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며 소은정의 어깨를 토닥였다.“솔직히 난 네가 마음에 들어. 말만 잘 듣는다고 약속하면 내가 잘해 줄게.”하지만 여자의 제안에도 소은정의 표정은 여전히 처참했다.침을 꿀꺽 삼킨 소은정이 끝내 그 질문을 내뱉었다.“아까 그 여자... 어디로 갔는지 물어봐도 돼요?”소은정의 질문에 여자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말했지. 괜한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무기 밀수도 모자라서 이제 인신매매까지 하는 겁니까?”오랜 시간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소은정의 목소리가 처절하게 갈라졌다.“뭐 그냥 부업 같은 거라고 생각해 둬.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은 인신매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야.”“그게... 그게 무슨 소리예요?”“뭐... 너한테 말해 줘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 여자들 뱃속에 물건을 담아 필요한 곳에 보내는 거야. 그 물건을 어떻게 꺼내는지는 굳이... 내 입으로 말하지 않겠어. 어쩌면 여자들도 그걸 바라는 걸지도 몰라. 계속 살아가기엔 너무 비참한 삶이니까. 네가 행운인 거야. 평화로운 국가, 부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겠지.”여자의 무덤덤한 목소리에서는 한 생명에 대한 자비와 동정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그딴 짓을 얼마나 많이 했으면 이렇게까지 무뎌진 거야.’여자의 설명을 들은 소은정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지만 결국 더 따져묻는 걸 그만두는 수밖에 없었다.‘어차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지금 여기서 나서봤자 그냥 오기일 뿐이야.”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살피던 여자가 물었다.“안색이 많이 안 좋네. 의사 불러줄까?”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때, 여자가 한 마디 덧붙였다.“아, 여기 의사는 모르핀 밖에 몰라. 그게 가장 싸거든.”‘하, 가지가지하네.’잠깐 침묵하던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됐어요.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그래. 그럼 첫날 지내던 그 방으로 가. 자기한테는 내가 알아서 설명할 테니까.”“고... 고마워요.”
이른 저녁.도혁이 다시 아지트로 돌아왔다.잔뜩 굳은 표정을 보아하니 협상이 생각대로 안 풀린 모양이었다.‘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박수혁 그 인간이 날 위해 그렇게까지 물러설 리가 없지. 이건 돈 문제가 아니야. 도혁... 그 사람의 목적은 전세계 군수물자 시장을 독점하는 것... 혼자 힘으로는 안 되니까 박수혁의 힘을 빌릴 생각이었나 본데 착각하지 마... 나 하나 붙잡고 가만히 앉아서 원하는 걸 다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도혁이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이걸 어쩌나... 여기서 며칠 더 있어야겠어. 박수혁이 내 조건에 응하지 않았거든.”분명 소은정에게는 나쁜 소식이었지만 마음은 왠지 모르게 홀가분해졌다.“예상했던 바야. 박수혁이 바보는 아니니까.”“지금 그렇게 여유부릴 때가 아닐 텐데? 아, 지금 다시 전화라도 해볼까? 박봉원처럼 뭘 하나 잘라보내면 정신을 차리려나? 어디가 좋을까... 아... 손가락이 유난히 예쁘네?”악몽 같은 그의 목소리가 독사의 독니처럼 소은정의 가슴을 파고들었다.‘끔찍해.’소은정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등 뒤로 숨겼고 도혁은 그런 그녀를 비웃었다.하지만 잠시 후, 그의 눈빛은 다시 섬뜩해졌다.“내가 박수혁을 너무 과소평가했었네. 순정남인 줄만 알았는데.”도혁의 비아냥거림에 소은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지금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죽은 듯이 침묵하는 것뿐이었다.그뒤로 며칠 동안 소은정은 하늘에 드론이 꽤 많이 떠있는 걸 발견했다.‘뭐지? 내 착각인가?’그녀가 발견한 걸 도혁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고 드론 중 몇 대를 총으로 저격했지만 그저 평범한 게임용 드론일 뿐이었다.욕설을 내뱉은 도혁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무성한 밀림속에 위치한 이곳에 평범한 드론이 떠다닐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그렇다면 남은 답은 누군가 이곳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걸 설명했다.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이는 적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그리고 며칠 뒤 도혁은 아지트를 이전해야겠다는
소은정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내 운명을 정말 박수혁에게 맡길 수는 없어.’하지만 그녀의 말에 도혁은 손을 저었다.“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쪽 집에는 자식이 너무 많아. 그리고 넌 여자잖아. 그쪽 나라에서는 여자를 출가외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면서. 오히려 네가 죽으면 네 그 오빠들은 오히려 좋아할지도 몰라. 유산을 물려받는 머릿수가 하나 줄어든다는 걸 의미하니까.”도혁의 이상한 논리에 눈이 커다래진 소은정은 입만 벙긋거렸다.‘하,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우리 집안에서 가장 예쁨받는 아이가 난데... 하, 이걸 어떻게 납득시켜야 하나...’소은정이 뭔가 더 말하려던 그때, 눈앞이 핑글 돌아가더니 그녀의 머리가 차창에 쾅 하고 부딪혔다.차량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었다.이에 가슴팍에서 총을 꺼낸 도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경계했다.“무슨 일이야?”이에 운전기사가 잔뜩 긴장한 말투로 대답했다.“미행이 붙은 것 같습니다. 독사 쪽 애들 같은데요.”독사, 도혁의 라이벌 조직의 두목 이름이었다.“몇 대나 붙었어?”“다섯 대쯤입니다. 어떻게 할까요?”차에 앉은 모든 이들이 긴장하기 시작하고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가 소은정의 귀를 자극했다.‘하, 젠장.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까 별일을 다 겪게 되네.’도혁이 이를 악물었다.“돌아간다. 아지트로 유인해. 집에 있는 애들한테 전투 준비 좀 하라고 말하고.”이대로 부딪히면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손실이 클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인질인 소은정까지 차에 탄 상황, 어떻게든 아군이 많은 아지트로 그들을 유인해야했다.이에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조금 격앙되었다.“예, 형님. 꽉 잡으십시오.”말이 끝나기 바쁘게 운전기사가 핸들을 급격하게 돌렸다. 옆 차와 부딪히는 게 아닐까 소은정이 눈을 질끈 감는 동안 차량은 유턴을 맞추었다.다른 차들도 그 뒤를 따라 급유턴을 시전하고 소은정은 잔뜩 겁 먹은 얼굴로 몸을 웅크렸다.‘혹시 사고로 총알이 발사되기라도 하
역시 그녀의 눈물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던 도혁은 바로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독사파 놈들 정말 간이 배밖으로 나온 거 아닙니까? 오기만 해봐, 어디... 제가 죽여버리겠습니다!”“형님 걱정마십시오! 한놈도 살려보내지 않겠습니다.”남자들의 대화를 듣던 소은정이 미친 여자처럼 문을 향해 걸어갔지만 곧 도혁의 부하들이 그녀를 막아섰다.‘이상해... 내가 동하 씨를 잘못 봤을 리가 없어. 동하 씨가 온 거야... 이 자식들이 말하는 독사가 아니라... 동하 씨가 온 거라고. 이 사실을 도혁이 안다면... 동하 씨가 위험해질지도 몰라. 독사파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걸 보면 나름 세력이 상당할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신중하게 움직이는 거겠지. 하지만 만약 그저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걸 눈치채면 바로 죽이려들지도 몰라. 그럼 며칠 전 드론도 동하 씨가 띄운 건가...’이런저런 생각에 소은정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질려갔고 도혁은 단순히 그녀가 겁에 질린 줄 알고 부하들을 시켜 방으로 데리고 가라 명령했다.‘나가고 싶어... 자유가, 동하 씨가 바로 저 문 너머에 있는데...’며칠내내 죽은 것 같던 영혼이 다시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고 짜릿한 희열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방에 들어온 소은정은 여전히 멍하니 서 있었고 그 모습에 도혁의 애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 왜 정신을 못 차려? 다친 데도 없잖아?”하지만 여전히 대답없는 소은정의 모습에 여자가 한숨을 내쉬었다.“됐어. 푹 쉬어. 떠날 때가 되면 다시 올 테니까.”말을 마친 여자는 문까지 꼭 닫아준 뒤 방을 나섰다.그제야 천천히 의자에 앉은 소은정은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았다.‘동하 씨는... 날 포기하지 않았던 거야.’깊은 밤.여러가지 생각으로 겨우 잠이 든 소은정은 밖에서 들리는 소음에 눈을 번쩍 떴다.또 여자를 내보내는 건가 싶어 다시 눈을 감았지만 몇 분 뒤, 그녀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소은정이 기겁하며 눈을 떠보니 도혁의 애인이 거기 서 있었다.“일어나.
소은정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을 느꼈다.결과를 알 수 없는 여정과 주변 사람들은 그녀에게 불안함을 안겨줬다.그녀는 무릎 위에 놓여있던 손을 서서히 말아쥐었다.쭉 옆에서 눈을 감고 있던 도혁은 어느새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에게 할 말이 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그거 알아? 박수혁 내일 비행기 표를 샀어, 여기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고. 협상 결렬이야."그가 내뱉는 말은 소은정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소은정의 불안함을 알아차린 도혁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안타까움을 담고 있지만 좋은 구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눈빛을 보니 소은정은 등골이 서늘했다.도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은정은 절망을 느꼈었다. 하지만 절망이 지나가고 남은 곳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유로움이 남았다.그 어떤 심리적인 부담도 없는 자유로움이었다.소은정은 질책할 이유가 없었다.박수혁이 정말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소은정은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소은정이 이 지경까지 된 것은 박수혁과도 연관이 있었다.나머지는 하늘의 뜻에 맡기면 그만이었다.소은정은 천천히 탄식하더니 담담하게 웃었다."정말 안타깝게 됐네요, 도혁 씨, 결국 이렇게 허탕치게 만들었으니."도혁은 소은정의 말이 의외라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차 안의 분위기는 이상해졌다.밖은 덥고 습했다, 차는 창문을 열지 않고 에어컨도 돌아가지 않고 있었기에 소은정은 짜증을 참아가며 그를 상대하고 있었다.도혁이 피식 웃더니 재밌다는 듯 말했다."이렇게 자기를 걱정하지 않아서야 되겠어? 박 대표님이 가버리면 당신 완전히 가치를 잃게 되는 거야.""그럼 안진 씨도 돌아오지 못할 거예요. 박 대표님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소은정의 말을 들은 도혁이 콧방귀를 뀌었다."박 대표님께서 얼마나 대단하신지 내가 잘 알지, 정말 손해는 1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거 나도 잘
"소은정 씨, 위층으로 가시죠."소은정의 등 뒤에서 따라오던 경호원 하나가 말했다.그의 강경한 말투에 소은정은 입술을 물었다. 그녀에게는 반항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소은정은 경호원들과 충돌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요즘 도혁이 자신의 밥에 약을 넣었다는 것도 발견했다, 때문에 소은정은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그녀는 주먹을 꼭 쥐고 그들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방은 무척 좁았다, 싱글 침대 외에는 다른 물건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소은정이 그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경호원이 밖에서 문을 잠갔다.소은정은 얼른 다가가 문을 밀었지만 소용없었다."뭐 하는 거예요?""시끄럽게, 내일이면 열어줄 테니까 조용히 잠이나 자요, 아니면 다른 사람 찾아서 같이 자게 해줄 수도 있고."경호원이 소은정을 비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소은정이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감히 그 어떤 이도 건드릴 수 없었다.내일이면 결과를 알게 될 터였다.침대 위에 앉은 소은정은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주위는 금방 조용해졌다. 경호원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날이 밝자 햇빛이 구름을 뚫고 방을 비췄다. 하지만 그저 한 줄기 빛에 지나지 않았다, 그 방에는 창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소은정이 경계를 살짝 내려놓았을 때, 아래층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그리고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갔다, 소은정은 사람들이 차에 오르고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를 들으니 다급해졌다.그녀는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도혁 씨, 도혁…"소은정이 큰 소리로 도혁의 이름을 불렀다.그녀는 그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리고 갑자기 도혁이 어제 말했던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소은정은 이미 그 게임 안으로 진입했다.이는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그 누구도 그녀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차가 떠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소은정은
문밖의 도혁이 재밌다는 듯 문을 두드렸다."계속해, 소은정, 박 대표님한테 또 하고 싶은 말 없어?"도혁이 휴대폰을 땅에 내려놓고 소은정에게 하는 말인지 박수혁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을 말을 했다."박 대표님, 이제 반 시간밖에 안 남았어요. 반 시간 안에 오지 않는다면 이곳을 폭발시켜 버릴거예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소은정 씨는 재가 되어버리겠죠."도혁은 제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차갑게 말을 이었다.휴대폰은 스피커폰으로 되어있었기에 소은정은 박수혁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도혁, 너 감히 소은정한테 손을 대기만 해!"박수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그 목소리를 들은 도혁이 웃었다."박 대표님, 안진은 대표님한테 줄 테니까 소은정 씨 목숨은 대표님 능력에 맡겨야겠네요."도혁이 다시 문을 두드리더니 예의를 차려 소은정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안녕, 소은정."마치 그녀가 반드시 죽을 거라고 확신한다는 듯이.도혁은 박수혁이 소은정을 정말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비행기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끝까지 연기를 하는 박수혁을 보며 도혁은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사랑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소은정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만이었다.도혁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기를 도매하는 변태였다. 그리고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테러리스트였다.박수혁은 아직 너무 어렸다.도혁이 떠나는 발걸음 소리를 들은 소은정의 마음은 마치 차가운 바다속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녀는 조용하게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조용하게 눈물을 닦았다.30분이 그녀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한이었다.밖에 놓인 휴대폰 속에서는 여전히 박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정아, 소은정 내 목소리 들려? 지금 어디야? 내가 갈게!"박수혁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급해 보였다.그는 언제나 자신만만한 모습만 보였었다.소은정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웃었다.유럽에서 첫눈에 그에게
박수혁이 눈을 감았다.그 말을 어떻게 전할 수 있었을까?그는 전동하가 사라져서 더 이상 두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박수혁은 소은정을 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박수혁은 이것마저 후회되기 시작했다.소은정의 소원이라면 모두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은정아, 지금 어딘지 말해, 내가 당장 갈게!"박수혁은 소은정이 오랫동안 대답이 없자 조바심에 심장이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시간은 그렇게 일분일초 흘러갔고 박수혁이 다시 참지 못하고 소은정을 재촉했다."소은정!"하지만 소은정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그만해, 도혁이 나한테 그런 걸 알려줬을 것 같아?"그녀의 웃음소리는 절망적이었다.소은정은 자신이 박수혁을 미워하는 것인지 아닌지 말 할 수 없었다.하지만 다시는 박수혁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그랬기에 힘겹게 일어선 그녀는 다시 침대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그리고 대나무로 된 벽 틈을 바라보며 이제 30분도 남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다.밖에서는 박수혁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소은정은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만약 생명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소은정은 아마 박수혁을 탓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전동하가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자책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밖의 소리가 점차 사라졌다.아마 박수혁도 포기했겠지.소은정이 시린 눈을 깜빡였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그녀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소은정의 시선은 목적을 잃은 채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고요한 공기 속에서 주위는 마치 격리된 듯했다. 소은정은 멍하니 그곳에 앉아 자신의 숨소리를 들었다.그때, 갑자기 귓가에 먼 곳에서 온 듯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소은정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의심했지만 벽 쪽으로 다가가니 그 목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폭발물이 감지되었습니다, 1급 경계, 무관 인원 출입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