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하가 웃더니 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제가 관련된 자료를 메일로 보내 드릴 테니 확인하시고 연락해 주시길 바랍니다.”정혁은 순간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흥분한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만약 당신의 기술적 기초가 이미 있다면 몇백억 절약은 물론이거니와 시간도 많이 절약할 수 있을 거예요.”말을 마친 정혁이 갑자기 침착해지더니 물었다.“전 대표님 쪽의 프로젝트가 개인 프로젝트입니까? 아니면 미국과 관련된 프로젝트입니까?”정혁은 만약 전동하가 자신을 속인 것이라면 나라의 이득에 손해를 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안위에도 위협이 일어날 것이다. 전동하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이렇게 민감한 투자 항목에는 다른 사람과 손을 잡지 않습니다. 손을 잡게 되면 그들의 손에 넘어 갈수 있어요. 그래서 기지를 남아프리카에 세운 원인이기도 합니다. 만약 정 국장님이 원한다면 자료를 확인하신 후 사람을 보내 둘러보셔도 좋습니다. 저도 저희의 계약에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정혁은 얼굴에 웃음기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전동하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정말 겉을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겠네요. 저는 이때까지 전 대표님이 투자자인 줄 알았지만 이렇게 넓은 곳까지 투자했을 줄은 몰랐네요!”전동하는 웃으면서 말했다.“그저 호기심에 투자했을 뿐인데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저도 몰랐네요. 그리고 이후에 저는 한국에 계속 있을 예정이에요. 저희 아내와 딸 역시 해외에서는 익숙하지 않아서요. 만약 무슨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주세요.”전동하의 마지막 한마디는 정혁을 더 안심하고 믿을 수 있게 하였다.“은정 씨가 공주님을 얻었나요? 아직 모르고 있었는데… 축하드립니다!”전동하는 환한 웃음을 띠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요즘 몸이 허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건강을 회복한다면 모두에게 알릴 예정이에요.”정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저도 축하해 주러 갈게요.”
전동하가 하는 말마다 빈틈이 없어 어떤 트집도 찾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정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아마 투자자로 지낸 게 습관이 된 것 같네요. 이제 신분이 바뀌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분명히 말할 수밖에 없네요. 저희와 협력이 성사되면 이 프로젝트는 정 국장 인원 외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손잡게 되실 SC그룹이든 태한그룹이든 상관없이 저한테 이래라저래라할 권리가 없고요. 불가피한 경우에는 제 말을 들어야 하겠죠.”전동하는 말을 끝내고는 조용히 정혁의 표정을 바라봤다.웃음이 사라지고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았다.정말이지 여우 한 마리가 따로 없다.자기가 이득을 보면서도, 남이 조건을 제시하는 것까지 막다니?정혁은 전동하의 뜻을 고스란히 알아차렸다. SC그룹이 물론 가장 좋은 선택이며 또 그들 간에 아무런 적대적관계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태한그룹은 달랐다.박수혁더러 그의 말을 들으라니?이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방금 연회에서 벌써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둘 사이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을 뿐이었다.전동하는 보기에 부드럽고 따뜻했지만, 그의 속셈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정혁은 이때야 비로소 일전에 자신이 그를 얕봤다는 것을 깨달았다.만약 처음부터 그에게 이 일에 대해 말했더라면.아마 그는 완전히 SC그룹의 편에 섰을 것이고 박수혁에게 똑바로 말했을 것이며 지금처럼 박수혁을 궁지로 내몰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렇다, 이번에 태한그룹이 경쟁에서 지면 난처해질 것이 분명하다.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박수혁의 우세가 태반의 희망을 차지하고 있다.SC그룹의 희망보다 더 크다!일단 전동하의 조건을 박수혁이 알게 된다면 박수혁은 그와 협력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정혁은 순식간에 속이 뒤집히는 듯했다.그는 이렇게 오랫동안 관리 사회에서 살아왔는데, 어찌 전동하의 뜻을 알아채지 못했을까?정말 고수다. 얼마간 공기에 적막
한유라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더니 몹시 당황했다.“나 왜 기억이 없지? 아, 내가 동하 씨 집에 와 있구나.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말하면서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휴대전화 속 사람이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얼른 방에 들어가서 자!”그 한마디에 한유라는 그 자리에서 얼었다.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이 집이 도대체 누구 집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전동하는 단숨에 소은정을 안아들었다.“유라 씨도 들어가서 쉬어요. 은정 씨는 내가 데리고 갈게요.” 둘이 집에서 술을 마신 것이 다행이었다. 바깥에서 마신 거였다면 곤란해졌을 것이다.한유라는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네네, 먼저 가요. 우나중에 또 봐요!” 그녀의 휴대전화에서는 또 소리가 들려왔다.“빨리 들어가서 자. 다음에 또 이렇게 술 많이 마시면 가만히 안 둘 줄 알아!”심강열은 심한 말을 서슴지 않았고 화면 너머로도 그의 화났음을 볼 수 있었다.가정부는 전동하를 배웅 하면서 말했다.“집에 돌아가시면 해장국 먼저 먹이시고 쉬게 하세요. 아니면 내일 머리가 아플 거예요. 많이 마신 건 아닌데 술을 섞어 마셔서 많이 취하신 것 같아요……”전동하는 감사를 표하고는 소은정을 데리고 갔다.가정부는 한유라가 또 술을 꺼내려고 하는 것을 보고 얼른 그녀를 말렸다.“사모님, 더 마시면 안 되세요!”어느 때부터인지 그녀의 휴대전화는 소파에 버려져 있었다.영상통화 속 남자는 곧 미칠 지경이었다.“아주머니, 그 여자 침실에 넣고 말 안 들으면 가둬요. 그리고 신경 쓰지 마세요.”가정부는 연신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그녀를 끌어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태어나서부터 귀하게 자란 탓인지 조금만 건드려도 피부에 자국이 남는데 심강열이 보면 얼마나 가슴 아파할까!가정부는 술병을 들고 조심스럽게 한유라를 달래며 침실로 데려갔다.“사모님, 우리 침실에 가서 마셔요. 여기 청소 해야되요!”한유라가 몽롱한 정신으로 따라 걸었다.“그래요. 은정이는요? 걘 어디 갔어요
정강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심강열이 출장 가기 전, 회사의 일이 될수록 한유라의 일상 생활에 영향 주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가 있었었다.다시 말하면 자질구레한 일이나 잡일은 아랫사람들이 해결하라는 뜻이기도 했다.그런데 지금, 이 전화는 무슨 뜻일까?그녀에게 잔업을 시키라고?심강열은 전화기 너머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한 실장한테 할 일을 좀 찾아줘요. 내가 없어서 잠을 잘 못 자는 것 같아요. 어딘가에 집중하게 되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요.”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한 실장님이 집에 가면 무조건 잠들 수 있게 하겠습니다!”심강열은 만족스럽게 전화를 끊었다.역시 자신의 사람답게 말 뜻을 바로 이해했다.다음날.한유라는 속이 쓰렸지만, 아주머니가 준비한 해장국을 먹고 많이 나아졌다.원래 그녀는 하루 종일 출근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침대에서 하루 종일 자는 것보다 행복한게 또 있을까?하지만 회사에 일이 생겼는지 정강훈이 쉴 새 없이 전화를 걸어왔다.“한 실장님, 협력안이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회사에 오셔서 봐주실 수 있으세요?”“한 실장님, 변호사님이 말씀하시길 협의에 대해 다시 상의해야 한다고 하는 데 나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한 실장님, 오늘 거래처랑 점심 약속 있는데 같이 가셔야 합니다!”“한 실장님......”한유라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그녀가 전화기를 꺼버리면 집 전화로 전화를 걸어왔다. 조용할 새가 없었다.결국 한유라는 집 전화 코드마저 뽑아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는 일하시는 아주머니한테로 걸려 왔다.아주머니가 망설이더니 문을 두드렸다. “사모님… 회사에 일이 생겼는데 안 가시면 직접 찾아오겠다고 합니다!”한유라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옷을 갈아입었다.그녀는 자신이 회사에서 이렇게까지 역할이 큰지 알지 못했다.그녀가 없으면 한순간도 돌아가지 않는 듯했다.삼십 분 후,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회사에 도착했다. 직원들은 점심에 뭘 먹을지 여유롭게 토론
한유라가 내켜 하지 않는 모습을 본 정강훈은 헛기침하더니 입을 열었다.“혹시 정 하기 싫으시면 하던 일을 끝내고 제가 하겠습니다. 내일까지 기다리면 시간이 좀 지체되긴 한데… 괜찮습니다.” 그의 난처한 모습을 보고 한유라는 어이가 없었다.‘깡은 출장을 혼자 가지, 뭐하러 담당자까지 데려가고 난리야!’“됐어요. 여기 둬요. 내가 찾을게요.”그녀는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달리 어찌할 방법도 없었다!심강열이 돌아오면 이 문제에 대해 말해야지!“정말요? 감사합니다. 대표님께서 일이 생기면 실장님을 찾아가라고 하시던데,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제 알겠네요.” 그녀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가서 일이나 봐요.”정강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재빠르게 사무실을 나섰다.사무실 밖으로 나온 그는 심강열에게 보고의 문자를 보냈다.“대표님, 실장님께서 저에 대해 나쁜 소리를 해도, 월급은 그대로 주셔야 합니다!”그도 명령에 따라 행동한 것뿐이다! “월급 두배!”“감사합니다, 대표님!”......소씨 저택.소은정은 뒤척이며 선잠을 잤고 그녀가 깼을 때 전동하는 이미 회사로 갔다.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돌아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과 한유라가 술을 많이 마셨다는 것만 기억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끗이 잊었다!새봄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만 잤고 오늘도 역시 외할아버지 품에 안겨 또 잠이 들었다.소은정이 새봄이를 안으려 하자 소찬식이 막았다. 새봄이가 자는 걸 방해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였다.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아빠, 새봄이 아직 이름도 안 지었어요!”소찬식은 그녀를 보더니 말했다. “애칭은 내가 지었으니 이름은 남편이랑 상의해서 지어. 부모 좋다는게 뭐니?”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야 듣기 좋으면 되니까.집사 아저씨가 그녀에게 수프 한 그릇을 건네며 말했다.“아가씨, 이거 좀 드세요. 속 풀릴거예요.”소은정은 배를 만지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제비집 먹을래요.”
전동하가 답장했다. “새봄이 학교 고르기에 너무 이르지 않나요?”소은정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설마 이 남자 새봄이 학교를 고르러 온 줄 아는 건가?“마이크를 데리러 왔어요. 방학이라면서요?” “아, 그래요?”오랫동안 같이 지낸 부자지간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전동하는 마음이 불안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가도 늦을 것 같았다.그는 마이크를 돌봐주는 하인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이크 방학이에요?”하인은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네. 내일이면 방학이에요.”“왜 말하지 않았어요?” “어제 문자 보내드렸는데요. 저한테 알겠다고 하셔서……”대답만 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 걸까?원래 그들은 전동하한테 아이가 생기면 마이크를 소홀히 할 것이라고 여겼었다. 근데 하필 또 딸을 낳았으니.. ‘가여운 마이크…’전동하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아, 봤어요. 너무 바빠서 까먹었네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전화를 끊었다.‘마이크 내일 방학이랬지. 내 정신 좀 봐.’소은정이 출산을 하고,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리다보니 미처 마이크까지 신경쓰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이크한테 미안할 따름이었다.*소은정은 곱슬 머리의 아이를 보았다. 그 애의 키는 허리까지 왔고 피부는 하얗고 부드러웠다. 너무 예쁜 혼혈아였다. 너무 예뻐 얼굴을 만져보고 싶은 지경이었다.“예쁜 누나!”마이크는 신이 나서 소은정을 향해 달려오더니 그녀를 꽉 안았다,소은정은 눈을 깜빡거렸다. 오는 내내 긴장이 되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걱정부터 했었다.그치만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다.왠지 자신을 껴안고 있는 꼬마가 익숙한 느낌이었다.꼬마는 오랫동안 그녀를 안고 있었고 머리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그 푸른색 눈동자는 마치 맑은 호수처럼 맑고 깨끗했다.“예쁜 누나, 저 데리러 온 거예요?”소은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방학동안 우리 집에서 지낼까?”“좋아요. 예쁜 누나랑 같이 있으면 난 어디라도 좋아요!”말도
마이크는 웃으면서 그녀를 바라봤다. “예쁜 누나, 여자아이를 낳았다면서요? 같이 놀아도 돼요?”소은정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네가 오빠잖아. 그런데 아직 걸을 줄 몰라. 조금 더 크면 같이 놀아도 돼.”마이크는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두 손을 비볐다.그한테도 여동생이 생겼다.이 사실은 며칠째 그를 기쁘게 했다. 진작에 달려와 여동생을 보고 싶었다.애석하게도 아빠는 사람을 시켜 그를 감시하게 했고 그가 몰래 나오지 못하게 했다.경호원과 가정부를 통해 들을 수 밖에 없었다.소씨 저택.마이크는 기뻐하며 뛰어 들어갔다.소찬식은 진작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마이크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아빠를 보는 것보다 더 친근했다. 안고 뽀뽀하고 난리가 났다.소찬식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아이고, 힘들었지?”마이크는 그를 끌어안았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소찬식은 크게 웃었다.그 광경을 본 거실에 있던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다가 헛기침을 했다.마이크는 그제야 전동하도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품에는 하얗고 귀여운 아기를 안고 있었다.마이크는 눈을 깜빡이더니 소찬식의 품에서 벗어났다.전동하가 새봄이를 옆 사람에게 주면서 큰아들을 안아주려고 했는데 마이크가 먼저 다가왔다.마이크는 품속에 새봄이를 보더니 물었다.“여동생이에요?”전동하가 대답한다.“응, 인사해!”“새봄아, 마이크 오빠야.”전동하가 고개를 떨궈 딸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따뜻함을 아기에게 다 주고 싶은 눈빛이었다.마이크는 새봄이의 작은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뽀뽀하기 시작했다.“새봄이 진짜 귀엽고 작아요……” 전동하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조금 불쾌한 듯 마이크를 바라봤다.“들어와서 손도 안 씻지 않았니……”소찬식은 그 말을 듣고 그의 말을 저지하고 싶은 듯 입을 열었다.“마이크, 소호랑이 너 진짜 보고 싶어 했어. 계속 여동생 곁에 엎드려 있으려 해서 내가 서재에 가뒀어. 같이 놀래?”마이크는 흥분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소은정의 몸은 점차 회복되어 갔다. 병원에 가서 몇 번이고 검사를 해봤지만 그녀의 기억상실증에 대해서는 의사도 속수무책이었다.분명 건강은 정상 수치로 돌아왔는데 그때의 기억은 생각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소은정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녀의 정상적인 생활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기에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며칠이 지났다.한 비즈니스 미팅에 소은정과 소은해가 함께 참석했다.모처럼 대중들 앞에 선 소은정은 눈앞이 번쩍 뜨였다. 그녀가 아파서 외출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붉은 입술에 하얀 치아가 돋보이는데 이게 어떻게 환자의 모습이란 말인가?왜 예전보다도 얼굴이 화사해 보이는 걸까!모두 호기심 가득한 생각을 애써 억누르고 인사말을 나눴다.“오랜만이에요. 몸은 괜찮으세요?”“소문에 공주님을 낳으셨다면서요? 진짜예요? 언제 축하 파티해요?”“언제쯤 회사에 돌아오실 건가요?”......소은정은 그저 웃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며칠 있으면 우리 딸 백일이에요. 꼭 얼굴 비춰요……”“회사는 아직 언제 나갈지 모르겠어요……”소은해는 훨씬 의젓해졌고 업계 종사자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그는 소은정더러 휴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다.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 한잔하는 김에 일에관해서도 이야기하겠다고 했다.이에 소은정은 흔쾌히 허락했다.그녀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한유라와 김하늘은 모두 오지 않았다. 그녀는 힘없이 옆 사람과 이런저런 잡담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나타났다. “정말 신기하네요. 여기서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남자는 키가 컸지만, 생김새는 보통이었고 낯이 익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자의 냄새를 풍겼다.그는 여자 한 명과 함께 있었다. 그 여자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는데 소은정을 보면서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소은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눈앞에 이 남자가 도대체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하지만 확실한 것은 기억해야 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그녀는 잠시 멈추더니, 다른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