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하가 답장했다. “새봄이 학교 고르기에 너무 이르지 않나요?”소은정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설마 이 남자 새봄이 학교를 고르러 온 줄 아는 건가?“마이크를 데리러 왔어요. 방학이라면서요?” “아, 그래요?”오랫동안 같이 지낸 부자지간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전동하는 마음이 불안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가도 늦을 것 같았다.그는 마이크를 돌봐주는 하인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이크 방학이에요?”하인은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네. 내일이면 방학이에요.”“왜 말하지 않았어요?” “어제 문자 보내드렸는데요. 저한테 알겠다고 하셔서……”대답만 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 걸까?원래 그들은 전동하한테 아이가 생기면 마이크를 소홀히 할 것이라고 여겼었다. 근데 하필 또 딸을 낳았으니.. ‘가여운 마이크…’전동하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아, 봤어요. 너무 바빠서 까먹었네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전화를 끊었다.‘마이크 내일 방학이랬지. 내 정신 좀 봐.’소은정이 출산을 하고,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리다보니 미처 마이크까지 신경쓰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이크한테 미안할 따름이었다.*소은정은 곱슬 머리의 아이를 보았다. 그 애의 키는 허리까지 왔고 피부는 하얗고 부드러웠다. 너무 예쁜 혼혈아였다. 너무 예뻐 얼굴을 만져보고 싶은 지경이었다.“예쁜 누나!”마이크는 신이 나서 소은정을 향해 달려오더니 그녀를 꽉 안았다,소은정은 눈을 깜빡거렸다. 오는 내내 긴장이 되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걱정부터 했었다.그치만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다.왠지 자신을 껴안고 있는 꼬마가 익숙한 느낌이었다.꼬마는 오랫동안 그녀를 안고 있었고 머리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그 푸른색 눈동자는 마치 맑은 호수처럼 맑고 깨끗했다.“예쁜 누나, 저 데리러 온 거예요?”소은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방학동안 우리 집에서 지낼까?”“좋아요. 예쁜 누나랑 같이 있으면 난 어디라도 좋아요!”말도
마이크는 웃으면서 그녀를 바라봤다. “예쁜 누나, 여자아이를 낳았다면서요? 같이 놀아도 돼요?”소은정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네가 오빠잖아. 그런데 아직 걸을 줄 몰라. 조금 더 크면 같이 놀아도 돼.”마이크는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두 손을 비볐다.그한테도 여동생이 생겼다.이 사실은 며칠째 그를 기쁘게 했다. 진작에 달려와 여동생을 보고 싶었다.애석하게도 아빠는 사람을 시켜 그를 감시하게 했고 그가 몰래 나오지 못하게 했다.경호원과 가정부를 통해 들을 수 밖에 없었다.소씨 저택.마이크는 기뻐하며 뛰어 들어갔다.소찬식은 진작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마이크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아빠를 보는 것보다 더 친근했다. 안고 뽀뽀하고 난리가 났다.소찬식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아이고, 힘들었지?”마이크는 그를 끌어안았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소찬식은 크게 웃었다.그 광경을 본 거실에 있던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다가 헛기침을 했다.마이크는 그제야 전동하도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품에는 하얗고 귀여운 아기를 안고 있었다.마이크는 눈을 깜빡이더니 소찬식의 품에서 벗어났다.전동하가 새봄이를 옆 사람에게 주면서 큰아들을 안아주려고 했는데 마이크가 먼저 다가왔다.마이크는 품속에 새봄이를 보더니 물었다.“여동생이에요?”전동하가 대답한다.“응, 인사해!”“새봄아, 마이크 오빠야.”전동하가 고개를 떨궈 딸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따뜻함을 아기에게 다 주고 싶은 눈빛이었다.마이크는 새봄이의 작은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뽀뽀하기 시작했다.“새봄이 진짜 귀엽고 작아요……” 전동하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조금 불쾌한 듯 마이크를 바라봤다.“들어와서 손도 안 씻지 않았니……”소찬식은 그 말을 듣고 그의 말을 저지하고 싶은 듯 입을 열었다.“마이크, 소호랑이 너 진짜 보고 싶어 했어. 계속 여동생 곁에 엎드려 있으려 해서 내가 서재에 가뒀어. 같이 놀래?”마이크는 흥분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소은정의 몸은 점차 회복되어 갔다. 병원에 가서 몇 번이고 검사를 해봤지만 그녀의 기억상실증에 대해서는 의사도 속수무책이었다.분명 건강은 정상 수치로 돌아왔는데 그때의 기억은 생각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소은정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녀의 정상적인 생활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기에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며칠이 지났다.한 비즈니스 미팅에 소은정과 소은해가 함께 참석했다.모처럼 대중들 앞에 선 소은정은 눈앞이 번쩍 뜨였다. 그녀가 아파서 외출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붉은 입술에 하얀 치아가 돋보이는데 이게 어떻게 환자의 모습이란 말인가?왜 예전보다도 얼굴이 화사해 보이는 걸까!모두 호기심 가득한 생각을 애써 억누르고 인사말을 나눴다.“오랜만이에요. 몸은 괜찮으세요?”“소문에 공주님을 낳으셨다면서요? 진짜예요? 언제 축하 파티해요?”“언제쯤 회사에 돌아오실 건가요?”......소은정은 그저 웃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며칠 있으면 우리 딸 백일이에요. 꼭 얼굴 비춰요……”“회사는 아직 언제 나갈지 모르겠어요……”소은해는 훨씬 의젓해졌고 업계 종사자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그는 소은정더러 휴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다.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 한잔하는 김에 일에관해서도 이야기하겠다고 했다.이에 소은정은 흔쾌히 허락했다.그녀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한유라와 김하늘은 모두 오지 않았다. 그녀는 힘없이 옆 사람과 이런저런 잡담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나타났다. “정말 신기하네요. 여기서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남자는 키가 컸지만, 생김새는 보통이었고 낯이 익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자의 냄새를 풍겼다.그는 여자 한 명과 함께 있었다. 그 여자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는데 소은정을 보면서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소은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눈앞에 이 남자가 도대체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하지만 확실한 것은 기억해야 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그녀는 잠시 멈추더니, 다른
분위기를 살피던 임진호는 이때다 싶어 입을 열었다.“은정 씨, 제가 눈여겨본 프로젝트가 몇 개 있는데 분명히 큰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 어떻게 같이 한탕 할래요?”임진호와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임진호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군. “관심 없어요. 사업 얘기라면 은해오빠를 찾아가는 게 좋겠어요.”“은해 씨가 이런 작은 프로젝트를 어디 눈여겨보겠습니까?”임진호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큰돈을 벌 수 있다니깐요! 믿어주세요!”이 자리에서 화를 내기 싫었던 소은정은 화를 참으면서 말했다.“진호 씨 집안에서 이런 돈도 진호 씨한테 안 주나요? 숙모님이 진호 씨 엄청나게 아끼잖아요, 숙모님은 어쩌고 여기서 이래요?”임진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질투심이 스쳐 지나갔다.“성강희 그자식... 성강희가 내 장부가 문제 있다고 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회사에서 쫓겨나고 숙모님이 돈을 맡기지 않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소은정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건 생각지 못했네. 성강희의 어머니는 친아들처럼 임진호를 좋아했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을 줄이야! 임진호는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은정 씨, 저랑 손잡읍시다. 저한테 프로젝트가 있고 당신한텐 돈이 있잖아요. 저희가 함께라면 반드시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소은정은 웃으면서 단호하게 말했다.“돈이 많아서 굳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싶지 않네요.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임진호의 얼굴이 굳더니 말했다.“다시 한번만 생각해 줄 수 없나요?”소은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손에 있는 물건을 내려놓고 일어나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향하려 했다. 소은정의 앞에 서 있던 이율이 길을 내주려 하지 않더니 손에 있던 와인을 소은정의 치마에 부어버렸다. 소은정의 표정이 얼어붙었다.이율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면서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미안해요! 실수로... 금방 정신이 나갔나 봐요, 손에서
임진호는 경멸의 눈길로 옆에 있는 이율을 쳐다보더니 그녀를 밀치면서 말했다.“멍하니 뭐 하고 있어, 빨리 따라가서 도와줘. 너 때문에 내 일을 망치게 된다면 가만두지 않겠어!”이율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소은정이 떠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장실.소은정이 입고 있던 흰색 치마는 와인으로 붉게 물들었다. 씻는다고 해서 해결될 게 아니었다. 기사님에게 여벌의 옷을 가져 달라고 문자를 하고 화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문 앞에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정 씨...”이율이었다. 소은정은 귀찮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임진호가 따라오라고 했어? 임진호한테 전해줘, 나는 투자할 마음 일도 없으니 희망 버리라고.”돈으로 물건을 산다면 보이는 것이라도 있어 행복이라도 하지 임진호에게 투자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 넣는 꼴이다. 이율은 그런 소은정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임진호 때문에 온 게 아니야.”소은정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말했다.“그럼?”이율은 깊은숨을 몰아쉬더니 말했다. “부탁할 게 있는데. 네가 나를 안다는 사실을 임진호한테 말하지 말아줘, 부탁해.”소은정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마음이 두근거렸다. 내가 언제 이율을 알고 있었지? 이율은 그녀의 무관심한 표정에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전에 성강희랑 사귀었을 때도 속아서 사귄 거야.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 내가 얼마나 노력하던지 나를 바라봐 주지 않았어. 하지만 임진호는 달라... 내가 삐지면 달래주고 나를 아끼고 나한테 비싼 물건을 사주고 나를 사랑해 줘. 하지만 임진호가 나와 성강희 사이의 일을 알게 된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래서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어.”이율은 진실한 표정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소은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뭘 들은 거지?이율과 성강희가 사귀었었고 지금은 임진호를 꼬셨는데 임진호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소은정에게 김하늘의 전화가 걸려 왔다. 성강희의 생일인데 마침 김하늘이 있던 제작사 근처에 있어 같이 밥 먹자는 약속이었다. 한유라도 올 거라 했다. 소은정은 전동하에게 얘기한 후 기사님을 불러 그쪽으로 갔다. 그 자리에 가고 나서야 김하늘이 있는 제작사에 성강희가 투자하여 마침 같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성강희는 소은정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다가와 그녀를 껴안았다.“우리 아기, 무사하다니 다행이야.”소은정은 쯧 하면서 그를 밀쳐냈다.“비켜, 당연히 무사하지.”성강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듣기론 전동하도 잊은 채 내 생각을 했다던데... 나 정말 감동의 물결이야.”“감동하지 마. 내가 10살 때 키우던 차우차우도 기억하는데 당연히 널 기억하지.”성강희는 소은정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된 게 낭만이 없어요, 낭만이...”김하늘은 소은정을 데리고 들어가면서 말했다.“마침 잘됐어, 종방연이랑 강희의 생일이 겹쳐서 같이 축하해 주기로 했어!”소은정이 놀라면서 말했다.“어머! 타이밍 기가 막히네.”성강희가 웃으면서 말했다.“어쩔 수 없지, 이 드라마가 마음에 들어서 같이 보내주는 거야.”각본팀의 사람들도 다 모였다. 소은정과 김하늘은 손을 잡고 모임 자리에 들어갔고 성강희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뒤따라갔다. 안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오고 불빛이 흔들리며 뜨거운 분위기의 축하 자리가 보였다. 김하늘이 말했다.“사람이 많긴 한데 다들 성강희가 오는 줄 알고 온 사람들이야. 있고 싶으면 있고 지루하면 먼저 나가서 2차 가자!”소은정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말했다.“강희가 좋을 대로 하여라지, 오늘 생신이잖아.”내키지 않더라도 친구 생일인데 마음대로 갈 수는 없었다. 김하늘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김하늘도 이젠 반쪽은 연예계 사람이었다. 자연스레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잘 알고 있었다. 성강희는 검은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반쯤 올린 셔츠에 뚜렷한 이목구비는 언뜻 봐도 금수저 같았다.
한유라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입을 열려 할 때 옆에 있던 세명의 감독이 성강희와 인사를 한 후 이쪽으로 다가왔다.“은정 씨, 하늘 씨, 유라 씨, 다들 와주셨네요! 저희 각본팀을 전적으로 지원해 주신 것에 정말 감사드립니다.”소은정은 웃으면서 술잔을 들었다.“별말씀을요.”서로 인사를 나눈 후 한유라가 주위를 빙 둘러보더니 말했다.“강희는요?”한 감독님이 말했다.“아마 여자친구가 와서 간 것 같은데요?”세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강희 여자친구요?”감독은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아, 말실수에요. 여사친이요.”김하늘이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말했다.“누군데요?”소은정이 김하늘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요즘 소개팅을 봤다던데... 소개팅 상대 아니야?”다른 두 사람이 문득 깨달았다는 듯 아! 하는 탄식을 내뿜었다. 어쩐지...소개팅같은 일은 성강희가 직접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스크린을 빛냈던 연예인들이 공손히 술잔을 들고 차례차례 다가와 술을 권했다. 감독님과 투자자 그리고 소은정과 친구들에게까지 술을 권했다.호감형인 얼굴의 여배우가 투자자와 웃으면서 얘기를 나눴다. 그녀의 분위기는 여유롭고 우아했다. 소은정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저 여자가 여주인공이야?”저 정도의 분위기의 배우라면 여주인공이 아닌 게 이상했다. 김하늘이 슬쩍 보더니 말했다.“아니야, 여주인공은 아직 안 왔어.”한유라가 말했다.“어떤 자린데 여주인공이 안 왔다고?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넘보는 거 아니야?”김하늘이 웃으면서 말했다.“여주인공 성격이 얼마나 더러운데, 우리 각본팀에서도 그녀랑 말 섞기 싫어해.”“누군데?”“문상아, 그 더러운 성격으로 얼마나 사람들 시달리게 했는지 몰라. 연기를 아무리 잘해도 상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지. 그래도 실력 덕분에 여주인공이 된 거야.”김하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다. 얼음같이 차가운 분위기의 여자가 들어왔다. 검은 롱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주위에는 가까이 가기 힘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어쩐지!”이 상황에서 대놓고 비꼰다면 더 꼬이게 될 것이다. 어차피 서로가 원하는 것은 서로의 하차일 것이다. 문상아의 눈길이 임태란에게 돌려졌다.“병신, 네가 무슨 상관이야!”문상아의 한마디가 파티장의 분위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누군가가 웃음을 참지 못한 채 터트리고 말았다. 문상아의 말에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임태란은 그녀의 말에 창백한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너...”임태란은 마음속으로 수만 가지의 욕을 했지만, 입에 욕을 담았다가는 이때까지 지켜왔던 귀여운 이미지가 몰락할까 두려웠고 또 누군가 비디오를 찍어 인터넷에 올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감독과 선배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깎아내릴 수는 없어 이를 깨물고 목 끝까지 차오른 욕을 삭혔다. 감독이 다가와 문상아의 등을 토닥이면서 말했다. “오면 됐지뭐, 상아 씨가 저한테 미리 얘기했어요. 어젯밤 늦게까지 촬영했고 비도 맞아 감기 기운이 있어 충분히 휴식하고 오라고 제가 말한 거예요. 자, 상아 씨, 와서 한잔 들어요.”재밌는 구경을 더 하고싶었지만, 불난 집에 부채질할 때는 아니어서 다시 서로 떠들면서 그녀들에게서 관심을 껐다. 문상아는 감독의 말을 듣고 감기 기운이 있어도 술을 따라 사람들에게 인사를 돌렸다. 한 바퀴 인사를 마친 문상아는 마지막으로 소은정쪽으로 다가왔다. 김하늘이 웃으면서 말했다.“상아 씨, 앉아서 좀 쉬어요.”김하늘이 문상아를 신경 써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상아는 거절하지 않고 맞은 쪽에 앉아 쉬고 있었다. 역시 여주인공은 여주인공이다. 이 성격에 그녀의 미모와 연기력이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얼굴은 누가 봐도 호감형에 아름다웠다. 세 명 중에 문상아가 제일 익숙한 사람은 김하늘이었다. 김하늘은 웃더니 소은정과 한유라를 보면서 말했다. “상아 씨가 누군지 아직 모르지?”소은정과 한유라는 의아한 듯 김하늘을 바라보았다. 김하늘은 문상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