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사과문을 확인한 소은정은 피식 웃은 뒤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아무 능력도 없는 부잣집 도련님, 정말 집에서 쫓겨날까 봐 어쩔 수 없이 올린 거겠지. 지금쯤 아마 그녀에게 화가 단단히 났을 것이다.이때, 노크 소리와 함께 임상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짐짓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혹시 시간 되시나요?”“그럼요. 앉으세요.”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임상희는 한유라를 힐끗 바라보았다. 제3자가 듣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었지만 한유라는 정말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하는 건지 전혀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무슨 일이시죠?”“우 비서가 거성그룹 프로젝트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것 같던데요. 소은정 씨, 잘 모르시는 것 같던데 저희와 거성그룹은 지금까지 함께 일한 경험이 전무합니다. 회사에서 입지를 다지고 싶은 거라면 풍항그룹이 더 나을 겁니다. 마침 괜찮은 프로젝트도 있고요.”임상희는 정말 좋은 마음에서 알려주는 것이라는 듯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파일을 넘겨주었다.소은정은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네, 뭐. 한번 검토해 보도록 하죠.”“소은정 씨, 풍항과 계약을 체결한다면 임원들도 이사진들도 본부장님의 능력을 인정할 수 있을 겁니다.”오전 회의 때만 해도 그녀의 입사를 반대한다던 사람이 갑자기 프로젝트 제안이라.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하지만 소은정은 최대한 감정을 숨기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 아, 그리고 호칭 정리는 제대로 하고 넘어가죠. 앞으로 본부장님이라고 불러주세요.”소은정의 말에 임상희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대표님께서 총애하는 인재라는 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한테 텃세를 부릴 생각은 하지 말아요. 이 회사에서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아요? 어차피 전 기회는 드렸습니다. 지금부터는 본부장님 능력에 달렸겠죠.”말을 마친 임상희는 거세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그 모습에 한유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뭐야
강서진의 말에 고개를 돌린 박수혁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레이 톤의 고급스러운 드레스가 그녀의 갸녀린 허리를 완벽하게 휘감고 있었다. 거기에 자연스레 풀어헤친 머리와 정교한 메이크업, 그 누가 봐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젠장,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술 한잔하려고 왔더니 하필 저 여자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강서진이 구시렁댔다. 한편, 한유라 일행도 박수혁과 강서진을 발견했다. 비록 달갑지 않은 상태였지만 굳이 그녀들이 먼저 피할 필요는 없었으니 더 당당하게 걸어갔다.“강 대표님, 오늘 일 수습은 다 끝나셨나 봐요? 술 한잔 할 여유까지 있으시고. 그 사진이 좀 너무 약하긴 했죠?”한유라가 차갑게 웃었다. 물론 강서진도 지지 않고 뒤에 서 있는 소은정을 향해 비아냥거렸다.“내가 상대를 너무 과소평과했나 봐요. 이혼 한 번 하더니 인격이 바뀌었네? 다른 건 몰라도 인복 하나는 끝내둔다니까. 내가 인정할게요.”“찌질한 남편 때문에 3년 동안 바보처럼 살았으니까 바뀔 수밖에요. 뭐 그쪽도 바로 박 대표한테 달려간 주제에 사돈 남 말은 그만하시죠?”뒤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하늘이 한 마디 쏘아붙이고는 한유라를 향해 말했다.“됐어. 왜 저딴 사람들이랑 말을 섞어. 얼른 들어가자.”소은정은 강서진과 박수혁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클럽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화려한 외모의 남자가 소은정의 핸드백을 들고 그녀의 뒤를 따라들어갔다. 박수혁의 옆을 지날 때 한번 비웃어 주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강서진은 어이가 없었다. 불쌍한 이혼녀 주제에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나오는지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정말 사람 겉만 봐서는 모른다더니. 형 엑스 와이프 진짜 장난 아니다. 나한테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 어떻게 눈길 한 번 안 줄 수 있어?”박수혁은 씩씩대는 강서진을 노려보며 말했다.“그만해.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야? 그냥 가자.”하지만 강서진은 더 고개를 빳빳이 들며 반박했다
깊은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재벌가 자제들로서 강서진과 성강희는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성강희도 강서진과 그 뒤에 있는 박수혁을 발견하고 대충 와인잔을 살짝 들었다.“강서진 씨, 오랜만이네요.”강서진은 성강희가 소은정, 한유라와 한 테이블에 앉은 걸 발견하고 눈동자를 굴리더니 박수혁을 끌고 다가갔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합석하죠? 어때요?”성강희는 아무 대답 없이 옆에 앉은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여왕님, 괜찮겠어?”소은정은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마음대로 해. 난 밴드 공연이나 보러 가야겠다.”한유라도 따라서 일어섰다.“가자, 가자. 진짜 여기 물 관리 안 해? 스토커도 아니고 뭐야, 짜증 나게.”김하늘도 술을 들고 뒤를 따랐다.“나도 갈래.”박수혁은 소은정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강희 씨, 은정이랑은 무슨 사이죠?”“친구요.”성강희가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소은정 같은 여자가 어떻게 강희 씨랑 친구예요? 저 여자한테 속고 있는...”강서진이 말을 끝내기 전에 박수혁이 제지했다.“강서진.”성강희는 차가운 말투로 따졌다.“은정이가 왜요? 은정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는 것 같은데. 얘기 좀 해보시죠.”“그게...”성강희의 차가운 태도에 기가 눌린 데다 박수혁도 그의 편을 들 생각이 없어 보이자 강서진은 말끝을 흐렸다. 소은정한테 저지른 일을 전부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쾅쾅쾅.”1층에서 록 음악이 울리고 클럽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리고 3년 만에 컴백한 크레이지 밴드가 무대에 나타나고 클럽 안의 손님들은 최고의 밴드를 향해 열광했다.강서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크레이지 밴드는 이미 은퇴한 거 아니었어요? 왜 이런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거죠? 억대 출연료를 제시해도 전부 거절하고 있다던데.”크레이지 밴드의 멤버는 총 3명, 비록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은 둘뿐이었지만 클럽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기엔 충분했다. 그들은 노련한 무대 매너로 관객
연주가 끝나고 고스트가 다가와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 미소를 지은 소은정은 담담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 3년 동안 손이 굳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무대를 마치고 고스트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은정아, 그냥 우리 멤버로 들어올래? 몬스터는 강퇴시킬까 봐.”고스트의 기분 좋은 농담에 소은정이 활짝 웃었다.“몬스터 오빠가 알면 지금 당장 병원에서 달려올지도 몰라요.”“오늘 진짜 너무 좋았어. 이 곡 네가 편곡한 거잖아. 몬스터 말고 이런 호흡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일 거야. 기분 좋다. 예전의 네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아서.”고스트는 방금 전 무대의 여운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분명 칭찬이었지만 소은정은 왠지 마음이 씁쓸해졌다. 3년 동안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산 걸까? 세상에는 재밌는 게 이렇게 많은데. 뭐, 이제라도 정신을 차렸으니 다행이다 싶었다.하지만 고스트는 여전히 집요하게 그녀를 설득했다.“은정아, 그냥 우리 밴드에 들어오라니까. 우리가 함께하면 빌보드 제패는 시간문제야.”소은정이 거절하려던 순간, 김하늘이 다가왔다.“오빠들, 주접 그만 떠세요. 그리고 우리 은정이 이제는 회사 본부장님이라고요.”김하늘과 소은정이 백스테이지에서 나오자 한유라는 기다렸다는 듯 소은정을 와락 껴안았다.“역시 우리 은정이야. 아까 사람들 반응 봤지? 네 바이올린 연주는 진짜 최고라니까.”소은정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한유라를 떼어냈다. 크레이지 밴드를 섭외한 것도 그녀를 위한 성강희의 배려라는 걸 알고 있었던 그녀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지금쯤이면 박수혁도 강서진도 이미 떠났을 것이라 생각한 소은정 일행은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은 여전히 성강희, 성준희 옆에 앉아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은 방금 전과 뭔가 달라져있었다.한유라는 코웃음을 치더니 자리에 앉았다.“강희야, 우리 게임이나 하자. 짜증 나는 사람이 있으니까 술맛이 안 사네.”
대결은 뭔가 걸어야 더 재밌는 법이니까.박수혁은 아름다운 소은정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글쎄?”소은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강서진이 끼어들었다.“은정 씨가 지면 솔직하게 인정해요. 수혁이 형 돈 보고 결혼한 거라고. 앞으로 다시 A시에는 발도 들이지 않겠다고.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지면 내가 입고 있는 옷 다 벗는 걸로.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말도 안 되는 요구에 성강희와 성준희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다혈질인 한유라가 일어서려는 순간, 김하늘의 그녀를 손목을 잡았다.박수혁도 미간을 찌푸렸다. 강서진의 말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려던 순간, 소은정이 코웃음을 치더니 대답했다.“네. 좋아요.”자신만만한 표정, 그녀가 이길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편, 강서진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박수혁은 A시는 물론, 고수들이 즐비한 마카오 카지노에서도 우승을 거둘 정도의 초고수였다. 소은정이 상대가 될 리가 없다고 그는 확신했다.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강서진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게임이 시작되고 박수혁이 말했다.“레이디 퍼스트.”소은정도 마다하지 않고 바로 베팅을 시작했다. “올인.”박수혁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소은정의 표정을 살폈다. 소은정은 이 게임 자체의 승패에 별로 관심 없는 표정이었다. 정말 이대로 A시를 떠난다고 해도 괜찮을 걸까? 강서진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게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포커라곤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을 것 같은 숙맥, 이 게임은 박수혁, 아니 그의 승리였다.처음부터 올인? 초보 티를 팍팍 내는 모습에 강서진의 표정은 점점 더 밝아졌다.생각지도 못한 올인에 박수혁도 콜을 외쳤다. 그리고 카드를 확인하는 시간, 박수혁의 카드는 스트레이트 플러쉬, 거의 최고 레벨이었다.강서진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형, 역시 대단해. 혹시 져주는 거 아닌가 걱정했단 말이야.”이에 손뼉을 치던 성강희가 입을 열었다.“
이 말만을 남긴 채 박수혁은 자리를 떠버렸고 소은정의 친구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한유라를 비롯한 소은정의 친구들이 눈으로 쏘는 레이저빔에 몸이 뚫릴 것만 같았다.박수혁, 이렇게 날 버리고 가?우리 친구 아니었어?한참을 망설이다 강서진은 입술을 꾹 깨물고 애원했다.“이번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요?”“안 돼요!”한유진 일행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1층. 소은정은 몰래 옆문으로 빠져나와 소은호에게 문자를 했다. 바로 기사가 곧 도착할 것이라는 답장을 받았다. 그리고 한유라한테도 미리 문자를 보내두었다.“은정아...”박수혁이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익숙한 그림자, 소은정은 흠칫 놀랐지만 바로 차가운 표정으로 감정을 지웠다. 그녀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캐치한 박수혁은 또 다시 상처를 받고 말았다.“뭐 할 말 있어?”어두운 가로등 불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렸다. 박수혁이 한 발 다가가면 소은정은 뒤로 한발 물러서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되었다.박수혁은 피식 웃더니 물고있던 담배꽁초를 대충 버리고 한발 성큼 다가섰다.“은정아, 레스토랑에 있었던 일은 미안해. 예리가 아직 철이 없어. 그래도 어떻게든 직접 사과하게 만들 테니까 걱정하지 마.”“됐어. 그냥 앞으로 가족 간수나 잘해.”사과? 레스토랑 사건은 그렇다 치고 지금까지 그녀가 받았던 멸시와 모욕은 어떻게 할 거지? 뭐, 사과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은정아 내가...”박수혁이 또다시 입을 연 순간, 클럽 입구에서 남자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강서진이었다. 얼굴을 막은 채 두 사람을 향해 달려오던 강서진은 몰려드는 모멸감을 억누르며 말했다.“오늘 이 치욕 언젠가는 갚아줄 거야.”그 순간, 휴대폰 플래시가 어두운 골목을 밝혔다. 알몸 상태인 강서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부들거리는 손가락으로 소은정의 얼굴을 가리켰다.“사... 사진까지 찍어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서진은 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차에 뛰어올랐다.“얼른 타! 젠장, 소은정 저 여자 도대체 정체가 뭐야?”차에 오르고 옷가지들을 챙겨 입으며 강서진은 끊임없이 재잘거렸다.“소은정 이 여자 진짜 반전이다. 아주 불여우가 따로 없어. 그래, 인정해. 나보다 한 수 위더라.”하지만 강서진의 끝없는 수다에도 박수혁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기다란 손가락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담배연기가 그의 표정을 가려주었다.잠시 후, 클럽 밖으로 나온 성강희, 한유라와 김하늘은 차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성강희는 굳이 다가가 창문을 향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서진 씨, 그냥 게임인데 쪼잔하게 복수하고 그럴 생각은 아니죠? 다음에 만나면 또 재밌게 놀아요.”차오르는 분노에 강서진은 부들부들 떨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게임을 제안한 것도, 내기의 내용도 모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으니까.억울했지만 이런 치욕은 다른 사람 앞에서 얘기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열불이 치밀었다.이런 치욕을 겪고 앞으로 고개나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싶었다. 방금 전 2층에서 탈의를 거부하던 그를 향해 성강희는 차가운 얼굴로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왜요? 싫어요. 만약 은정이가 졌다면 봐줬을 거예요?”물론 아니었다.그래서 고분고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성강희의 조롱에 강서진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가만히 듣고만 있던 박수혁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강희 씨, 오늘 은정이를 위해 복수를 해준 겁니까?”그의 질문에는 불쾌감이 서려있었다.“그럴 리가요. 게임은 은정이가 이긴 거고 내기의 내용은 강서진 씨가 정한 겁니다. 패배는 제대로 인정하는 게 게임의 룰 아니던가요?”성강희는 여전히 장난스레 웃으며 손가락으로 창문을 톡톡 건드렸다. 한참을 침묵하던 성강희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사실 은정이가 이길 거라곤 상상조차 못하셨죠?”“조금 놀란 건 맞습니다.”“3
이른 아침.창문을 비추는 따뜻한 햇살에 소은정은 천천히 눈을 떴다. 화창한 날씨에 기분 좋은 미소가 얼굴에 걸렸다. 마침 가정부가 조심스레 그녀의 방문을 노크했다.“아가씨, 깨셨어요?”소은정은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네, 들어오세요.”어젯밤 소은호의 기사 덕분에 안전하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소은정의 허락에 두 직원이 커다란 행거를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아가씨를 위해 준비한 의상입니다. 회장님, 도련님께서는 주방에서 기다리고 계시고요.”어마어마한 양의 옷을 보며 소은정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좋아하는 브랜드를 알려달라고 하기에 몇 개 적어줬더니 아예 브랜드 편집숍을 털어온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못 말리는 사랑에 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같은 스타일, 다른 컬러인 옷도 간간이 보였다. 익숙한 스타일과 원단,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프라다 브랜드였다. 게다가 전부 이번 시즌 신상들, 국내에는 아직 판매가 시작되지도 않은 제품들이었다.전에는 당연하게 느껴지던 삶이었는데 3년 동안 잊어버렸나 보다. 이렇게 새삼스러운 걸 보니.“알겠어요. 이만 나가보세요.”샤워를 마친 소은정은 정교한 블랙 드레스에 화이트톤 정장 슈트를 매치한 뒤 방문을 나섰다. 그녀가 내려오자 소찬식이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우리 딸 잘 잤어?”소은호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어제 사운드 클럽에서 강서진이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했다면서? 얼굴을 막았지만 그중에서도 알아본 사람이 있었나 보더라고. 강 회장님이 또 강서진 그 자식을 호출하셨다던데. 아마 좋은 일은 아니겠지. 스캔들 수습에 떨어지는 주가에 아마 한동안 골치 좀 아프겠어. 역시 우리 동생이야.”소은호의 칭찬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식탁에 앉았다.“그 사람이 먼저 날 건드린 거야.”“쌤통이다, 그 자식. 우리 딸을 건드려?”소찬식은 사랑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소은정에게 반찬을 집어주었다.대충 식사를 끝내고 소은정은 바로 오빠와 함께 회사로 향했다. 우연석이 이미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