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과 전동하... 누구의 편을 들고 말고 할 사이도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약해져 있는 전동하의 모습에 마음의 저울은 어느새 전동하를 향해 기울고 있었다.게다가 그녀를 위해 수혈을 해준 전동하를 바라보며 잊고 싶었던 기억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라 기분이 착잡하던 차였다.박수혁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그녀의 생명의 은인인 전동하까지 때려눕히고 말았다.다리가 멀쩡했다면 아마 박수혁의 정강이라도 걷어찼을지도 모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분노와 억울함을 풀 방법은 없고 소은정은 말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고개를 숙인 채 소은정의 얼굴을 바라보던 박수혁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깁스를 한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수혁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소은정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했다.“너 만나려고 온 거야. 그리고... 저 자식 때리는데 딱히 이유가 필요한가?”하, 뭐야? 저 근거없는 자신감은...박수혁의 말에 기가 막힌 소은정이 코웃음을 치며 반박하려던 순간 박수혁이 갑자기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소은정의 오른쪽 다리를 만지작거렸다.“많이 아파?”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살짝 떨리는 목소리와 조심스러운 손길에서 박수혁의 걱정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졌다.하지만 박수혁의 질문에 소은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당연히 아프지. 이 자식아!“아프겠지. 나도 다리 다쳐봐서 잘 알아. 가끔씩 통증으로 잠도 설치곤 했는데... 너도 아마 그렇겠지.”혼잣말처럼 읊조리는 박수혁의 말에 소은정의 눈동자가 살짝 떨려왔다.박수혁도 그녀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다. 박수혁도 그녀를 살리려다 하마터면 죽을뻔한 사람이다.그래. 박수혁이 나한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건 사실이지만 몇 번이나 날 구한 것도 사실이야. 수혈이니 뭐니 어차피 다 지난 과거... 못난 기억 붙잡고 있어봤자 내 마음만 아프지...어느새 소은정의 분노는 바람에 흩날리는 구름처럼 사라져버렸지만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나도
소은정의 말에 박수혁은 머리를 거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소은정이 혐오하는 건 서민영뿐만 아니라 고통받았던 3년간의 시간 그 자체였으니까.입을 꾹 다문 채 소은정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이 한숨을 내쉬었다.떨려오는 손끝을 숨기려 다시 주먹을 쥔 소은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어차피 지난 일, 다시 끄집어내지 마. 그리고 서민영 그 여자 이름도 다시 언급하지 말고. 내가 서민영 그 여자 몸에 흐르는 피를 전부 뽑아낸다고 지난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아. 그리고... 난 내 이기심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억지로 뽑아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아.”고개를 든 소은정은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휠체어의 후진 버튼을 꾹 눌렀다.“나 이제 쉬고 싶어. 그리고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찾아오고 그러지 마. 진심으로 내가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 바란다면 말이야.”그 말을 마지막으로 소은정은 병실로 들어가버리고 일그러진 표정의 박수혁만 복도에 덩그러니 남고 말았다.하지만 소은정은 박수혁이 어떤 마음인지 신경 쓰고 싶지도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그냥... 박수혁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마음 그뿐이었다.참나,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때려? 하여간 성질머리 하고는...잠시 후, 의사가 병실로 들어와 전동하의 상태를 브리핑했다.“수혈량 과다로 뇌로 공급되는 혈액량이 줄어든 상태인데... 다행히 뇌 손상은 없었습니다. 아직 의식은 회복하지 못하셨고요.”읽고 있던 잡지를 내려놓은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전동하 대표 깨어나면 저한테도 말씀해 주세요.”정확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박수혁은 아마 그녀 때문에 전동하를 때렸을 것이다. 배은망덕하게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고개를 끄덕인 의사는 소은정의 상태를 살핀 뒤에야 병실을 나섰다.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소은정이 잠시 눈을 붙이려던 그때 병실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이 층에 환자는 소은정 한 명뿐, 안 봐도 그녀의 손님이 분명했다.복작거리는 소
소은정의 상태를 확인한 친구들은 다친 이유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지 않으면 절대 병실을 나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소은정은 모든 자초지종을 얘기해 주었다.사고의 경위를 들은 친구들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전동하 대표 덕분에 산 거네. 제대로 인사라도 해야겠어.”한유라의 말에 김하늘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 우리 은정이 생명의 은인인데 당연히 그래야지. 야, 그렇다고 막 갑자기 전동하 대표한테 다른 마음이 생기고 그런 건 아니지?”“무슨 마음?”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유라를 바라보던 김하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당연히 호감이지!”누가 봐도 소은정에 대한 전동하의 호의는 단순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베푸는 호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김하늘은 소은정이 또 피에 묶여 사랑에 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신중하게 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성강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러게... 애초에 나랑 사귀었으면 얼마나 좋아.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세 사람의 말을 듣던 소은정이 귀를 막더니 고개를 저었다.“야, 웬 김칫국 드링킹? 전동하 대표는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리고 이번 일을 빌미로 들이댈만큼 뻔뻔한 사람도 아니고.”소은정의 말에 한유라와 김하늘이 묘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그때, 소은해가 끙끙대며 테이블을 들고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그건 뭐야?”의심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는 소은정의 질문에 소은해가 고개를 으쓱했다.“그냥 수다만 떨면 심심하잖아. 우리 카드게임이라도 할래?”하, 아주 그냥 오락실을 만들지?“난 다리 불편해서 싫은데...”“너 빼고 우리 네 명이서 할 건데?”헐...말이 병실이지 넓은 팬션 같은 구조의 병실에 테이블이 들어서고 어느새 테이블 주위에 모여앉은 네 사람은 카드게임을 시작했다.그 모습에 소은정이 코웃음을 쳤다.하이고, 오늘 밤 잠은 다 잤네... 다친 친구는 내팽개
어느새 전동하의 병실에 도착하고 모두들 무의식적으로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조용한 병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리고 전동하는 여전히 눈을 꼭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뭐, 다행인 건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이 어느 정도 컨디션을 회복한 건 분명해 보였다.다섯 방문객에 의사까지 전동하의 병실 침대를 비잉 둘러싼 채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관찰하기 시작했다.자세히 보니 전동하 대표도 잘생겼네...라고 말하고 싶은 한유라였지만 왠지 무거운 분위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이목구비는 박수혁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성격이 좋잖아. 성격이!이때 전동하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숨을 죽인 채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고... 모르는 얼굴들에 적잖게 놀란 듯 전동하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묘한 정적이 감돌던 그때, 먼저 이성을 되찾은 한유라, 김하늘, 성강희가 허리를 굽혔다.“우리 은정이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이구동성으로 내뱉은 세 사람의 대사에 전동하는 더 놀란 듯 낯빛까지 더 창백해지고 말았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그만 좀 해. 전 대표님 놀라셨잖아.”그제야 소은정에게로 시선이 닿은 전동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어색하게 굳은 몸도 긴장이 풀린 듯 자연스레 풀어졌다.“은정 씨?”전동하가 의식을 회복한 걸 확인한 소은정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소개할게요. 이쪽은 제 친구들이에요. 한유라, 김하늘, 성강희요.”“안녕하세요...”전동하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우리 은정이를 구해 주셨단 말에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뵀습니다. 그럼 인사드렸으니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기회 되면 함께 식사라도 해요.”김하늘의 말에 한유라와 성강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로의 눈치를 보던 세 사람은 다시 살금살금 병실을 나섰다.시끄러운 세 사람이 나가고 그제야 소은정도, 전동하도, 의사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소은정도 병실을 나서려던 순간,
하지만 소은정이 말한 걱정은 말 그대로 걱정 그뿐이었다.지금까지 그녀가 좋다고 다가오는 남자는 수없이 많았지만 소은정은 항상 보이지 않는 벽을 두르며 그들을 밀어냈었다.하지만 이번 교통사고로 인해 전동하에게는 왠지 더 이상 벽을 두를 수 없게 된 소은정이었다.두 사람의 사이는 분명 묘하게 달라졌다.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순수한 소은정의 미소에 전동하는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지금 소은정에게 대시하는 건 전동하였으니 아쉬워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걱정해줬다니 기쁘네요. 다친 게 다행이라고 느껴질만큼.”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 소은정이 뭔가 말하려던 그때 전동하가 말을 이어갔다.“박수혁 대표가 왜 절 때렸는지 이유는 말해 줬나요?”박수혁이 뭐라고 해명했는지 꽤 궁금한 전동하였다.“아니요.”“때릴만 해서 때렸다”라는 말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으니 소은정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이때 전동하의 입가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걸렸다.“절 질투했기 때문이에요.”누군가에게 맞고서도 이렇게 기쁘기는 처음이었다. 박수혁의 분노와 그의 주먹에서 자신의 존재가 박수혁에게 정말 위협으로 느껴지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의아한 표정의 소은정을 바라보던 전동하가 말을 이어갔다.“다행이에요. 이번 사고 덕분에 은정 씨한테 저도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요. 그리고... 박수혁 대표보다 제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아서요.”소은정은 넓은 우주의 블랙홀처럼 모든 걸 집어삼킬 것 같은 전동하의 눈동자를 멍하니 보았다.“사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희소한 혈액형 때문에 귀하게 컸어요. 그래서 더 이기적인 성격으로 컸는지도 모르죠. 그리고 언젠가 이 특별한 혈액형 때문에 객사라도 하면 어쩌나 불안한 적도 많았어요. 처음이에요. 이 혈액형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된 거요. 은정 씨, 나 그렇게 비겁한 사람 아니에요. 이번 사고를 빌미로 은정 씨 죄책감을 자극하고 싶은 생각은
전동하의 말에 담긴 뜻은 분명했다. 설령 불공평하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소은정이 단 1%라도 그를 좋아해준다면 남은 99%는 전동하가 대신 채워줄 수 있었다.다른 여자였다면 결국 그의 정성에 감동해 못 이기는 척 그에게 기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은정은 달랐다.아무리 노력해도 소은정은 그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라 말하고 있다.하지만... 이미 움직인 마음을 멈추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시계바늘이 똑딱이는 소리가 똑똑히 들릴 정도로 병실은 적막이 감돌았다. 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은 가슴 어딘가가 꽉 막힌 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그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망설이던 그때, 전동하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소은정의 난처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전동하가 결국 한발 물러섰다.“이렇게 해요. 그렇게 나한테 고맙고 미안하면 소원 하나만 들어줄래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이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더 이상 날 밀어내지 말아줘요. 내가 은정 씨 삶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줘요. 앞으로는 내가 은정 씨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게 해줘요. 만약 불편하거나 혐오스럽게 느껴지면 언제든지 말해줘요. 대신 나한테 조금이라도 호감을 느낀다면 그때도 말해줘야 해요?”시도 조차 해보지 않고 이대로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 게임이라면 지든 이기든 제대로 도전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처참하게 패배한다 해도 미련없이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전동하의 진심 어린 눈동자를 바라보던 소은정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네.”순간, 어쩌면 전동하와 정말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전동하의 제안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었다.비록 이혼은 했지만 평생 솔로로 살 생각은 없었다. 박수혁이 인생의 마지막 남자가 되는 건 너무 억울하니까.하지만 아직 그녀의 영혼에 울림을 줄만한 남자를 만나지 못한 것, 그뿐이었다.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전동하가 드디어 미소를 지었다. 거절하지 않았다는 건 한발 다가갔다고 봐도 되
소은정의 눈치를 힐끗 보던 우연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지금 범인의 아내가 딸과 함께 지성그룹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가 남편을 구치소를 처넣었다며 생활비와 치료비를 내놓으라며 억지를 부린다도 하더군요...”말을 마친 소은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정말 뻔뻔한 사람이네요.”가해자 주제에 어디서 피해자 코스프레야? 그리고 뭐? 돈까지 달라고? 역겨워...“농성 때문에 회사 직원들 출입도 불편하고 지나가던 행인들의 시선도 꽤 받는 모양입니다. 경비원도 속수무책이고요. 이건 대표님이 도의상 500만원 정도 주신 것 같은데... 이 방법이 통한다 생각했는지 그 뒤로는 계속 찾아오고 있는 상황이고요. 지금 문제는 이 스캔들이 외부에 어떻게 전해질지 모른다는 겁니다. 행여나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저희 쪽에도 손실이 클 것으로 보여집니다.”순간, 두 사람은 침묵에 잠겼다.차오르는 분노에 소은정이 말없이 주먹을 쥐었다. 사고를 당한 것도 죽을 뻔한 것도 그녀인데 왜, 그녀가 피해를 입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녀가 돈 많은 재벌 2세인 건 사실이지만 자신을 죽이려했던 가해자 가족에게까지 자비를 베풀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경찰에 신고하는 건 어때요?”“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 뺑소니 사건도 아직 조사 중이고... 아내까지 경찰에 구속되면 아이를 케어해 줄 사람이 없어서요...”이렇게 애매한 상황은 처음인지라 우연준도 미간을 찌푸렸다. 불치병에 걸린 아이가 끼어있으니 차가운 비즈니스보다 처리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도 경고만 하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틀어지면 S시의 경제에도 무리가 갈 예정이라 이 국장도 슬쩍 발을 빼려는 눈치인 것 같고요... 저희더러 알아서 처리하라더군요.”하, 능글맞은 늙은이 같으니.우리더러 알아서 처리하라고? 어떻게?프로젝트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그 어떤 편법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녀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소은정의 말에 우연준은 열정이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주 자극적인 계획이었지만 분명 리스크도 존재했다.지금 여론전을 벌인다면 오히려 계획을 그르칠 수도 있었다.대중은 약자에게 유난히 약한 법이니까.“지금 여론전을 벌이는 게 정말 저희한테 좋은 일일까요?”우연준이 미간을 찌푸렸다.전동 휠체어의 버튼을 만지작거리던 소은정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물론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그 운전기사는 자기 딸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는 자예요. 그렇다면 딸을 위해 선행도 할 수 있겠죠.”하지만 우연준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대표님, 그 기사 무기징역은 확정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대표님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경찰에 체포되었죠. 저희한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매수하죠?”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운전기사는 무고한 사람을 죽인 잔인한 살인자였다. 괜히 또 화를 입지 않을까 걱정되는 우연준이었다.“와이프와 아이가 지성그룹 건물 앞에서 농성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세요. 최대한 비참해 보이게요. 프로젝트 시작 당일 와이프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한다면 아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치료비를 제공해 줄 거라고 제안한다면... 분명 넘어올 거예요.”담담한 소은정의 말에 우연준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그래. 돈을 원한다 이거지? 그렇다면 그 돈의 효용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주겠어.“할 수 있겠어요?”소은정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우연준을 바라보았다.“못 하겠으면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게요.”그제야 정신을 차린 우연준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할 수 있습니다.”소은정을 바라보던 우연준은 놀라움을 넘어 왠지 모를 흥분과 설렘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새로운 에너지가 끊임없이 그의 가슴에 주입되는 기분이었다.우연준도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넘으며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특히 소은호를 보필하며 이 바닥의 음모와 기만에 대해서는 볼 만큼 봐왔다.하지만 소은정은 뭔가 달랐다. 소은정은 그 어떤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