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다시 중심을 잡은 한유라는 그저 길 가는 사람에게 도움이라도 받은 듯 무심하게 밀어냈다.“고맙습니다...”하지만 아무리 발걸음을 옮겨봐도 같은 자리만 빙빙 도는 기분에 한유라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누가 봐도 인사불성으로 취한 그녀의 모습에 심강열이 피식 웃었다.“몇 번 룸이에요?”주머니를 뒤적거리던 한유라가 한숨을 내쉬었다.“은정이한테 전화 좀 해줄래요? 나 좀 데리러 와달라고. 내가 폰을 룸에 두고 와서어...”한유라는 웅얼대며 말끝을 흐렸다.하지만 진상으로 느껴질 법한 이 상황이 심강열은 딱히 싫지 않았다.오히려 평소 진중하다 못해 무뚝뚝한 그의 얼굴은 부드러운 미소로 가득했다.“업무용 휴대폰 번호 밖에 없는데요? 지금 제 전화를 받을까요?”심강열과 소은정은 그저 오며가며 회의나 파티에서 만난 것뿐, 사적으로는 말 한 마디 제대로 나눠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소은정 대표 비서 번호는 있는데... 이런 사적인 자리에 비서를 대동할 일은 없을 테고...’한편 한유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그럼 왜 왔어요?”“휴...”심강열은 깊은 한숨과 함께 한유라의 가는 손목을 잡았다.반대쪽으로 움직이던 그가 말했다.“어느 방인지 기억 안 나면... 바람이라도 좀 쐬죠? 술 좀 깨면 생각날지도 모르잖아요.”복도 끝 창문 앞에 도착한 심강열은 한 번도 걸지 않은 번호를 눌렀다.“아, 우 비서님 되시죠? 심해그룹 심강열입니다.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만... 소은정 대표님한테 잠깐 복도로 나와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한유라 씨가 많이 취했는지 룸이 어딘지를 못 찾고 있네요? 저랑 같이 있다고 말씀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통화를 마친 심강열이 다시 고개를 돌리니 한유라는 창문 앞에 선 채 바람을 맞고 있었다.아직 찬 밤바람에 정신이 반쯤 돌아온 한유라는 심강열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심강열...? 그래. 결혼까지 한
한유라에게 심강열은 나이보다 더 진중하고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을 것 같으며 세상만사에 아무 관심도 없는 것 같은 이미지였다.‘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이 모습이 진짜 저 사람 모습이 맞을까?’갑작스럽지만 한유라는 눈앞의 이 남자에게 참지 못할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했다.‘사귀던 여자가 돈 받고 떠났다는데... 그 말을 할 때도 전혀 슬퍼보이지 않았어. 꼭 남 일 말하는 것처럼... 화는커녕 실망한 기색도 전혀 없던데... 왜지? 저 사람도 당황하거나 화를 낼 때가 있을까?’진심으로 묻고 싶었지만 지금 두 사람의 애매한 관계를 생각해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한편, 한유라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 심강열은 칠흑같이 어두운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숙련된 손놀림으로 담뱃재를 털어낸 한유라가 자연스럽게 담배를 건네려던 그때, 넓은 등이 휙 다가오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을 막아버렸다.한유라가 미처 반응하기 전에 심강열이 허리를 숙이고 조금 차가운 입술과 한유라의 말랑한 입술이 맞닿는다. 그리고 한유라는 마법에라도 걸린 듯 자연스럽게 입을 벌려 심강열을 받아들였다.심강열의 숨결에 입안에 조금 남은 담배향이 사라지고 심강열은 그렇게 천천히 한유라의 입술을 음미했다.키스의 달달함에 담배 연기향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쯤에야 심강열은 다시 그녀를 놓아주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한유라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찬바람에 겨우 되찾은 정신이 다시 몽롱해지고 시끌벅적한 복도가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뿐인 듯 조용하게만 느껴졌다.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 건 심강열이었다.“쓰네요.”“아, 네.”한유라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엄마가 피우던 건 이런 향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심강열의 표정과 목소리는 마치 담배 전문가처럼 진지했다.방금 전 그 뜨거운 키스가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담배에 함유된 니코틴과 오일의 비율에 대해 연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어느새 끝까지 타버리는 담배가 뜨겁게 느껴질 때에야 다시 정신을
적극적인 한유라의 모습에 심강열은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그의 어깨를 감싸안은 한유라의 따뜻한 손마저 치명적이게 느껴졌다.스킨십의 주동권을 완전히 빼앗긴 상황에서도 심강열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달콤하다...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달콤해.’담배의 달콤한 향을 느끼게 된 건지. 그저 이 순간이 달콤한 건지 헷갈렸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잡고 있던 이성의 줄을 놓칠 것만 같을 정도로 치명적으로 달콤했다.본능적인 욕망에 심강열이 더 다가가려던 그때, 한유라가 그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윽...”마법 같은 시간이 끝나고 한유라는 심강열의 가슴팍에 기댄 채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하지만 심강열은 꿈쩍도 할 수 없었다.방금 전 스킨십에서 한유라의 경험이 그보다 훨씬 더 풍부하다는 걸 느꼈음에도 여기서 더 나가면 한유라가 놀랄까 조심스러웠다. 주제 맞게도 그의 품에 안긴 이 발칙한 여자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심강열 씨.”“네.”밤하늘처럼 어두운 그의 목소리에서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이번에는 느꼈어요? 달콤함?”한유라의 나른한 목소리에 심강열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네.”“큭큭...”만족스러운 답을 얻었는지 한유라는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낮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그리고 다음 순간,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에 어두운 복도의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두 사람과 10m 쯤 떨어진 곳에서 발걸음을 멈춘 소은정이 물었다.“유라야? 심 대표님? 두 사람 맞아요?”익숙한 목소리에 한유라는 본능적으로 일어서려 했지만 이미 풀려버린 다리는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그런 그녀의 허리를 잡은 심강열이 대답했다.“네, 저 맞습니다.”서로를 꼭 안은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투샷에 살짝 흠칫하던 소은정이 이내 자연스럽게 웃었다.“아, 이제 집에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유라는 심 대표님이 맡으시겠어요? 아니면 저랑 같이 가는 게 나을까요?”“아, 유라 씨는 제가 집까지 데려다주겠습니다.”어깨를 으쓱하며 돌아선 소은정이
그 모습에 소은정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그렇게 피곤하면 오지 말지. 기사님 부르면 되는데. 그거 알아요? 동하 씨랑 사귀고 나서 우리 집 기사님 거의 매일 휴가나 마찬가지인 거? 일할 틈을 안 주네요, 아주.”그 말에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안 피곤해요. 솔직히 여기 안 왔으면 아직 일하고 있었을 걸요? 일보단 은정 씨 얼굴 보는 게 훨씬 더 즐거우니까.”한편, 뒷좌석에 앉아 창문에 고개를 기대고 있던 성강희는 애써 눈을 감았다.‘이것들아, 뒤에 사람 있다고... 애인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잠시 후, 오피스텔로 돌아온 소은정은 침실이 아닌 서재로 향했다.큰 모니터로 주식 시장 동태를 살피던 소은정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이상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단 말이지.’우연준이 메일로 전송한 자료를 참고하며 이것저것 살펴보던 소은정은 한참 뒤에야 뻐근한 목을 풀기 위해 팔을 쭉 뻗었다.그제야 서재 문 앞에 서 있는 전동하를 발견한 소은정의 눈이 동그래졌다.터벅터벅 다가온 전동하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안 피곤해요?”시간을 확인한 소은정의 눈이 더 커다래졌다.‘벌써 새벽 1시네? 설마 나 기다리느라 아직까지 안 자고 있는 거야?’“아, 미안요. 자료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예요? 그냥 나 부르지.”“아니에요. 나 기다리는 거 좋아해요. 은정 씨를 기다리는 거라면 더더욱.”워낙 조용한 밤이라 그런지 전동하의 낮은 목소리가 왠지 울리는 듯했다.자연스럽게 소은정의 허리를 감싸안은 전동하의 입술이 소은정에게 닿았다.슬슬 올라오는 손을 턱 막은 소은정이 싱긋 웃어보였다.“너무 늦었어요.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순간 전동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난 이대로 못 물러나요, 은정 씨.’팔에 살짝 힘을 주어 소은정을 확 끌어당긴 전동하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속전속결로 끝낼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하, 속전속결? 이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소은정이 식탁을 둘러보았다.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에 방금전까지 울렁거리던 속이 신기하게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전동하 덕분에 정석으로 해장을 마친 소은정은 빠르게 준비를 하고 다시 거실로 나섰다.소파에 앉아있던 전동하가 그녀를 향해 싱긋 웃었다.“가요.”잠시 후, SC그룹 건물 앞.하지만 예상치 못한 얼굴에 자연스레 차에서 내리려던 소은정의 손이 살짝 멈칫했다.‘날...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순간, 전동하 덕분에 상쾌하던 기분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역시 그 얼굴을 확인한 전동하의 얼굴에도 미소가 사라졌다.“상대하기 싫죠? 우 비서 부를까요?”“아니요. 나 갈게요.”역시나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차에서 내린 소은정 앞을 누군가 막아섰다.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전동하, 소은정 두 사람을 바라보던 안진이 싱긋 웃었다.“얘기 좀 하지?”“싫은데?”‘내가 왜 너랑? 모르는 사람이랑 무슨 얘기를 해?’“나 수혁이랑 결혼해. 전 와이프로서 어떻게 생각해?”일부러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는 듯 안진이 목소리를 높였다.건물 앞을 오가는 직원들은 감히 대표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귀를 바짝 세웠다.발걸음을 멈춘 소은정이 안진의 모습을 훑어보았다.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는 건진 알 수 없었지만 의도적으로 소은정의 스타일과 메이크업을 따라하던 안진은 원래 스타일 그대로 그녀의 앞에 나타났고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소은정이 흰 피부에 정교한 이목구비, 차마 다가가면 안 될 것 같은 고결한 차가움을 가지고 있다면 안진은 섹시한 구릿빛 피부에 공격적으로 자기 주장한 이목구비,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인 여자였다.소은정의 반응이 궁금하다는 듯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안진을 바라보던 그녀가 픽 웃었다.“축하해. 그런데... 내가 박수혁 전 와이프였다는 거 그만 언급하면 안 될까? 나한테는 흑역사나 마찬가지니까.”“흑역사”라는 단어가 거슬리는 듯
건물로 들어선 소은정이 바로 경비원에게 분부했다.“저 여자 들어오지 않게 잘 감시해요.”멀여져 가는 소은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안진이 픽 웃었다.‘재밌어... 소은정... 화끈한 성격이 상당히 마음에 든단 말이야. 박수혁만 아니었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네.’미소를 거둔 안진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차량의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곧이어 무표정한 전동하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내가 말했죠? 은정 씨 건드리지 말라고.”하지만 안진은 어깨를 으쓱했다.“그쪽이 시키는대로 했는데 태한그룹은 우리 두 사람 열애설 밖에 인정 안 했어요. 결혼 얘기는 아직 없다고요.”하지만 전동하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그건 그쪽 사정이고요. 괜히 다른 사람까지 엮지 마요.”그제야 안진의 눈동자에 초조함이 살짝 스쳤다.“협박도 해보고 회유도 해보고 다 했는데도 안 넘어오는 걸 나더러 어쩌라고요. 박봉원이 진짜 죽기라도 하면 난 마지막 카드를 잃는 거라고요.”이에 전동하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실렸다.“그래서요? 그것도 그쪽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럼 다른 카드를 찾아보든가요.”말을 마친 전동하는 안진의 답을 듣지도 않고 자리를 떠버렸다....한편 소은정은 건물 앞에서 안진과의 만남 때문에 오전 내내 기분이 다운된 상태였다.부장들의 보고도 듣는둥 마는둥 하던 그때, 진동 모드로 해놓은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나 그 사람이랑 잤어.”‘하, 이런 TMI...’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축하해.’한편, 시간을 돌려 오늘 아침 무렵.한유라가 무거운 눈꺼풀을 떴을 때 마주한 건 어색하면서도 익숙한 얼굴이었다.결혼한 지 3일째, 함께 자는 게 너무나 당연한 사이임에도 이 상황이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이상한 사이.옷섶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곱게 잠든 심강열을 가만히 바라보며 한유라는 어젯밤 있었던 일들의 퍼즐을 맞추었다.‘출장을 간다던 사람이 클럽에 나타났고 내가 담배를 피웠고 키스를 했고... 내가
그 말에 흠칫하던 한유라가 애써 평정심을 되찾았다.‘질투? 웃기고 있네.’“그럴 리가. 어쨌든 그쪽이 먼저 말 놨으니까 나도 놓...는다? 괜찮지?”혼자 너무 흥분한 것 같은 기분에 한유라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아무리 부부라지만 우리가 서로 질투할 사이는 아니잖아? 너답지 않게 왜 이래.’심강열의 눈치를 힐끗 살피던 한유라는 살짝 구겨진 그의 셔츠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발견하고 얼굴을 붉혔다.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인 심강열도 어색한 기침을 뱉어냈다.“옷... 갈아입고 올게.”“나도 갈아입고 싶은데... 아직 짐 정리가 덜 돼서...”한유라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여기가 우리 신혼집인가 보네.’옷장 앞에 선 심강열이 자기한테는 작지만 한유라에게는 클 것 같은 셔츠를 들고 한참을 망설이기 시작했다.하지만 그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시선 한자락에 한유라의 긴 다리가 눈에 띄었다.어딘가 응큼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유라의 모습에 심강열이 고개를 갸웃했다.“샌님처럼 생겨선... 은근히 이런 거 좋아하나봐요?”심강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손에서 셔츠를 낚아챈 한유라가 혀를 내밀었다.“기다려요. 나 금방 갈아입고 올게요.”잠시 후 기다리란 말 한 마디에 착한 강아지처럼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던 심강열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조금은 큰 그의 셔츠를 입고 난 한유라 때문이었다.허벅지를 겨우 아슬아슬하게 덮고 있는 셔츠가 다 벗은 몸보다 더 에로틱하게 느껴졌다.나름 정신줄을 붙잡고 고개를 휙 돌렸지만 그의 이성은 점점 더 아득히 먼 곳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남자는 시각에 예민한 동물이라더니... 하, 이렇게 내가 동물이라는 걸 느끼게 될 줄은 몰랐네.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였어.’한편, 원하는 리액션을 얻어낸 한유라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한 발 앞으로 다가간 그녀의 귓가에 우렁찬 그의 심장박동이 들리는 듯했다.아무 일도 없었지만 하룻밤을 함께 해서일까?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던 묘한 벽은 어느
한유라가 취했을 때 심강열은 남자로서의 마지막 매너로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며칠 전 갓 결혼한 한유라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하지만 지금은...한유라는 이미 정신을 차렸고 두 사람은 이미 부부다. 그에겐 이 감정을 참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잠시 후, 침대에 멍하니 누운 한유라는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다시 되새겨 보았다.‘심강열... 그렇게 거친 면도 있는 사람이었어? 내가 아직 술이 덜 깬 건가? 우리 지금 한 거 맞지?’이때 아직도 직성이 덜 풀린 건지 심강열의 손이 다시 스멀스멀 다가와 그녀의 탄탄한 허리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하... 뭐야? 늦게 배운 도둑질 뭐 이런 거야? 부처처럼 생겨선 완전... 변태잖아.’“우웅우웅...”이때 때마침 휴대폰 진동이 울리고 한유라는 있는 힘껏 심강열을 밀어냈다.“전화... 오잖아.’두 사람만의 시간이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심강열이 일어섰다.“... 네, 알겠습니다.”평소와 다름없이 통화를 마친 심강열이 고개를 돌리고 침대에 누운 채 잠이 든 한유라의 모습이 보였다.여전히 살짝 붉은 뺨과 아슬아슬하게 한유라를 덮은 이불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백옥 같은 몸.순간 심강열은 다시 피가 한쪽으로 쏠리는 기분이 들었다.지금까지 여자와 관계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이성을 잃은 건 처음이라 심강열도 나름 당황스러웠다.자신만은 남들과 다르다며, 성욕 따위 이성으로 충분히 누를 수 있다고 자신했던 과거는 그저 진정한 쾌락을 맛보지 못한 자의 편협한 생각일 뿐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하지만 그럼에도 이미 곱게 잠 든 한유라를 깨우고 싶지 않았던 심강열이 조심스레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얼굴을 가린 잔머리를 넘겨준 심강열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오늘은 진짜 출장가야 해. 3일 뒤에 봐.”한편 잠결에 그 목소리를 들은 한유라는 눈을 더 질끈 감았다.‘알겠으니까 얼른 가라. 나도 지금 혼란스러워 죽겠으니까...’관계를 가지자마