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소은정은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을 앞두고 있었다.출발하려던 그때 마침 전동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전동하는 치고 빠질 때를 잘 아는 남자였다. 저번 날 집에서 소은정을 놀라게 한 뒤로 전동하는 연락도 하지 않고 굳이 찾아오지도 않았었다.“은정 씨, 오후에 같이 쇼핑이나 할래요?”전동하의 뜬금없는 제안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새로 찾은 취미예요?”그리고 다음 순간, 맑은 전동하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저번에 악어 때문에 은정 씨가 깜짝 놀랐었잖아요. 마이크가 그 사실을 알고 많이 속상해 했어요. 쇼핑몰 하나를 통째로 사서라도 제대로 사과하라고 저한테 신신당부 하던데요?”“푸흡...!”결국 소은정도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역시 어린애들은 단순하다니까.“괜찮아요. 동심 세계를 이해하기엔 제가 너무 커버렸나 봐요. 다음 번에 만나면 제대로 사과해야겠어요.”“네, 그렇게 해요. 그래도 마이크의 부탁이니 들어주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언제 시간 나면 밥이라도 같이 먹어요. 쇼핑이나 영화 보기도 괜찮고요.”어차피 인사치레일 뿐이라고 생각한 소은정이 웃으며 대답했다.“네. 그래요.”통화를 마친 소은정은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고 약속장소인 골프 클럽으로 향했다.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맑은 공기를 맡으니 기분도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오늘 만나야 할 클라이언트는 몇 년 전부터 거래를 튼 40대 사업가, 장건우. 평범한 외모이긴 했지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안이었다.소은호 대신 나온 자리, 상대도 소은정이 나온 걸 보고는 흠칫하다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다.“소은정 씨...? 맞으시죠?”“네. 처음 뵙습니다. 장 대표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이때 우연준이 한 마디 덧붙였다.“SC그룹 소은정 대표님이십니다.”그제야 자신이 실례했음을 눈치챈 장건우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아 죄송합니다. 소은정 대표님. 소 대표님이 나오시는 줄 알았으면 약속장소를 다른 곳으로 잡을 걸 그랬어요. 골프 좋아하세요?”“괜찮습니다. 잘
소은정이 바로 제안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장건우 또한 알고 있었는지라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렇기 합니다만 원래 가격대로 진행한다면 저희 쪽에서 입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SC그룹이 생산하는 의료기계 부품은 전부 그룹 내부 공장을 이용하고 계시다죠? 그쪽 업무를 저희한테 넘겨주신다면 원가를 좀 낮출 수 있을 것 같은데요?”하, 이게 진짜 목적이었어? 생각보다 욕심이 많은 스타일이네?의료기기 스마트 칩은 워낙 기술력이 필요한 부분이라 SC그룹 내부 공장에서 직접 생산, 조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은 비밀유지 계약서까지 체결한 상황, 외부 업체에 넘기면 핵심 기술력을 스스로 유출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핵심 경쟁력을 내줄 수는 없지...소은정은 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들었다.“장 대표님, 이렇게 하시죠. 저희가 함께 일한 지도 꽤 되었고 앞으로 계약은 5년 단위로 체결하는 게 어떨까요? 그럼 가격을 2배로 인상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윈윈 아닐까요?”소은정도 아무 준비 없이 이 자리에 나온 게 아니었다. 원자재 값이 올랐다는 장건우의 말은 사실, 원래 가격을 유지한다면 장건우의 공장은 몇 년 못 버티고 파산을 맞게 될 것이다. 소은호 또한 일단 장건우가 원하는대로 들어주는 게 장기적으로 더 나을 것이라 분부했던 터라 자신만만하게 2배라는 가격을 제시한 것이었다.하지만 장건우의 표정에는 실망감으로 가득했다. 그가 더 관심을 가지는 건 의료기기 조립이었으니까.게다가 소은정 이 여자, 들었던 것처럼 만만하지 않은 성격이다...그래도 가격이 2배까지 올라간 건 기대 이상의 결과 장건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좋습니다. 시원시원하시네요. 그럼 지금 바로 계약 다시 체결할까요?”장건우의 말에 고개를 든 소은정이 우연준을 바라보고 우연준이 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잠깐의 침묵이 감돌던 그때, 고개를 든 소은정의 시야에 익숙한 누군가가 들어왔다.하지만 딱히 개의치 않았다. 골프 클럽에서 비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죠?”우아한 자태로 의자에 앉은 소은정이 여유로운 얼굴로 물었다.이런 일이 있을 때는 경찰을 먼저 찾는 게 당연지사, 왜 나한테 부탁하는 걸까?그런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더 조급해진 걸까? 양예영은 부랴부랴 휴대폰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사진 속 양예영은 스무살 남짓해 보이는 앳된 모습,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앉아있는 사진이었다.“이 아이예요. 올해 6살이고요. 장건우는... 어린애들을 학대하는 변태 같은 남자예요. 저 짐승 같은 자식한테 제 딸... 죽을지도 모른다고요.”그제야 소은정은 뭔가 이상한 걸 느껴졌다.“설마... 장건우 아이에요?”소은정의 질문에 흠칫하던 양예영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장 대표가 제 스폰서였어요. 가지고 놀다 얼마 안 돼서 저는 결국 버러졌고요. 아이는 제가 장건우 몰래 낳은 거예요. 그런데 장건우 저 자식 보기엔 멀쩡해도 심각한 변태예요. 아동 학대 패티쉬가 있다고요! 평소 장 대표... 고아원으로 봉사활동도 많이 다니고 그러죠? 사실은 거기 있는 애들 괴롭히러 가는 거예요.”또다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뒤적거리던 양예영은 장건우가 온몸이 멍투성인 아이를 안은 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을 찾아 소은정에게 보여주었다.순간, 소은정은 장건우라는 인간이 역겹게 느껴졌다.양예영은 여전히 불안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장건우는 제 약점을 쥐고 있어요... 웬만한 경찰들도 이미 장건우한테 매수된 상태고요... 제가 믿을 사람은 은정 씨뿐이에요. 제발... 제발 제 아이 좀 구해 주세요...”절박한 양예영의 모습에 소은정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예영은 프로 배우, 정말 믿어도 되나 싶었다.계약서 양식을 준비해 다가오던 우연준도 양예영을 보고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대표님, 계약서입니다. 확인해 보시죠...”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뭔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장건우 대표 좀 막아줘요.”갑작스러운 소은정
다음 순간, 팔에서 강력한 힘이 느껴지고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던 소은정은 누군가의 품에 쓰러졌다.그리고 꽃병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조각들이 방금 전 소은정이 서 있던 자리에 쏟아졌다.익숙하지만 낯선 향기... 고개를 든 소은정의 눈이 커다래졌다.“전 대표님?”전동하가 왜 여기 있나 하는 의문을 내뱉기도 전에 전동하는 그녀를 등 뒤로 숨긴 채 낯선 여자를 노려보았다.여자 역시 전동하 뒤에 있는 소은정을 알아봤는지 흠칫하더니 안색이 창백해졌다.그녀를 알아본 것이다.소란에 달려온 장건우 또한 난장판이 된 바닥을 보고 꽤 놀란 모양이었다.“이게 다 무슨 일이야?”다가온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그 미친 X이 애를 훔쳐갔어요...”여자의 말에 장건우가 흠칫했다.“두 사람이서 애 하나를 못 봐? 이런...”욕설을 내뱉으려던 그때, 그제야 다른 사람의 존재를 발견하고 멈칫하던 장건우는 전동하와 소은정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눈이 동그래졌다.“소 대표님이 어떻게 여기에...”“저 여자가 양예영 그 X을 도와줬다고요!”낯선 여자의 말에 장건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소은정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불만과 경계심으로 가득했다.“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저희는 협력 관계 아니었나요?”장건우의 질문에 소은정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만약 양예영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장건우 같은 양아치 클라이언트 쯤은 하나 잃어도 별 손해가 없을 테고 설령 양예영의 말이 거짓말이라 해도 큰 차질은 없을 것이다.그냥 오빠한테 밀어버리지 뭐...전동하의 등 뒤에서 걸어나온 소은정이 말했다.“양예영 씨 아이라고,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도와줬는데요?”덤덤한 소은정의 반응에 장건우는 화를 삭이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제 아이이기도 합니다. 양예영 그 여자가 아이를 학대한 건 알고 계세요? 전 그저 제 아이가 정상적인 삶을 살길 바랐을 뿐이에요. 제 말이 틀렸나요?”장건우의 말에 소은정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뭐야... 두 사람 왜 말이
침묵하던 소은정이 대답했다.“저희 쪽 변호사가 급한 사정이 생겨서요. 계약서에 사인은 다음에 하시죠.”이렇게 큰일이 일어난 이상 급하게 사인만 한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말을 마친 소은정이 단호하게 돌아서고 고개를 살짝 까딱한 전동하도 소은정의 뒤를 따랐다.“전 대표님,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으세요?”비록 양예영이 한 말은 듣지 못했지만 아이를 안은 채 다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은 확인했던 전동하가 잠깐 고민하다 단호한 말투로 대답했다.“둘 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데요?”소은정의 의아한 눈길에 전동하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방금 전까지 긴장되던 마음이 봄비에 눈 녹 듯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소은정도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기다리고 있던 우연준을 향해 소은정이 물었다.“양예영 씨는요?”“도망쳤습니다.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잡지도 못했고요.”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도망쳤다고?전동하를 힐끗 바라보던 우연준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고맙습니다, 전 대표님.”의아한 소은정을 뒤로 하고 전동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마침 저도 비즈니스 때문에 여기 왔었거든요. 우 비서님 부탁 받고 올라갔던 거예요...”그랬구나... 두 번이나 도와줬는데 밥 약속도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소은정이 먼저 물었다.“같이 식사라도 하실래요?”“좋습니다.”레스토랑으로 향하는 길, 소은정은 소은호에게 전화를 걸어 장건우의 상황을 물었다. 하지만 소은호 역시 비즈니스적 파트너일 뿐, 사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는 눈치였다.자초지종을 들은 소은호가 말했다.“잘했어. 무슨 일인지 제대로 알아보기 전까지 계약서 체결은 보류해.”문란한 대표의 사생활 때문에 기업 전체가 무너지는 일도 흔했으니까... 게다가 연예인인 양예영과 어린 아이까지 엮인 사건이다. 그런 그룹과 괜히 함께 일했다간 SC그룹의 이미지에도 금이 갈 수도 있는 상황, 쓸데없는 리스크는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갑작스러운 소은정의 말에 흠칫하던 신나리가 고개를 저었다.“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그제야 안심한 듯 소은정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핵심 기술을 개발 중인 연구소로 향했다.비록 보고서를 통해 이미 확인한 내용들이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색다른지 전동하도 우연준도 잔뜩 집중한 모습이었다.기술 총괄인 신나리가 프로젝트 진행도에 대해 설명했다.“스마트 라이프에 대한 기술적인 연구는 스마트 가구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디자인 쪽으로도 발전하고 있어요. 사시사철 일정 기온과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방수, 방화 처리 그리고 사용자의 감정을 측정해 실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정도까지 이르렀죠. 그리고 최신 의료 연구 성과도 인테리어에 응용했어요. 의료용 스마트 칩을 삽입해 웬만한 병은 집안에서도 진료받을 수 있게 되었죠. 응급 상황에 대한 대응도 가능하고요.”생각보다 빠른 발전 정도에 전동하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다들 들어가 보시죠.”전동하와 우연준이 들어간 뒤에도 밖에 서 있는 소은정을 향해 신나리가 물었다.“은정 씨는 안 들어가 볼 거예요?”“실험실에서 느끼는 것도 좋지만 정말 실생활에서 직접 느끼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저희 오피스텔에 업데이트해 주세요.”소은정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던 신나리는 유리창을 통해 전동하를 바라보았다. 훤칠한 체격에 잘생긴 옆라인, 고급스러운 분위기...신나리가 감탄했다.“전 대표님은 참 보면 볼 수록 멋있는 것 같아요. 외모도, 몸매도. 저 다리 좀 봐요...”두 눈을 반짝이며 전동하를 바라보는 신나리를 발견한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저... 저희 오빠도 나쁘지 않아요.”“그래도 지금 제 앞에 없잖아요!”신나리의 말에 소은정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네... 할 말이 없어...이때 신나리가 팔꿈치로 소은정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은정 씨,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랑 맨날 붙어있으면 막 떨리고 그렇지 않아요?”“맨날 붙어다닌 적도 없고 떨린 적도 없어요.”침착한 소은정
기술 총괄로서 그녀가 거성그룹에서 받는 연봉만 억대, 게다가 해마다 받는 보너스에 성과금까지 돈이라면 신나리도 부족할 게 없었다.하지만 신나리가 관심을 가지는 건 돈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팔을 활짝 벌린 신나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전 이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아...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요...”소은정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참관이 끝나고 신나리는 소은정을 끌고 자신의 연구실로 가더니 새로 개발한 제품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역시 천재 과학자들은 뭔가 달라도 달랐다. 평범한 여자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보통 쇼핑, 수다지만 연구실에서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는 게 가장 편하다는 신나리의 말에 소은정도 입을 떡 벌렸다.하지만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면 운동량 부족은 당연한 일일 터, 미래 올케의 몸이 걱정된 소은정은 신나리를 설득해 운동하러 나가기로 했다.전동하에게 언질을 준 뒤 두 여자는 소녀처럼 환한 미소와 함께 회사를 나섰다.“회사 근처에 새로 개업한 헬스장이 있던데. 그쪽으로 가요.”회사와 가깝다면 신나리도 더 자주 가지 않을까 싶어서 소은정도 고개를 끄덕였다.깔끔하게 된 인테리어에 고개를 끄덕이던 소은정은 광고판에 적힌 글귀를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연 회원권100만원, 예쁜 여성분들은 무료로 사용 가능하십니다!왠지 평범한 헬스장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역시나 광고판을 확인한 신나리 또한 흥미로운 듯한 표정을 짓더니 바로 지갑을 열었다.“연 회원권으로 끊어주세요.”카운터에서 졸고 있던 남자직원이 신나리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섰다. 아름다운 두 여성의 외모에 남자 직원이 넋을 잃던 그때,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정 씨?”고개를 돌린 소은정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박수혁의 친구 장학준이었다. 그녀와 채태훈이 함께 찍힌 사진이 기사로 올라왔을 때 그 남자는 박수혁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해명에 참여했던 사람이 바로 장학준이었다.그 뒤로는 얼굴을 못 본 것 같은데...
신나리의 말에 소은정은 할말을 잃고 말았다.비싼 돈 주고 한다는 운동이 겨우 명상이라니.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장학준이 열정적인 목소리로 소개를 시작했다.“좋습니다. 저희 명상 선생님은 지리산에서 도를 닦으신 분이에요. 명상 업계에서는 거의 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친구분께서 바로 선생님의 첫 제자가 되시는 거랍니다!”드디어 땀이 안 나는 운동을 찾은 신나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장학준은 다른 직원에게 안내를 부탁했고 신나리는 그들의 손에 이끌려 “명상실”로 향했다.“그럼 우리 은정 씨는 어떤 운동을 하고 싶으세요?”최고의 트레이너만 채용했다는 장학준의 말에 소은정은 생각에 잠겼다.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한번 해봐?“그럼 태권도로 할게요.”요가나 필라테스 정도를 선택할 거라 생각했던 장학준의 예상을 완벽하게 벗어난 소은정의 선택에 장학준이 흠칫했다.“아, 좋습니다. 그럼 도복으로 갈아입어 주세요. 제가 직접 대련상대가 되어 드릴게요.”탈의실로 향하는 소은정을 바라보던 장학준이 입술을 깨물었다.태권도 코치는 국가대표 출신! 혹시나 대련 중에 힘 조절에 실패해 소은정이 다치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큰일이니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상위층 인사들을 타깃으로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는 헬스장 답게 도복 또한 깔끔하고 소재도 고급이었다.흰색 도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묶은 소은정은 평소와 다른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하지만 여리여리한 것이 킥 한 번에 저 멀리 날아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준비운동 삼아 20분 동안 러닝을 끝내고 장학준 역시 도복으로 갈아입고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도복 옷깃 사이로 살짝 보이는 근육, 소은정과는 체급 자체가 달랐다.도복을 갈아입은 장학준을 발견한 코치가 고개를 갸웃했다.“사장님이 직접 하시려고요?”코치의 질문에 장학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도자기 인형처럼 귀하신 분, 내가 직접 상대해 드려야지.“그럼 준비운동부터 하시죠?”“아니야. 진짜 실력으로 하면 저쪽에서 다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