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이한석이 심각한 표정으로 소리쳤다.“저 안에 도련님께서 계십니다!”박수혁의 차가운 시선이 매섭게 꽂히고 이한석 역시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대표님께서 도련님은 아직 어려서 장례식장에 발을 들이면 안 된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도련님과 놀아드리다 졸리다고 하셔서 저 방에 눕히고 온 게 다입니다. 방문을 닫지도 않았는데 어떻게...”이한석이 부랴부랴 변명을 이어갔지만 박수혁의 귀에는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은정아, 어서 내려와...”누군가 일부러 꾸민 짓인 게 분명하지만 상대 역시 소은정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을 것이다.한편,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맞는 소은정 역시 안색이 안 좋긴 마찬가지였다.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살짝 넘긴 소은정은 난간을 휙 넘어간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밖에서 창문을 여니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밀려나오고 그 사이로 어린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연기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인지 아이는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소은정이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질식해 죽었을 게 분명한 상황.연기가 조금 걷히고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한 소은정의 얼굴이 살짝 흔들렸다.‘저 아이는... 그날 지혁이랑 같이 있던... 박수혁 아들이잖아.’하지만 지금은 그딴 걸 생각할 여유가 없는 상황, 소은정은 망설임없이 손을 내밀었다.“자, 손 잡아.”한편, 이미 지칠대로 지친 박시준은 누군가 그를 구하러 와줬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듯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그의 소리없는 부름에 유일하게 응답해 준 소은정은 그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 박시준은 망설임없이 손을 내밀었다.소은정이 바로 아이를 안아 방에서 꺼내고 그녀가 빨리 내려올 수 있도록 사다리가 배치되었다.그리고 그 사다리를 잡고 있는 사람은 바로 박수혁이었다.고개를 든 박수혁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내려와. 조심해...”하지만 아이를 안고 내려갈 순 없는 노릇.“자, 네가 먼저 내려가자?”하지만 너무 겁을 먹은 건지 아이는
하지만 소은정이 마땅한 핑계를 생각하던 그때, 손재은이 굉장히 유혹적인 미끼를 던졌다.“내가... 내가 친구가 없어서 그래요. 지금 나한테 와주면 어떻게든 보답할게요. 이혼하고 구태정 회사 지분 받으면 그 지분 은정 씨한테 팔게요. 어때요?”손재은도 물색없는 사람은 아니니 두 사람의 사이가 그 정도로 친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 던진 제안이기도 했다.역시나, 방금 전까지 핑계를 생각하던 소은정이 벌떡 일어났다.“별말씀을요. 저도 여자인데 재은 씨 마음 백 번 이해하죠. 정말이에요...”부리나케 옷장에서 베이지색 원피스, 얇은 카디건을 꺼내 대충 걸친 소은정이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잠시 후, 손재은의 집에 도착한 소은정은 지나치게 화려한 집안 인테리어에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세상에... 뭐가 이렇게 많아. 발 디딜 틈이 없네.’힐끔 시선을 돌리니 저쪽 테이블에는 현금 다발이 가득 쌓여있기까지 했다.소은정이 조잡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집안을 둘러보고 있던 그때, 빨개진 눈의 손재은이 그녀를 맞이했다.평소 누구보다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던 그녀였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왔어요? 어서 앉아요.”“제 도움이 필요하신가 봐요?”소파에 앉은 소은정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은정 씨랑 얘기 좀 나누고 싶어서요. 이 바닥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은정 씨니까...”분명 칭찬이었지만 소은정은 왠지 기쁘지 않았다.“그래서... 이혼하기로 한 거예요?”욕실에서 대충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낸 손재은이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아니요. 합의 이혼은 물 건너 간 것 같고. 그래서 소송 걸려고요.”“정말 이혼하기로 결심했나 보네요.”“반평생 바보처럼 살았잖아요. 남은 생은 당당하게 살고 싶어요. 그 자식 이제 공식적인 장소에까지 내연녀를 대동하고 다니기 시작하는데... 앞으로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요. 아, 아까 은정 씨한테 한 말... 은정 씨 불러
한편, 빨개진 눈으로 다가오는 손재은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입을 벙긋거리다 결국 고개를 돌렸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 몰라서였다.힘이 빠진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던 손재은이 다시 벌떡 일어서더니 누군가에제 전화를 걸었다.“그래요. 방금 전에 나갔어요. 분명 그 년 만나러 갔겠죠 뭐. 이번엔 무조건 증거 남겨야 해요.”통화를 마친 손재은이 소은정을 바라보았다.“같이 가줄래요?”이미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려던 소은정이 멈칫했다.“제가... 가도 되는 자리일까요?”“당연하죠. 생각 같아선 아는 사람 다 불러서 가고 싶은걸요. 그 연놈들이 개망신하는 꼴 나 혼자 보는 건 너무 아깝지 않겠어요?”손재은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으휴, 그 지분만 아니었으면...’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손해 볼 것도 없는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이 싸움 구경이니 말이다. 물론 운전이 서툰 손재은 대신 운전대를 잡았을 땐, 내가 운전기사 노릇까지 해야 하나는 생각에 잠깐 현타가 왔지만 말이다.잠시 후, 차량은 고급 빌라 주차장에 도착했다.보안이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해 연예인들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했다.“사설 탐정한테 맡긴 거예요?”손재은이 물었다.“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결혼하기 전에 내 운전기사로 일했던 사람인데... 지금은 기사 말고 나 대신 구태정을 감시하는 일만 하고 있으니까.”‘역시... 언제 어디서나 자기 사람 한 명쯤은 남겨둬야 한다니까...’고개를 끄덕이며 소은정이 생각했다.약 5분 후, 손재은의 벨소리가 울리고 짧은 통화를 마친 그녀가 말했다.“곧 나온대요.”그녀의 말대로 아파트 문 앞에 익숙한 남녀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이혼은 안 된다며 싹싹 빌 때는 언제고 바로 문상아를 만나러 오는 꼴을 보니 다시 분노가 치솟는지 손재은의 숨소리가 차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한편 소은정은 뭔가 이상한 포인트를 발견하곤 미간을 찌푸렸다.‘저번 날엔 저녁
‘윽, 진짜 일 같은 거 안 하고 은정 씨랑만 함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몇 백번을 봐도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던 전동하가 얇은 담요를 건네주며 말했다.“기다려요. 일 끝나면 같이 밥 먹게.”말을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전동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은정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역시 놀려먹는 재미가 있단 말이야...’곧 휴식실로 들어간 소은정의 뒤로 전동하의 불평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음부터 노크하고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오세요...”‘괜히 직원한테 화풀이는...’이런 생각과 함께 소은정은 스르륵 잠이 들고 만다.시커먼 휴식실에서 눈을 뜬 소은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아, 나 동하 씨 사무실에서 잠들었었지...’밖에 있는 사무실에선 여전히 일하는 중인지 전동하의 목소리가 들려왓다.침대에서 내려온 소은정이 창밖을 내려다보았다.가로등, 네온사인 빛으로 점철된 거리는 마치 거대한 드래곤처럼 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었다.한편, 통화를 마치고 휴식실로 들어온 전동하는 텅 빈 침대를 보고 흠칫하다 창문 쪽에 서 있는 소은정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가 불을 밝히고 따뜻한 빛이 휴식실을 가득 채웠다.“드디어 깼네요. 그렇게 자고 밤에 더 잘 수 있겠어요?”소은정이 기지개를 켜며 애교를 부렸다.“그럼요. 동하 씨가 재워주면 충분히 잘 수 있어요.”소은정을 번쩍 안아 침대로 옮긴 전동하가 맨발로 바닥을 걸어 살짝 차가워진 그녀의 발을 덥혀주었다.“싫은데요. 밤새 안 재울 건데요.”전동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소은정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참나, 하여간 눈만 마주치면 그 생각이지...’잠시 후, 옷가지를 챙겨입은 두 사람이 사무실을 나서고... 주위를 둘러보던 소은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뭐지? 불은 다 켜뒀는데 야근하는 직원 한 명 없네.’“직원들은요?”그녀의 질문에 전동하가 시계를 가리켰다.“다들 퇴근했죠.”“세상에. 아무리 그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음에도 아직 박수혁 그 남자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인 전동하였다.한편, 소은정은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흠칫하다 피식 웃었다.“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말 그대로 가설일 뿐이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다시 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난 절대 손재은처럼 살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느니 내가 먼저 버릴 거라고. 하긴, 동하 씨는 지금 워낙 날 사랑하니까... 적어도 20년 안엔 마음이 바뀔 것 같지 않긴 하지만. 그리고 그 뒤는...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알아서 긍정적인 결론에 이른 소은정과 달리 그녀의 애매한 대답에 전동하는 여전히 착잡할 따름이었다.다른 생각을 하다 보니 우회전을 해야 할 골목을 그대로 지나치고...흠칫하던 소은정이 전동하의 손을 살짝 흔들었다.“뭐예요. 길 잘못 들었잖아요.”“아, 내가 깜박했는데... 오늘 친구가 운영하는 온천 스파 예약해 뒀어요. 요즘 은정 씨 여러모로 힘들었잖아요. 따뜻한 온천물에 몸이라도 푹 담궈요.”“그럼 새봄이는...”집에서 엄마, 아빠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딸 생각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어차피 곧 잠들 시간인데요 뭘...”‘미안, 딸. 오늘은 아빠가 엄마 좀 빌려갈게...’그렇게 한참을 더 달린 전동하의 차는 온천 리조트 앞에 멈춰 선다.서늘한 바람에 몸을 부르르 떠는 소은정을 위해 전동하가 항상 차에 두는 숄을 덮어주었다.이때 전동하의 친구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형수님, 저희 가게 방문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여기저기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하는데 여기 이런 온천 스파가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소은정이 싱긋 웃었다.“아직 대외적으로 개방되지 않은 가게예요. 뭐, 어떻게든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많지만.”전동하의 설명에 소은정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그는 다급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아, 참고로 나도 처음 오는 거예요.”
소은정의 가시 돋친 말에 어색하게 웃던 김하늘이 그녀에게 눈치를 주었다.‘휴... 하늘이 앞이니까 내가 참는다.’“농담이에요. 저도 나름 직원들의 워라벨에 신경 많이 쓰고 있어요. 뭐,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그녀의 말에 자신의 무례함을 인지한 임유경 역시 바로 사과했다.“아, 죄송합니다. 혹시 아까 제가 너무 차가웠나요?”임유경이 핸드백에서 명함을 꺼내며 다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쭉 해외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홍익로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법률적으로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방금 전까지 시큰둥하다 갑자기 또 변한 임유경의 태도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뭐지? 참 알다가도 모를 캐릭터네.’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명함을 받아든 소은정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알겠습니다. 홍익 로펌은 A시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로펌이죠. 앞으로 저희 그룹과도 함께 일할 기회가 많을 것 같은데요?”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자 김하늘 역시 말을 이어갔다.“그럼. 유경 씨는 국제 토론대회에서 대상까지 탄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우리도 이번에 유경 씨 모시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그녀를 띄워주는 김하늘의 화술에 임유경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엘리트니 뭐니 해도 임유경은 어디까지나 신인 변호사일 뿐, 홍익로펌에서 성장하기 위해선 김하늘처럼 A시 인맥을 꽉 잡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게다가 유명세와 달리 항상 겸손하고 친절한 김하늘의 태도도 마음에 들어 접대까지 따라오게 된 것이었다.역시나 방금 전, 귀인을 소개해 주겠다는 김하늘의 말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하니 그 귀인이 소은정일 줄이야.‘저 사람은... 좀 불편한데...’임유경의 시선이 소은정과 김하늘 사이를 배회했다.이 바닥이 너무 좁은 건지, 소은정의 영향력이 큰 건지.가는 곳마다 소은정의 얘기가 들리는 통에 괜히 소은정이 미워지기 시작한 임유경이었다.그녀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소은정을 칭찬하는 말에도 네까짓게 소은
하지만 그녀의 부름에도 전동하는 여전히 묵묵부답.정말 잘못 들어온 게 아닐까 싶어 룸 번호를 확인하려던 그때, 안쪽에서 푸흡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난 가버렸는 줄 알았는데 다시 왔네요?”전동하의 목소리였다.적어도 방을 착각한 건 아니란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소은정이 말했다.“나도 바로 들어갈게요.”부랴부랴 옷을 갈아입은 소은정이 온천실로 들어가자 뜨거운 열기가 물씬 풍겨오며 그녀의 모공을 확 열어주었다.원목 재질의 바닥, 주위의 인테리어는 흰 베일로 가려져있어 눈밭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보석처럼 잘 다듬어진 조약돌길을 밟으며 소은정은 천천히 안쪽으로 다가갔다.그런데...‘뭐야? 안개가 너무 심해서 앞이 잘 안 보이네. 동하 씨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뜨거운 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걷어내며 앞으로 이동하던 그때, 물 속에서 팔이 쑥 나오더니 그녀를 물속으로 끌어당겼다.“으앗!”자연스레 그녀를 꼭 껴안은 전동하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인사만 하고 온다면서요. 난 두 사람이 뭐 야식이라도 먹으러 나간 줄 알았네.”“알잖아요. 여자들끼리 모이면 수다가 끊이지 않는 거.”소은정의 손가락이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전동하의 매끈한 쇄골을 스윽 훑고 지난다.“참나.”여전히 입을 삐죽거리던 전동하가 옆에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마음에 드는 거 있나 봐봐요.”전동하의 말에 상자를 열어보니 여러 가지 향의 오일이며 온천탕에 뿌릴 수 있는 마른 꽃잎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상자의 가장 밑바닥에는 오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콘돔까지.모든 룸에 기본으로 제공되는 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을 위한 친구의 특별 서비스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내용물을 확인한 소은정의 볼이 후끈 달아올랐다.역시나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전동하가 슬그머니 다가왔지만 소은정은 자연스레 그를 밀어내며 장미 꽃잎이 담긴 주머니를 가리켰다..“됐어요. 이거면 돼요.”...그렇게 두 사람은 따뜻한
한편, 전동하는 소은정에게 새 잠옷을 입혀준 뒤 조심스레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잠시 후 들어온 의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너무 오래 뜨거운 탕에 계셔서 잠깐 어지러우셨던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서 너무 격렬하게 움직이신 게 아닐지...”의사의 완곡한 설명에 전동하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고... 침대에 누워있는 소은정은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잠시 후, 직원이 내온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소은정이 천천이 일어나 침대맡에 기댄다.“휴, 아까 그런 거 아니라고 해명이라도 좀 하지. 나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잖아요.”소은정이 전동하를 흘겨보았다.“뭘 해명해요. 나도 답답해요. 차라리 뭐라도 하고 그런 소릴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내가 아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흠, 지금 환자한테 소리지르는 거예요?”어이없다는 한숨을 짓던 전동하가 물과 함께 도착한 물약을 건넸다.“이거 먹으면 많이 좋아질 거래요. 내가 먹여줄게요. 아...”약이 목구멍을 넘어가고 생각보다 훨씬 더 쓴 약맛에 소은정은 전동하를 홱 밀쳐버린다.이미 입으로 들어온 약을 뱉지도 못하고 억지로 삼켜버리는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풉, 이럴 때보면 꼭 애 같다니까.’“오, 명약인데요? 바로 정신차리는 것 좀 봐.”전동하가 괜히 약병을 자세히 살피며 깐족댔다.어떻게든 꾸역꾸역 약을 다 마신 소은정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나... 오렌지 먹고 싶어요.”‘이 시간에?’뜬금없는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전동하는 자연스레 휴대폰을 꺼냈다.“어디 마트 걸로 사올까요?”“그냥 오렌지면 돼요. 입이 너무 쓴 것 같아서.”“잠깐만요.”전동하가 방을 나서자 매니저가 바로 그를 맞이했다.“대표님, 사모님은 괜찮으시죠? 저희 서비스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아니에요. 저희가 탕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 건데요 뭐. 온천욕은 즐거웠습니다. 아, 그런데 혹시 오렌지 있나요? 와이프가 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