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진의 말에 고개를 돌린 박수혁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레이 톤의 고급스러운 드레스가 그녀의 갸녀린 허리를 완벽하게 휘감고 있었다. 거기에 자연스레 풀어헤친 머리와 정교한 메이크업, 그 누가 봐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젠장,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술 한잔하려고 왔더니 하필 저 여자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강서진이 구시렁댔다. 한편, 한유라 일행도 박수혁과 강서진을 발견했다. 비록 달갑지 않은 상태였지만 굳이 그녀들이 먼저 피할 필요는 없었으니 더 당당하게 걸어갔다.“강 대표님, 오늘 일 수습은 다 끝나셨나 봐요? 술 한잔 할 여유까지 있으시고. 그 사진이 좀 너무 약하긴 했죠?”한유라가 차갑게 웃었다. 물론 강서진도 지지 않고 뒤에 서 있는 소은정을 향해 비아냥거렸다.“내가 상대를 너무 과소평과했나 봐요. 이혼 한 번 하더니 인격이 바뀌었네? 다른 건 몰라도 인복 하나는 끝내둔다니까. 내가 인정할게요.”“찌질한 남편 때문에 3년 동안 바보처럼 살았으니까 바뀔 수밖에요. 뭐 그쪽도 바로 박 대표한테 달려간 주제에 사돈 남 말은 그만하시죠?”뒤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하늘이 한 마디 쏘아붙이고는 한유라를 향해 말했다.“됐어. 왜 저딴 사람들이랑 말을 섞어. 얼른 들어가자.”소은정은 강서진과 박수혁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클럽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화려한 외모의 남자가 소은정의 핸드백을 들고 그녀의 뒤를 따라들어갔다. 박수혁의 옆을 지날 때 한번 비웃어 주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강서진은 어이가 없었다. 불쌍한 이혼녀 주제에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나오는지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정말 사람 겉만 봐서는 모른다더니. 형 엑스 와이프 진짜 장난 아니다. 나한테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 어떻게 눈길 한 번 안 줄 수 있어?”박수혁은 씩씩대는 강서진을 노려보며 말했다.“그만해.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야? 그냥 가자.”하지만 강서진은 더 고개를 빳빳이 들며 반박했다
깊은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재벌가 자제들로서 강서진과 성강희는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성강희도 강서진과 그 뒤에 있는 박수혁을 발견하고 대충 와인잔을 살짝 들었다.“강서진 씨, 오랜만이네요.”강서진은 성강희가 소은정, 한유라와 한 테이블에 앉은 걸 발견하고 눈동자를 굴리더니 박수혁을 끌고 다가갔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합석하죠? 어때요?”성강희는 아무 대답 없이 옆에 앉은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여왕님, 괜찮겠어?”소은정은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마음대로 해. 난 밴드 공연이나 보러 가야겠다.”한유라도 따라서 일어섰다.“가자, 가자. 진짜 여기 물 관리 안 해? 스토커도 아니고 뭐야, 짜증 나게.”김하늘도 술을 들고 뒤를 따랐다.“나도 갈래.”박수혁은 소은정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강희 씨, 은정이랑은 무슨 사이죠?”“친구요.”성강희가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소은정 같은 여자가 어떻게 강희 씨랑 친구예요? 저 여자한테 속고 있는...”강서진이 말을 끝내기 전에 박수혁이 제지했다.“강서진.”성강희는 차가운 말투로 따졌다.“은정이가 왜요? 은정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는 것 같은데. 얘기 좀 해보시죠.”“그게...”성강희의 차가운 태도에 기가 눌린 데다 박수혁도 그의 편을 들 생각이 없어 보이자 강서진은 말끝을 흐렸다. 소은정한테 저지른 일을 전부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쾅쾅쾅.”1층에서 록 음악이 울리고 클럽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리고 3년 만에 컴백한 크레이지 밴드가 무대에 나타나고 클럽 안의 손님들은 최고의 밴드를 향해 열광했다.강서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크레이지 밴드는 이미 은퇴한 거 아니었어요? 왜 이런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거죠? 억대 출연료를 제시해도 전부 거절하고 있다던데.”크레이지 밴드의 멤버는 총 3명, 비록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은 둘뿐이었지만 클럽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기엔 충분했다. 그들은 노련한 무대 매너로 관객
연주가 끝나고 고스트가 다가와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 미소를 지은 소은정은 담담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 3년 동안 손이 굳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무대를 마치고 고스트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은정아, 그냥 우리 멤버로 들어올래? 몬스터는 강퇴시킬까 봐.”고스트의 기분 좋은 농담에 소은정이 활짝 웃었다.“몬스터 오빠가 알면 지금 당장 병원에서 달려올지도 몰라요.”“오늘 진짜 너무 좋았어. 이 곡 네가 편곡한 거잖아. 몬스터 말고 이런 호흡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일 거야. 기분 좋다. 예전의 네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아서.”고스트는 방금 전 무대의 여운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분명 칭찬이었지만 소은정은 왠지 마음이 씁쓸해졌다. 3년 동안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산 걸까? 세상에는 재밌는 게 이렇게 많은데. 뭐, 이제라도 정신을 차렸으니 다행이다 싶었다.하지만 고스트는 여전히 집요하게 그녀를 설득했다.“은정아, 그냥 우리 밴드에 들어오라니까. 우리가 함께하면 빌보드 제패는 시간문제야.”소은정이 거절하려던 순간, 김하늘이 다가왔다.“오빠들, 주접 그만 떠세요. 그리고 우리 은정이 이제는 회사 본부장님이라고요.”김하늘과 소은정이 백스테이지에서 나오자 한유라는 기다렸다는 듯 소은정을 와락 껴안았다.“역시 우리 은정이야. 아까 사람들 반응 봤지? 네 바이올린 연주는 진짜 최고라니까.”소은정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한유라를 떼어냈다. 크레이지 밴드를 섭외한 것도 그녀를 위한 성강희의 배려라는 걸 알고 있었던 그녀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지금쯤이면 박수혁도 강서진도 이미 떠났을 것이라 생각한 소은정 일행은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은 여전히 성강희, 성준희 옆에 앉아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은 방금 전과 뭔가 달라져있었다.한유라는 코웃음을 치더니 자리에 앉았다.“강희야, 우리 게임이나 하자. 짜증 나는 사람이 있으니까 술맛이 안 사네.”
대결은 뭔가 걸어야 더 재밌는 법이니까.박수혁은 아름다운 소은정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글쎄?”소은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강서진이 끼어들었다.“은정 씨가 지면 솔직하게 인정해요. 수혁이 형 돈 보고 결혼한 거라고. 앞으로 다시 A시에는 발도 들이지 않겠다고.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지면 내가 입고 있는 옷 다 벗는 걸로.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말도 안 되는 요구에 성강희와 성준희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다혈질인 한유라가 일어서려는 순간, 김하늘의 그녀를 손목을 잡았다.박수혁도 미간을 찌푸렸다. 강서진의 말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려던 순간, 소은정이 코웃음을 치더니 대답했다.“네. 좋아요.”자신만만한 표정, 그녀가 이길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편, 강서진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박수혁은 A시는 물론, 고수들이 즐비한 마카오 카지노에서도 우승을 거둘 정도의 초고수였다. 소은정이 상대가 될 리가 없다고 그는 확신했다.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강서진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게임이 시작되고 박수혁이 말했다.“레이디 퍼스트.”소은정도 마다하지 않고 바로 베팅을 시작했다. “올인.”박수혁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소은정의 표정을 살폈다. 소은정은 이 게임 자체의 승패에 별로 관심 없는 표정이었다. 정말 이대로 A시를 떠난다고 해도 괜찮을 걸까? 강서진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게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포커라곤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을 것 같은 숙맥, 이 게임은 박수혁, 아니 그의 승리였다.처음부터 올인? 초보 티를 팍팍 내는 모습에 강서진의 표정은 점점 더 밝아졌다.생각지도 못한 올인에 박수혁도 콜을 외쳤다. 그리고 카드를 확인하는 시간, 박수혁의 카드는 스트레이트 플러쉬, 거의 최고 레벨이었다.강서진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형, 역시 대단해. 혹시 져주는 거 아닌가 걱정했단 말이야.”이에 손뼉을 치던 성강희가 입을 열었다.“
이 말만을 남긴 채 박수혁은 자리를 떠버렸고 소은정의 친구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한유라를 비롯한 소은정의 친구들이 눈으로 쏘는 레이저빔에 몸이 뚫릴 것만 같았다.박수혁, 이렇게 날 버리고 가?우리 친구 아니었어?한참을 망설이다 강서진은 입술을 꾹 깨물고 애원했다.“이번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요?”“안 돼요!”한유진 일행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1층. 소은정은 몰래 옆문으로 빠져나와 소은호에게 문자를 했다. 바로 기사가 곧 도착할 것이라는 답장을 받았다. 그리고 한유라한테도 미리 문자를 보내두었다.“은정아...”박수혁이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익숙한 그림자, 소은정은 흠칫 놀랐지만 바로 차가운 표정으로 감정을 지웠다. 그녀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캐치한 박수혁은 또 다시 상처를 받고 말았다.“뭐 할 말 있어?”어두운 가로등 불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렸다. 박수혁이 한 발 다가가면 소은정은 뒤로 한발 물러서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되었다.박수혁은 피식 웃더니 물고있던 담배꽁초를 대충 버리고 한발 성큼 다가섰다.“은정아, 레스토랑에 있었던 일은 미안해. 예리가 아직 철이 없어. 그래도 어떻게든 직접 사과하게 만들 테니까 걱정하지 마.”“됐어. 그냥 앞으로 가족 간수나 잘해.”사과? 레스토랑 사건은 그렇다 치고 지금까지 그녀가 받았던 멸시와 모욕은 어떻게 할 거지? 뭐, 사과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은정아 내가...”박수혁이 또다시 입을 연 순간, 클럽 입구에서 남자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강서진이었다. 얼굴을 막은 채 두 사람을 향해 달려오던 강서진은 몰려드는 모멸감을 억누르며 말했다.“오늘 이 치욕 언젠가는 갚아줄 거야.”그 순간, 휴대폰 플래시가 어두운 골목을 밝혔다. 알몸 상태인 강서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부들거리는 손가락으로 소은정의 얼굴을 가리켰다.“사... 사진까지 찍어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서진은 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차에 뛰어올랐다.“얼른 타! 젠장, 소은정 저 여자 도대체 정체가 뭐야?”차에 오르고 옷가지들을 챙겨 입으며 강서진은 끊임없이 재잘거렸다.“소은정 이 여자 진짜 반전이다. 아주 불여우가 따로 없어. 그래, 인정해. 나보다 한 수 위더라.”하지만 강서진의 끝없는 수다에도 박수혁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기다란 손가락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담배연기가 그의 표정을 가려주었다.잠시 후, 클럽 밖으로 나온 성강희, 한유라와 김하늘은 차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성강희는 굳이 다가가 창문을 향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서진 씨, 그냥 게임인데 쪼잔하게 복수하고 그럴 생각은 아니죠? 다음에 만나면 또 재밌게 놀아요.”차오르는 분노에 강서진은 부들부들 떨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게임을 제안한 것도, 내기의 내용도 모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으니까.억울했지만 이런 치욕은 다른 사람 앞에서 얘기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열불이 치밀었다.이런 치욕을 겪고 앞으로 고개나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싶었다. 방금 전 2층에서 탈의를 거부하던 그를 향해 성강희는 차가운 얼굴로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왜요? 싫어요. 만약 은정이가 졌다면 봐줬을 거예요?”물론 아니었다.그래서 고분고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성강희의 조롱에 강서진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가만히 듣고만 있던 박수혁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강희 씨, 오늘 은정이를 위해 복수를 해준 겁니까?”그의 질문에는 불쾌감이 서려있었다.“그럴 리가요. 게임은 은정이가 이긴 거고 내기의 내용은 강서진 씨가 정한 겁니다. 패배는 제대로 인정하는 게 게임의 룰 아니던가요?”성강희는 여전히 장난스레 웃으며 손가락으로 창문을 톡톡 건드렸다. 한참을 침묵하던 성강희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사실 은정이가 이길 거라곤 상상조차 못하셨죠?”“조금 놀란 건 맞습니다.”“3
이른 아침.창문을 비추는 따뜻한 햇살에 소은정은 천천히 눈을 떴다. 화창한 날씨에 기분 좋은 미소가 얼굴에 걸렸다. 마침 가정부가 조심스레 그녀의 방문을 노크했다.“아가씨, 깨셨어요?”소은정은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네, 들어오세요.”어젯밤 소은호의 기사 덕분에 안전하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소은정의 허락에 두 직원이 커다란 행거를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아가씨를 위해 준비한 의상입니다. 회장님, 도련님께서는 주방에서 기다리고 계시고요.”어마어마한 양의 옷을 보며 소은정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좋아하는 브랜드를 알려달라고 하기에 몇 개 적어줬더니 아예 브랜드 편집숍을 털어온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못 말리는 사랑에 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같은 스타일, 다른 컬러인 옷도 간간이 보였다. 익숙한 스타일과 원단,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프라다 브랜드였다. 게다가 전부 이번 시즌 신상들, 국내에는 아직 판매가 시작되지도 않은 제품들이었다.전에는 당연하게 느껴지던 삶이었는데 3년 동안 잊어버렸나 보다. 이렇게 새삼스러운 걸 보니.“알겠어요. 이만 나가보세요.”샤워를 마친 소은정은 정교한 블랙 드레스에 화이트톤 정장 슈트를 매치한 뒤 방문을 나섰다. 그녀가 내려오자 소찬식이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우리 딸 잘 잤어?”소은호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어제 사운드 클럽에서 강서진이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했다면서? 얼굴을 막았지만 그중에서도 알아본 사람이 있었나 보더라고. 강 회장님이 또 강서진 그 자식을 호출하셨다던데. 아마 좋은 일은 아니겠지. 스캔들 수습에 떨어지는 주가에 아마 한동안 골치 좀 아프겠어. 역시 우리 동생이야.”소은호의 칭찬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식탁에 앉았다.“그 사람이 먼저 날 건드린 거야.”“쌤통이다, 그 자식. 우리 딸을 건드려?”소찬식은 사랑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소은정에게 반찬을 집어주었다.대충 식사를 끝내고 소은정은 바로 오빠와 함께 회사로 향했다. 우연석이 이미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본
소은정은 놀란 눈으로 한유라를 보면서 물었다. “대체 누가 보낸 거야?”“누구겠어, 성강희밖에 더 있어? 나한테 꼭 전해주라고 부탁했어.”“성강희?”하여간 재밌는 사람이다.“강희 걔가 어젯밤에 아빠한테 쫓겨 해외유학을 하러 가게 되었는데 성적이 안 좋으면 아빠가 다리를 분질러 놓는다고 하더라.” “갑자기 가서 배웅도 못 해줬네. 이제 오면 환영식 한번 해줘야겠네...”사람을 불러 꽃다발을 밖에 내놨다. 방안을 가득 채우던 꽃향기가 사라지니 지끈해나던 머리가 살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아 맞다, 지난번에 네가 부탁했던 풍항그룹 말이야. 이미 알아냈어.”한유라의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한유라는 웃으면서 말했다. “풍항그룹은 유령 회사가 돼버린 지 오래고 여기저기 돈을 끌어다 빚을 막고 있는 모양이야. 은행의 빚을 못 상납하여 곧 집도 경매로 넘어갈 예정이고 손에는 망해가는 프로젝트뿐이야. 그 회사와 손을 잡았다가는 큰일이야. 임상희가 일부러 골탕을 먹이려고 작정한 거야.”임상희가 함정을 놓을 것이라는 걸 소은정도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더욱더 흥미진진한 저녁 만찬이 될 것 같았다. “고마워.”“별거 아니야, 그건 그렇고 나 이제 너랑 같이 출근 못 하게 될 것 같아. 엄마가 이번에 홍콩에서 돌아오면서 매수한 화장품 회사가 있는데 그쪽 연구팀에서 일하기로 했어. 알잖아, 내 꿈인 거…”한유라의 엄마는 유명한 사업가이다. 항상 한유라가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았으면 했지만, 한유라는 사업보다는 연구가 적성에 맞았고 이번이 한유라한테는 좋은 기회였다. 소은정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항상 응원할게!”“항상 조심하는 거 잊지 말고 도울 일이 있으면 꼭 말해!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 테니!”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걱정 마, 알잖아 내 성격.”한유라는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소은정은 다시 일에 몰두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소은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연준에게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