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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6화

작가: 류한나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2-17 19:00:00
배진호가 백일잔치에서 청혼했기에 여이현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배진호와 권다솔은 그의 왼팔과 오른팔이었을 뿐 아니라 믿을 만한 부하직원이었다.

“아마 결혼하지 못할 것 같아요.”

배진호는 여이현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여이현은 바로 눈치를 챘다. 권다솔의 집안에서 배진호와의 결혼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반면 배진호의 집안에서는 오히려 결혼을 재촉하고 있었다. 여하간에 배진호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까.

여이현은 그런 배진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 할 수 있을 거예요. 일단 휴가를 줄게요. 먼저 권다솔 씨 마음부터 완전히 얻고 장인어른이 그쪽 집안 사업을 이으라고 하면 가요. 여긴 내가 다른 비서를 새로 또 뽑으면 되니까. 여하간에 배 비서 인생보다 중요한 일은 없잖아요.”

여이현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배진호는 그와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해온 사람이었다. 대충 계산을 해보아도 10년은 훌쩍 넘었다.

배진호는 그의 비서였을 뿐 아니라 친구이자 형제, 가족 같은 사람이었다.

배진호에게 더 좋은 선택이 있다면 그는 축복해줄 뿐 아니라 배진호를 도와줄 마음도 있었다.

애당초 그가 바라던 일에 배진호의 도움이 없었다면 완성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대표님, 전 이미 대표님 곁에서 평생 일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 제가 만약 사직서를 낸다면...”

배진호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여이현은 나직하게 웃었다.

“배 비서가 행복해지는 길이라면 난 괜찮아요. 오히려 기쁘기만 한데 내가 왜 배 비서가 날 배신했다고 생각하겠어요? 그리고 내 곁에서 일한 게 어디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요. 배 비서, 배 비서가 사직한다면 물론 나도 처음엔 많이 힘들겠죠. 그래도 세상엔 인재가 많잖아요. 배 비서처럼 일 잘하는 비서로 새로 뽑거나 키우면 되는 거지만 행복해질 기회는 많지 않아요.”

그는 배진호 없이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도 배진호가 곁에 남아주길 바랐지만,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배진호의 행복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가요. 배 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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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은은 배진호가 이렇듯 단호할 줄은 몰랐다.그럼에도 그녀는 배진호에게 분명하게 말했다.“배진호 씨, 만약 배진호 씨가 한 아이의 부모라면 이미 성공을 이룬 사위와 창업을 시도하고 있는 사위 중 누굴 선택하겠어요?”“전 전자를 선택할 겁니다. 하지만 어머님, 전 그래도 제게 한 번만이라도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전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거든요.”배진호는 단정한 자세로 김영은 앞에 서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도 확고해 보였다.그는 여러 방면에서 유능한 인재였다.특히 그의 일거수일투족에선 상인의 기질이 보였고 왕자의 기품도 느껴지기도 했다.여하간에 여이현의 곁에서 10년을 넘게 일한 사람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하지만 배진호와 여이현을 비길 수는 없었다. 여이현의 등 뒤로 여진 그룹이 있었을 뿐 아니라 온지유의 친부와 여이현의 친부 또한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여이현이 아무리 배진호를 가족처럼 여긴다고 해도 배진호는 그저 비서일 뿐이다.여진 그룹을 배진호에게 넘겨줄 리도 없었다. 배진호는 여이현의 은혜를 입고 성공을 한다고 해도 절대 여이현을 공격하는 어떠한 짓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다정 그룹은 경성의 일인자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배진호는 아무런 뒷배경도 없었고 지위도 없었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주지도 못하는데 굳이 왜 이런 그를 사위로 받아들이겠는가.그렇다고 해서 배진호에게 자선 사업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모든 걸 배진호에게 넘길 수도 없었다. 넘기는 순간 여진 그룹과 합쳐질 가능성이 있으니까.김영은도 원래 이런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으나 해야 할 것 같았다.그녀는 차갑게 말했다.“다솔이를 사랑하는 것 외에 가진 게 뭐가 있죠? 그동안 여진 그룹을 위해 충성을 다 한 거? 하지만 우리 다솔이는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랐어요.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입고, 좋은 것만 보고 자랐다고요. 권씨 집안에서 누린 모든 것이 배진호 씨와 함께 사는 것보다 좋을 거예요.”“배진호 씨, 그래도 포기가 되지 않는다면 나랑 다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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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김영은은 권다솔을 혼내기도 했다.“이미 선 자리 알아봤으니까 집안에 얌전히 있어. 이따가 맞선 상대가 집으로 올 거야. 네 아빠 심기를 거슬러서 또 집에 갇혀 지내고 싶지 않은 거라면 얌전하게 있는 게 좋을 거야!”소파에 앉은 김영은은 엄격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 기세는 엄청났다.이때 아픈 척하고 있던 권용민이 나왔다.“네 엄마도 마음이 약해져서 그 자식을 집안까지 들인 거야. 만약 나였으면 곱게 돌려보내지 않았을 거라고. 계속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하면 사람을 불러 쫓아냈을 거야!”권다솔은 숨 막혔다.자신의 부모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곤 전혀 상상도 못 했다.그녀의 부모님은 늘 다정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었다. ‘성공한 사람' 같은 단어가 그들의 입에서 나올 줄 몰랐다. 심지어 억지로 맞선 자리까지 만들다니.대체 그녀를 뭐로 생각한 걸까?상품처럼 팔아버리려는 걸까?권다솔은 자조적으로 말했다.“우리 가문이 크면 얼마나 크고 재산이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요. 대체 언제쯤이 되어야 만족하실 건데요. 대체 언제 욕심을 그만 부릴 건데요?!”“여이현은 경성 일 인자예요. 차라리 여이현을 사위로 맞이하시지 그래요?”권다솔은 이성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의 탓이라곤 할 수 없었다. 여하간에 그녀의 부모님이 먼저 심한 말을 했으니까.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의 말대로 여이현을 사위로 맞이할 생각도 한 적 있었다. 하지만 여이현에겐 이미 아내가 있었고 여이현은 가정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아내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그들에겐 방법이 없었다.권다솔은 두 사람의 눈빛에서 모든 걸 눈치채게 되었다. 순간 모든 것이 가소로웠다.“저더러 굳이 여진 그룹의 비서로 입사하라고 했던 게 이제야 이해가 가네요. 두 분 모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셨던 거네요!”어떻게든 여이현의 곁에 붙어야 가망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여이현은 유부남이에요. 아이도 있는 사람인데 괜찮으신 거예요? 아이까지 딸린 유부남도 사위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서 왜 어떻게든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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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솔 씨를 찾아간 그날, 다솔 씨 부모님이 막아섰죠? 두 분이 원하는 게 뭐라고 하던가요? 내가 도와줄 건 없어요?”여이현은 이런 일에 있어 배진호에게 선배나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배진호가 부딪친 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배진호는 더는 권씨 가문에 대해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대표님, 저랑 다솔 씨는 이미 끝난 사이입니다.”여이현은 두 사람이 이렇게나 빨리 헤어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배진호는 방금 권다솔에게 청혼하지 않았던가.만약 권다솔이 배진호를 싫어했다면 배진호와 연인 사이가 될 리가 없었을 뿐 아니라 청혼을 받아들일 리도 없었다.그랬기에 두 사람의 사이는 배진호의 일방적인 관계 정리인 것이다.권다솔 부모님의 반대로 말이다.여이현도 예전에 이런 일을 겪었었다. 배진호와 권다솔이 서로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던 여이현은 이렇게 끝내게 놔둘 수는 없었다.“다솔 씨도 배 비서를 좋아하고, 배 비서도 다솔 씨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포기하려고요? 아쉽지 않아요?”여이현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배진호 앞으로 다가갔다.“게다가 배 비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잖아요. 겨우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연인 사이가 되었는데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할망정 이렇게 포기한다고요?”“다솔 씨도 헤어지겠다고 해서 헤어진 거예요? 만약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그런 거라면 어떻게든 설득하면 되잖아요. 두 사람의 사이를 응원할 수 있게 말이에요.”여이현은 손을 배진호의 어깨에 올렸다.“두 사람은 태도가 보고 싶으셨던 거예요. 배 비서가 회사를 차리게 되면 내가 전적으로 후훤해줄게요. 돈이 필요하면 돈도 줄게요. 필요한 게 있으면 전부 가져가도 돼요. 만약 두 분이 원하는 게 여진 그룹이라면... 그것도 줄게요. 여진 그룹에 배 비서가 없었다면 지금도 멀쩡히 남아있었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요.”애당초 그는 여진 그룹을 온지유에게 주었다. 하지만 온지유가 싫다고 하면서 모든 지분을 고모인 여희영에게 선물했다.그런데 여희영은 온지유가 돌아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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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아주 잘했어! 좋은 걸 나눌 줄도 알고. 우리 아들 정말 잘 크고 있네.”온지유는 아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부모로서 그녀는 아들과 딸이 화목하게 잘 지내고 힘들 때 서로 도와주며 의지하길 바랐다.여하간에 부모를 제외한 두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였으니까.여이현은 딸을 안고 거실을 두어 바퀴 걸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아기 흔들이 의자에 눕혀 김명자에게 맡겼다.저녁은 이미 준비되었다. 세 사람은 함께 레스토랑으로 가서 즐겁게 저녁을 즐겼다.저녁을 먹고 난 별이는 애니메이션을 보러 갔고 심심해진 온지유는 핸드폰을 들었다.그러다가 우연히 권다솔이 보낸 답장을 보았다.[다음 주에 진호 씨랑 가정 법원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이혼할 거거든요.]온지유는 믿어지지 않아 눈을 비볐다.‘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았었나? 얼마 전만 해도 다솔 씨가 나한테 임신한 소식을 알려줬었잖아. 그런데 갑자기 이혼한다고.?'그녀는 누군가 권다솔 핸드폰을 해킹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게임을 하다 져서 벌칙으로 이런 문자를 보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농담이죠? 다솔 씨, 이런 농담은 재밌지 않아요. 이혼이란 단어는 함부로 꺼내는 게 아니에요.][전 농담이 아니에요. 정말로 이혼할 거예요. 무조건 이혼할 거예요. 전 이미 이혼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누구도 절 말릴 수 없어요.]권다솔은 답장하면서도 답답한 가슴에 짜증이 솟구쳤다.만약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린다면 무조건 남태건을 칭찬하는 말만 가득할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그녀가 다른 남자를 찾아 상처만 준 배진호를 잊기를 바랄 테니까.하지만 친구들에게 털어놓기엔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결국 고민 끝에 온지유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게 된 것이다. 온지유에겐 아이가 둘이나 있었으니 그녀의 마음을 잘 이해해줄 것으로 생각했다.[혹시 전화 통화 가능해요? 아니면 영상 통화라도 가능할까요?]온지유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온 뒤 문을 꼭 닫았다. 그리고 영상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35화

    온지유는 지금 당장 모임을 할 마음이 없었다.조직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괜히 권다솔과 배진호를 만나면 그 조직의 눈길이 그들한테까지 옮겨 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건 감사가 아니라 민폐를 끼치는 일이었다.“집에 가서 내가 진호 연락해 볼게. 마침 회사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데 같이 해보고 싶었어.”여이현은 한편으로는 배진호를 도와주려는 마음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의 성실한 인품을 믿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맡기면 제대로 해낼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됐어, 운전에 집중해. 내가 그냥 다솔 씨한테 문자나 보낼게. 이 시간대면 두 사람 다 일하고 있을 수 있어.”온지유는 휴대폰을 꺼내 권다솔에게 귀여운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상대가 답장을 하지 않자 더는 방해하지 않고 휴대폰을 넣었다.곧 차가 집 앞에 도착했고, 온지유는 포장된 음식을 들고 들어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별이가 후다닥 달려왔다.별이는 온지유 손에 든 음식을 신경 쓰지 않고 곧장 매달렸다.“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걱정했잖아요. 혹시 엄마한테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엄청 무서웠어요!”“엄마 괜찮아. 네가 좋아하는 치킨 사러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 떨어졌었어. 그래서 새로 나오길 기다리느라 좀 늦어졌어.”온지유는 여이현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미소 지으며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두 사람 모두 아이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별이는 마치 어른처럼 깊은숨을 내쉬었다.“그렇다면 됐어요. 하지만 엄마 다음부터는 그런 상황이면 그냥 돌아와요. 굳이 거기서 기다릴 필요 없어요. 치킨 못 먹어도 상관없어요.”집에는 먹을 것도 많고 매일 식사도 푸짐하다. 굳이 치킨 하나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다.“우리 별이가 제일 착하네.”온지유는 별이를 번쩍 안아 한 바퀴 빙 돌았다.별이는 온지유에게 안겨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느낌에 깔깔 웃었다. 그 모습에 온지유도 미소 지었다.한편 여이현은 온하윤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손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34화

    여이현은 주변을 계속 돌며 온지유에게 전화를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바로 이때, 그가 거의 절망하려던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온지유였다.여이현은 급히 돌아서서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가 단숨에 안아 올렸다.“걱정했잖아. 널 찾을 수도 없고 전화해도 안 받고,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너무 무서웠어.”만약 온지유에게 큰일이라도 났다면 그는 어떻게 살아갈까 싶었다. 아이들도 아직 어린데 엄마를 잃으면 어떻게 건강히 자랄 수 있겠는가.“미안해, 방금까지 경찰서에서 진술하느라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놨어. 나 멀쩡하니까 걱정하지 마.”온지유는 부드럽게 달래며 그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정말 괜찮아.”“근데 피가 묻었잖아.”여이현은 그녀를 놓고 위아래로 살펴보다 원피스 군데군데 묻은 핏자국을 발견하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어디 다친 거야? 지금 당장 병원부터 가자.”“내가 다친 거 아니야. 이건 그 인간들 피가 묻은 거고 나는 멀쩡해. 믿기지 않으면 봐, 상처 난 데 있어 보여?”온지유는 일부러 소매를 걷어 올려 맨살을 보여주었다. 팔에는 약간의 멍 자국만 있을 뿐 큰 상처는 없었다.그렇다 해도 여이현은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저 자식들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분명 또 찾아올 텐데...”“물 들어오면 둑 막고, 적 오면 장수로 막는 거지. 난 안 무서워. 게다가 너도 있잖아. 네가 우릴 잘 지켜줄 거라고 믿어.”온지유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단단한 신념을 담아 말했다.어떤 조직이든 둘이 힘을 합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그녀에게 있었다. 오늘도 결국 그녀가 괴한들을 제압하지 않았던가.“그놈들은 벌써 경찰서에 넘겼어. 아무 말도 안 하긴 했지만 내가 이걸 챙겨왔거든.”온지유는 가방을 열어 포장해 둔 주삿바늘을 꺼내 여이현에게 건넸다.“그놈들이 이걸 내 몸에 주사하려고 했는데 실패했어. 도리어 내가 그중 한 놈한테 주사해 줬지. 여기 약물 조금 남았으니까 뭐가 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33화

    여이현 쪽.회의를 마치고 나서 여이현은 온지유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시간상 지금쯤이면 온지유는 이미 집에 돌아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여이현은 바로 집 전화로 전화를 걸었다.벨이 몇 번 울리고 받아 든 건 별이였다. 아이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아빠!”“별아, 네 엄마는 지금 뭐 하고 있어?”여이현은 별이와 이야기할 때 한결 부드럽게 말하는 편이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엄마가 아직 안 돌아왔어요. 저는 아빠한테 묻고 싶었는데... 왜 엄마를 그렇게 오래 잡아줬어요?”별이는 살짝 불만스러운 듯한 톤으로 물었다.여이현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했다.온지유는 서류를 전달한 뒤 회사에서 나갔다. 설령 잠깐 다른 일을 보더라도 이 시각이면 이미 집에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돌아가지 않았을까?“별아, 집에 무슨 일은 없어? 혹시 이상한 사람이 와서 문 두드린다거나 그런 거 없었어?”여이현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아무래도 집에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별일 없으면 좋겠지만 혹시 문제가 생기면 그라도 있어야 아이들이 안전했다.별이는 하품을 하며 휴대전화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 집 안 모니터를 켰다. 화면 속 마당은 텅 비었고 경호원 두 명이 순찰 중이었다.“아무도 안 왔고 다들 괜찮아요. 동생도 방금 깨서 도우미 아주머니가 우유를 줬고, 제가 잠깐 놀아줬어요. 지금 다시 자고 있어요.”상황을 전부 설명한 뒤 별이는 잠시 고민했다. 여이현은 절대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그는 예전에 소미를 대사관에 보낼 때 차 안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대화를 직접 들은 적이 있었다. 혹시 그들이 다시 나타난 걸까 싶었다.그리고 집에는 아무 일이 없지만 온지유가 밖에 있었다.별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아빠, 빨리 엄마를 찾아줘요. 저 엄마가 위험할까 봐 걱정돼요. 엄마가 치킨을 사 온다고 했는데... 한 번도 약속 어긴 적 없는데 이렇게 오래 안 돌아올 리 없어요. 분명 무슨 일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32화

    온지유는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생각을 굴렸다. 두목은 잠시 기다리다 더는 견디지 못하고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하나 더 알려줄게. 보물과 관련된 비밀이 있어. 그 보물을 손에 넣으면 진정한 부귀를 누릴 수 있어. 온지유, 가까이 좀 와봐. 이 비밀은 너만 들을 수 있어.”엄청난 재물이 눈앞에 있다면 누구라도 솔깃하기 마련이다.역시나 온지유도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녀는 한 발 한 발 그를 향해 다가갔다. 두목은 타이밍을 재다가 주머니에서 작은 주사기를 꺼내 온지유 팔뚝을 향해 세게 찔러 넣었다.그는 정말 조직을 배신할 리가 없었다. 온지유가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여자일 뿐이고, 여자는 속이 얕은 존재라고 그는 믿었다. 그냥 허황한 보물 얘기만 하면 금세 넘어올 거로 생각한 것이다.이 약이 주사되고 나면 5분도 안 돼 약효가 나타나고, 그때가 되면 온지유가 매달려 빌게 될 것이다. 여이현이 그녀를 얼마나 아낀다고 했던가? 아내를 붙잡고 협박하면 결국 여이현도 고개를 숙일 거고 조직에 보고하면 실적금이 나올 게 뻔했다.그는 벌써 미래의 달콤한 보상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변수가 발생했다.온지유는 재빨리 팔을 빼고 그가 다친 발가락을 세게 짓밟았다. 동시에 반격하듯 주사기를 빼앗아 순식간에 그의 팔에 꽂고 남아 있던 약물을 주입했다.그 모든 동작이 한 흐름처럼 매끄럽게 이어졌다. 두목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온지유를 바라봤다.“어떻게 이럴 수가? 너, 넌 애초에 날 믿지 않았던 거지!”사람의 반응속도가 이렇게 빠를 리 없다. 딱 한 가지 가능성뿐이다. 처음부터 온지유는 그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고,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그가 늘어놓은 말은 온지유 귀에 한 자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이다.“내가 너희 같은 놈들을 왜 믿어?”온지유는 냉소를 지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긴장해 있던 네 부하들이 보물 얘기를 시작하니 갑자기 태연해지더라고. 이건 네가 거짓말을 하고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31화

    온지유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자, 두목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의 눈엔 공포가 어렸다.온지유는 너무 강했다. 게다가 공격도 서슴지 않고 가차 없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픈 와중에 특히 허리는 뼈라도 부러진 것처럼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너... 너 오지 마! 우리한테 손대면 조직이 널 그냥 두지 않을 거야!”온지유는 비웃는 얼굴을 했다.“내가 바보로 보여? 지금 너희를 풀어준다고 해서 조직이 물러날 것 같아? 게다가 너희들도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닌 것 같은데?”솔직히 말해서 이들은 조직의 개나 마찬가지였다. 명령받은 대로 더러운 일을 대신하는 하수인에 불과했다. 일이 성공하면 서로 좋은 거겠지만 지금 상황은 실패로 끝나가고 있었다.“내가 너희를 보내준들 살아서 갈 수나 있을 것 같아?”온지유가 되받아쳤다.두목은 말없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온지유, 네 말이 맞아. 그러니 제발 우리를 놓아줘. 우린 조직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대신 대가로 조직에 관한 비밀을 알려줄게.”“형님!”옆에 널브러진 부하들이 초조하게 외쳤다. 몸을 마음대로 쓸 수만 있다면 당장 달려가 그의 입을 막고 싶었을 것이다.지금 이 자리에서 조직을 팔아넘기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임무 실패 후 조직에 돌아가면 고생은 하겠지만 그래도 살아남을 여지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직을 배신하면 그때는 진짜 죽음뿐, 가족이나 친구들까지 몰살당할 수 있었다.“당신 부하들은 생각이 다르나 보네.”온지유는 그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이 근처에 경찰서가 있어. 내가 경찰에 신고하면 5분 안에 출동할 거야. 너희 신분증 같은 건 없겠지? 불법으로 들어온 조직원일 테니까.”온지유는 조직의 실체를 몰랐지만, 이전에 소미가 외국 아이였던 점으로 미루어보면 아마 본거지는 해외일 가능성이 컸다. 이들 역시 비밀리에 들어온 범죄자일 가능성이 크다. 살인미수에 신분 미확인 불법입국자라면 잡혀도 결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30화

    셋이 합세하면 온지유 하나 제압 못 할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온지유는 한 팔로 두목의 팔을 낚아채 뒤로 돌더니 다리를 들어 그의 허리에 세게 차올렸다.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고 온지유가 팔을 꽉 잡아 허리를 펼 수도 없었던 두목은 독설을 퍼부었다.“놓지 못해? 안 놓으면 가장 독한 약을 주사할 거야. 그러면 넌 암캐처럼 땅바닥에 무릎 꿇고 구걸하게 될 거라고!”하지만 온지유는 이 말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지금 그들을 놓아주고 웃는 얼굴로 화해를 청한다고 해서 그들이 물러나기라고 할까? 생각할 필요도 없다.이들은 목숨을 걸고 그녀를 잡으러 온 악당들이다. 이미 그녀를 납치해 약 실험을 할 생각인데 전력을 다해 저항해야 희미한 생존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울고불고 애원해 봤자 비참한 결말은 뻔하다. 차라리 부딪쳐보는 게 낫다.온지유는 몸을 홱 돌리며 두목의 팔을 놓아주고 동시에 엉덩이를 세게 걷어찼다. 강한 충격에 두목은 옆에 있던 사람에게 날아들었고, 그 사람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공격 태세를 취하던 중 그대로 두목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치고 말았다.“멍청한 놈아!”두목은 화가 치밀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편을 때리다니 적이 무서울 게 아니라 이런 동료가 더 무서웠다.그러나 잘못된 부하를 둔 걸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다른 동료들이었으면 진작 온지유를 잡았을 것이고 시간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얼굴까지 한 대 맞았으니 그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죄, 죄송해요, 형님. 저도 반사적으로 그런 겁니다. 뭐가 갑자기 날아오길래 밀쳐내려다 보니...”남자는 허둥지둥 변명했다.조직 내 위계질서가 분명한 이상 두목은 그들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두목이 마음만 먹으면 그는 내일까지 살지 못할 수도 있었다.“쓸모없는 놈.”두목은 이를 갈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 따지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방금 굴욕을 당한 이상 이 치욕을 배로 갚아주고 싶었다. 그는 온지유를 개만도 못한 상황에 몰고 가리라 결심했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29화

    “당신들 누가 보낸 거지?”온지유는 고개를 돌려 눈앞에 있는 다섯 남자를 주의 깊게 살피며 이들의 전투력을 속으로 가늠했다. 충분히 상대할 만했다.이 골목만 빠져나가서 남쪽으로 백 미터 정도만 가면 경찰서가 있었다. 설령 이들을 이기지 못하더라도 경찰서까지 달려가기만 하면 안전해질 수 있었다.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은 온지유의 속내를 알 리 없었다. 그저 그녀가 겁먹어 차 안에서 내리길 주저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냘픈 여자가 이렇게 덩치 큰 사내 다섯 명을 보고 겁에 질려 몸도 못 가눌 만했다. 얼굴색 안 변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여기는 중이었다. 반항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이들은 남녀 체격 차이를 생각하면 원래부터 승산은 자기들에게 있다고 확신했다. 게다가 5:1이다. 온지유가 반항해 봤자 상대가 되겠냐는 식이었다.“누가 보낸 건지는 알 필요 없어. 조용히 내려오면 우리도 좀 부드럽게 대해줄 수 있어. 아니면 말이야...”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는 차창 너머로 온지유를 음흉하게 훑어봤다.창문 너머로도 느껴지는 그녀의 좋은 몸매에 남자들의 시선이 더욱 탐욕스러워졌다. 애 키운 여자로는 안 보였다. 게다가 밤이라 주변에 사람은커녕 그림자도 없고 여기서 무슨 짓을 해도 막을 이가 없었다.“형님, 좀 있다가 저희도 한몫 챙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옆에 서 있던 다른 남자들도 침을 흘렸다.두목은 크게 웃었다.“그래, 내가 먼저 놀고 끝나면 너희가 알아서 해. 단 숨은 붙여둬야 해. 조직에서 시킨 대로 살아 있는 상태로 데려가 약 실험해야 하잖아.”조직이라는 단어에 남자들의 얼굴에는 잠깐 긴장감이 스쳤다. 이 작은 표정 변화는 온지유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이들이 속한 조직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약 실험이라는 단어에서 온지유는 바로 소미를 떠올렸다. 아마 그때와 같은 조직이 보낸 듯했다.저번에는 온하윤을 노리더니 이번엔 그녀를 목표로 삼은 것이다. 다행히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돌아다닌 덕에 이들을 집으로 유인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28화

    온지유는 별이를 향해 손을 흔들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좋아, 다 들어줄게. 집에서 얌전하게 기다려, 엄마 금방 올게.”그녀는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차고에 가서 아무 차나 골라 탄 뒤 빠른 속도로 회사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온지유는 뒤따라오는 차량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사거리를 지날 때 멀리서 뒤따라오던 차 한 대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붙고 있었다.곧 온지유는 회사가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안으로 들어가자 안내 데스크 직원이 정중히 인사했다.“사모님, 안녕하세요.”“바쁘신데 신경 안 쓰셔도 돼요.”온지유는 발걸음을 재촉해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 회의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여이현에게 서류를 건넸다.여러 사람 앞에서 둘은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된 부부인 만큼 눈빛 하나로 서로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만의 작은 비밀이었다.회의실에서 나오는 길에, 온지유는 여이현이 새로 채용한 비서와 마주쳐 가볍게 인사했다. 그녀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회사를 나와 근처 쇼핑몰로 향했다. 거기에는 패스트푸드 가게가 있었고 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가게도 가까웠다.주말이라 패스트푸드 가게에는 인파로 북적였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가 많았고 손님이 많으니 음식 나오는 속도도 더뎠다.종업원이 물었다.“손님, 에그타르트가 다 팔렸어요. 지금 굽고 있어서 2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세요?”별이는 에그타르트를 유난히 좋아하고 특히 이 집 것을 제일 좋아한다. 이미 온 김에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괜찮아요. 다 되면 불러주세요.”온지유는 기다리며 옆자리에 앉아 휴대폰으로 국제 뉴스를 훑어봤다.그때, 누군가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 초 만에 온지유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주위엔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 뿐 수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착각인가?‘하지만 그녀는 원래 직업상 위협에 민감하며 여성의 육감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곳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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