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은 그의 말을 듣고 점차 긴장을 풀고 말했다.“아이참, 점점 찰거머리가 되어간다니까요?”전동하가 얄미운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강아지 키우고 싶지 않아요? 사모예드?”소은정은 그를 사촌오빠라고 거짓말했던 그날의 상황이 떠올라서 얼굴을 확 붉혔다.“그만하라니까요? 또 이 얘기하면 진짜 강아지 확 사버릴 거예요!”전동하가 웃으며 얼굴을 그녀의 가까이 들이밀었다.“잘 길러봐요. 멍….”그가 손끝으로 그녀의 볼을 살짝 쓰다듬자 소은정은 마음이 간질거렸다.남자가 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를 사모예드라고 생각하고 매일 예뻐해 줘요.”사실 그는 강아지보다는 늑대에 가까웠다.물론 겉보기에는 풍채 좋고 늠름한 전 대표였다.남자의 칠흑 같은 눈동자에서 욕망의 불길이 치솟았다.조금 전까지 긴장됐던 마음이 그의 장난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두 사람은 상기된 얼굴로 바로 술집을 빠져 나갔다.소은정은 목까지 빨개져 있었다.남유주는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그들이 언제 빠져나갔는지도 몰랐다.그녀는 가끔씩 맨 안쪽 룸 동태를 살폈다.대략 세 시간 뒤, 남녀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남유주는 떨리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각진 이목구비를 가진 중년의 남자는 40대 좌우로 보였고 얼굴에 칼에 베인 흉터가 있어서 더 인상이 험악해 보였다.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그의 뒤를 따르는 여자도 40대 좌우로 명품 옷에 액세서리를 걸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가 살짝 흐트러져 있고 얼굴도 빨갛게 상기된 상태였다.여자는 수시로 남자의 몸을 힐끔거리고 있었다.남유주는 화들짝 놀라며 급히 시선을 피했다. 두 사람이 클럽을 빠져 나간 뒤에야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옆에 있던 경비원이 그 모습을 보고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사장님, 술집에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해요. 돈 많은 재벌 사모님들은 젊은 남자를 끼고 놀기 좋아하죠. 물론 아까 그 남자는 인상이 좀 험악하긴 했지만요.”남유주가 흠칫하
남유주는 길게 심호흡했다.자신의 불만을 표현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그녀가 손녀 팔아 장사한다고 가족들을 비난했을 때, 이익을 취한 자들은 모두 이게 다 널 위한 거라고 말했다.그녀가 짜증스럽게 전화를 끊으려는데 할아버지의 기침이 더 심해졌다. 그러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유주야, 이 할애비가 그렇게 미워? 그래서 죽을 때까지 나 안 만날 거야?”그는 힘없이 한숨을 내쉬고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말했다.“나한테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마지막으로 얼굴 한번 보자꾸나. 설마 너 나 죽은 뒤에 우리 가문과 연을 끊고 살 건 아니지?”어떤 말이 그녀의 감정선을 자극한 건지, 남유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할아버지가 밉지만 그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괴로웠다.그녀는 감정을 들킬세라 서둘러 전화를 끊고 베란다에서 목놓아 울었다.그녀는 나약해서 반항조차 못하는 사람이었다.예쁘게 사랑만 받고 자란 여자는 강해질 기회가 없었다.그래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했을 때, 싫다고 말할 용기조차 없었다.해외로 도망친 건 그녀의 삶에서 가장 큰 일탈이었다.이형욱과 결혼하고 그녀는 이 불행이 끝나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이형욱은 원래 바람기가 많고 빨리 질리는 인간이었다. 그의 바람 현장을 잡은 뒤로 두 사람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다.그녀는 그에게 파렴치한 인간이라고 욕했고 이형욱은 그녀를 거지새끼라고 욕했다.그 뒤로 이형욱은 성질을 더 이상 감추지 않고 심기가 뒤틀리면 그녀에게 손찌검을 했다.그녀가 도움 요청을 안 해봤을까?남유주는 여러 번 할아버지에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고 경찰에 신고도 해보고 변호사 상담도 해봤다.하지만 모든 게 헛수고였다. 남씨 가문 사람들은 돈으로 사건을 덮었고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성격 좀 죽이고 참고 살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그녀가 해외로 도망가기 전날, 이형욱은 꽃병으로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그녀는 이대로 살다가 제 명에 못 살 것 같았다.그 뒤로 남씨 가문은 거액의 배상금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사무실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소름 끼치는 한기가 모든 걸 집어삼켰다.박수혁은 음산하게 굳은 얼굴로 시선을 떨구고 생각에 잠겼다.남유주는 입을 꾹 다물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박수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죠?”남유주는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룸 안에 CCTV가 다 있어요. 확인해 보고 싶으시면 지금 보내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건 제가 돌아가서 삭제할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저는 이 자리에 협박을 하러 나온 게 아니에요. 박 대표님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이건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왔어요.”“은정이한테 말했나요?”박수혁이 물었다.그가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은 여전히 소은정이었다.남유주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밤에 은정 씨와 남편분도 가게에 오셨어요. 최근에 안전에 유의하라고 일러주기는 했지만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박수혁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고개를 떨구었다.그는 당장이라도 사람 한 명 죽일 것 같은 음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혼란스러웠다.여태 억눌렀던 분노와 깊은 실망감이 뒤엉켜 당장 폭발할 것 같았다.어머니라는 사람이 아들의 체면도 배려하지 않고 뒤에서 이런 일을 저질렀는데 누구든 쉽게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적막한 정적이 흐른 뒤, 박수혁은 고개를 들고 날카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CCTV는 사람을 보내 회수할게요. 협조해 주셨으면 합니다.”“물론이죠.”남유주는 흔쾌히 동의했다.“말은 잘 전달했으니 우리 사이의 빚은 이거로 퉁친 거로 하죠.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그녀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뒤돌아섰다.그녀가 문고리를 잡던 순간 박수혁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남유주 씨에게 선물을 하나 드리려고 해요.”남유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박수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어머니에 관한 이 비밀이 어떤 파문을 가져올지 그는 잘
남자는 감정을 억누르며 USB를 집어들었다.남유주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하지만 만약에 진짜라면?그는 주저하다가 그것을 컴퓨터에 연결했다.그리고 어제 일자로 영상을 검색했다.소은정과 전동하가 보이고 이민혜와 얼굴에 칼집 난 남자도 보였다.그리고 내부 영상으로 넘어갔다.그는 저도 모르게 그것을 클릭했다.이민혜가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소은정과 박수혁을 욕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그리고 그 남자가 이민혜의 몸을 만지작거리는 모습도 보였다.“그냥 하나 더 낳으면 되지 않겠어요?”남자의 말에도 이민혜는 충격을 받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했다.아이를 더 낳는다라.하….박수혁은 USB를 뽑아 옆에 있던 재떨이를 들고 힘껏 내리쳤다.성인이 된 이후로 어머니라는 사람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그래도 어머니라고 처우해 준 이유는 그녀가 자신을 낳은 생모이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것 이외에 그녀에게서 받은 게 없었기에 정이 있을 리 만무했다.이번에 박수혁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그는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실망스럽기도 하고 하찮아서 웃음이 나왔다.애를 더 낳는다고?낯선 남자와 낳은 더러운 핏줄로 감히 태한그룹을 손에 넣겠다고?평생 이렇게 치욕적인 감정이 들기는 처음이었다.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허무하고 황당했다.그리고 역겨웠다.한편, 낯선 남자가 전동하의 차에 타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전동하는 감정을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물었다.“박 대표가 보내서 왔어요?”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는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일단 알겠습니다. 박 대표님께 감사인사를 전해주세요.”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차에서 내려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전동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박수혁이 직접 소은정을 찾아가지 않고 그에게로 사람을 보낸 건 조금 의외였다.생각에 잠긴 사이, 하이힐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인
남유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으니까 나가 봐.”남우신 어르신에게는 아들이 한명 있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났다.큰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르신이 방계에서 입적시킨 양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핏줄이라고 남우신은 모든 것을 그에게 물려주었다.결국 남유주의 희생으로 재기에 성공했으나 이 모든 건 큰아버지란 사람을 위해 차린 밥상이었다.그 일로 예전에 그녀는 억울하고 분노했다.친손녀인데 어떻게 방계에서 데려온 양아들보다 대우가 못할까?그녀는 처음에 할아버지가 남존여비 사상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언젠가는 잘못을 깨닫고 자신에게 사과하기를 바랐다.하지만 진실을 알게 된 뒤로 자신이 바라는 결과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생모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인 그녀는 남씨 가문에게는 수치스러운 존재일 테니 남우신이 가문을 그녀의 손에 맡길 리 만무했다.그녀는 이 큰아버지라는 사람보다도 못한 존재였다.며칠 밤잠을 설친 남유주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가서 차갑게 큰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시죠?”“너 귀국한지가 언제인데 어떻게 집에 한 번을 안 올 수가 있어? 너 우릴 가족이라고 생각하긴 하니?”큰아버지는 그녀를 보자마자 비난을 퍼부었다.남유주는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큰아버지는 그녀가 찔려서 아무 말도 못하는 줄 알고 더 신나서 떠들었다.“지금 네 모습을 좀 봐. 집이 있는데 돌아가지도 않고 남편은 밖에서 술만 퍼마시고. 너 남편 생각은 안 해? 이형욱 사생아가 곧 태어난다더라. 너는 수치심도 없어?”“내가 너라면 차라리 해외에서 죽고 안 돌아왔어. 무슨 낯짝으로 여길 돌아와? 너라는 존재 자체가 남씨 가문의 수치야. 이제 어떡해? 이형욱 불륜녀가 아들이라도 낳으면 우리 가문을 거들떠보기라도 할까?”큰아버지는 씩씩거리며 남유주를 향해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남유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환각이 생긴 것처럼 그가 입모양을 벙긋거리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유주는 아까 그들이 복도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래서 갑자기 표정을 바꾼 큰어머니가 가증스럽게 보였다.역시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남유주는 형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뵈러 왔어요.”“할아버지는 안에 계셔. 조금 전에 의식을 찾았는데 널 많이 그리워하셨어. 넌 집 나가서 3년 동안 어떻게 연락 한번을 안 해줘?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큰어머니가 주절주절 떠들자 남유주는 쓴웃음을 지으며 바로 병실로 향했다.“저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차갑지도 그렇다고 친근하지도 않은 태도에 큰어머니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영감님도 돌아가실 마당에 쟤가 뭘 할 수 있다고. 당장 이형욱한테 연락해서 쟤 데려가라고 해요. 마침 다음 프로젝트에 관해 의논도 할겸.”다른 친척들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병실에는 세 사람이 지키고 있었는데 두 명은 남유주도 모르는 사람이고 나머지 한 명은 큰아버지였다.진한 소독약냄새가 코를 찔러서 숨이 막혀왔다.그녀를 본 세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큰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남우신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남유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창백한 얼굴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노인을 바라보았다.바이탈 기계가 불규칙한 그래프를 그리며 움직이고 있었다.병실 온도가 차가웠다.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큰아버지는 욕설을 퍼부으려다가 꾹 참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어떻게 이제야 나타나니? 양심도 없는 년. 할아버지가 널 얼마나 예뻐하셨는데.”남유주는 무표정하게 서서 다가가지도 반박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눈동자가 차가우리만치 고요했다.잠시 후, 병상의 노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큰아버지가 다급히 허리를 숙이며 노인을 불렀다.“아버지, 정신이 좀 드세요? 지금 의사 부를게요.”남우신 노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노인은 떨리는 손을 남유주를 향해 뻗었다.다가오라는 뜻이었다.남은 두 사람도 약간 착잡한 표정으로 남유주를 바라보았다.큰아버지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자리를 비켜
"다이 그룹의 재정 상태가 많이 안 좋은가 봐요. 저한테 주식까지 주시고, 전부 빚더미가 될 재산들을... 할아버지는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 제 행복까지 팔아야겠어요? 제 평생을 팔아야 속이 시원하시겠어요? 이형욱의 환심을 사고 이형욱의 돈을 받아먹어 다이 그룹을 먹여 살리라는 거예요?"남유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가슴이 따끔거렸다. 침대에 누워있던 어르신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어둡게 깔린 눈동자가 차갑게 변했다.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너..."남유주는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노인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랑 화해라고 하려고 찾은 줄 알았는데 제가 착각했네요. 존경하는 할아버지, 왜 마지막까지 절 이용만 하려는 거예요? 제가 아빠의 친딸이 아니라서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거예요?"그녀의 말은 청천벽력 같았다.어르신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그는 힘겹게 팔을 들었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팔을 들어 그녀를 가리켰다. 남유주는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차갑게 몸을 돌려버렸다."널 찾아간 거냐? 내가 돈을 주며 절대 너에게 비밀을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받았거만..."어르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남유주는 병실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눈가에 가득 고였던 눈물을 손으로 쓰윽 닦은 남유주의 앞에 호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 서성거렸다.안에서 일어난 상황을 엿보기 위해 틈을 노리는 맹수 같았다.남유주에게 재산 전부를 물려줬을까 봐 노심초사하게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병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선 큰아버지는 놀란 목소리로 급히 안으로 뛰어들어갔다."어르신, 어르신! 의사! 의사 선생님! 어르신이 숨을... 숨을 안 쉰다고요!"그의 목소리에 사람들은 남유주를 지나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남유주는 넋이 나간 얼굴로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병원을 막 나서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의
이형욱은 전형적인 약강강약인 사람이다. 그는 자기보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굽실거렸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는 횡포를 부리는 성격이다. 그는 남유주에게 착하게 대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면모를 드러냈다. 때리거나 욕설을 퍼붓기 일쑤였다.이형욱은 이중인격이다.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녀가 차 문을 잠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형욱은 분노에 못 이겨 차 문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울그락 푸르락한 얼굴로 사납게 남유주를 노려보았다.이형욱의 눈길에 그녀는 오한을 느끼며 머리털까지 삐쭉 섰다.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통증이 그녀의 머리로 전해왔다. 당황스러움과 굴욕감이 동시에 밀려와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그녀는 이형욱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손을 덜덜 떨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이형욱은 물불 가리지 않고 앞을 가로막으며 보닛을 내리쳤다."차에서 내려, 당장 내려! 내 말 안 들려? 이 여편네야, 지금 당장 안 내리면 너 죽여버린다!"차는 시동이 걸렸다. 남유주의 창백한 얼굴로 운전대를 꽉 잡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그녀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줄줄 흘렀다. 남유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꺼져, 꺼져..."할아버지가 죽은 지금 그녀는 이형욱의 폭력과 욕설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었다.그동안 폭력을 당해도 감히 경찰에게 신고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직 이형욱과 시시비비를 따질 준비를 하지 못했다. 아무런 준비도 못 한 상태로 갑작스레 이형욱을 만나게 되자 그녀는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다.두려움, 음산함, 섬뜩함이 그녀를 뒤덮었다. 그녀를 당장이라도 나락으로 밀어버릴 것 같았다.그녀가 망설이는 사이, 이형욱은 그녀의 두려움과 소심함을 눈치 챘다.다시 차 문으로 향하는 이형욱을 바라보며 남유주는 발을 엑셀 위에 올려놓았다."죽어... 죽여버릴 거야...."이형욱을 저주하는 듯 중얼거리는 그녀였다. 어쩌면 용기를 내기 위해 주문을 거는 것일 수도 있었다.'밟아, 밟으면 넌 해방이야.'그녀는 결심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