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라가 등 뒤로 시선을 보내자 그 직원은 서둘러 그녀를 소개했다.“소개가 늦었네요. 우리 팀 신입 유은진 씨예요. 해외에서 금방 귀국했다고 하네요. 대기업 근무 경력이 있는 능력이 출중한 친구에요.”“유은진 씨, 이쪽은 기획팀 한 실장님이셔. 심 대표님이랑은 부부 사이야.”‘저 여자 이름이 유은진이였구나.’유은진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짓고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절대 고개 숙이지 않겠다는 거지?’한유라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외국 회사가 대우가 더 좋았을 텐데 유은진 씨는 어떻게 우리 회사로 왔어요?”유은진은 그녀와 말을 섞기 싫었지만 직속 상사가 옆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국내가 더 좋죠.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도 적고요.”유은진의 직속 상사는 면접 볼 때 그녀의 스펙만 보고 바로 합격을 주었다.한유라가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내가 알기로는 해외 대기업 근무 이력이 있는 친구들이 다 인재는 아니더라고요. 그쪽에서 도태돼서 오는 경우도 많고요. 진 팀장님, 사람 잘 보고 뽑으셔야 해요!”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그녀는 우월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남은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유은진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본 진 팀장은 다급히 그녀를 위로했다.“괜찮아. 한 실장님이 좀 직설적이긴 해도 악의는 없을 거야. 내가 은진 씨를 뽑은 건 은진 씨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야. 나중에 성과를 내서 보여주면 실장님도 은진 씨를 다르게 보실 거야!”진 팀장은 속으로 진땀을 뺐다. 평소에 직원들과 친근하게 지내던 그녀가 왜 오늘따라 까다롭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유은진은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기고만장한 한유라의 뒷모습을 차갑게 바라보았다.기분이 잡쳤던 한유라는 인사도 없이 바로 심강열의 사무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하지만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뒤따라온 비서가 말했다.“실장님, 대표님은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그래요.”한유
비서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어디 가셨지? 사무실에 가보니 거기도 없으셨어요…”한유라의 어색한 웃음이 마음에 걸렸던 비서는 사실대로 그녀에게 전달했다. 한유라의 눈동자가 어두워지고 불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니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대표님께 전화해 보겠습니다.”“괜찮아요, 비서님은 가서 일 보세요. 제가 연락해 볼게요.”비서님은 한유라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화난 얼굴도 아닌 듯했다. 한유라의 말에 짧게 답을 한 비서는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한유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회의실에도, 대표실에도 심강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찬 커피를 꽉 쥔 손에 땀이 차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무실을 두리번거리면서 걸었다. 직원들은 마실을 나온 그녀의 모습이 익숙한 듯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비상계단의 구석진 곳에 다가갔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귀신에 홀린 듯 다가갔다. 비상계단에는 쓸모없는 물건들이 쌓여있었고 조심스레 한 발짝씩 내디뎠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고 역시나 심강열의 전 여친 유은진 그 여자였다.“둘이 결혼한 거 이미 알고 있어. 하지만 일부러 어머니의 돈을 받은 게 아니야. 어머니가 내가 외국으로 2년만 갔다 오면 너와 결혼 허락해 준다고 하셨어. 근데 내가 떠나자마자 결혼이라니?”유은진은 울먹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한유라의 귀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한유라는 온몸이 저리고 차갑게 굳어갔다. 배신인가?아니면 실망? 유은진의 원맨쇼이길 바랐다. 심강열과 그의 집안은 엮여 있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전까지 그녀의 귀에 사랑을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는 반나절 사이에 확 바뀌어 버린 것 같았다. “어떻게 되든 간에 이미 되돌릴 수 없어. 이 일이 끝나면 빨리 다시 떠나.”유은진은
한유라는 사과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기 싫어졌다.지금까지의 결혼생활에 회의감이 느껴졌다.심강열이 아직도 이 여자를 숨기려고 하다니! 회사의 모든 직원이 알아도 나한테만 숨기려고 했어…미리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바보처럼 새로 입사한 동료와 함께 웃으면서 지냈을 것이다.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비참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그녀의 모든 비밀에 대해 심강열은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비밀은 한 번도 한유라에게 얘기했던 적이 없었다. 일 년이라는 결혼생활 동안 한유라는 이 사람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오늘 그의 태도를 보니 더 이상 결혼생활은 그저 마지못해하는 생활이 될 것이다.한유라와 심강열 두 사람 사이에 문을 두고 큰 벽이 생겨버렸다.한유라는 심강열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유은진은 본처라도 되는 것처럼 심강열에게 물었다.“ 오해? 그럼 나는 어떡해? 어머니가 주신 돈 나 한 푼도 안 쓰고 있었어. 전부 돌려줄 테니 나한테 다시 와줘.”심강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유은진은 더욱더 소리 내며 울었다.“정말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당신한테 어울릴 것 같아 선택한 일이야. 어떻게 그 정도의 시간도 못 기다려 줘?”얼마 지난 후 심강열은 굳게 닫았던 그의 입을 열었다.“미안해.”심강열은 유은진에게 한 유감의 표시였지만 문밖에 있는 한유라의 귀에는 결혼을 후회하는 것처럼 들렸다. 후회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미안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두 사람의 결혼은 정당한 것이다. 왜 다른 사람에게 미안해야 하는 거지?처음으로 한유라는 무력함을 느꼈다. 한유라는 손에 힘을 풀며 이 현실을 직시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영혼이 털린 사람처럼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원래는 두 연놈에게 뺨이라도 갈기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정작 자기 귀로 들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들과는 모두 좋은 결과가 없었다. 한 남자에게 사기도 당했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말을 마친 심강열은 문을 열고 걸어갔다. 유은진은 놀란 눈을 하고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심강열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니! 애초에 둘이 사귈 때도 심강열은 그녀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심강열은 사랑을 할 줄도 모르고 표현할 줄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자기의 입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다니…비상계단에서 나온 심강열은 쓰레기통 위의 커피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비상계단을 들어올 때 분명히 커피가 없었다. 누가 온 건가?심강열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커피를 손에 들고 대표실에 들어왔다. “이거 누구 커핀지 알아요?”비서는 순진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아! 그거요? 한 실장님이 대표님한테 준 커피 아닌가요?”심강열의 얼굴이 무섭게 돌변했다. “유라가? 유라가 왔었어?”순간 심강열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비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네, 방금까지 대표님을 찾고 계시다가 갑자기 말도 없이 가셨어요.”비서는 멈칫하더니 말했다.“아! 표정이 안 좋아 보이던데… 화나는 일이 있었나…?”심강열의 표정이 굳더니 손에 쥔 커피를 버리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어갔다.“대표님, 조금 이따 골프 약속이…”비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강열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비서는 의아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대표님 오늘 이상하시네… 한 실장님도 이상하시고…”옆에 있던 동료가 헛기침하면서 말했다.“대표님이 전 여친이랑 비상계단으로 갔잖아. 아마 한 실장님이 둘의 모습을 본 거겠지. 둘이 무슨 짓을 했는지 누가 알아?”말이 끝나자마자 비상계단에서 한 여자가 나타났다. 얼마나 울었는지 그녀의 눈은 빨갛게 부어올랐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옷은 흐트러진 채 기진맥진해 있었고 약간 가쁜 숨을 몰아쳤다. 그 모습을 본 직원들은 순간 멈칫했다.사무실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유은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터벅터벅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가 버튼을 눌렀다.
심강열의 마음이 복잡해 왔다.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았다.“유라 씨 집에 들어갔나요?”“아니요, 사모님 대표님 찾으러 회사에 가신다고 하셨는데요?”“집에 돌아오면 연락 좀 주세요.”“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심강열은 큰 숨을 몰아쉬었다. 유은진과의 대화 내용을 들은 것이 틀림없다. 유은진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유은진의 말투는 톡 쏘는 캡사이신처럼 매운 것을 심강열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의 큰 그림으로 그녀를 내쫓은 것은 심강열에게 죄책감을 더해주었다. 그래서 그녀의 막말에도 그녀의 입을 막지 않았다. 하지만 한유라가 마침 그 말을 듣게 되다니…그녀의 전화번호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오전까지만 해도 사랑을 나누던 그들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이지?심강열은 끝을 낼 생각이 없다.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된다. 어차피 회사에 돌아가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그는 차에 올라타 집으로 돌아갔다. 한유라는 길거리를 터벅터벅 걸어가다 옆에 있던 술집을 발견하였다.“사운드 바”.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술집은 아직 오픈 전인 듯 했다. 매니저가 한유라를 보고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아직 오픈 전이었지만 한유라는 예외였다.“이게 얼마 만이에요, 저번에 남겨둔 술 아직도 있어요. 계속 앉던 자리에 앉으실 건가요? 노래 불러 드릴까요?”매니저는 신나게 옆에서 쫑알댔다. 한유라가 오랫동안 발길을 하지 않은 탓인지 술집은 점점 영업이 어려워져 갔었다. 한유라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바에 앉았다.“그래요, 불러줘요.”매니저는 활짝 웃으면서 뒤돌아서 누군가에게 전화했다.“무슨 노래 들을래요?”“아무거나.”“뭐 마실래요?”“아무거나.”한유라는 고개를 숙이고 다운된 목소리로 말했다. 한유라는 아무 생각 없이 방탕하게 놀고 싶었다. 하지만 방탕하게 노는 게 심강열에게 복수가 될 수 있을까?어떻게 해야 하지? 모른 척해야 하나?아니면 부잣
이혼하려면 정리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심강열의 전 여친때문에 가정파탄이 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슨 얼굴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별거하면 심강열을 포기하는게 되지만, 사모님의 신분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의미였다. 수많은 부잣집 사모님처럼 역겨운 일들을 못 본 체하며 벌어다 주는 돈으로 어린 남자들이나 만나는 게 나을까?어떻게 되는 상관없을 것 같다. 이혼 아니면 별거. 어떤 선택을 하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소은정은 한유라의 입에서 나온 이혼이라는 말에 놀라서 어버버했다. 몇 초간 망설이던 소은정이 물었다.“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지? 무슨 일 있었어?”한유라는 큰 숨을 몰아쉬더니 말했다.“장난 아니야. 나 진심이야. 이제야 알겠어. 사랑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 전에도 그랬고 이번 결혼도 마찬가지야. 나라고 쿨하지 못할 거 뭐 있어?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모든 사람이 그녀에게 쓰디쓴 교훈을 안겨주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해 버렸다. 소은정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혹시 무슨 오해라도 생긴 거 아니야?”한유라는 자신의 마음을 억제하지 못한 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심강열이 전 여친을 회사에 불러들였어. 그 사람이 전 여친이라는 걸 회사 사람들 다 아는데 나한테만 비밀로 했어. 그리고 우리 결혼에 대해 후회한다고 말하는 걸 내 귀로 다 들었어! 이게 오해일까?”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한유라의 말을 듣고 얼어붙었다. 매니저는 어떻게 할 줄을 몰라 그저 안주를 한유라 앞에 놓아주면서 조용히 곁에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유라가 결혼을 해 깨가 쏟아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역시 이 바닥에서 천생연분 같은 관계는 존재하지 않나 보다. 한유라의 말을 들은 소은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유라의 우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심강열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한
술집 직원은 본의 아니게 한유라의 사생활을 듣고 더욱 조심스럽게 시중을 들었다.매니저는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즐겁게 해주려 애썼지만, 한유라는 술 마시는 데만 집중했다.그녀의 핸드폰에 각자 다른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심강열의 집.심강열이 여러 개 번호를 바꿔가며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그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참다못해 결국 소은정한테 전화를 걸었지만, 소은정 역시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다.한유라가 사전에 소은정한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아니면 소은정이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전화를 끊을 리가 없지.그는 한참 망설이다 전동하한테 전화를 걸어 대신 물어보게 하려고도 했지만, 이 일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웃음거리가 될까 봐 두려웠다.옆에 있던 손 아주머니는 무슨 일이 벌어진 지도 모른 채 전전긍긍하며 그 자리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심란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심강열은 손 아주머니더러 자기 일을 보라고 했다.손 아주머니는 한유라와 상관있는 일이라는 의심이 들어 이 일을 몰래 심강열의 어머니 하시율한테 알려줬다.손 아주머니는 하시율이 심강열과 한유라를 잘 보살펴 주라고 보낸 사람이다. 비록 하시율이 두 사람의 일에 대해서 보고할 필요가 없고 반드시 둘의 사생활을 지켜주라고 했지만,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시율과 상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강열이 집에서 저녁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그는 다급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직접 나가 찾을 수밖에 없었다.먼저 생각난 것은 소은정의 집이었다.하지만 소은정의 태도는 몹시 차가웠고 그저 아랫사람들을 통해 한유라가 없다고 전해줄 뿐이었다.심강열은 여기저기 헤매다가 할 수 없이 한유라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한유라의 행방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한유라 어머니는 현명한 사람이었다.그녀는 한 번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둘이 싸웠어?”심강열은 어떻게 대답해야
심강열이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갓난아이 같은 부드러운 살결이 발그스름한 취기를 띠고 있었다.그는 그녀의 자는 모습을 보고 화난 것도 잊었다.심강열은 자기가 한 여자를 이토록 마음 다 해 사랑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예전에 그는 결혼은 비즈니스고, 서로 존중하기만 하면 감정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고 여겼었다.심지어 그는 아내와의 사랑을 기대하지도 않았었다.하지만 한유라가 나타난 뒤부터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그녀는 그의 삶에서 통제를 잃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됐다.그는 차가운 삶을 뜨겁게 달궈준 그녀를 잃을 뻔했다.다행히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그는 한참 동안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아주머니가 해장국을 들고 오는 것을 보고서야 눈을 돌렸다.아주머니는 심강열이 한유라한테 참 다정하다고 생각하면서 하시율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심강열이 해장국을 들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깨웠지만 한유라는 깊은 잠에 빠져들어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는 할 수 없이 해장국을 옆에 놓고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시도했다.한유라는 누군가 자신이 자는 걸 방해했다는 생각에 화가 났는지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심강열의 뺨을 때렸다.심강열은 한숨을 쉬다가 그녀의 얼굴을 정성스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정신 차려. 해장국 먹고 다시 자. 입 벌려. 아……”그는 한유라의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를 전혀 개의치 않고 건장한 팔을 드러내며 그녀에게 어떻게든 해장국을 먹이려 했다.한유라는 짜증이 난 듯 눈을 찌푸렸고, 전혀 협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심강열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더니 해장국을 그녀의 입가로 가져가서는 아이 달래듯 다정히 말했다.“몇 입만 먹고 자자. 아주머니가 해준 해장국 평소에 잘 먹던데. 입 벌려……”한유라는 잠에서 깼는지 그를 몇 초 동안 응시했다.심강열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이마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더니 말했다.“착하지, 우리 유라, 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