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저녁.도혁이 다시 아지트로 돌아왔다.잔뜩 굳은 표정을 보아하니 협상이 생각대로 안 풀린 모양이었다.‘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박수혁 그 인간이 날 위해 그렇게까지 물러설 리가 없지. 이건 돈 문제가 아니야. 도혁... 그 사람의 목적은 전세계 군수물자 시장을 독점하는 것... 혼자 힘으로는 안 되니까 박수혁의 힘을 빌릴 생각이었나 본데 착각하지 마... 나 하나 붙잡고 가만히 앉아서 원하는 걸 다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도혁이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이걸 어쩌나... 여기서 며칠 더 있어야겠어. 박수혁이 내 조건에 응하지 않았거든.”분명 소은정에게는 나쁜 소식이었지만 마음은 왠지 모르게 홀가분해졌다.“예상했던 바야. 박수혁이 바보는 아니니까.”“지금 그렇게 여유부릴 때가 아닐 텐데? 아, 지금 다시 전화라도 해볼까? 박봉원처럼 뭘 하나 잘라보내면 정신을 차리려나? 어디가 좋을까... 아... 손가락이 유난히 예쁘네?”악몽 같은 그의 목소리가 독사의 독니처럼 소은정의 가슴을 파고들었다.‘끔찍해.’소은정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등 뒤로 숨겼고 도혁은 그런 그녀를 비웃었다.하지만 잠시 후, 그의 눈빛은 다시 섬뜩해졌다.“내가 박수혁을 너무 과소평가했었네. 순정남인 줄만 알았는데.”도혁의 비아냥거림에 소은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지금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죽은 듯이 침묵하는 것뿐이었다.그뒤로 며칠 동안 소은정은 하늘에 드론이 꽤 많이 떠있는 걸 발견했다.‘뭐지? 내 착각인가?’그녀가 발견한 걸 도혁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고 드론 중 몇 대를 총으로 저격했지만 그저 평범한 게임용 드론일 뿐이었다.욕설을 내뱉은 도혁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무성한 밀림속에 위치한 이곳에 평범한 드론이 떠다닐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그렇다면 남은 답은 누군가 이곳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걸 설명했다.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이는 적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그리고 며칠 뒤 도혁은 아지트를 이전해야겠다는
소은정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내 운명을 정말 박수혁에게 맡길 수는 없어.’하지만 그녀의 말에 도혁은 손을 저었다.“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쪽 집에는 자식이 너무 많아. 그리고 넌 여자잖아. 그쪽 나라에서는 여자를 출가외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면서. 오히려 네가 죽으면 네 그 오빠들은 오히려 좋아할지도 몰라. 유산을 물려받는 머릿수가 하나 줄어든다는 걸 의미하니까.”도혁의 이상한 논리에 눈이 커다래진 소은정은 입만 벙긋거렸다.‘하,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우리 집안에서 가장 예쁨받는 아이가 난데... 하, 이걸 어떻게 납득시켜야 하나...’소은정이 뭔가 더 말하려던 그때, 눈앞이 핑글 돌아가더니 그녀의 머리가 차창에 쾅 하고 부딪혔다.차량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었다.이에 가슴팍에서 총을 꺼낸 도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경계했다.“무슨 일이야?”이에 운전기사가 잔뜩 긴장한 말투로 대답했다.“미행이 붙은 것 같습니다. 독사 쪽 애들 같은데요.”독사, 도혁의 라이벌 조직의 두목 이름이었다.“몇 대나 붙었어?”“다섯 대쯤입니다. 어떻게 할까요?”차에 앉은 모든 이들이 긴장하기 시작하고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가 소은정의 귀를 자극했다.‘하, 젠장.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까 별일을 다 겪게 되네.’도혁이 이를 악물었다.“돌아간다. 아지트로 유인해. 집에 있는 애들한테 전투 준비 좀 하라고 말하고.”이대로 부딪히면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손실이 클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인질인 소은정까지 차에 탄 상황, 어떻게든 아군이 많은 아지트로 그들을 유인해야했다.이에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조금 격앙되었다.“예, 형님. 꽉 잡으십시오.”말이 끝나기 바쁘게 운전기사가 핸들을 급격하게 돌렸다. 옆 차와 부딪히는 게 아닐까 소은정이 눈을 질끈 감는 동안 차량은 유턴을 맞추었다.다른 차들도 그 뒤를 따라 급유턴을 시전하고 소은정은 잔뜩 겁 먹은 얼굴로 몸을 웅크렸다.‘혹시 사고로 총알이 발사되기라도 하
역시 그녀의 눈물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던 도혁은 바로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독사파 놈들 정말 간이 배밖으로 나온 거 아닙니까? 오기만 해봐, 어디... 제가 죽여버리겠습니다!”“형님 걱정마십시오! 한놈도 살려보내지 않겠습니다.”남자들의 대화를 듣던 소은정이 미친 여자처럼 문을 향해 걸어갔지만 곧 도혁의 부하들이 그녀를 막아섰다.‘이상해... 내가 동하 씨를 잘못 봤을 리가 없어. 동하 씨가 온 거야... 이 자식들이 말하는 독사가 아니라... 동하 씨가 온 거라고. 이 사실을 도혁이 안다면... 동하 씨가 위험해질지도 몰라. 독사파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걸 보면 나름 세력이 상당할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신중하게 움직이는 거겠지. 하지만 만약 그저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걸 눈치채면 바로 죽이려들지도 몰라. 그럼 며칠 전 드론도 동하 씨가 띄운 건가...’이런저런 생각에 소은정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질려갔고 도혁은 단순히 그녀가 겁에 질린 줄 알고 부하들을 시켜 방으로 데리고 가라 명령했다.‘나가고 싶어... 자유가, 동하 씨가 바로 저 문 너머에 있는데...’며칠내내 죽은 것 같던 영혼이 다시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고 짜릿한 희열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방에 들어온 소은정은 여전히 멍하니 서 있었고 그 모습에 도혁의 애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 왜 정신을 못 차려? 다친 데도 없잖아?”하지만 여전히 대답없는 소은정의 모습에 여자가 한숨을 내쉬었다.“됐어. 푹 쉬어. 떠날 때가 되면 다시 올 테니까.”말을 마친 여자는 문까지 꼭 닫아준 뒤 방을 나섰다.그제야 천천히 의자에 앉은 소은정은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았다.‘동하 씨는... 날 포기하지 않았던 거야.’깊은 밤.여러가지 생각으로 겨우 잠이 든 소은정은 밖에서 들리는 소음에 눈을 번쩍 떴다.또 여자를 내보내는 건가 싶어 다시 눈을 감았지만 몇 분 뒤, 그녀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소은정이 기겁하며 눈을 떠보니 도혁의 애인이 거기 서 있었다.“일어나.
소은정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을 느꼈다.결과를 알 수 없는 여정과 주변 사람들은 그녀에게 불안함을 안겨줬다.그녀는 무릎 위에 놓여있던 손을 서서히 말아쥐었다.쭉 옆에서 눈을 감고 있던 도혁은 어느새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에게 할 말이 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그거 알아? 박수혁 내일 비행기 표를 샀어, 여기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고. 협상 결렬이야."그가 내뱉는 말은 소은정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소은정의 불안함을 알아차린 도혁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안타까움을 담고 있지만 좋은 구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눈빛을 보니 소은정은 등골이 서늘했다.도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은정은 절망을 느꼈었다. 하지만 절망이 지나가고 남은 곳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유로움이 남았다.그 어떤 심리적인 부담도 없는 자유로움이었다.소은정은 질책할 이유가 없었다.박수혁이 정말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소은정은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소은정이 이 지경까지 된 것은 박수혁과도 연관이 있었다.나머지는 하늘의 뜻에 맡기면 그만이었다.소은정은 천천히 탄식하더니 담담하게 웃었다."정말 안타깝게 됐네요, 도혁 씨, 결국 이렇게 허탕치게 만들었으니."도혁은 소은정의 말이 의외라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차 안의 분위기는 이상해졌다.밖은 덥고 습했다, 차는 창문을 열지 않고 에어컨도 돌아가지 않고 있었기에 소은정은 짜증을 참아가며 그를 상대하고 있었다.도혁이 피식 웃더니 재밌다는 듯 말했다."이렇게 자기를 걱정하지 않아서야 되겠어? 박 대표님이 가버리면 당신 완전히 가치를 잃게 되는 거야.""그럼 안진 씨도 돌아오지 못할 거예요. 박 대표님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소은정의 말을 들은 도혁이 콧방귀를 뀌었다."박 대표님께서 얼마나 대단하신지 내가 잘 알지, 정말 손해는 1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거 나도 잘
"소은정 씨, 위층으로 가시죠."소은정의 등 뒤에서 따라오던 경호원 하나가 말했다.그의 강경한 말투에 소은정은 입술을 물었다. 그녀에게는 반항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소은정은 경호원들과 충돌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요즘 도혁이 자신의 밥에 약을 넣었다는 것도 발견했다, 때문에 소은정은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그녀는 주먹을 꼭 쥐고 그들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방은 무척 좁았다, 싱글 침대 외에는 다른 물건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소은정이 그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경호원이 밖에서 문을 잠갔다.소은정은 얼른 다가가 문을 밀었지만 소용없었다."뭐 하는 거예요?""시끄럽게, 내일이면 열어줄 테니까 조용히 잠이나 자요, 아니면 다른 사람 찾아서 같이 자게 해줄 수도 있고."경호원이 소은정을 비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소은정이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감히 그 어떤 이도 건드릴 수 없었다.내일이면 결과를 알게 될 터였다.침대 위에 앉은 소은정은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주위는 금방 조용해졌다. 경호원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날이 밝자 햇빛이 구름을 뚫고 방을 비췄다. 하지만 그저 한 줄기 빛에 지나지 않았다, 그 방에는 창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소은정이 경계를 살짝 내려놓았을 때, 아래층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그리고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갔다, 소은정은 사람들이 차에 오르고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를 들으니 다급해졌다.그녀는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도혁 씨, 도혁…"소은정이 큰 소리로 도혁의 이름을 불렀다.그녀는 그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리고 갑자기 도혁이 어제 말했던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소은정은 이미 그 게임 안으로 진입했다.이는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그 누구도 그녀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차가 떠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소은정은
문밖의 도혁이 재밌다는 듯 문을 두드렸다."계속해, 소은정, 박 대표님한테 또 하고 싶은 말 없어?"도혁이 휴대폰을 땅에 내려놓고 소은정에게 하는 말인지 박수혁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을 말을 했다."박 대표님, 이제 반 시간밖에 안 남았어요. 반 시간 안에 오지 않는다면 이곳을 폭발시켜 버릴거예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소은정 씨는 재가 되어버리겠죠."도혁은 제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차갑게 말을 이었다.휴대폰은 스피커폰으로 되어있었기에 소은정은 박수혁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도혁, 너 감히 소은정한테 손을 대기만 해!"박수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그 목소리를 들은 도혁이 웃었다."박 대표님, 안진은 대표님한테 줄 테니까 소은정 씨 목숨은 대표님 능력에 맡겨야겠네요."도혁이 다시 문을 두드리더니 예의를 차려 소은정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안녕, 소은정."마치 그녀가 반드시 죽을 거라고 확신한다는 듯이.도혁은 박수혁이 소은정을 정말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비행기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끝까지 연기를 하는 박수혁을 보며 도혁은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사랑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소은정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만이었다.도혁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기를 도매하는 변태였다. 그리고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테러리스트였다.박수혁은 아직 너무 어렸다.도혁이 떠나는 발걸음 소리를 들은 소은정의 마음은 마치 차가운 바다속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녀는 조용하게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조용하게 눈물을 닦았다.30분이 그녀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한이었다.밖에 놓인 휴대폰 속에서는 여전히 박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정아, 소은정 내 목소리 들려? 지금 어디야? 내가 갈게!"박수혁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급해 보였다.그는 언제나 자신만만한 모습만 보였었다.소은정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웃었다.유럽에서 첫눈에 그에게
박수혁이 눈을 감았다.그 말을 어떻게 전할 수 있었을까?그는 전동하가 사라져서 더 이상 두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박수혁은 소은정을 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박수혁은 이것마저 후회되기 시작했다.소은정의 소원이라면 모두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은정아, 지금 어딘지 말해, 내가 당장 갈게!"박수혁은 소은정이 오랫동안 대답이 없자 조바심에 심장이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시간은 그렇게 일분일초 흘러갔고 박수혁이 다시 참지 못하고 소은정을 재촉했다."소은정!"하지만 소은정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그만해, 도혁이 나한테 그런 걸 알려줬을 것 같아?"그녀의 웃음소리는 절망적이었다.소은정은 자신이 박수혁을 미워하는 것인지 아닌지 말 할 수 없었다.하지만 다시는 박수혁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그랬기에 힘겹게 일어선 그녀는 다시 침대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그리고 대나무로 된 벽 틈을 바라보며 이제 30분도 남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다.밖에서는 박수혁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소은정은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만약 생명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소은정은 아마 박수혁을 탓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전동하가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자책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밖의 소리가 점차 사라졌다.아마 박수혁도 포기했겠지.소은정이 시린 눈을 깜빡였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그녀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소은정의 시선은 목적을 잃은 채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고요한 공기 속에서 주위는 마치 격리된 듯했다. 소은정은 멍하니 그곳에 앉아 자신의 숨소리를 들었다.그때, 갑자기 귓가에 먼 곳에서 온 듯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소은정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의심했지만 벽 쪽으로 다가가니 그 목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폭발물이 감지되었습니다, 1급 경계, 무관 인원 출입
소은정이 그 벨 소리를 들었으니 전동하도 당연히 그 벨 소리를 듣게 되었다.그리고 머지않아 발걸음 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소은정의 심장이 더욱 빨리 뛰었다."은정 씨, 안에 있어요?"전동하가 긴장한 목소리로 문을 두드렸다.그는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랐다.휴대폰에는 박수혁의 이름이 떠 있었다.박수혁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전동하는 휴대폰을 보며 자신의 추측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아래층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1분 남았습니다, 무관 인원은 어서 떠나세요, 폭발물이 곧 폭발할 겁니다!"소은정은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동하 씨…"소은정이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얼른 가요…"전동하는 소은정에게 기대를 가져다줬지만 지금 그녀는 그런 기대를 하고 싶지 않았다.전동하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소은정은 이미 충분했다.하지만 함께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그녀는 전동하가 잘 살기를 바랐다.전동하는 울먹이는 소은정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 급해졌다."은정 씨, 무서워하지 마요, 내가 왔으니까."전동하가 힘껏 문을 찼지만 문은 그저 흔들렸을 뿐 열리지 않았다.연이어 들려오는 소리에 소은정은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시간이 없어요, 얼른 가요…"소은정이 손에 땀을 쥐고 말했다.전동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도 않았다.그리고 다음 순간, 문이 열렸다.소은정은 문 앞에 선 전동하를 바라봤다. 전동하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단호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고 있었다."20초 남았습니다, 얼른 나오세요!"밖에서는 다급한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전동하는 얼른 소은정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문밖의 휴대폰은 이미 박살 난 채였다."10초!"소은정은 단호한 전동하의 등을 보고 있으니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그녀는 그를 이 일에 말려들게 했다.10초로는 이곳을 벗어나기 힘들었다.전동하는 그녀를 복도의 창문 앞에 끌고 가더니 창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