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휴대폰을 건넸다.“고마워요.”“아닙니다.”전동하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예쁜 누나? 지금 야근 중이에요? 내가 갈까요?”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들리는 마이크의 앳된 목소리가 그녀의 귓구멍을 자극했다.“누나 지금 파티가는 중이야. 마이크, 밥은 먹었어?”소은정이 싱긋 웃었다.“아니요! 예쁜 누나가 곁에 없으니까... 입맛도 없어요.”마이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 모습에 가슴이 아파진 소은정이 마이크를 타이르려던 그때 옆에서 진중한 분위기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밥은 안 먹은 거 맞는데 아까 간식 잔뜩 먹었거든요. 배 불러서 안 먹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난 지금 성장기에요! 철도 씹어먹는 나이에 간식 좀 먹은 게 뭐 어때서요!”마이크가 입을 삐죽 내민 채 구시렁댔다.“마이크, 아빠 말씀 들어. 간식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아, 연준 삼촌한테 학습지 사오라고 했으니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알겠지?”수화기에서 전동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걱정하지 말아요. 다 시킬 테니까.”윽, 아까부터 동하 씨가 받고 있던 거였어? 부끄럽다... 얼굴은 안 보여서 다행이야...“오늘 파티... 내가 아는 그 파티 맞죠?”“네. 동하 씨도 오는 거예요?”“아니요. 아주머니랑 경호원이 자리를 비워서 전 못 갈 것 같네요. 마이크 챙겨야죠.”“어차피 별로 중요한 행사도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혼자 가는 거예요?”전동하가 드디어 가장 궁금한 질문을 뱉어냈다.“그럴 리가요. 내 곁에 남자 파트너가 없을 리가 없잖아요?”소은정이 입술을 씩 올렸다.“휴, 안 되겠어요. 역시 은정 씨가 더 중요해요. 옷 갈아입고 바로 갈게요.”“아빠! 자식보다 더 중요하다니! 그게 말이 돼!”마이크가 바로 항의했다.귀여운 부자의 모습에 쿡쿡 웃던 소은정이 말을 이어갔다.“회사 신제품 CF 모델이랑 같이 가기로 했어요. 신제품 홍보 목적이니까 이번만 참아줘요.”“네. 알겠어요.”그 뒤로 두 사람은 서로
역시 소은정을 발견한 윤시라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저... 저 여자가 여기 어떻게...초대장은 분명 소은호 대표한테 보냈는데...소은정은 고개를 돌려 윤시라 옆에 선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이름은 천한강, 이번 파티는 바로 그가 주최한 거였다. 젊었을 때는 나름 큰 기업을 운영하던 회장이었는데 빠르게 바뀌는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그 동안 쌓았던 인맥은 여전히 존재하니 초대받은 정재계 유명인사들 모두 그의 초대에 응해 주었다.소찬식과도 절친한 사이인 천한강 역시 소은정을 알고 있었다.“은정아, 오랜만이야. 이렇게 보니까 참 반갑네. 아 이젠 SC그룹 소은정 대표라고 불러야 하나?”천한강의 말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정말 반가우신 거 맞으세요? 전 또 제가 삼촌한테 실수라도 한 줄 알았네요.”“그게 무슨 소리야?”천한강이 미간을 찌푸렸다.소은정의 시선이 천한강 옆에 선 윤시라에게 스치고 윤시라의 몸이 긴장감으로 살짝 떨렸다.“초대장, 오빠한테만 보내고 저한테는 안 보내셨잖아요. 어렸을 때 제가 삼촌이랑 얼마나 친했는데요. 너무 섭섭했어요. 혹시 저 깜박하신 거예요?”“내가 널 잊을 리가... 있겠어.”뭔가 떠올린 듯한 천한강이 윤시라를 힐끗 바라보더니 뭔가 고민하는 듯 침묵했다.천한강의 시선을 느낀 윤시라가 바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사과했다.“직원 실수인 것 같네요.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제 책임도 있으니 사과드리겠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그제야 천한강의 잔뜩 굳은 미간이 살짝 풀렸다.“그렇게 덤벙대는 직원은 당장 해고하는 게 맞지.”“아니에요. 괜히 제가 나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잖아요. 저 고자질하러 온 거 아니에요.”소은정이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자 천한강이 고개를 저었다.“참나. 못 본 사이에 더 능글맞아졌어. 네 아빠 젊었을 때랑 아주 판박이야.”싱긋 미소를 지은 후 손호영을 앞으로 불렀다.“오늘 제 파트너 손호영 씨에요. 배우인데 삼촌
별 의미없는 디테일이라 생각했지만 신지연은 꽤 마음에 드는 눈치인 듯하니 소은정도 기분이 좋아졌다.화기애해한 분위기에 신호민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파티가 시작되고 천한강이 무대에 올랐다.“이 늙은이의 부름에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여러분들께 알려드릴 좋은 소식이 있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갑작스레 주최된 파티라 의아하긴 했지만 좋은 소식이라니...소은정은 천한강 옆에 서 있는 윤시라를 훑어보았다.평소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부각하는 노출 심한 드레스가 아닌 단아하고 보수적인 차림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오늘은 꽤 얌전하게 차려입었네?바로 그때, 천한강이 윤시라의 손목을 잡은 채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눈가에 감격스러운 눈물까지 맺힌 천한강이 말을 이어갔다.“제가 드디어 30년 전, 잃어버렸던 제 막내딸 시라를 찾았습니다.”쿠궁!갑작스러운 천한강의 발표에 소은정을 비롯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입이 떡 벌어졌다.딸을 찾은 감동에 감격한 천한강과 역시 가식적인 손길로 눈물을 닦고 있는 윤시라까지...하... 재밌네. 정말 재밌어.사실 천한강에게 잃어버린 딸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길가에 잠깐 세워둔 딸이 순식간에 사라졌었다고 했지...사실 십여년 전만 해도 천한강은 소찬식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천한강 역시 잃어버린 어린 딸 생각에 소은정에게는 더 각별히 친절하게 대했었고 소은정도 그런 천한강을 잘 따랐었지만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소은정에 대한 집착이 더 심해지자 겁을 먹은 소찬식이 천한강을 멀리 하기 시작했고 지금처럼 데면데면한 사이가 된 것이었다.그런데 그때 잃어버린 딸이 윤시라였다고?이때 그녀의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 그렇게 신분상승을 꿈꾸더니. 꿈이 결국 이뤄졌네요. 그런데 저 집에 자식이 워낙 많아서 아마 재산은 한 푼도 못 물려받을 걸요? 그쪽 집안 자식들이 먼저 손을 써뒀을 테니까.”고개를 돌린 소은정의 시야에 신지연의 얼굴이 들어왔다.맑은 신지연의 눈동
신지연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윤시라가 하루 아침에 신데렐라가 되었다는 사실 따위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 윤시라는 한쪽에 배치된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주스를 한 잔 따랐다.부잣집 딸? 그게 뭐가 중요해. 어차피 저딴 애 하나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많고도 많아...한편 손호영은 무거운 표정으로 소은정 근처에 앉아 시시때때로 그녀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신지연이 다시 쪼르르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하, 저번에 언니가 저 여자를 정신병원에 보냈잖아요. 거기서 풀려나고 나서 우리 아빠 앞에서 울고 불고... 하, 우리 아빠도 뭐에 씌인 건지... 저딴 여자가 뭐가 좋다고 30억짜리 아파트까지... 뭐, 집 받더니 바로 화를 풀긴 하더라고요.”신지연의 계속 되는 폭로에 소은정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신호민 회장도 알고 있었다...? 하긴 상간녀 때문에 나한테 정식으로 항의할 리가 없지.어차피 제 얼굴에 침 뱉기니까.“천 회장 저 영감탱이도 아주 늙은 여우라니까요. 딸을 찾은 뒤로 바로 우리 아빠랑 결혼한다는 소문부터 퍼트리고... 윤시라 저 여자도 바보 아니에요? 우리 아빠 바람기는 아는 사람 다 아는 사실인데... 이혼한 지 한 달도 안 된 아저씨랑 바로 재혼이라니...”신지연이 테이블에 놓인 샴페인을 벌컥벌컥 마셨다.신지연의 말을 여전히 듣고만 있던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아니, 윤시라는 바보가 아니야. 정치적인 정략결혼의 주인공이 상간녀라는 타이틀보다 훨씬 더 듣고 싶긴 하지. 새로 찾은 아빠 앞에서는 아마 진심으로 신호민 회장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겠지. 이를 계기로 신 회장과 결혼하면 신씨 일가에 입성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건 물론이고 앞으로 천 회장의 사업에도 도움이 될 테니 아버지의 사랑까지 받게 될 거니까...1석2조인 전략이네.신포그룹에서 정치질로 유명했다더니... 머리 하나는 빨리 돌아간다니까.소은정이 생각에 잠긴 그때 신지연이 괜시리 신비로운 표정으로 그녀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언니,
윤시라의 말에도 손호영은 침묵했다.“계약기간 안에 기자들 앞에서 SC그룹 제품에 대한 루머를 퍼트리면 SC그룹은 끝이라고요!”윤시라의 말에 소은정이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 저 창문으로 윤시라를 바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올랐다.지금까지 침묵하던 손호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끝나는 건 SC그룹이 아니라 내가 되겠죠. 누굴 바보로 압니까?”가정폭력남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적어도 향후 5년간의 활동은 바라볼 수 없는 상태, 여기서 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그때는 정말 이 바닥을 떠야 할지도 모른다.“에이, 걱정하지 말아요. 리스크가 크다는 건 나도 알아요. 그러니까 상응하는 페이는 챙겨줄게요. 그 CF 계약도 내가 물어다준 거잖아요. 이 일만 제대로 하면 크게 챙겨줄게요. 이 바닥을 떠나도 평생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만큼. 어차피 연예계 생활도 파탄나기 일보 직전 아니에요?”윤시라의 팩폭에 손호영은 또다시 침묵하기 시작했다.자신의 전략이 먹혀들었다고 생각할 때쯤 손호영의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일은 다른 사람한테 시키십시오. 연예계 퇴출? 상관없습니다. 뭘 하든 내 몸뚱아리 하나는 먹여살릴 수 있겠죠. 하지만 당신이 시키는 일은 범죄입니다. 내가 정말 경찰에 잡히기라도 하면 그땐 모르는 척 꼬리 자르기 할 거잖아요?”생각지 못한 손호영의 태도에 윤시라가 팔짱을 낀 채 대답했다.“하, SC그룹 CF 모델이 되는 게 쉬운 줄 알아요? 당신보다 젊고 잘생긴 애들이 다 노리고 있는 자리예요. 그런데 지금...”하지만 손호영은 차가운 코웃음으로 그녀의 말을 잘라버렸다.“난 SC그룹과 계약한 겁니다. 당신이 아니라요. 당신이 SC그룹 소은정 대표와 무슨 원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날 이용하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예요. 그딴 수작에 안 넘어가니까.”그녀를 향해 비웃음까지 날려준 손호영이 단호하게 돌아섰다.저런, 못난 자식... 팬덤도 다 사라진 한물 간 남자연예인 주제에 뭘 믿고 저렇게 나대!손호영이 이곳을
윤시라의 궤변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이해... 이해라... 나한테 위협이 되는 계획을 들었는데 이해해 달라?“네, 이해합니다.”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다행이네요. 어차피 손호영 씨도 내 제안을 거절했으니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요. 앞으로 우리도 평화롭게 잘 지내봐요.”윤시라의 말이 끝남과 함께 잠깐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파티장의 우아한 음악과 이곳의 차가운 침묵이 대조되며 주위가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윤시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윤시라 씨. 당신의 비겁함과 멍청함을 이해한다는 말입니다. 그쪽이 먼저 내 남자친구한테 찝적댔고 그래서 내가 당신을 먼저 싫어하게 된 거예요. 평화로운 공존? 이 바닥도 나름 약육강식의 룰이 통하는 곳이랍니다. 실력이 없으면 바로 따돌림을 당하게 될 거예요. 지금 아빠도 다시 만나고 상간녀에서 정식으로 와이프로 인정받게 됐으니까 행복하겠죠. 그 짧은 행복 제대로 즐기길 바랄게요. 여긴 내 구역이에요. 내 구역에서 당신은 점점 더 고통스러워질 테니까 기대해요.”소은정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윤시라의 가슴이 불안감으로 콩닥였다.내 구역?뭐야... 새 집으로 가면... 소은정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회장 아버지 딸이라는 신분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그래. 여긴 약육강식인 바닥이야. 아빠가 부자긴 하지만 SC그룹에 비할 수는 없어.말을 마친 소은정은 마지막까지 당당한 미소를 지어준 뒤 여유롭게 돌아섰다.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윤시라의 가슴을 쿡쿡 찌르는 듯했다.신지연이 부랴부랴 그 뒤를 따르더니 존경스럽다는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언니, 아까 진짜 너무 멋있었어요! 포스가 아주 그냥...! 언니,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호들갑을 떠는 신지연을 향해 소은정이 형식적인 미소를 지었다.“말 몇 마디 한 게 다인데요 뭐. 지연 씨도 할 수 있을 거예요.”하지만 신지연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난 안 돼
계약 해지에 관한 건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좋겠어.윤시라의 제안에 손호영은 예상밖의 모습을 보여주었지. 멍청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아니지. 애초에 저런 사람이 왜 와이프를 때린 걸까? 내가 모르는 다른 면을 숨기고 있는 걸까?궁금증이 밀려들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그녀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던 손호영이 망설이다 결국 입을 열었다.“대표님, 죄송합니다.”“뭐가요?”“사실 아까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 윤시라 씨와 아는 사이입니다.”아, 그거 말하는 거였어?“그럼 왜 거짓말을 한 건데요?”“제가 SC그룹 신제품 CF 모델로 발탁된 데는 윤시라 씨 덕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여자와 얽히고 싶지 않았어요.”그래서 모른다 거짓말을 했지만 와이너리 뒤에 있는 소은정을 본 순간 그의 얄팍한 거짓말이 전부 들통났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공기속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고 소은정은 숄을 더 꼭 껴입었다.“네, 알겠어요.”소은정의 차가 파티장 앞에 멈춰서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손호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결국 윤시라 씨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계약 해지하실 때 조금만 봐주십시오.”대기업의 법률팀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손호영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어떻게든 그에게 위약금을 안겨주게 되겠지.“계약 해지요?”소은정이 고개를 갸웃했다.“사실 CF 모델을 해도 되나 싶었지만 지금 제 상황에서는 돈 한 푼이 아쉬워서요...”저녁 내내 무표정이던 손호형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어휴... 그래도 나름 각광받던 스타인데. CF 하나에 연연할 정도까지 된 건가?소은정의 놀란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손호영이 고개를 돌렸다.남자가 이렇게까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소은정도 알고 있기에 조금 더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래도 성실하게 대답했으니까 기회를 한 번 더 주도록 하죠. 내일 아침 회사로 와요. 계약에 대해 자세히 얘기 나눠보죠.”그 순간, 손호영이 놀란 토끼눈을 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기회라니...
전동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터치했다.하지만 다행히 세게 부딪히지는 않았는지 고통은 바로 사라졌다.운전석에 앉아있던 기사가 헛기침을 하더니 물었다.“아가씨, 어디로 모실까요?”순간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거리를 두었다.항상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아까만큼은 훅 다가온 전동하의 모습에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소은정도 스스로가 꽤나 놀라웠다.얼굴이 후끈거리고 소은정은 이성을 되찾기 위해 입술을 꼭 깨물었다.“오피스텔로 가주세요.”오피스텔로 간다는 말에 전동하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피어올랐다.“마이크 잠들었어요. 그래서 데리러 와봤죠. 얼마 안 기다렸어요.”“정말 얼마 안 기다렸어요?”의심스럽다는 듯한 소은정의 표정에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이때 항상 투명인간처럼 조용히 있던 운전기사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전 대표님 차에서 2시간이나 기다렸습니다.”기사가 나가서 야식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오는 동안 전동하는 조각상처럼 꿈쩍도 않고 앉아있었지...40년 인생에 저런 남자는 운전기사도 처음이었다.보통 재벌 2세에 기업가들은 뼛속깊이 오만함이 깃들어있기 마련인데 전동하는 소은정 앞에서만큼은 비굴해 보일 정도로 순종적이었다.항상 차가운 박수혁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었지... 이번에야말로 우리 아가씨 행복하셔야 할 텐데...“별로 안 기다렸다면서요? 2시간이요?”운전기사의 폭로에 전동하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그냥 은정 씨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요. 난 2시간이 아니라 20시간도 기다릴 수 있어요.”순간 소은정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차 내부의 조명이 어두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처음에는 당황스러웠는데... 기분은 좋네.“파트너는 집으로 안 데려다줘도 괜찮겠어요?”무표정은 얼굴로 누군가와 통화 중인 손호영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이제 퇴근시켜야죠.”밤새 맡은바 책임을 다했으니 이제 풀어줘야겠지.그녀의 대답에 전동하가 눈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