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하는 잠시 고민하다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그런데 예상했던 일 아닌가요?”소은정과 김하늘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미 알고 있었어요?”요즘은 드라마에도 이런 막장은 잘 안 나오는데?전동하는 여유롭게 우회전하고 속도를 줄이며 대답했다.“이상준 씨가 문상아 씨를 파트너로 데리고 미팅 장소에 나왔을 때부터 문설아 씨가 이 일을 알게 되는 건 시간 문제였죠. 이게 뭐 희한한 일인가요? 문설아 씨가 눈치 채지 못한 건 너무 사람을 쉽게 믿는 성격 때문이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을 통하지 않고 처제와 가깝게 지내는 남편한테 경고라도 한마디 했을걸요?”전동하의 말이 끝나자 차 안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차 안에서는 은은한 말리꽃 향이 났다. 소은정이 전동하를 위해 추천한 차량용 디퓨저 향이었다.아주 편안한 향기였다.소은정은 김하늘과 시선을 맞추었다.우리가 일을 너무 크게 생각한 걸까?한편, 문설아의 집.누군가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문설아는 나갔던 소은정과 김하늘이 돌아간 줄 알고 다급히 가서 문을 열었다.그런데 문을 열자 이상준이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표정이 급격하게 식었다.“여긴 왜 왔어요?”이상준은 멈칫하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과하러 왔어.”그가 여기로 오기 전까지 문기훈과 유문정에게서 수차례나 전화가 왔었다.사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고 애초에 책임질만한 일은 하지도 않았다.그들이 이혼하면 이상준 측은 손해가 별로 없지만 오히려 문씨 가문에서 타격을 입게 될 상황이었다.그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이대로 이혼하거나 문설아가 사과하는 일.이혼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비록 처음에는 좋아서 결혼한 게 아니지만 그녀와 같이 지내다 보니 그가 아는 재벌집 아가씨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상류사회의 고정적인 틀에서 교육받고 자란 여자가 아니었다.그녀는 순수하고 착했으며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고 믿었다.그녀는 표정을 숨길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하지만 돈을 위해 노력을
소은정은 핸드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뉴스 일면에 눈에 띄는 타이틀이 보였다.“무영 그룹 2세 이혼 발표. 남편의 잦은 외도로 부부 사이의 믿음에 금이 갔다고 밝히며 양심이 있다면 맨몸으로 나가라고 저격!”가장 충격적인 건 마지막 말이었다.양심이 있다면!정면 승부를 선택한 것이다!무수히 많은 댓글들이 달렸다.“세상에, 아까 검색해 봤는데 무영 그룹은 제약 회사던데? 내가 어려서부터 먹던 약을 만드는 회사였어. 지금도 옛날 가격을 유지하고 효과가 좋더라. 그런 집안에서 자란 여자라 그런지 역시 쿨하네!”“나도 검색해 봤는데 안 좋은 기사는 하나도 없어. 문설아 씨 응원할게요!”“결혼한지 1년도 안 된 사이에 외도라니. 정말 뻔뻔하시네요. 이상준 씨!”“역시 재벌가 아가씨는 뭐가 달라도 달라. 너그러움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네! 이 대표님도 나와서 해명 좀 해봐요!”“우리 소은정 여신님도 이런 면에서는 아주 쿨하게 응대했었지. 요즘에는 공식석상에 얼굴을 안 내밀던데 그리워요, 은정 여신님….”“빨리 이혼하고 새 출발하는 게 낫지.”소은정은 연예계 뉴스보다 더 핫한 댓글들을 조용히 읽어보았다.정말 평소에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전동하가 새봄이를 안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자 아이는 소은정의 품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아이는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엄마를 찾았지만 달래주는 사람은 아빠 혼자였다.그래서 분유를 충분히 먹고 잠시 놀다가 드디어 엄마한테 오게 된 것이다.그런데 엄마는 핸드폰을 들고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새봄이는 불만스럽게 팔을 흔들거리며 입을 삐죽였다.아이의 소리를 들은 소은정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생글생글 웃으며 전동하를 바라보았다.“좋은 아침이에요.”전동하는 새봄이를 잠시 내려놓고 소은정을 꼭 안아주었다.두 사람은 잠시 안고 있다가 아이가 울려고 하자 아쉬운 표정으로 서로에게서 떨어졌다.소은정은 새봄이를 안아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춰주었다.“우리 아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뻐?”칭찬을 들은 새봄이는 신이
문상아까지 끼어 있는데 모두가 문제를 회피한다?그렇다고 없던 일로 하고 지낼 수 있을까?문설아의 결정이 충동적으로 보여도 정확한 선택이었다.전동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는 아내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듣고 있었다.소외감을 느낀 새봄이가 빽 소리를 질러서야 대화가 끝이 났다.소은정은 얼른 아이에게 다가가서 안아주었다.이때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했다.문설아였다.“내가 인터넷에 낸 공문 좋아요 눌러주고 응원해 줘! 그리고 멀리 퍼뜨려 줘!”소은정은 눈을 비비고 다시 문자를 확인했지만 틀림없었다.‘문설아는 이런 상황에도 참 대단하네.’그녀는 문설아가 의기소침해하고 슬픔에 빠져 허우적댈 줄 알았다.그런데 이렇게 씩씩하게 다시 일어서다니?소은정이 답장이 없자 이번에는 전화가 걸려왔다.그녀는 베란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야, 너 괜찮아?”문설아는 목소리가 쉬어 있었지만 말투는 아주 밝았다.“당연하지. 아침내내 욕만 먹었어.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나를 욕할수록 난 내가 정확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잘못을 한 사람은 내가 아닌데 왜 내가 충동적이라고 욕해? 난 정상인들이 이런 사건을 마주했을 때의 반응을 보고 싶어!”소은정은 그 말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네티즌들 중에 참고 그냥 살라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하지만 보수적인 사람들은 그녀의 결정이 경솔했다고 말하고 있었다.“사실 나도 네가 좀 성급했다고 생각하지만 넌 옳은 일을 했어. 문설아, 넌 정말 대단해!”소은정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다른 사람이 이런 일을 마주했으면 그녀처럼 용기 있는 결정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문설아는 자랑스럽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나도 내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해. 그러니 너도 실제 행동으로 나를 지지해 줘! 지금 인기 검색어에 올라가 있기는 한데 그거 다 내가 돈 주고 산 거야. 우리 가문과 이상준 가문이 나서서 돈으로 기사를 내리려고 한다면 난 힘없이 당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네가 좀 도와줘!”만약 소은정이 이
한편, 문설아의 집.“뻔뻔하게 여기가 어디라고 와? 너 때문에 네 언니가 얼마나 속상해했는지 알아? 우리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니? 키워주고 재워주고 먹여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문상아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유문정의 욕설이 이어졌다.평소에는 항상 문상아의 존재를 무시하던 유문정이었다.그런데 문상아가 친딸의 이익을 건드리자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한 것이다.오랜 시간 쌓인 불만이 한순간에 폭발했다.문상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못들은 척, 위층으로 올라갔다.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유문정은 다가가서 문상아를 힘껏 밀치며 말했다.“귀가 먹었어? 당장 꺼지라고! 이곳은 널 환영하지 않아!”문기훈은 소파에 앉아 굳은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그는 유문정과 문상아 사이의 일에 참견하고 싶지 않았다.문상아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계단 손잡이를 잡고 고개를 들었다.“저는 그냥 언니를 보러 왔어요. 제가 다 해명할 거예요.”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무감각한 목소리였다.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의기양양한 말투도 아니었다.하지만 그런 무감각한 반응이 유문정을 더 화나게 했다.“해명? 너 때문에 네 언니가 이렇게 됐는데 해명은 무슨 해명? 넌 설아를 언니라고 생각한 적이나 있어? 그때 널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차라리 개를 키우고 말지!”문상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유문정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줌마, 저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저도 이 집에서 자라고 싶지 않았어요.”“너 방금 뭐라고 했니? 그러니까 널 데려다가 키운 우리 잘못이라는 거야? 문기훈 씨, 당신 딸이 뭐라고 하는지 좀 들어봐! 내가 처음부터 머리 검은 짐승은 들이는 게 아니라고 했지? 이제 어떡할 거야? 설아는 얘 때문에 이혼하게 생겼는데 창피해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아? 얘는 지금 뻔뻔하게도 우리 집에서 자란 거 후회한다잖아?”이성을 잃은 유문정은 모든 화를 문상아에게 쏟았다.몇십 년 동안 참았던 억울함과 분노가 분출구를 찾은 느낌이었다.문상아는 불안함으
문기훈은 문상아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혐오스러워 미칠 것 같은 표정이었다.“다행히 하늘이 도왔는지 네 엄마가 일찍 죽었지. 그 일이 없었으면 내가 널 데려오고 싶어서 데려왔는 줄 아니? 난 한 번도 네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어. 어차피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까. 나한테 딸은 설아뿐이야. 우리가 널 키워준 건 설아가 혼자 외로울까 봐 둘이 친구나 하라고 키워준 거라고. 넌 원래 존재해서는 안 될 아이야. 애초에 네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오늘 같은 일도 없었어!”문기훈은 똥 씹은 얼굴로 오랜 시간 감췄던 자신의 과거를 다 들추어냈다.죄 없는 아이에게 상처가 될 말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가정이 떠안은 상처도 만만치 않았다.그는 뭘 잘못했을까?문기훈은 유문정을 사랑했다. 하지만 하룻밤의 실수 때문에 그들은 평생을 괴로워했다.문상아는 계단에 서서 계단 손잡이를 꽉 잡았다. 손가락마저 하얗게 질리고 손에 땀이 났다.그녀는 자신이 이 집에서 정말 괴리감이 드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자신을 싫어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문설아만 챙기고 예뻐하는 유문정이 싫었다.그리고 너무도 쉽게 모두의 사랑을 받는 문설아도 싫었다.그녀는 줄곧 문기훈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대놓고 자신에게 애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 그래도 속으로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 문기훈도 그녀를 불필요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문기훈이 그녀에게 잘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는 매일 회사일로 바빴다. 그래도 돌아오면 가장 먼저 문설아의 숙제를 점검했다.문상아는 항상 만점 시험지를 가져왔지만 그걸 볼 때마다 심드렁하게 고개만 끄덕여 줄 뿐이었다.문설아는 태어나서부터 빛이 나고 사랑을 받는 존재였고 문상아는 항상 그녀의 그늘에 갇혀 살았다.문설아는 공부도 못하고 장난도 심해서 사고도 많이 쳤지만 그런 건 하나도 상관없었다.귀족 가문에서 누가 성적을 신경 쓸까?문상아는 태어날 때부터
문은 안에서 잠겨 있지 않았다.문설아는 베란다의 흔들의자에 앉아 애착 인형을 품에 안고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었다.노트북에는 주식 사이트가 열려 있었다.문상아는 잠시 언니를 바라보았다. 문설아에게는 기분이 안 좋을 때 주식 사이트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주가는 올랐다.오늘 그녀가 기분이 안 좋은 이유는 평소에 그렇게도 아끼던 동생 때문이었다.문상아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문설아는 고개를 들고 동생을 힐끗 바라보았다.“오늘은 촬영 안 해?”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똑 같은 말투였다.문상아는 어깨를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하루 휴가 냈어. 원래는 어제 찾아올 생각이었는데 연기가 집중이 안 돼서 촬영이 늦게 끝났어.”이건 그녀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문상아는 거의 NG를 내지 않는 배우였는데 이번에는 계속 집중하지 못하고 힘들게 촬영했다.감독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고 일부는 그녀가 프로 정신이 없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문상아의 실수는 이번이 처음이었다.하지만 그녀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그렇게 촬영 일정은 새벽 3시까지 연기되다가 어거지로 통과했다.시간이 늦었기에 문상아는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밴에서 쪽잠을 잤다.다음 날 아침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인터넷은 이미 문설아 이혼 기사로 도배가 되었다.비록 문상아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지만 문상아는 누구한테 귀뺨을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문설아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포용하는 성격이 아니었다.그녀는 심지어 해명도 듣지 않았다.이미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렸기에 해명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문설아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전에는 프로 정신이 투철했잖아. 연기보다 중요한 건 없는 것처럼 굴더니 왜 그랬어?”문상아는 비꼬는 말인 걸 알면서도 다가가서 문설아와 마주 앉았다.잠시 숨을 고른 그녀는 뒤늦게 입을 열었다.“나한테는 연기 빼고는 아무것도 없잖아
문상아는 고개를 들고 언니를 바라보며 솔직히 말했다.“언니는 내가 아니라서 영원히 내 입장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난 확실히 이곳에서 눈치를 많이 보며 자랐어. 언니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내가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서 이상한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 처지가 되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마음대로 생각해.”문설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이 사람을 잘못 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밝은 햇살이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고 있었고 탐스럽게 핀 꽃밭이 펼쳐진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문상아는 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이상준 씨와의 관계는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에 이미 끝났어. 그 사람은 처음에 내가 자신을 속였다는 것이 괘씸해서 나를 몇 번 찾아왔었어. 하지만 우리는 선을 넘는 짓은 하지 않았어. 그것도 그냥 신혼 초기에 몇 번 만남이 있었던 거고 그 뒤로는 연락도 하지 않았어. 내가 어느 호텔에 투숙하면 수많은 파파라치들이 나를 따라다녀. 제작진들 보는 눈도 있어. 난 내 미래를 걸고 위험한 짓을 벌이지 않아. 같은 호텔에 묵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어. 이상준 씨는… 언니를 좋아해.”사실 문상아도 남자를 사랑했지만 그가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잠시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사람과 짧은 사랑을 불태우며 어렸을 때부터 허기가 졌던 허영심이 만족되는 기분을 느낀 적도 있었다.이상준이 문씨 가문과 정략 결혼을 준비한다는 걸 알았을 때, 잠시 기분에 취해 문설아가 자신에게 잘해줬던 것을 잊은 것도 사실이었다.처음에는 스폰서와 연예인으로 만났지만 그가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문상아는 평소보다 그에게 더 살갑게 대했다. 일부러 그가 자신을 잊지 못하게 유혹한 것도 사실이었다.사실 그때 그녀는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다.그녀는 문씨 가문에서 공을 들여 선택한 사윗감이 사실은 자신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댄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그리고 이상준이 정략 결혼과 그녀 사이에서 고민할 때 자신이 성공했다고
하지만 문설아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지금 둘 사이의 연애 경험담을 말해주려고 온 거야? 우리 이혼하면 두 사람도 당당하게 만날 수 있잖아.”문상아는 입술을 깨물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언니, 그런 뜻 아닌 거 알잖아. 난 언니가 이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문설아는 피식 웃더니 옆에 있던 찻잔을 들며 말했다.“내가 한 번 결정한 일을 번복하지 않을 거라는 건 너도 잘 알 거야. 그리고 너는 내 동생이야. 그런데 넌 내가 결혼 준비를 할 때까지도 그와의 관계를 꽁꽁 숨겼지. 네가 그 사람이랑 헤어졌다고 해서 나한테 당당해질 수 있어? 연예인과 스폰서의 관계, 그렇다는 건 잠을 같이 잔 적도 있었을 텐데?”짜증스럽고 거친 말투였다. 정말 더 이상 참아줄 수 없었다.그녀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며진 방이지만 그녀는 지금 이 순간 한기를 느꼈다.“연예계에서는 너무 자주 발생하는 일이라 나한테 신경 쓰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너무 역겹지 않아?”그 말을 들은 문상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입술이 덜덜 떨렸다.한 번도 그녀에게 심한 말을 한 적 없던 문설아였다. 그만큼 동생을 아끼던 착한 언니였다.“이상준이 바람둥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두 사람의 과거는 용납할 수 없고 두 사람이 나 몰래 만난 것도 용서할 수 없어. 우리가 결혼하고 연락한 적 없다면서 왜 내 친구들은 너희가 같이 파티나 미팅 장소에 출입하는 것을 봤을까? 이게 다 뭐야? 우연이라고 계속 우길 작정이야? 어떻게 너희는 우연이 그렇게 많이 겹칠 수 있지? 문상아, 사람을 바보 취급하지 마. 인생이 연기야? 오해라는 말로 모든 걸 덮으려고?”문설아는 한 번도 이렇게 심한 말을 누구에게 해본 적 없었다.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문상아의 가슴을 찔렀다.문상아는 처음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고 문설아가 예전처럼 자신을 쉽게 용서해 줄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게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