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주는 당당한 태도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미려 씨, 돌아가세요, 대표님께서 당신과 만나고 싶지 않아 하네요.""당신 말 못 믿겠으니까 내가 직접 수혁 씨랑 만나서 얘기할 거예요."성미려가 거만한 얼굴로 대꾸하자 남유주는 눈썹을 찌푸렸다."미려 씨, 내 말 못 알아 들어요? 미리 연락하지 않고 이렇게 무작정 찾아온 것만으로도 이미 실례를 범한 거예요. 솔직히 말할게요, 나오기 싫다고 했어요, 어젯밤 욕구를 너무 많이 분출한 탓에 아직도 쉬고 있어요, 옷도 안 입었다고요.""뭐... 뭐 하자는 거야!"성미려는 결국 소리를 지르며 분노했고 남유주는 그녀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성미려는 남유주의 가녀린 목덜미와 어깨, 그리고 사람을 홀리는 듯한 분위기를 가진 남유주를 노려보았다."당신이야말로 뭐하는 거예요?"남유주가 받아치자 성미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위층으로 향하는 남유주의 뒤를 쫓아가던 성미려의 앞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다. 그건 다름 아닌, 침실 안에서 들리는 남자의 나른한 목소리였다."자기야, 안 오고 뭐 하는 거야?"박수혁의 목소리를 들은 성미려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가 이곳을 찾아온 목적이 불순하다 하더라도 남유주의 말대로 침실 안으로 뛰쳐들어가 박수혁과 남유주가 남긴 흔적들을 마주하게 되면, 가장 수치스러울 사람은 성미렸다. 남유주가 비웃고 있었지만 성미려는 이를 악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박수혁이 한 오글거리는 멘트 때문에 남유주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속이 안 좋아진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성미려가 지켜보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장단에 맞췄다."미려 씨가 가려고 하지 않아서... 조금만 더 기다려요!"남유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성미려는 경고하는 눈빛으로 남유주를 바라보았다.박수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고용인이랑 경호원은 뭐해? 아무나 이 집에 들이라고 한 적 없는데."박수혁의 한 마디에 순간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성미려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서 있자 남유주는 미소
"나한테 불순한 마음을 품은 것은 알았지만, 경고하는데 이딴 수작을 부려가며 내 곁에 머물 생각하지 마요. 당신 같은 여자들한테 관심 없어요!"박수혁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생긴 이질감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했고,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랫동안 여자 없이 살아서 이러는 거야... 진정하자, 진정하자.'남유주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네, 제가 잘못했어요, 됐어요? 그냥 내가 귀신에게 홀렸다고 생각해요. 내가 남자를 못 만나본 거도 아니고 당신한테 수작을 왜 부려요!"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박수혁을 흘겨보았다.'키스 한 번 한 거로 이렇게까지 유난을 떨 줄이야... 유부남과 키스한 것도 아닌데, 그게 뭐라도 이렇게 화내? 그냥 정신이 잠깐 나가서 한 짓인데!'박수혁은 눈을 치켜들더니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아, 그렇네요. 이형욱이랑 할 때 심장이 뛰었어요?"그의 말 한마디에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고, 남유주의 기분은 완전히 무너졌다. 얼굴이 굳은 남유주는 천천히 몸을 돌려 박수혁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담담함과 서운함이 서려 있었으며 마치 얼음 물을 그녀의 머리에 벗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공격을 받았다.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여겼으나 사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시시각각 그녀의 귀에 가장 지우고 싶은 상처를 속삭일 것이다.십여초 동안 말없이 박수혁을 바라보던 남유주는 고개를 돌려버렸고, 허리를 굽혀 슬리퍼를 주운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수혁은 그녀의 이런 태도가 낯설었다. 사실 그도 말을 내뱉은 순간, 이미 후회하기 시작했고 남유주가 길길이 날뛰며 반박할 줄 알았다.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남유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창밖의 햇살이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햇살이 그녀의 흐트러진 머길에 비쳤다. 공기에는 약간의 따듯함이 남아 있었다.하지만 이런 침묵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신과 이형욱을
박수혁은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어려서부터 그는 한 번도 자존심을 굽혀가며 여자를 잡지 않았다. 더군다나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고, 아무도 서로의 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남유주에게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를 설득할 확신이 없었기에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박수혁은 조각상처럼 차갑게 굳어버렸다. 아래층에서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려왔고, 아무래도 남유주를 태운 차가 출발하는 모양이다. 남유주의 말이라면 고용인들은 잘 따랐다. 입술을 깨문 박수혁의 눈빛이 점점 희미해졌다.남유주가 와인바에 도착하자 안에는 낮에 손님이 없었고, 와인바로 들어서자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했다.위층으로 올라간 남유주는 필요 없는 물건들을 아래층으로 버렸다. 사실, 그녀는 박수혁이 한 말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지나간 날들이 떠올라 기분이 불쾌해진 것이다. 다시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지 못했다.가슴속의 답답함을 견디기 어려웠던 그녀는 결국 돌아오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박수혁과는 상관없는 일이었고, 그가 초래한 불쾌한 기억이 아니었다. 마음이 뒤숭숭했던 그녀는 혼자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녀의 곁에는 친구도 가족도 없었다.어느새 중학교 입구에 다다랐고 그녀는 안에서 들리는 활기찬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여리고 맑은 청춘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순간, 옛 추억이 떠올랐던 그녀는 잠시 추억에 잠겼다.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그녀를 키워줬고 학교에서 있을 법한 그 흔한 싸움은 그녀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할아버지는 그녀를 각별히 보호했다. 학교 안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울타리에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산들바람이 그녀의 얼굴로 불었고 서늘한 기온이 그녀를 감쌌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좋아진 그녀
직업이 특수했던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꼿꼿한 자태였다.일부 남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소방차를 만지며 구경했고, 여학생들은 소방대원들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주희철의 뒤를 따라오던 남유주를 발견한 동료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서로 주고받더니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그중 가장 어린 막내 대원이 미소를 슬그머니 짓더니 참지 못하고 물었다."형, 이분 혹시 지난번에 형이 몇 번이나 소방 물품 구비해 두기 위해 찾아갔던 그 와인바 사장님 아니에요?"다른 사람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남유주는 깜짝 놀랐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줄 몰랐다. 주희철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그래, 얼마나 다행이던지, 안 그랬으면 내 좋은 의도가 너 때문에 더럽혀질 뻔했잖아."다른 사람들도 가볍게 웃었다. 남유주는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반가워요, 다음에 오면 50% 할인... 해 드릴게요."그녀는 눈앞에 있는 아이들이 신경 쓰였고 그래서 낮은 소리가 속삭였다.주희철은 옆에서 말했다."둘러볼래? 여기서 2시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갈 때 같이 나가자."남유주는 2시간이나 여기에 있어야 할 줄 몰랐다.웃음기가 사라진 남유주는 멍한 얼굴로 주희철을 쳐다보았다. 주희철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설명했다."수업이 이것만 있는 게 아니라. 다음 수업도 있거든. 나가고 싶으면 다시 담벼락을 타고 내려가도 되긴 하는데, 아무래도 보는 눈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러면 진짜 경찰서에서 만날지도 몰라. 어떻게 할래?"주희철의 말을 들은 남유주는 떠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그녀는 경찰서에 가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경찰서에 가는 경험은 두 번으로 충분했다. 입술을 살짝 깨문 남유주가 무심하게 말했다."2시간이지? 나갈 생각 없어, 여기 있으니까 7, 8살로 돌아간 것처럼 기분이 좋은데?"주희철도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마음을 눈치챈 것 같았으나 일부러 모른 척했다."그래,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남유주는 정신을 차렸고, 두 사람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남유주는 서둘러 발끝을 뒤로 밀어 그네를 뒤로 뺐다. 그러나 주희철은 그네의 끈을 다시 앞으로 잡아당겼다. 새까만 눈으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답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선배?"남유주는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렸다. 먼 곳을 바라보며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입술을 오므린 남유주의 눈빛이 잠잠해졌다."내가 전에 네 고백을 거절했다고 기분 나빠하지 마, 내가 어떤 상황인지 너도 잘 알잖아."주희철은 소방관이었지만 평범한 소방관은 아니었다.박수혁과 함께 간 술자리에서 그가 사람들 속에서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여유로움과 언제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생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조건이 맞는 사람들끼리 연애하는 게 옳다고 여겼다.그녀는 단순히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다가 헤어지는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조건의 남자가 호감을 표시하는 지금 그녀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진정되었지만, 불공평한 기분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실패한 결혼 생활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지금 또다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없었다.하지만 박수혁은 시도 때도 없이 그녀의 삶에 불쑥 나타났다. 그날, 그들이 불쾌하게 헤어진 것 때문에 남유주도 가슴이 답답했다. 그녀는 평생 그와 인연이 없을 거라고 여겼다.주희철의 담백한 목소리가 그녀의 사색을 깨트렸다."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어느 정도 기분이 나빴던 것은 맞지만, 이렇게 예쁜 선배와 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선배에 대한 모독이야. 선배는 젊은 나이에 돈도 많잖아, 소방관인 나보다 백배는 훌륭해. 물론 여러 조건으로 볼 때, 내가 선배보다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난 신체도 튼튼하다고! 그러니까 내 마음을 받아줘, 선배를 나만의 여신으로 모시고 살게, 진심이야."예상치 못한 주희철의 말에 남유주는 어리둥절했다.'여신으로 모시고 살겠다고?'사랑받는 기분은 나
주희철은 정말 보기 드문 좋은 남자였다. 남유주는 그의 마음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참이었다.주희철의 동료는 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주희철을 아주 빨리 다시 그녀의 곁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주희철도 더는 여자친구에 관한 얘기를 언급하지 않았고 덕분에 둘 사이는 꽤 편안해졌다.주희철은 아주 활발한 성격이었기에 이런 그와 얘기하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게다가 가끔 툭툭 던지는 멘트들은 남유주에게 웃음을 주었다. "이틀 전에 외근을 나갔는데, 어떤 할아버지 집에 불이 난 거야. 아들이 집에 있다고 해서 급히 구하러 들어갔는데, 몇 번이나 찾아도 사람 형체가 안 보이는 거 있지? 불을 다 끄고 나서도 여전히 아들은 없었어.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할아버지가 말한 아들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 한 마리였던 거야. 불이 나자마자 고양이는 놀라서 도망을 갔고, 덕분에 무사하긴 했지만, 할아버지가 배신감에 빗자루를 흔들었지..."사소한 일상 얘기였지만 주희철이 얘기하면 더욱 재미있었다. 귀찮거나 싫을 법한 상황에서도 주희철은 항상 일상의 소중함이라고 여기고 있었다.새로운 수업이 시작되었고 젊은 여 담임선생님이 나왔다. 그녀의 시선은 때때로 주희철에게 향해 있었고, 그의 옆에 있는 남유주에게도 향했다. 결국 여선생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주변에 있던 다른 소방관에게 물었고, 다른 소방관은 여선생의 마음을 못 알아채고 웃으며 설명했다. "저분, 우리 팀장님의 여자친구세요. 잘 어울리죠?"여선생은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기에도 두 사람은 잘 어울렸다. 두 시간이 지났고 남유주는 마침내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주희철이 운전석에 앉았고 남유주가 조수석에 앉았다. 동료 소방관들은 두 사람을 위해 특별히 앞자리를 내줬고 남유주도 어쩔 수 없이 앞에 앉았다.주희철은 먼저 소방관 동료들을 소방서로 데려다준 뒤 그녀의 와인바로 향했다. 초저녁이 되어서야 남유주는 다시 와인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주희철의 휴대폰이 울렸
그곳에 서있던 남유주는 박수혁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자신이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는 잠시 감정을 추스른 후 고개를 들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는 남자를 보며 그녀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누가 이렇게 무례하게 남의 사적인 공간을 함부로 드나들고 있나 했더니, 박 대표님이셨네요. 별로 놀랍지도 않네요. 이런 일을 할 만한 사람, 그쪽 말고는 없을 테니까.”그녀의 은은하게 느껴지는 분노에도 박수혁은 흥분하여 욕을 퍼붓지 않았다.오히려 평소와는 다른 태도로, 그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누가 데려다준 거죠?”그 역시 방금 위층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녀가 직접 말하는 걸 듣고 싶었다.그는 주희철에 관한 모든 걸 샅샅이 조사했고, 그의 차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는 원래 제대로 사과하고 화해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다.근데 방금 같은 상황에 놓이니,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 여자, 정말 가지가지 하네!그의 평온한 태도에 남유주는 당황했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린 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태연한 척 벽에 기대었다.“박 대표님, 오지랖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닌가요? 저를 누가 데려다주었든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죠? 반대로 박 대표님은 여기 왜 오신 거죠? 그리고 내가 내 방에 들어오는 걸 허락한 적이 있나요?”저녁 노을이 눈부셨다.마치 노을이 박수혁을 위해 타오르는 것 같았고, 그의 온몸이 빛에 감싸졌다. 그의 모습은 흐릿해졌고, 마치 카메라 특수효과를 준 것 같았다.잠시 후.박수혁이 마침내 돌아서며 싸늘한 눈빛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는 그쪽도 내 침대에서 자고, 내 침실에 마음대로 드나들었지 않습니까. 게다가 본인이 먼저 나에게 키스까지 했어요. 그래서 난 당연히 우리 사이가 이미 일반적인 친구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쪽 침실에 들어온 건데, 뭐가 잘못되었죠?”당연하다는 듯한 그의 모습에 남유주는 순간 움찔했다다.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미안해요.”박수혁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오랫동안 시간을 끌던 사과 한마디가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지는 않았다.이 네 글자 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그는 왜 일을 더 엉망으로 만든 걸까.그녀의 괴로워하는 모습, 사과하는 모습, 싸늘한 모습을 보고도 그는 별로 괴로워하지 않았다.단지 자신이 일을 그르쳤다는 것 만을 느꼈다.그것도 아주 엉망으로.남유주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박수혁의 잘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아름다운 빛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그가 잠시 침묵하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과드리러 온 거예요. 제가 방금 한 말은 실수였습니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우린 친구고, 그쪽 과거를 무시하려는 뜻은 없었습니다. 과거로부터 벗어나려는 당신의 모습, 용감하고 존경스러워요. 비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어요. 앞으로 다시는 언급하지 않을 게요.”남유주는 고개를 들고 그와 마주 보았다.그녀의 분노가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아까처럼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이 사람도 제법 사람처럼 말할 줄 아네, 생각보다 말을 잘 하잖아?그럼 방금 했던 헛소리들은 그녀의 속셈을 떠보려고 했던 말들인 건가?흠…남유주는 말을 하지 않은 채 그를 계속 바라보았다.잠시 침묵이 흘렀다.박수혁은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아직도 화나 있어요? 내가 선물을 가져왔는데.”남유주가 싸늘하게 웃었다. 그녀가 선물 하나에 넘어가는 그런 쉬운 여자일 리가 있나?참 가소로웠다.박수혁은 주머니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남유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위에 적힌 숫자를 보았다.그녀의 굳어있던 표정이 순식간에 풀렸다. 그녀의 눈썹은 저절로 올라갔고, 놀란 두 눈은 반짝였다.“20억!”수표를 받은 후 그녀의 입꼬리는 자신도 모르게 올라갔다. “진심이에요?”박수혁은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뀐 것을 보고 내심 마음이 놓였다.“마땅히 드려야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