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연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고 그 모습을 본 소은호는 박스를 받아 그녀에게 건넸다.“받아. 거절하면 내가 욕먹을 것 같아.”소찬식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한시연은 더 사양하지 않았다.어차피 소은호도 평소에 선물을 잘해 주는 남편이었고 그녀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았다.하지만 박스를 열어본 한시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안에는 작은 보석함이 들어 있었는데 에메랄드 액세서리 세트가 들어 있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액세서리들이었다.일반적으로 이런 보석은 수집 애호가들이나 소장하는 제품인데 그 가치가 몇 억 이상은 될 것이다.보석함 밑에는 10억짜리 부동산 계약서도 같이 들어 있었다.시아버지의 통큰 선물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선물을 확인한 소은호도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다.한시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일반 보석이나 액세서리면 몰라도 너무 귀한 물건이라 받기가 부담되었다.“아버님….”소은정은 옆에서 귤을 까먹으며 말했다.“언니, 우리 아빠 통 큰 거 하루이틀도 아니고. 뱃속의 아기 준다고 생각하고 받아요.”한시연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너무 비싸요. 이럴 것까지는….”“새언니는 우리 가문의 첫아이를 출산할 건데 얼마를 줘도 과분하지 않아요.”소은정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소찬식도 찬성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이 웃으며 말했다.“아기 나오기 전에 이걸 줬다는 건 사내애가 나오든 공주님이 나오든 똑같이 사랑할 거라는 뜻이기도 해요.”한시연은 그제야 눈시울을 붉히며 소찬식에게 꾸벅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아버님.”사실 소씨 가문 맏며느리로서 부담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소찬식이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손자를 바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소은호에게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었기에 혼자서 속으로 끙끙 앓고 있었다.소은정의 한 마디에 그동안 느꼈던 부담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소찬식은 손자든, 손녀든 똑같이 사랑할 거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만약 그녀가 출산한 뒤
소찬식은 그를 보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자네 회사 출근한 거 아니었어?”요즘 전동하는 줄곧 소은정과 붙어 있었기에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회사로 나간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퇴근하다니?전동하는 소은정을 바라보며 웃고는 말했다.“형수님이 곧 출산하신다고 해서요. 장인어른이나 형님들은 형수님 돌봐야 하니까 은정 씨는 제가 챙겨야죠.”소찬식은 한숨이 나왔다.‘아무리 내 딸이지만 쟤는 너무 유별나!’전동하가 성격이 좋아서 그렇지 다른 남자였다면 진작 짜증냈을 것이다.소은호도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잘 왔어. 막내 데리고 들어가서 쉬어.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소은정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난 여기 있으면서 지켜볼래. 그래야 내가 나중에 출산할 때도 덜 긴장하지.”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날 밤.소찬식이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한시연이 고통스럽게 신음했다.소은호는 바로 달려갔다.잠시 후, 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뛰쳐나오며 말했다.“의사 좀 불러줘. 이번엔 진짜인가 봐.”잠시 후, 한시연은 분만실로 들어갔다.이제 모두 돌아갈 필요가 없게 됐다.한 시간 뒤, 소은해와 김하늘도 다시 돌아왔다.소은정은 긴장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전동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전동하는 그런 그녀를 품에 안으며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한참 뒤에야 소은정은 안정을 되찾았다.소은호는 손 잡아준다고 분만실로 같이 들어갔다.저녁 열한 시.아이가 태어났다.남자아이였다.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는 울지도 않고 얌전히 자고 있었다.아이가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갔고 소찬식은 입이 찢어지게 웃고 있었다.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애가 분만실에서 그렇게 크게 울더니 지쳐서 잠들었나 봐요. 아기는 건강합니다.”소찬식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소은해와 김하늘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전동하는 아기를 힐끗 보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큰형님을 많이 닮았네요.”소은정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새언니를
돌아가는 길, 한유라는 소은정에게 하소연했다.“한 회사에서 능력 있는 관리 인사가 된다는 건 너무 재미없는 일상이야. 예전에 생각했던 거랑 전혀 달라. 심강열 그 사람은 내 속도 모르고 중요한 프로젝트만 골라서 나한테 맡긴다니까? 그거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엄청난 손실로 이어져. 우리 엄마가 알면 몽둥이 들고 달려올 거야.”소은정은 웃음을 터뜨리며 되물었다.“실권을 쥐는 거, 그게 네가 줄곧 원하던 거 아니야?”한유라는 입을 삐죽이며 대꾸했다.“지금은 내려놓고 싶은 생각도 들어. 매일 새벽까지 야근해. 너무 피곤하고 서러워. 그런데 사무실을 나서면 심강열 사무실에도 불이 켜져 있어. 그걸 보면 내가 가장 불쌍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은해 오빠한테 들었어. 우리 오빠랑 같이 추진하는 사업도 있었다면서? 너 잘한다고 칭찬하던데? 그러니까 심 대표도 안심하고 일을 너한테 맡기지.”한유라는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하지만 너무 피곤한걸!”하지만 하소연은 하소연일 뿐.소은정이 쇼핑하자고 한유라를 조르는 사이, 심강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따가 회의 있으니 빨리 들어오라는 내용이었다.한유라는 단호하게 소은정을 혼자 내버려두고 회사로 돌아갔다.소은정은 하는 수 없이 김하늘에게 전화를 걸었다.“나와서 쇼핑 좀 할까?”그러자 김하늘은 난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나 좀 바쁜데 다음에 할까?”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너 휴가 아니었어?”김하늘은 어쩔 수 없이 사실을 이야기했다.“은해 오빠가 요즘 회사 일이 바쁘다 보니 만날 시간이 별로 없어. 마침 드라마 팀에 일손이 필요하다고 해서 가서 도와주기로 했어.”소은정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정말 대단하다. 쉬는 시간을 다 일로 채우네!”김하늘이 한탄하듯 말했다.“말도 마. 매번 은해 오빠랑 마주치면 자꾸 애 낳자고 눈치를 준다고. 그렇게 좋으면 자기가 낳든가.”소은정은 김하늘이 아이 때문에 부담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냥 해본 말일 거야. 은해 오빠 성격
휴게실은 비좁고 초라했다. 오고 가는 제작진도 별로 없었다.하지만 아무도 소은정 쪽에 관심을 안 준다는 점은 괜찮았다.큰 코트를 입고 꽁꽁 싸맨 그녀는 유명인이라기보다는 그냥 견학 온 사람 같았다.김하늘은 감독과 일련의 문제를 상의하고 다시 돌아왔다.“저쪽에 우리가 아는 친구들이 있는데 인사 좀 할래?”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친구?”김하늘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손호영 씨랑 유준열 씨. 이번 드라마 남자 주인공이랑 서브 남주야.”소은정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둘이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다고?”김하늘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예상밖이지?”소은정은 이 바닥 참 좁다는 생각을 했다.요즘 연예계에 관심을 주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다.이글 엔터의 메인 배우가 바뀐 것도 그렇고 유준열이 소속사와 계약을 파기하고 나가면서 팬들 사이에서 조금 소란이 있었다.두 사람이 서로 라이벌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그런데 같은 드라마를 촬영한다니?“그럼 누가 남자주인공이야?”김하늘은 웃으며 창밖을 가리켰다.“당연히 손호영 씨지. 요즘 연기가 아주 물이 올랐어. 게다가 이글 엔터의 메인이기도 하고.”유준열도 인기가 많았지만 애초에 풋풋한 이미지였던 그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열기가 식고 있었고 그를 밀어줄 만한 실력을 가진 회사도 없었다.이제 이미지 전환을 시도해 봐야 할 시기인데 괜찮은 대본을 받으면 주인공이든 아니든 일단은 수락하고 봐야 할 시점이었다.소은정은 정말 별일이 다 있다며 속으로 생각했다.업계에서 얼굴을 붉힌 연예인들이 평생 작품을 같이 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였다.제작팀도 불필요한 소란을 피하기 위해 사이가 안 좋은 연예인들을 묶어서 출연시키지는 않았다.그런데 두 사람 모두 제안을 수락했다는 것이 놀라웠다.“손호영 씨는 유준열이랑 같이 출연한다고 했을 때 싫은 티 안 냈어?”김하늘은 웃으며 말했다.“손호영 씨 보통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웃는 자의 얼굴에 침을 못 뱉는 법이다.그녀는 가만히 서 있는 손호영에게 고개를 돌리며 인사를 건넸다.“손 주주님?”손호영은 몸값이 올라간 뒤에도 이글 엔터 측에 무리한 요구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속사와 이런 계약을 맺었다.1년 안에 매출을 1조 올리면 그 돈으로 이글 엔터의 주식을 사겠다는 내용이었다.물론 10퍼센트로 많지는 않았다. 손호영은 똑똑한 사람이었다.어렸을 때 크게 주목을 받은 연예인이 늙으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어차피 언젠가는 주연 자리를 더 어린 배우에게 내주고 중년 연기자 역할을 해야 한다.팬들에게는 잔인한 일이었다.그래서 일부 연예인들은 투자자로 직업을 변경했다. 괜찮은 신인이나 작품에 돈을 투자하기도 했다.일부는 엔터 회사를 차리는 경우도 있었다.손호영은 더 멀리 내다보았다. 그는 홀로 독립하는 대신 이글 엔터와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정했다.이글 엔터의 지분을 원하는 사람은 정말 많지만 소은해가 싫다고 하면 어쩔 방법이 없었다.손호영이 이 정도로 이글 엔터에 집착하는 이유도 이 소속사 뒤에 거대한 인맥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이글 엔터를 설립한 톱스타 소은해는 SC그룹의 셋째로 사실 상 이글 엔터는 SC 2세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그는 이글 엔터에서 한자리 차지하면 업계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연예인은 언제 어디서든 이미지와 스캔들을 주의해야 한다. 많은 연예인들이 한순간에 무너졌다.하지만 회사의 임원이 된다는 건 또다른 얘기였다. 그 회사에서 발언권이 있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준호가 소은해를 설득한 것도 한몫 했다. 그는 손호영은 자질이 뛰어난 배우이고 과분한 요구도 아니라면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그래서 소은해는 지분을 나눠주는데 흔쾌히 동의했다.1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손호영은 이미 1조 매출을 달성했다.연예계에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손호영
소은정은 그가 말한 회사가 이글 엔터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SC그룹을 말하는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이 정도로 관심을 가져주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그녀는 웃으며 얼버무렸다.“쉬고 싶어서 휴가 신청했죠.”손호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이따가 같이 식사하실래요?”옆에 있던 김하늘마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며 그에게 말했다.“조금 전에 내가 일부러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유준열을 거절했다고 생각해요?”손호영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솔직하게 말했다.“휴가 중인데 근처에 볼일 보러 왔을 리 없잖아요.”소은정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돌 들어 제 발등을 깐 격이었다.김하늘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에게 말했다.“호영 씨, 은정이는 나 만나러 온 거예요. 이따가 내가 집에 데려다줘야 해요. 안 그러면 얘네 남편이 나한테 뭐라고 할 거거든요.”선을 넘지 말라는 뜻이었다.손호영은 살짝 움찔하더니 입을 다물었다.소은정은 축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운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그제야 분위기가 좀 나아졌다.그녀는 손호영의 자존심을 꺾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키운 배우였고 이글 엔터의 핵심 인물이니 겉으로라도 관계를 잘 처리하는 게 맞았다.“호영 씨는 요즘 여자친구 안 사귀어요?”손호영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소은정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연기자란 스캔들 관리도 잘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신을 억제할 필요는 없어요. 요즘 팬들은 관대해서 그런 일로 뭐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김하늘도 맞장구를 쳤다.“그건 맞지.”손호영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메이크업 수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유준열은 아직도 거기서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손호영을 보고 멈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그도 거기에 끼고 싶었다.하지만 소은정은 전처럼 그에게 스스럼없이 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선을 그으려는 모습을 보였다.지금은 손호영이 그들과 더 친근
소은정은 웃으며 대답했다.“손 주주님, 장기 계약은 배우한테 불리할 텐데요. 이미지 변화를 줄 수도 없고요. 같은 제품을 계속 광고해야 하는데, 계속할지 말지도 사실 회사에서 종합적인 평가를 통과해야 하고요.”손호영의 눈빛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입을 다물었다.소은정은 그가 고작 홍보 대사 자리 하나 때문에 실망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그는 홍보 대사 외에도 수많은 명품 광고를 찍었다.그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왜 저렇게 집착할까?손호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어쩔 수 없죠.”김하늘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가 신경 쓰였다.‘몸값이 올라가니까 은정이 앞에서 떨지도 않고 원하는 걸 얘기하네.’그들이 대화를 나누는데 휴게실 문이 열렸다.유준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소은정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상대에게 물었다.“어떻게 왔어요?”‘분명 알아서 돌아간다고 했는데?’전동하는 못 말린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는 넥타이를 풀며 느긋하게 말했다.“마침 근처에 미팅 있었거든요. 끝나고 데리러 왔죠.”말을 마친 그는 김하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호영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김하늘을 대하는 태도와는 확연히 달랐다.손호영도 그걸 느꼈다.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에게 인사했다.“전 대표님.”전동하는 이 업계에서도 꽤 유명한 인사였다.연예계 사업은 돈이 많이 나가는 분야이다.수많은 엔터 회사에서 어떻게든 전동하에게 관심을 받으려고 선물도 보내고 여자도 보냈다.하지만 전동하는 단호하게 거절했고 업무적인 얘기만 하다가 돌아갔다고 한다.많은 예능프로에서 요청이 쇄도했지만 그것도 전부 거절했다.사람들은 전동하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사람이라며 혀를 찼다.그가 유일하게 일으켰던 스캔들이 바로 소은정과의 스캔들이었다. 하지만 그 소문도 점차 잠잠해졌다가 지금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일부는 그들 사이가 이미 식었다고 떠들었다.하지만 여기까지 찾
답답한 마음을 달랠 길 없었던 손호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부탁드릴게요.”그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파우더룸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전동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말했다.“손호영 씨랑 둘이 많이 친해요?”소은정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느긋하게 고개를 흔들었다.“친하다고 볼 수는 없죠. 마지막으로 만난 게 작년이었나?”그제야 전동하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주변에 파리가 너무 꼬이네요!”소은정은 억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반박했다.“예쁜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그녀는 조금 억울했지만 전동하의 말이 농담인 것을 알기에 더 해명하지 않았다.한편, 파우더룸.손호영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김하늘은 거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제가 대충 수정해도 되는데요.”김하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준비한 화장솜을 꺼냈다.“사양하지 말고 어서 앉아요.”손호영은 말없이 다가가서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김하늘은 숙련된 동작으로 화장을 수정했다. 어차피 매일 하는 화장이고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바빠 보이니 이 정도는 도와줄 수 있었다.김하늘은 담담한 그의 표정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이때 그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두 사람 진심인가 봐요?”김하늘은 멈칫하며 창문을 통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을 힐끗 보고는 대답했다.“당연하죠.”손호영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이대로 포기하기는 너무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김하늘은 알면서도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호영 씨도 이제 알잖아요. 누군가는 드라마 촬영하다가 연기 과몰입해서 커플이 되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은정이는 좀 달라요. 추종자들이 많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죠. 차가운 사람이에요. 예전에는 박수혁을 죽도록 사랑하더니 결국 내쳤잖아요?”손호영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전동하 씨는 겉보기에 예의 바르고 매너남이지만 그건 상대가 자기 밥그릇에 손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