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소은정은 한 동굴 앞에 도착했다. 동굴은 맵에 기록되지 않은 지형, 그렇다면 분명 뭔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소은정은 확신했다.그녀는 나무막대기로 동물 입구를 막은 잡초를 걷어냈고 반시연도 눈치껏 거들었다.동굴은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고 바닥에는 정체 모를 물기가 가득한 데다 냄새도 고약했다.소은정은 깊이 숨을 들이쉰 뒤 조심스럽게 손전등을 켜고 안으로 들어갔다.하지만 여배우로서 저렇게 더러운 곳에 발을 들인다는 게 내키지 않았던 반시연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은정아, 그쪽에는 카메라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런 곳에 단서가 있을까? 괜히 힘만 빼는 거 아니야?”예능에서 단서를 숨겨둔 곳에 카메라가 있는 건 이 바닥의 불문율,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춘 적이 있었던 반시연도 당연히 그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소은정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그럼 언니는 밖에서 기다려요.”설령 들어간다 해도 진짜 단서를 찾는다는 보장도 없고 동굴의 상태가 엉망인 것도 사실이었으니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소은정과 담당 VJ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고 밖에는 반시연과 담당 VJ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하지만 곱게 자란 재벌 2세도 털털하게 안으로 들어가는데 신인 연기자 주제에 몸을 사리면 또 괜히 안티팬들만 늘어날 거란 생각에 내키지 않았지만 반시연도 발걸음을 옮겼다.“아!”하지만 몇 걸음 걷지도 못한 채 반시연은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소은정이 다급하게 다가가며 물었다.“왜 그래요?”발목을 접지른 반시연은 터져나오는 눈물을 꾹꾹 참으며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발목을 다친 것 같아. 미안, 괜히 나 때문에.”“얼른 스태프들한테 연락하고 언니는 베이스캠프에서 쉬는 게 좋겠어요.”발목 상태를 살피던 소은정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나도 끝까지 버틸래.”반시연이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발목에서 전해지는 고통보다 이대로 아무런 방송분량도 얻지 못하고 연예계에서 사라지는 게 훨씬 더 두려
소은정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반시연은 눈에 띄게 실망한 눈치였다. 길을 잘못 들어선 소은정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소은정의 신분과 팬덤이 두려워 결국 위로 전법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막혔네? 그럼 다시 돌아갈까?”소은정이 고집만 부리지 않았어도 여기로 들어올 필요도 없었을 테고 발목을 접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반시연은 짜증이 밀려왔다.하지만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리고 지도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분명 이쪽이 맞는데 왜 갑자기 막힌 걸까?“지도가 정확하다면 출구는 바로 이 동굴 안에 있을 거예요.”소은정은 막힌 출구로 다가가더니 손으로 바위를 옮겨보려 했다. 하지만 꽉 막힌 출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진지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단서를 찾던 소은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가끔씩 정체 모를 물방울이 번쩍 떨어지는 바위에는 이끼가 잔뜩 자라있었다.손전등으로 불빛을 비추며 이끼 하나하나를 관찰하던 소은정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손바닥 자국이야!위쪽에 손바닥 자국이 있다는 건 이곳을 짚고 무언가를 했다는 뜻. 소은정은 옆에 있는 바위를 딛고 올라서 위쪽의 바위를 더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미끌미끌한 진흙이 잔뜩 묻어있었지만 소은정은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었다. 바위 틈 사이로 미약하게나마 빛이 보였기 때문이다.소은정이 손을 틈 사이에 가까이 가져다 댄 순간, 차가운 바람이 살짝 느껴졌다. 몇십센치 정도의 너비 한 번에 겨우 한 사람만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틈이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소은정은 훌쩍 뛰어내려 반시연에게 다가왔다.“출구는 바로 위쪽이에요. 언니가 먼저 갈래요? 아니면 제가 먼저 갈까요?”저렇게 좁은 틈새가 출구라고?“또 네 판단이 틀린 거면 어떡해?”반시연의 태클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시도조차 안 해보면 틀렸는지 아닌지 영원히 알 수 없어요. 뭐 지금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요?”오는 내내 쓸데없는 소리만 해대다 발목까지 풀쳐 민폐를 끼쳐 놓고는 무
하지만 곧 바위틈 사이에 낙하산 2개가 준비되어 있는 걸 발견한 소은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그래, 다 왔어.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어.낙하산 안전 로프를 단단히 묶은 소은정은 담당 VJ가 장비를 착용하는 것도 도와주었다.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뜨겁지도 쌀쌀하지도 않은 바람. 이렇게 좋은 날, 이게 무슨 짓일까...소은정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 바로 뛰어내렸다. 바람이 그녀의 볼을 날카롭게 스치고 지났지만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왜냐? 비명을 지르면 카메라에 못생기게 나올 테니까.이런 프로그램인 줄 알았으면 박우혁이 그녀의 집 앞에서 텐트를 치든 노숙을 하든 내버려 두는 건데...기압이 그녀의 고막에 충격을 주고 바람 소리가 수십 배는 확대된 듯 그녀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영겁 같은 몇 분이 흐르고 소은정은 드디어 발이 무언가에 닿았음을 인지했다.그리고 바로 사람들이 그녀 주위로 몰려들었다.아, 살았구나.“누나, 괜찮아?”멍하니 앉아있는 소은정에게 다가온 박우혁이 그녀의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어댔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소은정은 바로 박우혁을 노려보았다.“오늘이 마지막이야! 다시는 출연 안 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오늘은 체력 테스트라 좀 힘든데 다음 회차는 지력 테스트라 괜찮을 거야. 그리고 아직 이번 회차 촬영도 채 안 끝났다고. 누나, 누나가 먼저 도착했으니까 팀원 교체를 선택할 수 있어. 어떻게 할래?”오는 내내 짐만 되던 반시연.. 어떻게 한다?소은정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그래!”박우혁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 중에서 고르라면 경험도 가장 풍부하고 친분도 있는 그를 고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누구로 바꿀 건데?”박우혁이 두 눈을 반짝였다.“원한빈으로 바꿀래.”박우혁은 사형선고라도 받은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 한참 뒤에야 소리쳤다.“왜? 왜 원한빈인데?”“유준열은 이런 프로그램은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을 테고 넌 못 미더워...”“뭐? 누나 나 못
주위를 둘러보던 소은정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방금 전까지 동굴에 있다가 바다로 나가야 한다니.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파도가 철썩이고 요트가 흔들거리자 원한빈의 손을 잡은 소은정의 손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얼마 전 조난되었을 때 섬에서 바라보던 그 망망대해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한 치 앞도 모르고 한없이 구조만 기다리던 그때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소은정은 한참 동안 지도를 들여다보았지만 도통 무슨 뜻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누나, 어차피 초보들은 그 지도 알아보지도 못해요. 저한테 맡기세요.”원한빈이 싱긋 웃었다.그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그럼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안 다는 거네요?”“글쎄요. 뭐 확실한 건 여기는 아니라는 거죠. 누나, 꽉 잡아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요트는 굉음과 함께 앞으로 튕겨나갔고 당황한 소은정은 바로 옆에 있는 난간을 꼭 부여잡았다. 튀어 오르는 바닷물의 그녀의 입, 코로 마구 들어갔다.사레가 들린 소은정이 기침을 시작하자 잠시 속도를 늦춘 원한빈이 고개를 돌리더니 머리를 긁적였다.“꽉 잡으라니까요...”맑은 눈동자에는 그녀를 향한 걱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 것 같으니 넘어갈 수밖에.한편, 귀엽고 어딘가 서툰 원한빈의 모습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저 표정 좀 봐. 한빈 오빠 너무 귀여워요!”“은정 언니 일생일대의 앙숙을 만난 것 같은 표정인데?”“한빈 오빠는 워낙 리얼 생존 다큐만 찍는 사람이니까 이런 예능이 오히려 어색할지도?”......소은정은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겨우 목구멍으로 삼켰다. 원한빈은 알아서 속도를 늦추었지만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요트는 육지 하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도착했다.“누나, 우혁이한테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던데요?”말과 달리 그녀를 훑어보는 원한빈의 눈빛에는 의아함과 의심이 가득했다. 아무리 봐도 연약한 여자인 것 같은데. 뭐가 다르다는 거지
이 프로그램 도대체 정체가 뭐지? 왜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건데!원한빈은 어느새 요트에 있던 스킨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멍하니 서 있는 소은정의 모습에 원한빈이 물었다.“누나, 멍하니 서서 뭐해요? 서둘러야 해요.”“나... 수영을 못해.”소은정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소은정의 말에 원한빈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박우혁은 나름 업계에서 알아주는 모험가다. 그런 그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여자인데 수영도 못하다니.난처한 표정의 소은정을 힐끗 쳐다보던 원한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럼... 위에서 기다려요.”장비를 착용한 원한빈은 마치 돌고래처럼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1분, 2분, 3분...4분이 지나도 해수면은 여전히 고요했다.초조해진 소은정이 자리에서 일어서고 그녀의 눈앞에 3년 전 상황이 피어올랐다.그날, 수영 수업을 신청한 소은정은 수영장에서 코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건 코치가 아닌 험악한 인상의 외국인들이었다. 온몸을 문신으로 둔갑한 남자들이 그녀를 노려보았다.“너지? 그날 그 군인을 빼돌린 계집이!”남자의 질문을 듣는 순간 소은정은 그들의 정체를 눈치챘다. 아마 불법 격투장에 있던 테러리스트들이겠지. 애초에 그들은 박수혁이 이기든 지든 살려서 보내줄 생각이 없었던 거다.소은정이 침묵하자 남자들 중 한 명이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바로 물속으로 처넣었다.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쳐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다른 한 남자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그녀의 다리를 바닥으로 잡아당겼다.수영도 할 줄 모르는 그녀는 독안의 든 쥐나 마찬가지였다.1분, 2분, 5분... 물 고문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물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어느새 의식이 흐려지고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남자들은 비참한 그녀의 모습을 비웃었지만 그들이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도 들리지 않았다.소은정은 마치 점점 옥죄어 오는 단단한 껍데기 속에 갇힌 듯 답답하고 절망스러웠다. 물이
그녀의 말에 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베푸는 호의에 의심부터 앞서는 듯한 표정이었다.그 표정을 마주한 소은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아, 날 못 알아보는 거구나.당신이 방금 전에 구한 사람이 나인데. 우리 벌써 세 번이나 마주쳤는데...그 눈빛에 오기가 생겨서일까?소은정은 박수혁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대신 나랑 결혼해요.”......다시 지금. 소은정은 정신줄을 잡으려 애쓰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어두운 바닷물을 바라본 순간 또다시 트라우마가 떠오르며 숨이 막혀왔다.그날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과 그들이 내뱉던 조롱, 그녀를 구한 박수혁,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시작된 3년간의 악몽...창백해진 얼굴의 소은정은 요트에 엎드려 한참 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어느새 원한빈이 물속으로 뛰어든지도 7분이 넘어가는데 여전히 바다는 파도 하나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정말 다급해진 소은정은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보트와의 거리도 수백미터, 내 목소리가 닿을 수 있을까?소은정이 바닷가의 보트를 향해 소리쳤다.“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제발요. 여기 사람이 죽어가요...”5분이 넘게 목이 다 쉴 정도로 소리쳤지만 보트 안에는 사람도 하나 없는지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힘없이 털썩 주저앉은 소은정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정말 죽은 걸까? 휴대폰도 없고... 아니, 휴대폰이 있다고 해도 먹통일 거야. 아니지. 요트에 긴급 구조 요청 용도로 사용되는 경보기 정도는 있지 않을까?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은 입술을 꾹 깨물고 일어서 경보기 앞으로 다가갔다.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푸흡 소리와 함께 물속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잠수복 차림의 원한빈이 커다란 상자를 끌고 요트에 한 손을 걸쳤다. 소은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달려가 바로 원한빈을 돕기 시작했다. 겨우 요트에 올라온 원한빈은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산소호흡기를 벗었다.“누나, 두 사람이 들어야 하는 상자를
순식간에 올라간 스피드에 중심을 잃은 소은정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이 이미 수십 미터 상공에 떠오른 걸 발견한 소은정은 비명을 질렀지만 곧 비릿한 망망대해가 그녀의 소리를 먹어버렸다.바람에 몸이 흔들리고 이대로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소은정은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낙하산이 완전히 펼쳐지고 안정적으로 주행하기 시작하자 시원한 바닷바람에 기분이 상쾌해졌다.소은정은 고개를 숙여 산과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대자연에 비하면 그녀는 참으로 작고 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강력하게 뜀박질을 하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그래도 이렇게 힘차게 살아가고 있다는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아, 이래서 사람들은 도전을 하고 모험을 하는 거구나. 한계를 돌파한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이미 중심을 잡은 원한빈은 바로 소은정의 어깨를 잡고 방향을 조정해 주었다. 소은정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두 눈만은 별처럼 반짝였다.“너무 신나!”그 모습에 원한빈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 해안가에 정박된 보트들을 가리켰다. 보트들이 이어져서 가리키고 있는 글자를 확인한 소은정은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HBS. 방송국 이름이었다.방송국? 뭐야? 웬 방송국 이름? 그쪽에서 이 예능 저작권을 산 건가?반면 원한빈은 처음에는 의아한 표정이었으나 곧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미션을 마치고 보트로 돌아온 두 사람은 바로 베이스캠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한편, 항상 차분하고 차갑게만 보이던 소은정의 눈물에 네티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헐, 소은정 운다...”“진짜 놀랐나 본데? 어떡해...”“원한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네. 방송으로 확인하세요!”......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두 사람이 한참 동안 휴식을 취하고 나서야 박우혁, 유준열, 반시연 세 사람이 도착했다.반시연은 유준열에게 기댄 채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고 박우혁은 불쾌함을 감추지 않으며 혼자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쎄한 분위기에 담당 VJ들도 세
눈썰미 좋은 시청자들이 이 모습을 놓칠 리가 없었고 바로 반시연에 대한 악플이 쏟아졌다.“헐, 뭐야? 반시연 저거 꾀병이네. 아까는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다가 지금은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잖아.”“다들 생존 다큐 촬영 중인데 혼자 비련의 여주인공 코스프레? 뭔 짓임?”“이게 무슨 민폐야. 그래서 은정 언니가 바로 팀원을 교체했던 거구나.”“난 소은정이 일부러 도도하게 구는 줄 알았는데. 은정 언니 오해해서 미안해요.”......모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시커먼 밤이었다. 매니저의 전화를 받고 내려온 소은해는 먼지투성이인 채로 잠이 든 소은정을 보고 고개를 젓다가 결국 그녀를 안아 집안으로 들어갔다.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소은정은 기운을 차리지 못했고 집사는 그런 그녀를 위해 끼니마다 온갖 보양식들을 식탁에 올렸다.이렇게 하루 종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삶도 나쁘지 않은데?그날 방송이 끝난 뒤 반시연은 “반구라”라는 별명을 얻고 네티즌들에게 온갖 조롱을 당하기 시작했고 외출도 힘들어졌다.며칠 후 박우혁이 기획한 예능 첫 방송 날이 다가왔다. 괜한 구설수에 오르는 걸 막기 위해 라이브 방송판과는 달리 TV판은 논란이 될 만한 장면을 전부 잘라낸 채 방송되었다.반시연과 소은정의 싸한 대화도 편집되었고 반시연의 꾀병은 팀원들을 더 똘똘 뭉치게 만드는 촉진제 역할을 한 것으로 기막히게 편집이 되어 있었다.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했던 소은정마저 깊은 감명을 받을 정도였으니 말이다.편집 실력에 감탄하던 그때, 에필로그로 출연진의 인터뷰가 방송되었다.국내 첫 모험 서바이벌 예능을 제작한 이유가 뭐냐고 묻는 제작진의 질문에 박우혁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대답했다.“제 꿈을 위해서입니다. 모험은 단순히 자극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한계를 돌파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안정감을 느끼게 되죠.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이 더 많이 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반면 또 다른 제작자인 원한빈의 대답은 심플했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