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은 핸드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뉴스 일면에 눈에 띄는 타이틀이 보였다.“무영 그룹 2세 이혼 발표. 남편의 잦은 외도로 부부 사이의 믿음에 금이 갔다고 밝히며 양심이 있다면 맨몸으로 나가라고 저격!”가장 충격적인 건 마지막 말이었다.양심이 있다면!정면 승부를 선택한 것이다!무수히 많은 댓글들이 달렸다.“세상에, 아까 검색해 봤는데 무영 그룹은 제약 회사던데? 내가 어려서부터 먹던 약을 만드는 회사였어. 지금도 옛날 가격을 유지하고 효과가 좋더라. 그런 집안에서 자란 여자라 그런지 역시 쿨하네!”“나도 검색해 봤는데 안 좋은 기사는 하나도 없어. 문설아 씨 응원할게요!”“결혼한지 1년도 안 된 사이에 외도라니. 정말 뻔뻔하시네요. 이상준 씨!”“역시 재벌가 아가씨는 뭐가 달라도 달라. 너그러움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네! 이 대표님도 나와서 해명 좀 해봐요!”“우리 소은정 여신님도 이런 면에서는 아주 쿨하게 응대했었지. 요즘에는 공식석상에 얼굴을 안 내밀던데 그리워요, 은정 여신님….”“빨리 이혼하고 새 출발하는 게 낫지.”소은정은 연예계 뉴스보다 더 핫한 댓글들을 조용히 읽어보았다.정말 평소에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전동하가 새봄이를 안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자 아이는 소은정의 품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아이는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엄마를 찾았지만 달래주는 사람은 아빠 혼자였다.그래서 분유를 충분히 먹고 잠시 놀다가 드디어 엄마한테 오게 된 것이다.그런데 엄마는 핸드폰을 들고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새봄이는 불만스럽게 팔을 흔들거리며 입을 삐죽였다.아이의 소리를 들은 소은정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생글생글 웃으며 전동하를 바라보았다.“좋은 아침이에요.”전동하는 새봄이를 잠시 내려놓고 소은정을 꼭 안아주었다.두 사람은 잠시 안고 있다가 아이가 울려고 하자 아쉬운 표정으로 서로에게서 떨어졌다.소은정은 새봄이를 안아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춰주었다.“우리 아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뻐?”칭찬을 들은 새봄이는 신이
문상아까지 끼어 있는데 모두가 문제를 회피한다?그렇다고 없던 일로 하고 지낼 수 있을까?문설아의 결정이 충동적으로 보여도 정확한 선택이었다.전동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는 아내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듣고 있었다.소외감을 느낀 새봄이가 빽 소리를 질러서야 대화가 끝이 났다.소은정은 얼른 아이에게 다가가서 안아주었다.이때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했다.문설아였다.“내가 인터넷에 낸 공문 좋아요 눌러주고 응원해 줘! 그리고 멀리 퍼뜨려 줘!”소은정은 눈을 비비고 다시 문자를 확인했지만 틀림없었다.‘문설아는 이런 상황에도 참 대단하네.’그녀는 문설아가 의기소침해하고 슬픔에 빠져 허우적댈 줄 알았다.그런데 이렇게 씩씩하게 다시 일어서다니?소은정이 답장이 없자 이번에는 전화가 걸려왔다.그녀는 베란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야, 너 괜찮아?”문설아는 목소리가 쉬어 있었지만 말투는 아주 밝았다.“당연하지. 아침내내 욕만 먹었어.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나를 욕할수록 난 내가 정확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잘못을 한 사람은 내가 아닌데 왜 내가 충동적이라고 욕해? 난 정상인들이 이런 사건을 마주했을 때의 반응을 보고 싶어!”소은정은 그 말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네티즌들 중에 참고 그냥 살라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하지만 보수적인 사람들은 그녀의 결정이 경솔했다고 말하고 있었다.“사실 나도 네가 좀 성급했다고 생각하지만 넌 옳은 일을 했어. 문설아, 넌 정말 대단해!”소은정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다른 사람이 이런 일을 마주했으면 그녀처럼 용기 있는 결정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문설아는 자랑스럽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나도 내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해. 그러니 너도 실제 행동으로 나를 지지해 줘! 지금 인기 검색어에 올라가 있기는 한데 그거 다 내가 돈 주고 산 거야. 우리 가문과 이상준 가문이 나서서 돈으로 기사를 내리려고 한다면 난 힘없이 당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네가 좀 도와줘!”만약 소은정이 이
한편, 문설아의 집.“뻔뻔하게 여기가 어디라고 와? 너 때문에 네 언니가 얼마나 속상해했는지 알아? 우리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니? 키워주고 재워주고 먹여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문상아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유문정의 욕설이 이어졌다.평소에는 항상 문상아의 존재를 무시하던 유문정이었다.그런데 문상아가 친딸의 이익을 건드리자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한 것이다.오랜 시간 쌓인 불만이 한순간에 폭발했다.문상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못들은 척, 위층으로 올라갔다.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유문정은 다가가서 문상아를 힘껏 밀치며 말했다.“귀가 먹었어? 당장 꺼지라고! 이곳은 널 환영하지 않아!”문기훈은 소파에 앉아 굳은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그는 유문정과 문상아 사이의 일에 참견하고 싶지 않았다.문상아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계단 손잡이를 잡고 고개를 들었다.“저는 그냥 언니를 보러 왔어요. 제가 다 해명할 거예요.”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무감각한 목소리였다.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의기양양한 말투도 아니었다.하지만 그런 무감각한 반응이 유문정을 더 화나게 했다.“해명? 너 때문에 네 언니가 이렇게 됐는데 해명은 무슨 해명? 넌 설아를 언니라고 생각한 적이나 있어? 그때 널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차라리 개를 키우고 말지!”문상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유문정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줌마, 저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저도 이 집에서 자라고 싶지 않았어요.”“너 방금 뭐라고 했니? 그러니까 널 데려다가 키운 우리 잘못이라는 거야? 문기훈 씨, 당신 딸이 뭐라고 하는지 좀 들어봐! 내가 처음부터 머리 검은 짐승은 들이는 게 아니라고 했지? 이제 어떡할 거야? 설아는 얘 때문에 이혼하게 생겼는데 창피해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아? 얘는 지금 뻔뻔하게도 우리 집에서 자란 거 후회한다잖아?”이성을 잃은 유문정은 모든 화를 문상아에게 쏟았다.몇십 년 동안 참았던 억울함과 분노가 분출구를 찾은 느낌이었다.문상아는 불안함으
문기훈은 문상아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혐오스러워 미칠 것 같은 표정이었다.“다행히 하늘이 도왔는지 네 엄마가 일찍 죽었지. 그 일이 없었으면 내가 널 데려오고 싶어서 데려왔는 줄 아니? 난 한 번도 네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어. 어차피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까. 나한테 딸은 설아뿐이야. 우리가 널 키워준 건 설아가 혼자 외로울까 봐 둘이 친구나 하라고 키워준 거라고. 넌 원래 존재해서는 안 될 아이야. 애초에 네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오늘 같은 일도 없었어!”문기훈은 똥 씹은 얼굴로 오랜 시간 감췄던 자신의 과거를 다 들추어냈다.죄 없는 아이에게 상처가 될 말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가정이 떠안은 상처도 만만치 않았다.그는 뭘 잘못했을까?문기훈은 유문정을 사랑했다. 하지만 하룻밤의 실수 때문에 그들은 평생을 괴로워했다.문상아는 계단에 서서 계단 손잡이를 꽉 잡았다. 손가락마저 하얗게 질리고 손에 땀이 났다.그녀는 자신이 이 집에서 정말 괴리감이 드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자신을 싫어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문설아만 챙기고 예뻐하는 유문정이 싫었다.그리고 너무도 쉽게 모두의 사랑을 받는 문설아도 싫었다.그녀는 줄곧 문기훈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대놓고 자신에게 애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 그래도 속으로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 문기훈도 그녀를 불필요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문기훈이 그녀에게 잘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는 매일 회사일로 바빴다. 그래도 돌아오면 가장 먼저 문설아의 숙제를 점검했다.문상아는 항상 만점 시험지를 가져왔지만 그걸 볼 때마다 심드렁하게 고개만 끄덕여 줄 뿐이었다.문설아는 태어나서부터 빛이 나고 사랑을 받는 존재였고 문상아는 항상 그녀의 그늘에 갇혀 살았다.문설아는 공부도 못하고 장난도 심해서 사고도 많이 쳤지만 그런 건 하나도 상관없었다.귀족 가문에서 누가 성적을 신경 쓸까?문상아는 태어날 때부터
문은 안에서 잠겨 있지 않았다.문설아는 베란다의 흔들의자에 앉아 애착 인형을 품에 안고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었다.노트북에는 주식 사이트가 열려 있었다.문상아는 잠시 언니를 바라보았다. 문설아에게는 기분이 안 좋을 때 주식 사이트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주가는 올랐다.오늘 그녀가 기분이 안 좋은 이유는 평소에 그렇게도 아끼던 동생 때문이었다.문상아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문설아는 고개를 들고 동생을 힐끗 바라보았다.“오늘은 촬영 안 해?”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똑 같은 말투였다.문상아는 어깨를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하루 휴가 냈어. 원래는 어제 찾아올 생각이었는데 연기가 집중이 안 돼서 촬영이 늦게 끝났어.”이건 그녀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문상아는 거의 NG를 내지 않는 배우였는데 이번에는 계속 집중하지 못하고 힘들게 촬영했다.감독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고 일부는 그녀가 프로 정신이 없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문상아의 실수는 이번이 처음이었다.하지만 그녀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그렇게 촬영 일정은 새벽 3시까지 연기되다가 어거지로 통과했다.시간이 늦었기에 문상아는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밴에서 쪽잠을 잤다.다음 날 아침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인터넷은 이미 문설아 이혼 기사로 도배가 되었다.비록 문상아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지만 문상아는 누구한테 귀뺨을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문설아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포용하는 성격이 아니었다.그녀는 심지어 해명도 듣지 않았다.이미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렸기에 해명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문설아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전에는 프로 정신이 투철했잖아. 연기보다 중요한 건 없는 것처럼 굴더니 왜 그랬어?”문상아는 비꼬는 말인 걸 알면서도 다가가서 문설아와 마주 앉았다.잠시 숨을 고른 그녀는 뒤늦게 입을 열었다.“나한테는 연기 빼고는 아무것도 없잖아
문상아는 고개를 들고 언니를 바라보며 솔직히 말했다.“언니는 내가 아니라서 영원히 내 입장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난 확실히 이곳에서 눈치를 많이 보며 자랐어. 언니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내가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서 이상한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 처지가 되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마음대로 생각해.”문설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이 사람을 잘못 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밝은 햇살이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고 있었고 탐스럽게 핀 꽃밭이 펼쳐진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문상아는 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이상준 씨와의 관계는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에 이미 끝났어. 그 사람은 처음에 내가 자신을 속였다는 것이 괘씸해서 나를 몇 번 찾아왔었어. 하지만 우리는 선을 넘는 짓은 하지 않았어. 그것도 그냥 신혼 초기에 몇 번 만남이 있었던 거고 그 뒤로는 연락도 하지 않았어. 내가 어느 호텔에 투숙하면 수많은 파파라치들이 나를 따라다녀. 제작진들 보는 눈도 있어. 난 내 미래를 걸고 위험한 짓을 벌이지 않아. 같은 호텔에 묵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어. 이상준 씨는… 언니를 좋아해.”사실 문상아도 남자를 사랑했지만 그가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잠시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사람과 짧은 사랑을 불태우며 어렸을 때부터 허기가 졌던 허영심이 만족되는 기분을 느낀 적도 있었다.이상준이 문씨 가문과 정략 결혼을 준비한다는 걸 알았을 때, 잠시 기분에 취해 문설아가 자신에게 잘해줬던 것을 잊은 것도 사실이었다.처음에는 스폰서와 연예인으로 만났지만 그가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문상아는 평소보다 그에게 더 살갑게 대했다. 일부러 그가 자신을 잊지 못하게 유혹한 것도 사실이었다.사실 그때 그녀는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다.그녀는 문씨 가문에서 공을 들여 선택한 사윗감이 사실은 자신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댄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그리고 이상준이 정략 결혼과 그녀 사이에서 고민할 때 자신이 성공했다고
하지만 문설아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지금 둘 사이의 연애 경험담을 말해주려고 온 거야? 우리 이혼하면 두 사람도 당당하게 만날 수 있잖아.”문상아는 입술을 깨물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언니, 그런 뜻 아닌 거 알잖아. 난 언니가 이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문설아는 피식 웃더니 옆에 있던 찻잔을 들며 말했다.“내가 한 번 결정한 일을 번복하지 않을 거라는 건 너도 잘 알 거야. 그리고 너는 내 동생이야. 그런데 넌 내가 결혼 준비를 할 때까지도 그와의 관계를 꽁꽁 숨겼지. 네가 그 사람이랑 헤어졌다고 해서 나한테 당당해질 수 있어? 연예인과 스폰서의 관계, 그렇다는 건 잠을 같이 잔 적도 있었을 텐데?”짜증스럽고 거친 말투였다. 정말 더 이상 참아줄 수 없었다.그녀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며진 방이지만 그녀는 지금 이 순간 한기를 느꼈다.“연예계에서는 너무 자주 발생하는 일이라 나한테 신경 쓰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너무 역겹지 않아?”그 말을 들은 문상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입술이 덜덜 떨렸다.한 번도 그녀에게 심한 말을 한 적 없던 문설아였다. 그만큼 동생을 아끼던 착한 언니였다.“이상준이 바람둥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두 사람의 과거는 용납할 수 없고 두 사람이 나 몰래 만난 것도 용서할 수 없어. 우리가 결혼하고 연락한 적 없다면서 왜 내 친구들은 너희가 같이 파티나 미팅 장소에 출입하는 것을 봤을까? 이게 다 뭐야? 우연이라고 계속 우길 작정이야? 어떻게 너희는 우연이 그렇게 많이 겹칠 수 있지? 문상아, 사람을 바보 취급하지 마. 인생이 연기야? 오해라는 말로 모든 걸 덮으려고?”문설아는 한 번도 이렇게 심한 말을 누구에게 해본 적 없었다.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문상아의 가슴을 찔렀다.문상아는 처음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고 문설아가 예전처럼 자신을 쉽게 용서해 줄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게
바깥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나뭇가지가 춤을 추듯 흔들렸다. 실내는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어 아주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문설아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아빠, 상대가 상아가 아니었다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 일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그녀는 솔직한 기분을 이야기했다.문기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걔는 신경쓸 거 없어. 네가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는 생각도 하지 마. 애초에 네가 아니었어도 다른 집안 좋고 학벌 좋은 여자랑 결혼했을 거야. 이상준은 정략결혼이 꼭 필요했으니까. 이상준의 가문에서 신분도 불분명한 사생아를 며느리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거야. 다 아빠 잘못이야. 애초에 걔를 집으로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문설아는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엄마가 다르다고 해서 문상아를 차별한 적 없었다.언니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었다.하지만 문상아가 왜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문설아는 눈을 질끈 감고 문기훈의 얘기를 들었다.“설아야, 이런 말을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이혼이라는 게 경솔하게 결정할 일은 아니야. 이상준 그 녀석도 사과하러 온대. 네 시부모님들도 이쪽으로 오는 길이래. 그쪽에서 먼저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어. 인연이라는 건 참 소중한 거야. 홧김에 이혼했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더 많아. 너 상준이 좋아하잖아?”이상준과 첫 맞선을 보고 돌아왔을 때, 문설아는 그가 참 만족스럽다고 말했다.결혼한 뒤로 깨가 쏟아지게 서로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문설아도 충분히 이상준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그래서 가족들은 두 사람이 이혼할 정도로 사이가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만약 한순간의 화를 못 참고 이혼한다면 문설아에게는 이혼녀 딱지가 계속 따라다니게 된다.문설아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눈을 뜨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빠, 나 그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문기훈은 딸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