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말 속에 뼈가 들어있는 것 같아 흠칫하던 전동하가 어깨를 으쓱했다.“글쎄요.”하지만 소은정은 애매한 대답으로는 절대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질문을 이어갔다.“동하 씨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지금 재은 씨는 구태정 대표의 외도 증거를 전부 잡고 있어요. 구태정 대표, 돈 한 푼 못 챙겨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요. 아니지. 외도까지 저질렀으니 위자료를 지급해야 할지도 몰라요. 지금 구태정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도 자금적으로 위기니... 재은 씨 친정 도움이 없다면 아마 곧 파산하겠죠. 지금 이혼하는 건 구태정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에요. 만약 동하 씨가 똑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거예요?”진심으로 궁금해진 소은정이 눈을 반짝이고 전동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크, 괜히 따라왔다. 괜히 나한테까지 불똥이 튀었잖아.’“은정 씨, 날 저런 남자랑 비교하지 말아줘요. 그런 만약에는 아예 성립이 안 된다고요. 그리고 난 재은 씨 이혼하는 거 찬성이에요. 재산 분할 한 푼도 안 해주는 것도요.”그녀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한 건 아니었지만 전동하의 대답이 꽤 마음에 든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던 소은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아까 재은 씨... 귀걸이 하나 낙찰받는데도 망설이는 걸 보면... 경제적인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던데요. 반면 아까 구태정 대표가 탄 차, 신상 맞죠? 그렇다는 건... 구태정 대표가 몰래 재은 씨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는 거겠죠?”“역시, 우리 은정 씨 똑똑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문상아를 힐끗 바라본 소은정이 기지개를 켰다.“이제 들어가요. 이제 곧 경매 시작이에요.”드디어 무거운 화제에서 벗어난 전동하가 잔뜩 신난 얼굴로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오늘 핑크 다이아몬드도 경매품으로 나온다던데. 우리가 낙찰받을까요? 브로치로 만들면 예쁠 것 같은데...”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두 사람이 경매장에 들어서고...좌석을 확인한
치열한 입찰 경쟁속에서도 전동하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미간 사이에서 느껴지는 여유는 마치 이 A시에서 박수혁과 돈으로 배틀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한편, 입찰가가 100억까지 치솟자 소은정은 겨우 브로치를 만드는 다이아몬드에 100억을 퍼붓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그럼에도 아직 차분한 소은정과 달리 임유경은 불안한 듯 자꾸만 박수혁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그녀의 말 한마디가 박수혁의 승부욕을 불태운 게 아닌가 싶어 죄책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임유경이 박수혁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수혁 씨, 그만해요. 저 다이아몬드... 이쁘긴 하지만 그 정도로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에요.”‘게다가 오빠가 수혁 씨한테서 100억짜리 다이아몬드를 뜯어낸 걸 알면 정말 화낼지도 모른다고요.’하지만 박수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그녀를 힐끗 돌아보았을 뿐, 다시 경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다이아몬드를 낙찰받기 전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한 단호한 표정에 임유경은 불안하면서도 왠지 모를 설렘과 희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경매 분위기가 점점 고조에 이를 무렵, 줄곧 침묵을 유지하던 소은정이 문득 입을 열었다.“200억.”오늘의 최고가 달성에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소은정이 나섰으니 전동하는 당연하다는 듯 물러섰고 박수혁마저도 침묵을 유지했다.낙찰을 의미하는 망치 소리 세 번과 함께 오늘 경매의 주인공, 핑크 다이아몬드는 소은정이 낙찰받게 되었다.MC의 안내에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간 소은정은 다이아몬드와 함께 기념 촬영을 진행했다. 여유롭게 사람들의 시선을 만끽하는 그녀를 임유경은 동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그 뒤로 다시 경매가 이어지고 박수혁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평범한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를 낙찰받았다.다이아몬드반지?박수혁의 행동에 여성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집중되었다.반지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결혼, 프러포즈.설마... 박수혁 대표가 결혼이라도 하려는 건가?
순간, 임유경은 머리에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그래서 오늘 수혁 씨가...’소은정의 등장과 함께 오늘 어딘가 이상했던 박수혁의 모습들이 퍼즐처럼 맞춰졌다.애초에 다이아몬드 원석을 낙찰받으려고 했던 것도 그녀의 예쁘다는 말 때문이 아니라 소은정에게 주고 싶었다는 사실 역시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그래서... 소은정 대표가 입찰하니까 바로 물러섰던 거야. 더 끼어들면 소은정 대표가 화낼까 봐 무서웠나? 그런데 소은정 대표는 유부녀에 애까지 있잖아. 그런데도... 그런데도 좋은 거야?’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낸 임유경이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떨리는 손과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오빠, 수혁 씨랑 소은정 대표... 두 사람 무슨 사이야?”“...”그녀의 질문에 잠깐 침묵하던 임춘식이 대답했다.“유경아, 넌 아직 귀국한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는 게 많을 거야. 어쨌든... 몰라도 되는 일이야. 알려고도 하지 마.”이 말을 마지막으로 임춘식은 전화를 끊어버리고 영혼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는 그녀의 곁으로 박수혁의 기사가 다가왔다.“저택으로 모실까요?”하지만 임유경은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다시 소은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비서가 건넨 상자를 힐끗 바라보던 소은정은 그저 고맙다고 말한 뒤 상자를 받지 않고 창문을 닫아버렸다.난처한 얼굴의 비서가 안절부절 못하며 자리를 지키는 사이 대표들과 인사를 마친 전동하가 다시 돌아오고 두 사람을 태운 차는 유유히 주차장을 나섰다.그제야 시선을 거둔 임유경이 기사를 향해 애써 웃어보였다.“그럼... 부탁드릴게요.” 차에 탄 임유경은 밀려드는 피곤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혼자 설레였다가 혼자 실망하고 혼자 충격받고.오늘 경매는 임유경에게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행사였으니까.한편, 휴대폰을 바라보던 소은정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뭐가 그렇게 재밌어요?”“유라가 돌아온대요.”전동하의 질문에 소은정이 대답했다.“C시 지사를 아주 꽉 잡기 전
이때 이한석이 심각한 표정으로 소리쳤다.“저 안에 도련님께서 계십니다!”박수혁의 차가운 시선이 매섭게 꽂히고 이한석 역시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대표님께서 도련님은 아직 어려서 장례식장에 발을 들이면 안 된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도련님과 놀아드리다 졸리다고 하셔서 저 방에 눕히고 온 게 다입니다. 방문을 닫지도 않았는데 어떻게...”이한석이 부랴부랴 변명을 이어갔지만 박수혁의 귀에는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은정아, 어서 내려와...”누군가 일부러 꾸민 짓인 게 분명하지만 상대 역시 소은정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을 것이다.한편,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맞는 소은정 역시 안색이 안 좋긴 마찬가지였다.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살짝 넘긴 소은정은 난간을 휙 넘어간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밖에서 창문을 여니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밀려나오고 그 사이로 어린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연기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인지 아이는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소은정이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질식해 죽었을 게 분명한 상황.연기가 조금 걷히고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한 소은정의 얼굴이 살짝 흔들렸다.‘저 아이는... 그날 지혁이랑 같이 있던... 박수혁 아들이잖아.’하지만 지금은 그딴 걸 생각할 여유가 없는 상황, 소은정은 망설임없이 손을 내밀었다.“자, 손 잡아.”한편, 이미 지칠대로 지친 박시준은 누군가 그를 구하러 와줬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듯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그의 소리없는 부름에 유일하게 응답해 준 소은정은 그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 박시준은 망설임없이 손을 내밀었다.소은정이 바로 아이를 안아 방에서 꺼내고 그녀가 빨리 내려올 수 있도록 사다리가 배치되었다.그리고 그 사다리를 잡고 있는 사람은 바로 박수혁이었다.고개를 든 박수혁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내려와. 조심해...”하지만 아이를 안고 내려갈 순 없는 노릇.“자, 네가 먼저 내려가자?”하지만 너무 겁을 먹은 건지 아이는
하지만 소은정이 마땅한 핑계를 생각하던 그때, 손재은이 굉장히 유혹적인 미끼를 던졌다.“내가... 내가 친구가 없어서 그래요. 지금 나한테 와주면 어떻게든 보답할게요. 이혼하고 구태정 회사 지분 받으면 그 지분 은정 씨한테 팔게요. 어때요?”손재은도 물색없는 사람은 아니니 두 사람의 사이가 그 정도로 친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 던진 제안이기도 했다.역시나, 방금 전까지 핑계를 생각하던 소은정이 벌떡 일어났다.“별말씀을요. 저도 여자인데 재은 씨 마음 백 번 이해하죠. 정말이에요...”부리나케 옷장에서 베이지색 원피스, 얇은 카디건을 꺼내 대충 걸친 소은정이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잠시 후, 손재은의 집에 도착한 소은정은 지나치게 화려한 집안 인테리어에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세상에... 뭐가 이렇게 많아. 발 디딜 틈이 없네.’힐끔 시선을 돌리니 저쪽 테이블에는 현금 다발이 가득 쌓여있기까지 했다.소은정이 조잡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집안을 둘러보고 있던 그때, 빨개진 눈의 손재은이 그녀를 맞이했다.평소 누구보다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던 그녀였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왔어요? 어서 앉아요.”“제 도움이 필요하신가 봐요?”소파에 앉은 소은정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은정 씨랑 얘기 좀 나누고 싶어서요. 이 바닥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은정 씨니까...”분명 칭찬이었지만 소은정은 왠지 기쁘지 않았다.“그래서... 이혼하기로 한 거예요?”욕실에서 대충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낸 손재은이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아니요. 합의 이혼은 물 건너 간 것 같고. 그래서 소송 걸려고요.”“정말 이혼하기로 결심했나 보네요.”“반평생 바보처럼 살았잖아요. 남은 생은 당당하게 살고 싶어요. 그 자식 이제 공식적인 장소에까지 내연녀를 대동하고 다니기 시작하는데... 앞으로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요. 아, 아까 은정 씨한테 한 말... 은정 씨 불러
한편, 빨개진 눈으로 다가오는 손재은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입을 벙긋거리다 결국 고개를 돌렸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 몰라서였다.힘이 빠진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던 손재은이 다시 벌떡 일어서더니 누군가에제 전화를 걸었다.“그래요. 방금 전에 나갔어요. 분명 그 년 만나러 갔겠죠 뭐. 이번엔 무조건 증거 남겨야 해요.”통화를 마친 손재은이 소은정을 바라보았다.“같이 가줄래요?”이미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려던 소은정이 멈칫했다.“제가... 가도 되는 자리일까요?”“당연하죠. 생각 같아선 아는 사람 다 불러서 가고 싶은걸요. 그 연놈들이 개망신하는 꼴 나 혼자 보는 건 너무 아깝지 않겠어요?”손재은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으휴, 그 지분만 아니었으면...’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손해 볼 것도 없는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이 싸움 구경이니 말이다. 물론 운전이 서툰 손재은 대신 운전대를 잡았을 땐, 내가 운전기사 노릇까지 해야 하나는 생각에 잠깐 현타가 왔지만 말이다.잠시 후, 차량은 고급 빌라 주차장에 도착했다.보안이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해 연예인들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했다.“사설 탐정한테 맡긴 거예요?”손재은이 물었다.“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결혼하기 전에 내 운전기사로 일했던 사람인데... 지금은 기사 말고 나 대신 구태정을 감시하는 일만 하고 있으니까.”‘역시... 언제 어디서나 자기 사람 한 명쯤은 남겨둬야 한다니까...’고개를 끄덕이며 소은정이 생각했다.약 5분 후, 손재은의 벨소리가 울리고 짧은 통화를 마친 그녀가 말했다.“곧 나온대요.”그녀의 말대로 아파트 문 앞에 익숙한 남녀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이혼은 안 된다며 싹싹 빌 때는 언제고 바로 문상아를 만나러 오는 꼴을 보니 다시 분노가 치솟는지 손재은의 숨소리가 차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한편 소은정은 뭔가 이상한 포인트를 발견하곤 미간을 찌푸렸다.‘저번 날엔 저녁
‘윽, 진짜 일 같은 거 안 하고 은정 씨랑만 함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몇 백번을 봐도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던 전동하가 얇은 담요를 건네주며 말했다.“기다려요. 일 끝나면 같이 밥 먹게.”말을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전동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은정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역시 놀려먹는 재미가 있단 말이야...’곧 휴식실로 들어간 소은정의 뒤로 전동하의 불평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음부터 노크하고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오세요...”‘괜히 직원한테 화풀이는...’이런 생각과 함께 소은정은 스르륵 잠이 들고 만다.시커먼 휴식실에서 눈을 뜬 소은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아, 나 동하 씨 사무실에서 잠들었었지...’밖에 있는 사무실에선 여전히 일하는 중인지 전동하의 목소리가 들려왓다.침대에서 내려온 소은정이 창밖을 내려다보았다.가로등, 네온사인 빛으로 점철된 거리는 마치 거대한 드래곤처럼 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었다.한편, 통화를 마치고 휴식실로 들어온 전동하는 텅 빈 침대를 보고 흠칫하다 창문 쪽에 서 있는 소은정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가 불을 밝히고 따뜻한 빛이 휴식실을 가득 채웠다.“드디어 깼네요. 그렇게 자고 밤에 더 잘 수 있겠어요?”소은정이 기지개를 켜며 애교를 부렸다.“그럼요. 동하 씨가 재워주면 충분히 잘 수 있어요.”소은정을 번쩍 안아 침대로 옮긴 전동하가 맨발로 바닥을 걸어 살짝 차가워진 그녀의 발을 덥혀주었다.“싫은데요. 밤새 안 재울 건데요.”전동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소은정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참나, 하여간 눈만 마주치면 그 생각이지...’잠시 후, 옷가지를 챙겨입은 두 사람이 사무실을 나서고... 주위를 둘러보던 소은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뭐지? 불은 다 켜뒀는데 야근하는 직원 한 명 없네.’“직원들은요?”그녀의 질문에 전동하가 시계를 가리켰다.“다들 퇴근했죠.”“세상에. 아무리 그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음에도 아직 박수혁 그 남자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인 전동하였다.한편, 소은정은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흠칫하다 피식 웃었다.“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말 그대로 가설일 뿐이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다시 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난 절대 손재은처럼 살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느니 내가 먼저 버릴 거라고. 하긴, 동하 씨는 지금 워낙 날 사랑하니까... 적어도 20년 안엔 마음이 바뀔 것 같지 않긴 하지만. 그리고 그 뒤는...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알아서 긍정적인 결론에 이른 소은정과 달리 그녀의 애매한 대답에 전동하는 여전히 착잡할 따름이었다.다른 생각을 하다 보니 우회전을 해야 할 골목을 그대로 지나치고...흠칫하던 소은정이 전동하의 손을 살짝 흔들었다.“뭐예요. 길 잘못 들었잖아요.”“아, 내가 깜박했는데... 오늘 친구가 운영하는 온천 스파 예약해 뒀어요. 요즘 은정 씨 여러모로 힘들었잖아요. 따뜻한 온천물에 몸이라도 푹 담궈요.”“그럼 새봄이는...”집에서 엄마, 아빠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딸 생각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어차피 곧 잠들 시간인데요 뭘...”‘미안, 딸. 오늘은 아빠가 엄마 좀 빌려갈게...’그렇게 한참을 더 달린 전동하의 차는 온천 리조트 앞에 멈춰 선다.서늘한 바람에 몸을 부르르 떠는 소은정을 위해 전동하가 항상 차에 두는 숄을 덮어주었다.이때 전동하의 친구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형수님, 저희 가게 방문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여기저기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하는데 여기 이런 온천 스파가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소은정이 싱긋 웃었다.“아직 대외적으로 개방되지 않은 가게예요. 뭐, 어떻게든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많지만.”전동하의 설명에 소은정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그는 다급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아, 참고로 나도 처음 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