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시라의 궤변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이해... 이해라... 나한테 위협이 되는 계획을 들었는데 이해해 달라?“네, 이해합니다.”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다행이네요. 어차피 손호영 씨도 내 제안을 거절했으니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요. 앞으로 우리도 평화롭게 잘 지내봐요.”윤시라의 말이 끝남과 함께 잠깐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파티장의 우아한 음악과 이곳의 차가운 침묵이 대조되며 주위가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윤시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윤시라 씨. 당신의 비겁함과 멍청함을 이해한다는 말입니다. 그쪽이 먼저 내 남자친구한테 찝적댔고 그래서 내가 당신을 먼저 싫어하게 된 거예요. 평화로운 공존? 이 바닥도 나름 약육강식의 룰이 통하는 곳이랍니다. 실력이 없으면 바로 따돌림을 당하게 될 거예요. 지금 아빠도 다시 만나고 상간녀에서 정식으로 와이프로 인정받게 됐으니까 행복하겠죠. 그 짧은 행복 제대로 즐기길 바랄게요. 여긴 내 구역이에요. 내 구역에서 당신은 점점 더 고통스러워질 테니까 기대해요.”소은정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윤시라의 가슴이 불안감으로 콩닥였다.내 구역?뭐야... 새 집으로 가면... 소은정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회장 아버지 딸이라는 신분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그래. 여긴 약육강식인 바닥이야. 아빠가 부자긴 하지만 SC그룹에 비할 수는 없어.말을 마친 소은정은 마지막까지 당당한 미소를 지어준 뒤 여유롭게 돌아섰다.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윤시라의 가슴을 쿡쿡 찌르는 듯했다.신지연이 부랴부랴 그 뒤를 따르더니 존경스럽다는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언니, 아까 진짜 너무 멋있었어요! 포스가 아주 그냥...! 언니,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호들갑을 떠는 신지연을 향해 소은정이 형식적인 미소를 지었다.“말 몇 마디 한 게 다인데요 뭐. 지연 씨도 할 수 있을 거예요.”하지만 신지연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난 안 돼
계약 해지에 관한 건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좋겠어.윤시라의 제안에 손호영은 예상밖의 모습을 보여주었지. 멍청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아니지. 애초에 저런 사람이 왜 와이프를 때린 걸까? 내가 모르는 다른 면을 숨기고 있는 걸까?궁금증이 밀려들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그녀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던 손호영이 망설이다 결국 입을 열었다.“대표님, 죄송합니다.”“뭐가요?”“사실 아까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 윤시라 씨와 아는 사이입니다.”아, 그거 말하는 거였어?“그럼 왜 거짓말을 한 건데요?”“제가 SC그룹 신제품 CF 모델로 발탁된 데는 윤시라 씨 덕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여자와 얽히고 싶지 않았어요.”그래서 모른다 거짓말을 했지만 와이너리 뒤에 있는 소은정을 본 순간 그의 얄팍한 거짓말이 전부 들통났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공기속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고 소은정은 숄을 더 꼭 껴입었다.“네, 알겠어요.”소은정의 차가 파티장 앞에 멈춰서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손호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결국 윤시라 씨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계약 해지하실 때 조금만 봐주십시오.”대기업의 법률팀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손호영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어떻게든 그에게 위약금을 안겨주게 되겠지.“계약 해지요?”소은정이 고개를 갸웃했다.“사실 CF 모델을 해도 되나 싶었지만 지금 제 상황에서는 돈 한 푼이 아쉬워서요...”저녁 내내 무표정이던 손호형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어휴... 그래도 나름 각광받던 스타인데. CF 하나에 연연할 정도까지 된 건가?소은정의 놀란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손호영이 고개를 돌렸다.남자가 이렇게까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소은정도 알고 있기에 조금 더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래도 성실하게 대답했으니까 기회를 한 번 더 주도록 하죠. 내일 아침 회사로 와요. 계약에 대해 자세히 얘기 나눠보죠.”그 순간, 손호영이 놀란 토끼눈을 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기회라니...
전동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터치했다.하지만 다행히 세게 부딪히지는 않았는지 고통은 바로 사라졌다.운전석에 앉아있던 기사가 헛기침을 하더니 물었다.“아가씨, 어디로 모실까요?”순간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거리를 두었다.항상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아까만큼은 훅 다가온 전동하의 모습에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소은정도 스스로가 꽤나 놀라웠다.얼굴이 후끈거리고 소은정은 이성을 되찾기 위해 입술을 꼭 깨물었다.“오피스텔로 가주세요.”오피스텔로 간다는 말에 전동하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피어올랐다.“마이크 잠들었어요. 그래서 데리러 와봤죠. 얼마 안 기다렸어요.”“정말 얼마 안 기다렸어요?”의심스럽다는 듯한 소은정의 표정에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이때 항상 투명인간처럼 조용히 있던 운전기사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전 대표님 차에서 2시간이나 기다렸습니다.”기사가 나가서 야식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오는 동안 전동하는 조각상처럼 꿈쩍도 않고 앉아있었지...40년 인생에 저런 남자는 운전기사도 처음이었다.보통 재벌 2세에 기업가들은 뼛속깊이 오만함이 깃들어있기 마련인데 전동하는 소은정 앞에서만큼은 비굴해 보일 정도로 순종적이었다.항상 차가운 박수혁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었지... 이번에야말로 우리 아가씨 행복하셔야 할 텐데...“별로 안 기다렸다면서요? 2시간이요?”운전기사의 폭로에 전동하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그냥 은정 씨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요. 난 2시간이 아니라 20시간도 기다릴 수 있어요.”순간 소은정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차 내부의 조명이 어두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처음에는 당황스러웠는데... 기분은 좋네.“파트너는 집으로 안 데려다줘도 괜찮겠어요?”무표정은 얼굴로 누군가와 통화 중인 손호영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이제 퇴근시켜야죠.”밤새 맡은바 책임을 다했으니 이제 풀어줘야겠지.그녀의 대답에 전동하가 눈썹을
전화를 받자마자 한유라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바로 울려 퍼졌다.“은정아, 너 도준호 대표랑 친하지? 나 좀 도와줘.”도준호 대표? 뭔가 여론을 움직여야 할 일이 있는 건가?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도준호 대표는 왜?”한유라는 참았던 말을 따발총처럼 뱉어냈다.“하, 민하준 그 자식이 SNS에 이혼 인증 사진을 올렸잖아. 하, 아주 이혼했다고 온 세상 사람들한테 다 떠벌릴 생각인가 보던데? 게다가 더 화나는 게 뭔지 알아? 별 친하지도 않은 애들이 DM 와서는 나더러 다시 한번 고민해 보라잖아. 고민? 웃기고 있네. 단 한순간이었지만 그 자식을 잘생겼다고 생각한 내 눈알을 파내고 싶은 기분이야. 그런데 무슨 고민을 해.”“그런데 도준호 대표는 왜?”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나 심강열이랑 약혼해. 도준호 대표한테 부탁해서 약혼 기사 전부 뿌려버릴래. 그럼 민하준 그 자식도 포기하겠지.”이를 꽉 깨문채 화를 내는 한유라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약혼? 갑자기? 야, 너 그런 거 충동적으로 결정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소은정이 진심으로 충고했다. 괜히 오기로 약혼 기사를 뿌렸다간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잠깐 침묵하던 한유라가 대답했다.“어쨌든 심강열이랑 약혼하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야. 이걸 빌미로 민하준 그 자식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나쁘지 않잖아?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엄마 말이 맞아. 노는 거 말고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 있어? 내가 지금 회사를 물려받으면 5년안에 회사 다 말아먹을 거야. 능력이 없으니 나 대신 회사를 관리해 줄 남자랑 결혼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지도 몰라.”한유라의 진지한 목소리에 소은정이 흠칫했다.“유라야, 너 혹시 무슨 일 있어?”유라가 이렇게 엄마 말에 네 하고 순종할 스타일이 아닌데...한유라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실 회사에서 엄마가 일하는 거 지켜봤는데 정말 많이 늙으셨더라. 엄마 자리를 노리는 이사들도 많고... 게다가 나까지 챙겨야 하니까 얼마나 힘드시겠어. 그리고 사실 지금
이른 아침,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비추었다.이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굳이 휴대폰 액정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이 꼭두새벽부터 그녀에게 전화를 걸 사람은 한유라뿐이었으니까.다른 사람이었다면 화가 치밀었겠지만 한유라라 화도 낼 수 없을 노릇이었다.역시나 전화를 받으니 한유라였다.“도준호 대표 진짜 대박이다. 포털 사이트에 온통 내 뉴스뿐이야. 하하하, 온 국민이 날 알 것 같다고!”아직 잠에서 덜 깬 소은정이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지금 좋아할 게 아니야. 사람들 시선을 받는 게 좋은 게 아니야. 지금 다들 네 정략결혼만 지켜보고 있다고.”좋은 소식보다 좋은 소식 뒤에 따르는 막장 스토리야말로 대중들이 원하는 것일 테니까.파혼이라도 한다면 지금 축복 댓글을 달던 사람들이 전부 악플러가 되어버릴 거라고, 유라야...“난 다른 사람 시선 같은 거 신경 안 써. 내가 원하는 건 민하준이 이 기사를 확인하고 멀리 떨어지는 거야.”깊은 한숨을 내쉬고 스피커폰을 켠 소은정이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하, 그깟 남자 하나 떼어내려기엔 대가가 너무 크지 않니? 그리고 태한그룹과의 계약도 파탄났는데 화 안 내?”태한그룹과의 계약은 민하준에게도 꽤 중요한 계약건이었을 텐데 그대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을 텐데...소은정의 말에 한유라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하, 무슨 염치로? 내가 없는 말 한 것도 아니고 다 사실인데 뭐. 탓을 하려면 자기 무능함을 탓해야겠지.”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유라도 은근히 독한 면이 있다니까...한숨을 내쉰 소은정은 한유라와의 통화를 마치고 바로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문을 나서니 전동하와 마이크가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안녕...”흠칫 놀란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두 사람이 왜 여기 있어요?”마이크가 짧은 다리를 움직이며 다가오더니 소은정의 다리를 꼭 끌어안았다.“누나 회사까지 데려다주려고요. 누나랑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누나 그냥 같이 있어주면 안 돼요?”소은
소은정이 사무실에 도착하고 우연준은 평소처럼 커피와 그녀가 검토해야 할 보고서들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대표님. 다들 회의실에 모였습니다. 회의 시작하시죠.”시간을 확인한 소은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아, 손호영 씨가 아침 일찍 회사로 왔더군요. 지금 한 시간째 기다리고 있는데 기다리지 말라고 전할까요?”사실 갑작스러운 손호영의 등장에 우연준도 꽤 의아했다. 온갖 루머가 가득한 손호영을 CF 모델로 쓰는 건 SC그룹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이 갈 테니 당연히 계약을 해지할 테고 어제가 마지막으로 만날 기회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아니요. 기다리라고 해요.”손호영한테는 마지막 기회일 테니까 좀 더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괜히 SC그룹이 우습게 보이면 안 되니까.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20분 정도 예정되어 있던 회의는 1시간 넘게 이어지고 회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인지 회의가 끝날 때쯤에는 소은정을 제외한 임직원들의 얼굴은 전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사무실로 돌아오고 우연준이 커피를 새로 내왔다.커피를 마시려던 소은정의 손이 멈칫했다.“손호영 씨 아직 기다리는 중인가요?”“네.”“도준호 대표한테 연락해요. 오늘 내로 회사로 찾아갈 거라고요.”한유라에 관한 기사를 내는 건 도준호 대표에게도 윈윈인 일이라 굳이 찾아갈 필요까진 없었지만 손호영 문제는 차원이 달랐다.검은 천을 흰색으로 만드는 데는 큰 힘이 들어가는 법이니까.고개를 끄덕인 우연준이 사무실을 나섰다.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은정 대표의 부탁이니 도준호도 기꺼이 오전 스케줄을 전부 비웠다.비록 이글 엔터의 대외적인 대표는 도준호지만 실세는 소은해였으니까.잠시 후, 소은정은 손호영과 함께 이글 엔터로 향했다.궁금할 법도 한데 손호영은 가는 내내 한마디도 묻지 않고 침착한 얼굴로 앉아있을 뿐이었다.잠시 후, 이글 엔터에 도착한 소은정이 대표 사무실 문을 연 순간.도준호 대표와 신출귀몰하는 소은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오빠가 왜 여기 있어?”소은정이
먼저 소파에 앉은 소은정이 손호영에게도 눈치를 주었다.“손호영 씨가 SC그룹 신제품 CF 모델로 발탁됐어요.”덤덤한 소은정의 말에 도준호와 소은해가 흠칫했다.“뭐라고?”소은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무례한 반응이긴 했지만 손호영은 불쾌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지금 연예계에서 손호영은 그야말로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니까.도준호의 리액션은 소은해보다 훨씬 더 침착했지만 눈동자에 담긴 착잡함은 감출 수 없었다.이 정도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어.소은정이 한숨을 내쉬었다.“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하지만 이대로 계약 해지는 하고 싶지 않아요. 해지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단호한 소은해와 도준호를 향해 소은정이 조심스레 한 마디 덧붙였다.“이미지... 세탁이라든가.”소은해가 기가 막히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 도준호도 고개를 떨구었다.생각보다 문제가 복잡하네... 그래서 직접 찾아온 거였어.“어쨌든 지금 그런 상황이에요. 난 계약 해지하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신제품 출시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미지 세탁 좀 시켜줘요.”소은정이 어깨를 으쓱하고 소은해는 어이 없다는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야, 그냥 다른 애로 바꿔. 요즘 신인애들 중에 쟤보다 나은 애들 쌔고 쌨어.”“교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여기까지 왔겠어? 오빠야말로 톱스타면서 그 정도 방법 하나 없어?”소은정이 소은해를 노려보았다.하, 능력이고 자시고 저 자식이랑 얽히고 싶지 않다고.소은해가 한숨을 쉬었다.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도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일단 호영 씨 얘기부터 들어보죠. 사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얘기들 중에 사실이 아닌 것도 많을 겁니다. 진실을 알아야 대책을 세우든 하지 않겠어요?”도준호의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프로다워.모두의 시선에 손호영에게 쏠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손호영이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정교한 이목구비에 순간 서늘함이 비쳤지만 곧 다시 침착함을 되찾았다.“제가 와이프
도준호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때 워낙 각광을 받을 때니 집 주위에 파파라치들이 몰려있었을 수도 있었겠네요. 그리고 나서는... 온갖 부정적인 기사들이 쏟아졌겠죠. 대중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라면 팩트 체크도 안 하고 기사를 써제끼는 기자들은 많으니까.”고개를 숙인 손호영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다행히... 매니저 형은 절 안 버렸어요. 그래서 근근히 먹고 살고는 있습니다.”신인 때부터 함께 힘들게 굴러온 정이 남아있어서인지 PD들이며 투자자들에게 고개를 굽신거리는 매니저를 볼 때마다 손호영은 고마우면서도 미안함이 앞섰다.하, 그런 일이 있었어?소은정도 어느새 동정어린 시선으로 손호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어머님은 괜찮으시죠? 안 다치셨어요?”“네. 그 뒤로 바로 시골로 모셨어요. 나이가 있으셔서 인터넷 같은 건 안 하시니까 아마 제 상황도 잘 모르실 거예요.”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도준호를 바라보았다.“어때요? 가능하겠어요?”소은정의 질문에 도준호는 고개를 떨구었다.웬만하면 가능하다 호언장담하고 싶었지만 워낙 어려운 문제였으니까.소은정 대표 부탁이니 안 들어줄 수도 없고...“있긴 합니다만 시간이 필요합니다.”“얼마나 걸릴까요?”“최소 반년이요.”소은정이 고민에 잠겼다.신제품 출시는 3개월 뒤로 예정되어 있어. 반년이면 너무 길잖아.이때 소은해가 도준호 대표 편을 들었다.“반년도 짧게 잡은 거야. 지금 이 상황에서 진실을 밝혀봐야 오히려 질타만 받을 거야. 워낙 시간이 흐르기도 했고... 우리 쪽 말이 진짜라고 입증할 증거도 없잖아. 결국 이미지만 소모될 거라고. 가장 좋은 방법은 천천히 연기로 관객들의 호감을 얻는 것뿐이라고.”소은해의 날카로운 팩폭에 손호영 역시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네티즌들이 얼마나 엄격하고 잔인한 존재인지는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아마 홍보팀에서 생각한 솔루션 중에 최선을 고르면 되긴 할 겁니다. 여론을 통제하면 이미지 세탁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