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걱정하고 있는 걸까?하지만 그건 이미 지난 일인데 왜 여전히 이런 표정인 거지?“언젠가는 알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빨리 알았네.”“그때 여기로 한 번 돌아왔었어.”민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그런데 너무 빨리 다시 돌아가는 바람에 너 만날 시간도 없었네.”“괜찮아. 우리가 그때 그렇게 많이 친했던 사이도 아니었잖아.”민우는 그 말에 그저 웃어 보였다.“너는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 솔직히 지금 돌이켜보면 후회되기도 해. 그때 해외로 가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네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내가 널 지켜줬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인질로 잡힌 게 네가 아니라 나였을 수도 있고.”“됐어. 이제 괜찮으니까 위로 안 해줘도 돼.”지유는 그가 실없는 농담을 한다 생각해 그저 웃어넘겼다.“아저씨한테 들었어. 너 그 사건 이후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왔었다며? 거의 반년 가까이 치료했다고 하던데 많이 힘들었지?”그 사건은 하필이면 그가 출국하고 얼마 안 있어 벌어졌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녀가 제일 힘들어할 때 그는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민우가 다시 돌아왔을 때 지유는 어느새 쾌차해 이름있는 명문고에 들어갔다.그녀는 그런 일을 겪고도 씩씩하게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갔다.물론 그녀가 사건 당일 자신을 구해준 누군가를 떠올리며 극복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민우는 가끔 만약 그때 그녀를 구해준 사람이 자신이었다면 많은 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10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리지도 않았을 테니까.하지만 당시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더 멋있어져서 그녀 앞에 서고 싶었으니까.“이미 지난 일이야. 지금은 괜찮아.”지유가 미소를 지었다.“그보다 네가 나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알고 있을 줄은 몰랐네. 나한테 벌어진 일도 그렇고 내 취미를 알고 있는 것도 그렇고. 누가 보면 나만 계속 보고 있는 줄 알겠어.”“아저씨랑 얘기하다가 알게 된 거야.”민우가 웃으며 얘기
게다가 민우는 귀국한 지 얼마 되지도 않기에 이 단기간에 그녀를 좋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지유와 민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학교 밖 도로 옆을 거닐었다.민우는 둘이서 산책하는 지금 이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했다. 그는 길을 걷다가도 그녀 쪽을 보고는 한 번씩 미소를 지었다.모든 게 평화로운 그때 한 차량이 뒤에서 시끄러운 경적을 울리며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민우는 그 소리에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길 안쪽으로 세웠다.그리고 그 모습을 두 사람 조금 앞에 있던 차 안의 한 남자가 전부 목격해버렸다.이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사이드미러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지유는 민우와 함께 있는 시간이 편한 것인지 언뜻언뜻 미소도 지으며 얼굴을 마주하며 얘기를 나눴다.이현은 그 모습이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대체 이게 몇 번째지?그리고 변우석이라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 아니었나?이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말한 변우석이라는 남자도 신경 쓰였고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나민우도 신경 쓰였다.마치 심장을 누가 꾹 짓누르는 듯한 그런 답답한 기분이었다.“대표님, 뒤에 지유 씨가 있네요. 그 옆에는 한 남성분도 보이고요.”진호도 사이드미러로 그들을 확인하고는 이현에게 얘기했다.이현의 싸늘한 시선이 이번에는 그에게로 향했다.그 시선을 그대로 받은 진호는 그제야 자신이 쓸데없는 얘기를 했다는 것을 눈치챘다.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세상 그 어떤 남자가 좋아할 수 있을까.그걸 눈치도 없이 입 밖으로 꺼냈으니 한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진호는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지금 내리시겠습니까?”이현의 시선이 다시 사이드미러로 향했다. 남녀 둘이서 걸어오는 모습이 마치 연인을 보는 것 같았다.그는 지유를 보는 민우의 눈빛에서 꿀이 뚝뚝 흐르는 것을 보고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온 비서 오늘 월차라도 냈습니까?”진호는 확신할 수 없는 말투로 답했다.“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만약 그 몇 번이 정말 다 우연이라고 하면 그때는 그걸 우연이라고 칭할 수 없게 된다.게다가 매번 둘이 같이 있는 걸 볼 때면 지유는 항상 즐겁게 웃고 있다.“여 대표님!”그때 학교 안에서 서승만이 걸어 나와 그를 불렀다. 그는 세 사람 사이의 묘한 분위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그저 싱글벙글 웃으며 그에게로 다가가 인사했다.“마침 다 모인 것 같으니 이제 식사하러 갈까요?”이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몇 번의 만남으로 서승만도 여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그의 태도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민우는 이현을 보며 말했다.“가시죠. 여 대표님.”이현은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라탔다.차에 타기 전 그는 일부러 지유에게 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느 차량에 타는지 보려는 심산이었다.진호는 지유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지유 씨, 대표님 옆에 앉으세요.”그는 이현의 기분이 안 좋은 걸 이미 알고 있기에 더 이상 화를 키우지 않게 지유에게 언질을 줬다.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서승만도 민우도 자신이 이현의 비서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지금은 이쪽에 타는 것이 맞았다.진호는 두 사람을 태우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서 운전석에 앉았다.이현은 지유가 옆에 앉자마자 이죽거렸다.“월차까지 써서 친구 만나러 온 건데 그 친구분 차에 앉지 그래요, 온 비서?”지유는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돌려 이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태도는 무척이나 날이 서 있었고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선생님은 내가 대표님 비서라는 거 아세요. 대표님 차에 앉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하실 거예요.”“온 비서가 나민우 씨와 친구 사이라는 거 알지 않나?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이현이 되물었다.지유는 자신에게 화가 난듯한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차 문을 잡고 말했다.“그럼 민우 차에 탈게요.”그 말에 이현의 얼굴이 더 세게 일그러졌다.다행히 눈치 빠른 진호가 얼른 차 문을 잠그
그 질문에 지유가 어리둥절해졌다.하루빨리 찾아내라고 한 건 그이지 않나?아니면 이건 혹시 그녀를 떠보는 것일까?지유는 잠깐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맡기신 일은 꼭 해내야 하는 게 제 일이라서요. 이것 역시 업무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녀는 이 정도 대답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비서로서 상관의 말을 따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지유의 얼굴에는 슬퍼하거나 속상해하는 기색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여자를 찾아내겠다며 눈을 반짝이고 있다.이현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더니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온 비서는 참 훌륭한 비서네요. 내가 아주 손을 놓지를 못하겠어.”아까까지만 해도 긴장했던 지유는 그의 칭찬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비서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입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매우 비서 같은 대답이었다.운전석에 있던 진호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분명히 부부인데 전혀 부부 같지가 않았다.그는 눈치 없는 지유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이현은 부부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잠자리 상대를 기꺼이 찾아주려는 지유가, 질투를 전혀 하지 않고 마음이 태평양보다 넓은 지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진호는 이현의 마음을 아주 정확하게 캐치하고 있었다.옆에서 뭐라고 얘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괜히 말을 잘못 놀렸다가 쓸데없이 화만 살 것 같아 진호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뭘 또 최선까지야. 그냥 평소대로 하세요.”이현의 이 말을 끝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진호는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숨소리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묵묵히 차를 몰았다.길었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레스토랑 앞에 도착했다.마침 민우의 차도 뒤이어서 도착했다.서승만은 차에서 내린 순간부터 활짝 웃으며 이현 쪽으로 다가갔다.반면 민우는 지유 쪽을 바라보더니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둘러주었다.“저녁은 쌀쌀하니까 감기 걸리
“지유처럼 예쁜 애는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지유도 안목이 높아졌겠죠.”서승만은 여이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민우도 나쁘지 않아요. 능력 좋은 데다가 성격까지 좋으니, 미래가 창창할 것 같네요.”여이현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서승만은 진심으로 나민우가 마음에 드는 듯했다. 온지유와 그를 이어주려는 마음도 진지해 보였다.나민우는 웃는 얼굴로 여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니에요, 선생님. 지유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죠. 지유는 사랑받아야 마땅한 사람이에요.”온지유는 약간 멈칫했다. 나민우의 말에 감동한 것이다.그는 그녀가 사랑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다. 이토록 다정한 말에 흔들리지 않을 여자는 없었다.여이현도 온지유가 나민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쩐지 답답한 기분이 들었던 그는 넥타이를 약간 풀며 말했다.“말보다는 행동이 좋을 것 같은데요. 온 비서님이 가장 힘들 때 나 대표님은 무엇을 했죠?”나민우는 눈빛이 약간 변했다. 온지유가 힘들 때 함께 있지 못했던 것은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이다.이제는 도와주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물러날 수 없었던 그는 금방 말을 보탰다.“여 대표님 말이 맞아요. 앞으로 잘 신경 써야죠.”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알아챈 온지유는 바로 끼어들었다.“안에는 꽤 시원한 것 같아요. 빨리 들어가요.”서승만도 약간 눈치챈 바가 있는지 말을 보탰다.“맞아요, 빨리 가서 밥 먹어요.”그들의 선택한 것은 고급 호텔이었다. 조용하고 화려한 것이 부자들만 사용하는 듯했다.그들이 들어가자마자 예쁘게 생긴 여자애가 달려와서 말했다.“아빠!”서승만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우리 딸 오래 기다렸지? 왜 벌써 왔어?”“아니야, 나도 금방 도착했어. 이분들은 아빠 친구들이야?”“응, 아주 중요한 손님들이야.”서승만은 몸을 돌려 소개해 줬다.“이쪽은 나민우, 아빠 제자였어. 지금은 금융계의 거물로 아주 유명해졌지. 이쪽은 온지유, 지금 여의현 대표님의
서승만에게는 자식이 서은지밖에 없었다. 오늘은 손님이 있어서 한마디 한 것이지, 평소는 그녀가 무엇을 원하든 다 따라줬다.그는 서은지와 함께 외출한 적이 별로 없다. 애초에 서은지가 관심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이현은 일부러 못 만나게 했다. 여이현과 같은 사람은 그녀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여이현보다는 나민우가 마음에 들었다. 나민우처럼 나긋나긋한 사람이라면 결혼 후에도 잘해줄 것 같았다.하지만 나민우가 온지유를 좋아하는 것은 그도 알아차릴 정도로 선명했다. 더군다나 서은지는 여이현만 좋아하니 일단은 그녀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들뿐만 아니라 서승만의 다른 친구들도 왔다. 전부 서은지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여서 아주 예뻐했다. 근황을 묻는 그들에게 서은지는 당당히 인사했다.사람이 전부 모인 다음 그녀는 여이현을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못 드시는 음식 있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요!”여이현은 그녀가 갑자기 말을 걸 줄은 모르는 듯 차갑게 대답했다.“알아서 주문하세요.”이때 한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은지야, 삼촌들도 있는데 왜 안 물어봐 줘? 우리 은지 다 컸네. 벌써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거야?”서은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아니에요. 삼촌들은 뭘 좋아하는지 다 알아서 안 물었거든요? 그렇게 자주 만났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해요.”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서은지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여이현을 목표로 왔을 것이다.온지유는 여이현에게 들어대는 여자를 수도 없이 봐왔다. 하지만 서은지처럼 당돌한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여이현을 바라봤다. 그는 감정을 알아볼 수 없는 담담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고 있었다.식사 자리에서 그들은 대부분 사업에 관해 얘기했다. 여이현과 서승만도 협력하는 것이 있는 듯했다.온지유는 말없이 곁에서 듣기만 했다. 나민우는 얘기하는 와중에도 잊지 않고 그녀에게 반찬을 집어줬다.그녀는 잠깐 화제가 끊겼을 때 나
중학교 때의 나민우는 몸매도 좋지 못하고 능력도 없었다. 그는 온지유에 대한 마음을 혼자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지금이라면 널 좋아할 자격이 있을 것 같아.”온지유는 이런 일이 있은 줄 전혀 몰랐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기도 했다.나민우는 그녀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나 사실 엄청 오래전에 돌아온 적 있어. 네가 다쳤다는 말을 듣고 바로 귀국했거든. 하지만 그때도 너한테 가까이 가지는 못했어. 네가 괜찮아진 걸 보고 몰래 좋아하기만 했지. 그때 다음에 돌아올 때는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어.”온지유는 말을 잃었다.그녀는 나민우의 심정을 알았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여이현을 좋아하던 시간보다도 길었다.“다른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은 없어?”“없어. 우리 집안에 순정파 유전자라도 있나 봐. 그런데 너무 부담 가질 필요 없어. 난 친구로 지내는 것도 괜찮아. 너 같은 친구가 있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나민우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지금 그녀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마음 졸일 필요가 없었다.마음을 고백하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적어도 고백 한 번 못 하는 그녀보다는 훨씬 용감했다.“고마워, 민우야.”온지유의 생각을 잘 알았던 나민우는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뭐 좀 먹자. 내가 한 말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나민우는 온지유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다른 사람과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민우가 그녀는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했다. 내면세계가 아주 강해 보였기 때문이다.반대로 여이현은 두 사람과 꽤 떨어진 자리에 있었다. 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한참이나 가까이에서 얘기하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대표님, 저랑 한 잔 마셔줄 수 있을까요?”이때 서은지가 불쑥 나타나서 말했다. 거절당하기 싫은지 간절한 표정까지 지었다.여이현은 이제야 온지유에게서 시선을 떼고 술잔을
이 순간 온지유는 벼락에 맞은 것만 같았다. 그녀는 창백한 안색으로 꼼짝할 수 없었다.그녀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발은 바닥에 뿌리 박은 것처럼 추호도 움직일 수 없었고 시선도 마찬가지였다.‘내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새로 키스까지 하는 사이가 됐다고?’이때 여이현이 서은지의 손을 풀어냈다. 그러다가 온지유와 시선이 마주친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여이현에게는 설명할 기회가 없었다. 그는 일단 서은지와 거리를 두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서은지 씨, 선 넘지 마세요.”서은지는 여이현을 쫓아 나온 것이었다. 그녀는 여이현이 혼자 있는 것을 보고 애정 행각을 벌일 수 있을 줄 알았다. 자신처럼 예쁜 여자를 거절할 남자는 없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자신만 마음먹으면 여이현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이현과 같은 남자와는 하룻밤 보내는 것만으로도 이득이었다.여이현에게 밀려난 것도 그녀는 밀당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아까는 쿨하게 허락했잖아요. 혹시 여자가 주동적인 건 싫은가요? 약간 새침한 척해볼까요?”자신을 거절할 사람은 없다는 듯한 당당한 말투였다.여이현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그는 약간의 혐오가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서은지 씨가 쉽게 행동하는 건 상관없지만 저한테 이러지 마시죠. 저는 아무 여자나 건드리지 않거든요.”그의 말에 서은지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저 쉬운 여자 아니에요. 대표님을 좋아하니까 이러는 거죠.”“지금 보니 쉬운 여자 맞는데요.”여이현은 그녀의 체면을 지켜줄 생각도 없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저는 외국에서 자라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직진이에요. 실례가 되었다면 사과할게요. 앞으로는 대표님의 취향에 따라 행동할 테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그녀와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던 여이현은 단호하게 말했다.“저는 서은지 씨한테 관심 없어요. 시간 낭비하지 마요.”여자와 엮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여이현은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