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이 눈을 감았다.그 말을 어떻게 전할 수 있었을까?그는 전동하가 사라져서 더 이상 두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박수혁은 소은정을 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박수혁은 이것마저 후회되기 시작했다.소은정의 소원이라면 모두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은정아, 지금 어딘지 말해, 내가 당장 갈게!"박수혁은 소은정이 오랫동안 대답이 없자 조바심에 심장이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시간은 그렇게 일분일초 흘러갔고 박수혁이 다시 참지 못하고 소은정을 재촉했다."소은정!"하지만 소은정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그만해, 도혁이 나한테 그런 걸 알려줬을 것 같아?"그녀의 웃음소리는 절망적이었다.소은정은 자신이 박수혁을 미워하는 것인지 아닌지 말 할 수 없었다.하지만 다시는 박수혁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그랬기에 힘겹게 일어선 그녀는 다시 침대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그리고 대나무로 된 벽 틈을 바라보며 이제 30분도 남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다.밖에서는 박수혁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소은정은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만약 생명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소은정은 아마 박수혁을 탓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전동하가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자책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밖의 소리가 점차 사라졌다.아마 박수혁도 포기했겠지.소은정이 시린 눈을 깜빡였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그녀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소은정의 시선은 목적을 잃은 채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고요한 공기 속에서 주위는 마치 격리된 듯했다. 소은정은 멍하니 그곳에 앉아 자신의 숨소리를 들었다.그때, 갑자기 귓가에 먼 곳에서 온 듯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소은정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의심했지만 벽 쪽으로 다가가니 그 목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폭발물이 감지되었습니다, 1급 경계, 무관 인원 출입
소은정이 그 벨 소리를 들었으니 전동하도 당연히 그 벨 소리를 듣게 되었다.그리고 머지않아 발걸음 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소은정의 심장이 더욱 빨리 뛰었다."은정 씨, 안에 있어요?"전동하가 긴장한 목소리로 문을 두드렸다.그는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랐다.휴대폰에는 박수혁의 이름이 떠 있었다.박수혁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전동하는 휴대폰을 보며 자신의 추측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아래층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1분 남았습니다, 무관 인원은 어서 떠나세요, 폭발물이 곧 폭발할 겁니다!"소은정은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동하 씨…"소은정이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얼른 가요…"전동하는 소은정에게 기대를 가져다줬지만 지금 그녀는 그런 기대를 하고 싶지 않았다.전동하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소은정은 이미 충분했다.하지만 함께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그녀는 전동하가 잘 살기를 바랐다.전동하는 울먹이는 소은정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 급해졌다."은정 씨, 무서워하지 마요, 내가 왔으니까."전동하가 힘껏 문을 찼지만 문은 그저 흔들렸을 뿐 열리지 않았다.연이어 들려오는 소리에 소은정은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시간이 없어요, 얼른 가요…"소은정이 손에 땀을 쥐고 말했다.전동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도 않았다.그리고 다음 순간, 문이 열렸다.소은정은 문 앞에 선 전동하를 바라봤다. 전동하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단호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고 있었다."20초 남았습니다, 얼른 나오세요!"밖에서는 다급한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전동하는 얼른 소은정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문밖의 휴대폰은 이미 박살 난 채였다."10초!"소은정은 단호한 전동하의 등을 보고 있으니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그녀는 그를 이 일에 말려들게 했다.10초로는 이곳을 벗어나기 힘들었다.전동하는 그녀를 복도의 창문 앞에 끌고 가더니 창문을 열었다
소은정이 죽은건가…?박수혁은 자신의 심장이 차갑게 얼어버릴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마치 중요한 물건을 통째로 뺏긴 그런 느낌이었다하지만 박수혁은 그저 눈앞의 정경을 바라보며 이런 고통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폭발 현장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폭발한 뒤의 잿더미를 보니 그는 더욱 괴로워졌다.그 순간, 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그저 자신이 죽도록 미워졌다. 박수혁은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뜨거운 햇빛 아래의 공기는 덥고 습했다.박수혁은 그 아래에 서있으니 마치 온몸의 수분이 증발할 것 같았다. 옆에 있던 박수혁의 사람이 이상함을 알아차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박 대표님, 괜찮으세요?"박수혁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그저 잿더미로 변한 이곳에서 공기 속에 남은 폭발물 냄새와 탄 냄새를 맡았다.이곳은 마치 인간 지옥 같았다."박 대표님,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는 거라면 병원으로 가볼까요? 여기 상황은 제가 알아보고…"한 사람이 박수혁의 눈빛에 놀랐지만 최대한 그런 기색 없이 물었다.하지만 박수혁은 창백한 입술을 물고 굳은 얼굴로 그를 밀어내더니 잿더미 쪽으로 다가갔다.주위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강렬한 폭발은 주위에 있던 집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은 지진이라도 난 줄 알았다.현지의 경찰까지 현장에 들렀지만 그들은 눈앞의 정경을 보곤 감탄했다. "안에 두 사람 못 나온 거지?""아마 죽었을 거야.""그 남자도 멍청하지, 시간도 없는데 굳이 들어가서 사람을 살리겠다고 하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거 아니야.""누가 알겠어, 위쪽에서 이 일을 조용하게 처리하라고 했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나머지 말은 박수혁의 귓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몇 가지 관건적인 말만 들은 그는 경찰들에게 달려갔다."남자? 누가 여기로 들어간 겁니까?"경찰은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박수혁의 차림새를 보곤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해 입을
소은정은 익숙한 방을 살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그리고 갑자기 모든 것이 생각났다.처음 무인도에서 돌아왔을 때, 소은정은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었다.무려 원장님이 그녀를 직접 맞이해 줬었다.소은정이 몸을 움직여 보니 온몸이 아팠다.더불어 잊지 못할 일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절망적인 그 시간, 결렬된 협상, 도혁의 잔인한 얼굴, 전동하의 단호한 눈빛…소은정은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땀을 흘렸다.갑자기 일어나 앉은 덕분에 손에 꽂혀있던 링거가 빠져 통증이 느껴졌다.하지만 소은정은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만약 도혁이 그녀에게 약을 먹여 온몸에 힘이 없게 만들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도 아마 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렇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꿈이 아니었다.거대한 폭발음은 지금도 소은정의 심장이 떨리게 만들었다. 전동하는 그녀 앞에서 모든 위험을 막아줬다.소은정은 자신이 살았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하지만 방에는 누구도 없었다. 전동하도 없는 방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결국 소은정은 신발도 신지 않고 병실을 벗어났다.갑자기 문밖의 등불을 맞이한 소은정은 적응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췄다.그녀는 하마터면 어지러움에 중심을 잃을 뻔했다.그리고 그때, 갑자기 나타난 익숙한 그림자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은정아."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뜨고 보니 눈앞에 소은호가 서 있었다.이제 고작 며칠 만나지 못했지만 소은정은 굉장히 오랜만에 그를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소은호는 창백해진 얼굴로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 채 소은정을 살펴봤다.소은정은 순식간에 눈시울을 붉혔다."오빠…"소은호가 조심스럽게 소은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의 말을 건네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리고 말없이 그녀를 품에 안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걱정하지 마, 은정아, 오빠가 복수해 줄게."소은정은 그동안 억울함을 전부 쏟아냈다.그동안 도혁의 손에서 학대를 받지 않았지만 그가 먹
소은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두렵고도 긴장된 얼굴로 소은호를 바라봤다.전동하는 아직 살아있을까?소은정은 그 대답을 듣기도 조금 무서웠다.소은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 혹여나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닐까 봐 그녀는 겁이 났다.소은정의 말을 들은 소은호의 안색이 변하더니 고개를 돌려 한시연을 바라봤다.한시연도 입술을 달싹일 뿐 아무 말도 못 했다.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소은정은 당황했다."말 좀 해봐."소은정이 불안한 목소리로 재촉했다."아직 안 깨어났어, 조금 심하게 다쳤대, 장기들이 강렬한 충격 때문에 문제가 좀 생긴 것 같아. 수술 끝내고 중환자실에서 상황 지켜보고 있는 중인데 희망이 크진 않아."소은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은정이 다리에 힘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소은호는 얼른 그녀를 안아 들었고 한시연이 질책하듯 그를 보다 다시 말했다."은정 씨, 그 정도 아니에요. 수술도 성공적으로 잘 끝났고 상황도 안정적이구요. 며칠 더 지켜보면 위험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소은정이 한시연의 말을 듣더니 그녀를 보며 울먹였다."그 사람 보고 싶어요."하지만 소은호가 미간을 찌푸리고 거절했다."네 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잖아, 의사가 네 혈액에 아직 잔여 된 약 성분이 많다고 했어, 링거를 제대로 맞지 않으면 네 몸에 영향을 줄 거야."그 말을 들은 한시연이 소은호의 팔을 잡았다."한 번 가보게 해도 되잖아, 아니면 은정 씨가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 있겠어."소은호는 한시연의 말은 듣는 편이었다.잠시 고민하던 소은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은정을 옆에 있던 휄체어에 앉혔다."은정아, 얼굴만 보고 오는 거야."소은호가 소은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하지만 소은정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은정 씨 몸도 중요하잖아요, 아버님께서는 아직 아가씨 일을 모르고 계세요. 그런데 내일 아가씨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된다면 엄청 슬퍼하실 거예요."한시연의 말을 들은 소은정이 눈을 깜빡이다 입술을 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한시
소은호가 천천히 소은정의 휠체어를 밀고 병실로 돌아갔다.병실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던 한시연은 방금 전보다 나아진 소은정을 보곤 웃으며 물었다."뭐 좀 먹을래요?"하지만 소은정은 고개를 저었다."그래요, 그럼 내일 먹어요. 내일 전복죽 해줄 테니까 오늘은 푹 자요, 간호사 불러서 링거 다시 놓으라고 할게요."한시연은 말을 마치자마자 병실을 나갔다.소은정은 한숨을 쉬더니 소은호의 도움을 거절하고 스스로 침대 위에 누웠다."오빠, 우리 어떻게 돌아온 거야?"그녀는 아무리 좋은 결과라도 해도 동남아의 병원에서 깨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곳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 말을 들은 소은호가 잠시 멈칫하더니 소은정에게 다가갔다."우리 사람들이 박수혁이랑 전동하를 계속 따라다녔어, 두 사람 중 누구라도 너를 찾아내면 내가 알 수 있게. 그래서 전동하가 너를 구한 후에 우리 사람들이 너희를 비밀리에 데리고 온 거야.""비밀?"그 말을 들은 소은정이 소은호를 바라봤다.소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얘기해 주고 싶지 않았지만 소은정이 물었으니 그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소은정은 분명 제멋대로 걱정할 게 뻔했다."응, 사람들한테 알렸다가 도혁이 네가 죽지 않았다는 걸 발견하면 더 곤란해질 거고 너도 위험해졌을 테니까. 다행히 전동하가 너를 데리고 뛰어내린 곳을 사람들이 보지 못해서 우리가 쥐도 새도 모르게 두 사람을 데리고 올 수 있었어. 하지만 너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소은정은 한참 소은호의 말을 되새겼다. 그러다가 다시 물으려고 했지만 소은호가 그녀의 눈을 막았다."됐어, 다른 건 내일 말해줄게, 지금은 너 쉬어야 해."소은정은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응, 동하 씨한테 무슨 일 생기면 제일 먼저 나한테 알려줘야 해."소은정은 여전히 전동하가 걱정되었다."응."원장님이 소은정에게 링거를 놓아주자 그녀의 눈에 피곤함이 서렸다.소은호는 다시 잠든 소은정을 보다 이불을 덮어주고
간호사의 말을 들은 소은호의 안색이 긴장으로 물들었다.한 원장의 뒤를 따라가니 사람들이 전동하를 수술실로 데리고 가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걱정하지 마, 전 대표님 은정 씨를 위해서라도 버텨낼 거야."한시연이 옆에 서서 말했다.소은호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처음으로 조금 당황했다."전동하가 죽으면 은정이도 못 버텨낼 거야.""아니, 은정 씨한테는 가족들이 있잖아."그 말을 들은 소은호가 한시연을 바라봤다."당신도 하루 종일 못 쉬었잖아, 얼른 가서 쉬어. 내가 여기 있으면 돼, 내일은 아마 더 바쁠 거야."하지만 한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나 괜찮아, 힘든 건 당신이지. 은해 씨가 은정 씨랑 연락이 되지 않아서 무언가를 알아차린 것 같아. 내일 비행기로 오겠다고 하던데 그때가 되면 정말 다 들통날 거야. 아버님께서도 다 알게 될 텐데 어떻게 얘기해 봐야 할지 생각해 봤어?"소은호는 침묵을 지킬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그는 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그는 소은정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랐다.그는 소은정을 이런 위험으로 끌어들인 박수혁이 증오스러웠다, 그리고 하마터면 소은정을 죽일 뻔했다는 것만 생각하면 화가 나 견딜 수 없었다.도혁과 박수혁의 거래에 대해 들어본 것이 있기는 했지만 소은정을 향한 박수혁의 진심을 믿고 오만하게 굴었었다. 박수혁이 소은정을 죽일지도 모르고.소은호의 손에 무기가 있었더라면 무조건 박수혁을 때려죽였을 것이다.이런 능력도 없으면서 진심으로 소은정을 사랑한 척하는 꼴이라니.이익 앞에서 감정은 보잘것없었다.소은호는 예전에 소은정이 박수혁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 안타까웠다.하지만 이번에 박수혁은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거래를 해댔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이토록 가증스러웠다.박수혁이 다시 소은정의 앞에 나타난다면 소은호는 망설이지 않고 그를 때려죽일 것이다.차갑게 식은 소은호의 얼굴을 확인한 한시연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내가 돌아가서 당신이랑 은정 씨 옷 좀 가지
이렇게 되니 소은호는 전동하가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이번에 전동하가 없었다면 지금 수술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소은정이 되었을 것이다. 더 나쁜 결과를 그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어렸을 때부터 온갖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소은정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을 전부 겪게 되었다.스위스의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전부 끊기는 바람에 수술은 한 원장의 제자와의 화상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한 원장님이 직접 나선 수술은 새벽 한 시에 시작되어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한 원장과 함께 수술실에 들어섰던 이들이 피곤한 얼굴로 수술실을 나섰다. 평소 튼튼해 보이던 한 원장님도 이틀간의 소란을 거쳐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원장님, 어떻게 됐어요?"소은호가 중환자실로 돌아가는 전동하를 보며 물었다. 그는 깨어나지도 않았고 전보다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한 원장님은 미간을 문지르며 정신을 차리려 했다."지도하에 수술은 잘 끝나서 내장 출혈은 막은 상태야. 하지만 우리 기술이 과학의 발걸음을 따라잡지 못해서 아직 조금 모자라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야."한 원장이 잠시 망설이다 다시 말했다."내일 선진적인 치료 기계를 들고 오기를 기다리면 돼, 하지만 시간이 급박해서 세관에서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네 도움이 필요해."그 말을 들은 소은호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한 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를 떴다.소은호는 얼른 세관 쪽에 연락을 해 전문가 한 분을 모실 준비를 하라고 했다.새벽녘이 되었을 때, 창밖에 안개가 가득 끼었다.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고 소은호가 확인해 보니 우연준이었다."여보세요?""대표님, 박 대표님이랑 국정원 쪽 관계를 조사해 보라고 하신 거 거의 다 알아냈습니다. 안진이 박수혁의 아버지를 잡아서 박봉원을 다치게 만들었던 겁니다. 박수혁은 겉으로 결혼을 허락한 척했지만 사적으로 국정원이랑 연락을 해 안진이 무기상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 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