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쥔 전동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그는 낮은 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했다.소은호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다급히 물었다.“은정이 옆에 있어? 내 동생 좀 바꿔줘.”고요하던 전동하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입을 열었다.“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어요. 형님, 저 지금 병원에 있어요.”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지금까지 있었던 상황을 간략해서 설명했다.사실 가족에게 모두 털어놓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하지만 그가 소은정을 데리고 그녀의 가족들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알게 될 사실들이었다.만약 그가 일부러 사실을 숨기면 어렵게 그녀의 가족들과 쌓은 신뢰감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된다.소은정이 사랑하는 가족들이니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그는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소은호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러니까… 내 동생이 거기서 죽을 뻔했다는 거잖아?”전동하는 침묵했다.“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지금 사람 보낼 테니까.”“형님, 잠시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여긴 안전해요. 윤재수의 세력이 닿지 않는 곳이거든요.”전동하는 미간을 마사지하며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제대로 끝장을 내지 않으면 그 인간들은 계속 은정 씨를 노릴 거예요.”한참 침묵하던 소은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그럼 우리 막내 좀 부탁해.”“네.”잠시 후, 소은호는 한결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람 한 명 때문에 인생 망칠 일은 하지 마. 박수혁은 주목받는 존재야. 자네 손에서 변을 당하면 안 돼. 둘 다 위험해질 수 있어.”전동하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짧게 알겠다고 했다.소은호는 그제야 안심하고 전화를 끊었다.박수혁 얘기가 나왔을 때 이를 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전동하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쯤 현장에 있던 모두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소은호 자신도 박수혁이 밉고 싫었다. 동생과 그의 가
잠시 후.소은정은 뒤늦게 그 여자가 안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흔들었다.“그런 일은 없었어요.”전동하의 표정이 살짝 풀리더니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쓰다듬으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다행이고요. 얼마나 서럽고 두려웠겠어요? 내가 놈들을 혼내줄게요.”소은정은 위로를 담은 그의 한 마디에 참았던 설움이 터져나왔다.“그 별장에 큰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대문 근처도 가지 못했어요.”전동하는 눈을 깜빡이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무서웠겠어요. 이제 다 지나갔어요. 앞으로 그 짐승을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소은정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어차피 다시 그 섬에 갈 일도 없었다.앞으로 어떤 섬이든 가지 않을 것이다.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정말 다사다난했던 나날들이었다.“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 섬 좀 팔아줘요!”소은정이 거금을 주고 구입한 열대 지구에 근접한 작은 섬이었다.아직 가보지도 못했는데 이제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매번 위험에 빠질 때마다 장소가 바다나 섬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소은정은 평생 육지를 벗어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찬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바다든 섬이든 아름답지만 그래도 나고 자란 고향이 가장 안전하고 안정감 있다는 말!전동하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한번 가보고 싶어했잖아요?”소은정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안 갈래요. 이제 섬에는 발을 들이지 않기로 했어요!”전동하는 그제야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조금 황당하기는 하지만 트라우마가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해할 수 있었다.“그래요. 가지 말죠. 그럼 부동산 매니저 찾아서 판매할게요.”소은정은 그에게 신신당부했다.“나 그거 4천억 주고 구매했어요. 밑지는 장사는 안 해요. 전부 다 막내오빠의 피 같은 돈이라고요.”전동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그녀가 빨리 기운을 차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그가 말했다.“사실 많이 비싸게
잠시 후, 도시락이 배달되었다.전부 소은정이 평소에 즐겨먹던 한국식 반찬이었다.전동하는 움직일 수 없는 그녀를 위해 한술 한술 떠먹여 주었다. 반찬 냄새가 느껴지자 갑자기 식욕이 확 돋았다.그녀를 배불리 먹인 뒤에야 전동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소은정은 뒤늦게 그가 한술도 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어서 밥 먹으러 가요.”조금 전까지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던 사람이었다.전동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나가는 게 귀찮아요.”그는 그녀가 먹다 남긴 음식을 게눈 감추듯 해치워 버렸다.그녀는 전동하가 밥을 다 먹고 커피까지 타오는 모습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밤을 새우겠다는 건가?그녀는 인상을 쓰며 물었다.“밤에 무슨 커피를 마셔요?”전동하가 움찔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정신 좀 차리려고요.”“마시지 말아요. 그러다가 쓰러져요.”소은정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소찬식을 닮아 건강을 살뜰히 챙기는 그녀였기에 주변 사람이 건강을 신경 쓰지 않는 게 가장 안타까웠다. 전동하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그녀에게 애원의 눈빛을 보냈다.이거 한잔 마신다고 건강을 해칠 정도는 아닐 텐데….하지만 소은정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그는 다 탄 커피를 다시 쏟아버렸다.“알았어요. 냄새만 맡고 버릴게요.”소은정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며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줘요. 날 어떻게 찾았어요?”“박수혁의 배를 쫓아왔어요.”“왜 하필 박수혁이에요?”“이번 납치 사건이 단순한 보복 같지는 않았어요. 윤재수의 동향은 파악하고 있었거든요. 윤재수를 제외하면 누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당신에게 접근했다고 봤죠. 그런데 나나 가족들한테 연락이 온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렇다면 박수혁일 거라 추정했죠.”박수혁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전동하는 말투가 저도 모르게 차가워졌다.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평소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표정이었다.“그래서 사람을 보내 박수혁을 감시했나요?”전동하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전동하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있는 경호원에게 시선을 돌렸다.“임재준, 넌 사모님을 잘 지켜.”임재준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전동하는 선장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리고 한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췄다.리비아는 사실 전쟁이 많은 국가였기에 병원마다 방공호가 설치되어 있었다.전동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방공호로 내려갔다. 문앞을 그의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다.그들은 전동하를 보자 공손하게 인사했다.안으로 들어간 전동하는 맨 안쪽에 있는 방으로 갔다.“문 열어.”경호원이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안으로 들어서자 습기 냄새로 가득했다. 환풍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남자는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는데 표정은 살아 있었다.그의 몸 곳곳에 상처가 나 있어서 더욱 초라해 보였다.전동하는 다가가서 음산한 눈빛으로 남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박 대표, 좀 괜찮아요?”박수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냉랭한 눈빛으로 전동하를 노려보며 대답했다.“죽을 정도는 아닙니다.”그 말을 들은 전동하가 피식 웃었다.“그럼 다행이네요.”그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소은호는 그와 통화하면서 일부러 박수혁의 신분을 말하며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지 말라고 경고했다.어렵게 잡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전동하는 답답했다.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박 대표, 후회해요?”박수혁은 움찔하더니 날이 선 말투로 물었다.“소은정은 깨어났나요?”전동하의 경호원들이 번갈아가며 그를 고문했지만 박수혁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그는 묶인 상태도 아니었는데 경호원들이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전동하는 일부러 그의 체력을 소모하게 하려고 더 세게 고문했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박수혁은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의 그는 아주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안색은 피곤해 보였고 상처도 심각해 보였다.전동하의 여유로운 표정과는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어두운 불빛 아래, 전동
박수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민혜가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이민혜도 그의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을 느꼈는지 소리를 낮추었다.다음 날.따뜻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소은정의 얼굴을 비추었다.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자면서 달콤한 꿈을 꾼 것 같았다.그녀는 습관처럼 손을 내밀었고 옆에 있는 딱딱한 팔에 손을 얹었다.고개를 돌려 보니 전동하는 아직 자고 있었다.그는 깊이 잠들었는지 그녀가 뒤척이는데도 깨지 않았다.제대로 된 잠을 자본 적이 얼마만인지 모른다.소은정은 가슴이 아팠다.그는 인상을 쓰고 있었는데 꿈을 꾸는 것 같았다.그녀는 손을 내밀어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잘생긴 얼굴이 반쪽이 됐네.’소은정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한잠 자고 일어나자 흉통이 조금 나아진 느낌이 들었고 기침도 덜했다.물론 갈비뼈 쪽은 아직도 통증이 조금 있었고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남자도 습관처럼 그녀를 품에 안았지만 눈을 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그렇게 한참 있는데 입구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소은정은 아직 침대를 내려 걸을 수 없었기에 낮게 기침했다.밖에서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더니 전동하를 찾았다.“대표님?소은정은 상대에게 물었다.“무슨 일이시죠?부하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는 밖에서 공손한 태도로 그녀에게 말했다.“사모님, 소은호 대표님께서 연락이 왔는데 대표님이 받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소은호의 연락이라. 아마 전동하가 특별히 부하직원에게 당부한 모양이었다.소은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옆에 있는 전동하를 바라보았다.그는 잠결에 들었는지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그러더니 한손으로 이마를 짚었다.소은정은 부드럽게 그의 얼굴을 만지며 그를 불렀다.“여보.”전동하가 눈을 번쩍 뜨더니 그녀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술에 입을 맞췄다.“좋은 아침이에요.”소은정도 그의 모닝뽀뽀가 황홀했지만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우선이었다.그가 더 깊게 들어오려던 순간
의사는 하루에 세 번 회진을 왔다. 전동하의 안색도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었다.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갈비뼈의 통증도 이미 사라지고 자주 기침을 하던 현상도 현저하게 줄었다.전동하는 가끔 그녀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 밖을 산책하기도 했다.두 사람은 거의 붙어있다시피 했다.이날 소은정 혼자 휠체어를 끌고 잠시 복도에 나왔는데 처참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밤이 되자 소리는 더 심해졌다.그러다가 갑자기 소리가 사라졌다.환각이었나?소은정은 병실 베란다에 앉아 밤하늘을 감상하고 전동하는 방에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넥타이를 살짝 푼 상태로 진지하게 업무에 임하는 남자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섹시했다.소은정은 밤하늘을 감상하는 척하며 전동하를 감상했다.그녀의 시선을 느낀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웃음을 터뜨렸다.“뭘 그렇게 열심히 봐요?”소은정은 얼굴을 살짝 붉히고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부부 사이에 쳐다보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그녀는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별하늘보다 당신 얼굴 보는 게 더 매력적인 걸 어떡해요.”전동하는 가끔 나오는 그녀의 칭찬에 이미 적응된 상태였다.그는 피식 웃고는 미간을 만지며 고개를 들었다.“안 졸려요?”한창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던 소은정은 그의 말을 다른 뜻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이 사람이 정말! 나 아직 환자라고요!”전동하는 못 말린다는 듯이 실소를 터뜨렸다.“지금 밤 열 시거든요? 미인은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고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소은정은 씩씩거리며 고개를 돌리며 쑥스러움을 애써 감췄다.태연하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전동하의 시선이 느껴지자 그녀는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하늘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전동하는 이대로 대화를 끝낼 생각이 없었는지 일어서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다가선 그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뜨거운 숨결을 토하며 말했다.“다 나은 것 같은데 오늘 밤은 괜찮지 않을까
전동하는 어두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소은정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고 말했다.“여기서 좀 기다려 줄래요?”소은정은 약간 굳은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안에 있는 사람 안진이에요?”전동하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소은정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사실 그녀는 안진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박수혁을 향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은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더 가슴이 아팠었다.하지만 안진은 소은정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사랑은 이기적이고 사랑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대범함을 보여주었다.절대 해치지 않겠다고 진심인양 이야기하고 뒤에서 그녀를 바다에 빠뜨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털이 곤두섰다.이미 원하는 결과를 얻었고 박수혁도 소은정을 버리고 이민혜를 선택한 상황에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소은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전동하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죽이지 않을 거니까요. 하지만 대가는 치러야죠. 안 그러면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다음에 또 비슷한 짓을 저지를 수도 있어요.”소은정은 감정을 알 수 없는 그의 표정을 잠시 바라보다가 평소의 그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하지만 그녀를 대할 때는 여전히 조심스러웠고 자상했다.그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소은정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고 전동하는 그녀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문 열어.”문앞을 지키던 경호원이 무거워 보이는 철제문을 천천히 열었다.비명소리가 들리던 방에서 진한 피비린내가 풍겨왔다.소은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황급히 입을 막고 고개를 돌렸다. 구역질이 올라왔다.그녀는 휠체어 손잡이를 꽉 잡고 뒤로 후퇴하려 했다.뒤에 서 있던 전동하가 앞으로 다가와서 그녀의 시선을 막았다.“겁먹을 필요 없어요. 저 여자 피가 아니고 다 가짜예요.”소은정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자 전동하는 민트 향이 나는 손수건을 그녀에게 건넸다.그녀는 코를 막고 눈
전동하는 살기가 느껴지는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아직도 인정을 안 하네? 사실 네가 인정하든 안 하든 결과는 같아. 내 아내는 네 손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고 넌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하니까.”안진은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처절한 울음을 터뜨렸다.“정말 저 아니에요. 제발 믿어줘요!”전동하는 피식 웃으며 냉기가 뚝뚝 흐르는 목소리로 말했다.“풀어줘? 그렇게 쉽게는 안 되지. 왜 내 아내를 바다에 빠뜨렸는지 이유를 말하라니까? 사랑 때문에? 박수혁을 가지고 싶어서? 그건 아닐 거야. 정말 박수혁을 그렇게 가지고 싶었으면 네 아버지가 붙잡히고 너 혼자 한국을 떠날 때 그렇게 순순히 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럼 이유가 뭘까?”목소리는 낮았지만 말투에서 비아냥이 느껴졌다.마치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 그녀를 압박하는 것 같기도 했다.안진은 사실을 얘기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박수혁은 이미 떠났어. 떠날 때 너에 관해서는 묻지도 않더라. 그 인간은 어쩔 수 없지 풀어줬지만 넌 아니잖아?”전동하는 음산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네 아들이 곧 박수혁의 곁으로 간다지? 나도 곧 귀국하는데 어떻게 할까?”안진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힘겹게 버티고 있었던 건 누군가가 구해주러 올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박수혁은 가면서 그녀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고 한다.아마 그녀가 여기서 죽었다고 해도 관심 한번 주지 않을 것 같았다.그녀는 그에게 귀찮기만 한 존재였으니까!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안진은 온몸을 떨며 애원했다.“아들은 건드리지 마세요. 제발요.”전동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난 무고한 사람은 건드리지 않아. 네 아들이 박수혁의 핏줄이 맞는지 아닌지는 관심 없어. 그건 박수혁 본인도 관심 없을 거야. 내가 네 아들 데려가면 박수혁이 나한테 고맙다고 할지도 모르지.”“물론 박수혁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줄 생각은 없지만 내가 진짜 화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