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곧 다시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친구로서 그 정도는 물을 수 있잖아? 아, 혹시 어젯밤에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남자친구한테 해명이라도 해줘야 하나?”박수혁의 말에 소은정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그녀가 아는 박수혁이라면 지금쯤 문을 박차고 나가거나 그녀를 향해 욕이라도 퍼부어줬을 텐데.이상해, 이상하단 말이야... 사람이 너무 많이 변하면 죽는다던데...“아니, 그럴 필요 없어.”박수혁은 이를 악물었다.침착, 침착해야 해...겨우 이성을 유지하며 박수혁은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난 네 모든 선택을 존중해. 하지만 난 네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뭐, 일단은 두 사람 사귄다니까 축복은 해주겠지만... 내가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숨도 쉬지 않고 말을 내뱉는 박수혁을 멍하니 바라보는 소은정이 고개를 갸웃했다.이 말투... 왠지 익숙한데?이때 박수혁이 말을 이어갔다.“너랑 나, 사적으로는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공적으로는 얽혀있는 일들이 많잖아. 남자친구가 괜찮대?”말끝마다 남자친구, 남자친구. 귀에 거슬렸지만 굳이 수정해 주고 싶진 않았다.차라리 이대로 오해를 하는 게 그녀에게도 박수혁에게도 나을지도.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던 소은정은 그제야 방금 전 묘한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박우혁!방금 전 박수혁이 했던 말들 쫑파티에서 박우혁이 했던 말과 거의 비슷했으니까.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당신이랑 우혁이... 가족이긴 하네. 닮았어.”뜬금없는 말에 의아하던 박수혁은 곧 그 말에 숨은 뜻을 눈치챘다.뭐야? 지금 날 우혁이 그 자식이랑 비교하는 거야? 내 연기가 부족했나? 충분히 제대로 했다고 생각했는데.“그 양아치랑 비교하지 말아줄래?말을 마친 박수혁이 발걸음을 옮겼다.“난 바로 회사로 갈 거야. 데려다줄까?”“아니, 괜찮아.”고개를 끄덕인 박수혁이 소은정의 집을 나서고 거실은 드디어 조용해졌다.혼자 남은 소은정은 바로 기사에게 전화를
박수혁의 질문에 잔뜩 흥분한 이한석의 목소리가 살짝 수그러들었다.“아직 사인은 안 하셨지만 동의는 하셨습니다.”저번 사건을 통해 박수혁은 태한그룹을 완전히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그 어느 주주도 감히 박수혁의 자리를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그 대가 역시 참혹했다. 지금 박수혁은 박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뒷배를 잃은 상태.그렇게 손주를 아끼던 회장님이셨는데 어쩌다...제삼자인 이한석마저 이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질 따름이었다.그를 이 자리에 앉힌 장본인이 다시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고 하는 기분이 어떨지 이한석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비록 다른 사람이 보기엔 박수혁은 가족에게까지 가차없는 냉혈한 그 자체일 테지만 오랫 동안 박수혁을 모셔온 이한석은 알고 있었다. 박수혁은 단 한 순간도 박대한을 진심으로 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는 걸.박수혁은 그저 박대한이 더 이상 태한그룹의 남은 세력을 이용해 소은정에게 상처를 주는 게 싫었을 뿐이었다.하지만 박대한은 달랐다.박대한은 태한그룹의 지분을 생판 남에게 넘겨주려고 했었다. 지분이 집안 사람에게 남아있는 한, 언젠가 박수혁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뭐, 결과적으로 박대한의 계획은 완벽하게 실패했지만.“대표님.”이한석이 우물쭈물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말해.”“저희 쪽에서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게 어떨까요?”이한석의 말에 박수혁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비수처럼 꽂히는 박수혁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내며 이한석이 침묵을 이어갔다.“어쨌든 한 가족이시잖아요. 회장님도 지금 당장은 화가 너무 나셔서 그러시는 걸 거예요. 다른 가족분들도 겉으로는 뭐라고 못하시지만 뒤에서는 다들 대표님 욕을 하실 겁니다.”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박수혁은 자신을 직접 기른 스승이자 어른의 등에 칼을 꽂은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언젠가 박수혁이 위기에 빠진다면 유일하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가족들 중 그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가족들 사이에는
SC그룹.이른 아침 초대장을 받은 소은정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최근 큰 피바람이 불었던 태한그룹에서 갑자기 파티라니...게다가 금박이 박힌 초대장을 보아하니 창립 기념일보다 더 성대하게 준비한 듯 싶었다.뭐지?어딘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어디가 이상하다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소은정이 망설이던 그때, 아버지 소찬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네 오빠 여자친구랑 같이 집에 왔어. 오늘 일찍 퇴근해.”엥? 이렇게 빨리? 아직 휴가는 며칠 남았을 텐데.뭐, 소은정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회사를 혼자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며칠 동안 잠까지 설친 소은정이었으니까.“네. 지금 바로 갈게요.”그 부담감에서 해방된 기분에 소은정은 날아갈 듯했다.그러고 보니, 한시연도 같이 왔다고 했지? 두 사람 정말... 결혼이라도 하려는 건가?친구인 한유라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인연이라는 게 본디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소은정으로서는 소은호, 한시연 커플을 축복하는 수밖에 없었다.소은정이 집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집사가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오늘 오랜만에 집이 북적북적 하네요. 은호 도련님이 처음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오셔서 회장님께서 많이 기쁘신가 봅니다.”“아저씨도 기뻐 보이시는데요?”“그럼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분이니까요. 이대로 혼자 사시는 건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다행입니다.”살짝 상기된 집사 아저씨의 표정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집으로 들어간 소은정의 시야에 소찬식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소은호, 한시연의 모습이 들어왔다.연애란, 사랑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항상 차갑기만 하던 소은호를 저렇게 웃게 만들다니.“아빠, 저 왔어요. 오빠, 선배, 재밌게 놀았어?”“이리 와. 자, 네 미래의 새언니가 준비한 선물 좀 봐봐.”소은호의 옆구리를 쿡 찌르던 한시연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사실 너희 오빠가 그 동안 너 수고했다고 특별히 고른 거니까 부담갖지 말고 가져.
”크흠.”이때 소찬식이 헛기침과 함께 본론으로 들어갔다.“시연아, 너랑 은호 아주 오랫 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라 들었어. 우리 은호가 좋아하는 아이니 인품이니 다른 건 걱정되지 않아.”소은정, 소은해가 고개를 끄덕였다.“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님.”“그런데 해외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두 사람 결혼하면 신혼 생활은 어디서 할 생각이야?”소찬식이 가장 신경 쓰이는 문제기도 했다.한시연이 과거에 소은호를 찼고 그 사실이 소은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 괜히 트집 잡고 싶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일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게다가 소은호는 소찬식에게 또 다른 의미로 각별한 자식이었다.첫 아이이자 장남.처음 해보는 아버지 노릇에 장남이라는 이유로 소은호는 유난히 엄하게 키웠었다. 물론 소은호는 그런 그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훌륭하게 커주었지만 왠지 그 사실이 소찬식은 마음에 걸렸다.비록 이상할만치 화목하지만 소씨 집안은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가, 쉽게 사람을 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한시연이 이해한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지었다.“은호 씨랑 다시 만나기로 한 뒤로 해외 회사는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대부분 업무는 이미 국내로 시장을 옮긴 상태입니다. 물론 결혼 때문에 제 커리어를 포기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저 나름대로 가정에 충실할 생각이에요.”한시연의 대답에 만족한 듯 소찬식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그래. 나도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야. 재벌가 며느리라고 사회생활은 전부 그만두고 남편 뒷바라지만 시키는 건 구시대적인 편견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은호는 워낙 혼자서도 잘하는 애니까.”“네. 은호 씨도 은정 아가씨 능력에 대해 항상 칭찬하던 걸요. 강단있는 성격이라고요.”한시연의 말에 소찬식이 껄껄 웃었다. “하하, 강단은. 그저 애들 장난이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했다.한편, 한시연의 말에 소은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소은정을 힐끗 바라
”평소에 태한그룹에서 파티를 열 때면 항상 이한석 비서가 먼저 연락했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이름도 처음 듣는 팀장이었어.”소은정이 왠지 이상함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했다.소은정이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전동하가 보낸 문자 알림 메시지였다.“내일 오후 태한그룹에서 주최하는 파티가 열리잖아요. 파트너가 필요한데 같이 갈래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태한그룹 파티에 전동하를 초대했다고?이상하다는 느낌이 더 강력해질 수밖에 없었다.사실 전동하 정도의 유명 투자자가 그룹 파티에 초대를 받는 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동하를 철천지 원수 보듯 하는 박수혁이 전동하를 초대했을 리가 없다.그러니 이 파티는 박수혁이 기획한 게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알겠어요.”일단 가보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겠지. 웬지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느낌에 기대감이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소은정의 묘한 미소에 소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이미 가기로 한 것 같은데 내가 같이 가줄까?”“됐어. 파트너도 찾았고 요즘 출근도 안 하겠다 언니랑 같이 좋은 시간 보내.”싱긋 미소를 짓던 소은정이 한 마디 덧붙였다.“아, 회사 근처에 있는 그 오피스텔, 나 팔고 싶어.”외출할 때마다 박수혁 그 인간의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소은정의 말에 소은호가 장난스레 물었다.“왜? 돈 부족해?”“그건 아니고. 그냥 좀 싫증나서.”“그럼 그냥 다른 곳으로 옮겨. 어차피 네 명의로 된 부동산이 거기 하나도 아니고. 아무데나 골라서 살면 되잖아.”돈이 부족하지도 않은데 왜 부동산을 처분하려 하는 거지?동생이 이해가 가지 않는 소은호였다.에휴, 오빠가 뭘 알아. 평생 일만 한 사람이.하지만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고 싶지 않아 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한 뒤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두 사람 결혼은 언제 할 거야?”“내일 파트너는 누구로 정했어?”서로에게 질문을 한 소은호, 소은정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이른
하지만 박수혁의 타박에 주눅 들 강서진이 아니었다.“그럼 얼른 차에서 내려. 파트너로서 같이 들어가야 할 거 아니야.”이 형 좀 봐라? 지금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는 저 늑대 같은 남자들이 안 보이는 거야?강서진의 말에 잠깐 망설이던 박수혁이 차에서 내리던 그때, 강서진이 그의 팔을 잡더니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아니다.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아. 그냥 내 옆에 있어.”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팔을 뿌리친 박수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향했다.그리고 나란히 선 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전동하, 소은정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선남선녀라는 단어가 두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순간,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전동하 저 자식까지 초대한 거야? 하, 할아버지...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어요?박대한이 소은정을 초대한 것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오늘 이 파티는 박수혁을 망가트리기 위한 박대한의 마지막 발악일 터,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의 자존심을 완벽하게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하지만... 박대한은 박수혁의 생각보다 훨씬 더 독하고 교활했다.사랑의 라이벌인 전동하 앞에서 무너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박수혁에게는 사형 선고이겠지...역시, 박대한은 박수혁을 가장 잘 아는 사람답게 완벽하게 박수혁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고 있었다.한편, 강서진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아무리 사이가 틀어졌다지만 친손자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라는 생각에 욕이라도 하려다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박수혁의 상태를 확인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휴, 됐다...결국 강서진, 박수혁은 소은정과 전동하가 팔짱을 낀 채 들어가는 걸 멍허나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우리도 이만 내리자.”강서진 역시 이번 파티의 정확한 목적은 알 수 없지만 박수혁에게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박수혁의 친구로서 무슨 일이 있
역시나 전동하의 도발에 박수혁의 표정은 어두워질대로 어두워진 상태였다.박수혁이 다가가려던 그때, 강서진이 그의 팔을 덥썩 잡았다.“회장님이 먼저 가셨어...”요즘 박수혁과 박대한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안 좋아졌다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 괜히 두 사람을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한편, 박대한은 미소를 활짝 지은 채 전동하를 향해 다가갔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는 여느 때와 달리 자신감이 가득했다. 혼탁한 눈동자에는 어르신들 특유의 인자함이 아닌 계산적인 차가움이 자리잡고 있었다.“은정아, 와줬구나.”먼저 인사를 건네는 박대한의 모습에 소은정은 꽤나 당황스러웠다. 저번에 한해그룹 대표를 사칭해 따로 만남을 가졌을 때 생긴 해프닝이 아직도 눈앞에 선한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다니...오늘 이 파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워낙 궁금해 직접 와본 것이지 마음 같아선 박대한과는 상종도 하고 싶지 않은 소은정이었지만 워낙 보는 사람들이 많으니 역시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하, 교활한 영감탱이. 어디서 인자한 척이야.“회장... 아, 어르신,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여유로운 미소로 술잔을 들어보이는 소은정의 모습에 박대한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곧 가식적인 미소로 불쾌함을 지워버렸다.옆에 있던 전동하도 한발 다가섰다.“은정 씨, 어르신께서도 푹 쉬시고 싶어서 이사직에서 물러나신 걸 텐데 아직도 회장님이라고 부르면 어떡해요.”“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아직 적응이 안 되네요.”겉보기에는 전동하가 소은정을 꾸짖는 모양새였지만 박대한은 알고 있었다.박수혁과의 기량 싸움에서 진 자신을 두 사람이 비웃고 있다는 걸 말이다.하지만 아무리 억울해도 일단 삼켜버릴 수밖에 없었다.헛기침을 하던 박대한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괜찮아. 뭐라고 부르면 어때. 두 사람 참 좋아보이는구만. 네가 왜 수혁이를 그렇게 밀어냈는지 알겠어. 참 잘 어울려. 전 대표도 월가에서 유명한 투자자고, 은정이 너한테 좋은 배필이
소은정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박대한에게 쏠렸다.비록 태한그룹에서 실질적인 지위는 사라졌지만 박씨 가문의 최고 어른으로서 그 위신은 여전했고 이 자리에서 나이도 경력도 가장 많은 사람인지라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반면, 박수혁은 평소와 달리 최대한 기를 죽인 채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힐끗 시간을 확인하던 박대한이 무대로 향했다. 당당한 발걸음으로 무대에 올라가는 박대한의 눈동자에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여러분, 저희 가문이 주최한 파티에 자리를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왜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초대했는지 다들 궁금하실 테죠?”천천히 사람들을 훑어보던 박대한의 시선이 박수혁에게로 꽂혔다. 벽에 기댄 채 와인잔을 흔드는 박수혁의 표정은 예상외로 차분했다.박대한의 목적이 궁금하지도, 박대한이 하려는 짓을 막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박대한의 입가에 섬찟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들께 중요한 사안을 하나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태한그룹 지분 20%와 기타 박씨 가문 방계 친척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해외 신포 인터네셔녈에 양도할 생각입니다!”쿠궁!박대한의 폭탄선언에 사람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소은정, 전동하의 눈도 커다래졌다.소은정은 무의식적으로 박수혁을 바라보았다. 당사자인 박수혁은 정작 전혀 놀라지 않는 모습이었다. 박대한의 결정으로 인해 태한그룹의 지분은 박수혁과 신포 인턴네셔널 두 세력에게 완벽하게 나뉘게 되었다.이 결정은 그룹에게는 양날의 검, 그리고 박수혁에게는 강력한 라이벌이자 비즈니스적으로 걸림돌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앞으로 사업적으로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이사회 즉 신포 인터네셔널의 동의를 거쳐야 할 테니까.모두의 리액션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박대한이 말을 이어갔다.“신포 인터네셔널에 대해서는 여러분 모두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신포 인터네셔널의 이념이 저희 태한그룹과 아주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죠. 비록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