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은 잠시 침묵하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밝은 햇살을 마주하자 혼란스러웠던 기분이 조금은 가라앉았다.엄지환은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 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어차피 이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 믿고 자신에게 더 유리한 쪽으로 담판을 끌어가려고 하고 있었다.소은정은 커피잔에 손을 가져가다가 다시 움츠렸다.그녀는 창문을 통해 바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까처럼 엄숙하고 차분한 모습 대신 모여서 무언가 의논하고 있었는데 수시로 이쪽 사무실을 힐끔거리고 있었다.소은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었다.“엄 대표님은 이 프로젝트가 출시하고 꼭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나요?”엄지환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소은정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제가 알기로 대표님이 추진하는 이 플랫폼은 오래 전에 다른 회사에서 특허를 신청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대표님이 먼저 출시하면 이목이야 끌겠지만 특허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울 겁니다. 앞으로 꽤 오랜 시간을 상대 회사와의 소송에 허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상황은 전혀 이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겠죠.”엄지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을 소은정이 꼬집었다. 그들의 내부 심사 과정이 그만큼 허술했다는 얘기였다.이런 류의 프로젝트는 일단은 투자금을 끌어오고 작업을 추진한 뒤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대부분 투자자들이 눈앞의 이득만 보고 미래에 발생할 문제에 대해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소은정은 그들과 달랐다.‘내가 경솔했군.’엄지환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있겠죠. 그때 가서 변호사를 선임하면 됩니다.”사실 그는 투자 유치를 받은 뒤, 일류 변호사를 선임해서 상대 회사와 합의하거나 배상금을 물어주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었다.소은정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깜빡였다.“엄지환 씨는 해결 못할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 프로젝트의
우연준은 문득 소은정이 왜 직접 온 건지 깨닫고 말았다.‘최후통첩을 내리러 오신 거구나.’소은정의 달콤한 목소리가 차가운 말을 뱉어냈다.“엄 대표님, 비록 SC그룹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선수를 빼앗긴 건 사실이지만 저희는 오랫 동안 많은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시작 후 일어날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상응하는 대책을 생각해 두었죠. 하지만 정일테크는 다릅니다. 이 프로젝트 정말 끝까지 진행시킬 자신 있으십니까?”소은정의 팩폭에 표정이 확 굳은 엄지환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방금 전의 온화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제가 SC그룹에게 넘기는 건 싫다면요?”그 모습에 오히려 소은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흥, 조급한가 보지?’자연스레 커핏잔을 든 소은정을 향해 우연준이 헛기침으로 눈치를 주었다.‘아차, 나 지금 임산부였지?’“SC그룹에게 넘기는 게 싫다고요? 엄지환 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엄 대표님의 재능을 높게 사지 않았다면 진작 고소했을 겁니다. 저야 많은 게 돈이나 시간이니 대표님이 파산할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졌겠죠. 프로젝트로 인해 소송까지 걸린 회사에게 누가 투자를 할까요? 시가총액은 떨어지고 주가도 폭락하겠죠.”엄지환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지고 소은정은 훨씬 더 풀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이번 프로젝트로 얻은 수익으로 그 구멍을 메꿀 수 있을까요? 아니, 회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엄지환은 전형적인 창업 초기에 큰 성공을 거두고 붕 들뜬 상태의 CEO, 이런 부류 사람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방법은 차가운 현실을 알려주는 것이다.설립된 지 일년도 채 되지 않은 회사 따위 너무나 쉽게 망가트릴 수 있지만 잠재력을 나름 높게 사 인수하려 하는 것이다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분노를 애써 억누르는 듯 엄지환의 목소리가 무섭게 가라앉았다.“지금 저 협박하시는 겁니까?”“글쎄요. 이걸 협박으로 생각하신다면 너무 실망인데요? 역시 창업하신 지 얼마 안 돼서 순진하시네요.
고개를 돌린 소은정이 진지한 얼굴로 엄지환을 훑어보다 싱긋 웃었다.“알겠습니다. 엄 대표님이 자존심 버리고 이렇게까지 나오시는데 저도 한발 물러서야죠. 49%, 더는 안 됩니다.”하지만 엄지환의 표정은 여전히 불만스러웠고 이에 소은정이 말을 이어갔다.“엄 대표님, 경제 상황이 안 좋다지만 희한하게도 해마다 창업을 시도하는 젊은이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회사를 400억으로 인수하려는 회사가 몇이나 될까요? 제가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와서 착각하시나 본데 솔직히 400억,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리고 SC그룹을 등에 업으면 진정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엄 대표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정일테크 인수는 SC그룹에게 어찌 보면 조금 밑지는 장사, 그러니 엄지환이 아무리 불만이 많다 해도 더 이상 양보는 불가능했다.‘여기서 더 양보하느니 차라리 인수 포기하고 소송으로 가는 게 훨씬 더 나을지도 몰라.’소은정의 말을 듣고 움찔하던 엄지환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그래도... 제 동업자들과 의논할 수 있게 해주세요.”이에 소은정이 싱긋 웃었다.“알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죠. 제 비서 통해서 연락주세요.”말을 마친 소은정이 문을 나서고 방금 전까지 토론 열기를 불태우던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다들 커다래진 눈으로 소은정을 바라보고 그녀는 그게 상반되게 너무나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우연준과 함께 자리를 떴다.“와, 정말 소은정이야? 봤어? 나한테 웃어주는 거?”“미친, 나 보고 웃은 거거든.”“실물이 사진보다 100배는 더 예쁜 것 같아. 피부는 또 왜 저렇게 좋아?”“그러니까... 화장품은 도대체 뭘 쓰는 걸까? 꼭 고등학생 같아.”“소은정 대표님이 직접 오신 줄 알았으면 미친 척 하고 사무실에 난입하는 건데! 나 진짜 팬이라고.”“야, 우리 회사 SC그룹에 인수될지도 모른다며. 그렇다는 건... 앞으로 우리 대표님이 소은정이 되는 건가?”“정말? 그런데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설인하가 기침으로 눈치를 주었다.“그냥 솔직하게 말해. 다들 대충 예상하고 있으니까.”다른 직원들도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그래. 괜히 겁주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소은정 대표, 우리 회사 인수하는 거 거절한 거지? 솔직히 직접 여기까지 와서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있을 줄 알았는데...”“뭐야. 소은정 대표랑 같은 곳에서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네.”이때 다시 기운을 차린 엄지환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다들 SC그룹의 소은정 대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거 같으니까 오늘 미팅 결과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게.”이에 직원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소은정 대표의 제안에 응했어. 우리 회사는 400억에 인수될 거고 SC그룹에서 49%의 지분을 확보하게 될 거야. 그런데... SC그룹의 지분 확보율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다함께 의논을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엄지환의 말을 듣던 직원들이 입을 벌렸다.꽤 충격을 먹은 것 같은 직원들의 모습에 엄지환이 미간을 찌푸렸다.“역시 49%는 너무 심했지? 다시 협상해 보는 게 좋겠어.”이때 직원 중 한명이 시험조로 물었다.“400억?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지?”다른 직원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400억으로 인수하면서 지분을 49%밖에 안 가진다고? 이건 완전 대박이잖아!”설인하도 마음이 벅차오르긴 마찬가지였지만 일단 엄지환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49%면 좀 많긴 하지...”하지만 이때 다른 직원이 바로 반박했다.“49%가 뭐가 많아. 내가 전에 알아봤었는데 우리 회사 시가 총액 40억이면 많이 쳐준 거래. 향후 3년 안에 순조롭게 성장한다 해도 최대 200억 정도를 달성하는 게 최선이라던데. 400억이라니... 말도 안돼.”잔뜩 흥분한 직원들이 너도 나도 입을 열었다.“무조건 오케이 해야지. 형, 이런 기회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야. 얼른 알겠다고 해. 소은정 대표 마음 바뀌면 어쩌려고.”“...”‘하, 이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회사를
엄지환의 말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400억이라는 거금이 그들의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 주는 듯했고 그 기쁨이 미래에 대한 걱정을 덜어내 주었다.아무리 400억을 나눈다 해도 또래보다 훨씬 더 성공하는 거나 마찬가지, 만족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이때 설인하가 싱긋 웃었다.“그럼 우리 오늘은 회식할까?”“좋지!”모두의 시선이 엄지환에게 쏠리고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차에 탄 소은정은 바로 한숨을 쉬었다.“대표님, 엄지환 대표가 제안을 거절할까요?”우연준이 물었다.이에 고개를 젓던 소은정이 눈을 살짝 감았다.“아니요. 엄지환 대표는 똑똑한 사람입니다.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이득이라는 걸 깨달을 거예요.”“그런데 왜 한숨을 쉬십니까?”우연준이 의아한 듯 물었다.“400억... 내가 너무 많이 불렀나?”하지만 곧 고개를 젓던 그녀가 스스로를 위로했다.“아니지. 엄지환 대표는 충분히 능력자이니 400억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수 있죠.”SC그룹이 관여하지 않았다면 엄지환은 5년 안에 업계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고 그가 미래에 창출할 수 있는 가치는 분명 200억 이상일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훨 편해졌다.한편, 소은정은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전동하에게로 향했다.전동하의 회사는 SC그룹의 근처, 비록 점차 국내로 본거지를 옮기고 있긴 했지만 아직도 월가에서 벌이는 프로젝트가 주수입원이라 한국 지사는 겨우 4층짜리 건물일 뿐이었다.그마저도 금싸라기 땅에 자리잡은 건물이라 몇백 억은 될 테다.회사에 들어서니 진지한 얼굴로 바쁘게 회사를 누비는 직원들의 얼굴이 보였다.소은정은 바로 대표 사무실로 향했다.집에서는 한없이 부드럽던 전동하였지만 회사에서는 단 한 마디 군더더기 말도 하지 않는 차가운 모습이었다.소은정을 발견한 전동하가 비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이만 나가보세요.”고개를 끄덕인 비서가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서고 넥타이를 살짝 풀어헤쳤다.“은정 씨가 여
소은정이 거절하려던 찰나, 전동하가 쉴틈없이 바로 물었다.“그런데 인수 합병이라뇨? 어느 회사인데요?”“정일 테크요.”“정말요? 은정 씨가 해낸 거예요?”전동하가 눈썹을 치켜세웠다.“동하 씨도 알아요?”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물었다.“네. 저도 살짝 관심 가졌던 회사였는데 엄지환 대표인가? 가격을 너무 높게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거절했죠.”전동하의 시선이 어딘가 날카로워졌다.“혁신적이고 기술적으로도 안정적이지만 멀리 봤을 때 그 정도 값을 할지 회의적이라서요. 그리고 선발주자가 나타난 이상 비슷한 부류의 프로젝트들이 끊임없이 몰려들 거예요. 굳이 엄지환 대표한테 목을 맬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아쉽네요. 동하 씨 훌륭한 인재를 한 명 놓친 거예요.”“어떻게 설득한 거예요?”소은정이 살짝 약을 올렸지만 전동하는 전혀 화가 나지 않은 모습이었다.“내가 직접 나선 이상 성공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의기양양한 그녀의 표정에 한참을 웃던 전동하가 조심스레 물었다.“그래서 얼마나 준 거예요?”이에 소은정이 손가락 네 개를 내밀었다.“하긴 SC그룹을 등에 업었으니 앞으로 40억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겠죠.”솔직히 전동하는 40억도 충분히 많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엄지환 대표, 은정 씨처럼 착한 투자자를 만나다니. 운이 좋네.’하지만 그의 말에 소은정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소파에 눕다시피 기대어 있던 그녀가 일어서자 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왜 그래요?”“뒤에 0 하나 더 붙여야 할 것 같은데요.”그러자 전동하의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은정 씨가 이렇게 무모한 사람이었나? 혹시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 이상인가?’아무리 생각해도 전동하는 소은정의 결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통도 크네요...”미래가 불투명한 스타트업 회사의 가치를 400억으로 매기다니.웬만한 튼실한 중소기업도 시가 총액 400억을 넘기긴 힘든데...“동하 씨는 몰라도 돼요. 이건 우리 회사 기밀이거든요!”소은정이 전동하를 흘겨
어딘가 언짢아 보이는 소은정의 표정에 부드럽게 그녀의 배를 어루만진 전동하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오늘은 아기 말썽 안 부렸죠? 몸은 괜찮아요?”아기 얘기에 소은정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벌써 임신 3개월차지만 배도 별로 부르지 않은 상태, 그 흔한 입덧도 없었다.그리고 프로 영양사가 직접 짠 식단 덕분에 몸매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이때, 전동하의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어, 아까 배가 살짝 움직인 것 같은데. 이거 태동 아니에요?”반짝이는 그의 눈동자는 마치 은하수를 수놓은 듯했지만 소은정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그게... 내가 배고나서 난 소리일걸요...’...괜히 왔다갔다 하는 걸 막기 위해 전동하는 영양사에게 연락해 식사를 회사로 배달시켰다.전동하가 일을 하는 사이 소은정은 휴식실에 눕고 식사가 도착했을 땐 이미 깊은 잠에 빠진 뒤였다.전체적인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지만 임신한 뒤로 이상하게 잠이 쏟아지는 소은정이었다.“은정 씨, 식사 도착...”휴식실로 들어가던 전동하가 말끝을 흐렸다.풀어헤친 원피스 옷깃 사이로 언뜻 비치는 가슴골에 전동하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전동하, 넌 정말 쓰레기야...’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소은정이 부스스 눈을 떴다.눈을 뜨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 미소를 짓고 있는 전동하의 얼굴, 익숙한 광경이었다.자연스럽게 기지개를 켠 소은정이 물었다.“나 오래 잤어요?”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전동하의 눈빛이 다시 소은정의 몸매를 탐욕스레 탐하고...그 시선을 느낀 소은정이 얼굴을 붉히며 옷을 여몄다.“뭘 봐요.”이에 전동하가 억울한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냥 보는 것도 안 돼요?”“안 돼요!”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던 전동하가 벌떡 일어서더니 두 손으로 소은정의 얼굴을 꽉 잡았다.그리고 두 부드러운 입술이 서로 맞닿았다.탐스러운 붉은 입술, 아까부터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차마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참고 또 참았던 전동하였다.소은정은 쿵쾅대는 가슴을
전동하는 소은정을 번쩍 안아들어 사무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소은정은 당연하다는 듯 그의 공주 대접을 즐겼다.한편, 방금 전, 스킨십으로 괜히 갈증만 더 깊어진 전동하는 다시 묘한 눈길로 소은정의 온몸을 훑었고 그녀가 찌릿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본 뒤에야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렸다.‘누구보다 점잖은 사람이... 이럴 때 보면 참 엉큼하다니까...’전동하가 먹여주는 밥을 아기 새처럼 받아먹고 나니 어느새 퇴근 시간, 그 사이에 비서가 몇 번 들락거리긴 했지만 짧게 대답을 마친 전동하의 시선은 항상 소은정에게 꽂혀있었다.소은정이 식사를 마친 뒤에야 몇 숟가락 후다닥 뜬 전동하는 먹은 그릇들을 정리하고 소은정의 입가까지 닦아주는 등 자상함의 끝을 보여주었다.어차피 급한 일도 없겠다, 전동하는 소은정의 손을 잡고 사무실을 나섰다.한도 초과의 달달한 모습에 직원들은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며칠 뒤, 엄지환에게서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하지만 추가된 조건 한 가지, 바로 지금 창업팀 멤버에 대한 인사권은 자기가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하, 타고난 장사꾼이라니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네...’하지만 딱히 심한 요구도 아니고 소은정은 기꺼이 동의했다.정일테크 인수 추진은 SC그룹에도 분명 좋은 일이었다.특히 기획팀 직원들은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2년 넘게 준비한 프로젝트를 드디어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실력만큼은 최고인 엄지환과 그 팀원들까지 얻게 되었으니 말 그대로 일석이조였다.한편, 소은해는 소은정의 발빠른 대처에 놀라면서도 남은 일들은 또 자기가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익숙하지 않은 회사일 때문에 데이트할 시간도 없는 오빠를 위해 소은정이 준비한 선물이 있었으니, 바로 김하늘의 회사 방문이었다.물론 김하늘은 소은해가 일하는 회사까지 찾아가는 것에 꽤 부담감을 느끼는 모양이었지만 디저트를 먹고 싶다는 소은정의 막무가내 떼질을 못 이겨 결국 발걸음을 옮길 수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