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원의 말에 소은정과 전동하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항상 친절하고 젠틀한 전동하지만 지금만큼은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이제 다시 보석 선물은 안 하기로 했잖아요. 이 신발 이쁘죠? 그리고 그날 경매장에서 가장 비싼 경매품이었대요.”마이크가 깡총깡총 뛰어오더니 고개를 갸웃했다.“예쁜 누나, 마음에 들어요?”소은정은 신발을 본 뒤부터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흰 국화를 넘어서 이젠 미이라에서 벗겨낸 신발...?하... 이건 연기로라도 좋아하기 힘들 것 같은데...“그게... 마이크, 앞으로 좀 평범한 선물로 주면 안 될까?”이제 마이크가 선물을 준비했다고 하면 바로 두려움부터 밀려오는 소은정이었다.애매한 소은정의 리액션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마이크는 고개를 돌려 전동하에게 말했다.“그럼 이 신발은 아빠한테 주는 걸로 할게요! 아빠 기분 좋죠?”“그래... 아주 좋아 죽겠다. 이 자식아...”한국 문화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는 전동하였다.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전동하가 물었다.“은정 씨, 아는 박물관 있어요? 한시도 저 물건이랑 같이 있고 싶지 않은데...”“네. 바로 연락할게요.”그래. 차라리 박물관으로 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러면 그나마 좀 더 오싹할지도...한숨을 푹 내쉰 전동하가 먼저 자리를 뜨고 소은정 역시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바라보았다.나름 서프라이즈라면 서프라이즈네...“아빠 왜 저래요? 저 신발 72억에 낙찰받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 준다고요?”“저 신발이 더 잘 어울리는 곳으로 보내시려는 거야.”마이크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은정의 따뜻한 손을 꼭 잡았다.“예쁜 누나, 정말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나 오늘 누나네 집에서 자면 안 돼요?”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대답했다.“당연히 되지. 그래도 먼저 아빠한테 허락부터 받자?”먼저 차에 오른 전동하는 소은정과 마이크가 차에 타자 바로 시동을 걸었다.
전기섭? 낯선 이름에 소은정이 고개를 갸웃하고 살짝 굳은 표정의 전동하가 바로 설명해 주었다.“전기섭... 제 둘째 삼촌이에요. 역시 저희 전인그룹의 차기 대표 후보이기도 하고요.소은정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은 전동하였지만 남의 집 가정사에 대해 꼬치꼬치 묻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가족이 한국으로 들어왔다니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그런데 이때 주먹을 휘두르며 마이크가 소리쳤다.“아주 나쁜 사람이에요!”마이크의 말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전씨 집안도 바람 잘 날 없나보네... 이럴 줄 알았으면 우 비서한테 미리 알아보라고 시킬 걸 그랬나?마이크를 집에 데려다주고 얼마 후, 소찬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왠지 불쾌한 듯한 목소리의 소찬식이 말했다.“은정아, 집에 손님이 오셨다. 본가로 들어와.”그리고 바로 한 마디 덧붙였다.“혼자 와야 해.”누구도 달고 오지 말고 혼자 조용히 오라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바로 전동하와 마이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소씨 일가 저택.집사 아저씨가 다가와 소은정의 차문을 열어주었다.차에서 내린 그녀가 물었다.“갑자기 손님이요? 누군데요?”소은정의 질문에 집사 아저씨도 고개를 저었다.의문을 안고 집으로 들어간 소은정은 소파에 꼿꼿이 앉은 소찬식 앞에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남자의 입가에 걸린 가식적인 미소에 소은정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소찬식의 옆에 앉아있던 소은해가 현관에 서 있는 소은정을 향해 말했다.“은정아, 왔어?”“응. 아빠, 이 분은 누구세요?”총기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아하니 딱 봐도 장사꾼이구만...소찬식이 대답하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일어섰다.“은정 씨, 안녕하세요. 전인그룹 대표 전기섭이라고 합니다.”전기섭? 하, 이런 우연이 다 있네.전기섭의 손을 잡은 소은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아, 전동하 대표의 삼촌이시기도 해.”소은해가 설명을 덧붙어고 소은정
바로 투자금 세 배라니... 역시 글로벌 대기업은 다르다 싶었지만 전기섭의 말투나 행동에서 느껴지는 묘한 우월감에 소은정은 반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동하 씨는 겸손한데. 한 가족인데 참 분위기가 달라.전기섭과 소은정이 한참 동안 서로를 관찰하고 어색한 분위기는 질색인 소은해가 먼저 입을 열었다.“전동하 대표와의 협력을 멈추고 전인그룹과 함께 일하자라... 두 사람 가족 아닙니까? 조카 앞길을 막는 삼촌이라니...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되네요.”솔직하고 예리한 소은해의 질문에 전기섭이 미소를 지었다.“뭐. 그러실 수도 있죠.”“사실 저도 잘 이해가 안 갑니다.”소은정도 왜 전기섭이 전동하와 전씨 집안을 따로 분리해서 말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하지만 질문하려던 그때 마이크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나쁜 사람이야!”“동하가 은정 씨한테 저희 집안에 대해 전혀 얘기하지 않았나 보네요. 은정 씨한테 대시한다는 소문은 오며 가며 들었지만 그 마음도 100% 진심도 아닌가 봅니다.”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전기섭이 말을 이어갔다.“동하는 항상 그래요. 언제 어디서든 가식적인 가면을 쓰고 절대 진짜 속마음은 보여주지 않은 스타일이죠.”“은정아. 일 얘기는 너희들끼리 해. 난 피곤해서 먼저 올라가봐야겠다.”전기섭을 상대하는 게 귀찮았는지 소찬식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네, 아빠. 쉬세요.”평소라면 소은해도 자리를 박차고 나갔겠지만 오늘만은 달랐다.은정이의 행복한 앞날이 걸린 문제기도 해. 제대로 들어야겠어.“갑자기 귀국하셨다니 아직 동하 씨를 만나지도 못 하셨겠네요.”“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죠. 한국에 온 이유 중 하나는 SC그룹과 프로젝트를 체결하기 위함, 다른 하나는 동하를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니까요.”전기섭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러려면 은정 씨 협조가 필요할 것 같네요.”이때 집사가 커피를 내오고 커피를 홀짝 마신 소은정은 여유롭게 커피잔을 내려놓았다.궁금해 하지도 더 따져묻지도 않는 소은정의 모습에 전기섭이 오히려 당황하
소은해의 질문에 전기섭이 미소를 지었다.“이 정도 파산이야... 집안에서 얼마든지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회사는 파산되어도 다시 세울 수 있지만 아버지는 세상에 한 명뿐이니까요.”전기섭의 설명에 소은정은 침묵을 유지했다.분명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한데 전기섭이 하는 말 중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소은정의 언짢음을 눈치챈 걸까, 전기섭이 말을 이어갔다.“사실 저도 이렇게 하는 게 옳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동하를 다시 가문에 들이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 밖에 없어요. 동하도 어디까지나 우리 전씨 집안 사람입니다. 이제 객기는 그만 부리고 가문을 위해 일해야죠.”하, 다시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 동하 씨를 위한 일인 것처럼 말하다니.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워낙 중요한 일이라 저 혼자 단번에 결정을 내리기 어렵네요. 고민할 시간을 주시겠어요?”소은정의 반응에 전기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될 거라고 확신하는 듯 당당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다 동하를 위한 일이니 죄책감 가지지 마세요. 집에 다시 들어오면 동하는 전인그룹 대표직을 맡게 될 겁니다. 오히려 동하한테는 잘된 일이죠.”옷매무새를 정리하던 전동하가 말을 이어갔다.“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은정 씨가 결정을 내리시면 바로 직원을 보내도록 하죠.”“멀리 안 나가겠습니다.”전기섭이 고개를 끄덕이고 집사가 그를 배웅했다.전기섭의 모습이 사라지자 방금 전까지 미소를 짓고 있던 소은정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하, 장난 아니네.”소은해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까. 자기 자식도 아닌 애한테... 그렇게 잘해 줄 수 있나?”소은정은 아직도 마이크가 전동하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소은해를 흘겨 보았다.“다른 데 가서 떠벌리고 다니지 마. 마이크는 아직 너무 어리잖아.”“그래. 어린 애의 여린 마음 정도는 지켜줘야지.”“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다른 사람한테 말하
마이크가 환하게 웃으며 쪼르르 밖으로 나가고 전동하는 소은정이 들어올 수 있도록 옆으로 자리를 피해 주었다.소은정의 집과 비슷한 구조였지만 인테리어 분위기가 훨씬 더 아늑했다.“뭐 할 말 있어서 온 거예요?”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대답했다.“전기섭이... 우리 집에 왔었어요.역시나 전동하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고 소은정은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전부 얘기해 주었다.“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야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요.”순간 전동하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지만 곧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말해 줘서 고마워요. 날 이제 정말 은정 씨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기분 좋네요.”뜬금없는 말에 소은정이 흠칫했다.“은해 오빠도 그렇고 동하 씨도 그렇고 포인트를 잘못 짚은 것 같은데요?”소은정의 말에 전동하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나한테는 항상 은정 씨가 가장 중요하니까요.”전동하가 소은정의 손을 잡고 순간 전류가 통하 듯 마음이 간질거렸다.“은정 씨, 나 정말 큰일 날 것 같은데 어떡하죠?”친절하지만 항상 당당한 전동하가 이렇게까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라 소은정이 흠칫했다.“도움 필요해요?”“네.”“뭘 어떻게 도와줄까요?”“평생 내 편이 되어줘요. 그럼 항상 힘이 날 것 같으니까.”소은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전동하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말아요. 전기섭은 내 상대가 아니니까.”“나한테 뭐 더 할 말 없어요?”마이크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머니가 전동하 때문에 홧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건 소은정도 모르는 일이었다.하지만 워낙 개인적인 비밀이라... 대놓고 물을 수는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역시나 그녀의 질문에 살짝 당황하던 전동하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전기섭이 하는 말 믿지 말아요. 애초에 집을 나온 것도 전기섭 때문이었어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뒤에서 손을 쓴 거겠죠.”“그럼 왜 바로 떠난 거예요?”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마이크... 어렸을
뜬금없는 질문에 소은정이 멈칫했다.“이미 결혼했어요.”얼마 전에는 신혼여행까지 다녀왔었지?“아쉽네요. 여자친구 소개해 주려고 했었는데.”“근데 왜 전에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까먹은 거죠 뭐.”현관으로 걸어간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나 갈게요. 얼른 내려가봐요.”“잠깐만요.”전동하가 다시 거실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화려한 꽃 한 송이를 건넸다.갑작스러운 꽃 선물에 소은정의 가슴이 콩닥거렸다.“오늘의 마지막 선물이에요. 공항에서 봤던 선물은 잊어버려요. 그 신발은 이미 박물관에 도착했다네요. 너무 귀한 작품을 기증했다면서 관장님께서 직접 감사 전화까지 주셨더라고요.”“다행이네요. 꽃 고마워요.”싱긋 미소를 지은 전동하가 소은정의 신발을 신겨주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지나치게 자상한 전동하의 모습에 당황스러웠지만 왠지 싫지 않았다.신발을 신겨준 전동하가 고개를 들었다. 눈웃음으로 휘어진 그의 눈동자에 소은정의 아름다운 얼굴이 비쳤다.“은정 씨,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뭔데요?”“우리... 언제쯤이면 키스할 수 있을까요?”소은정을 바라보는 전동하의 눈동자에 욕망이 살짝 스쳤다.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키스를 하고 싶은 욕구가 쏟아졌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가면 소은정이 겁 먹고 더 멀어질까 마음을 누르고 또 눌렀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왠지 아내를 배웅하는 남편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소은정을 품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해졌고 결국 대놓고 묻기에 이른 것이었다.전동하의 지나친 솔직함에 당황한 소은정의 얼굴에 곧 홍조가 피어올랐다.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전동하는 이대로 그녀를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 천천히 다가왔다.차분한 전동하의 향기가 풍겨오고 이성의 끈이 끊어질 듯 순간 아찔해졌지만 곧 정신을 차린 소은정이 그를 밀어냈다.“일단 물어보고 올게요.”생각나는대로 말한 소은정이 고개를 돌렸다.“누구한테 물을 건데요?”“아빠한테요!”생각지도 못한 답에 전동하의 미소가 굳고 더 대화를 나누
두 팀장은 뭔가 더 변명하려 했지만 결국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두 사람 모두 한 번 내린 결정은 절대 번복하지 않는 소은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두 사람이 회의실을 나서고 소은호의 맞은 편에 앉은 소은정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다면서?”턱끝으로 문쪽을 가리킨 소은호가 대답했다.“아까 봤던 그 두 사람... 다른 회사 사람한테 매수당해서 프로젝트에 손을 썼더라고. 그걸 발견한 다른 직원이 고발한 거고.”“매수를 당해? 누구한테?”“한해그룹 윤시라라던데?”“윤시라?”소은정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아는 사람이야?”“뭐 대충? 프로젝트 상황은 어때? 심각해?”“아직은 괜찮은데 곧 심각해질 예정이야. 방금 전 나간 두 사람이 홍보모델로 누구랑 계약했는지 알아?”웬만큼 화가 났는지 소은호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부동산 프로젝트에 홍보 모델이라니...“손진영이야.”“뭐? 그 가정폭력남?”손진영에 대한 뉴스는 인터넷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부분 부정적인 기사라는 게 문제긴 했지만.손진영은 유준열과 같은 시기 데뷔한 배우였지만 날따라 상승세를 올리는 유준열과 달리 손진영의 인기는 점점 떨어져만 갔다.그리고 갑자기 결혼 발표까지 하면서 팬들이 떨어져나간데다 얼마 전에는 와이프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얼마 남지 않은 팬들도 전부 돌아선 상태였다.지금 손진영과 엮인다면 SC그룹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될 터...그런데 왜 그런 사람을 홍보 모델로...소은호가 짜증스레 한숨을 내쉬었다.“두 팀장이 주도적으로 계약을 진행시킨 모양이야. 우리 제품과 손진영이 싸잡아 욕 먹길 바란 거겠지.”“계약해지 하자.”“아니. 위약금만 10배야. 지금 계약을 파기하면 프로젝트 시작 전부터 흔들리게 될 거야.”애매한 상황에 사무실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은해 오빠는 뭐래?”“은해야 머 무슨 일이 있어도 계약해지 해야 한다고 난리지 뭐.
소은정이 망설이는 듯해 소은호가 대신 결정을 내려준 것이었다.연애는 두 사람 일이라 생각하며 참견하지 않으려 해도 한 번 상처를 심하게 받은 적이 있는 소은정을 생각하면 가만히 두고볼 수 없는 게 오빠 마음이었다.오빠도 참 유난이라니까.봉투를 집어든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오빠 말도 맞아. 빠지기 전에 제대로 알아보는 게 맞지.”소은정의 말에 소은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역시 내 동생이야. 똑부러진다니까.하지만 곧이어 고개를 든 소은정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아, 아까 뭐라고 했지? 남자는 믿는 게 아니라고? 이 말 시연 선배한테도 알려줘야겠다.”소은정의 말에 소은호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네가 그러고도 내 동생이냐?”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메롱을 한 뒤 돌아서는 소은정을 향해 소은호가 소리쳤다.“너 시연이한테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알겠어?”소은정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무실로 올라가고 우연준이 그 뒤를 따랐다.“이 자료들 제가 직접 조사한 겁니다. 궁금한 거 있으시면 저한테 물어보세요.”“이런 건 언제 알아본 거예요?”“오후에 대표님께서 본가에서 오피스텔로 가셨을 때 소 대표님이 알아보시라고 하셨습니다. 미국에 있는 사설탐정한테 부탁했죠. 워낙 은밀한 가문이라 알아보는데 좀 애는 먹었지만요.”“그래서 그쪽 집안에서는 눈치 못 챘고요?”“네.”소은호가 갑자기 우연준더러 전동하에 대해 알아보라고 할 때에야 우연준은 요즘 전동하와 소은정이 유난히 가깝게 지낸다는 걸 눈치챘다.내가 너무 눈치가 없었어... 비서로서 대표님의 연애 여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건데.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봉투를 뜯었다.자료에 따르면 전동하는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문에서 나왔다고 적혀있었다.전씨 일가는 한인 교포들 중에서 유명한 재벌가로 재계는 물론이고 정치계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재벌가였지만 집에서 나온 뒤로 전동하는 전씨 일가와 그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았고 전씨 성인 것도 그저 우연일 뿐인 것처럼 행동했다고 했다.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