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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0화

작가: 류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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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이현의 옆엔 부하도 있었고 거기에다 여이현은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었다.

노석명의 공격은 여이현을 다치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싸운다면 분명 부상자가 생길 것이다.

노석명은 애초에 노승아를 신경 쓰지 않았다. 여이현도 더는 노승아를 인질로 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놓아주지는 않았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발견한 노석명은 얼른 흰 손수건을 흔들며 여이현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여이현, 네가 여기까지 온 건 평화와 해독제, 그리고 사람을 찾기 위함이겠지. 넌 우리 Y 국 사람들이랑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도 아니잖아. 우리 사이에도 큰 원한도 없고 말이야. 네가 원하는 걸 내가 줄 수 있어. 지금 당장. 난 너랑 적이 되고 싶지 않거든.”

노석명의 목적은 그저 Y 국이었고 이곳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현재 아무런 약점도 없는 여이현과 적이 된다면 싸워서 밀리게 되는 사람은 바로 그였다.

여이현의 안중엔 애초에 노석명이 없었다.

“난 온지유를 원해요.”

해독제가 뭐라고.

전쟁이 뭐라고.

죽는 것이 뭐라고.

그가 원하는 건 오로지 온지유였다. 무사히 그의 눈앞에 서 있기만 한다면 다른 건 전부 필요 없었다.

노승아는 그런 여이현을 보았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녀는 참 멍청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녀의 심장은 여이현을 보며 두근두근 미친 듯이 뛰고 이었다. 하지만 여이현의 마음 속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온지유였다.

여이현은 온지유를 위해 모든 걸 내걸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이현의 안중에 지나가는 개 한 마리보다 못했다.

노석명과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녀를 무시하고 그녀의 정체를 들춰냈다.

“여이현, 지금 당창 철퇴하지 않으면 평생 온지유를 볼 수 없을 거야.”

“그럼 일단 그쪽부터 죽여야겠네요.”

여이현은 싸늘하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노승아의 어깨에 총을 가져다 댔다.

“아악!”

노승아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그간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고 해도 이런 엄청난 고통은 처음이었다. 이 순간 그녀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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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이현은 입술을 틀어 물었다. 손짓 한 번에 그의 병사들이 나서며 신무열과 법로를 부축했다.신무열은 Y 국의 핵심 인물이었다. Y 국은 아직 안정이 필요한 나라였고 만약 전쟁을 멈추지 못한다면 나라는 폐허가 될 것이다.그는 이내 용경호와 성재민에게 지시를 내렸다.“주위를 샅샅이 뒤져서 인명진 씨랑 온지유를 찾아와.”지금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인명진에겐 핸드폰이 없었고 온지유에게 다친 곳은 없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노석명이 도망가버렸기에 최악의 상황에서 노석명이 먼저 온지유를 찾았을 수도 있었다.여이현은 그 최악의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대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이미 사람들을 시켜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온지유 씨에겐 절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 겁니다.”용경호와 성재민은 거의 동시에 말했다.신무열은 여이현의 두 눈에서 견고함을 보아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여이현에게서 신무열은 온지유를 향한 깊은 애정과 사랑을 느꼈다. 그리고 신무열에게서 여이현은 뭔가를 눈치채게 되었다. 거기에다 인명진이 온지유를 대하는 태도까지 결합하면 대충 상황을 알 수 있었다.“신무열 씨, 여기는 신무열 씨가 맡으세요. 전 전쟁을 좋아하지 않거든요.”여이현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신무열도 모든 걸 알게 되어 갈라진 목소리로 답했다.“저도 전쟁을 좋아하지 않아요.”그는 전쟁을 싫어했고 전쟁 때문에 부상자가 생기는 것도 싫었다. 매번 Y 국 인구수가 줄어들 때마다 가슴이 아팠지만 Y 국의 현 상황에 그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다행히 노석명이 도망쳐버리고 중요한 순간에 여이현이 나타나 주었다. 이 모든 건 전부 온지유 덕분이었다. 온지유가 아니었으면 Y 국엔 오늘도 없었을 것이다.여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그는 여전히 Y 국에 남아 있었다. 다만 노승아를 찾아가 중요하게 할 일이 있었다.노승아는 온지유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을 뿐 아니라 온지유를 사칭하면서 조금 전에는 그와 함께 죽으려는 생각까지 했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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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82화

    “날 구해준 사람이 정말로 너 맞아?”노승아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여이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차갑게 픽 웃었다.여이현은 노승아의 앞에 우뚝 서 있었다. 190 CM 넘는 그는 꼭 눈앞에 웅장한 산이 있는 것처럼 압박감이 들었다. 특히 여이현의 눈빛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녀를 내려다보는 여이현의 모습은 마치 높은 왕좌에 올라앉은 사람처럼 위엄이 느껴졌다.노승아는 이런 여이현을 빤히 보았다. 너무도 낯설었다.예전의 여이현은 그녀를 차갑게 대하지 않았다. 지금 이런 모습도 그녀의 앞에서 보인 적 단 한 번도 없었고 그녀는 여이현에 대해 모르는 것도 없었다.더는 속일 수 없으니 이제는 본색을 드러내는 수밖에.더구나 여이현은 아무것도 눈치 못 챘던 상황에서도 그녀에게 눈에 띄게 차갑게 대하지 않았던가. 그녀도 이젠 포기할 때가 되었다.“내가 구했든 아니든 너한테 중요하긴 해? 여이현, 어차피 너 마음속엔 온통 온지유 뿐이잖아. 그런데 너랑 온지유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지 않아?”노승아는 더 짙은 미소를 지었다.누군가는 노승아에 대한 처벌이 너무도 잔인하다고 했지만 여이현은 그저 싸늘한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다.그와 온지유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노승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았다....한편 온지유 쪽.인명진은 그녀를 데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온몸에 힘이 빠진 온지유는 심지어 헛구역질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온지유는 더는 걸을 수가 없었다. 헛구역질하던 그녀는 결국 토하기 시작했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인명진은 너무도 걱정스러웠다.“지유야, 여이현 씨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한참 멀었어. 얼른 기운 차려야 해. 안 그러면 노석명이 뒤쫓아 올 거야!”이곳에 한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인명진은 온지유를 데리고 얼른 도망치고 싶었다.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하나의 생각뿐이다. 반드시 온지유를 살려내는 것.그걸 온지유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하지만 그녀와 법로의 관계가 떠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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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83화

    만약 이곳에서 죽는대도 이건 온지유의 운명이었다. 온지유는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인명진은 점점 작아지는 온지유의 목소리를 눈치챘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온지유, 정신 차려. 노석명이 너한테 무슨 짓을 했다는 거 알고 있어. 하지만 살아남아야 해. 제발 살아줘. 여기서 살아남으면 내가 어떻게든 해독제를 만들어 줄게. 그러면 전부 다 괜찮아질 거야!”그는 거의 울부짖었다. 눈가에 눈물도 맺혔지만 온지유은 이미 눈을 감아버린 상태였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젠장!”인명진은 이를 빠득 갈면서 욕설을 날렸다. 머릿속에 노석명의 얼굴만 떠올랐다.그는 노석명을 증오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찾아가 노석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노석명이 망가뜨린 사람은 아주 많았다. Y 국에서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살면서 자신의 딸마저 법로의 딸인 것처럼 꾸며 모두를 속이고 있었다.그럼에도 노석명은 온지유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만약 노석명이 온지유를 납치해서 실험하지 않았더라면, 독을 먹이지 않았더라면 온지유가 이렇게 될 일은 없었다.한순간 인명진에게 단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그것은 바로 노석명을 찾아가 노석명의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것.다만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도망이었다. 그가 죽어도 괜찮았지만 온지유가 죽어서는 안 되었다.그는 온지유를 업은 채 계속 달렸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말이다....한편 노석명 쪽.그는 비록 도망쳤으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김명무는 대충 치료를 해준 뒤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노석명이 그를 불러세웠다.“넌 네가 지금 바로 달려가면 걔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김명무는 바로 달려가 노승아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노승아가 Y 국으로 온 순간부터 그는 노승아를 따라다니며 경호했다. 그랬기에 노승아의 원래 얼굴이 어떤지도 알고 있었다. 아주 예뻤다.설령 노승아가 율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해도 김명무는 여전히 노승아의 성형 전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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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84화

    노승아는 결국 죽었다. 여이현의 눈앞에서.잔인한 체벌에 노승아는 그 짧은 시간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그녀는 친모의 손에 이끌려 노석명에게 보내지게 되었고 노예 수용소에서 한동안 생활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은 너무 고통스럽고 잔인했다.죽는 그 순간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낳아준 친아버지가 누군지 몰랐다.그녀는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했다.죽기 전 그녀가 했던 말이 여전히 여이현의 귓가에 맴돌았다.“여이현, 내가 널 얼마나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넌 항상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 나도 알고 있어. 네가 지금 온지유를 위해 나한테 복수하고 있다는 거. 내가 죽어도 너희 둘은 행복하게 살지 못할 거야. 내가 저주할 거니까! 너랑 온지유는 절대 행복하게 살 수 없어!”노승아에게 내린 체벌은 목숨을 잃을 정도가 아니었다.그러나 노승아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죽을 줄은 몰랐다.여이현은 그럼에도 냉담하게 말했다.“용경호, 노석명이 실험을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노석명을 찾아서 이 시체를 선물로 줘.”“대장님, 노승아 씨가 한 말을 너무 마음에 담지 마시길 바랍니다. 죽음이 닥쳐오니 두려움에 헛소리하는 겁니다. 죽기 전 다들 한 마디씩 내뱉은 말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그럼 세상 사람 전부가 예언가가 아니겠습니까?”여이현의 옆에 있던 용경호는 어두워진 여이현의 안색을 발견하곤 행여나 노승아가 한 말을 신경 쓸까 봐 얼른 몇 마디 보탰다.사실 그는 노승아가 이런 식으로 죽어버리는 건 너무 가벼운 벌이라고 생각했다.노승아가 한 짓이 수도 없이 많았고 심지어 도망치기도 했다.이런 범죄자라면 시체를 뜯어 짐승에게 먹이로 던져줘도 시원찮았다.하지만 그들은 군인이었고 이런 일을 할 수 없었다.여이현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픽 웃었다.“당연하지.”노승아가 죽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노석명의 귀에도 들려왔다. 여이현은 애초에 노승아의 죽음을 숨길 생각은 없었고 오히려 더 소식을 퍼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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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85화

    노석명은 권력을 갈망했다. 오래전부터 살면서 그는 깨달은 게 있었다. 바로 여진숙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걸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게다가 노승아는 사랑에 눈이 먼 사람이었다. 한번 남자에게 빠지면 앞뒤 가리는 것이 없었다.원래는 마지막까지 노승아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이현과 신무열이 나타나 그의 계획을 망가뜨려 버렸다.‘안 돼, 이렇게 포기할 순 없어. 난 반드시 내가 원하는 자리까지 올라가고 말 거야.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난 계속 도망만 치면서 살지 않을 거야!'노석명은 전화를 끊은 후 바로 결정을 내렸다.Y 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동맹군에게 빌붙으면 된다.다만 그가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어도 뒤에서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고개를 돌리니 김명무는 따라오지 않고 제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멍하니 서 있는 김명무의 모습에 노석명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뭘 멍청하게 서 있는 거야! 죽고 싶어?”노승아를 향한 김명무의 마음을 그는 바로 눈치챘었다.남자가 큰일을 하려면 시답잖은 감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게다가 지금 그를 따라는 사람은 김명무 뿐이었다.김명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혼나는 아이의 모습처럼.“장로님, 용서해주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전 장로님과 함께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전 아가씨 찾으러 갈 겁니다.”노석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김명무의 말을 듣고 있다고 총을 꺼냈다. ‘쿵!'미처 피하지 못한 김명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노석명은 이내 멈추지 않고 쓰러진 김명무를 향해 한 발 더 쐈다. 지금 이 순간 노석명의 눈빛은 아주 싸늘했다. 김명무는 짙은 피비린내를 맡게 되었고 눈앞도 빨간 액체로 가려졌다.어떻게든 일어서보려고 했지만 온몸에 힘이라곤 하나도 없었고 그저 눈을 뜬 채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점점 숨소리가 약해졌다.다만 아쉬웠던 것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노승아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다. 노승아를 지키는 임무도 완성하지 못했다. 그는 더는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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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86화

    온지유가 깨지 않자 인명진은 계속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인명진은 온지유가 깨어날 때까지 몇 번이고 끈질기게 이름을 불렀다.마침내 온지유는 의식이 돌아오고 눈앞에 있는 인명진을 바라봤다.“명진 씨? 여기는... 어디죠?”인명진은 온지유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로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온지유와 다시 만났을 때는 단순히 기억을 잃고 과거를 잊은 것일꺼라고 착각했었지만 지금의 인명진은 더 심각한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온지유의 기억에는 왜곡이 있었다.“지금 우리는 동굴 안에 숨어 있어. 네가 갑자기 열이 나서 더 이상 이동할 수 없었어. 율아, 나 좀 봐. 지금 네게 꼭 전해야 할 중요한 얘기가 있어.”인명진은 온지유가 깨자 약간 거리를 두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어깨를 단단히 잡고 있었다.어깨로 전해오는 힘과 그의 진지함에 온지유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명진 씨,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인명진은 잠시 침묵한 뒤 신중하게 말했다.“율아, 사실 우리가 만난 건 네가 우리의 실험실에 왔기 때문이었어...”인명진은 과거의 사건을 온지유에게 상세히 설명했다.인명진이 실험실에서 온몸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온지유는 하얀 공주 같은 드레스를 입고 순진한 모습으로 수용소에 나타나 그와 홍혜주를 보호해 주었었다.노예 수용소에서 그녀의 존재는 매우 이질적이었지만 누구도 감히 율이를 건드릴 수 없었다.율이는 마치 작은 천사처럼 수용소의 사람들을 지키려고 했다.하지만 그녀 혼자서는 모든 사람을 보호할 수 없었다. 노예 수용소의 잔혹함 앞에서 율이의 힘은 한없이 초라했다.가끔 타인이 겪을 일을 목격한 충격으로 그 일을 자신이 겪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온지유의 잠재의식 속에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의학적으로는 이를 ‘공감’이라고 한다.인명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노예 수용소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건 다 그때 네가 불을 지른 덕분이야. 그 후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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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엄마가 아프다는 시점도 너무 절묘했다. 설마 아픈 척하는 건가?이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배진호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야 했다.그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배진호의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났다.아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모른 채 여전히 의사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내 아들 앞에서 꼭 내 병이 심각한 것처럼 말해줘야 해. 안 그러면 걔 마음이 여전히 그 여자한테 기울어 있을 거야.”“걱정 마. 동창끼리 네 계획을 망치기라도 하겠어?”의사는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내가 다 맡을 테니 신경 쓰지 마. 그런데 사실 나도 부탁이 하나 있는데 우리 아들이 유학을 가야 하는데 돈이 조금 모자라거든. 좀 도와줄 수 있어? 올해 보너스 나오면 바로 갚을게.”정미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흔쾌히 승낙했다.어차피 그녀는 돈에 쪼들리지 않았으니.배진호가 비서로 일할 때부터 매달 월급 일부를 그녀에게 보내왔고 이후 그가 회사를 차려 독립하면서 더 많은 돈을 보내왔다.그녀는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면서 이제는 좋은 며느리를 얻는 데만 집착하고 있었다.“돈은 천천히 갚아도 돼. 여유가 생기면 갚아. 동창 사이인데 내가 너를 믿지 않겠어?”그녀의 말에 의사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병실을 나선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사람이 참 복에 겨워 사는 줄 모르네. 배진호 같은 아들에, 그토록 훌륭한 며느리까지 얻었는데 뭐가 불만이야? 게다가 그 집안의 돈은 몇 대가 써도 부족함이 없는데 굳이 문제를 만들 필요가 있나? 나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야. 그냥 일도 때려치우고 집에서 술이나 한잔하면서 낚시도 하고 가끔은 카드놀이도 하면서 살겠지. 생각만 해도 얼마나 여유롭겠어?”하지만 그는 정미진이 아니었고 방관자로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다음 날 아침, 권다솔은 간단히 짐을 챙긴 후 캐리어를 끌고 여행사로 향했다.그곳에는 대형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고 모든 인원이 모이자 운전기사는 공항으로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84화

    지금 그의 모습이 헌신짝이랑 다를 게 뭐가 있지?권다솔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을까?배진호는 전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석규리를 등진 채 그녀를 무시했다.석규리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한 통의 메시지를 보낸 뒤 불과 30분도 채 되지 않아 배진호의 어머니가 직접 나타났다.정미진을 본 순간 배진호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엄마! 몸도 안 좋으신데, 게다가 이제 막 수술을 끝내셨잖아요. 퇴원하시면 어떡해요?”“내가 와서 다행이지! 아니면 네가 여기서 얼마나 더 멍청하게 서 있었을지 몰라. 진호야, 엄마가 곧 죽게 생겼는데 너 정말 엄마를 좀 편하게 보내줄 수 없는 거니?”정미진은 배진호의 이마를 꾹 눌러가며 안타까워했다.권다솔의 가정환경이 조금이라도 평범했다면 돈으로 해결했을 것이다.하지만 권다솔은 권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정미진이 아무리 손을 뻗어도 권씨 가문까지 닿을 수 없었기에 결국 배진호에게만 압박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엄마가 부탁할게. 죽기 전에 몇 날이라도 좀 조용히 지낼 수 있게 해줘. 더 이상 문제 일으키지 말고 권다솔과 깨끗이 끝내. 네가 꼭 여기에 남아 있겠다면 엄마도 너랑 같이 있을 거야.”정미진은 외투를 벗어 석규리의 손에 건넸다.그녀는 안에 얇은 옷만 입고 있었다.석규리가 옷을 다시 정미진의 어깨에 덮어주려고 했지만 정미진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엄마가 아들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탓에 내 아들이 한밤중에 여기서 바람 맞고 있잖아. 나만 병실에서 잘 먹고 편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어?”“엄마, 정말 제가 무릎이라도 꿇어야 멈추시겠어요?”배진호의 눈에는 이미 생기가 없어진 채 허망한 표정으로 바라봤다.역시나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진호야, 엄마는 네가 무릎 꿇으라고 이러는 게 아니야. 엄마가 원하는 건 네가 권다솔과 완전히 끝내는 거야. 이게 엄마의 마지막 소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83화

    “있어요! 내일 아침 출발하는 건데, 초원에서 말을 타고 마유주를 마시는 일정이에요. 총 7박 8일이고 모든 비용은 전부 저희가 책임집니다!” 여대생은 너무 기쁜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아르바이트 첫날 만에 벌써 계약을 성사시키다니!급여를 받으면 바로 외할머니 치료비에 보탤 수 있었다.“그럼 그걸로 할게요.”어차피 어디든 상관없었다.여기를 떠나기만 하면 됐다. 더 이상 배진호와 남태건을 마주치지 않는 걸로 충분했다.권다솔은 가이드의 연락처를 추가한 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출발지 근처의 호텔에 묵기로 했다.그리고 방으로 돌아온 뒤 부모님께 영상 통화를 걸었다.“저 내일 여행사 패키지로 여행 가려 해요. 다음 주쯤 돌아올게요.”“좋지! 네 나이에는 이곳저곳 다니며 세상을 봐야 해. 만 권의 책을 읽으려면 만 리를 걸어야 한다잖니. 짐은 다 챙겼니?”김영은은 딸이 여행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다만 여행길이 불편할까 걱정될 뿐이었다.권다솔은 고개를 저었다. 비록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지만 괜찮았다.“요즘 세상이 얼마나 편한데요. 필요한 건 현지에서 사면 돼요.”“다른 건 밖에서 사도 되지만 침구류는 우리가 보내줄게. 네 피부가 워낙 예민해서 호텔 이불 덮었다가 알레르기라도 나면 어쩌려고.”권용민이 덧붙였다.아무리 좋은 호텔이라도 집의 침구와 비길 순 없었다.그는 아직도 권다솔이 어릴 적 피부 알레르기로 한밤중에 병원에 가서 약을 사고 주사를 맞으며 한바탕 난리를 겪었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저 지금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요. 굳이 여기까지 오실 필요 없어요. 너무 번거롭잖아요.”권다솔은 부모님이 늦은 시간까지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그러나 딸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그녀의 마음보다 더 깊었다.권용민은 끝내 직접 가겠다고 고집했고 권다솔은 결국 그들을 이기지 못해 승낙했다.전화를 끊고 나서 그녀는 문득 배진호를 떠올렸다.‘지금쯤 석규리와 단둘이 집에서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다만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82화

    할머니는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아이고, 보아하니 꽤 오랫동안 여기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여자 친구가 아직도 너를 만나주지 않니? 이 할미가 한 가지 충고를 해주고 싶은데 들어볼 생각 있니?”배진호는 당연히 할머니가 그만 포기하라고 할 줄 알았다.만약 여기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배진호 역시 같은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건 당사자만 알 수 있는 법이다. 사랑은 보잘것없는 먼지가 아니기에 바람에 날려 사라질 수 없었다.다만 할머니는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나도 젊었을 때 우리 집 할아버지를 엄청 쫓아다녔단다. 그때 할아버지는 나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집안 사람들 또한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지. 내가 시골 출신이라 배운 게 없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이니? 나는 그저 그 사람 자체가 좋았어. 그렇게 오랫동안 쫓아다녔고 결국 내 사람으로 만들었단다.”할머니는 눈꼬리를 휘어 올리며 말했다.배진호는 본능적으로 물었다.“그러면 두 분이 함께하신 후에도 할아버지 집안 사람들은 여전히 할머니를 예전처럼 대하셨나요?”“그럴 리가 있겠니? 부모는 그저 자식이 좋은 짝을 만나길 바라는 것뿐이야. 일부러 방해하려는 건 아니지. 결혼 후엔 날 친딸처럼 대했단다. 집안의 돈까지 전부 나한테 맡겼으니. 설령 그 집안에서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도 두려울 게 없었어. 어차피 내가 그들보다 오래 살 텐데.”할머니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당당하게 말했다.“적어도 99살까지는 살 거 같아.”배진호는 할머니의 말에 크게 동요했다.그는 권다솔의 부모님이 인품이 훌륭한 분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비록 결혼 전에는 반대했지만 결혼 후에는 축복해 줄 사람들이었다. 그의 어머니처럼 계속해서 방해할 분들이 아니었다.그의 어머니 역시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몸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서 이미 수술을 한 번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 강력히 반대한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까?결국 병문안 갈 때 적당히 연기하면 되는 것이었다.“할머니,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81화

    왜 아침에 눈을 뜨고 나니 권다솔의 태도가 다시 이전처럼 차가워진 걸까?“저를 때리든 욕하든 심지어 문밖에서 밤새 무릎 꿇고 있으라 해도 전 한 마디 불평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다솔 씨, 제발 절 무시하지는 말아줘요.”배진호는 간절히 애원했다.그는 누구에게도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군 적이 없었다.아무리 까다로운 고객이라도 그는 이런 식으로 자세를 낮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유독 권다솔 앞에서는 모든 것을 잃어도 상관없었다. 오직 그녀만은 잃을 수 없었다.권다솔은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다.그러나 배진호의 목소리에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발이 마치 바닥에 붙은 것처럼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그녀는 고개를 저을 뿐 차마 뒤돌아볼 수 없었다. 뒤돌아봤다가는 다시는 떠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진호 씨, 우린 이미 끝났어요. 만약 다시 만나더라도 여긴 아니에요.”둘의 마지막은 구청이어야 했다.이혼 절차를 밟고 나서야 비로소 각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우리가 끝났다고 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요. 다솔 씨 마음속에 제가 없다는 걸 믿을 수 없어요.”배진호는 집착했고 고집스러웠다.권다솔이 그를 뻔뻔하다 욕하든 귀찮다 욕하든 전혀 상관없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잡을 수만 있다면 무슨 말을 들어도 괜찮았다.“우리가 어떻게 다시 돌아가요? 돌아갈 수 없어요. 아이도 없고... 그리고 며칠 전 술을 마시다가...”권다솔은 사실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다.이미 남태건과 관계를 맺은 사실이 그녀의 마음속 깊이 박힌 가시가 되어버렸다.하지만 정작 입을 열려는 순간 그녀는 망설였다.이혼까지 가는 마당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이 사실을 배진호가 알게 되면 그는 분명히 그녀를 경멸할 것이다. 천한 여자라고 생각할 테니.그녀는 한편으로 선을 긋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가 자신을 경멸할까 봐 두려웠다.‘사랑’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다.“그날 다솔 씨가 취했을 때 저도 같은 술집에 있었어요. 그리고 다솔 씨가...”“그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80화

    김영은도 이번 일로 남태건이 막무가내로 느껴졌다.하지만 남태건의 인성에 문제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태건이는 마음이 급해서 그런 걸 거야. 그래서 실수를 하게 되는 거지.”“마음이 급하든 말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쨌든 전 태건 씨랑 결혼할 수 없어요. 그날은 제가 술에 잔뜩 취해서 실수한 거예요. 누군가 제 술잔에 약을 탔거든요. 그래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일어난 것뿐이에요. 전 절대 하룻밤의 실수로 제 평생을 누군가에게 보상으로 주려는 생각은 없어요.”권다솔은 계속 자기 생각을 말했다.아무리 김영은이 설득한다고 해도 그녀는 절대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 생각이 없었다.뛰어드는 건 쉬웠지만 빠져나오는 건 어려웠으니까.더구나 남태건이 이토록 일러바치는 것을 좋아하니 그녀는 더더욱 그와 결혼 할 수 없다. 다 큰 어른이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들처럼 유치하게 굴고 있기 때문이다.“다솔아, 네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우린 그냥 네가 태건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알아가길 바랐을 뿐이야.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꼭 결혼하라는 뜻은 아니었어.”뜻밖에도 김영은은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다.권용민은 옆에서 줄담배를 피우다가 꺼버린 후 김영은의 옆으로 다가왔다.“설령 네가 평생 혼자 산다고 해도 괜찮다. 너 하나쯤은 평생 먹고 살게 해줄 돈은 있으니까. 나랑 네 엄마는 네가 행복한 게 더 중요해. 행복할 방법은 아주 많지. 그중에서 네가 좋아하는 일만 해.”권다솔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이 흘러나왔다.그녀는 이렇게나 좋은 부모님을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이해해줄 뿐만 아니라 그녀의 편을 들어주니까.동시에 그녀는 두렵기도 했다.만약 이렇게 좋은 부모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정말로 억지로 남태건과 결혼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아마 더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정말 고마워요, 엄마, 아빠. 역시 저한테는 두 분밖에 없네요.”권다솔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눈물은 계속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79화

    결혼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김영은은 딸 대신 함부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권용민에게 눈짓했다. 권용민은 얼른 차를 따라주었다.“태건아, 아직 차 한잔도 못 마셨지? 얼른 한잔하면서 좀 쉬어.”“아버님, 어머님. 전 진심으로 다솔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저희는 급도 맞잖아요. 다솔이와 결혼하게 해주신다면 평생 잘해줄 거예요. 저희 부모님께서도 다솔이를 딸처럼 예뻐하고 계시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허락해주세요.”남태건은 찻잔을 받았지만 마시지 않았다.기대하는 얼굴로 권용민과 김영은을 보았다.권용민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태건아, 난 이 일을 우리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결혼 전에 먼저 약혼부터 해야 하잖니. 약혼 전에 상견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모든 걸 절차대로 마쳐야 결혼을 할 수 있는 거란다. 일단 이 물건들을 가져가. 그리고 다음에 내가 집사람과 함께 찾아가마.”남태건은 그의 말에서 거절의 의미를 눈치챘다.하지만 이미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그는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권다솔을 억지로 끌고 가서 혼인신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그는 일단 물러설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가져온 예물과 금붙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남기고 가려고 했다.“태건아, 네가 우리한테 준 선물은 사양하지 않고 받을게. 하지만 예물은 도로 가져가는 게 좋겠구나.”권용민이 허리를 굽혀 짐을 정리하는 순간 남태건은 이미 현관까지 가버렸다.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권용민은 손에 든 쇼핑백을 내려놓았다.“일단 다솔이한테 연락해서 무슨 일인지 물어봐.”김영은도 같은 생각이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권다솔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권다솔은 전화를 받기 전 특별히 거울을 보며 차림새와 머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혈색 없는 입술에 립스틱을 바른 후에야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두 사람을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아빠, 엄마. 전 혼자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너랑 태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78화

    남태건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그는 권다솔의 손도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기에 당연히 사이즈를 알 리가 없었다.“크기 조절 가능한 팔찌는 없어요?”“있긴 한데요. 디자인이 몇 개뿐이라서요. 인기 많은 제품들은 전부 사이즈가 정해져 있어요.”직원은 그를 힐끗보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예비 신부한테 관심이 없다고 하기엔 예물을 전부 최고급을 골랐잖아. 그렇다고 해서 또 예비 신부한테 잘해준다고 하기엔 애매해. 어떻게 여자친구 팔목 사이즈도 모를 수가 있는 거지?'‘꼭 결혼까지 앞뒀는데 동거는커녕 손도 한번 못 잡아본 것 같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을 것 같네.'“괜찮아요. 그걸로 주세요.”남태건은 제일 무거운 팔찌를 골라 쟁반에 올려두었다.“그리고 이거, 봉황이 있는 금목걸이도 주세요.”남씨 가문에 남아도는 것이 돈이었다. 권다솔의 부모님 앞에서 자신의 성의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얼마가 되었든 상관없었다.그가 가게에서 나왔을 때 직원의 입은 귀에 걸려 있었다. 남태건 덕분에 한 달 업적을 하루 만에 달성했기 때문이다.곧이어 남태건은 권용민이 좋아할 만한 비싼 술과 담배를 산 후 권씨 가문 본가로 운전했다. 쇼핑백을 바리바리 들고 오는 남태건의 모습에 김영은은 어안이 벙벙했다.“태건아, 우리 집으로 오는 게 처음도 아니고 이게 다 뭐니? 그냥 내 집이다 생각하면서 오면 되는 건데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아버님, 어머님. 전 오늘 손님으로 찾아온 게 아니에요. 다솔이랑 결혼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남태건은 자신이 사 온 것을 하나씩 열어 보여주었다.그는 물건만 사 온 것이 아니었다. 한 가방의 현금과 예물까지 준비해왔다.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볕에 금붙이들은 반짝반짝 빛났다.권용민과 김영은은 서로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남태건은 아주 신경 써서 선물을 준비해온 것이 그들의 눈에도 보였다. 정말로 권다솔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고 앞으로 두 사람이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77화

    “다솔아... 너 정말로 나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거야?”남태건은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조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나한테 설렌 적 없어?”그는 그동안 아주 많은 노력을 했었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그러나 여전히 권다솔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게다가 우린 함께 밤까지 보냈잖아. 난 정말로 진심으로 널 책임지고 싶어. 그냥 잠만 자고 버리는 나쁜 놈이 되고 싶지 않다고. 다솔아, 다시 한번 생각해줘. 우린 이미 밤까지 보냈다고!”“지금이 어떤 시대인데요. 전 태건 씨를 이해할 수 없네요.”권다솔은 머리가 지끈거렸다.그가 질척이면 질척일수록 그녀의 생각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 앞으로 친구로도 지낼 수 없겠다고 말이다.그녀는 인내심 있게 마지막으로 말했다.“그날 밤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더는 제 앞에서 언급하지 말아요. 만약 태건 씨의 말대로 함께 한번 잤다고 해서 무조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거라면, 이미 아이까지 한 번 있었던 저와 진호 씨는 영원히 떨어지지 말고 함께 살아야 하는 거겠네요?”남태건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저도 모르게 이도 빠득 달았다.“권다솔, 그딴 말로 날 자극하지 마.”두 사람이 다시 잘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남태건은 기분이 불쾌해졌다.권다솔은 말을 이었다.“전 태건 씨를 자극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예시를 들어 알려준 거죠. 그러니까 나가요. 앞으로 더는 찾아와 문도 두드리지 말고요. 방금 같은 일 또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으니까.”“다솔아! 네가 나한테 어떻게 매정할 수가 있어! 차 한잔도 내어주지 않고 지금 날 쫓아내는 거야? 적어도 물 한 잔 마시게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밖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었는데. 나 힘들어 죽겠다고.”남태건은 꼬리를 내렸다.물 한잔쯤 대접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권다솔은 그에게 희망 고문하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예의상 했던 행동이 남태건에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게다가 이번 한 번 타협한다면 두 번째도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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