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연 언니가? 왜?의아하긴 했지만 이제 곧 가족이 될 사이니 만남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어서 모시고 들어와요.”잠시 후, 한시연이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사무실에 들어섰다.그녀의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따뜻한 봄바람 같은 매력이 있어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졌다.“오빠 만나러 온 거 아니에요?”“저녁 약속이 있긴 한데 오늘은 아가씨 만나려고 온 거예요.”소은정이 우연준을 바라보고 우연준은 눈치껏 고개를 끄덕인 뒤 사무실을 나갔다.이렇게 두 사람만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라 왠지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한시연 때문에 한유라가 짝사랑을 접게 된 건 안타까웠지만 어디까지나 아쉬움일 뿐, 한시연이 싫다거나 하지는 않았다.오빠가 선택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존중해 줘야 하는 게 당연하니까.“유라 씨 몸은 좀 괜찮아요?”생각지 못한 질문에 소은정이 흠칫했다.“네. 많이 좋아졌어요. 지금은 이미 퇴원했고요.”“학교 다닐 때부터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었죠. 아가씨 심부름이라면서 은호 오빠한테 초콜릿이나 음료수 같은 걸 챙겨주곤 했던 게 기억이 나요.”한시연은 미소를 지었지만 소은정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유라한테 그런 부탁한 적 없는데... 아, 시연 언니... 유라 마음을 눈치챈 거구나... 하긴 아까 병실에서 워낙 좀 이상하긴 했지. 그래서 내 생각을 떠보려고 온 거야.소은정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고 한시연도 더 이상 뜸을 들이지 않았다.“사실 그것들 아가씨가 부탁한 거 아니죠? 은호 오빠 간식도 싫어하고 음료수도 싫어한다는 거... 여동생이 모를 리가 없으니까.”피식 웃던 한시연이 말을 이어갔다.“그때 이 일로 은호 오빠랑 대판 싸웠었죠. 그 뒤로 전 출국했고 몇 년 동안 한 번도 서로 연락하지 않았어요.”한시연의 말에 소은정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그것 때문에 미국으로 간 거예요”“뭐... 이유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유라 씨... 아직도 은호 오빠 좋아해요?”“유라는 제가 아끼는
한시연이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섰다.“아가씨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좀 도와주지 그래?”소은정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소은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잖아.”두 사람이 사무실을 나서고 소은정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다 다시 보고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30분 후, 우연준이 사무실로 들어왔다.“전동하 대표님께서 오셨습니다.”뭐야? 헤어진 지 3시간도 안 됐는데 왜 또 온 거야...소은정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들어오라고 해요.”사실 두 사람이 사귄다는 건 우연준도 모르는 사실, 그저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자꾸 사무실을 들락거리면 들키게 될까 걱정이 앞섰다.아직 공개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사무실로 들어온 전동하가 그녀를 향해 포장백을 흔들었다.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 로고에 소은정의 눈이 반짝 빛났다.“일 다 끝났어요?”테이블에 음식을 깔던 전동하가 대답했다.“아무리 바빠도 여자친구 식사는 챙겨야죠. 바쁘다고 대충 때울까 봐 포장 좀 해왔어요.”어쩜 이렇게나 자상할까...전동하의 미소에 소은정의 마음도 따뜻해지는 듯했다.사실 전동하 말대로 대충 떼우려던 계획이었지만 음식 냄새를 맡는 순간 그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하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동하 씨는 안 먹어요?”“난 먹고 왔어요. 여기서 오늘 점심 약속이 있었거든요.”간김에 포장해 온 거였나? 뭐 어때. 내 생각을 해줬다는 게 중요한 거지.양갈비 스테이크에 탕수육...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 차려진 테이블을 바라보던 소은정의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지만 소은정의 식사는 우아, 고상 그 자체였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식사예절 덕분이었다.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전동하가 불쑥 물었다.“오늘 박수혁 대표 만났다면서요?”“네. 유라가 민하준과 태한그룹의 계약을 엎어버리고 왔거든요. 그런데 박수혁도 있더라고요.”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어
어느새 코트를 입고 핸드백까지 챙긴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도 사무실을 나섰다.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차까지 막혀 시간은 더 지체되었다.40분이 지나서야 공항에 도착하고 초조한 소은정과 달리 전동하는 여유롭게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마 곧 도착할 거예요.”과연 2분 뒤 ,사람들 사이에서 경호원과 돌보미 아주머니 수잔의 얼굴, 그리고 뒤뚱거리며 달려오는 마이크의 모습이 보였다.청바지 재질의 멜빵바지에 모자까지 쓴 마이크는 못 본 새에 키가 훌쩍 커있었다. 소은정을 발견한 마이크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소은정이 직접 올 거라고 생각지 못했는지 눈까지 비비던 마이크가 환한 미소와 함께 그녀의 품에 안기려 했다.“예쁜 누나...”소은정이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안으려던 그때 누군가 아이의 목덜미를 덥썩 잡았다.허공에서 버둥거리는 마이크를 향해 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아들, 아빠 안 보고 싶었어?”참나, 오자마자 내 여자친구한테 안기려 들어? 그건 안 되지...마이크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아, 아빠도 왔어요?”소은정이 마이크를 내려놓으라는 듯 전동하의 팔을 툭툭 치고 그제야 마이크는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었다.그리고 전동하의 손에서 벗어난 순간, 마이크는 고삐 풀린 말처럼 달려가더니 소은정의 허벅지에 착 달라붙었다.“예쁜 누나... 너무 보고 싶었어요”마이크의 부드러운 볼이 느껴지고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귀국한 걸 환영해.”고개를 끄덕이던 마이크가 뒤에 서 있는 아주머니와 보디가드를 향해 손을 저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오는 두 사람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미간을 찌푸리는 전동하를 향해 마이크가 미소를 지었다.“이건 다 제가 예쁜 누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에요!”마이크의 말에 소은정의 눈이 커다래지고 마이크가 말을 이어갔다.“한국에 경연하러 갔을 때 선물 받은 건데요. 진짜 골동품이에요. 소장가치가 있는 물건이라 이거죠! 게다가 예쁜 누나가
경호원의 말에 소은정과 전동하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항상 친절하고 젠틀한 전동하지만 지금만큼은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이제 다시 보석 선물은 안 하기로 했잖아요. 이 신발 이쁘죠? 그리고 그날 경매장에서 가장 비싼 경매품이었대요.”마이크가 깡총깡총 뛰어오더니 고개를 갸웃했다.“예쁜 누나, 마음에 들어요?”소은정은 신발을 본 뒤부터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흰 국화를 넘어서 이젠 미이라에서 벗겨낸 신발...?하... 이건 연기로라도 좋아하기 힘들 것 같은데...“그게... 마이크, 앞으로 좀 평범한 선물로 주면 안 될까?”이제 마이크가 선물을 준비했다고 하면 바로 두려움부터 밀려오는 소은정이었다.애매한 소은정의 리액션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마이크는 고개를 돌려 전동하에게 말했다.“그럼 이 신발은 아빠한테 주는 걸로 할게요! 아빠 기분 좋죠?”“그래... 아주 좋아 죽겠다. 이 자식아...”한국 문화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는 전동하였다.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전동하가 물었다.“은정 씨, 아는 박물관 있어요? 한시도 저 물건이랑 같이 있고 싶지 않은데...”“네. 바로 연락할게요.”그래. 차라리 박물관으로 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러면 그나마 좀 더 오싹할지도...한숨을 푹 내쉰 전동하가 먼저 자리를 뜨고 소은정 역시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바라보았다.나름 서프라이즈라면 서프라이즈네...“아빠 왜 저래요? 저 신발 72억에 낙찰받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 준다고요?”“저 신발이 더 잘 어울리는 곳으로 보내시려는 거야.”마이크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은정의 따뜻한 손을 꼭 잡았다.“예쁜 누나, 정말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나 오늘 누나네 집에서 자면 안 돼요?”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대답했다.“당연히 되지. 그래도 먼저 아빠한테 허락부터 받자?”먼저 차에 오른 전동하는 소은정과 마이크가 차에 타자 바로 시동을 걸었다.
전기섭? 낯선 이름에 소은정이 고개를 갸웃하고 살짝 굳은 표정의 전동하가 바로 설명해 주었다.“전기섭... 제 둘째 삼촌이에요. 역시 저희 전인그룹의 차기 대표 후보이기도 하고요.소은정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은 전동하였지만 남의 집 가정사에 대해 꼬치꼬치 묻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가족이 한국으로 들어왔다니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그런데 이때 주먹을 휘두르며 마이크가 소리쳤다.“아주 나쁜 사람이에요!”마이크의 말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전씨 집안도 바람 잘 날 없나보네... 이럴 줄 알았으면 우 비서한테 미리 알아보라고 시킬 걸 그랬나?마이크를 집에 데려다주고 얼마 후, 소찬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왠지 불쾌한 듯한 목소리의 소찬식이 말했다.“은정아, 집에 손님이 오셨다. 본가로 들어와.”그리고 바로 한 마디 덧붙였다.“혼자 와야 해.”누구도 달고 오지 말고 혼자 조용히 오라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바로 전동하와 마이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소씨 일가 저택.집사 아저씨가 다가와 소은정의 차문을 열어주었다.차에서 내린 그녀가 물었다.“갑자기 손님이요? 누군데요?”소은정의 질문에 집사 아저씨도 고개를 저었다.의문을 안고 집으로 들어간 소은정은 소파에 꼿꼿이 앉은 소찬식 앞에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남자의 입가에 걸린 가식적인 미소에 소은정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소찬식의 옆에 앉아있던 소은해가 현관에 서 있는 소은정을 향해 말했다.“은정아, 왔어?”“응. 아빠, 이 분은 누구세요?”총기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아하니 딱 봐도 장사꾼이구만...소찬식이 대답하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일어섰다.“은정 씨, 안녕하세요. 전인그룹 대표 전기섭이라고 합니다.”전기섭? 하, 이런 우연이 다 있네.전기섭의 손을 잡은 소은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아, 전동하 대표의 삼촌이시기도 해.”소은해가 설명을 덧붙어고 소은정
바로 투자금 세 배라니... 역시 글로벌 대기업은 다르다 싶었지만 전기섭의 말투나 행동에서 느껴지는 묘한 우월감에 소은정은 반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동하 씨는 겸손한데. 한 가족인데 참 분위기가 달라.전기섭과 소은정이 한참 동안 서로를 관찰하고 어색한 분위기는 질색인 소은해가 먼저 입을 열었다.“전동하 대표와의 협력을 멈추고 전인그룹과 함께 일하자라... 두 사람 가족 아닙니까? 조카 앞길을 막는 삼촌이라니...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되네요.”솔직하고 예리한 소은해의 질문에 전기섭이 미소를 지었다.“뭐. 그러실 수도 있죠.”“사실 저도 잘 이해가 안 갑니다.”소은정도 왜 전기섭이 전동하와 전씨 집안을 따로 분리해서 말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하지만 질문하려던 그때 마이크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나쁜 사람이야!”“동하가 은정 씨한테 저희 집안에 대해 전혀 얘기하지 않았나 보네요. 은정 씨한테 대시한다는 소문은 오며 가며 들었지만 그 마음도 100% 진심도 아닌가 봅니다.”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전기섭이 말을 이어갔다.“동하는 항상 그래요. 언제 어디서든 가식적인 가면을 쓰고 절대 진짜 속마음은 보여주지 않은 스타일이죠.”“은정아. 일 얘기는 너희들끼리 해. 난 피곤해서 먼저 올라가봐야겠다.”전기섭을 상대하는 게 귀찮았는지 소찬식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네, 아빠. 쉬세요.”평소라면 소은해도 자리를 박차고 나갔겠지만 오늘만은 달랐다.은정이의 행복한 앞날이 걸린 문제기도 해. 제대로 들어야겠어.“갑자기 귀국하셨다니 아직 동하 씨를 만나지도 못 하셨겠네요.”“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죠. 한국에 온 이유 중 하나는 SC그룹과 프로젝트를 체결하기 위함, 다른 하나는 동하를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니까요.”전기섭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러려면 은정 씨 협조가 필요할 것 같네요.”이때 집사가 커피를 내오고 커피를 홀짝 마신 소은정은 여유롭게 커피잔을 내려놓았다.궁금해 하지도 더 따져묻지도 않는 소은정의 모습에 전기섭이 오히려 당황하
소은해의 질문에 전기섭이 미소를 지었다.“이 정도 파산이야... 집안에서 얼마든지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회사는 파산되어도 다시 세울 수 있지만 아버지는 세상에 한 명뿐이니까요.”전기섭의 설명에 소은정은 침묵을 유지했다.분명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한데 전기섭이 하는 말 중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소은정의 언짢음을 눈치챈 걸까, 전기섭이 말을 이어갔다.“사실 저도 이렇게 하는 게 옳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동하를 다시 가문에 들이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 밖에 없어요. 동하도 어디까지나 우리 전씨 집안 사람입니다. 이제 객기는 그만 부리고 가문을 위해 일해야죠.”하, 다시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 동하 씨를 위한 일인 것처럼 말하다니.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워낙 중요한 일이라 저 혼자 단번에 결정을 내리기 어렵네요. 고민할 시간을 주시겠어요?”소은정의 반응에 전기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될 거라고 확신하는 듯 당당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다 동하를 위한 일이니 죄책감 가지지 마세요. 집에 다시 들어오면 동하는 전인그룹 대표직을 맡게 될 겁니다. 오히려 동하한테는 잘된 일이죠.”옷매무새를 정리하던 전동하가 말을 이어갔다.“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은정 씨가 결정을 내리시면 바로 직원을 보내도록 하죠.”“멀리 안 나가겠습니다.”전기섭이 고개를 끄덕이고 집사가 그를 배웅했다.전기섭의 모습이 사라지자 방금 전까지 미소를 짓고 있던 소은정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하, 장난 아니네.”소은해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까. 자기 자식도 아닌 애한테... 그렇게 잘해 줄 수 있나?”소은정은 아직도 마이크가 전동하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소은해를 흘겨 보았다.“다른 데 가서 떠벌리고 다니지 마. 마이크는 아직 너무 어리잖아.”“그래. 어린 애의 여린 마음 정도는 지켜줘야지.”“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다른 사람한테 말하
마이크가 환하게 웃으며 쪼르르 밖으로 나가고 전동하는 소은정이 들어올 수 있도록 옆으로 자리를 피해 주었다.소은정의 집과 비슷한 구조였지만 인테리어 분위기가 훨씬 더 아늑했다.“뭐 할 말 있어서 온 거예요?”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대답했다.“전기섭이... 우리 집에 왔었어요.역시나 전동하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고 소은정은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전부 얘기해 주었다.“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야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요.”순간 전동하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지만 곧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말해 줘서 고마워요. 날 이제 정말 은정 씨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기분 좋네요.”뜬금없는 말에 소은정이 흠칫했다.“은해 오빠도 그렇고 동하 씨도 그렇고 포인트를 잘못 짚은 것 같은데요?”소은정의 말에 전동하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나한테는 항상 은정 씨가 가장 중요하니까요.”전동하가 소은정의 손을 잡고 순간 전류가 통하 듯 마음이 간질거렸다.“은정 씨, 나 정말 큰일 날 것 같은데 어떡하죠?”친절하지만 항상 당당한 전동하가 이렇게까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라 소은정이 흠칫했다.“도움 필요해요?”“네.”“뭘 어떻게 도와줄까요?”“평생 내 편이 되어줘요. 그럼 항상 힘이 날 것 같으니까.”소은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전동하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말아요. 전기섭은 내 상대가 아니니까.”“나한테 뭐 더 할 말 없어요?”마이크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머니가 전동하 때문에 홧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건 소은정도 모르는 일이었다.하지만 워낙 개인적인 비밀이라... 대놓고 물을 수는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역시나 그녀의 질문에 살짝 당황하던 전동하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전기섭이 하는 말 믿지 말아요. 애초에 집을 나온 것도 전기섭 때문이었어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뒤에서 손을 쓴 거겠죠.”“그럼 왜 바로 떠난 거예요?”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마이크... 어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