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는지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이내 다시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 저랑 엄마가 할아버지 뵈러 왔어요.”“어르신.”이 목소리는 서은지의 엄마 윤미혜의 목소리였다.온지유는 생각에 잠겼다. 여이현이 이렇게나 어르신을 존경하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서씨 집안 사람들과도 아는 사이 같았다.강태규는 웃으며 말했다.“왜 다들 우르르 몰려 왔어.”“할아버지께서 아프시다는데 당연히 뵈러 와야죠.”서은지는 꽃을 꽃병에 꽂은 뒤 강태규를 끌어안았다.“그런데 손님이 계셨네요.”강태규가 말했다.“이현이는 내 전우의 손자야. 그러니까 내 손자랑 다를 바 없는 녀석이지.”“전에 만난 적 있어요.”서은지는 자신이 넘치는 모습으로 여이현을 보았다.“안녕하세요, 대표님. 우리 또 뵙네요.”강태규가 물었다.“은지 너 그동안 해외에 머물고 있었던 거 아니었나? 어떻게 이현이 녀석을 알고 있는 거냐.”“며칠 전에 아빠랑 같이 만났었어요. 대표님이랑 식사도 같이했는걸요.”서은지는 솔직하게 말했다.“할아버지, 저희 아빠는 학교 일 때문에 바쁘셔서 저녁이 되어야 뵈러 오실 것 같다고 하셨어요.”“괜찮다.”강태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난 마음만 받으면 돼.”그들의 대화를 통해 온지유는 서승만이 옛날에 강태규 휘하의 군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강태규는 마음이 너그럽고 자상하여 병사들을 아주 잘 가르쳤다고 했다.서승만이 전역하고 나서도 강태규를 잊지 못한 것을 보면 아주 좋은 스승이었던 것 같았다.여이현은 그들이 화기애애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방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어르신, 어르신을 뵈러 온 사람이 있으니 저흰 이만 먼저 가볼게요.”그러자 윤미혜가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살가운 모습으로 그를 붙잡으려고 했다.“여 대표, 뭘 그렇게 급하게 가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좀 더 이야기하고 가요. 사람이 많으면 더 북적거리고 어르신께서도 좋아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조금 더 있다가 가요.”윤미혜는 여이현을 꼭 사위 보듯 한
서은지는 그를 더는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이름을 불렀다.그녀는 여이현의 길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여이현은 차가워진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시죠, 서은지 씨?”서은지는 그를 보았다. 뼛속까지 거만했던 그녀는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방금 한 말 진짜예요? 정말로 이미 결혼했어요?”그녀는 여이현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그래서 그가 일부러 그녀를 피하려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여이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굳이 거짓말을 해서 뭐해요?”“여이현 씨가 결혼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요. 게다가 여이현 씨 아내가 누군지도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핑계 대는 줄 알았죠.”“서은지 씨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그가 차갑게 굴수록 서은지는 더 흥미가 생겼다. 꼭 사냥감을 찾은 것처럼 반드시 그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그녀는 가지지 못하는 것에 더 흥미를 느꼈다.서은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에게 다가가며 대범한 행동을 했다.“결혼했다고 해서 뭐요. 어차피 나중에 이혼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전 여이현 씨가 결혼해도 상관없어요.”그녀의 말을 들은 온지유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여이현은 막무가내인 사람과 질척거리는 사람을 아주 싫어했다.그런데 서은지가 그런 사람이었다.여이현은 서승만을 봐서라도 서은지의 당돌한 행동을 참아주고 있었다.그러나 서은지가 가까이 다가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쓰다듬자 그는 결국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혐오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그는 잔뜩 어두워진 안색으로 그녀의 손을 쳐내려고 했지만 온지유가 한발 빠르게 서은지의 손을 잡아챘다.“서은지 씨!”온지유가 나설 줄은 몰랐는지 여이현은 다소 의외라는 눈빛으로 온지유를 보았다.서은지도 온지유를 보았다.“그쪽은 여이현 씨 비서가 아니던가요?”온지유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여기는 병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인데 대표님께 그런 행동을 하시면 된다고 생각하세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그녀는 여이현이 그녀에게 생리통 있다는 것까지 알 정도로 세심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온지유는 정말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예전에 그와 평생을 함께 살아도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몸 상태는 어떤지 모를 거로 생각했다.그녀가 언젠가 죽게 되어도 여이현이 제일 마지막으로 알게 되리라 생각했다.지금으로선 시간이 지나면 기억하기 싫어도 기억이 날 것이다.온지유는 생강차를 단번에 마셔버렸다.“푹 쉬어.”여이현은 세심하게 그녀에게 이불까지 덮어주었다.온지유는 그런 그를 빤히 보다가 물었다.“이따가 어디 가는 거예요?”“어디 안 가. 집에 있을 거야.”여이현이 답했다.온지유는 그가 며칠 동안 외박을 하여 오늘도 외박하는 줄 알았다.밖에는 예쁜 여자가 아주 많았으니 그가 머물 곳은 분명 있을 것이었다.여이현은 조금 실망한 듯한 그녀의 표정을 눈치채곤 그녀의 옆으로 눕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많이 아파?”온지유는 순간 경직되었다. 고개를 삐그덕 돌리며 여이현을 보았다.“왜 갑자기 누운 거예요?”“조금 같이 누워있어 주려고.”여이현은 그녀의 아랫배에 올린 손을 움직이며 통증을 덜어주고 싶은 듯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이러면 좀 나아?”온지유는 입술을 틀어 물었다.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그녀는 계속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조금 나아졌어요.”“자꾸 밤새우지 마.”여이현은 나직하게 말했다.“밤을 자주 새우면 몸에 무리가 가거든. 항상 몸조리 잘해야 생리할 때도 많이 아프지 않을 거야.”그의 다정하고도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그에게도 이토록 다정하고 세심한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다.온지유가 말했다.“사실 오늘 저를 데리고 어르신 뵈러 간 것도 저한테는 의외였어요. 게다가 어르신께 저를 아내라고 소개했잖아요.”여이현은 뜸을 들이며 물었다.“혹시 싫었어?”온지유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네가 싫지 않았다면 됐어.”여이현은 행여나 그녀가 싫어
정미리는 아직도 온경준의 병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헛소리를 들었으니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동서, 아무리 그래도 신경 쓴 적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 우리 그이가 언제 도련님 일을 안 도운 적 있어? 도련님이 친 사고는 우리가 다 해결해 줬어. 그렇다고 해서 무슨 일만 있으면 찾아오는 건 너무했지.”“저희도 어쩔 수 없어서 이러는 거 아니겠어요.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형님을 찾아오지 않고 이미 해결했을 거예요.”이렇게 말하며 장수희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엄마, 울지 마요.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장수희의 딸이 위로했다. 정작 울고 싶은 사람은 정미리인데도 말이다.그동안 온경준 일가는 얼마나 많이 시달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입도 뻥끗 안 하다가, 나쁜 일이 있을 때만 찾아오는 친척을 누가 달가워하겠는가?정미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정작 하지는 않았다. 온경준이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친동생인 온재준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온재준 일가는 거머리와 같았다. 한 번 도움을 받고 나면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번 20억 원을 빚지게 된 일도 그랬다. 무조건 버는 장사라고 투자하던 온재준은 정작 온경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이번 일로 그들은 집안이 망할 뻔했다. 크게 다툰 정미리와 온경준은 이혼 얘기까지 꺼냈다. 그래도 다행히 온지유가 해결해 준 덕분에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그러다가 장수희가 또다시 찾아온 것이다. 화가 치밀어 오른 온경준은 크게 넘어졌다가 손목이 골절했다. 그런데도 장수희는 뻔뻔하게 도움을 요구했다. 병실에 누워 있는 온경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습이었다.“도련님은 어디 있어요? 당사자는 어딜 가고 동서랑 딸을 보낸 거예요?”“재준 씨는 숨어 있어요. 요즘 같은 날 밖에서 돌아다니면 맞아 죽을 거예요.”장수희는 붉어진 눈시울로 말을 이었다.“재준 씨가 지난 일로 얼마나 미안해하는지 몰라요. 형이 자기를 위해 쓴 돈을 돌려주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동서, 말조심해. 내 남편 몰골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와? 도대체 우리를 어디까지 끌어내릴 셈이야.”정미리는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좋아요. 그럼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지난번의 20억은 어떻게 해결했어요? 지난번에도 그렇게 돈 없다고 잡아뗐잖아요. 우리 그이는 돈 마련한다고 장기 매매까지 할 뻔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돈은 갚았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죠.”장수희는 줄곧 그들이 어떻게 돈을 갚을 수 있었는지 의심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집에 돈이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아주버님, 그 돈은 어디에서 왔어요? 아버님이랑 어머님의 돈을 우리한테 말하지도 않고 빼돌린 거죠!”장수희는 이성을 잃은 모습이었다. 이건 시부모가 돌아가고부터 줄곧 의심하던 것이었다. 지금도 물론 그들을 도와주고도 남을 돈이 있다고 믿었다.이 말을 듣고 온경준은 격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수희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야, 양심 없는 것!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예요?”온경준은 제대로 정신 차렸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마음이 생기면 이상한 것이었다.이러다가 온경준이 숨이라도 넘어갈 것 같았기에 장수희는 재빨리 타일렀다.“진정해요. 손에 깁스도 했잖아요.”온경준의 반응을 보고 장수희는 뒤늦게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약간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저도 그냥 묻는 것뿐이에요. 의심한 거 절대 아니니까 화내지 마세요.”온경준은 가슴이 아팠다. 그는 이런 사람을 위해 딸을 팔았다. 이건 아마 죽을 때까지 후회할 일일 것이다.‘내가 지유한테 빚진 게 많아...’밖에서 듣고 있던 온지유는 대충 상황 파악이 되었다. 장수희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 것 같았다.그녀는 장수희를 좋아한 적 없었다. 무엇이든 꼬치꼬치 캐묻고, 아량이 작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이렇게 의심이 많고 질투가 심한 사람이 부탁하려고 자존심을 내려놓을 줄은 또 아네.’정미리는 온경준과 온재준이 우애 깊은 형제라는 것을 말한 적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너 어느 대학 출신이지?”“수도권은 돼요.”“미안한데 우리 회사는 명문대만 취급해. 수도권이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온지유는 딱 잘라서 거절했다. 온채린은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그대로 일단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근데 난 언니가 있잖아요. 언니가 도와주는데 학벌이 무슨 소용이에요.”“규칙은 규칙이야. 낙하산은 얼마 가지도 못하고 뒤떨어지게 되어 있어. 회사에서 괜히 명문대 출신을 요구할 것 같아?”온지유의 단호한 태도에 기분 나빠진 온채린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됐어요. 언니가 도와주기 싫어서 이렇게 말하는 거 모를 것 같아요?”“알면 됐어. 뭐든 도움받아서 할 생각하지 마.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거지보다 못한 인생이 될 테니까.”“도와주기 싫으면 싫다고 할 것이지, 사람 저주하는 건 무슨 경우예요? 엄마, 언니 좀 봐요!”모욕을 견딜 수 없었던 온채린은 눈시울이 빨개졌다. 그 모습이 속상했던 장수희는 당연히 온채린의 편에 섰다.“지유야, 넌 동생한테 그게 무슨 발 버릇이니? 동생 좀 챙겨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남들 다 돕고 사는 세월에... 그래, 네 아버지랑 작은아버지도 그렇게 지내왔잖니. 한 가족은 원래 돕고 사는 거야. 혼자 잘나간다고 으스대지 마.”온지유는 눈빛 하나 안 변하면서 대답했다.“제가 언제 으스댔나요? 저는 감사할 줄도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기 싫을 뿐이에요. 인사는커녕 제 아버지를 이렇게 만들어버렸잖아요.”“너...”장수희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또다시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지유야, 너 지금 날 무시하는 거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이건 날 죽이는 것과 마찬...”그녀의 아우성을 듣기 싫었던 온경준은 바로 말을 끊었다.“됐고, 제수씨 집안일은 알아서 해결해요.”“안 돼요, 아주버님! 우리 그이 죽는 꼴 진짜 보고 싶어서 그래요?”이번만큼은 온경준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돌린 것을 보고 장수희는 더욱 언성을 높였다.“냉정한 인간들! 가족이 죽게 생겼는데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여이현이었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면서도 그는 온경준의 침대 곁으로 걸어갔다.차가운 남자의 목소리에 모녀는 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렸다. 온지유는 그가 올 줄 모르는 듯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요?”“병원장이 전화 왔어. 네 아버지가 입원했다고. 그래서 찾아왔지.”“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세요.”깍듯하게 인사부터 한 그는 깁스한 온경준의 손을 바라보며 물었다.“이제 좀 괜찮으세요?”“손목 골절이라 며칠 쉬어야 한대요.”온지유가 대신 대답했다.여이현은 주변을 빙 둘러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여긴 너무 시끄럽네요. 휴식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으니까 VIP 병실로 가시죠.”“아니다, 이현아. 우리가 그럴 형편도 아니고, 여기에서 지내도 괜찮다.”온경준은 약간 못마땅한 눈빛으로 여이현을 바라봤다. 그대로 일단은 관심받는 처지이기에 말은 듣기 좋게 했다.“걱정할 것 없어. 약간 실금이 갔을 뿐이야. 지유야, 이현이 데리고 이만 나가 봐. 병실에는 네 엄마만 있으면 된다.”“괜찮아요. 시간 계산 다 하고 왔으니까요.”여이현은 아직도 VIP 병실로 옮기고 싶었지만, 온경준의 뜻을 존중해야 했기에 질문부터 했다.“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정말 괜찮겠어요?”“그래. 말동무가 있어야 적적하지 않지. 혼자 있으면 답답해서 못 살 거야.”여이현도 이해는 되었기에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곁에서 지켜보던 장수희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알기로 온경준에게는 자식이 온지유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여이현이 온경준과 정미리를 대하는 태도와 온지유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봤을 때, 그녀는 별로 어렵지 않게 사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장수희는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지유야, 이쪽은 누구니? 네 남편이야?”속으로 답을 내렸던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왜 결혼할 때 나한테 알리지 않았니? 알렸으면 내가 용돈이라도 줬을 거 아니야.”그녀는 또 온경준과 정미리를 바라보며 말
“형부.”온채린은 온지유에게 부탁할 바에는 여이현에게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저 한 달 후에 인턴 자리가 필요하거든요? 형부네 회사에 가서 해도 돼요? 그냥 그런 경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기만 하면 돼서 귀찮게 굴지는 않을 거예요.”장수희도 말을 보탰다.“그래.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다 지유 친척인데, 한 번만 도와줘. 그래야 애가 후에 좋은 일자리를 찾지.”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는 여이현까지 이용하려는 그들의 뻔뻔함이 놀라울 따름이었다.그녀는 여이현을 바라봤다. 첫 만남에 안 좋은 인상을 남겼을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두 사람은 이런 귀찮은 일까지 도울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다.‘나만 귀찮아졌네.’온지유는 똑똑히 알았다. 장수희 일가를 절대 도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한 번이 있으면 두 번이 생기기 마련이다. 짜증 나는 와중에도 그녀는 나긋나긋하게 말했다.“숙모 진짜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이현 씨한테 뭐가 있든 다 이현 씨의 것이에요. 숙모를 도울 의무는 없다는 말이죠. 사람 난감하게 굴지 마시고 이만 가세요.”“우리가 너한테 부탁했니? 이현이한테 부탁했지. 아, 알겠다. 너 재벌가에 시집가면서 20억을 받았구나?”장수희는 또 온경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주버님도 그래요. 이렇게 좋은 사위가 있으면 우리한테도 알려줬어야죠. 진작 알았으면 골치 아프게 고민할 일도 없었을 텐데.”온경준은 지금처럼 낯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정말이지 얼굴을 쳐들 수가 없을 정도였다.“사람이 말이야, 정도가 있어야지! 우리 사위한테 뭐 하는 짓이야!”“아이고, 가족끼리 뭘 따지고 그래요. 한쪽이 힘들면 돕는 게 당연한데. 아주버님 재벌 사위의 용돈으로도 모자란 돈이잖아요. 별로 큰 일도 아닌데 왜 그러세요. 이현아, 맞지?”장수희의 질문에 여이현은 말없이 온지유를 바라봤다. 그녀에게 결정권을 넘긴 것이었다.만약 온지유도 도와달라고 하면 그는 두말없이 도울 것이다. 온씨네 일에 인색하게 굴 것은 없었기 때문이
“왜? 마음이라도 아픈 거야?”“알았어요.”그녀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잠시 후,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켜던 그녀는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최지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왜 불도 안 켜고 있어요?”여울은 놀란 가슴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어두컴컴한 게 좋아서.”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이리 와봐.”여울은 얌전히 다가가 살짝 몸을 숙여 그의 관자놀이를 주물렀다.“왜요? 기분 안 좋아요?”“응.”무심하게 대답하던 그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당신은 나 배신하지 않을 거지?”그 말에 여울은 손끝이 살짝 떨렸다.‘설마 최지후가 뭔가 눈치라도 챈 걸까?’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냥 궁금해서.”그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당연히 그럴 일 없죠. 난 지후 씨 곁에 평생 있을 거예요.”그녀는 예쁜 말로 골라서 했고 원하는 답을 들은 최지후는 이내 환하게 웃었다.“그래. 당신이 날 배신한다면 내가 당신을 지옥으로 끌고 갈 거야.”농담처럼 들리지만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윤슬 씨, 나 어떡하죠? 최근에 회사의 프로젝트들이 지석훈 때문에 다 엉망이 되어버렸어요.”엄우정이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문지원을 건드린 것이 엄청 후회되었다.강윤슬은 그녀를 보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바보같이 왜 일을 만들어서는... 일이 틀어지니까 날 찾아와?’“윤슬 씨, 말 좀 해봐요. 내가 누구 때문에 그런 건데요?”강윤슬이 말이 없자 엄우정은 더 초조해졌다.이번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집에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강윤슬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정 씨, 석훈이는 이제 우정 씨가 알던 사람이 아니에요. 나도 우정 씨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어요.”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문지원 씨를 찾아간다면 어쩌면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문지원 씨는 줄곧 우정 씨와 협력하고 싶어
최주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역시 그럴 줄 알았어. 문지원 씨 때문이 아니라면 네가 나한테 보자고 할 일도 없겠지.”“말해 봐.”한참을 망설이던 지석훈은 끝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됐다. 술이나 먹으러 가자.”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최주하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술잔을 들자마자 최주하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해 보니 여울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잠깐 전화 좀 받게 올게.”지석훈은 고개를 끄덕였고 최주하는 밖으로 나오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야?”“볼 일이 있어서요...”전화를 끊고 최주하는 다시 지석훈에게로 다가갔다. “미안하다.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아. 나중에 시간 되면 내가 술 살게.”“됐어. 일 있으면 가.”최주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혼자 술을 마시던 지석훈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한 그룹의 그 프로젝트, 나한테 넘겨.”전화를 끊은 후, 그는 눈앞의 술잔을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버렸다. 자신이 왜 신한 그룹을 겨냥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본능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한편, 프라이빗한 호텔에 도착한 최주하는 흰 원피스를 입은 채 소파에 앉아 있는 꽃 같은 여인, 여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눈빛은 아무런 파동이 없었다. “말해.”여울은 그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하 씨, 최지후 씨가 저한테 마음을 완전히 연 것 같아요.”그녀의 말대로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현재 최지후는 여울을 완전히 신임하고 있었고 무방비 상태라 그녀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알아. 하지만 난 더 가치가 있는 것이 필요해.”최주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부담감이 확 밀려왔고 최주하가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저... 최지후 씨가 최근에 입찰을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입찰 문서를 손에 넣었어요.”그녀는 급히 입을 열
문지원은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고통스러웠다. 지석훈에게 붙어있으면 조금은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고는 필사적으로 그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부드러운 입술이 닿자 흠칫 놀라던 그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가 앞에 앉아 있는 운전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출발해요. 가장 가까운 호텔로 갑시다.”이내 가림막이 내려졌고 문지원은 여전히 끙끙거리며 그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에 그의 몸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얼마 후, 차가 호텔 앞에 멈춰 섰고 그가 그녀를 안아 들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프런트 데스크에 다가가 블랙 카드를 꺼내며 한마디 했다.“스위트룸으로 잡아줘요.”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은 훤히 다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룸에 들어온 후, 그는 문지원을 침대에 눕혔다. 막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그녀가 그의 목을 감싸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가지 마요.”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문지원, 이건 당신이 선택한 거야.”더 이상 그도 참지 않았고 들끓어 오른 욕정을 드러냈다. ...뜨거웠던 밤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잠에서 깨어난 문지원이 몸을 움직이는데 갑자기 온몸이 쑤시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자마자 그녀는 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그가 천천히 눈을 뜨는데 눈빛은 평온하기만 했다.“깼어?”“저기... 우리...”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지석훈은 아주 자연스러웠다.“걱정하지 마. 책임질게.”“책임... 책임질 필요 없어요. 어젯밤 일은 사고였어요.”어젯밤의 일에 대해 기억이 남아있었고 자신이 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이 일로 지석훈한테 뭔가를 요구하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그한테 고마웠다. 그가 아니었다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니까.“왜? 그렇게 나랑 선 긋고 싶은 거야?”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차갑게 입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종업원은 바로 환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부탁이라니요.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다른 분이셨다면 아마 저한테 드레스값을 배상하라고 했을 거예요. 제 형편에 그건 턱도 없는 일이죠. 정말 감사드립니다.”문지원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냥 옷 한 벌일 뿐이에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에요.”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탈의실로 향했다.“바로 여기입니다. 들어가시죠.”그녀는 별생각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탈의실 안에는 아주 좋은 향이 났고 옷장에는 깨끗한 새 옷이 걸려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세련미가 넘치는 옷들이었다. 손을 뻗어 옷들을 어루만지며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연한 파란색의 긴 드레스를 선택했다. 입고 있던 드레스의 지퍼를 여는데 손이 지퍼에 잘 닿지가 않았다. 사람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이곳은 사람이 흔히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다. 지퍼를 열려고 애를 쓰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도와줄까?”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급히 고개를 돌리니 음흉한 얼굴의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딱 봐도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순식간에 그녀의 안색이 차가워졌다.“여긴 여자 탈의실이에요. 당장 나가시죠.”말을 마친 그녀가 밖으로 걸어 나가려는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졌고 몸이 나른해지면 바닥에 쓰러졌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른 그녀를 남자가 번쩍 안아 올리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많이 예뻐해 줄게.”아직 약간의 의식이 남아 있던 그녀는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파티장 안, 엄우정은 일부러 무심코 한마디 했다.“방금 탈의실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파티장에서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다른 여자들도 그 소리를 듣고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막았다. “설마요. 혹시 방금 문...”순간 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사람들은
지석훈은 밖으로 나온 뒤 그녀를 놓아주었고 문지원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뭐 하는 거예요? 이번 협력이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그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뭐 대단한 프로젝트도 아니잖아. 당신은 자존심도 없어? 그렇게 모욕을 주는 데도 왜 가만히 있는 건데?”그의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억울한 느낌이 들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순간 당황한 지석훈은 얼른 휴지를 꺼내 건네주었다.“왜 울어?”방금 엄우정한테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지석훈의 말 몇 마디에 그녀는 억울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나도 뭐 수모를 당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요?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요. 문정 그룹은 이번 협력이 필요하고 난 의지할 사람이 없어요.”“내가 다른 프로젝트를 찾아줄 테니까 나한테 의지해.”그가 갑자기 한마디 내뱉었다. 그 말에 문지원도 그도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엄우정과의 협력을 내가 망쳤으니 당연히 내가 보상해 줘야지.”“준비하고 있어. 저녁에 나랑 같이 파티에 참석해.”말을 마치고 그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문지원은 웃음이 저절로 나왔고 마음속이 따뜻해졌다. ...그날 저녁, 문지원은 지석훈을 따라 파티 장소로 향했다. 서먹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가 팔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팔짱 껴.”망설이고 있는데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팔짱 안 끼고 나 혼자 들어가게 둘 거야? 사람들이 날 비웃을 텐데?”입술을 오므리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다. 그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저도 모르게 본인이 웃었다는 사실조차 그는 자각하지 못한 것 같다. 파티장에 들어간 뒤, 지석훈은 그녀를 데리고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멀지 않은 곳, 강윤슬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문지원, 이 여우 같은 년.”“지석훈이 문지원한테 푹 빠진 모양이네요.”이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낮추는 그녀의 모습에 엄우정은 엄청 통쾌했다.“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기회를 줘야죠. 하지만...”잠시 말을 멈추던 엄우정은 끝내 뒷말을 계속하지 않았다. 반면, 그 어떠한 기회도 놓치기 싫었던 문지원은 이내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하지만요?”엄우정은 악랄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카톡의 모든 남자 친구에게 당신이 다른 여자의 남자 친구를 빼앗은 나쁜 여자라고 문자를 보내요.”그 순간, 문지원은 분노에 가득 찬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건 그녀에 대한 모욕이었다.마음속으로 대충 짐작이 된 그녀는 분노가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엄 대표님, 협력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입니다. 대표님께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장난을 치시면 안 되죠. 사적인 감정을 업무에 끌어들이면 되겠습니까?”“그래요? 그럼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 같네요.”문지원의 말에 엄우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문지원, 네까짓 게 뭔데...’“문성 그룹에서 이번 기회를 놓친 건 오롯이 당신 문지원 때문이라는 것만 알아둬요.”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말 한마디를 남긴 채 발걸음을 옮겼다.그 순간, 문지원이 그녀의 팔목을 덥석 잡았고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팔목을 잡고 있는 문지원의 눈빛이 조금은 차분해졌다. 침을 꿀꺽 삼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방금은 제가 감정 조절이 잘 안됐습니다.”“그 뜻은 문자를 보내겠다는 말인가요?”그녀의 요구는 악랄했고 이번 협력에 대해 장난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던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억지로 이 굴욕을 삼켰다. 그녀한테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자를 보내는 것일 뿐, 어디가 덧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진실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피식 웃던 엄우정은 조롱이 가득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문지원 씨,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설마 달랑 문자 하나
최지후는 피식 웃었다. 눈앞의 여자가 순수하고 귀여웠다. “여울 씨 생각은?”여울은 그가 최주하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최주하에 비하면 어리석고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손에 잡히다니, 너무 시시한데...’잠깐 망설이던 그녀는 손을 떨며 치마 뒤에 있는 지퍼를 열었다. 지퍼를 반쯤 내리자 매끄럽고 하얀 등이 훤히 드러났고 그가 바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말고.”모처럼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으니 여기서 대충 관계를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순순히 그를 따라 나갔다. 한편, 최주하는 핸드폰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최지후가 이렇게 쉽게 걸려들 것이라는 건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던 일이라 전혀 놀라지 않았다. 남들 앞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사생아의 신분이니 좋은 여자를 만나봤을 리가 있겠는가?그는 최지후 자신보다 최지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캐슬 호텔.룸 안, 문지원은 두 손을 꼭 잡은 채 초조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가끔 고개를 숙이고 손목시계를 확인했고 약속된 시간을 이미 훨씬 넘긴 시각이었다. 미팅을 하기로 했던 협력자가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심하게 찌푸렸다. 얼마 후, 문 앞에서 자물쇠가 비틀리는 소리가 들렸고 검은색 긴 드레스를 입은 차가운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문 대표님,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네요.”문지원은 바로 고개를 들었고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협력은 그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오랜 기다림에 대한 분노는 온데간데없고 눈앞의 사람이 약속 장소에 나타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문지원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저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말을 하면서 문지원은 손을 뻗어 의자를 끌어당겼다. 그러나 눈앞의 여자는 자리에 앉지 않고 그녀를 쳐다보며 차갑게 웃었다 .“문지원 씨, 저랑 협력하고 싶은 거예요?”
방 안에 들어온 여자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과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 예외 없이 눈빛 속에 욕망이 가득했다.최지후는 여자들을 한번 스쳐본 후 흥미를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여자들은 흔히 보던 사람들이라 특별할 게 없었다.그는 차가운 태도로 매니저를 쳐다보며 물었다.“이게 네가 말한 새로 온 애들이야?”술집 매니저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최지후는 그의 중요한 고객이었기에 실수하면 큰일 날 수 있었다.“도련님 혹시 마음에 안 드시나요?” 술집 매니저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최지후는 잠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 없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테이블에 놓인 술잔을 들어 매니저의 얼굴에 확 뿌렸다.“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지? 감히 이런 것들로 대충 넘기려고?”술집 매니저는 잠시 멈칫하다가 곧바로 반응했다. 그는 얼굴을 닦으며 더욱 기를 쓰고 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요. 절대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어요. 도련님 마음에 안 드신다면 바로 다른 사람들로 교체해 드릴게요.”그때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802호 맞나요?”최지후는 그 목소리에 곧바로 반응했다. 그는 목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고 그곳에 눈길이 멈췄다.여자는 흰색 긴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검은 머리는 어깨 위로 흘러내려 있었다. 얼굴에는 화장기가 전혀 없었지만 자연스러우며 청순해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의 눈에는 불안하고 긴장된 기색이 가득했다.그녀는 신임임이 분명했다.최지후는 술집 매니저를 놓으며 말했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진작에 데려왔어야지. 왜 이제야 데려왔어? 좀 더 일찍 데려왔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술집 매니저는 최지후가 눈앞의 여자를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머릿속으로 그가 데려온 사람 중에 이 여자가 있었나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그래도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최지후가 만족하면 그게 제일 중요했다.그는 재치 있게 말했다.“좋은 건 항
여자는 잠시 멈칫하다가 최주하가 너무 많은 금액에 당황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도 알아요. 이 돈이 적은 금액은 아니라는 거... 하지만 저는...”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주하가 말을 끊었다. 그는 다소 불쾌한 듯 여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2억만 있으면 뭐든지 할 거야?”여자는 그 말에 희망의 불씨가 다시 피어났다. 그녀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 뭐든지 할 수 있어요.”최주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좋아. 도와줄 수는 있어. 그런데 너도 나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해.”여자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어요.”그러자 그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일어나서 최주하의 옷을 풀려고 손을 뻗었다.최주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여자의 손목을 잡으며 제지했다.“뭐 하는 짓이야?”그의 눈에 드러난 혐오감에 여자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이건 서로가 알고 있는 은유적인 표현이었다. 여자의 의도는 두 사람 모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여자는 지금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최주하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은 이 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확실히 네 도움이 필요해. 하지만 그 대상은 내가 아니라 내 동생이야.”그렇게 말하며 최주하는 휴대전화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 남자는 최주하와 어느 정도 닮아 보였다.“내 동생이야. 내 동생을 유혹해서 그 옆에 남아있는 거야.”최주하는 간결하게 설명했다.여자는 혼란스러워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금은 꺼리는 눈치였다. 그녀의 목표는 분명 최주하였기 때문이다.최주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고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나가. 강제로 시킬 생각은 없어.”“저 할게요. 하겠습니다.”여자는 곧장 마음을 다잡으며 간절히 말했다.최주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실망하게 하지 마.”최주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의 휴대전화에는 1억이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