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열의 마음이 복잡해 왔다.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았다.“유라 씨 집에 들어갔나요?”“아니요, 사모님 대표님 찾으러 회사에 가신다고 하셨는데요?”“집에 돌아오면 연락 좀 주세요.”“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심강열은 큰 숨을 몰아쉬었다. 유은진과의 대화 내용을 들은 것이 틀림없다. 유은진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유은진의 말투는 톡 쏘는 캡사이신처럼 매운 것을 심강열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의 큰 그림으로 그녀를 내쫓은 것은 심강열에게 죄책감을 더해주었다. 그래서 그녀의 막말에도 그녀의 입을 막지 않았다. 하지만 한유라가 마침 그 말을 듣게 되다니…그녀의 전화번호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오전까지만 해도 사랑을 나누던 그들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이지?심강열은 끝을 낼 생각이 없다.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된다. 어차피 회사에 돌아가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그는 차에 올라타 집으로 돌아갔다. 한유라는 길거리를 터벅터벅 걸어가다 옆에 있던 술집을 발견하였다.“사운드 바”.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술집은 아직 오픈 전인 듯 했다. 매니저가 한유라를 보고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아직 오픈 전이었지만 한유라는 예외였다.“이게 얼마 만이에요, 저번에 남겨둔 술 아직도 있어요. 계속 앉던 자리에 앉으실 건가요? 노래 불러 드릴까요?”매니저는 신나게 옆에서 쫑알댔다. 한유라가 오랫동안 발길을 하지 않은 탓인지 술집은 점점 영업이 어려워져 갔었다. 한유라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바에 앉았다.“그래요, 불러줘요.”매니저는 활짝 웃으면서 뒤돌아서 누군가에게 전화했다.“무슨 노래 들을래요?”“아무거나.”“뭐 마실래요?”“아무거나.”한유라는 고개를 숙이고 다운된 목소리로 말했다. 한유라는 아무 생각 없이 방탕하게 놀고 싶었다. 하지만 방탕하게 노는 게 심강열에게 복수가 될 수 있을까?어떻게 해야 하지? 모른 척해야 하나?아니면 부잣
이혼하려면 정리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심강열의 전 여친때문에 가정파탄이 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슨 얼굴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별거하면 심강열을 포기하는게 되지만, 사모님의 신분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의미였다. 수많은 부잣집 사모님처럼 역겨운 일들을 못 본 체하며 벌어다 주는 돈으로 어린 남자들이나 만나는 게 나을까?어떻게 되는 상관없을 것 같다. 이혼 아니면 별거. 어떤 선택을 하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소은정은 한유라의 입에서 나온 이혼이라는 말에 놀라서 어버버했다. 몇 초간 망설이던 소은정이 물었다.“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지? 무슨 일 있었어?”한유라는 큰 숨을 몰아쉬더니 말했다.“장난 아니야. 나 진심이야. 이제야 알겠어. 사랑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 전에도 그랬고 이번 결혼도 마찬가지야. 나라고 쿨하지 못할 거 뭐 있어?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모든 사람이 그녀에게 쓰디쓴 교훈을 안겨주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해 버렸다. 소은정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혹시 무슨 오해라도 생긴 거 아니야?”한유라는 자신의 마음을 억제하지 못한 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심강열이 전 여친을 회사에 불러들였어. 그 사람이 전 여친이라는 걸 회사 사람들 다 아는데 나한테만 비밀로 했어. 그리고 우리 결혼에 대해 후회한다고 말하는 걸 내 귀로 다 들었어! 이게 오해일까?”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한유라의 말을 듣고 얼어붙었다. 매니저는 어떻게 할 줄을 몰라 그저 안주를 한유라 앞에 놓아주면서 조용히 곁에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유라가 결혼을 해 깨가 쏟아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역시 이 바닥에서 천생연분 같은 관계는 존재하지 않나 보다. 한유라의 말을 들은 소은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유라의 우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심강열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한
술집 직원은 본의 아니게 한유라의 사생활을 듣고 더욱 조심스럽게 시중을 들었다.매니저는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즐겁게 해주려 애썼지만, 한유라는 술 마시는 데만 집중했다.그녀의 핸드폰에 각자 다른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심강열의 집.심강열이 여러 개 번호를 바꿔가며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그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참다못해 결국 소은정한테 전화를 걸었지만, 소은정 역시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다.한유라가 사전에 소은정한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아니면 소은정이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전화를 끊을 리가 없지.그는 한참 망설이다 전동하한테 전화를 걸어 대신 물어보게 하려고도 했지만, 이 일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웃음거리가 될까 봐 두려웠다.옆에 있던 손 아주머니는 무슨 일이 벌어진 지도 모른 채 전전긍긍하며 그 자리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심란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심강열은 손 아주머니더러 자기 일을 보라고 했다.손 아주머니는 한유라와 상관있는 일이라는 의심이 들어 이 일을 몰래 심강열의 어머니 하시율한테 알려줬다.손 아주머니는 하시율이 심강열과 한유라를 잘 보살펴 주라고 보낸 사람이다. 비록 하시율이 두 사람의 일에 대해서 보고할 필요가 없고 반드시 둘의 사생활을 지켜주라고 했지만,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시율과 상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강열이 집에서 저녁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그는 다급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직접 나가 찾을 수밖에 없었다.먼저 생각난 것은 소은정의 집이었다.하지만 소은정의 태도는 몹시 차가웠고 그저 아랫사람들을 통해 한유라가 없다고 전해줄 뿐이었다.심강열은 여기저기 헤매다가 할 수 없이 한유라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한유라의 행방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한유라 어머니는 현명한 사람이었다.그녀는 한 번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둘이 싸웠어?”심강열은 어떻게 대답해야
심강열이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갓난아이 같은 부드러운 살결이 발그스름한 취기를 띠고 있었다.그는 그녀의 자는 모습을 보고 화난 것도 잊었다.심강열은 자기가 한 여자를 이토록 마음 다 해 사랑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예전에 그는 결혼은 비즈니스고, 서로 존중하기만 하면 감정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고 여겼었다.심지어 그는 아내와의 사랑을 기대하지도 않았었다.하지만 한유라가 나타난 뒤부터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그녀는 그의 삶에서 통제를 잃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됐다.그는 차가운 삶을 뜨겁게 달궈준 그녀를 잃을 뻔했다.다행히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그는 한참 동안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아주머니가 해장국을 들고 오는 것을 보고서야 눈을 돌렸다.아주머니는 심강열이 한유라한테 참 다정하다고 생각하면서 하시율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심강열이 해장국을 들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깨웠지만 한유라는 깊은 잠에 빠져들어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는 할 수 없이 해장국을 옆에 놓고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시도했다.한유라는 누군가 자신이 자는 걸 방해했다는 생각에 화가 났는지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심강열의 뺨을 때렸다.심강열은 한숨을 쉬다가 그녀의 얼굴을 정성스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정신 차려. 해장국 먹고 다시 자. 입 벌려. 아……”그는 한유라의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를 전혀 개의치 않고 건장한 팔을 드러내며 그녀에게 어떻게든 해장국을 먹이려 했다.한유라는 짜증이 난 듯 눈을 찌푸렸고, 전혀 협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심강열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더니 해장국을 그녀의 입가로 가져가서는 아이 달래듯 다정히 말했다.“몇 입만 먹고 자자. 아주머니가 해준 해장국 평소에 잘 먹던데. 입 벌려……”한유라는 잠에서 깼는지 그를 몇 초 동안 응시했다.심강열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이마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더니 말했다.“착하지, 우리 유라, 좀만
욕실에서는 여전히 물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심강열의 말투는 어느때보다 진지했으나 한유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는 한유라의 이런 모습을 처음 봤다.이런 일쯤은 쉽게 넘어갈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듯싶었다.물소리가 멈추고 그녀는 욕조에 몸을 담갔다.평소에도 한유라는 목욕하러 들어가면 마시지며 피부 관리며 두 시간이 걸렸다.그녀는 가끔 심강열과 함께 목욕하곤 했다.한유라의 달콤한 유혹을 참기 힘들었기에 심강열도 가끔 협조했었다.그녀 때문에 여러 번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일도 생겼는데 그때마다 그녀를 혼내기도 했다.그는 그랬던 그녀가 지금 문을 걸어 잠그고 그를 무시하는 행동을 보며 머리가 새하얘졌다.오날따라 유독 길게만 느껴지는 두 시간이 지나고 문이 열렸다.그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침대 옆에 앉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가가 수건으로 그녀의 머리를 닦아주려고 한다.목욕을 한 탓인지 그녀의 얼굴은 발그레했고 취기도 거의 가신듯했다.그녀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했다.“아직 안 잤어?”심강열은 그녀를 몇 초 동안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 나서 평소처럼 그녀의 머리를 말려주려 했다.한유라는 거절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스킨 케어를 하기 시작했다.심강열은 잠깐 느껴지는 그 어색한 기류를 캐치해냈다.그녀가 아직도 그 일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가 그를 멀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그는 한숨을 쉬며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유라야, 오늘 화 많이 난 거 알아. 은진이가 회사에 출근하는 거 알고 있었지?”한유라는 그의 말에도 고개를 숙인 채 에센스를 바르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고 가볍게 얼굴을 두드렸다.그녀는 머리를 들지도 않고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은진이가 누군데?”심강열은 흠칫 놀라서 거울로 그녀의 모습을 바라봤고 긴장감에 입술을 오므렸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심강열을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꽤 오랜 정적이 방 안을 감쌌다.심강열은 마른침을 삼켰고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니야. 난 그냥 해명하고 싶었어. 낮에 들은 건……”한유라가 가볍게 웃더니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들은 게 진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다 내 오해고 은진 씨 존재도 몰랐다고 변명하고 싶은 거냐고. 아니다. 오늘만 은진 씨 만났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건가……”한유라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 심강열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그녀가 하는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고 그는 자기 입으로 말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심강열은 다시 힘없는 목소리로 해명을 시도했다.“믿을 진 모르겠지만……”한유라가 아무런 표정도 없는 차가운 얼굴로 심강열의 말을 끊었다.“무슨 말을 하든 다 안 믿어.”두 사람의 사이는 뒤틀리고 말았다.한유라는 그를 믿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유은진이 모임에 나타난 것도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기 위해서가 아닌가?심강열이 유은진을 회사에 들인 것도 다시 옛날처럼 지내고 싶어서가 아닌가?그녀는 조금 무디긴 했지만, 바보가 아니었다.심강열은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도 한유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서는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듯했다.한유라에게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기에 꽤 당당했던 그는 일이 더 커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그는 가볍게 웃고는 답답함을 숨기며 말했다.“그래서? 내 해명은 듣지도 않고, 나한테 사형 선고 내리는 거랑 뭐가 달라?”그를 노려보는 한유라의 눈동자에는 허탈함과 가소로움이 가득 배어있었다.“낮에 내 귀로 똑똑히 들어서 어디서부터 진짜고 어디서부터 가짠지 모르겠어.”심강열이 한층 어두워진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은진이 내보낼 테니까 신경 쓰지 마.”한유라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차갑고도 낯선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까지 억지로 보낼 필요 없어. 은진 씨가 안 간대도 난 상관없어.”심강열은 귀를 의심하며 그 자리에 멍하니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하시율 여사가 전화기 너머 말했다.“내일 유라 데리고 집에 와서 밥 먹어.”심강열은 당황해서 머리가 하얘졌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둘러댔다.“시간 없어요.”그의 말투가 심상치 않음을 하시율은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그녀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왜? 그딴 년이 한 거짓말 가지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꼴 하고는. 내가 너희 사이 갈라놓은 것처럼 뭐 하는 거야?”심강열은 당황한 듯 대답했다.“어머니, 그게 아니라……”하시율은 화가 난 듯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내일 유라 데리고 안 올 거면 나 볼 생각하지 마! 아예 유강열이라고 성도 바꾸지 그러니?”하시율은 화가 잔뜩 난 채로 전화를 끊었다.손 아주머니가 그녀에게 상황을 얘기하지 않았더라면 회사까지 찾아가 이 일에 대해 알아보진 않았을 것이다.심강열과 유은진이 계단에서 한 대화 탓에 회사에는 온갖 소문이 돌고 있었다.하시율은 아들이 바람을 피우는 더러운 짓 따위 할 리가 없다고 믿었다.유은진 그 나쁜 년이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 위해서 일부러 한 말이라면 모를까.그때 당시 일어난 일은 하시율만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단순한 부부싸움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유은진 그년이 끼어있다니…… 결코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심강열은 그대로 거실 소파에 누웠지만 두통이 느껴져 잠이 오질 않았다.동이 튼 무렵에야 잠시 눈을 붙였지만 금세 깨버렸다.아주머니는 아침 일찍 식사를 준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유라도 일어나서 세수하러 갔다.심강열이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마침 한유라와 마주쳤다.잠시 정적이 흘렀지만, 한유라가 웃으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좋은 아침이야.”심강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유로운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영문 모를 울화가 치밀었다.한유라는 개의치 않고 아침을 먹으면서 손 아주머니의 솜씨가 좋다고 칭찬까지 했다.신선한 해산물을 곁들인 죽이 오늘따라 더 맛있다고 칭찬하자 손 아주머니는 흐뭇해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출근
한유라를 바라보는 심강열의 눈에는 그녀를 향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가득했다.그는 밤새워 고민한 끝에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어젯밤 오갔던 짜증 섞인 말투와 오해로 인해 그는 이성적이지 못했다.한유라 또한 술에 취한 상태라 제정신이 아니었다.하지만 오늘은 서로가 마음을 어느 정도 가라앉힌 상태였다.아무 말 없는 한유라를 보며 그는 잠시 망설이다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말했다.“허튼 생각 마. 우린 영원히 오래오래 같이 있을 테니까.”그는 그녀의 손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 순간, 한유라의 얼굴은 조금 편안해진 듯했고 차가웠던 표정이 조금 풀렸다.그가 하는 말이 거짓말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그의 표정이 어젯밤과 달라서인지 한유라는 계속 심강열을 응시하고 있었다.영원히, 오래오래 같이 있을 거라는 말.유치하지만 설레는 그 말에 그녀는 순간 마음이 움직였다.쌓아두었던 마음의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그녀는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려는 것일까?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미소 짓는 심강열을 바라보다가 차에서 내리려 했다.심강열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조수석 차 문을 열고 한유라의 손을 잡고는 그녀를 차에서 내리게 했다.둘은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탔고 누가 보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심강열은 동료들이 함부로 수군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평소에 부부 사이가 얼마나 좋은지 티 내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이 장면을 봤으면 했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꼭대기 층 사무실로 향했다.심강열은 기분 좋게 한유라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저녁에 어머니가 밥 먹으러 오래. 당신 좋아하는 갈비 준비하신데.”한유라는 마침내 인색한 눈빛을 거두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두 사람은 멈칫했다.비서와 동료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비서가 울며 겨자 먹기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은진 씨가 아침부터 기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