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말에 주소영은 충격받은 표정을 짓더니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그러니까 온지유 씨가 여이현 씨 아내라고요?”주소영은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만약 여이현이 정말로 온지유의 남편이었다면 그녀가 모를 리가 없다고, 두 사람이 결혼 사실을 숨길 리도 없다고 생각했다.“네, 맞으니까 얼른 이 손 좀 놔요.”온채린은 손을 빼냈다.“제 형부는 여이현이에요.”주소영은 두 사람을 보았다. 여전히 의심하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지금 저한테 거짓말하시는 거죠? 온지유 씨는 여이현 씨 비서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내인 거예요?”“거짓말할 게 뭐가 있어요.”장수희가 말을 이었다.“내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두 귀로 직접 들은 건데. 우리 조카사위는 심지어 우리 아주버님도 만나러 갔다고요. 우리 아주버님이 온지유 아빠죠. 조카사위는 여이현이고요.”두 사람의 말은 들은 주소영은 다시 충격에 빠졌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정리하곤 말했다.“혹시... 예전에는 모르고 계셨어요?”장수희는 그런 그녀가 의아하면서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도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일찍 알았다면 우리 집은 부자가 되어 있었겠죠!”여씨 가문은 온경준에게만 20억이라는 돈을 주었다.이 돈은 평범한 집안에서 평생을 일해도 모을 수 없는 돈이었다.만약 일찍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들도 돈을 달라고 요구했을 것이다.많이 바라지는 않고 그들은 좋은 집을 하나 마련해줬으면 했다.“여씨 가문이 그렇게 큰데 결혼식은 물론이고 뷔페도 못 가봤다니까요! 둘이 결혼한 것도, 심지어 저렇게 좋은 가문에 시집갔으면서 친척인 우리한테 알려주지도 않고 말이에요. 만약 내가 아주버님을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었다면 평생을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장수희는 말하면서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댔다.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결혼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온지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우리 조카도 참 대단하네요. 행여나 내가 그 떨어지는 콩고물을 조금이라도 받아먹을까 봐 숨기
주소영은 원래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온지유에게 밀려날 것 같았지만 두 사람의 말을 들으니 다시 자신이 생겼다.온지유는 여씨 가문 안주인의 자리에 앉고 있긴 했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게다가 나중에 이혼할 가능성이 아주 컸다.그녀는 두 사람을 보더니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말했다.“두 분 성급하게 들어가지 마세요. 여진 그룹은 들어가기 쉽지 않거든요. 아마 들어가 보기도 전에 문 앞에서 쫓겨날 거예요.”주소영이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난 여이현의 숙모라고요. 누가 감히 날 막아요!”장수희는 숙모라는 명분으로 들어가 심지어 대접받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러자 주소영이 말했다.“온지유 씨가 두 분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요. 온지유 씨는 여이현 씨의 비서예요. 두 분의 출입 소식은 온지유 씨가 제일 먼저 듣게 된다고요. 그런데 정말로 쫓겨나지 않을 거로 생각하세요?”장수희는 그제야 생각을 하며 다소 불쾌한 듯 말했다.“듣고 보니 그렇네요. 병원에 있을 때부터 따박따박 말대꾸했으니까 분명 우리를 쫓아내려고 하겠네요!”“조카라는 년이 어른을 공경할 줄 하나도 모르고 대체 학교에서 뭘 배운 건지, 쯧!”온채린은 그녀의 말에 불안한 듯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요?”장수희는 높게 솟은 건물을 보았다. 건물 제일 위쪽엔 여진 그룹의 로고가 걸려 있었다.이 건물 전체가 여씨 가문의 소유였으니 분명 돈은 차고 넘쳐 흐를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의 가족 중 부잣집으로 시집갈 사람이 있으리라곤 전혀 상상조차 못 해봤다.“제게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두 분 동의하실지 모르겠네요.”주소영이 말랬다.장수희는 고개를 돌려 주소영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아이고 아가씨, 참 좋은 사람이네요. 어떤 방법이 있는데요?”반 시간 뒤.여진 그룹 문 앞에서는 소란이 일어났다.장수희는 로비 직원에게 온지유를 찾으러 왔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분명 그들은 온지유의 친척이었지만 온지유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로비 직원은 온지유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모두에게나 친절하고 욕심도 없는 사람이었고 장수희가 말한 것과 다른 사람이었다.장수희가 계속 난동을 부리니 오히려 장수희가 무례하고 막무가내인 사람으로 느껴졌다.그녀는 보안 요원을 불러 내쫓고 싶었다.하지만 마침 기자 스티커를 붙인 차가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게다가 문 앞에는 환경미화원들이 있었다.기자들은 전부 사회부 기자였고 그들을 취채하러 온 것이니 이런 난동을 그들에게 보일 수 없어 그녀는 장수희에게도 손을 대지 못했다.그때 장수희도 로비 직원이 무엇을 신경 쓰는지 눈치채곤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기자가 있었다.이것은 그녀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장수희는 더는 난동을 부리지 않았고 밖으로 나갔다.“빨리 막아요!”로비 직원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얼른 보안 요원들에게 장수희를 막으라고 소리를 쳤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 사람을 이렇게 막 붙잡아도 되는 거예요?!”장수희는 보안 요원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소리를 쳤다.“온지유가 나 붙잡으라고, 내 입 막으라고 시킨 거죠! 그렇죠!”온채린은 장수희가 곧 붙잡힐 것 같아지자 소리를 질렀다.“살려주세요! 여기 무고한 사람을 때리려고 해요! 사람 때려요!”밖에 있던 기자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회사 안을 보았다.여진 그룹 안에서 일어난 난동에 중요 뉴스감을 잡은 듯 기자들은 바로 달려 들어왔다.그런 기자들을 입구 보안 요원들이 막고 있었지만, 그들은 생방송으로 찍고 있었다.그들은 마침 환경미화원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던 차였다.온채린은 그런 기자들을 보곤 바로 달려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여러분들 보세요! 저희는 이 회사 비서인 온지유의 친척이에요. 온지유에 대해 밝힐 것이 있습니다...”그녀의 말에 기자들은 눈을 반짝였다.온지유라는 비서에 대해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온지유는 여이현의 수행 비서였다. 게다가 금방 환경미화원의 입에서 온지유의 좋은 평가를 듣게 되었으니 이것은 여진 그룹의 스캔
“온 비서님, 큰일 났어요!”온지유는 마침 화장실에서 매무새를 정리하고 나오던 참이었고 다급하게 달려오는 이윤정의 모습에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왜 그렇게 다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는데요.”“온 비서님의 일이에요!”이윤정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저요?”온지유는 이해가 되지 않아 담담하게 물었다.“저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요.”“온 비서님 숙모랑 사촌 여동생이라는 분이 찾아왔어요.”그녀의 말에 온지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두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엄청 골치 아픈 일이 생겼으리라 생각했다.이윤정은 핸드폰을 꺼내 생방송을 보여주었다.그녀의 숙모와 사촌 동생은 그녀의 가족에게서 돈을 뜯어내지 못하자 기자들 앞에서 불쌍한 사람인 척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다.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심지어 그들은 피땀을 흘려 번 돈으로 그녀의 대학 등록금까지 내주었다고 말했다.겨우 대기업에 입사했는데 조금 살만하니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삼촌과 숙모를 모르는 사람 취급한다고, 자신들에게 일전 한 푼 준 적이 없다고, 그녀의 대학 등록금을 부담한 탓에 집안의 재산을 전부 탕진해 온채린이 좋은 학교에 갈 수 없었다고 했다.지금은 집안에 큰일이 생겼지만 온지유는 그럼에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고 가만히 삼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무정하고 냉정하며 배은망덕한 이미지를 그녀에게 만들어주고 있었다.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있었던 터라 많은 댓글이 달렸다.[대박,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일이 있다니. 정말 인간도 아니네!][이 두 사람도 참 불쌍하네요. 옷차림도 소박한 것을 보아 평소에 돈을 아주 아끼며 살았겠네요. 제가 아까 온지유라는 사람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는데 비싼 것만 입고 있더라고요. 심지어 명품 가방까지 들고 있고 말이에요. 참, 이번에 여진 그룹 자선 활동에 한 벌에 몇억 하는 옷을 입고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 여자랑 이 두 사람을 비교해보니 참 하늘과 땅 차이네요!][아, 온지유요? 저 알아요. 저랑 같은 학교 다녔는데
온지유는 로비로 내려가자마자 문 앞에 있는 수많은 기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앞으로 들이민 카메라를 향해 장수희는 울면서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하고 있었다.온채린의 심지어 눈물에 부어버린 눈으로 카메라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여러분들의 관심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있으니 저희는 곧 억울함을 풀 수 있겠네요.”“어떤 억울함?”온지유가 싸늘한 얼굴로 나오며 말했다. 그녀는 두 사람처럼 연기하는 것을 싫어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연기를 한다고 내가 두려움을 느끼고 두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줄 거로 생각했어요?”그들은 모두 온지유에게 시선을 돌렸다. 온지유는 그들이 다가와도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그러자 장수희는 더욱 히스테릭하게 울면서 온지유를 향해 손가락질도 했다.“온지유, 이 양심 없는 것. 난 네 숙모야. 네 숙모한테 어떻게 매정할 수가 있는 거니! 네가 어릴 때부터 내가 그렇게 예뻐해 주고 그렇게 잘해주었는데 어떻게 우리한테 그럴 수가 있는 거니!”“언니, 양심에 찔려서 나온 거죠? 지금이라도 저랑 우리 엄마를 도와준다면 전처럼 다시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거예요.”온채린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기자는 온지유를 보더니 마이크를 건네며 물었다.“온지유 씨, 이 두 분이 사촌 여동생과 숙모라고 주장하시는데 사실인가요?”온지유는 카메라를 보며 담담하게 답했다.“네.”그러자 댓글창이 또 한 번 난리가 났다.[세상에, 전부 사실인가 보네. 그런데도 이렇게 뻔뻔하게 대답하다니, 정말이지 배은망덕한 사람이었어!][인간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돼요. 아무리 지금 잘나간다고 해도 가족을 버리다니요. 심지어 대학교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도와준 숙모인데 대학교에서 헛공부를 했나 보네요.][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나네요. 저도 삼촌이랑 숙모 품에서 자랐는데 너무 공감되네요. 절대 키워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죠!][우리 가서 신고합시다. 저 여자 여진에서 해고당해야 마땅하다고요! 우리가
온채린이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를 위해서 집안의 돈을 다 쓴 탓에 제 대학 등록금도 부모님이 여기저기서 빌린 돈으로 내고 있다고요.”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그들의 거짓말은 점점 더 켜졌다. 더는 주위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다.“배은망덕한 년!”“뻔뻔한 더러운 년!”이때 누군가가 갑자기 온지유를 향해 달걀을 던졌고 그녀의 앞에 툭 떨어졌다.온지유는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쪽에는 이미 몇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손에는 달걀과 밀가루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온지유를 향해 던졌다.온지유는 급히 손으로 막았다. 보안 요원도 얼른 그들에게 다가가 막아섰다.“뭘 막아요! 애초에 뻔뻔하고 사악한 사람인데! 남의 가정을 파탄 낸 것도 모자라 비서인 척 누군가의 내연녀 짓이나 하고 있고 말이에요!”그녀를 향해 달걀을 던진 사람이 말했다.그녀의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어딘가 준비된 사람 같기도 했다.장수희가 찾아오고 사람들이 달걀을 던진다는 건 꼭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이런 상황을 꾸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장수희를 보았다. 기세등등한 것이 그녀가 굴복하는 모습이 보고 싶은 듯했고 여론의 힘을 이기지 못해 얌전히 자신들에게 돈을 주기를 바란 것 같았다.기자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물었다.“온지유 씨, 저분들의 말이 사실인가요? 계속 누군가의 내연녀로 살아오면서 남의 가정을 파탄을 냈나요?”온지유는 화가 치밀었다. 기자들이면서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기삿거리를 위해 막무가내로 취채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녀는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만약 여기서 이성을 잃고 화를 냈다간 저들의 말이 사실로 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당장 저 사람들 잡으세요!”온지유가 차갑게 말했다.“카메라에 찍혔으니 끝까지 책임을 지게 할 겁니다.”“네, 온 비서님!”보안 요원들은 사람들을 둘러쌌다.온지유가 강경하게 나오자 그들은 더는 소란을 피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다시 마음을 다잡은 온지유는 기자를 보면서 네티즌들
멀지 않은 곳에서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미리가 온경준을 태운 휠체어를 밀며 다가왔다. 그녀도 역시나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온지유는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아빠,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장수희는 계속 자신의 말이 맞는다고 억지를 부리면 될 줄 알았지만 온경준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온경준을 본 순간 장수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아주버님.”온경준은 잔뜩 엄숙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감히 내 딸을 이렇게 괴롭히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제수씨, 예전에는 그냥 속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본성은 나쁘지 않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속이 썩은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기자들을 불러 내 딸을 모함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죠!”“아주버님... 그게 아니라... 전 별다른 말 하지 않았어요. 그냥 지유가 숙모인 저를 공경하지 않는다고만 말했을 뿐이에요!”온경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더는 그녀의 변명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그는 결판을 내리기로 했다.“우리 지유를 대체 뭐라고 생각한 거죠?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런 수단을 쓰다니요!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알리고 싶어 하니 그럼 밝혀도 되겠네요. 제수씨네 가족들이 그간 얼마나 부도덕한 짓을 했는지!”장수희는 그제야 두려움을 느끼며 울면서 말했다.“아주버님. 아주버님 안 돼요. 아주버님은 재준 씨 형이잖아요. 동생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러시면 안 되잖아요!”정미리는 불쌍한 척 연기하는 정수희를 더는 참아 줄 수가 없었다.“동서, 이건 동서가 응당 받아야 하는 대가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해야 우리 딸이 얼마나 억울한지 밝힐 수 있지 않겠어?”판이 뒤바뀌어졌다.장수희 가족은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그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형으로서 온경준은 최대한 온재준의 가족을 도와주었으나 그들은 도와준 은혜도 모르고 그의 딸을 모함하고 있었다.상황을 지켜보던 네티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씨X, 반전이 있었어. 뻔뻔한 건 저 모녀였다고! 모두 앞에
온지유도 예상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그게 누군데요?”장수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이름은 몰라. 이름을 물어볼 새가 없었거든. 그냥 아주 젊은 아가씨였어. 내가 정말 미쳤지, 낯선 사람의 말을 철썩 믿었다니!”낯선 사람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더 시끄럽게 곡소리를 내었다.그러나 온채린은 네티즌의 악플 공격을 견뎌낼 수가 없었는지 창백해진 안색으로 울면서 말했다.“어떻게 해요. 전 이제 끝났어요. 인턴은커녕 아무런 회사에서도 저를 받아주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언니, 제발 살려주세요. 여진에서 인턴으로 취직 안 해도 돼요. 그러니까 제발 아니라고만 말해주세요.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해주세요. 앞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고 취직해요!”모녀는 온지유에게 다가가 빌었다.“지유야, 내가 이렇게 빌게. 네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한 번만 봐줘. 내가 이렇게 네 앞에 무릎을 꿇고 빌게!”장수희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딸을 위해 어떻게든 용서를 받으려고 했다.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수록 그녀에게 잔인하게 돌아왔다.정미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더니 일으켰다.“무릎 꿇을 필요도 없어. 괜히 우리가 괴롭힌 거 같잖아. 잊지 마, 모든 악행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사람들 속에서 구경하던 주소영은 상황이 역전하고 온지유가 뭔가를 눈치채자 안색이 파랗게 질려버렸다.온지유가 이렇게나 운 좋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런 상황도 뒤집을 수 있다니 말이다.그녀는 들키고 싶지 않아 얼른 사람들 속에서 빠져나왔다.기자도 자신이 했던 질문이 공격스러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장수희 모녀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자 그제야 온지유에게 말했다.“온지유 씨, 방금은 죄송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런 질문을 했네요. 하지만 이미 방송에 나갔고 저분들이 온지유 씨를 모함한 건 선을 넘은 행동이니 끝까지 책임을 지게 하기를 바랍니다.”그러면서 기자는 떠보듯 말을 보
하지만 감동보다는 오히려 속이 울렁거렸다.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에 문지원은 당장 얼굴이 일그러지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지석훈도 뒤따라 들어오며 물었다.“속이 안 좋아?”“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요즘 세 끼 식사도 꽤 규칙적으로 하고 날것 이거나 차갑거나 매운 음식도 먹지 않았는데...”문지원은 배를 움켜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지석훈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한 듯 방으로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가져왔다.문지원은 놀라며 물었다.“언제 산 거예요?”지석훈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문지원은 아무 말이 없었다.5분 후, 그녀는 복잡한 얼굴로 다시 나왔다. 한 손은 여전히 배 위에 올려져 있었고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정말 임신한 것이다!그녀와 지석훈이 결혼한 지 겨우 3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이렇게 빨리 임신하다니.지석훈은 오히려 태연해 보였다. 하지만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를 보면 그 역시 겉모습처럼 평온하지 않고 흥분을 억누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정말 임신한 거예요?”문지원은 아직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번 달 초에 생리가 끝났기 때문이다.“아마 생리가 끝난 후 며칠 사이일 거야.”지석훈의 목소리는 문지원에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니 그녀의 귀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결국, 그녀는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임신 테스트기는 가끔 틀릴 수도 있으니 이런 일은 직접 검사를 받아보고 확인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녀는 손에 든 검사지를 보고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의사는 마침 지석훈과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축하합니다, 지 원장님. 부인께서 임신 2주 차입니다.”“감사합니다.”지석훈은 침착하게 그녀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병원 진료실을 막 나오자마자 지석훈은 문지원을 품에 안았다.“너무 좋아. 우리 아이가 생겼어.”문지원은 남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을 보며 멍하
물론 손에 있는 일을 무턱대고 모두 남에게 맡기는 것은 너무 과한 부담을 주는 일이다.문지원은 비서를 사무실로 불렀다.“올해 25살이죠?”비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나이는 모두가 다 아는데 문지원 회장이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혹시 소개팅을 시켜주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비서는 고마웠지만 거절하며 말했다.“문 사장님, 저는 아직 젊어서 당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전 당신더러 결혼하라고 하는게 아니에요.”문지원은 펜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그냥 평소에 잡다한 일들을 맡기고 싶어서요.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은 평소에 굳이 내게 제출하지 않아도 돼요.”비서는 그 뜻을 이해했다.이건 곧 그녀에게 승진과 급여 인상을 주려는 것이다. 문지원이 그녀의 의견을 확인한 후 급여를 조금 올려줬고 비서에게 몇 명의 적합한 인재를 추가로 모집해서 예비 인력으로 두라고 지시했다.“평소에 내가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때마다 보고하면 돼요.”비서는 한숨을 쉬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녀 혼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일정이 정리되자 문지원은 업무에서 상당 부분 해방되었다.예전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되어도 일이 끝나지 않고 긴급 통지가 오면 또 회의를 위해 야근을 해야 했다.이제는 오후 4시 반쯤이면 일을 마치고 퇴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비서가 몇 명을 더 찾아서 양성해 두었기에 업무가 적절히 분배되어 모두 바빠 죽을 정도가 아니라 적당히 딱 맞는 분량을 처리할 수 있었다.그 덕에 문지원은 지석훈과 함께 결혼 후의 삶을 더욱 즐길 수 있게 되었다.지석훈도 이에 매우 만족해했다.“널 주려고 선물을 챙겨왔어. 들어가서 한번 봐.”그가 집 문 앞에 다가서더니 걸음을 멈췄다.문지원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안은 어두컴컴했다.“뭐 숨겨놨어요? 아직 불도 켜지 않았네요, 수상하게.”탁! 하며 불이 켜지자 거실의 모든
문지원은 이 주제가 다소 위험하다고 느꼈다. 비록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배석훈이 결혼한 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돼지고기를 먹어보지 않았다고 해도 돼지가 뛰어다니 것을 본 적은 있을 것이다. 문지원은 그러면서도 반쯤 빚어놓은 만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이에 지석훈의 어머니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너희들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아이를 가져야지. 평소에 좀 더 노력해야 한단다.”문지원은 잔소리를 듣고 나서 나오니 기운이 다 빠져있었다.시어머니는 문지원에게 정말 잘해주었다. 거의 마음을 쏟아붓는 수준이었다. 비록 문지원의 집안 사정이 좋은 것을 알면서도 혼수 때 오랜 세월 모은 돈으로 집 한 채를 사서 선물해 주었다. 사실 지석훈도 자기 집이 있었지만, 시어머니는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다. “너희 집도 너희의 것이지만, 이건 내가 어른으로서 선물하는 거란다.”게다가 그 집에는 문지원의 이름도 함께 올려져 있었다.그래서 시어머니의 출산 독촉에도 문지원은 어쩔 수 없이 버텨야만 했다. 다행히도 시어머니는 어린 이들에게 엄격하게 구는 편은 아니었다. 만두를 빚을 때 한 번 그런 말을 했고 또 떠나면서도 지석훈을 불러 몇 마디 잔소리했다. 문지원은 그 모자간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돌아가는 길에 문지원은 약간 궁금해져 지석훈에게 물었다.“나갈 때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셨어요?”“정말 알고 싶어?”“네.”그러자 지석훈은 문지원의 머리를 숙이게 한 후 그녀의 흩어진 머리칼을 살며시 넘겨주며 귀 옆에서 낮게 속삭였다.“우리 아이를 빨리 낳으라고 하셨어.”남자의 낮고 진한 목소리는 얼굴을 붉히고 심장을 뛰게 만드는 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해 문지원의 귀가 금세 붉어지고 말았다.저녁이 되자 지석훈은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문지원의 머리를 받치고 이마를 맞대며 낮은 숨소리를 내쉬었다. 문지원은 마치 파도 속에 잠긴 것
그 눈빛 속에서 조용히 터져 나오는 그 소유욕. 마치 옛 시대의 군벌과 그의 부인 같았다. 그리고 사진작가는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운 없는 사람이 되어 몰래 촬영을 하고 있었다. 사진작가는 자신의 상상에 자극받아 목소리가 떨렸다.“지석훈 씨,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봐주세요.”지석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진작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진작가는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그 후에도 그들은 여러 세트의 사진을 찍었고 찍은 사진들은 모두 문지원에게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문지원은 모든 사진에 다 만족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민국 시대 주제의 사진이었다.“대략 며칠 안에 나오나요?” 그녀가 물었다.사진작가는 답했다.“빠르면 이삼 일정도 걸릴 겁니다. 그때 완성된 사진들을 택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인 부탁이 하나 있는데 혹시 두 분께서 응해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바로 아까 찍은 사진 중 몇 장이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어서 사진관 벽에 걸어두고 싶습니다.”문지원은 사진관에 들어올 때 봤던 사진 벽이 생각났다.“그 벽에 걸어두시겠다는 건가요?”“네.”사진작가는 그 벽은 사진관의 특별한 기념 및 홍보 방법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잘 나온 사진들은 사진 주인에게 동의를 구한 뒤 동의하면 벽에 전시한다고 한다..문지원은 옆에 있던 지석훈을 바라봤다. “저는 괜찮은데, 당신은요?” 지석훈도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마음대로 하도록 해.”며칠 후 문지원은 사진작가가 보내온 사진을 받아 소중히 간직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그 사진관 벽에 전시된 사진들이 곧 사람들의 눈에 띄어 사진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간 것이다.잘생긴 남성과 아름다운 여인의 조합과 최상의 촬영 기술 덕분에 순식간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네티즌들은 저마다 아아 소리를 냈고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마치 옛 시대의 군벌 부인 같다.”“완전 대박이다.”“3분 안에 그들의 모든 정보를 알고 싶다.” 하지만 이 모
문지원은 약간 마음이 움직였다.하지만 웨딩 촬영은 이미 여러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섬에서 몇 세트 찍었고 그 후 결혼식 현장에서 또 몇 세트 찍어 셀 수 없을 정도였다.게다가 이번 촬영은 개인 예약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사진관이 꽤 유명하다고 들었다.물론 사진관 이름에 걸맞게 예약은 거의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이 정도면 지석훈이 얼마나 큰 노력을 들여 예약을 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웨딩사진만 찍는 데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하지만 문지원 역시 이런 곳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기에 무엇을 찍어야 할지 몰랐다.“한번 보세요. 이건 저희가 예전부터 선보였던 스타일들이에요.”사진작가는 친절하게 앨범 한 권을 꺼내 보였다.앨범에는 이전 고객들이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담겨 있었는데 정말 다양한 스타일이 있었고 모두 아름다웠다.이 사진관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정말 최고였다.문지원은 그중에서도 민국 시대 주제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이렇게 찍을 수 있을까요?”사진작가는 그녀가 가리키는 사진을 한 번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됩니다. 먼저 메이크업하고 옷을 갈아입으세요. 직원들이 촬영 스튜디오를 설치할게요.”옷은 사진관에서 준비한 것으로 하고 지석훈의 요구에 따라 전부 새 옷이었다.사실 문지원은 소품용 옷을 입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쨌든 한 번 입었다가 나중에 벗으면 되는 거고 몸에 달라붙지 않아서 안에 옷을 받쳐 입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지석훈은 직업병이 발동했고 그런 건 용납할 수 없었다.결국, 문지원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급히 새 옷을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원래 걸리던 시간에서 15분이 더 추가되었고 메이크업 등 기타 과정도 진행해야 했다.문지원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이미 2시간이 지난 후였다.그러나 결과는 확실했다.곧은 치파오가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쌌고 문지원은 옷자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 마치 지난 옛 시대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결혼 후 문지원은 휴가를 내서 신혼여행을 갈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요즘 지석훈이 거의 계속 병원에 머무르며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을 떠올리며 본의 아니게 한숨이 나왔다. 비록 이미 익숙해졌긴 했지만 실망을 감추기는 어려웠다.비서도 그녀에게 물었다.“문 사장님, 신혼여행 가고 싶지 않으세요? 제 동창 중 한 명이 며칠 전에 결혼했는데 요즘 여기저기서 신혼여행 정보를 알아보며 준비 중이에요. 신혼여행이 없는 결혼은 반은 실패한 거랑 마찬가지라고 하더라고요.”그 말을 들은 문지원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제대로 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비서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했다.“그렇지 않으면... 문 사장님, 지 의사님이 일하시는 곳에 한 번 가보시는 건 어떠세요?”그녀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어쨌든 문지원은 요즘 정신이 산만하여 업무에 집중할 기색도 없었다.문지원은 비서의 시선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요 며칠 동안 집에 돌아와도 지석훈을 보지 못해 한참 혼란스러워했던 자신을 깨달으며 약간 부끄러워졌다.“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기획서 한 부 복사해 가져다주세요.”점심 무렵, 문지원은 막 일을 끝내고 밥 먹으러 가려던 찰나, 핸드폰에 지석훈의 메시지가 떴다. 같이 밥을 먹자는 메시지에 문지원은 미소를 지었다. 멀리서 이 장면을 본 직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웃음을 터뜨렸다.문지원은 재빨리 열쇠를 챙기고 회사를 떠났다. 지석훈은 그녀를 새로 오픈한 가게로 데려갔다.식사를 마친 후 문지원은 지석훈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다가 물었다.“병원에 다시 돌아갈 거예요?”“응?”지석훈은 눈썹을 치켜들며 고의적으로 물었다. “내가 돌아가길 바라는 거야?”그 말을 들은 문지원은 순간 당황했다. 사실 그녀는 지석훈이 자신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길 바랐는데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임에도 불구하고 각자 업무에만 매달려 밤에야 겨우 함께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그녀는 그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지석훈은
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지석훈은 항상 선을 지켰지만 오늘 밤엔 조금 달랐다. 그는 그녀를 침실에서 욕실로 다시 침대로 옮겨가며 몸 곳곳에 뜨거운 입맞춤을 했다.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문지원은 여전히 몸속 깊이 스며든 감각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그리고 그녀는 예상대로 휴가를 냈고 이틀이 지나서야 회사에 다시 나왔다.회사 사람들은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문지원이 출근하자 하나같이 말했다.“문 사장님, 결혼 축하드려요.’문지원은 무려 사흘이나 결근했지만 다들 그 사흘 동안 무얼 했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짐작이 갔다.분명 부부 생활이 아주 좋았겠지, 아니었으면 일까지 내팽개치고 안 나왔을 리가 없다.문지원은 직원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얼굴을 들 수도 없어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지난번에 당한 적이 있었던 터라 문지원은 이제 출근 전에 거울 앞에서 꼼꼼히 점검했다.몸에 키스 자국이 드러나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회사를 향했다.그렇지 않았다면 그 흔적들을 들켰을 경우 정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문지원이 예상치 못했던 건 며칠 지나지 않아 결혼을 축하하는 선물이 회사로 배달됐다는 것이다.문지원은 처음에 여울이 보낸 거라고 생각했지만, 물어보니 아니었다.택배 상자의 외관을 살펴봐도 발신자가 적혀 있지 않아 더욱 수상했다.“이거 가져온 사람이 누가 보낸 건지 말했어요?”문지원이 로비 직원에게 물었다.로비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두고 바로 가버렸어요.”문지원은 뭔가 직감적으로 찜찜한 마음이 들어 그 택배를 챙겼고 사무실에 들어와서야 상자를 열었다.그 안에는 브로치 하나와 축하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문지원은 축하 카드를 집어 들어보니 카드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결혼 축하해요.”글씨체는 아주 정갈하고 예뻐 여성의 필체 같았다.그녀는 곧바로 짐작이 갔다.문지원은 그 브로치를 지석훈에게 보여주자 그는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아무 말 없이 브로치
여울은 아직 최주하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최주하도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문지원이 알기로 여울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고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몰랐다.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 일에 깊이 관여하는 것도 괜히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게다가 얼마 전 지석훈이 슬쩍 귀띔하듯 말했다.“며칠 전에 여울 씨가 병원에 재검진받으러 왔는데 주하가 데리고 왔었어.”그 말을 듣고 문지원은 혀를 끌끌 찼다.평소에 말도 없고 조용하던 여울이 은근히 비밀 많은 타입이었던 모양이었다.그렇게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어느덧 다음 달 중순이 되었다.지석훈은 아예 와인 농장을 통째로 빌려 며칠에 걸쳐 그곳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놓았다.결혼식을 올릴 장소는 바로 거기였다.그 와인 농장은 웬만한 호텔 못지않게 컸고 내부에는 수년간 숙성된 고급 와인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고 결혼식 날 손님들이 오면 바로 꺼내어 대접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들은 결혼 소식을 널리 알리진 않았다.이건 문지원이 원한 방식이었다.그녀는 온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는 그런 결혼식보다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만 초대해서 조용히 축하받는 걸 선호했다.행복은 굳이 남들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까.그런데 결혼식이 한창일 때 지석훈이 무대 위에서 다시 한번 프러포즈했다.해변에서 했던 프러포즈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진중한 분위기였다.“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지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서... 예전엔 내가 사랑인 줄도 모르고 놓쳐버렸던 순간이 많아. 이제는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앞으로 남은 인생... 너랑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그의 말이 끝나자 하객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문지원은 무대 위에서 입을 손으로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식이 끝날 무렵, 문지원은 멀리서 검은색 카이엔 SUV가 그녀의 친구 여울을 데리러 오는 걸 보았다.차창이 천천히 내려가자 예상대로 그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최주하였다
문지원은 문득 자신이 계획에 철저히 걸려들었다는 생각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처음부터 계획한 거죠?”“응.”지석훈은 미소 지으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사실, 그는 그녀를 향한 마음을 오래전부터 숨겨온 것이었다....해변에서의 프러포즈 이후 문지원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손가락에 반짝이는 반지가 생겼다는 점이었다.이 반지는 지석훈이 특별히 맞춤 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우연히 그의 휴대폰을 보다가 두 달 전에 이미 주문이 들어가 있었다는 구매 기록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접한 지석훈의 부모님은 곧바로 혼인신고부터 하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지원은 우연히 지석훈의 어머니가 그를 붙잡고 타이르는 말을 듣게 되었다.“네 아빠랑 난 애초에 너한테 기대도 안 했어. 하루가 멀다고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니 너 같은 애한테 누가 시집오겠나 싶었거든. 그런데 다행히 네가 능력 있어서 지원이 같은 좋은 아이를 데려왔으니 얼른 확실히 붙잡아야지. 빨리 혼인신고부터 해. 나중에 그 아이가 너 버리고 떠나버리면 그땐 어디 가서 울어도 소용없어!”문지원은 그 대화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그런데 신기한 건 지석훈이 워낙 점잖고 진지한 사람이어서 집안 분위기도 매우 조용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퇴직해 한가로운 성격으로 매일 독서나 산책을 즐기는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는 커리어 우먼이었고 호탕한 성격으로 남편에게 엄격하면서도 친화력이 강한 사람이었다.두 분 모두 차분한 듯하면서도 내면에 장난기를 숨기고 있는 아들을 낳을 것 같진 않았는데 이게 바로 유전자의 신비인가 싶었다.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그녀를 좋아해 주는 모습에 문지원도 안심했다. 확실히 시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한편 문지원의 아버지는 지석훈과 따로 대화를 나눈 이후부터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몰라도 그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