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문설아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지금 둘 사이의 연애 경험담을 말해주려고 온 거야? 우리 이혼하면 두 사람도 당당하게 만날 수 있잖아.”문상아는 입술을 깨물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언니, 그런 뜻 아닌 거 알잖아. 난 언니가 이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문설아는 피식 웃더니 옆에 있던 찻잔을 들며 말했다.“내가 한 번 결정한 일을 번복하지 않을 거라는 건 너도 잘 알 거야. 그리고 너는 내 동생이야. 그런데 넌 내가 결혼 준비를 할 때까지도 그와의 관계를 꽁꽁 숨겼지. 네가 그 사람이랑 헤어졌다고 해서 나한테 당당해질 수 있어? 연예인과 스폰서의 관계, 그렇다는 건 잠을 같이 잔 적도 있었을 텐데?”짜증스럽고 거친 말투였다. 정말 더 이상 참아줄 수 없었다.그녀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며진 방이지만 그녀는 지금 이 순간 한기를 느꼈다.“연예계에서는 너무 자주 발생하는 일이라 나한테 신경 쓰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너무 역겹지 않아?”그 말을 들은 문상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입술이 덜덜 떨렸다.한 번도 그녀에게 심한 말을 한 적 없던 문설아였다. 그만큼 동생을 아끼던 착한 언니였다.“이상준이 바람둥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두 사람의 과거는 용납할 수 없고 두 사람이 나 몰래 만난 것도 용서할 수 없어. 우리가 결혼하고 연락한 적 없다면서 왜 내 친구들은 너희가 같이 파티나 미팅 장소에 출입하는 것을 봤을까? 이게 다 뭐야? 우연이라고 계속 우길 작정이야? 어떻게 너희는 우연이 그렇게 많이 겹칠 수 있지? 문상아, 사람을 바보 취급하지 마. 인생이 연기야? 오해라는 말로 모든 걸 덮으려고?”문설아는 한 번도 이렇게 심한 말을 누구에게 해본 적 없었다.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문상아의 가슴을 찔렀다.문상아는 처음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고 문설아가 예전처럼 자신을 쉽게 용서해 줄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게
바깥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나뭇가지가 춤을 추듯 흔들렸다. 실내는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어 아주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문설아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아빠, 상대가 상아가 아니었다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 일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그녀는 솔직한 기분을 이야기했다.문기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걔는 신경쓸 거 없어. 네가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는 생각도 하지 마. 애초에 네가 아니었어도 다른 집안 좋고 학벌 좋은 여자랑 결혼했을 거야. 이상준은 정략결혼이 꼭 필요했으니까. 이상준의 가문에서 신분도 불분명한 사생아를 며느리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거야. 다 아빠 잘못이야. 애초에 걔를 집으로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문설아는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엄마가 다르다고 해서 문상아를 차별한 적 없었다.언니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었다.하지만 문상아가 왜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문설아는 눈을 질끈 감고 문기훈의 얘기를 들었다.“설아야, 이런 말을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이혼이라는 게 경솔하게 결정할 일은 아니야. 이상준 그 녀석도 사과하러 온대. 네 시부모님들도 이쪽으로 오는 길이래. 그쪽에서 먼저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어. 인연이라는 건 참 소중한 거야. 홧김에 이혼했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더 많아. 너 상준이 좋아하잖아?”이상준과 첫 맞선을 보고 돌아왔을 때, 문설아는 그가 참 만족스럽다고 말했다.결혼한 뒤로 깨가 쏟아지게 서로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문설아도 충분히 이상준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그래서 가족들은 두 사람이 이혼할 정도로 사이가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만약 한순간의 화를 못 참고 이혼한다면 문설아에게는 이혼녀 딱지가 계속 따라다니게 된다.문설아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눈을 뜨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빠, 나 그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문기훈은 딸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문기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영그룹 사람들은 누구랑 바람이 났는지 알지 못했다.누군지 알았더라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이상준 엄마도 부끄러운 듯이 웃으며 말했다.“그러게요. 전에 상준이가 좀 날라리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변했어요. 설아랑 결혼하고 나서 가정과 사업에 전념하고 딴 마음 가진 적이 없어요.”옆에서 듣고 있던 이상준은 모든 행동을 하기 조심스러운 듯했고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문기훈과 유문정을 보더니 지극히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아버지, 어머니. 전 정말 설아한테 일편단심이었어요. 결혼하고 부끄러운 일 한 번도 한 적 없다고요. 이번 일은 정말 오해예요. 다 결혼 전 일이고 지나간 일이에요. 제 잘못이에요.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는데......”이상준 엄마가 대답했다.“알면 됐어. 결혼했으면 결혼한 사람답게 행동해야지. 우리 집에선 설아 외엔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바깥에서 여우들이 백날 헛된 꿈을 꿔봐야 소용이 없을 텐데. 감히 너희 결혼을 깨뜨리려 하다니?”이상준 엄마는 유문정의 얼굴빛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사돈, 누구나 다 젊어서 방황할 때가 있었지 않습니까? 설아더러 상준이 과거를 용서해달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 주십시오. 조금이라도 설아한테 미안할 짓을 저지른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유문정은 아무리 화가 나도 너무 턱을 치켜올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상대방은 충분히 정중한 태도를 보여줬고 손을 내밀었으니 적당히 따라가야 했다.“사돈, 우리도 바라는 거 없어요. 어차피 우리 집 재산도 다 설아한테 물려줄거고. 저희는 사돈집 재산 같은 거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상준이가 설아를 최선을 다해 아껴주고 잘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거 하나 바랍니다. 여태껏 이런 일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애인데…….”“이번 일은 정말 저희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며칠 전에 휴가를 갔었는
소은정이 길에서 서류를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전화 건너편에서 김하늘이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듯 소리치며 말했다.“내가 진짜 미쳐!”옆에 앉아 있던 소은호가 고개를 돌리더니 눈살을 찌푸렸다.소은정이 의아한 듯 물었다.“왜? 무슨 일인데?”“내가 투자한 영화 말이야. 문상아가 여주인 영화. 이상준이 투자 철회했어. 투자 기회를 다른 사람한테 줬는데 그 투자자가 여주를 바꾸고 싶대!”김하늘의 다급한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소은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담담하게 말했다.“그게 뭐? 당연한 거 아니야?”투자자가 바뀌었으니 그 투자자는 당연히 자기가 스폰하는 여배우를 내세우려 드는게 이 바닥에서는 뻔하디 뻔한 일이니!김하늘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이상한 게 있어. 방금 문설아랑 바에서 술 마시는데 이상준을 만났거든? 화장실 갈 때 또 우연히 문상아가 이상준을 잡으면서 도와달라고 하는 걸 봤어. 젠장, 정말 눈꼴 시려서 원. 지난번엔 우리한테 억울한 척 자기 사정 말했잖아, 둘이 사적으로 연락을 안 한다고? 귀신을 속여라 아주! 얼음공주는 무슨, 아주 그냥 여우년이야 저거!”소은정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물었다.“설마 설아도 같이 있었어?”“당연하지. 나랑 같이 서 있었어. 넌 상상도 못 할 걸? 남자 화장실 앞에서 사람들 다 보는데 문상아가 불쌍한 눈으로 옷을 벗더라고? 포인트는 누구도 벗으라고 한 적 없다는 거야! 이상준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가던데?”김하늘의 말을 듣고 소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아무 짓도 안 했긴 하지만 문설아가 봤으니 해명하려 해도 제대로 말할 수나 있을까?옆에 있던 소은호가 인기척을 냈다.김하늘이 당황했는지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다가 말했다.“옆에 누가 있어?”소은정은 옆에 있던 소은호를 흘깃 쳐다보더니 대답했다.“옆에 오빠 있어.”소은정은 핸드폰을 소은호에게 넘겨줬다.“하늘아, 오랜만이다.”김하늘은 몇 초 머뭇거리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했다.“아, 오빠 안녕하세요.
소은호의 말을 들은 소은정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애당초 SC그룹에 손을 내민 것은 국외 그룹 고위층이었고 국내에서 이어주는 사람은 소은호였으며 소은정은 그저 대략적인 요해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공항.비행기는 20분 연착됐다.소은정은 슬쩍 옆으로 빠져 전동하한테 전화를 걸었다.M국에서 성진형이 곤란한 상황에 빠졌는데 기필코 전동하가 나서길 원했다.그는 어쩔 수 없이 비행기에 올랐고 새봄이를 소은정 집으로 보냈다.소은정이 전화를 끊자, 소은호가 말했다.“왔나 보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호원 일행이 VIP 통로에서 나왔다.소은정과 소은호는 서로 눈을 마주쳤고 마지막 사람이 그 둘 앞에 나타나자, 소은정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소은호도 눈을 찌푸렸다.앞에 서 있는 사람은 냉혹하고 매서우며 키가 크고 훤칠해 압도하는 힘이 느껴졌다.다만 이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소은정이 그를 볼 때마다 마음속 깊이 뭔가 불편하고 슬픔과 절망감이 느껴졌던 데로부터 지금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담담해졌다는 것이다.‘박수혁이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이라고?’VIP 통로가 닫혔고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소은정이 감정 없는 눈빛으로 물었다.“우리랑 협력한 게 너야?”박수혁은 1초라도 눈을 떼기 싫은 듯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원래는 아닌데 내가 샀어.”소은호는 어두워진 안색으로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박 대표, 지금 우리랑 장난하는 겁니까?”소은호는 소은정의 어깨를 다독이며 소리 없이 그녀를 지켜줬다.“가자.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소은정은 고개를 떨구더니 소은호를 따라 그곳을 떠나려 했다.그 순간, 박수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진심으로 협력하고 싶지 않았다면 그렇게 공들여서 오래 연락하지도 않았을 거야. 처음부터 다른 사람 찾았겠지. 은정아, 너한테 사심이 있는 건 인정할게. 하지만 SC그룹이 좋은 선택이라는 것도 팩트야. 행복한 모습 보니까 마음이 놓여.
박수혁이 눈을 돌려 소은호를 바라보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소 대표님, 협력 건은 급하지 않으니까 잘 생각해 봐요. 나쁠 거 하나 없을 거예요. 실험실 설립은 프로젝트의 성패뿐만 아니라 기술이 최종적으로 누구 손에 들어가는지에도 직결된 문제예요. 언젠가 특정 기업이나 제품의 부분적인 핵심 부분을 제재하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고개를 들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박수혁은 말을 마친 뒤에야 이한석을 따라 그곳을 떠났다.소은정과 소은호는 서로 눈을 맞췄다.소은호는 그들이 떠난 방향을 힐끗 쳐다보더니 얼굴을 찡그렸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그런 소은호를 보며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오빠, 이번 계약이 꽤 괜찮은 조건이라면 거부할 필요 없어. 그냥 비즈니스잖아. 태한그룹 사업에도 완전히 손을 뗀 게 아니잖아. 계속 진행해도 돼.”어차피 소은정이 직접 나서야 할 사업도 아니고 그녀가 박수혁을 만날 일도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국내 업무가 이한석 손에 넘어간 이상 박수혁이 크게 상관은 안 할 것 같았고 국내에서 그를 마주칠 일이 없을 테니 별 영향도 없을 것 같았다.소은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아무튼 고민해 보자. 자꾸만 박수혁이 이번에 귀국한 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소은정도 눈썹을 꿈틀거릴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돌아가는 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까 깨발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운전기사도 그 둘을 따라 묵언수행에 돌입했다.박수혁의 차 안.이한석은 뒷좌석에 앉았고 그 옆에는 참 오랜만에 만나는 박수혁이 앉아 있었다.차안은 그의 전보다 더 차갑고 어두웠으며 알 수 없는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한석은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봐 왔지만, 그가 소은정을 끝까지 쫓던 그 몇 년을 제외하고는 그의 속내를 전혀 알 수 없었다.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이한석이 입을 열었다.“대표님, 오늘도 주무시던 곳에서 묵으실 건가요?”
소은정은 너무 놀라 멍 해있었다.소찬식이 한마디 더 보탰다.“총살이래.”소은정은 너무 놀라 손에 있던 물건을 떨어뜨렸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소찬식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박수혁의 원수가 한 짓인지 구체적으로 장담할 순 없어. 이 일은 묻혔어. 박수혁이 귀국한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 오빠한테 만날 일이 있으면 조심하라고 전해.”소찬식의 말을 듣고 소은정은 이 일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아버지가 이 사실을 먼저 알려준 이유가 자기 딸이 손해를 볼가 두려워서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소찬식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M국에 물어봤는데 확실히 SF그룹에 문제가 생긴 거 같아. 위험이 생길 가능성은 적지만 미리 동하한테도 말해서 조심시켜.”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어요, 아빠.”소찬식은 일어나더니 말했다.“그래. 밥은 없다. 빨리 한숨 자고 새봄이 깨면 같이 공부해야 해!”소은정은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얼른 주무세요. 일어나시면 새봄이한테 낚시나 가르쳐주세요!”“그것도 좋은 생각이긴 한데 새봄이가 내 고기 다 쫓아내면 어떡해!”소찬식은 가볍게 웃더니 위층으로 올라갔다.소은정은 웃더니 가방을 들고 나갔다.소은호한테 전화를 걸어 방금 소찬식한테 들은 말을 전달했더니 소은호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고 알겠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소은정은 또 전동하한테 전화를 걸었다.M국은 저녁이었고 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호텔에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전동하는 피곤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회사에 들렀어요. 일이 까다롭게 돼서 며칠 더 걸릴 거 같아요.”그의 피곤함을 눈치챈 소은정이 대답했다.“그래요. 괜찮아요.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전화해요.”그가 일에 집중하길 바랐던 그녀는 박수혁이 귀국했다는 사실을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자칫 방심했다간 일을 그르칠까 두려웠다.전동하는 소은정한테 다정히 안부를 물었고 몸 잘 돌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소은정은 전화
이상준네 집은 서양식 양옥으로 된 단독주택으로 정원이 예쁘고 으리으리했다. 이상준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꿇어 앉아있었고 며칠 사이에 다른 사람이 됐다.예전에 풍겼던 고귀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의 부모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 소파에 앉아있었고 이상준의 아버지가 별안간 욕설을 퍼부었다.“이런 머저리 같은 놈! 사돈집에 가서 겨우 설득했는데 또 이런 짓을 벌이다니! 왜 이렇게 뻔뻔해? 바깥사돈이 나한테 사진을 보여줄 때 내가 얼마나 창피했는 줄 알아? 몰래 여자 만난 건 그렇다 쳐! 화장실 앞에서 그딴 짓을 해? 설아 보는 앞에서? 이 애비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작정한 거냐? 이게 이혼하기 싫다는 사람 태도야?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이상준의 아버지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힘겨운 듯 가슴을 감싸고 안간힘을 썼다.그가 그 낯부끄러운 사진을 봤을 때는 혈압이 수직 상승할 정도였다.사진 속 여자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가 됐지만 옷을 입지 않은 모습은 뚜렷하게 보였다!변명하고 싶어도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이상준의 어머니는 너무 화가 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상준은 눈을 질끈 감더니 무릎을 꿇었다.그는 몹시 어두워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저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 여자가 나한테 일을 부탁했고 옷은 그 여자가 벗은 거라고요! 전 손도 안 댔어요!”이상준의 어머니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안 피하고 옷 벗는 걸 보고 있었단 말이냐?”이상준은 억울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 여자가 술을 많이 마셔서 내가 그대로 자리를 뜨면 그 여자가 쫓아 나올 것 같아서 그랬어요. 그러면 더 이상한 그림이 되니까요.”이상준의 아버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귀신을 속여라 아주? 지어내도 말이 되게 지어야지. 내가 다 부끄럽다!”이상준의 어머니가 끼어들었다.“됐어. 그만 해. 어차피 이혼해야 할 판이야. 잘못한 쪽은 우리 쪽이야. 그쪽에서 네 약점을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