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와 승아를 들것에 들어갔다.여진숙은 아직 지유에게 따지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일단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승아의 상처가 더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승아가 들것에 올려지는 순간부터 여진숙은 곁을 떠나지 않았고 응급실 입구까지 따라가 두 손을 꼭 모은 채 기도했다.의사는 이현과 승아의 상태에 관해 토론하느라 지유를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옆에 서 있는 지유는 그들이 승아를 위해 분주히 돌아치는 걸 보고 자신이 아웃사이더 같다고 생각했다.승아가 응급실에서 나오자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여진숙이 그녀를 병실로 옮겨갔다.이현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뒤에 서 있는 지유에게 이렇게 말했다.“승아 지금 자극받으면 안 돼. 일단 단둘이 만나는 건 삼가해줘.”지유는 목구멍이 메어왔다. 지금 탓하는 건가?왜 승아를 화나게 했는지 따지면서 앞으로 승아를 괴롭히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이현은 지유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지유가 오해했음을 눈치채고는 지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왜? 기분 상했어?”“현아, 빨리 들어와!”여진숙이 눈물을 훔치며 병실 문을 열고 소리쳤다.“승아가 너 찾아. 네가 없는데 승아가 어떻게 낫겠어.”지유는 급해서 눈물을 흘리는 여진숙을 보며 지유에게 말했다.“일단 밖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갔다 금방 올게.”지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승아와 그녀 사이에서 버려지는 걸 늘 그녀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밖에 선 지유는 마치 아무 관련 없는 방관자 같았다.그렇게 옆에서 승아가 이현의 품에 안겨 힘없이 우는 모습을 지켜봤고, 이현이 그런 승아를 밀어내지 않고 차분하게 승아의 등을 토닥이는 걸 지켜봤다.지유는 허리가 시큰거렸다. 둘이 꽁냥대는 모습을 보기가 싫어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조용히 이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얼마나 지났을까, 온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데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지유야.”여희영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지유가 멀쩡하게 벤치에 앉아 있자
여희영은 깜짝 놀랐다. 놀라움 뒤에 남은 건 분노와 실망뿐이었다.이때 이현이 병실에서 나왔다. 고개를 든 이현이 지유와 함께 있는 여희영을 보며 공손하게 불렀다.“고모.”“그렇게 부르지 마.”화가 치밀어오른 여희영은 이현을 나무라기 시작했다.“내가 고모긴 하니? 지유와 이혼한다며? 이렇게 큰일을 왜 나한테 말하지 않은 거야? 할아버지 당부 잊었어? 지유 잘 보살펴주라고 했는데 이따위로 보살피는 거야? 여이현. 너 자라는 거 옆에서 쭉 지켜봤지만 이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인 줄은 몰랐다. 이혼? 침대에 누워서 별의별 생쇼는 다하는 세컨드 년 때문에 부부간의 연을 끊겠다고?”“어머,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해야죠. 세컨드 년이 뭐예요? 그리고 책임감 소리는 왜 하시는 거예요? 이게 책임감이랑 무슨 상관있다고?”여진숙은 거북하게 들리는 여희영의 말에 처음으로 앞에 나서서 반박했다.“현이가 이혼하든 말든 알아서 할 일이지 아가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어른이랍시고 우리 아들 자꾸 혼내시는데 보기 안 좋아요.”지유는 자신이 한 말로 여희영과 여진숙이 다투게 될 줄은 몰랐다. 하여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얼른 여희영을 뜯어말렸다.이 일이 아니어도 여진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여희영이 하찮다는 듯 코웃음 치며 말했다.“내가 내 조카랑 얘기하고 있는데 왜 끼어들죠? 올케, 지금 나랑 말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요?”“아가씨, 이렇게 나온다 이거죠?”여진숙이 이렇게 말했다.여희영은 늘 여진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여진숙도 마찬가지였다. 하여 둘은 마주칠 때마다 대화가 별로 없었고 모르는 사람보다 못한 사이었다.여희영은 늘 여진숙을 무시했기에 말을 가려 하는 법이 없었다. 여희영은 여진숙을 향해 다가가더니 오만하게 여진숙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이렇게 말했다.“내가 할 소리예요. 엄마가 돼서 현이한테 잘해준 게 뭐에요? 내가 일일이 다 말할 필요 없죠? 여기서 제일 말할 자격 없는 사람이 올케예요. 내가 조카를 어떻게 혼내든 올케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지유도 자책하고 있었다. 오래 참았는데 왜 갑자기 충동적으로 행동한 걸까? 그러지만 않았다면 여희영이 아는 일도 없었을 텐데.“미안해요.”지유는 이현에게 폐를 끼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거둘 수 없었다.이현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로 지유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그러다 끝내 입을 열었다.“그렇게 이혼하고 싶어?”지유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이현과 이혼하고 싶은 걸까?사실 지유가 원하는 건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게 더 컸다. 더는 막연하고 희망이 없는 것에 갇혀 있기 싫었다.지유가 아무 대답이 없자 이현이 다시 물었다.“나랑 같이 있는 게 그렇게 힘들어?”이 말에 지유는 더는 참지 못하고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고 곧 흘러넘칠 것 같았다. 이현이 오히려 온화하게 말하자 지유는 밀려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힘들다기보다는 그가 승아와 꽁냥거리는 걸 더는 보기 싫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중요하지 않다.“조금?”지유는 감정을 들키기 싫어 고개를 숙였다.이현은 생각했다. 비록 결혼한 지 3년이 되긴 했지만 그녀가 그의 곁에 계속 남아있는 건 그 계약서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우석이라는 남자다.우석이라는 남자를 위해 3년간 아무 요구도 꺼낸 적 없었고 그 남자를 위해 한결같이 몸을 지켰다.이렇게 생각한 이현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가슴이 돌에 짓눌린 듯 너무 불편했다.그녀를 놓아줘야 할까?이현이 움켜쥐었던 주먹을 풀더니 덤덤하게 말했다.“계약 기간 3년이 차면 그때 이혼하자.”지유는 하마터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울먹일 뻔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고 지유는 그렇게 서러움을 겨우 눌렀다.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지금 이 순간 체면을 잃기는 싫어 고개를 들고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그래요.”지유의 어여쁜 얼굴을 본 순간 이현은 그제야 그녀가 진심으로 웃는다고 생각했다.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녀는 조금도
이를 본 윤정이 술을 받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온 비서님은 술 안 마십니다. 제가 대신 마실게요.”하지만 그 대표는 별로 탐탁지 않은 듯한 눈빛이었다.“이러면 재미없는데.”윤정은 난감해졌다. 사회 초년생이라 일 처리가 그렇게 매끄럽지 못했고 혹시나 실수해 일을 그르칠까 봐 무서워했다.“온 비서님, 본인이 마셔야 할 술을 부하한테 미루는 건 아니지 않나요?”지유와 윤정은 다 여자였기에 이 대표는 점점 더 눈에 보이는 게 없었고 말투도 매우 거칠었다.“여 대표님을 대신해서 왔다면서요. 여 대표님도 이 자리에 나오면 술을 마다하지 않는데 온 비서님은 더더욱 안되죠. 왔으면 하나가 돼야지. 그래야 재밌지.”“자, 내가 한 잔 쭈욱 따를 테니 마음 놓고 마셔봐요.”다른 대표들도 맞장구를 쳤다.“온 비서님, 좋은 말로 할 때 마셔요. 이 대표님이 마시라면 마셔야지, 핑계 찾지 말고.”“흐름 깨지 마요. 여 대표님이 이러는 거 알면 엄청 혼낼걸?”지유는 이런 장소가 싫었다. 이현이 술을 마신다고 해도 핍박에 의해서 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리를 굽신거려도 모자랄 판에 이현이 싫어할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결국엔 지유가 여자라서 어떻게든 해보려는 것이다.지유는 업무를 하면서 불공평한 상황을 많이 참아왔지만 이런 모욕을 참기는 싫었다.이 대표는 와인잔을 지유의 입가에 갖다 대며 이렇게 말했다.“온 비서님, 마셔요.”윤정은 그들이 지유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온 비서님.”지유는 고개를 돌리며 이 대표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제가 말했을 텐데요. 술 안 마신다고.”이 대표는 표정이 변하더니 와인잔을 테이블에 쾅 하고 내려놓았다. 힘을 너무 세게 줘서 그런지 와인잔이 깨졌고 빨간 와인이 테이블을 적시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에 윤정이 화들짝 놀랐다.“온 비서님, 왜 이렇게 주제를 모르실까? 우리 앞에서 도도한 척이라도 하는 거예요?”알코올의 작용하에 이 대표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발악했다.“여 대표님이 얼마나
그의 손놀림에 지유는 너무 역겨워 더는 견딜 수가 없어 그를 밀쳐냈다.“대표님, 예의 갖추시죠.”“예의는 무슨. 당신은 그냥 여 대표 노리개일 뿐이야. 침대에 얼마나 기어올랐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술 마실 기회를 주는 것도 당신 체면 살려준 거야. 좋은 말로 할 때 마셔.”이 대표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유가 여러 번 거절하자 실성한 듯 다가가 지유를 끌어안았다.“여 대표가 주는 거 나도 줄 수 있어. 내가 별장 하나 줄까? 앞으로 아무 걱정 없이 내 애인 하는 거야. 여 대표를 따라다니는 것보다 더 좋은 조건 아닌가…”“이거 놔요!”인내심이 바닥난 지유는 힘껏 이 대표의 귀싸대기를 갈겼다.“내 몸에 손대지 마요.”귀뺨을 맞은 이 대표는 두 눈이 빨개서는 지유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빌어먹을 년. 감히 나를 때려? 내가 오늘 너 죽이고 만다.”윤정은 너무 무서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유도 그런 윤정이 다칠까봐 걱정이었다.마침 윤정은 문과 가까운 위치에 서 있었기에 지유는 일단 윤정을 밀어내며 이렇게 말했다.“여기는 위험해요. 얼른 가요.”윤정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그럼 온 비서님은 어쩌고요?”지유도 무서워서 손이 떨렸지만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나가야 했다.“나가서 누구든 불러와요. 내 말 들어요. 얼른!”무서움이 많은 윤정이었지만 지유 말은 참 잘 들었다.“가? 가긴 어디를 가? 빌어먹을 년.”이 대표가 미친 듯이 달려오더니 지유의 머리채를 잡았다. 곱게 얹은 지유의 머리가 순간 헝클어졌다. 두피가 지끈거리는데 반응할 새도 없이 싸대기가 날라왔다.싸대기를 정면으로 맞은 지유는 얼굴이 너무 화끈거렸고 방향을 잘 분간할 수 없었다.그렇게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이 대표가 남산만 한 배로 지유의 허리를 누르고 있었다. 초밀착 상태라 이 대표의 입에서 나는 더러운 술 냄새까지 풍겨왔다.너무 역겨워 토하고 싶었지만 이 대표가 두려웠다. 지유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는 발버둥 쳤다.“이거 놔요. 내 털
이현은 마치 지유를 품속에 녹여버릴 듯이 꽉 끌어안았다. 그녀가 더는 상처받지 않게 말이다.그는 턱을 그녀의 머리에 올려놓고 깊이 자책했다.“괜찮아, 지유야, 이제 괜찮아. 내가 왔으니 괜찮아.”지유는 이현의 품에 기댄 채 온몸을 부르르 떨며 치를 떨었다.“왜 이제야 온 거예요? 하마터면, 정말 하마터면 당신 못 보게 될 수도 있었다고요.”이현이 핏기를 잃고 창백해진 지유의 입술을 보더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눈동자에 분노가 가득 차올랐지만 지유를 인내심 있게 다독이며 안전감을 주려고 노력했다.“미안해. 내가 늦었어.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앞으로 다시는 너 혼자 두지 않을게.”지유가 걱정돼서 나와봤는데 그래도 늦은 것이다.지유는 멘탈이 완전 나가서는 흐느꼈다. 그 속에는 그녀의 불안과 두려움과 그에 대한 원망이 들어 있었다.지유는 솜방망이 같은 주먹으로 이현의 가슴을 두드렸다.“아니에요. 당신은 나 버릴 거예요. 언젠가는 나 버릴 거예요. 전에도 그랬잖아요. 지금도 그렇고.”지금까지 지유는 수도 없이 버림을 받았다. 몇 번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그렇게 버려질 때마다 남은 건 실망뿐이었다.이현은 지유를 품에 꼭 끌어안더니 슈트로 그녀를 꽁꽁 감쌌다.“앞으로 절대 그럴 일 없어. 한 번만 믿어줘. 지유야, 앞으로 너 버리지 않는다고 약속할게.”지유는 소리 없이 흐느꼈고 이현의 가슴을 두드리던 손도 힘없이 옆으로 축 늘어졌다. 아직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지 지유는 이현의 품에 안겨 사시나무 떨듯 떨기만 했다. 될 수만 있다면 영원히 단단한 이현의 품에 숨어있고 싶었다. 이현은 인내심 있게 그녀를 다독이며 이마를 천천히 쓰다듬었다.지유의 정서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몸에서 전해지는 떨림도 살짝 약해지자 이현은 허리를 숙여 지유를 소파에 올려주고 데려온 사람에게 보살피라고 했다.이현은 느긋하게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바닥에 누워 비몽사몽한 이 대표를 쏘아봤다.물 한 바가지가 이 대표의 얼굴에 쏟아졌다.꿈에서 깬 이
이현이 나가고 나서도 안에서는 처참한 비명이 끊임없이 들려왔다.지유는 길고 긴 꿈을 꿨다. 꿈에서 어떤 악마가 그녀를 쫓아오고 있었다.달리고 싶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고 그로 인한 거대한 공포에 숨이 턱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지유는 울먹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를 본 이현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했다.지유는 지금 고열을 앓고 있었다.윤정은 옆에서 계속 울기만 했다.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러 나가는데 문 앞에서 마침 이현을 만나게 되었다. 다행히 이현이 제때 도착해 지유를 구해줬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정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윤정은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온 비서님 잘 못 챙겼어요. 온 비서님 지금 열나고 있으니 병원에 데려갈까요?”이현은 지금 차가운 얼음처럼 전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아니에요. 배 비서, 온 비서 집으로 가요.”이현은 이렇게 말하며 지유를 안고 차에 올랐다.윤정은 아직도 자책하며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그만 울어요. 어서 집에 돌아가요. 대표님이 있으니 온 비서님 괜찮을 거예요.”진호가 이렇게 타일렀다.윤정은 다리까지 부들부들 떨며 흐느꼈다.“온 비서님 이렇게 되니까 대표님 마치 딴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그렇게 살기등등한 모습은 처음이에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 진호는 말해줄 수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진호도 이를 이상하게 여겼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진호는 윤정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상황이 정리됐잖아요. 그래도 앞으로 조심해야 해요. 온 비서님 대표님께 특별한 존재예요.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요.”윤정은 약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어두운 침실, 지유가 꿈속에서 놀라 깨어났다.“안돼!”잠에서 덜 깬 상태였지만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아직 시야가 또렷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누군가 자기를 만지는 걸 강력하게 거부했다.“이거 놔!”“나야, 지유야.”이
욕실 문을 열자 지유가 욕조에 앉은 채 온 힘을 다해 몸을 벅벅 문질렀다. 혹시나 이현이 들을까 봐 그러는지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지유야, 그만해!”이현은 얼른 그쪽으로 다가가 자기 몸에 상처를 내고 있는 손을 낚아챘다.지유는 눈시울이 빨개서는 이현의 손을 뿌리치며 발버둥 쳤다.“건드리지 마요. 나 더러워요…”“너 안 더러워.”이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두 손으로 지유의 몸을 끌어안으며 더는 상처를 내지 못하게 막았다.“너 아주 향긋해.”지유의 머릿속엔 온통 이 대표의 배에 단단히 눌려있는 장면이 떠올라 속이 메슥거렸다. 이현이 살짝 건드려도 지유는 자기가 더럽다고 생각해 고개를 저었다.“위로하지 마요. 나 더러워진 거 맞아요. 내가 생각해도 역겨워요.”지유는 이미 빨갛게 달아오른 몸을 마구 비벼댔다.“온지유.”이현이 어떻게 부르든 지유는 들리지 않았다. 몸 곳곳을 벅벅 문지르며 계속 중얼거렸다.“나 더럽혀졌어. 씻어야 해.”“나…”지유가 같은 말을 반복하려다 멈췄다. 떨리는 입술로 경악을 금치 못하며 촉촉한 눈빛으로 이현을 바라봤다. 이현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에 키스한 것이다.“지유야, 너 안 더러워. 깨끗해. 더러운 건 다른 사람이야.”이현의 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따스한 햇살처럼 그녀를 어둠에서 끌어냈다. 목소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행동도 바로 보였다.이현의 입술은 지유가 벅벅 긁어서 빨갛게 달아오른 자리에 놓였고 이 대표가 만졌던 곳에 놓였다. 그는 마치 보물을 대하듯 부드럽게 그녀의 몸 곳곳에 키스하며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여기도 내가 소독했어. 여기도. 그리고 앞으로 절대 너를 괴롭힐 사람은 없을 거야.”이현은 아까 있었던 일로 지유를 역겨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상처에 키스하는 것으로 모든 흔적을 지워주려 했다.지유의 눈동자엔 눈물이 가득 차올랐고 발버둥 치던 것도 멈추었다. 힘을 주며 버티던 손도 스르르 풀렸고 흐느끼는 말투로 이현을 불렀다.“이현 씨.”“응?”이현이 고개를 들어
“왜? 마음이라도 아픈 거야?”“알았어요.”그녀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잠시 후,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켜던 그녀는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최지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왜 불도 안 켜고 있어요?”여울은 놀란 가슴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어두컴컴한 게 좋아서.”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이리 와봐.”여울은 얌전히 다가가 살짝 몸을 숙여 그의 관자놀이를 주물렀다.“왜요? 기분 안 좋아요?”“응.”무심하게 대답하던 그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당신은 나 배신하지 않을 거지?”그 말에 여울은 손끝이 살짝 떨렸다.‘설마 최지후가 뭔가 눈치라도 챈 걸까?’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냥 궁금해서.”그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당연히 그럴 일 없죠. 난 지후 씨 곁에 평생 있을 거예요.”그녀는 예쁜 말로 골라서 했고 원하는 답을 들은 최지후는 이내 환하게 웃었다.“그래. 당신이 날 배신한다면 내가 당신을 지옥으로 끌고 갈 거야.”농담처럼 들리지만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윤슬 씨, 나 어떡하죠? 최근에 회사의 프로젝트들이 지석훈 때문에 다 엉망이 되어버렸어요.”엄우정이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문지원을 건드린 것이 엄청 후회되었다.강윤슬은 그녀를 보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바보같이 왜 일을 만들어서는... 일이 틀어지니까 날 찾아와?’“윤슬 씨, 말 좀 해봐요. 내가 누구 때문에 그런 건데요?”강윤슬이 말이 없자 엄우정은 더 초조해졌다.이번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집에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강윤슬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정 씨, 석훈이는 이제 우정 씨가 알던 사람이 아니에요. 나도 우정 씨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어요.”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문지원 씨를 찾아간다면 어쩌면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문지원 씨는 줄곧 우정 씨와 협력하고 싶어
최주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역시 그럴 줄 알았어. 문지원 씨 때문이 아니라면 네가 나한테 보자고 할 일도 없겠지.”“말해 봐.”한참을 망설이던 지석훈은 끝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됐다. 술이나 먹으러 가자.”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최주하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술잔을 들자마자 최주하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해 보니 여울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잠깐 전화 좀 받게 올게.”지석훈은 고개를 끄덕였고 최주하는 밖으로 나오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야?”“볼 일이 있어서요...”전화를 끊고 최주하는 다시 지석훈에게로 다가갔다. “미안하다.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아. 나중에 시간 되면 내가 술 살게.”“됐어. 일 있으면 가.”최주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혼자 술을 마시던 지석훈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한 그룹의 그 프로젝트, 나한테 넘겨.”전화를 끊은 후, 그는 눈앞의 술잔을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버렸다. 자신이 왜 신한 그룹을 겨냥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본능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한편, 프라이빗한 호텔에 도착한 최주하는 흰 원피스를 입은 채 소파에 앉아 있는 꽃 같은 여인, 여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눈빛은 아무런 파동이 없었다. “말해.”여울은 그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하 씨, 최지후 씨가 저한테 마음을 완전히 연 것 같아요.”그녀의 말대로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현재 최지후는 여울을 완전히 신임하고 있었고 무방비 상태라 그녀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알아. 하지만 난 더 가치가 있는 것이 필요해.”최주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부담감이 확 밀려왔고 최주하가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저... 최지후 씨가 최근에 입찰을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입찰 문서를 손에 넣었어요.”그녀는 급히 입을 열
문지원은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고통스러웠다. 지석훈에게 붙어있으면 조금은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고는 필사적으로 그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부드러운 입술이 닿자 흠칫 놀라던 그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가 앞에 앉아 있는 운전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출발해요. 가장 가까운 호텔로 갑시다.”이내 가림막이 내려졌고 문지원은 여전히 끙끙거리며 그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에 그의 몸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얼마 후, 차가 호텔 앞에 멈춰 섰고 그가 그녀를 안아 들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프런트 데스크에 다가가 블랙 카드를 꺼내며 한마디 했다.“스위트룸으로 잡아줘요.”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은 훤히 다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룸에 들어온 후, 그는 문지원을 침대에 눕혔다. 막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그녀가 그의 목을 감싸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가지 마요.”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문지원, 이건 당신이 선택한 거야.”더 이상 그도 참지 않았고 들끓어 오른 욕정을 드러냈다. ...뜨거웠던 밤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잠에서 깨어난 문지원이 몸을 움직이는데 갑자기 온몸이 쑤시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자마자 그녀는 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그가 천천히 눈을 뜨는데 눈빛은 평온하기만 했다.“깼어?”“저기... 우리...”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지석훈은 아주 자연스러웠다.“걱정하지 마. 책임질게.”“책임... 책임질 필요 없어요. 어젯밤 일은 사고였어요.”어젯밤의 일에 대해 기억이 남아있었고 자신이 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이 일로 지석훈한테 뭔가를 요구하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그한테 고마웠다. 그가 아니었다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니까.“왜? 그렇게 나랑 선 긋고 싶은 거야?”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차갑게 입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종업원은 바로 환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부탁이라니요.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다른 분이셨다면 아마 저한테 드레스값을 배상하라고 했을 거예요. 제 형편에 그건 턱도 없는 일이죠. 정말 감사드립니다.”문지원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냥 옷 한 벌일 뿐이에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에요.”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탈의실로 향했다.“바로 여기입니다. 들어가시죠.”그녀는 별생각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탈의실 안에는 아주 좋은 향이 났고 옷장에는 깨끗한 새 옷이 걸려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세련미가 넘치는 옷들이었다. 손을 뻗어 옷들을 어루만지며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연한 파란색의 긴 드레스를 선택했다. 입고 있던 드레스의 지퍼를 여는데 손이 지퍼에 잘 닿지가 않았다. 사람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이곳은 사람이 흔히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다. 지퍼를 열려고 애를 쓰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도와줄까?”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급히 고개를 돌리니 음흉한 얼굴의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딱 봐도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순식간에 그녀의 안색이 차가워졌다.“여긴 여자 탈의실이에요. 당장 나가시죠.”말을 마친 그녀가 밖으로 걸어 나가려는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졌고 몸이 나른해지면 바닥에 쓰러졌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른 그녀를 남자가 번쩍 안아 올리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많이 예뻐해 줄게.”아직 약간의 의식이 남아 있던 그녀는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파티장 안, 엄우정은 일부러 무심코 한마디 했다.“방금 탈의실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파티장에서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다른 여자들도 그 소리를 듣고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막았다. “설마요. 혹시 방금 문...”순간 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사람들은
지석훈은 밖으로 나온 뒤 그녀를 놓아주었고 문지원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뭐 하는 거예요? 이번 협력이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그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뭐 대단한 프로젝트도 아니잖아. 당신은 자존심도 없어? 그렇게 모욕을 주는 데도 왜 가만히 있는 건데?”그의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억울한 느낌이 들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순간 당황한 지석훈은 얼른 휴지를 꺼내 건네주었다.“왜 울어?”방금 엄우정한테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지석훈의 말 몇 마디에 그녀는 억울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나도 뭐 수모를 당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요?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요. 문정 그룹은 이번 협력이 필요하고 난 의지할 사람이 없어요.”“내가 다른 프로젝트를 찾아줄 테니까 나한테 의지해.”그가 갑자기 한마디 내뱉었다. 그 말에 문지원도 그도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엄우정과의 협력을 내가 망쳤으니 당연히 내가 보상해 줘야지.”“준비하고 있어. 저녁에 나랑 같이 파티에 참석해.”말을 마치고 그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문지원은 웃음이 저절로 나왔고 마음속이 따뜻해졌다. ...그날 저녁, 문지원은 지석훈을 따라 파티 장소로 향했다. 서먹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가 팔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팔짱 껴.”망설이고 있는데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팔짱 안 끼고 나 혼자 들어가게 둘 거야? 사람들이 날 비웃을 텐데?”입술을 오므리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다. 그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저도 모르게 본인이 웃었다는 사실조차 그는 자각하지 못한 것 같다. 파티장에 들어간 뒤, 지석훈은 그녀를 데리고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멀지 않은 곳, 강윤슬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문지원, 이 여우 같은 년.”“지석훈이 문지원한테 푹 빠진 모양이네요.”이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낮추는 그녀의 모습에 엄우정은 엄청 통쾌했다.“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기회를 줘야죠. 하지만...”잠시 말을 멈추던 엄우정은 끝내 뒷말을 계속하지 않았다. 반면, 그 어떠한 기회도 놓치기 싫었던 문지원은 이내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하지만요?”엄우정은 악랄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카톡의 모든 남자 친구에게 당신이 다른 여자의 남자 친구를 빼앗은 나쁜 여자라고 문자를 보내요.”그 순간, 문지원은 분노에 가득 찬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건 그녀에 대한 모욕이었다.마음속으로 대충 짐작이 된 그녀는 분노가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엄 대표님, 협력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입니다. 대표님께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장난을 치시면 안 되죠. 사적인 감정을 업무에 끌어들이면 되겠습니까?”“그래요? 그럼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 같네요.”문지원의 말에 엄우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문지원, 네까짓 게 뭔데...’“문성 그룹에서 이번 기회를 놓친 건 오롯이 당신 문지원 때문이라는 것만 알아둬요.”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말 한마디를 남긴 채 발걸음을 옮겼다.그 순간, 문지원이 그녀의 팔목을 덥석 잡았고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팔목을 잡고 있는 문지원의 눈빛이 조금은 차분해졌다. 침을 꿀꺽 삼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방금은 제가 감정 조절이 잘 안됐습니다.”“그 뜻은 문자를 보내겠다는 말인가요?”그녀의 요구는 악랄했고 이번 협력에 대해 장난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던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억지로 이 굴욕을 삼켰다. 그녀한테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자를 보내는 것일 뿐, 어디가 덧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진실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피식 웃던 엄우정은 조롱이 가득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문지원 씨,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설마 달랑 문자 하나
최지후는 피식 웃었다. 눈앞의 여자가 순수하고 귀여웠다. “여울 씨 생각은?”여울은 그가 최주하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최주하에 비하면 어리석고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손에 잡히다니, 너무 시시한데...’잠깐 망설이던 그녀는 손을 떨며 치마 뒤에 있는 지퍼를 열었다. 지퍼를 반쯤 내리자 매끄럽고 하얀 등이 훤히 드러났고 그가 바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말고.”모처럼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으니 여기서 대충 관계를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순순히 그를 따라 나갔다. 한편, 최주하는 핸드폰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최지후가 이렇게 쉽게 걸려들 것이라는 건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던 일이라 전혀 놀라지 않았다. 남들 앞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사생아의 신분이니 좋은 여자를 만나봤을 리가 있겠는가?그는 최지후 자신보다 최지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캐슬 호텔.룸 안, 문지원은 두 손을 꼭 잡은 채 초조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가끔 고개를 숙이고 손목시계를 확인했고 약속된 시간을 이미 훨씬 넘긴 시각이었다. 미팅을 하기로 했던 협력자가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심하게 찌푸렸다. 얼마 후, 문 앞에서 자물쇠가 비틀리는 소리가 들렸고 검은색 긴 드레스를 입은 차가운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문 대표님,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네요.”문지원은 바로 고개를 들었고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협력은 그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오랜 기다림에 대한 분노는 온데간데없고 눈앞의 사람이 약속 장소에 나타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문지원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저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말을 하면서 문지원은 손을 뻗어 의자를 끌어당겼다. 그러나 눈앞의 여자는 자리에 앉지 않고 그녀를 쳐다보며 차갑게 웃었다 .“문지원 씨, 저랑 협력하고 싶은 거예요?”
방 안에 들어온 여자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과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 예외 없이 눈빛 속에 욕망이 가득했다.최지후는 여자들을 한번 스쳐본 후 흥미를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여자들은 흔히 보던 사람들이라 특별할 게 없었다.그는 차가운 태도로 매니저를 쳐다보며 물었다.“이게 네가 말한 새로 온 애들이야?”술집 매니저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최지후는 그의 중요한 고객이었기에 실수하면 큰일 날 수 있었다.“도련님 혹시 마음에 안 드시나요?” 술집 매니저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최지후는 잠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 없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테이블에 놓인 술잔을 들어 매니저의 얼굴에 확 뿌렸다.“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지? 감히 이런 것들로 대충 넘기려고?”술집 매니저는 잠시 멈칫하다가 곧바로 반응했다. 그는 얼굴을 닦으며 더욱 기를 쓰고 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요. 절대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어요. 도련님 마음에 안 드신다면 바로 다른 사람들로 교체해 드릴게요.”그때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802호 맞나요?”최지후는 그 목소리에 곧바로 반응했다. 그는 목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고 그곳에 눈길이 멈췄다.여자는 흰색 긴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검은 머리는 어깨 위로 흘러내려 있었다. 얼굴에는 화장기가 전혀 없었지만 자연스러우며 청순해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의 눈에는 불안하고 긴장된 기색이 가득했다.그녀는 신임임이 분명했다.최지후는 술집 매니저를 놓으며 말했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진작에 데려왔어야지. 왜 이제야 데려왔어? 좀 더 일찍 데려왔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술집 매니저는 최지후가 눈앞의 여자를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머릿속으로 그가 데려온 사람 중에 이 여자가 있었나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그래도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최지후가 만족하면 그게 제일 중요했다.그는 재치 있게 말했다.“좋은 건 항
여자는 잠시 멈칫하다가 최주하가 너무 많은 금액에 당황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도 알아요. 이 돈이 적은 금액은 아니라는 거... 하지만 저는...”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주하가 말을 끊었다. 그는 다소 불쾌한 듯 여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2억만 있으면 뭐든지 할 거야?”여자는 그 말에 희망의 불씨가 다시 피어났다. 그녀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 뭐든지 할 수 있어요.”최주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좋아. 도와줄 수는 있어. 그런데 너도 나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해.”여자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어요.”그러자 그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일어나서 최주하의 옷을 풀려고 손을 뻗었다.최주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여자의 손목을 잡으며 제지했다.“뭐 하는 짓이야?”그의 눈에 드러난 혐오감에 여자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이건 서로가 알고 있는 은유적인 표현이었다. 여자의 의도는 두 사람 모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여자는 지금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최주하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은 이 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확실히 네 도움이 필요해. 하지만 그 대상은 내가 아니라 내 동생이야.”그렇게 말하며 최주하는 휴대전화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 남자는 최주하와 어느 정도 닮아 보였다.“내 동생이야. 내 동생을 유혹해서 그 옆에 남아있는 거야.”최주하는 간결하게 설명했다.여자는 혼란스러워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금은 꺼리는 눈치였다. 그녀의 목표는 분명 최주하였기 때문이다.최주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고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나가. 강제로 시킬 생각은 없어.”“저 할게요. 하겠습니다.”여자는 곧장 마음을 다잡으며 간절히 말했다.최주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실망하게 하지 마.”최주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의 휴대전화에는 1억이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