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소은정과 전동하는 오랜만에 영화관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영화관에 사람도 적었던 덕분에 두 사람은 둘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전동하는 단호하게 공포영화를 선택하며 비현실적인 느낌을 즐겨보고 싶다는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그 말을 들은 소은정은 귀신을 본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사실을 털어놓았다."이 귀신 영화를 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요, 사람 많은 곳은 별로라."그 이유는 나름 정상적이었기에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오기 전에 디저트를 먹었던 두 사람은 팝콘을 사지 않았다. 그렇게 빈손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본 대학생 커플이 부러운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저 남자 잘생기긴 했는데 너무 쪼잔한 거 아니야?"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다.그러자 여자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한 눈 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저 얼굴이면 쪼잔해도 돼."남자는 자신의 여자친구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영화가 시작되고 소은정이 영화에 집중하려던 찰나, 전동하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은정 씨 무서워할까 봐 그래요, 눈 감아도 돼요.""전혀 안 무서운데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손을 빼내지 않았다.전동하의 손은 부드럽고 고운 것이 꼭 예술작품 같았다.예술작품이 손을 감싸고 있으니 자신도 귀중해진 느낌이었다.머지않아, 소은정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휴대폰은 또다시 울렸다.무수히 많은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소은정이 대충 보니 한유라가 단톡방에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곧이어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쌓여 99+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괜히 힘들 것 같아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았다.영화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했을 때,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갑자기 화면 속을 가득 채워 시각적 충격을 안겨줬다. 전동하도 그 모습을 보곤 얼어버렸다.덩달아 표정도 조금 굳었다.하지만 한유라는 미친 것처럼 계속 메시지를 보내더니 이번에는 전화를 걸었다.소은정은 그런 한유라를
‘한유라, 이럴 때 보면 아직 애라니까.’소은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총성? 확실해?”소은정의 질문에 한유라가 싱긋 웃었다.“아니. 하지만 깡이 총성이라고 말했고 나한테 괜히 참견하지 말라고 말했어. 이민혁 비서도 갑자기 약혼식 취소라고 하객들 다 돌려보냈고. 그 군수물자 사업을 한다는 집안 딸이 홧김에 총을 쏜 것 같은데...”‘대한민국에서 총을 쏴?’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누구 다친 사람은 없었어?”곰곰히 생각하던 한유라가 대답했다.“없을걸? 구급차도 안 왔고 큰 소란도 없었으니까 다친 사람은 없을 가능성이 클 거야. 그런데... 양복 입은 사람들이 안나 그 여자를 연행해 갔어. 수갑까지 채워서.”소은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국정원 사람들이 안진을 연행해 갔단 말이지... 어쩌면 이번 약혼식 자체가 박수혁이 계획한 함정일지도 모르겠어. 무서운 자식. 국정원까지 동원된 이상 쉽게 풀려나진 못할 것 같은데 도혁 회장이 가만히 있을까? 자기 딸 구하려고 뭔 짓이든 할 텐데...’소은정은 고개를 저으며 꼬리를 무는 생각을 털어냈다.‘아니야. 상대는 박수혁이야. 그 사람이라면 이 정도 변수까지 다 생각해 둔 거겠지. 남 걱정은 그만하자.’“우리 유라 대단하네. 그걸 다 파악하고.”소은정의 말에 한유라가 깔깔 웃어댔다.“어쩌겠어. 이런 사건 사고 앞에서는 레이더가 막 돌아가는 것 같다니까.”소은정이 뭔가 한 마디 더 하려던 그때 그녀의 앞이 어딘가 어두워졌다.흠칫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큰 키에 깡마른 몸매, 어딘가 이상할 정도로 창백한 인상의 남자가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워낙 병적인 안색 때문에 그런 건지... 그 미소가 어딘가 기괴해 보였다.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자 남자가 먼저 물었다.“저기 여기 화장실이 어디죠?”생각 외로 젠틀한 목소리에 소은정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이에 고맙다는 말을 남긴 남자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한편 한유라는 여전히 재잘재잘 자신의 생각을 떠들어대고 있었고
축 늘어진 여자와 그런 여자를 부축하고 있는 남자.하지만 다들 그저 여자가 취했거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이때 방금 전 마주쳤던 커플 중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뭐야? 아까는 저 남자 아니었던 것 같은데?”여자도 고개를 끄덕였다.“아까 남자가 더 나은데? 뭐야? 삼각관계 뭐 그런 거야?”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했지만 워낙 출중한 소은정의 외모가 오히려 이 의문을 지워주었다.‘저 정도로 예쁜 여자면 인기도 당연히 많겠지...’...소은정 실종 15분째.여전히 극장 안에 있는 전동하는 지루함에 하품을 내뱉었다.처음에는 나름 긴장감 있는 스토리로 끌고 나가는 듯했으나 후반으로 갈 수록 스토리가 망가지는 전형적인 삼류 영화였다.시간을 확인한 전동하가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왜 안 오는 거지?’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전동하가 조금 굳은 표정으로 일어섰다.‘유라 씨... 아마 박수혁 그 사람 약혼식에서 일어난 일로 전화한 거겠지...’아무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전동하는 애써 마음을 달래 보았다. 결국 소은정이 선택한 건 그였으니까.‘그래도 이건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하지만 극장을 나가봐도 소은정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때, 저 멀리서 한유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정아, 내 말 듣고있어? 아까부터 왠지 나 혼자 떠드는 것 같은데? 야, 내가 데이트 방해했다고 삐친 거야? 치사하게 친구보다 남자다 이거야?”바닥에 떨어진 소은정의 휴대폰을 발견한 전동하의 안색이 순간 창백해졌다.떨리는 손을 애써 잠재우며 전동하가 휴대폰을 주웠다.“유라 씨?”“동하 씨? 은정이는요?”“은정 씨가 사라졌어요. 휴대폰은 바닥에 떨어져있고... 언제부터 유라 씨 혼자 말하기 시작한 거예요?”전동하의 시선이 자연스레 화장실 쪽으로 향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화장실에 간 거라면 휴대폰까지 떨어트렸을 리가 없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거야.’쿵쾅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전동하가 영화관을 나섰다.프런트로
어색하게 눈치를 보던 남자가 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저기... 혹시 아까 함께 온 그 여자분 찾으시는 거예요?”전동하가 고개를 홱 돌렸다.“네, 혹시 보셨어요?”전동하의 다급한 목소리에 커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이때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어떤 남자랑 같이 가던데요? 그리고 취했는지... 축 늘어진 모습이었어요.”순간 전동하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술은 안 마셨는데....”이에 여자도 미간을 찌푸렸다.“아닌데... 분명 취한 것 같...”하지만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젠장, 도대체 누가...’전동하가 이를 악물었다.“그 남자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해요?”커플 중 남자도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그 남자랑 아는 사이 아니었어요? 전 삼각관계 그런 건 줄 알고...”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남자가 전동하의 차가운 시선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전동하의 눈치를 살피던 남자가 드디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키가 컸고 아주 마른 체격이었어요. 아, 얼굴이 굉장히 창백한 남자였어요.”여자도 고개를 끄덕였다.“네, 남자가 그렇게까지 하얀 건 흔치 않은 경우라 기억에 남아요.”“얼굴은요? 얼굴은 확인하셨나요?”전동하의 다급한 질문에 두 사람 모두 고개를 저었다.“너무 빨리 사라져서 얼굴을 제대로 못 봤어요.”전동하의 얼굴에 비친 다급함이 짜증으로 바뀌려던 그때, 직원이 부랴부랴 달려왔다.“이분이 저희 매니저님이세요.”한편, 실종자가 SC그룹 소은정 대표라는 사실을 들은 매니저 역시 잔뜩 당황한 얼굴이었다.소은정과 함께 동행한 남자라면 그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닐 터, 게다가 기분이 나빠 보이긴 하지만 귀공자 같은 고급스러운 외모...‘분명 어느 회사 대표겠지?’“매니저분 되세요?”“네네네. 소은정 대표님이 오시는 걸 미리 알았으면 저희 측에서 전체 대관해 드렸을 텐데요...”전동하의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 매니저가 몸을 움찔거렸다.‘소은정 대표가
CCTV 속 화면에는 남자가 손을 뻗자 소은정이 맥없이 쓰러지는 모습까지 그대로 담겨있었다.‘뭐지? 마취제 같은 건가? 만약 정면으로 붙었다면 은정 씨가 이렇게 쉽게 끌려갈 리가 없어. 은정 씨 실력 알고 미리 대비한 거야. 소리가 너무 크면 사람들 시선이 몰릴 테니까...’휴대폰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점점 더 차가워지는 분위기에 옆에 서 있던 매니저가 눈치를 살피다 더듬거리며 물었다.“경...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정말 납치잖아... 저 남자가 소은정 대표를 납치했어... 그쪽 집안에서 나한테 책임이라도 물으면 어떡하지? 아예 이 영화관 자체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어. 젠장,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CCTV를 통해 소은정이 납치를 당했다는 건 이미 기정 사실화 되고 항상 점잖고 부드러운 이미지인 전동하의 눈은 차가운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차가운 눈으로 매니저를 노려봐 준 전동하가 매니저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왜 대답을 안 해... 어떡하지? 신고하는 게 맞는 건가?’이때 가만히 있던 직원이 조심스레 말했다.“범인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게 분명해요. 괜히 경찰에 신고했다간 인질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이에 매니저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한편, 소은호 쪽.전동하에게서 상황을 전달받은 소은호는 침착하게 소은정의 스마트 시계에 탑재된 위치 추적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하지만... 화면 속 빨간 점이 쇼핑몰 입구에서 사라지고 소은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시계를 버린 거야...’소은호는 슬리퍼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허둥지둥 서재를 나섰다.이렇게 당황한 모습은 처음 보는 한시연이 의아한 듯 물었다.“어디 가?”여전히 거실에서는 소찬식과 집사의 대화 소리가 들려오고...소은호는 애써 감정을 추스렸다.깊은 한숨을 내쉰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은정이가 납치당한 것 같아. 시연이 넌 일단 집에 있어. 아버지한테는 일단 말씀드리지 말고.”얼마 전, 소은정이 탄 비행기
이에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빅데이터 얼굴 인식까지 동원했는데도 놓쳤습니다. 그리고... 하필 CCTV도 없는 골목으로 사라져서 단서가 완전히 끊어진 상태입니다.”전동하의 설명에 소은호의 표정이 더 차갑게 굳었다.면목 없는 전동하도 눈을 질끈 감았고 그의 분노를 보여주듯 목덜미 쪽의 핏줄이 움찔거렸다.‘누가 봐도 의도적인 범죄야. 사막에서 바늘 찾기도 아니고...’이때 뭔가 떠오른 듯 소은호가 고개를 들었다.“전인국 회장은 아직 미국에 있습니까?”소은정과 악연으로 얽힌 사이이니 그쪽에서 실행한 복수가 아닌가 싶은 생각에서였다.하지만 그의 질문에 전동하가 고개를 저었다.“은정 씨가 실종되고 나서 바로 알아봤는데... 전 회장은 아닙니다. 지금 요양병원에 완전히 감금된 상태라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그건 전기섭도 마찬가지고요.”‘차라리... 그 두 사람이 한 거였으면 좋겠어. 그럼 적어도 이렇게 혼란스럽진 않을 테니까.’그의 대답에 한동안 침묵하던 소은호가 전동하를 차갑게 노려보았다.“좋습니다. 정말 그쪽과 아무 관련없는 일이길 바라야 할 거예요. 정말 전인국 회장이 벌인 일이라면... 은정이가 그쪽을 아무리 싸고 돌아도 두 사람 사이 내가 허락 못해요.”‘은정이가 행복하기만을 바랐는데... 정말 이 자식 때문에 위험해진 거라면... 절대 용서 못해.’매정한 소은호의 말에 전동하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지만 상대가 소은정의 오빠인지라 딱히 할 말이 없었다.대충 상황 파악을 마친 소은호는 바로 다급하게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고요한 밤, 다들 오늘 박수혁의 약혼식에서 일어난 말도 안 되는 사고에 빠져있느라 소은정이 사라졌다는 건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하객들이 귀머거리는 아니니 다들 총성을 들은 상태, 대한민국에서 총이라니.막장 드라마 뺨치는 스토리 전개에 다들 호기심이 극에 달했지만 그 주인공이 박수혁이다 보니 그 누구도 감히 궁금함을 드러내지 못했다.그저 이번 사건으로 약혼식이 파토났다는 것만 대충 예상할
태한그룹.박수혁의 사무실을 방문한 강서진이 여유롭게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국정원도 꽤 애먹고 있는 모양이야. 그리고 안진 그 여자... 형 만나겠다고 아주 난리를 피운다는 것 같더라고.”미간을 잔뜩 찌푸린 박수혁이 한 마디 내뱉었다.“걱정할 거 없어. 혐의 인정은... 결국 시간 문제니까.”국정원이 타깃으로 설정했다는 건 뭔가 구린 구석이 많다는 뜻, 오랫 동안 공 들인 대어를 잡아들였으니 어떻게든 입을 열게 만들 것이다.박수혁의 자신만만한 말투에 강서진도 그제야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다 잘된 거네. 여자도 처리했고 약혼식도 파토났으니까 이제 은정 씨한테 해명해야 하지 않아?”강서진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기대감이 담겨있었다.‘형이 강제로 결혼하는 거 보는 것도 꽤 재밌긴 했는데... 뭐, 이제 다 잘 풀렸으니까 다시 들이대겠지?’하지만 박수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간을 찌푸린 모습이었다.‘그날 밤... 내가 정말 잘못 본 걸까?’“형은 생각이 너무 많은 게 탈이야. 그렇게 망설이다가 전동하 그 자식한테 뺏긴 거 아니야. 서둘러. 그러다 두 사람 정말 정 드는 수가 있어.”강서진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표정이 확 차가워진 박수혁이 그를 노려보았다.‘이크, 저 성질머리 하고는.’불길함을 감지한 강서진이 소파에서 일어섰다.“난 이만 가볼게. 오늘 오랜만에 와이프 기분도 좋은데 일찍 들어가서 비위 맞춰야지.”첫 결혼 때 강서진을 대함에 있어 어딘가 조심스러웠던 추하나였지만 재혼 뒤에는 아예 막 나가기라도 한 듯 그에게 제대로 된 눈길 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그럴 때마다 씁쓸함이 밀려오긴 했지만 강서진은 마음을 다시 다잡곤 했다.‘하나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자...’강서진의 말에 박수혁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조금의 씁쓸함과 조금의 부러움이 밀려들었다.추하나도 강서진과 좋지 않은 감정으로 이혼했지만 결국 다시 강서진 곁으로 돌아왔다. 그와 반면, 박수혁과 소은정은 별 다툼 없이 나름 평화롭게 이혼했지만 이
갑작스러운 박수혁의 등장에 우연준도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소은호 대표님께서 입단속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는데.’한참을 입을 벙긋거려 보았지만 이미 밖에서 웬만큼 듣고 들어온 게 분명한 박수혁을 상대할 변명은 떠오르지 않았다.이때 소파에서 일어선 한유라가 박수혁과 우연준을 번갈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그냥 말해줘요. 우리 편이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게 낫지 않겠어요?”박수혁은 차갑고 잔인한 성격이긴 하지만 그 능력과 세력, 인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은정이가 조난 사고를 당했을 때도 박수혁 덕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어. 어쩌면 박수혁이 우리의 마지막 동아줄일지도 몰라.’박수혁의 매서운 시선을 그대로 받아내며 잠깐의 고민 시간을 가진 우연준이 눈을 질끈 감았다.“은정 대표님이 납치를 당하셨습니다. 만단의 준비를 하고 온 자들이라 그런지 아직 협박 전화도 없고... 단서도 전혀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우연준의 입을 통해 제대로 상황을 파악한 박수혁의 가슴이 욱신거렸다.‘이것 때문이었나... 이상하게 불안하더라니... 은정이가 납치를 당하다니. 도대체 누가 감히...’이때 박수혁의 머릿속이 번뜩였다.“언제 사라진 겁니까?”“어젯밤 11시 쯤에요.”순간 박수혁의 이성을 유지하던 마지막 끈이 끊어지는 기분이었다.소은정의 납치, 그의 약혼식, 군수기업인 도혁과 그의 딸 안진...그 때문에 소은정이 위험해졌다는 사실을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날 밤 도혁이 탄 차에서 홀연히 사라진 그 사람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젠장...’한동안 침묵하던 박수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알아낸 단서는 아무것도 없는 겁니까?”우연준 역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조사는 소은호 대표님과 전동하 대표님이 직접 진행 중이라 저도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그 대답이 떨어지기 바쁘게 박수혁은 단호하게 돌아섰다.그리고 바로 소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은정이... 찾았습니까?”뜬금없는 전화와 뜬금없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