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주는 통증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적응한 걸지도 모른다. 부상당한 부위를 건드리지 않으면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익숙한 번호였다.“저녁에 집에 한번 오거라.”할아버지의 연락이었다.과거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그녀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귀국한 뒤로 그녀는 한 번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 사람이 미웠다.그녀는 자신의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했다.하지만 가족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은 그녀의 그런 불만을 철없는 어리광이라고 생각했다.그들은 자신들이 그녀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실제로 그녀가 이혼만 하지 않으면 그녀는 할아버지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었다.남유주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그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시던 할아버지가 이형욱 같은 쓰레기와 결혼 생활을 계속 이어가라고 강요하는지도 이해가 안 됐다.그 때문에 그녀는 인생이 망했다.흐느끼는 소리에 박수혁이 잠에서 깼다.하지만 그녀 본인은 느끼지 못했다.울다 지친 그녀가 이불을 걷었을 때, 자신을 빤히 바라보든 칠흑 같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녀는 흠칫하며 어깨를 움츠렸다.남자는 울어서 빨개진 그녀의 눈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한참 지난 뒤, 그는 시선을 거두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인간 감옥 보내고 싶으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요.”이 정도의 도움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왜일까?소은정을 닮은 두 눈이 계속 슬픔을 담고 있는 게 마음이 걸려서일까? 아니면 자신이 저버렸던 소은정에 대한 죄책감 때문일까?그는 그녀가 안쓰러웠고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하지만 소은정은 이미 보상이 필요 없었다.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대신 보상해 주고 싶었다.이렇게 해서 편해질 수만 있다면.남유주의 눈에 생기가 잠시 돌아오나 싶더니 이내 어두워졌다.그녀는 힘없
고개를 들고 소은정을 바라본 남유주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 곡을 불렀다.무대 아래에서 우렁찬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남유주는 찬란한 미소를 지으며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 순간의 그녀는 생기가 넘쳤다.며칠 전에 병원에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굴던 그녀와는 확연히 달랐다.소은정도 2층에서 열렬히 박수를 쳤다.잠시 후, 룸에서 나온 전동하가 그녀를 불렀다.“은정 씨도 들어와서 인사할래요?”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전동하의 고객사 임원이면 SC그룹과도 업무적으로 인연이 있기에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었다.노래를 끝마친 남유주는 무대를 내려와서 소은정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위층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룸으로 들어갔겠다고 생각해서 직원을 불러 물었다.“정말 예쁜 여자분이 어느 룸 들어가는지 봤어?”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맨 마지막 룸이요. 사장님, 아는 분이세요?”남유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떴다.직원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갸웃했다.아까 들어가신 분은 연세가 좀 있어 보였는데?남유주는 곧장 그쪽으로 향했다.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도 아시다시피 이거 엄청 위험한 일입니다. 소은정이 사고를 당하면 그 집 사람들은 나부터 의심할 거라고요. 그럼 난 아무것도 못하고 죽어야 해요.”“게다가 박수혁군이 소은정 씨한테 일편단심이라고 들었어요. 둘이 이혼은 했지만 박 대표가 소은정에게 어떤 태도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소은정 건드리면 나도 죽어요. 나도 살아야죠.”중년 남자의 야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남유주는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멈춰섰다.잠시 후, 중년 여성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걱정하지 마. 충분한 돈을 줘서 해외로 도피하게 해줄 테니까. 가족들도 잘 보살펴 줄게. 평생 어디 가서 이 많은 돈을 벌겠어? 이건 마지막 기회야.”“그 계집애 결혼한 뒤로도 계속 수혁이 앞에 알짱거리니까 수혁이가 내 말도 안 듣잖아. 엄마로서 내가
소은정은 그의 말을 듣고 점차 긴장을 풀고 말했다.“아이참, 점점 찰거머리가 되어간다니까요?”전동하가 얄미운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강아지 키우고 싶지 않아요? 사모예드?”소은정은 그를 사촌오빠라고 거짓말했던 그날의 상황이 떠올라서 얼굴을 확 붉혔다.“그만하라니까요? 또 이 얘기하면 진짜 강아지 확 사버릴 거예요!”전동하가 웃으며 얼굴을 그녀의 가까이 들이밀었다.“잘 길러봐요. 멍….”그가 손끝으로 그녀의 볼을 살짝 쓰다듬자 소은정은 마음이 간질거렸다.남자가 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를 사모예드라고 생각하고 매일 예뻐해 줘요.”사실 그는 강아지보다는 늑대에 가까웠다.물론 겉보기에는 풍채 좋고 늠름한 전 대표였다.남자의 칠흑 같은 눈동자에서 욕망의 불길이 치솟았다.조금 전까지 긴장됐던 마음이 그의 장난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두 사람은 상기된 얼굴로 바로 술집을 빠져 나갔다.소은정은 목까지 빨개져 있었다.남유주는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그들이 언제 빠져나갔는지도 몰랐다.그녀는 가끔씩 맨 안쪽 룸 동태를 살폈다.대략 세 시간 뒤, 남녀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남유주는 떨리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각진 이목구비를 가진 중년의 남자는 40대 좌우로 보였고 얼굴에 칼에 베인 흉터가 있어서 더 인상이 험악해 보였다.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그의 뒤를 따르는 여자도 40대 좌우로 명품 옷에 액세서리를 걸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가 살짝 흐트러져 있고 얼굴도 빨갛게 상기된 상태였다.여자는 수시로 남자의 몸을 힐끔거리고 있었다.남유주는 화들짝 놀라며 급히 시선을 피했다. 두 사람이 클럽을 빠져 나간 뒤에야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옆에 있던 경비원이 그 모습을 보고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사장님, 술집에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해요. 돈 많은 재벌 사모님들은 젊은 남자를 끼고 놀기 좋아하죠. 물론 아까 그 남자는 인상이 좀 험악하긴 했지만요.”남유주가 흠칫하
남유주는 길게 심호흡했다.자신의 불만을 표현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그녀가 손녀 팔아 장사한다고 가족들을 비난했을 때, 이익을 취한 자들은 모두 이게 다 널 위한 거라고 말했다.그녀가 짜증스럽게 전화를 끊으려는데 할아버지의 기침이 더 심해졌다. 그러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유주야, 이 할애비가 그렇게 미워? 그래서 죽을 때까지 나 안 만날 거야?”그는 힘없이 한숨을 내쉬고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말했다.“나한테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마지막으로 얼굴 한번 보자꾸나. 설마 너 나 죽은 뒤에 우리 가문과 연을 끊고 살 건 아니지?”어떤 말이 그녀의 감정선을 자극한 건지, 남유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할아버지가 밉지만 그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괴로웠다.그녀는 감정을 들킬세라 서둘러 전화를 끊고 베란다에서 목놓아 울었다.그녀는 나약해서 반항조차 못하는 사람이었다.예쁘게 사랑만 받고 자란 여자는 강해질 기회가 없었다.그래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했을 때, 싫다고 말할 용기조차 없었다.해외로 도망친 건 그녀의 삶에서 가장 큰 일탈이었다.이형욱과 결혼하고 그녀는 이 불행이 끝나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이형욱은 원래 바람기가 많고 빨리 질리는 인간이었다. 그의 바람 현장을 잡은 뒤로 두 사람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다.그녀는 그에게 파렴치한 인간이라고 욕했고 이형욱은 그녀를 거지새끼라고 욕했다.그 뒤로 이형욱은 성질을 더 이상 감추지 않고 심기가 뒤틀리면 그녀에게 손찌검을 했다.그녀가 도움 요청을 안 해봤을까?남유주는 여러 번 할아버지에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고 경찰에 신고도 해보고 변호사 상담도 해봤다.하지만 모든 게 헛수고였다. 남씨 가문 사람들은 돈으로 사건을 덮었고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성격 좀 죽이고 참고 살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그녀가 해외로 도망가기 전날, 이형욱은 꽃병으로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그녀는 이대로 살다가 제 명에 못 살 것 같았다.그 뒤로 남씨 가문은 거액의 배상금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사무실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소름 끼치는 한기가 모든 걸 집어삼켰다.박수혁은 음산하게 굳은 얼굴로 시선을 떨구고 생각에 잠겼다.남유주는 입을 꾹 다물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박수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죠?”남유주는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룸 안에 CCTV가 다 있어요. 확인해 보고 싶으시면 지금 보내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건 제가 돌아가서 삭제할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저는 이 자리에 협박을 하러 나온 게 아니에요. 박 대표님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이건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왔어요.”“은정이한테 말했나요?”박수혁이 물었다.그가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은 여전히 소은정이었다.남유주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밤에 은정 씨와 남편분도 가게에 오셨어요. 최근에 안전에 유의하라고 일러주기는 했지만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박수혁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고개를 떨구었다.그는 당장이라도 사람 한 명 죽일 것 같은 음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혼란스러웠다.여태 억눌렀던 분노와 깊은 실망감이 뒤엉켜 당장 폭발할 것 같았다.어머니라는 사람이 아들의 체면도 배려하지 않고 뒤에서 이런 일을 저질렀는데 누구든 쉽게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적막한 정적이 흐른 뒤, 박수혁은 고개를 들고 날카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CCTV는 사람을 보내 회수할게요. 협조해 주셨으면 합니다.”“물론이죠.”남유주는 흔쾌히 동의했다.“말은 잘 전달했으니 우리 사이의 빚은 이거로 퉁친 거로 하죠.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그녀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뒤돌아섰다.그녀가 문고리를 잡던 순간 박수혁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남유주 씨에게 선물을 하나 드리려고 해요.”남유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박수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어머니에 관한 이 비밀이 어떤 파문을 가져올지 그는 잘
남자는 감정을 억누르며 USB를 집어들었다.남유주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하지만 만약에 진짜라면?그는 주저하다가 그것을 컴퓨터에 연결했다.그리고 어제 일자로 영상을 검색했다.소은정과 전동하가 보이고 이민혜와 얼굴에 칼집 난 남자도 보였다.그리고 내부 영상으로 넘어갔다.그는 저도 모르게 그것을 클릭했다.이민혜가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소은정과 박수혁을 욕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그리고 그 남자가 이민혜의 몸을 만지작거리는 모습도 보였다.“그냥 하나 더 낳으면 되지 않겠어요?”남자의 말에도 이민혜는 충격을 받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했다.아이를 더 낳는다라.하….박수혁은 USB를 뽑아 옆에 있던 재떨이를 들고 힘껏 내리쳤다.성인이 된 이후로 어머니라는 사람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그래도 어머니라고 처우해 준 이유는 그녀가 자신을 낳은 생모이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것 이외에 그녀에게서 받은 게 없었기에 정이 있을 리 만무했다.이번에 박수혁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그는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실망스럽기도 하고 하찮아서 웃음이 나왔다.애를 더 낳는다고?낯선 남자와 낳은 더러운 핏줄로 감히 태한그룹을 손에 넣겠다고?평생 이렇게 치욕적인 감정이 들기는 처음이었다.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허무하고 황당했다.그리고 역겨웠다.한편, 낯선 남자가 전동하의 차에 타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전동하는 감정을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물었다.“박 대표가 보내서 왔어요?”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는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일단 알겠습니다. 박 대표님께 감사인사를 전해주세요.”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차에서 내려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전동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박수혁이 직접 소은정을 찾아가지 않고 그에게로 사람을 보낸 건 조금 의외였다.생각에 잠긴 사이, 하이힐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인
남유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으니까 나가 봐.”남우신 어르신에게는 아들이 한명 있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났다.큰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르신이 방계에서 입적시킨 양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핏줄이라고 남우신은 모든 것을 그에게 물려주었다.결국 남유주의 희생으로 재기에 성공했으나 이 모든 건 큰아버지란 사람을 위해 차린 밥상이었다.그 일로 예전에 그녀는 억울하고 분노했다.친손녀인데 어떻게 방계에서 데려온 양아들보다 대우가 못할까?그녀는 처음에 할아버지가 남존여비 사상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언젠가는 잘못을 깨닫고 자신에게 사과하기를 바랐다.하지만 진실을 알게 된 뒤로 자신이 바라는 결과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생모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인 그녀는 남씨 가문에게는 수치스러운 존재일 테니 남우신이 가문을 그녀의 손에 맡길 리 만무했다.그녀는 이 큰아버지라는 사람보다도 못한 존재였다.며칠 밤잠을 설친 남유주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가서 차갑게 큰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시죠?”“너 귀국한지가 언제인데 어떻게 집에 한 번을 안 올 수가 있어? 너 우릴 가족이라고 생각하긴 하니?”큰아버지는 그녀를 보자마자 비난을 퍼부었다.남유주는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큰아버지는 그녀가 찔려서 아무 말도 못하는 줄 알고 더 신나서 떠들었다.“지금 네 모습을 좀 봐. 집이 있는데 돌아가지도 않고 남편은 밖에서 술만 퍼마시고. 너 남편 생각은 안 해? 이형욱 사생아가 곧 태어난다더라. 너는 수치심도 없어?”“내가 너라면 차라리 해외에서 죽고 안 돌아왔어. 무슨 낯짝으로 여길 돌아와? 너라는 존재 자체가 남씨 가문의 수치야. 이제 어떡해? 이형욱 불륜녀가 아들이라도 낳으면 우리 가문을 거들떠보기라도 할까?”큰아버지는 씩씩거리며 남유주를 향해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남유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환각이 생긴 것처럼 그가 입모양을 벙긋거리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유주는 아까 그들이 복도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래서 갑자기 표정을 바꾼 큰어머니가 가증스럽게 보였다.역시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남유주는 형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뵈러 왔어요.”“할아버지는 안에 계셔. 조금 전에 의식을 찾았는데 널 많이 그리워하셨어. 넌 집 나가서 3년 동안 어떻게 연락 한번을 안 해줘?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큰어머니가 주절주절 떠들자 남유주는 쓴웃음을 지으며 바로 병실로 향했다.“저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차갑지도 그렇다고 친근하지도 않은 태도에 큰어머니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영감님도 돌아가실 마당에 쟤가 뭘 할 수 있다고. 당장 이형욱한테 연락해서 쟤 데려가라고 해요. 마침 다음 프로젝트에 관해 의논도 할겸.”다른 친척들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병실에는 세 사람이 지키고 있었는데 두 명은 남유주도 모르는 사람이고 나머지 한 명은 큰아버지였다.진한 소독약냄새가 코를 찔러서 숨이 막혀왔다.그녀를 본 세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큰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남우신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남유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창백한 얼굴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노인을 바라보았다.바이탈 기계가 불규칙한 그래프를 그리며 움직이고 있었다.병실 온도가 차가웠다.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큰아버지는 욕설을 퍼부으려다가 꾹 참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어떻게 이제야 나타나니? 양심도 없는 년. 할아버지가 널 얼마나 예뻐하셨는데.”남유주는 무표정하게 서서 다가가지도 반박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눈동자가 차가우리만치 고요했다.잠시 후, 병상의 노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큰아버지가 다급히 허리를 숙이며 노인을 불렀다.“아버지, 정신이 좀 드세요? 지금 의사 부를게요.”남우신 노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노인은 떨리는 손을 남유주를 향해 뻗었다.다가오라는 뜻이었다.남은 두 사람도 약간 착잡한 표정으로 남유주를 바라보았다.큰아버지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자리를 비켜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