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호는 전동하만 들을 수 있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전동하는 눈썹만 살짝 치켜올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물론 소은해 역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지만 소은호에 비하면 아직도 거리가 있었다.그러니 소은호가 이런 말을 해도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게다가 그냥 지나가는 농담일 뿐이었다.소은해는 소은정과 가장 잘 놀아주는 오빠였다. 그와 같이 다니면 소은정도 즐거워했기에 전동하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두 사람은 투자건에 대해 의견을 교류한 뒤, 사람들과 인사하러 다녔다.이 파티가 중요한 이유는 신도시 개발 추진 프로젝트에 공개 되지 않은 투자항목이 있기 때문이었다. 군수물자 관련 사업이었다.이윤이 꽤 남는 사업이었고 정계 인사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정치인들이 힘을 실어주면 그 기업의 가치는 수직 상승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소은호가 바쁜 일을 제쳐두고 직접 참석한 이유이기도 했다. 기회만 잘 잡으면 SC그룹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소은호는 중요인사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대화를 나누면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전동하를 바라보았다. 대범하면서도 예의 바른 몸짓과 말투,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했다.그를 보고 있자니 조금 전에 만났던 누군가가 떠올랐다.그는 성격이 괴팍하고 차가워서 사람들에게 중압감을 주는 인물이었다.전동하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하지만 그래서 소은정을 시름 놓고 그에게 시집 보낸 이유이기도 했다.소은호가 천천히 전동하에게 다가가자 사람들은 눈치 있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전동하는 술은 별로 마시지 않았고 투자 항목에 큰 관심을 가진 것 같지도 않았다.소은호는 술잔을 내려놓고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흥미가 당기는 항목 있어?”전동하가 웃으며 말했다.“제가 관심을 가진 항목은 다른 사람들도 눈독들이고 있어서요.”관심이 있다고 했지 꼭 투자하고 싶다는 얘기는 아닌 듯했다.“매제도 혹시 그 소문 듣고 왔어?”공개되지 않은 사업, 정계
소은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동하는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그러니까 태한그룹은 이번 경쟁에서 가장 유력한 경쟁자였다.박수혁이 여기 나타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전동하는 사람들과 섞여 있는 박수혁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또 돌아왔다고?‘정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나? 아주 대범하게 귀국하셨네. 핑계거리가 있다고.’하지만 아무도 그가 저질렀던 짓을 잊지 않았다.소은호는 그의 표정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막내는 아직 옛날 일 기억하지 못하니까 사람들 입단속 잘 시켜야겠어.”전동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어차피 그 성격에 남이 뭐라고 해도 안 믿을 거예요.”소은정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이다.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그에게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둘은 점점 사이가 좋아지고 있었다.그가 조심스럽게 스킨십을 시도했을 때도 거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다.박수혁에 관한 기억을 잃은 그녀는 전보다 더 즐거워 보였다.그녀의 요즘 루틴은 그와 닭살행각을 벌이거나 아기와 놀아주거나 아니면 친구들과 쇼핑하고 수다를 떠는 게 전부였다.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전혀 영향이 없었다.병원에서는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했고 한 달 정도 지나면 회복할 거라고 했는데 아직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소찬식도 지금 이대로가 더 좋다고 말했다.예전의 소은정은 일을 너무 사랑해서 극도의 피로감을 느낄 때까지 일하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해서 안타까웠다.요즘은 집에서 아빠와 이거 사고 싶고 저거 사고 싶다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도 좋았고 소찬식은 무척 그런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어차피 딸이 원하는 건 다 사줄 수 있었으니까! 그는 그걸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다.전동하가 핸드폰을 꺼내자 소은정에게서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언제 끝나냐는 문자였다.그는 곧장 답장을 보냈다.“오늘은 어디 가서 놀았어요?”소은정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손에 술잔을 든 박수혁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
소은호는 박수혁이 아니더라도 정 국장과 인맥을 쌓으려 했다. 두 집안은 이 프로젝트의 라이벌 관계였다. 하지만 누구의 손에 들어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공과 사는 명확해야 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희망을 품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연회장을 들어오는 박수혁의 그림자를 보고 희망의 불씨가 사라졌다. 하지만 소은호는 달랐다. SC그룹은 실력이나 명예 면에서도 태한그룹에 떨어지지 않았다. 소은호가 몸을 일으키면서 전동하를 보고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박수혁과 함께 떠났다. 박수혁은 송화시의 뿌리 깊은 나무였다. 정말 박수혁과 싸우게 된다면 매부인 전동하가 손해를 입게 될까 걱정되었다. 전동하는 떠나가는 박수혁의 뒷모습을 어두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휴대전화의 불빛이 밝아졌다. 소은정의 답장이었다.“백화점에 유라 찾으러 왔어요, 이따가 백화점으로 데리러 와줘요.”전동하의 어두웠던 표정이 풀리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박수혁의 말이 떠올랐다. 둘이 만났다는… 박수혁이 이렇게까지 낯이 두꺼운 줄은 몰랐다. 소은정의 앞에 나타나다니… 소은정에게 박수혁에 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지?전동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소은정은 박수혁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전동하가 박수혁에 대해 소은정에게 묻게 된다면 반드시 꼬치꼬치 캐물을 것인데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하지? 이렇게 골치 아프긴 처음이다. 잠시 생각하던 전동하는 묻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그녀가 정말로 박수혁 생각을 한다면 질투에 미쳐버릴 것이다. 누군가 그에게 찾아와 인사말을 했지만, 생각에 잠긴 전동하는 듣지 못했다.몇 번이고 전대표님을 부르고 난 후에야 알아차리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상대방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말했다.“또 무슨 큰 프로젝트 구상을 하기에 이렇게 골똘히 생각하시는 겁니까?”그는 백운시의 대영그룹 이상준이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소은정과 그의 아내인 문설아가 자주 연락을 하기 때문이었다. 가끔 영상통화를
고개를 숙이고 웃던 전동하는 솔직하게 말했다.“제가 투자하는 프로젝트마다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운에 맡기는 편이죠. 그 프로젝트는 이윤이 많은 프로젝트가 아니었어요. 제 아내가 저와 다른 사람이 그 프로젝트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듣고 설아 씨에게 전해준 거예요. 리스크는 저도 얘기해줬어요. 투자라는 건 신중해야 하는 거니깐요.”전동하의 말을 들은 이상준의 마음속에 있던 분노가 사라지는 듯했다. 문설아는 전동하를 투자계의 신화로 추앙하고 있었다. 전동하의 초상화가 있다면 사서 집에 걸어놨을 것이다. 이상준이 말리지 않았으면 휴대전화의 바탕화면을 전동하로 할 여자였다. 얼마나 전동하에게 푹 빠져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빠진 것은 사람 전동하가 아닌 투자계에서의 불패 신화인 전동하였다. 매번 실패만 하던 문설아에게 전동하의 존재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바로 400억을 전동하가 소개해 준 프로젝트에 투자하였다, 이상준이 돈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문설아에게 이 프로젝트에 관한 미래가 좋지 않음을 분석해 주어도 문설아는 이상준의 능력을 의심하면서 이상준을 무시하였다. 화가 난 이상준은 이 자리에서 전동하에게 똑바로 묻고 싶었다. 하지만 전동하에 대해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전동하는 웃으면서 말했다.“제가 부인께 다시 해석할까요? 아니면 제가 은정씨보고 설명하라고 할게요. 지금 투자금을 빼더라도 늦지 않았어요.”전동하의 태도는 겸손하고 진솔했다. 이상준은 한숨을 돌리면서 살며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자리를 뜨면서 말했다.“아니에요, 끝까지 가보라고 하죠.”그때가 되면 당신을 신처럼 추앙하지는 않겠죠.마음속의 말을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그렇게까지 전동하를 믿는다면 한번 당해봐야지 덕질을 멈출 것이다. 전동하의 프로젝트가 곤두박질을 친다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흥! 전동하는 웃더니 강요하지 않았다. 그 프로젝트는 큰 이윤이 나기는 어려웠지만 손해를 볼 일은 없었다. “이 대표님은 왜
파티가 끝날 즈음 소은호와 박수혁의 얘기도 끝나갔다. 서로가 제시할 조건과 우세에 관해도 얘기가 얼추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사적으로 어떻게 경쟁할지였다. 이번 파티는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점차 사람들이 파티장을 떠나갔지만, 전동하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한 사람이 전동하에게 다가가 안부를 전했다. “전 대표님, 소 대표님한테 안부 좀 전해주세요.”전동하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알겠습니다. 은정 씨도 대표님과 했던 프로젝트를 통해 대표님의 칭찬을 많이 했어요. 언제 시간 날 때 골프라도 치시죠.”“물론이죠!”……다들 허허 웃으면서 파티장을 떠났다. 정 국장이 떠나려고 할 때 전동하도 옷을 정리한 후 따라나섰다. 정 국장이 차에 올라타려고 할 때 전동하가 그를 멈춰 세웠다. “정 국장님…”특전사 출신이라 그런지 적지 않은 나이에도 탄탄한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혁이 뒤돌아서 눈을 끔뻑이었다. 송화시에서 명성이 자자한 전동하였다. 전동하가 투자한 프로젝트는 적지 않았다. 그의 배경 또한 좋았지만 겸손하다고 소문났다. 그리고 또 소은정과의 결혼이라… 소은정과의 결혼식에 참가한 사람은 몇 안 되었다. 가족들과 친구들만 부른 스몰 웨딩이었기 때문이다. 전동하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소은정때문에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라 떠들어 댈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국내에 없었던 새 프로젝트를 전동하가 가져와 한국 시장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고 유럽 스마트 기술의 문을 연 것은 전동하였다.하지만 전동하가 손을 뻗은 업계는 정치계의 인사와 소통이 적은 부분이었었다. 정 국장과도 안면을 틀 일이 없었다. 특히나 국내에서는 크게 활동이 없었다. 소은정과 결혼한 후에야 전동하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혁은 고개를 들어 웃더니 말했다.“전 대표님, 시간이 늦었어요. 다음에 다시 만나서 얘기하죠?”전동하가 천천히 정혁의 앞에 걸어갔다. 그의 눈은 다정했고 겸손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정혁에게는 두 기업 모두 괜찮은 선택지였다. 박수혁은 특수부대 출신이었고 여러 면에서 우세하였다. 그리고 태한 그룹에 관해서는 칭찬하기도 입 아팠다.하지만 소은호가 내놓은 시안은 독특하고 건설 디자인에서의 일부 부분은 정혁이 생각했던 것과 일치한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SC그룹은 일부 영역에서 같이 투자한 부분도 있어 우세인 부분이 있었다. 여러 면에서 대등한 부분이 있어 앞으로 더 많이 얘기를 나누고 결정할 것이다. 섣부르게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동하라… 정혁의 말을 들은 전동하가 웃었다. 그의 얼굴에는 큰 기대와 열정은 없었다. 이 태도는 정혁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잠시 멈칫하던 전동하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관심이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정혁은 다행이라는 듯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말투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났다.“사실 전 대표의 실력이야 모두 주목하는 바예요. 만약 기회가 된다면 제가 추천할 겁니다. 하지만…”전동하도 이미 알고 있으니 솔직하게 전동하게 얘기했다.“하지만 군수물자 면에서는 배경 조건이 중요해요. 전 대표님은 미국에서 왔고 미국에서의 명성이 작지 않은 것을 알고 있어요. 미국이 현재 이 면에서 우리나라의 발전에 대해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어요. 자칫했다가는 국제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정혁이 머뭇거리더니 남은 말을 하지 못했다. 전동하는 웃더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정 국장님의 걱정도 이해가 됩니다. 이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저도 무작정 이 프로젝트에 손을 대지는 않습니다. 정 국장님도 이미 생각이 있으실 거니 여러 사람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정혁의 안색이 편안하게 풀렸다.“그러면 전 대표님이 하고 싶은 얘기는 SC그룹과 관련된 겁니까? 이 프로젝트에 SC그룹이 경쟁에 참여는 하지만 위에서 전면적으로 확인한 후 결정할 겁니다.”정혁도 전동
전동하가 웃더니 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제가 관련된 자료를 메일로 보내 드릴 테니 확인하시고 연락해 주시길 바랍니다.”정혁은 순간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흥분한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만약 당신의 기술적 기초가 이미 있다면 몇백억 절약은 물론이거니와 시간도 많이 절약할 수 있을 거예요.”말을 마친 정혁이 갑자기 침착해지더니 물었다.“전 대표님 쪽의 프로젝트가 개인 프로젝트입니까? 아니면 미국과 관련된 프로젝트입니까?”정혁은 만약 전동하가 자신을 속인 것이라면 나라의 이득에 손해를 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안위에도 위협이 일어날 것이다. 전동하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이렇게 민감한 투자 항목에는 다른 사람과 손을 잡지 않습니다. 손을 잡게 되면 그들의 손에 넘어 갈수 있어요. 그래서 기지를 남아프리카에 세운 원인이기도 합니다. 만약 정 국장님이 원한다면 자료를 확인하신 후 사람을 보내 둘러보셔도 좋습니다. 저도 저희의 계약에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정혁은 얼굴에 웃음기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전동하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정말 겉을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겠네요. 저는 이때까지 전 대표님이 투자자인 줄 알았지만 이렇게 넓은 곳까지 투자했을 줄은 몰랐네요!”전동하는 웃으면서 말했다.“그저 호기심에 투자했을 뿐인데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저도 몰랐네요. 그리고 이후에 저는 한국에 계속 있을 예정이에요. 저희 아내와 딸 역시 해외에서는 익숙하지 않아서요. 만약 무슨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주세요.”전동하의 마지막 한마디는 정혁을 더 안심하고 믿을 수 있게 하였다.“은정 씨가 공주님을 얻었나요? 아직 모르고 있었는데… 축하드립니다!”전동하는 환한 웃음을 띠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요즘 몸이 허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건강을 회복한다면 모두에게 알릴 예정이에요.”정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저도 축하해 주러 갈게요.”
전동하가 하는 말마다 빈틈이 없어 어떤 트집도 찾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정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아마 투자자로 지낸 게 습관이 된 것 같네요. 이제 신분이 바뀌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분명히 말할 수밖에 없네요. 저희와 협력이 성사되면 이 프로젝트는 정 국장 인원 외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손잡게 되실 SC그룹이든 태한그룹이든 상관없이 저한테 이래라저래라할 권리가 없고요. 불가피한 경우에는 제 말을 들어야 하겠죠.”전동하는 말을 끝내고는 조용히 정혁의 표정을 바라봤다.웃음이 사라지고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았다.정말이지 여우 한 마리가 따로 없다.자기가 이득을 보면서도, 남이 조건을 제시하는 것까지 막다니?정혁은 전동하의 뜻을 고스란히 알아차렸다. SC그룹이 물론 가장 좋은 선택이며 또 그들 간에 아무런 적대적관계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태한그룹은 달랐다.박수혁더러 그의 말을 들으라니?이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방금 연회에서 벌써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둘 사이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을 뿐이었다.전동하는 보기에 부드럽고 따뜻했지만, 그의 속셈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정혁은 이때야 비로소 일전에 자신이 그를 얕봤다는 것을 깨달았다.만약 처음부터 그에게 이 일에 대해 말했더라면.아마 그는 완전히 SC그룹의 편에 섰을 것이고 박수혁에게 똑바로 말했을 것이며 지금처럼 박수혁을 궁지로 내몰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렇다, 이번에 태한그룹이 경쟁에서 지면 난처해질 것이 분명하다.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박수혁의 우세가 태반의 희망을 차지하고 있다.SC그룹의 희망보다 더 크다!일단 전동하의 조건을 박수혁이 알게 된다면 박수혁은 그와 협력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정혁은 순식간에 속이 뒤집히는 듯했다.그는 이렇게 오랫동안 관리 사회에서 살아왔는데, 어찌 전동하의 뜻을 알아채지 못했을까?정말 고수다. 얼마간 공기에 적막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