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민하준은 지채영이 소리를 치든 말든 관심 없다는 표정이었다. 민하준의 눈동자에 비친 건 한유라뿐이었으니까.발버둥치는 한유라를 간단히 제압한 민하준이 그녀를 끌고 나가고 표정이 굳은 소은정이 바로 그 뒤를 따라나섰다.이미 한유라를 감금까지 한 전적이 있는 민하준이다.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박수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이 비서, 민 대표 따라가봐요. 그리고 계약에 관한 건 무기한 연장입니다.”구석 자리에 앉아있던 이한석은 갑작스러운 호명에 흠칫했지만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네, 대표님.”소은정 대표 대신 가라는 거겠지?무슨 수작인가 싶어 소은정이 의아하던 그때, 박수혁의 입에서 드디어 그녀의 이름이 흘러나왔다.“은정아...”익숙한 중저음이 소은정의 귀를 간지럽혔다.“알려줘서 고마워. 이대로 계약 진행했었다면 큰 손해를 봤을 거야.”“감사 인사는 유라한테 해. 유라가 제공한 정보였으니까.”계약 무기한 연장이라는 말이란 곧 계약 파기와 마찬가지... 지채영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박 대표님, 저 미친 여자의 말을 믿으시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모함이에요!”하지만 고개를 돌린 박수혁의 날카로운 시선에 곧 깨갱하며 머리를 숙였다.“어쨌든 의문이 제기된 이상 조사는 해봐야 할 것 같군요. 뭐든 확실한 게 좋으니까요.”말을 마친 박수혁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바로 소은정에게로 다가갔다.“고맙다는 의미에서 밥이라도 사고 싶은데.”미간을 찌푸린 소은정이 바로 거절하려던 그때 박수혁이 한 마디 덧붙였다.“한유라 씨도 같이.”이 남자... 뭔가 이상한데? 왜 이렇게 무덤덤한 거야?소은정은 박수혁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 보았지만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어제까지만 해도 화가 잔뜩 난 모습이던 박수혁이 하루만에 소은정이 연애를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그런데 덤덤한 표정에 밥까지 사겠다니...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이럴 때는
박수혁은 소은정의 옆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저 아름다운 얼굴이 이제 그의 것이 아니다.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시무시한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가질 수 없다면... 망쳐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한편, 화풀이를 끝낸 듯한 한유라가 그녀를 향해 손을 젓고 소은정은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두 사람이 자리를 뜨려던 그때 민하준이 어두운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유라야, 결혼했다는 거 말고 너한테 숨긴 거 없어. 사실 오늘 오후에 법원으로 가기로 약속까지 했었어. 그러니까 기...”“기다려줘”라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한유라가 코웃음을 쳤다.“두 사람 아주 천생연분이던데 왜 이혼을 해? 난 그냥 길 가다 똥 밟았다 생각하려고. 앞으로 내 눈에 띄지 마. 그땐 정말 죽여버릴 거니까.”지금까지 가벼운 연애를 이어가던 한유라에게 민하준은 처음 그녀의 마음속에 한 발 내디딘 남자였다.이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유부남이라니...내가 아무리 철이 없어도 이건 아니야. 민하준, 당신 진짜 나한테 선 넘은 거야.마지막까지 악담을 퍼부은 한유라가 소은정을 끌고 사라지고 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한석이 바로 박수혁 옆으로 다가갔다.이렇게 된 이상 계약은 무리겠어.돌아가는 길,여전히 씩씩대는 한유라를 바라보던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아직도 화가 덜 풀렸어?”“내가 지금 화 안 나게 생겼어?”“박수혁이 계약은 무기한 연장이라고 말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 이번 계약은 물 건너 가는 거겠지. 그리고 박수혁이라면... 아마 민하준을 두 번 다시 상대하지 않을 거야.”그제야 표정이 살짝 풀린 한유라가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돌렸다.“그런데 박수혁 말이야. 그렇게 큰 계약도 아닌데 왜 직접 온 걸까?”소름 끼치는 인연에 한유라가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어쩔 수 없지 뭐. 이 바닥에서 일하려면 어차피 오며 가며 마주치게 돼있잖아. 함께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있고. 익숙해져야지 뭐. 뭐 민하준이 마
직원의 말에 한유라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후덜덜거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에 소은정은 안쓰러움이 밀려왔다.아이고, 오늘 한바탕 난리 나겠는데?사무실 앞에서 한 동안 심호흡을 반복하던 한유라가 드디어 용기를 내 문으 열었다.“엄마...”한유라의 어머니, 김현숙은 집안을 꽉 잡고 있는 실세 중의 실세. 혼자 한유라를 키우면서도 회사를 일으킨 말 그대로 철의 여인이었다.역시나 문이 열리자마자 사진 몇 장이 바람처럼 날아와 한유라의 발치에 떨어졌다.“너 도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하면서 다니는 거지?”사진을 주운 한유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민하준과 함께 있는 모습, 지채영과 다투는 모습까지...누가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녀의 엄마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한유라의 뒤를 따라들어온 소은정 역시 사진을 힐끗 쳐다보았다.“어머님, 안녕하세요.”소은정의 등장에 잔뜩 굳은 김현숙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은정아, 오랜만이네.”한유라 역시 천천히 이성을 되찾았다.한 번의 실수로 이렇게 많은 골치거리들이 생긴 게 어이가 없었지만 모든 걸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으니까.“사실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먼저 고자질을 한 사람이 있었나 보네요. 저 남자랑은 이미 끝냈어요. 사귈 때는 유부남인 줄 몰랐었고요. 엄마 딸, 상간녀 노릇이나 할 정도로 최악은 아니라는 거 엄마도 알잖아요. 나 좋다는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딴 자식 하나에 인생 걸 생각은 없었다.”오히려 당당하게 나오는 한유라의 모습에 김현숙은 당황하기 시작했다.하긴, 철딱서니가 없어도 유부남이나 만나고 다닐 애는 아니지.“정말 깔끔하게 정리한 거 맞아?”어차피 한유라더러 민하준을 포기하라고 설득하려고 온 것었으니 김현숙의 말투는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네.”김현숙이 소은정을 돌아보았다.“유라가 한 말 다 사실이니?”“네. 민하준 회사와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중단하려고 회사에 온 거예요. 유라 성격
시연 언니가? 왜?의아하긴 했지만 이제 곧 가족이 될 사이니 만남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어서 모시고 들어와요.”잠시 후, 한시연이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사무실에 들어섰다.그녀의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따뜻한 봄바람 같은 매력이 있어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졌다.“오빠 만나러 온 거 아니에요?”“저녁 약속이 있긴 한데 오늘은 아가씨 만나려고 온 거예요.”소은정이 우연준을 바라보고 우연준은 눈치껏 고개를 끄덕인 뒤 사무실을 나갔다.이렇게 두 사람만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라 왠지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한시연 때문에 한유라가 짝사랑을 접게 된 건 안타까웠지만 어디까지나 아쉬움일 뿐, 한시연이 싫다거나 하지는 않았다.오빠가 선택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존중해 줘야 하는 게 당연하니까.“유라 씨 몸은 좀 괜찮아요?”생각지 못한 질문에 소은정이 흠칫했다.“네. 많이 좋아졌어요. 지금은 이미 퇴원했고요.”“학교 다닐 때부터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었죠. 아가씨 심부름이라면서 은호 오빠한테 초콜릿이나 음료수 같은 걸 챙겨주곤 했던 게 기억이 나요.”한시연은 미소를 지었지만 소은정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유라한테 그런 부탁한 적 없는데... 아, 시연 언니... 유라 마음을 눈치챈 거구나... 하긴 아까 병실에서 워낙 좀 이상하긴 했지. 그래서 내 생각을 떠보려고 온 거야.소은정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고 한시연도 더 이상 뜸을 들이지 않았다.“사실 그것들 아가씨가 부탁한 거 아니죠? 은호 오빠 간식도 싫어하고 음료수도 싫어한다는 거... 여동생이 모를 리가 없으니까.”피식 웃던 한시연이 말을 이어갔다.“그때 이 일로 은호 오빠랑 대판 싸웠었죠. 그 뒤로 전 출국했고 몇 년 동안 한 번도 서로 연락하지 않았어요.”한시연의 말에 소은정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그것 때문에 미국으로 간 거예요”“뭐... 이유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유라 씨... 아직도 은호 오빠 좋아해요?”“유라는 제가 아끼는
한시연이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섰다.“아가씨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좀 도와주지 그래?”소은정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소은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잖아.”두 사람이 사무실을 나서고 소은정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다 다시 보고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30분 후, 우연준이 사무실로 들어왔다.“전동하 대표님께서 오셨습니다.”뭐야? 헤어진 지 3시간도 안 됐는데 왜 또 온 거야...소은정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들어오라고 해요.”사실 두 사람이 사귄다는 건 우연준도 모르는 사실, 그저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자꾸 사무실을 들락거리면 들키게 될까 걱정이 앞섰다.아직 공개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사무실로 들어온 전동하가 그녀를 향해 포장백을 흔들었다.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 로고에 소은정의 눈이 반짝 빛났다.“일 다 끝났어요?”테이블에 음식을 깔던 전동하가 대답했다.“아무리 바빠도 여자친구 식사는 챙겨야죠. 바쁘다고 대충 때울까 봐 포장 좀 해왔어요.”어쩜 이렇게나 자상할까...전동하의 미소에 소은정의 마음도 따뜻해지는 듯했다.사실 전동하 말대로 대충 떼우려던 계획이었지만 음식 냄새를 맡는 순간 그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하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동하 씨는 안 먹어요?”“난 먹고 왔어요. 여기서 오늘 점심 약속이 있었거든요.”간김에 포장해 온 거였나? 뭐 어때. 내 생각을 해줬다는 게 중요한 거지.양갈비 스테이크에 탕수육...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 차려진 테이블을 바라보던 소은정의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지만 소은정의 식사는 우아, 고상 그 자체였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식사예절 덕분이었다.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전동하가 불쑥 물었다.“오늘 박수혁 대표 만났다면서요?”“네. 유라가 민하준과 태한그룹의 계약을 엎어버리고 왔거든요. 그런데 박수혁도 있더라고요.”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어
어느새 코트를 입고 핸드백까지 챙긴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도 사무실을 나섰다.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차까지 막혀 시간은 더 지체되었다.40분이 지나서야 공항에 도착하고 초조한 소은정과 달리 전동하는 여유롭게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마 곧 도착할 거예요.”과연 2분 뒤 ,사람들 사이에서 경호원과 돌보미 아주머니 수잔의 얼굴, 그리고 뒤뚱거리며 달려오는 마이크의 모습이 보였다.청바지 재질의 멜빵바지에 모자까지 쓴 마이크는 못 본 새에 키가 훌쩍 커있었다. 소은정을 발견한 마이크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소은정이 직접 올 거라고 생각지 못했는지 눈까지 비비던 마이크가 환한 미소와 함께 그녀의 품에 안기려 했다.“예쁜 누나...”소은정이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안으려던 그때 누군가 아이의 목덜미를 덥썩 잡았다.허공에서 버둥거리는 마이크를 향해 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아들, 아빠 안 보고 싶었어?”참나, 오자마자 내 여자친구한테 안기려 들어? 그건 안 되지...마이크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아, 아빠도 왔어요?”소은정이 마이크를 내려놓으라는 듯 전동하의 팔을 툭툭 치고 그제야 마이크는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었다.그리고 전동하의 손에서 벗어난 순간, 마이크는 고삐 풀린 말처럼 달려가더니 소은정의 허벅지에 착 달라붙었다.“예쁜 누나... 너무 보고 싶었어요”마이크의 부드러운 볼이 느껴지고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귀국한 걸 환영해.”고개를 끄덕이던 마이크가 뒤에 서 있는 아주머니와 보디가드를 향해 손을 저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오는 두 사람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미간을 찌푸리는 전동하를 향해 마이크가 미소를 지었다.“이건 다 제가 예쁜 누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에요!”마이크의 말에 소은정의 눈이 커다래지고 마이크가 말을 이어갔다.“한국에 경연하러 갔을 때 선물 받은 건데요. 진짜 골동품이에요. 소장가치가 있는 물건이라 이거죠! 게다가 예쁜 누나가
경호원의 말에 소은정과 전동하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항상 친절하고 젠틀한 전동하지만 지금만큼은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이제 다시 보석 선물은 안 하기로 했잖아요. 이 신발 이쁘죠? 그리고 그날 경매장에서 가장 비싼 경매품이었대요.”마이크가 깡총깡총 뛰어오더니 고개를 갸웃했다.“예쁜 누나, 마음에 들어요?”소은정은 신발을 본 뒤부터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흰 국화를 넘어서 이젠 미이라에서 벗겨낸 신발...?하... 이건 연기로라도 좋아하기 힘들 것 같은데...“그게... 마이크, 앞으로 좀 평범한 선물로 주면 안 될까?”이제 마이크가 선물을 준비했다고 하면 바로 두려움부터 밀려오는 소은정이었다.애매한 소은정의 리액션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마이크는 고개를 돌려 전동하에게 말했다.“그럼 이 신발은 아빠한테 주는 걸로 할게요! 아빠 기분 좋죠?”“그래... 아주 좋아 죽겠다. 이 자식아...”한국 문화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는 전동하였다.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전동하가 물었다.“은정 씨, 아는 박물관 있어요? 한시도 저 물건이랑 같이 있고 싶지 않은데...”“네. 바로 연락할게요.”그래. 차라리 박물관으로 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러면 그나마 좀 더 오싹할지도...한숨을 푹 내쉰 전동하가 먼저 자리를 뜨고 소은정 역시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바라보았다.나름 서프라이즈라면 서프라이즈네...“아빠 왜 저래요? 저 신발 72억에 낙찰받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 준다고요?”“저 신발이 더 잘 어울리는 곳으로 보내시려는 거야.”마이크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은정의 따뜻한 손을 꼭 잡았다.“예쁜 누나, 정말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나 오늘 누나네 집에서 자면 안 돼요?”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대답했다.“당연히 되지. 그래도 먼저 아빠한테 허락부터 받자?”먼저 차에 오른 전동하는 소은정과 마이크가 차에 타자 바로 시동을 걸었다.
전기섭? 낯선 이름에 소은정이 고개를 갸웃하고 살짝 굳은 표정의 전동하가 바로 설명해 주었다.“전기섭... 제 둘째 삼촌이에요. 역시 저희 전인그룹의 차기 대표 후보이기도 하고요.소은정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은 전동하였지만 남의 집 가정사에 대해 꼬치꼬치 묻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가족이 한국으로 들어왔다니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그런데 이때 주먹을 휘두르며 마이크가 소리쳤다.“아주 나쁜 사람이에요!”마이크의 말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전씨 집안도 바람 잘 날 없나보네... 이럴 줄 알았으면 우 비서한테 미리 알아보라고 시킬 걸 그랬나?마이크를 집에 데려다주고 얼마 후, 소찬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왠지 불쾌한 듯한 목소리의 소찬식이 말했다.“은정아, 집에 손님이 오셨다. 본가로 들어와.”그리고 바로 한 마디 덧붙였다.“혼자 와야 해.”누구도 달고 오지 말고 혼자 조용히 오라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바로 전동하와 마이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소씨 일가 저택.집사 아저씨가 다가와 소은정의 차문을 열어주었다.차에서 내린 그녀가 물었다.“갑자기 손님이요? 누군데요?”소은정의 질문에 집사 아저씨도 고개를 저었다.의문을 안고 집으로 들어간 소은정은 소파에 꼿꼿이 앉은 소찬식 앞에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남자의 입가에 걸린 가식적인 미소에 소은정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소찬식의 옆에 앉아있던 소은해가 현관에 서 있는 소은정을 향해 말했다.“은정아, 왔어?”“응. 아빠, 이 분은 누구세요?”총기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아하니 딱 봐도 장사꾼이구만...소찬식이 대답하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일어섰다.“은정 씨, 안녕하세요. 전인그룹 대표 전기섭이라고 합니다.”전기섭? 하, 이런 우연이 다 있네.전기섭의 손을 잡은 소은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아, 전동하 대표의 삼촌이시기도 해.”소은해가 설명을 덧붙어고 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