석이 치료받을 수 있게 법로한테 맡기고는 방으로 들어갔다.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김혜연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이다.그녀는 정성스레 직접 고른 셔츠 하나를 건넸다.블랙 앤 화이트 컬러에 꽃무늬 자수가 박혀있는 것이 딱 신무열한테 어울렸다.그런데 신무렬이 죽어도 안 받는 것이다.“입을 옷이 많아. 없다고 해도 내가 직접 가서 사면 돼.”선물 따위는 필요없었다.김혜연은 그의 숨은 말뜻을 알아들었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자세를 낮추고 애원하는 말투로 말했다.“도련님, 이거 제가 정말 오랫동안 고른 선물이에요. 한정판이라 어렵게 구한 건데 한번 입어보실래요? 마음에 안 들면 버리셔도 돼요.”김혜연은 이 셔츠를 보자마자 신무열한테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아무리 애원해봤자 신무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이때 신무열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김혜연, 내가 똑바로 말했을 텐데.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마음이 요만큼도 없다고.”김혜연도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신무열의 입에서 직접 듣자니 슬픈 마음에
김혜연은 속이 말이 아니었지만 계속 신무열의 방에 있으면 그가 화를 낼까 봐 바로 방에서 나왔다. 신무열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김혜연은 신무열 대신 법로 찾으러 갔다.법로는 눈시울이 붉어진 김혜연을 보더니 말했다.“무열이가 괴롭힌 거라면 내가 대신 혼내줄게.”다른 일은 몰라도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법로는 지금 이 위치까지 오르기까지 겪어보지 못한 것이 없었다. 오랫동안 신무열의 곁을 지켜온 김혜연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진작에 알고 있었다.감정이라는 것은 억지로 될 일이 아니었다.그것도 모자라 신무열은 늘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김혜연은 법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줄 몰랐는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말했다.“법로님, 저 좀 도와주면 안 돼요? 저 도련님을 정말 사랑해요... 도련님 곁에 여자도 없는데 제가 평생 옆을 지키면서 내조해 드릴게요.”어쩔 수 없이 법로한테 도움 청하러 온 김혜연은 울먹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쭉 신무열을 사랑했었다.전에 고백하지 못했던 이유는 신무열의 곁에 있을 자격이 없을까 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모든 노력을 다했다.겨우 고백할 용기와 기회가 생겨 고백했거늘 신무열이 거절할 줄 몰랐다.김혜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나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김혜연은 심지어 눈치없이 온지유한테 상처를 줘서 그런거라면 사과할 마음도 있었다.법로를 찾아온 것은 그저 신무열과 단둘이 있을 기회를 얻고 싶어서였다.그런데 법로가 이런 태도일 줄은 몰랐다.“김혜연, 너희 아버지가 Y 국에 큰 공헌을 하셔서 나도 너를 잘 챙겨주려고 했어. 다른 일이라면 도와줄 수 있지만 이 부분은 나도 어쩔 수 없어.”법로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전에 신무열한테 소개팅을 주선하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는데 신무열이 극구 싫다고 해서 다시는 물어본 적이 없었다.만약 신무열도 김혜연을 좋아한다면 그녀가 자기한테 도움을 청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온지유와 여이현을 통해 중간에서
온지유는 그제야 깨닫고 여이현의 손을 잡았다.“체내에 독이 아직 남아있는 거예요?”“미안해...”여이현의 힘없는 목소리에 온지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저는 이현 씨한테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저희 이만 돌아가요!”온지유는 여이현을 데리고 다시 브람을 만나러 가고 싶었다. 여이현한테 아무런 이상이 없어 법로가 체내에 있는 독을 깔끔히 처리한 줄 알았다.그런데 여이현이 참고 있었을 줄이야...온지유는 너무나도 괴로웠다.그런데 여이현이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면서 고개를 흔드는 것이다. 온지유가 지금 당장 브람 찾으러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다만 브람이 만약 해독제를 줄 마음이 있었다면 아무 말 없이 보내주지 않았을 것이다.“순순히 줄 마음이 없을 거야. 우리랑 협상하려고 할 거라고. 난 그 사람이랑 협상하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내가 죽게 내버려 두진 않을 거야.”여이현은 온지유의 손을 꽉 잡고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그는 온지유가 자기 때문에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반대로 온지유는 여이현이 무사하기만 하다면 무슨 짓이든 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여이현이 자신을 위해 목숨마저 내바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이현 씨가 죽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면 왜 떠날 때 해독제를 주지 않았는데요.”브람은 사실 여이현이 돌아와서 비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지금 찾아가봤자 해독제를 주지 않을 거야. 지유야, 우리 이만 돌아가. 아버님이 별이를 치료해 주고 있잖아.”Y 국에는 법로 말고도 인명진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독제를 구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온지유는 여이현을 이해했지만 한 번이고 두 번이고 시도해 보는 것보다 차라리 브람을 찾는 것이 더 빠르다고 생각했다.다음 순간, 여이현은 온지유를 품에 안고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해 주었다.“괜히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널 혼자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했잖아. 일단... 별이 찾으러 가. 우리를 보고 싶어 할 거야.”“그래요..
온지유와 여이현은 Y 국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이었다.뒷좌석에 앉아있던 온지유는 수시로 여이현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상태가 너무 나쁘지는 않았다.가는 도중에 누군가 길을 막길래 여이현은 직감적으로 브람이 시킨 짓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온지유더러 차 안에 있으라고 했다.“내가 내려가서 확인해 볼게. 상황이 안 좋으면 기사님더러 가던 길 계속 가라고 해. 네 예상이 맞았어. 무조건 Y 국에 남아있어야 했어.”만약 브람이 국제포럼 반응을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여이현은 온지유와 별이의 안전을 위해서 이곳에 남아있기로 했다.그런데 온지유가 확신에 찬 모습으로 고개를 흔드는 것이다.“저한테 무슨 일이 있든 제 옆에 있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저 보고 떠나라고요? 안 돼요. 이현 씨, 약속 꼭 지켜요.”온지유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 한 대가 앞을 막았다. 그 뒤에 있는 여러 대의 차량은 가까이 오지 않았고, 오히려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여이현의 표정은 확 어두워지고 말았다.그런데 차에서 한 사람만 내리는 것이다. 여이현은 그가 브람의 보디가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고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다행히도 보디가드는 무기를 휴대하고 있지 않았다.보디가드는 성큼성큼 걸어와 차 옆에 멈추더니 공손하게 인사했다.“도련님, 대통령님께서 해독제를 보내오라고 하셔서요.”온지유와 여이현은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떠날 때까지도 해독제를 줄 생각을 하지 않더니 보디가드한테 해독제를 보내주라고 했다고? 무조건 꿍꿍이가 있을 거야.’보디가드는 굳게 닫힌 문을 보고, 또 꼼짝하지도 않는 여이현의 모습을 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도련님, 지금 전 세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대통령님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만약 대통령님께서 언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면 S 국에서 바로 처리했겠죠. 도련님한테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면 저만 보내지 않았겠죠. 정말 못 믿으시겠으면 이 해독제의 성분을 확인해 보시든가요.”보디가드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여이현과
호텔 바닥은 아수라장이었다.잠에서 깬 지유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지유는 미간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커다란 몸집을 가진 남자가 옆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조각과도 같았고 눈매도 깊고 진했다.아직 깊은 잠이 들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지유가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그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렸고 뽀얗고 매혹적인 두 어깨에 어젯밤 남긴 흔적이 보였다.지유가 앉았던 자리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시간을 보니 어느새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유는 바닥에 널브러진 출근룩을 다시 집어 들어 얼른 갈아입었다.스타킹은 이미 남자에 의해 찢겨 있었다.지유는 스타킹을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하이힐을 신었다.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깔끔하게 차려입은 지유는 어느새 워커홀릭 비서로 완전히 돌아왔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들어온 사람은 청순한 미녀였다.지유가 부른 사람이었다.이현의 취향이 이런 여자였다.지유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침대에 누워서 대표님 깨나길 기다리면 돼요. 다른 건 한마디도 하지 마요.”지유는 고개를 돌려 아직 단잠에 빠진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억울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방에서 나왔다.지유는 두 사람이 어젯밤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현이 아는 게 싫었다.그들 사이에 계약에 의하면 아무도 모르게 3년간 결혼을 유지하면 바로 이혼할 수 있었다.이 기간에 선을 넘는 행동은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지유는 7년째 이현의 비서로, 3년째 이현의 와이프로 있었다.졸업한 그날부터 이현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같은 날, 이현은 지유에게 두 사람은 그저 상사와 부하의 관계일 뿐 이 관계를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지유는 복도 창가에 서서 어제 일을 떠올렸다. 이현은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워 ‘승아’라는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지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승아는 이현의 첫사랑이었다.이현은 지유를 승
이에 지유가 화들짝 놀라며 하마터면 발을 삐끗할 뻔했다.중심을 잘 잡지 못한 지유는 그렇게 이현의 몸에 기댔다.이현은 지유의 몸이 앞으로 쏠리자 손으로 지유의 허리를 잡아줬다.뜨거운 체온이 전해지자 지유는 어젯밤 그가 저돌적으로 그녀를 덮치던 화면이 떠올랐다.지유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고개를 들어 이현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 봤다.이현의 눈동자는 매우 진지했고 그 속엔 질문과 의혹도 담겨 있었다. 눈빛은 지유를 뚫어버릴 것만 같았다.지유는 심장이 벌렁거렸다.이현과 더는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아까 나간 그 여자라고 생각했을 때도 이현은 불같이 화를 냈는데 여기서 만약 지유가 자신이었음을 인정한다면 후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아니라고 하기엔 억울했다.만약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라는 걸 이현이 알게 된다면 결혼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그래도 지유는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게 겁나 고개를 숙인 채로 물어봤다.“그건 왜 묻는 거예요?”지유는 사실 남몰래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이현이 코웃음을 치더니 이렇게 말했다.“너는 그런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지유는 멈칫하더니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어쩌면 이현은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가 아니길 더 바랄지도 모른다. 계약 결혼일뿐이니 말이다.게다가 며칠만 더 지나면 계약도 끝나간다순간 이현이 지유의 손을 힘껏 낚아챘다.지유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이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심사하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지유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발버둥 치며 손을 빼려 했지만 이현이 지유를 전신 거울 앞으로 바짝 몰아갔다.“뭐 하는 거예요?”지유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긴장과 두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너 정말 사무실에서 잠들었어?”지유는 칠흑같이 어두운 이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혹시나 들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3년 전, 결혼한 첫날 밤, 지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